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3장
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의논하고
ㅇ본장은 삼하 6:1-11의 내용과 병행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기록 순서상 삼하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 왕의 즉위(삼하 5:1-5), 예루살렘 정
복(삼하 5:6-10), 다윗 궁의 건설(삼하 5:11), 그리고 블레셋 대군을 격파한 바알브라
심 사건(삼하 5:17-25)과 언약궤의 옮김(삼하 6:1-23)의 순으로 기술하였다. 반면에
역대기 저자는 다윗 왕의 즉위(11:1-3) 및 예루살렘 정복(11:4-9) 다음에 바로 이어서
언약궤를 옮기려 한 제 1차의 시도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같이 본 저자
가 언약궤를 옮기는 장면을 다윗 궁의 건설이나 블레셋 대군을 격파한 사건보다 앞서
서 기술한 것은 무엇보다도 여호와 경배에 대한 다윗 왕의 관심을 크게 강조하기 위함
이었다. 즉, 본서 저자는 다윗 왕의 일반적인 국사(國事)보다도 여호와께 대한 그의
불타는 열심에 초점을 맞추어 본서를 기술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저자의 의
도는 포로 귀환 이후 신앙적으로 침체되어 있었던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여호와를 경배
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심을 회복시켜 주기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Payne).
ㅇ곧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의논하고 - 여기서 '곧'(르)이란 12장의 문맥을 지시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Lange, Keil). 이렇게 볼 때 '모든 장수'는 다윗을 왕으로 모시
기 위해 군사들을 인솔했던 각 지파의 지휘관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절
로부터 5절은 병행 구절인 삼하 6장에는 보이지 않는 구절이다. 여기서 저자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한 성역(聖役)이 다윗 개인만의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무리
들의 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2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선히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저희와
함께 들어 있는 성읍에 거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보내어 저희를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ㅇ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 여기서 '온 회중'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4절)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다윗에게로 나아온 헤브론의 각 지파의 용사들(12장)을 의미한
다. 다윗은 이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남은 백성들에게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전하고 협력을 요청하였다(3절). 그리고 백성들은 이에 기꺼이 응
하였다(4절).
ㅇ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 즉, '법궤를 옮기고자 하는 계획이 하나
님의 뜻과 부합한 것이라면'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다윗은 법궤를 옮기기에 앞서 먼저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일인가를 생각하였다. 이는 분명 잘한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을 추진하는 방법면에 있어서도 다윗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명하
신 대로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부분에 있어서는 경솔하였으니 그만 법궤 운반은 실
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5-14절).
ㅇ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보내어 - '이스
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는 헤브론에 모이지 못한 백성들을 지칭하는 말이
다. 다윗 왕은 이들과 제사장, 레위인들에게 국가의 계획을 알림으로써 온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였던 것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6장에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언급되지 아니하였으나 본절에는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
은 본서 저자의 제사장적 관점을 잘 보여주는 점이다(Curtis). 또한 여기서 '보내어'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깨뜨리다'는 뜻의 동사 '파라츠'와 '보내다'는 뜻
의 동사 '솰라흐' 두 동사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말의 정확한 뜻은 '깨뜨
리고 나아가게 하다'는 뜻으로 이는 어떠한 방해도 물리치고 온 백성들에게 이 거룩한
사역을 알리겠다는 다윗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당시는 이스라엘 주변의 이
방인들이 아직 완전히 정복되지는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다윗은 이러한 표현을 한 것
같다(Payne).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ㅇ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Saul)은 그의 통치 기간(B.C.1050-1010) 중 단 한번도 하나님의 궤에 대한 관심을 보
이지 않았다. 물론 그가 블레셋과의 전투시 법궤를 찾은 적은 있으나 그때는 다만 자
신의 아들 요나단의 안전 여부를 여호와께 물어보려고 했을 뿐이다(삼상 14:18). 이와
같은 그의 무관심은 그의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궤는 계시의 출처
(出處)로서 하나님의 뜻이 이 궤를 통하여 종종 나타났기 때문이다(출 25:22;레 1:1;
삼상 3:3, 4). 따라서 사울이 하나님의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다 함은 그가 하나님
의 뜻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서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입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다윗은 무슨 일에서든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움직
였으니 실로 '신앙의 용사'라 할 수 있는 것이다(14:10, 14).
4 뭇 백성이 이 일을 선히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ㅇ뭇 백성이 이 일을 선히 여기므로 - 이는 직역하면, '모든 백성의 눈에 그 일이 선
하였으므로'이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백성'이란 지휘관의 총회(1절)가 아닌 온 이스
라엘 사람들을 의미한다. 즉 다윗 왕이 자신의 계획을 백성들에게 알렸을 때 그들은
그 일에 대해 한결같이 좋은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ㅇ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 여기서 '온 회중'은 헤브론에 모였던 이스라
엘 각 지파의 용사들을 가리킨다. 2절 주석 참조. 이들은 백성들의 좋은 반응을 보고
다윗 왕의 계획에 전적으로 찬동한 것이다.
5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고자 할새
ㅇ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 여
기서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란 말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삼상
3:20;삼하 17:11;24:2, 15)라는 말과 같이 이스라엘 전역을 요약적으로 표현한 말이
다. 성경에서 시홀(Shihor)은 대개 나일 강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사 23:3;렘
2:18) 간혹 나일 강의 수로나 델타(Delta) 지역의 한 지류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러
나 본 문맥에서 시홀은 성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의 남서 경계선으로 언급된 바 있는
애굽의 시내, 곧 오늘날의 '와디 엘 아리쉬'(Wady el Arish)를 가리킨다(Keil,
Curtis, 민 34:5;수 15:4, 47;사 27:12). 한편, 하맛(Hamath)은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
지였으며(민 13:21;34:8;수 13:5;삿 3:3) 오론테스 강 유역에 발달한 성읍이었다. 다
윗 왕은 이와같이 이스라엘 전역에서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았는데 이 '온 이스라
엘'이란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서 골고루 선발한 자들을 의미한다. 병행 구절인 삼하
6:1에는 이들의 숫자가 모두 3만명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6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
이름으로 일컫는 궤라
ㅇ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 하나님의
궤가 있었던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은 본래 기브온 사람들의 성읍, 바알라
(Baalah)였다. 그런데 이 성읍이 유다 지파의 수중에 들어가자 '유다의 바알라'라는
뜻의 '바알레유다'(Baale of Judah)로 불리워졌었다(삼하 6:2). 이러한 역사를 가진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가는 길목, 곧 예루살렘 서쪽 15km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는 아벡 전투(삼상 4:1-11) 이후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때
(11:4-9)까지 무려 70년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삼하 6:2 주석 참조. 한편, 다윗
왕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기 위하여 3만명의 수행원들(본절의 온 이스라엘)
을 거느렸었다. 당시 다윗 왕이 이처럼 많은 수의 병력을 동원했던 것은 기럇여아림이
블레셋 영토에서 매우 가까왔던 까닭에 그들의 기습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ㅇ여호와 하나님의...이름으로 일컫는 궤라 - 본절은 법궤가 '하나님의 궤'로 불리워
진다는 단순한 의미 외에도 그 궤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임하여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능력과 속성과 영광에 대한 계시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으로 일컫는다'는 말은 곧 그의 능력과 영광이 그 궤에 임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
다. 이에 관해서는 삼하 6:2에서 상세히 주석하였으니 참조하라.
7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ㅇ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 다윗은 하나님의 궤의 거룩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새 수레에 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조치는 분명 하나님의 율법에 위배되
는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법에는 오직 레위인 중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
어 궤를 운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나(민 7:9) 다윗은 이방인들이 신상을 옮길 때 사
용했던 방법으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 했기 때문이다. 즉 당시 베니게 족속이나 블레
셋 족속은 수레를 이용하여 그들의 신상을 옮겼었다(Munter). 그런데 그와 마찬가지로
다윗도 이방인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 하였으므로 그의 계획은 중도에서 실
패하게 되었던 것이다(9-13절).
ㅇ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 병행 구절인 삼하 6:3에 의하면 아비나답(Abinadab)
의 집은 기럇여아림의 산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궤는 블레셋 땅에서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진 후 줄곧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엘
르아살(Eleazar)은 법궤를 지켜왔다(삼상 7:1).
ㅇ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 웃사(Uzza)와 아히오(Ahio, 또는 '아효')는 모두
아비나답의 손자들이다. 삼하 6:3, 4 주석 참조.
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니라
ㅇ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주악하니라 - '하나님 앞에서'란 '하나님의 궤
앞에서'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臨在)의 상징물, 곧 가견적인 보좌
였으므로 다윗 왕과 그 일행은 궤 앞에서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의 행동으로 간
주했던 것이다. 한편,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옮겨지는 궤 앞에서 뛰놀며 온갖 악기로
주악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만큼 하나님의 궤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뻐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때 그들이 연주하였던 악기인 수금, 비파, 소고, 제금, 나팔 등에 대해서
는 병행 구절인 삼하 6:5 주석을 참조하라.
9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ㅇ기돈의 타작 마당 - '기돈'은 혹자의 견해처럼 사람의 이름이라기 보
다는(Curtis) '파괴', '재앙'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Keil,
Lange). 왜냐하면 '기돈의 타작 마당'이 병행 구절인 삼하 6:6에는 '나곤
의 타작 마당'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기돈'과 '나곤'을 고유 명사로 취할 경우 두 기
록을 조화시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기돈'과 '나곤'을 일반 명사로 취할
경우 두 상이한 기록들은 서로 내용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기돈'은
'파괴', '재앙'이란 뜻이며 '나곤'은 '예비된', 또는 '충돌하는'('치다'의 '나카'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때)이란 뜻임에 비추어 볼 때 이 타작 마당은 재앙의 타
작 마당이자 충돌의 타작 마당(11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삼하 6:6
주석 참조.
ㅇ소들이 뛰므로 - 여기서 '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트'는 본래
'걸려 넘어질 뻔하다'는 뜻으로 이는 소들이 돌뿌리 등에 걸려 비틀거리는 상태를 묘
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같이 소들이 비틀거리므로써 수레에 실은 법궤는 떨어지려
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불길한 흉조(凶兆)는 분명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대로 법궤
를 운반하지 아니한 데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볼 수 있다.
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ㅇ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 당시 소들이 날뛰므로 인해 법궤가 떨어지
려 하자 손으로 붙잡은 웃사의 행동은 상황적으로 볼 때에는 분명 잘못이 없다. 그렇
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볼 때 웃사의 그러한 행동은 분명 신성 모독죄(神聖冒
瀆罪)에 해당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가견적인 보좌로서 어느 누구도
이를 만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율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를 만졌기
때문이다(민 4:15). 하나님은 심지어 이것은 거룩한 것이니 들여다보지도 말 것이라고
(민 4:20;삼상 6:19) 엄히 규정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웃사의 행동이 설사 선의(善意)
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율법을 경시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삼하 6:7 주석 참조.
11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ㅇ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 여기서 '충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레
츠'는 하나님이 주어가 될 때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행위를 나타내
는 말이다(출 19:22, 24;삼하 5:20;대하 20:37;욥 16:14;시 60:1;80:12;89:40;사
5:5). 즉 하나님께선 자신의 말씀을 경홀히 여긴 웃사에게 진노의 심판(10절)을 발하
셨던 것이다.
ㅇ다윗이 분하여 - 다윗의 분함은 웃사에게 징벌을 내리신 하나님께 대한 것이 아니
었다.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
서 그의 분함은 (1) 웃사의 경거 망동한 행동과 (2) 자신의 율법에 대한 무지, 또는
불순종을 자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석달 후(14절) 자신의 모든
실수를 수정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법궤를 운반하게 된다
(15:1-29;삼하 6:12-19). 이 같은 사실을 보아서도 그의 분냄은 자신과 웃사의 실수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삼하 6:8 주석에서 다
루었으니 참조하라.
ㅇ베레스 웃사 - '웃사를 충돌하심'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곳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12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ㅇ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 다윗의 두려움은 웃사의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이었
다. 즉 웃사의 죽음을 보자 다윗은 자신의 법궤 운반 사역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
시는 요소가 있음을 감지하고 하나님의 또 다른 징벌이 있을까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하나님의 징벌에 대단히 민감한 다윗 왕의 영적 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 삼하 6:9 주석 참조.
ㅇ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 이는 자신이 하나님의 궤를 모
셔올 수 있는 적격자가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는 다윗 왕의 말이라고
볼 수 있다.
13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 메어들이지 못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ㅇ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 오벧에돔(Obed-edom)은 고핫 자손이었
으므로 법궤를 지킬 수 있는 율법의 요구를 갖춘 자였다(26:12, 15). 즉 오벧에돔은
고핫 자손 중 고라 자손에 속하였으며, 성소의 문지기였다. 한편, 본절의 '가드 사람'
(the Gittite)이란 말은 오벧에돔이 단 지파의 경계 내에 있던 레위인의 성읍 가드림
몬(Gath Rimmon)에서 출생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수 19:45;21:20-24;Lange, Keil).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ㅇ하나님의 궤가...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 여기서 '권속'으로 번역된 히
브리어 '바이트'는 '집', 또는 '가정'을 의미할 수도 있으나 '장막'을 의미
하기도 한다. 아마도 여기서는 법궤를 덮은 장막을 의미할 것이다(Bertheau, Lange).
ㅇ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 오벧에돔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복은 첫째, 많은
자녀의 생산이었으며 또한 그 모든 자녀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성공적인 삶이었다
(26:4-8). 그밖에도 하나님은 그의 가축과 밭의 소산 등 모든 방면에 복을 내리셨을
것이다. 한편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신 것은 이제 하나님의
진노(10, 11절)가 풀렸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다윗 왕은 지난번 웃사의 죽음이 법궤를
옮기려 한 자신의 계획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계획을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복이 임함을 보고는 다시금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려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삼하 6:12).
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의논하고
ㅇ본장은 삼하 6:1-11의 내용과 병행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기록 순서상 삼하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 왕의 즉위(삼하 5:1-5), 예루살렘 정
복(삼하 5:6-10), 다윗 궁의 건설(삼하 5:11), 그리고 블레셋 대군을 격파한 바알브라
심 사건(삼하 5:17-25)과 언약궤의 옮김(삼하 6:1-23)의 순으로 기술하였다. 반면에
역대기 저자는 다윗 왕의 즉위(11:1-3) 및 예루살렘 정복(11:4-9) 다음에 바로 이어서
언약궤를 옮기려 한 제 1차의 시도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같이 본 저자
가 언약궤를 옮기는 장면을 다윗 궁의 건설이나 블레셋 대군을 격파한 사건보다 앞서
서 기술한 것은 무엇보다도 여호와 경배에 대한 다윗 왕의 관심을 크게 강조하기 위함
이었다. 즉, 본서 저자는 다윗 왕의 일반적인 국사(國事)보다도 여호와께 대한 그의
불타는 열심에 초점을 맞추어 본서를 기술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저자의 의
도는 포로 귀환 이후 신앙적으로 침체되어 있었던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여호와를 경배
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심을 회복시켜 주기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Payne).
ㅇ곧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의논하고 - 여기서 '곧'(르)이란 12장의 문맥을 지시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Lange, Keil). 이렇게 볼 때 '모든 장수'는 다윗을 왕으로 모시
기 위해 군사들을 인솔했던 각 지파의 지휘관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절
로부터 5절은 병행 구절인 삼하 6장에는 보이지 않는 구절이다. 여기서 저자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한 성역(聖役)이 다윗 개인만의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무리
들의 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2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선히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저희와
함께 들어 있는 성읍에 거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보내어 저희를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ㅇ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 여기서 '온 회중'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4절)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다윗에게로 나아온 헤브론의 각 지파의 용사들(12장)을 의미한
다. 다윗은 이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남은 백성들에게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전하고 협력을 요청하였다(3절). 그리고 백성들은 이에 기꺼이 응
하였다(4절).
ㅇ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 즉, '법궤를 옮기고자 하는 계획이 하나
님의 뜻과 부합한 것이라면'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다윗은 법궤를 옮기기에 앞서 먼저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일인가를 생각하였다. 이는 분명 잘한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을 추진하는 방법면에 있어서도 다윗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명하
신 대로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부분에 있어서는 경솔하였으니 그만 법궤 운반은 실
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5-14절).
ㅇ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보내어 - '이스
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는 헤브론에 모이지 못한 백성들을 지칭하는 말이
다. 다윗 왕은 이들과 제사장, 레위인들에게 국가의 계획을 알림으로써 온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였던 것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6장에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언급되지 아니하였으나 본절에는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
은 본서 저자의 제사장적 관점을 잘 보여주는 점이다(Curtis). 또한 여기서 '보내어'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깨뜨리다'는 뜻의 동사 '파라츠'와 '보내다'는 뜻
의 동사 '솰라흐' 두 동사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말의 정확한 뜻은 '깨뜨
리고 나아가게 하다'는 뜻으로 이는 어떠한 방해도 물리치고 온 백성들에게 이 거룩한
사역을 알리겠다는 다윗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당시는 이스라엘 주변의 이
방인들이 아직 완전히 정복되지는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다윗은 이러한 표현을 한 것
같다(Payne).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ㅇ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Saul)은 그의 통치 기간(B.C.1050-1010) 중 단 한번도 하나님의 궤에 대한 관심을 보
이지 않았다. 물론 그가 블레셋과의 전투시 법궤를 찾은 적은 있으나 그때는 다만 자
신의 아들 요나단의 안전 여부를 여호와께 물어보려고 했을 뿐이다(삼상 14:18). 이와
같은 그의 무관심은 그의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궤는 계시의 출처
(出處)로서 하나님의 뜻이 이 궤를 통하여 종종 나타났기 때문이다(출 25:22;레 1:1;
삼상 3:3, 4). 따라서 사울이 하나님의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다 함은 그가 하나님
의 뜻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서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입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다윗은 무슨 일에서든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움직
였으니 실로 '신앙의 용사'라 할 수 있는 것이다(14:10, 14).
4 뭇 백성이 이 일을 선히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ㅇ뭇 백성이 이 일을 선히 여기므로 - 이는 직역하면, '모든 백성의 눈에 그 일이 선
하였으므로'이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백성'이란 지휘관의 총회(1절)가 아닌 온 이스
라엘 사람들을 의미한다. 즉 다윗 왕이 자신의 계획을 백성들에게 알렸을 때 그들은
그 일에 대해 한결같이 좋은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ㅇ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 여기서 '온 회중'은 헤브론에 모였던 이스라
엘 각 지파의 용사들을 가리킨다. 2절 주석 참조. 이들은 백성들의 좋은 반응을 보고
다윗 왕의 계획에 전적으로 찬동한 것이다.
5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고자 할새
ㅇ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 여
기서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란 말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삼상
3:20;삼하 17:11;24:2, 15)라는 말과 같이 이스라엘 전역을 요약적으로 표현한 말이
다. 성경에서 시홀(Shihor)은 대개 나일 강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사 23:3;렘
2:18) 간혹 나일 강의 수로나 델타(Delta) 지역의 한 지류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러
나 본 문맥에서 시홀은 성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의 남서 경계선으로 언급된 바 있는
애굽의 시내, 곧 오늘날의 '와디 엘 아리쉬'(Wady el Arish)를 가리킨다(Keil,
Curtis, 민 34:5;수 15:4, 47;사 27:12). 한편, 하맛(Hamath)은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
지였으며(민 13:21;34:8;수 13:5;삿 3:3) 오론테스 강 유역에 발달한 성읍이었다. 다
윗 왕은 이와같이 이스라엘 전역에서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았는데 이 '온 이스라
엘'이란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서 골고루 선발한 자들을 의미한다. 병행 구절인 삼하
6:1에는 이들의 숫자가 모두 3만명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6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
이름으로 일컫는 궤라
ㅇ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 하나님의
궤가 있었던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은 본래 기브온 사람들의 성읍, 바알라
(Baalah)였다. 그런데 이 성읍이 유다 지파의 수중에 들어가자 '유다의 바알라'라는
뜻의 '바알레유다'(Baale of Judah)로 불리워졌었다(삼하 6:2). 이러한 역사를 가진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가는 길목, 곧 예루살렘 서쪽 15km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는 아벡 전투(삼상 4:1-11) 이후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때
(11:4-9)까지 무려 70년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삼하 6:2 주석 참조. 한편, 다윗
왕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기 위하여 3만명의 수행원들(본절의 온 이스라엘)
을 거느렸었다. 당시 다윗 왕이 이처럼 많은 수의 병력을 동원했던 것은 기럇여아림이
블레셋 영토에서 매우 가까왔던 까닭에 그들의 기습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ㅇ여호와 하나님의...이름으로 일컫는 궤라 - 본절은 법궤가 '하나님의 궤'로 불리워
진다는 단순한 의미 외에도 그 궤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임하여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능력과 속성과 영광에 대한 계시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으로 일컫는다'는 말은 곧 그의 능력과 영광이 그 궤에 임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
다. 이에 관해서는 삼하 6:2에서 상세히 주석하였으니 참조하라.
7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ㅇ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 다윗은 하나님의 궤의 거룩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새 수레에 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조치는 분명 하나님의 율법에 위배되
는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법에는 오직 레위인 중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
어 궤를 운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나(민 7:9) 다윗은 이방인들이 신상을 옮길 때 사
용했던 방법으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 했기 때문이다. 즉 당시 베니게 족속이나 블레
셋 족속은 수레를 이용하여 그들의 신상을 옮겼었다(Munter). 그런데 그와 마찬가지로
다윗도 이방인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 하였으므로 그의 계획은 중도에서 실
패하게 되었던 것이다(9-13절).
ㅇ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 병행 구절인 삼하 6:3에 의하면 아비나답(Abinadab)
의 집은 기럇여아림의 산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궤는 블레셋 땅에서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진 후 줄곧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엘
르아살(Eleazar)은 법궤를 지켜왔다(삼상 7:1).
ㅇ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 웃사(Uzza)와 아히오(Ahio, 또는 '아효')는 모두
아비나답의 손자들이다. 삼하 6:3, 4 주석 참조.
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니라
ㅇ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주악하니라 - '하나님 앞에서'란 '하나님의 궤
앞에서'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臨在)의 상징물, 곧 가견적인 보좌
였으므로 다윗 왕과 그 일행은 궤 앞에서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의 행동으로 간
주했던 것이다. 한편,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옮겨지는 궤 앞에서 뛰놀며 온갖 악기로
주악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만큼 하나님의 궤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뻐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때 그들이 연주하였던 악기인 수금, 비파, 소고, 제금, 나팔 등에 대해서
는 병행 구절인 삼하 6:5 주석을 참조하라.
9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ㅇ기돈의 타작 마당 - '기돈'은 혹자의 견해처럼 사람의 이름이라기 보
다는(Curtis) '파괴', '재앙'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Keil,
Lange). 왜냐하면 '기돈의 타작 마당'이 병행 구절인 삼하 6:6에는 '나곤
의 타작 마당'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기돈'과 '나곤'을 고유 명사로 취할 경우 두 기
록을 조화시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기돈'과 '나곤'을 일반 명사로 취할
경우 두 상이한 기록들은 서로 내용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기돈'은
'파괴', '재앙'이란 뜻이며 '나곤'은 '예비된', 또는 '충돌하는'('치다'의 '나카'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때)이란 뜻임에 비추어 볼 때 이 타작 마당은 재앙의 타
작 마당이자 충돌의 타작 마당(11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삼하 6:6
주석 참조.
ㅇ소들이 뛰므로 - 여기서 '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트'는 본래
'걸려 넘어질 뻔하다'는 뜻으로 이는 소들이 돌뿌리 등에 걸려 비틀거리는 상태를 묘
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같이 소들이 비틀거리므로써 수레에 실은 법궤는 떨어지려
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불길한 흉조(凶兆)는 분명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대로 법궤
를 운반하지 아니한 데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볼 수 있다.
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ㅇ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 당시 소들이 날뛰므로 인해 법궤가 떨어지
려 하자 손으로 붙잡은 웃사의 행동은 상황적으로 볼 때에는 분명 잘못이 없다. 그렇
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볼 때 웃사의 그러한 행동은 분명 신성 모독죄(神聖冒
瀆罪)에 해당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가견적인 보좌로서 어느 누구도
이를 만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율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를 만졌기
때문이다(민 4:15). 하나님은 심지어 이것은 거룩한 것이니 들여다보지도 말 것이라고
(민 4:20;삼상 6:19) 엄히 규정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웃사의 행동이 설사 선의(善意)
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율법을 경시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삼하 6:7 주석 참조.
11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ㅇ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 여기서 '충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레
츠'는 하나님이 주어가 될 때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행위를 나타내
는 말이다(출 19:22, 24;삼하 5:20;대하 20:37;욥 16:14;시 60:1;80:12;89:40;사
5:5). 즉 하나님께선 자신의 말씀을 경홀히 여긴 웃사에게 진노의 심판(10절)을 발하
셨던 것이다.
ㅇ다윗이 분하여 - 다윗의 분함은 웃사에게 징벌을 내리신 하나님께 대한 것이 아니
었다.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
서 그의 분함은 (1) 웃사의 경거 망동한 행동과 (2) 자신의 율법에 대한 무지, 또는
불순종을 자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석달 후(14절) 자신의 모든
실수를 수정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법궤를 운반하게 된다
(15:1-29;삼하 6:12-19). 이 같은 사실을 보아서도 그의 분냄은 자신과 웃사의 실수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삼하 6:8 주석에서 다
루었으니 참조하라.
ㅇ베레스 웃사 - '웃사를 충돌하심'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곳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12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ㅇ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 다윗의 두려움은 웃사의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이었
다. 즉 웃사의 죽음을 보자 다윗은 자신의 법궤 운반 사역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
시는 요소가 있음을 감지하고 하나님의 또 다른 징벌이 있을까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하나님의 징벌에 대단히 민감한 다윗 왕의 영적 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 삼하 6:9 주석 참조.
ㅇ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 이는 자신이 하나님의 궤를 모
셔올 수 있는 적격자가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는 다윗 왕의 말이라고
볼 수 있다.
13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 메어들이지 못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ㅇ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 오벧에돔(Obed-edom)은 고핫 자손이었
으므로 법궤를 지킬 수 있는 율법의 요구를 갖춘 자였다(26:12, 15). 즉 오벧에돔은
고핫 자손 중 고라 자손에 속하였으며, 성소의 문지기였다. 한편, 본절의 '가드 사람'
(the Gittite)이란 말은 오벧에돔이 단 지파의 경계 내에 있던 레위인의 성읍 가드림
몬(Gath Rimmon)에서 출생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수 19:45;21:20-24;Lange, Keil).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ㅇ하나님의 궤가...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 여기서 '권속'으로 번역된 히
브리어 '바이트'는 '집', 또는 '가정'을 의미할 수도 있으나 '장막'을 의미
하기도 한다. 아마도 여기서는 법궤를 덮은 장막을 의미할 것이다(Bertheau, Lange).
ㅇ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 오벧에돔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복은 첫째, 많은
자녀의 생산이었으며 또한 그 모든 자녀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성공적인 삶이었다
(26:4-8). 그밖에도 하나님은 그의 가축과 밭의 소산 등 모든 방면에 복을 내리셨을
것이다. 한편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신 것은 이제 하나님의
진노(10, 11절)가 풀렸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다윗 왕은 지난번 웃사의 죽음이 법궤를
옮기려 한 자신의 계획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계획을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복이 임함을 보고는 다시금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려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삼하 6:12).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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