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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욥기

[스크랩] 욥기 (19 : 1~29)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1:17
욥기 (19 : 1~29)


1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 너희가 내 마음을 번뇌케 하며 말로 꺾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꾸짖고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4 내가 과연 허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는 것이니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긍하며 내게 수치될 행위가 있다고 증명하려면
하려니와

6 하나님이 나를 굴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은 알아야 할지니라

ㅇ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가 내 마음을 번뇌케 하며 말로 꺽기를 어느때까지 하겠
느냐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꾸짖고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내가 과
연 허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는 것이니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긍하며 내게 수치될 행위가 있다고 증명하려면 하려니와 하나님이 나를 굴하게 하시
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은 알아야 할지니라. - 욥은 그 친구들의 부당한 말
을 신랄하게 공격한다. (1)그들이 욥을 학대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것(3절).
(2)욥에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 자신의 사적(私的)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간섭한다는 것(4절).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는 것이니"란 말씀의 뜻은 그 자신
(욥 자신)이 관계할 일이라는 뜻이다. (3)그에게 임한 환난은 하나님에게서 왔으니만
큼 그들은 그를 위로해주어야 된다는 것(6절). 그런데 그들이 욥을 위로하지는 않고
도리어 자긍하며 욥의 죄를 찾아내려고만 힘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욥의 친구
라고 하면서도 고난 중에 있는 욥을 극도로 괴롭히는 것 뿐이었다.
"하나님이 나를 굴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은 알아야 할지니라."
(6절). 이 말씀은 욥이 자기의 고난의 원인이 죄에 있지 않다는 확신의 발표이다. 설
혹 그에게 죄가 있다 할지라도(5절) 그것은 그의 고난과는 별도라는 것이다. 이렇게
욥은 자기 고난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고 확신한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불신앙이
아니며 원망도 아니다. 그의 이 말은 사실대로 표현된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
기 고난이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줄 알아야 된다. 그렇게 알 때에 구원 받을 소망이
있다. 그 이유는 그렇게 아는 자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쳐 주신다(욥 5:18). 그러나 만일 고
난의 원인이 우연이라고 한다면 고난을 받는 자가 어떻게 소망을 가지랴?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7 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간구할지라도 신원함이 없구나

8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지 못하게 하시고 내 첩경에 흑암을 두셨으며

9 나의 영광을 벗기시며 나의 면류관을 머리에서 취하시고

10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소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11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같이 보시는구나

12 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수축하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 쳤구나

ㅇ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간구할지라도 신원함이 없구나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지 못하게 히시고 내 첩경에 흑암을 두셨으며 나의 영광을 벗기시며
나의 면류관을 머리에서 취하시고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소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 같이 보시는구나 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수축하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쳤구나. - 여기서 욥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는 역경과 고난을 묘사한다. 그것은 곧,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다"는 말(7
절), "길을 막았다"는 말(8절 상반), 그의 길에 "흑암을 두셨다"는 말(8절 하반), "영
광을 벗기셨다"는 말(9절), "사면으로 나를 헐으신다"는 말(10절 상반), "소망을 뽑으
셨다"는 말(10절 하반), "하나님이 원수 같이 보신다"는 말(11절), 하나님이 군대를
보내어 치시는 것 같이 하신다는 말(12절) 등이다. 이런 말씀들은 모두 다 고난 받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진실한 신자들은 고난 중에서 이와 같은 느낌을
가진다. 예를 들면 애가의 저작자 예레미야의 느낌도 그와 같았다. 그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라고 하였으며(애 3:1), 그는
계속하여 위의 욥의 탄식과 같은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였다(애 3:2-18).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
함이니이다"라고 하였다(애 3:20-22). 애 3:32-33 참조.

13 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ㅇ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
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 여기 이른바 "형제들"이
란 말은 혈연에 의한 형제들을 의미하지 않고 가까운 친구들을 가리켰을 것이다. 전날
욥의 행복한 시대에는 이들이 모두 가까운 친구들이었으나 지금 그의 곤고한 시절에는
모두 다 그를 저버린 것이다. 이런 친구들은 신의(信義)가 없는 자들이니 손우(해로운
친구)들이다. 그러므로 잠 18:24에 이런 친구를 많이 두는 일에 대하여 말하기를, "많
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라고 하였다.
ㅇ욥은 이렇게 친구들이 그를 멀리하는 괴로움의 원인까지도 하나님께 돌린다. 그것
은 "떠나게 하시니"란 말(13절)이 알려준다. 이것이 그의 신앙사상이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1)그는 그 배신하는 친구들을 원망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다윗
이 시므이로부터 저주를 받았을 때에 그 저주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하고 시
므이를 원망하지 않았다(삼하 16:9-10). (2)욥의 그런 사상은 하나님을 원망함이 아니
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어드림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15 내 집에 우거한 자와 내 계집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16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겠구나

ㅇ내 집에 우거한 자와 내 계집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
겠구나. - 전에 욥이 행복하던 시절에는 그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이 그의 후대(厚待)
를 받았었고(31:32), 그의 종들도 사랑을 받았었다(31:13), 그런데 이제 그의 곤궁한
시절에는 그들이 배은망덕한다.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겠구나"란 말은 그가
이제는 그 종들에게도 애원하다시피 무엇을 요구해야 겨우 받게 되는 형편이 되었다는
뜻이다.

17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

ㅇ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 - 욥은 자기 아내의 내조
(內助)를 받지 못함은 물론이고(2:9), 도리어 배척을 받는 처지였다. 부부도 신앙 사
상이 서로 다르면 일체가 되지 못하고 서로 대립된다. 또한 사상이 다른 동포도 하나
가 되지 못한다.

18 어린 아이들이라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ㅇ어린 아이들이라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 여기 이
른바 "어린 아이들"이란 말(* )은 소년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존장(尊長)을 존
경해야 되는데 도리어 업신여기고 조롱하였다. 그런 행동은 상대방에게 큰 고통을 주
는 무서운 죄악이다. 욥은 그것도 참아 견디었다.

19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ㅇ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 이 말씀은 위에 진술된 모든 말씀에 대한 결론일 것이다. 욥은 가장 가까
운 자들이 자기에게 원수가 된 것이 큰 괴로움인 것을 여기서 발표한다. 가까운 자들
이 그렇게 된 것은 본래 원수였던 자들의 핍박보다 더욱 괴로운 것이다. 그 이유는,
(1)사람은 자기에게 가깝던 자가 멀어질 때에 그 받던 사랑과 협조의 결손을 아프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몸에서 어떤 요긴한 지체가 끊어져 없어짐과 마찬가지이다.
(2)사람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에게서는 사랑의 보답을 기대하는데 그 기대와 정반대되
는 보답을 받게 될 때에는 절망의 심리마저 생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ㅇ욥은 이와 같은 고난을 받은 점에서 예수 그르스도의 예표가 될만하다. 우리는 욥
기를 읽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받으신 고난의 한 부분을 조금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
서는 이 목적으로 일찌기 욥의 생애를 통하여 고난 문제를 인류에게 계시하셨을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받으신 고난은 사랑하는 자에게서 발꿈치를 들리운 것 같은 것이
기도 하다(요 13:18 하반).

20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 뿐이로구나

ㅇ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 뿐이로구나. - 이것은 욥이 그
질병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과 사람들의 배신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그의 피골(皮
骨)이 상접(相接)한 비참한 꼴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정 표준역(R.S.V)에는
"나는 이빨 붙은 뼈로만 남았구나"(I am left with only the bone in which my teeth
are set.)라고 번역되어 있다.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

ㅇ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 -
이것은 풍자적인 언사가 아니고 겸손한 욥의 진지한 요청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에게 대하여 원망함도 아니다. 이 말은 자기의 심각한 고난에
대하여 표현한 그의 자연스러운 애가(哀歌)이다. 시문학(詩文學)이란 것은 때로는 자
연 현상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것을 족하게 여긴다.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한 것은 그저 그 때 사태의 외모를 그대로 묘사
한 것 뿐이다. 그 때에 욥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저런 고난을 받는 것을 알고 있었다(7
-12). 그러나 그가 그 사실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사실 때문
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슬피 호소한 것 뿐이다. 기도와 호소는 원망이 아니고 신앙이
다.
ㅇ여기 "핍박"이란 말(* )이 은근히 하나님게 대한 원망을 함축하는가? 하나님
께서 욥을 핍박하셨다는 말이 순조로운 말일까? 여기 "핍박"이란 말은 불의하게 압제
한다는 뜻을 반드시 내포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저 괴롭게 하려고 쫓아다님(pursue
after)을 말함이다. 욥이 이렇게 말함은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자세한 간섭을 염두에
둔 것이고 원망함은 아니다. 욥이 하나님을 거스려 원망하였다는 말은 본장에 한 마디
도 없다(C. Van Gelderen, Geen enkel woord van aanklacht tegen God. - Das Hoofdp-
unten Der Zielsgeschiedenis Van Job, 1931, pp.43-44).
ㅇ욥이 여기서 표현한 것은 이렇다. 곧, 하나님은 그의 주권으로 욥을 "핍박"(불의한
처사란 의미는 아님)하실 수 있겠으나 그의 친구들은 하나님이 아니니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ㅇ"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 여기 "살을 먹는다"는 말은 아람어에 보통 나오는 표
현으로서 맹수가 물듯이 사람이 남을 거짓말로 비방함을 가리킨다(J.H.Kroeze,
G.Fohrer, Konig).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 철필과 연으로 영영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ㅇ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연으로 영영히 돌에 새겨졌
으면 좋겠노라. - 욥은 여기서 자기의 고난의 원인 문제에 있어서 그것이 자기의 어떤
죄가 아니라고 주장해 온 자기의 이때까지의 변호가 영구히 후세에 전달되기를 원한
다. 그는 그만큼 이 문제에 있어서 자기의 청백을 확신하고 또 주장한다. 그는 교만이
아니고 진리와 사실을 굽히지 않으려는 신앙 양심의 고백이다. 그러면 욥이 후세에 전
살하고자 하는 기록의 내용은 25-27절의 내용도 아니고, 벌써 앞에 나온 변론의 집합
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이때까지 그가 말한 변론의 핵심(혹은 실질)이다. 포렐(G.
Fohrer)도 이 점에 있어서는 동의한다(Mit dem Wunsch: "Wurden doch meine Worte
aufgeschrieben!" sind naturlich die folgenden Verse 25-27 gemeint, die keine
Inschrift bilden und nicht mit beginnen durften, noch die gesamten
vorhergehenden Reden, die sich dadur nicht eignen. Vielmehr kann es sich nur um
den Kern und die Substanz der Reden Hiobs handeln.-Kommentar zum Alten Testment,
Das Buch Hiob, 1963, s.316-317).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ㅇ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 욥
은 자기의 고난의 원인이 될 만한 죄가 없는 사실을 기록하여 전하기 원하였다(23-
24). 이제 그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말한다. 그것은 후일에 구속자가 그를 신
원해 주신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에는"이란 말(* )은 역설체(力說體)
로서 확신을 강조한다. "구속자"란 말(* )은 종을 사서 그를 자유하게 하는 자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자기 피로 그
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그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다. 욥은 자기의 죽을 날이 가까와
옴을 생각하면서 살아 계신 구속자(救贖者)가 자기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내다본
다. 이것은 요셉이 임종시에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라고 말한(창
50:24) 그의 신앙과 흡사하다.우리 본문의 "살아 계시니"(* )란 말은 여기서 요
긴한 뜻으로 표현되었다. 우리는 죽으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는 우리를 구
원하시는 완전한 구주님이시라는 뜻이다.
ㅇ그런데 여기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한 말에 포함된 뜻은 무엇인가?
이것은 중요한 뜻을 가지는 것으로, 욥이 그의 생전 어느 때에 한 번 하나님이 변증해
주신다는 해석(ante-mortem-view)이 있으나 개혁주의 학자들은 욥의 죽은 후(세상 끝
날)에 부활하신 주님이 오신다는 뜻이라고 한다(Kuyper, Loc de Consumm. bl. 31-44;
Bavinck, Geref. Dogmatiek IV, bl.771; Honig, Handbuch.bl.782). 이 말씀은 단지 욥
의 주장을 옳다고 할 증인이나 변호자가 온다는 의미가 아니고, 구원론적 또는 종말관
적인 신원(神怨)을 말해준다(C. Van Gelderen, Beide, soteriologisch en
eschatologisch heeft hij vooreerst zijn hoogtepunt bereikt. - Zielsgeschiedenis
Van Job, 1931, bl.44).

26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ㅇ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육체 밖
에서"란 말(* )은 "내 육체를 떠나서" 혹은 "내 육체 없이"란 뜻이다. "육체
밖에서"란 말은 물론 "죽은 후에"란 뜻과 같다. 반 겔데렌(C.Van Gelderen)이 역시 그
렇게 해석하였고(Denkt Job wel aan een leven der ziel na den dood, een leven in
gemeenschap met God, maar niet aan eene opstanding des vleesches. - Zielsgeschi-
edenis Van Job, 1931, bl. 45). 흴쉘(Gustav Holscher)도 위의 해석과 같이 "내 육체
없이"라고 해석하였다(Mithin ist (* ) 19:26 nicht zu ubersetzen: "von meinen
Fleische aus", sondern "ohne mein Fleisch". - Handbuch zum Alten Testmnt, Das
Buch Hiob, 1952, s.49). 어떤 다른 학자들처럼 이것을 "육체로부터"(육체를 입은 그
대로 곧, 아직 살아 있어서)라고 번역한다면, 그것은 그 윗문귀(26절 상반)에 있는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란 말과 통하지 않는다. 그의 "가죽이 썩은 후"란 말
은 그의 죽은 후를 의미하므로 그가 아직 살아 있는 육체 그대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고 하였을 리는 만무하다.

27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

ㅇ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니 않을 것이라 내 마음
이 초급하구나. - 이 귀절은 앞절의 말씀을 좀 더 밝혀준다. 곧, 그가 육체를 떠나서
하나님을 볼 터인데 간접적으로 아는 정도가 아니고 직접적으로 친히 보게 된다고 한
다.
ㅇ"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곧,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외인"이란 말
의 의미가 대적을 의미할 수도 있음)처럼 나타나지 않으시고 구원자로 나타나신다는
뜻이다.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란 말(* )은 "내 속에 있는 것들이(나
의 내장이) 모두 소멸될지라도"(곧, 질병으로 인하여 그의 내장은 모두 녹아버려 그가
죽은 뒤에라도)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한역의 의미도 상당한 근거를 지
녔다. 곧, 그의 마음 속으로 주님을 보기 원하고 사모하여 쇠약해진다는 것(시 84:2,
119:82)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는 헹스텐벧크(E.W.Hengstenberg)가 지지한다(*
sich verzehren, bezeichnet eine lebhafte Sehnsucht.-Das Buch Hiob, 1875, s.68).
크루제(J.H.Kroeze)는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한다. 곧, "욥이 고난을 받으
며 하나님을 사모하다가 마침내 보게 되었으니 그것은 그에게 이루어진 계시사(Openb-
aringsgeschiedenis)이다."라고 하였다(Het Boek Job, 1961, bl.226).

28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꼬 하며 또 이르기 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29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ㅇ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꼬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
에게 있다 할진대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 여기서는 욥이 자기에게 대한 그 친구들의 취급이
위태하다고 그들에게 경고한다. 그들이 고난 받는 욥을 동정하지는 않고 계속해서 그
에게는 해당되지도 않는 이론으로 그를 정죄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징벌이 그들에게
내릴 것이라고 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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