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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열왕기상

[스크랩] 열왕기상 (20 : 1~4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15

열왕기상 20장

1 아람 왕 벤하닷이 그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 이인이 저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치며

ㅇ동맹을 맺은 바 있던 벤하닷 1세(B.C. 900-860)의 아들이다). 그런데 벤하닷 1세는 지
중해 무역로 확보를 위해 오므리(아합의 아버지)와도 전쟁을 벌여 이스라엘 국경의
여러 성읍을 탈취해 갔다. 그러나 본장에서벤하닷2세(B.C. 860-841)가 아합을 위협하
는 까닭은 이스라엘 침략에 목적이 있기보다는 실제로 앗수르와의 전투에 이스라엘을
끌어내어 연합군이되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던 것으로 추축된다(Bowman). 이 무렵 앗수
르의 살만에셀 3세(Sharmaneser ,B.C.859-824)는 서서히 벤하닷의 아람(시리아)을
위협해 오고 있었다.
ㅇ왕 삼십이 인 - 당시 아람(Aram)은 여러 개의 소규모 지역 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
다. 이 중 다메섹(Damascus) 왕 벤하닷이 주도권을 잡자 타지역의 왕들에 대한 군주-
봉신 관계가 형성되었다. 본절의 32명의 왕들은 바로 벤하닷에게 조공과 병역을 바치
는 아람의 소왕들이다. 한편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10:6 주석을 참조하
라.

2 사자들을 성 중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벤하닷은 이르노니

ㅇ벤하닷은 이르노니 - 원문은 '벤하닷은 말하다!'(아마르 벤
하닷)와 같이 대단히 거만한 말투이다. 즉 여기서 '아마르'는 '명령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수 11:9;대하 29:24;에 9:25). 이는 곧 왕이 신하에게나 걸 법
한 말투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군주가 다른 나라의 군주에게 이와갈이 말을 걸었다는
것은 충동과 도발의 의도를 지닌 것임이 분명하다.

3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처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것이니라 하매

ㅇ네 은금은 내 것이요..내 것이니라 - 이와 같은 벤하닷의 자극적인 언사(言辭)는
아합의 자존심을 상처입히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도를 뚜렷이 내보인다. 심지어 아
합의 아내들까지 자신의 소유로 주장하는 데서 이스라엘의 왕권을 자신의 발 아래로
완전 복속시키려는 벤하닷의 탐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삼하 16:21, 22;왕상 2:22)
이제 이를 좀더 세분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은금의 요구는 실질적인 국력의 약화
로 인해 이스라엘이 벤하닷에게 완전히 굴복하게 하려는 조처이다. (2)처(妻)의 요구
는 이스라엘 왕권의 독자성과 존엄성 상실을 겨냥한 처사이다. 2:17 주석참조.
(3)자녀들의 요구는 일종의 인질, 볼모를 요구한 것이다. 한 마디로 이상과 같은 벤하
닷의 요구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략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닐 수 없
다.

4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ㅇ내 주 왕이여 - 이 호칭은 일반적으로 신하가 왕을 부를 때 사용하는 것이다(삼상
24:8;26:17). 아합은 벤하닷의 막강한 위세에 눌린 나머지 그에게 신하의 예(禮)를
표한 셈이다.
ㅇ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 이말은 아합의 잠정적 항복이다. 즉 눈앞의
위기국면을 넘기기 위한 전술적 항복일 뿐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벤하닷이 자기의 요구를 실제로 관철하려 들자 아합이 분노하는 데서도 알 수 있
다(7절).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아합은 대단히 유약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는 당
시 아람의 막강한 위세에 겁을 먹고 어떻게 해서든 화친하려고 생각했던것 같다.

5 사자가 다시 와서 이르기를 벤하닷은 이르노라 내가 이미 네게 보내어 말하기를 너는
네 은금과 처들과 자녀들을 내게 붙이라 하였거니와

ㅇ이미...내게 붙이라 하였거니와 - '불이다'에 해당하는 '나탄'은 요구
하는 것을 '내주다'는 뜻이다. 따라서 2, 3절의 벤하닷의 언동(言動)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단호한 실제적 요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에 대해 아합은 단
호한 거절도 실제적인 수락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답변을 했던 것 같다.

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복을 네게 보내리니 저희가 네 집과 네 신복의 집을
수탐하여 무릇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 손으로 잡아 가져 가리라 한지라

ㅇ수탐(搜探)하여 - 이에 해당하는 '하파스'는 '찾다'(search for)는 뜻이
다.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약탈물을 뒤져찾아낸다든지 도망자롤 찾아내려는
등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말이다(창 44:12;삼상 23:23;왕하 10:23). 한편 '수탐(搜探)
이란 역어(譯語)는 '수사하고 탐지함'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원어에 걸맞는 표현
이라 하겠다.
ㅇ네 눈이 기뻐하는 것 - 여기서 '네 눈이'(에이네이카)는 특별한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방향을 말한다. 그리고 '기뻐하는'(마흐마드)은 사랑스러운
아내에 대하여 기뻐하듯 확실히 기뻐하는 것율 말한다. 그러므로 '네눈이 기뻐하는
것'이란 아합이 특별히 귀중히여기어 아끼는 모든 것을 말한다. 즉 여기에는 비단 물
건 뿐 아니라 사람들도 포함된다. 그런데도 공동 번역은 이를 '값진 물건'으로 번역하
였으니 본절의 의미를 충분히 보여 주지 못하는 감이 있다.

7 이에 이스라엘 왕이 나라의 장로를 다 불러 이르되 너희는 이 사람이 잔해하려고
구하는 줄을 자세히 알라 저가 나의 처들과 자녀들과 은금을 취하려고 사람을 내게
보내었으나 내가 거절치 못하였노라

ㅇ장로 - '장로'(자켄)들이란 원래 지역 공동체를 유지하는 권위자요 대표자
들로서 왕정 시대에는 왕의 신하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가 임명하는
관원과는 달리 지역 자체에서 이미 존재가 뚜렷한 사람들로서 단지 왕정 체제의 질서
내에 편입되어있을 뿐이다. 이들은 일반 행정 뿐 아니라 전쟁시에도 현명한 충고와 조
언을 주는 역할을 하였다(Davies). 그런데 이들의 동의와 지지가 왕에게 그토륵 중요
했던 것은 왕정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노동력과 군사력을 바로 이 지역민들로부터 얻
어내어야 했기 때문이다. 즉 아합이 설령 일전(一戰)을 불사(不辭)할 결심을해도 장
로들의 동의가 없이는 전투력에 차질을 빚고 마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장로직의 유래 및 그 역할 등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신 21:1-9강해, '성경에 나
타난 장로직'을 참조하라.
ㅇ이 사람이...알라 - '이 사람'에 해당하는 '제'는 경멸과 조소가 담긴 비칭
(卑稱)이다. 즉 이 말은 '이 자' 혹은 '이 작자' 정도의 어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본절은 '이 자가 추구하는 악을 보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때 '보다"(라아)
는 멀은 단순한 응시가 아닌 '주목하여 살피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글 개역 성경은
이를 '자세히 알라'로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합이 장로들의 의분을 자아내
어 자신의 전의(戰意)에 호응토록 유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ㅇ저가...보내었으나 내가 거절치 못하였노라 - 혹자는 군주가 신하들 앞에서 이렇
게 부끄러운 고백을 했겠는가 의심한다(Hammond). 그러나 이 말의 의도가 장로들로 하
여금 분노케 하여 전의를 다지려는 것임에 주목하여야 한다. 즉 본절은 '너희들의
왕이 힘이 없어 그토록 수모를 당해야했다'는 이면(裏面)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8 모든 장로와 백성들이 다 왕께 고하되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지도 마옵소서 한지라

ㅇ모든 장로와 백성들이 - 이 말은 장로와 백성의 대표들로 이루어진 협의체와 같은
기구를 가리킨다. 즉 이는 국가의 중대사를 협의하기 위하여 모인 일종의 범국민적 비
상 시국 대책 위원회를 가리킨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이는 '성회'(聖會)로도 번역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총회'(總會)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민 16:2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ㅇ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지도 마옵소서 - 장로들과 백성들의 한결같은 의견을 집약
하고 있는 본구절 속에는 아합 왕의 소아적(小我的)이고도 경솔한 처신에 대한 책망이
내포되어 있다. 사실상 아합의 굴욕적 태도로 인하여 아람 왕 벤하닷의 기세는 한층
거만해졌으며,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긍지는 땅 아래로 실추되고 말았던 것이다(4-6
절). 따라서 백성들 중 대다수는 가만히 앉아사 아람의 약탈을 지켜보기 보다는 차
랴리 싸우다 죽는 편을 원하였던 것같다. 특히 그들 중 여호와를 경외하는 경건한 무
리들은 성지 유린을 막기 위해 강경 대응책을 적극 지지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9 그러므로 왕이 벤하닷의 사자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왕께 고하기를 왕이 처음에
보내어 종에게 구하신 것은 내가 다 그대로 하려니와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하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고하니라

ㅇ내 주 왕께 고하기를 -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아합이 벤하닷을 가리켜 '내 주
왕'이라 칭하는 것은 여전히 굴욕적인 자세가 아닐 수 없다. 4절 주석 참조. 그러나
이러한 아합의 처세는 다분히 외교적 실리를 겨냥한 것이라는 점 또한 배제할 수 없
다. 즉 아합은 표면적으로는 비록 굴욕적으로 보이더라도 최대한의 양보를 통해 승산
없는(적어도 아합이 보기에) 전쟁을 피하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 복
속(服屬)을 겨냥하고 온 벤하닷은 처음부터 속셈이 달랐다. 즉 그는 이스라엘의 외교
적 굴복이 아닌 실제의 굴복을 목표한 것이다. 3절 주석 참조.
ㅇ처음에...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 이 말에서 벤하닷의 첫번째 요구와 두번째
요구가 내용에 있어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벤하닷의 첫번째 요구는 전쟁
에 패한 왕으로서의 배상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3절). 그러나 두번째 요구는 아합의
궁전은 물론 그의 온 백성둘의 집까지도 뒤져 약탈하겠다는 알종의 수도(首都) 점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6절). 그러므로 아합의 대답은 최대한 협상일의 폭은 첫번째 요구
까지이며 그 이상의 요구에 대해서는 들어 줄 수 없다는 내용인 셈이다. 그런데 7,8절
을 참고해 보면 장로와 백성들은 벤하닷의 첫번째 요구에 이미 분노를 느끼고는 단호
한 거절의 의지를 표명하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아합은 백성들의 의지를 확인한 후
에도 지극히 유약하고 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한다. 본문에서 이세벧의 강렬한 성격과
함께 이스라엘의 신앙 타락의 한 원인으로 암시되기로 한다. 19:1, 2 주석참조

10 벤하닷이 다시 저에게 보내어 이르되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 나를 좇는 백성의
무리의 손에 채우기에 족할 것 같으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하매

ㅇ사마리아의...족할 것 같으면 - 아합왕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격노한 벤하닷
은 고대 근동 특유의 과장적 표현을 통해 더욱 거센 위협을 가하였다. 즉 본절에 담긴
의미는 두 가지인 바 아람군의 무차별 살상과 공략으로 말미암아 사마리아 성은 철저
히 잿더미로 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아람군의 수효가 하도 엄청나기 때문에
초토화된 사마리아 성의 모든 부스러기들로도 아람군들의 주먹조차 채울수 없을 것이
라는 점이다.

11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갑옷 입은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라 하라 하니라

ㅇ갑옷 입는 자... 자랑치 못할 것이라 - 여기서 '갑옷 입은 자'란 이제 막 싸움의
채비를 차리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갑옷 벗는 자'란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제 전
투복을 벗는 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아직 싸워 보지도 않고 결과를 장담하지
말라는 뜻이다. 즉 이는 한번 싸워 보지도 않고서 이미 승리를 거둔 둣이 교만방자하
게 군 벤하닷을 비꼬는 풍자적(諷刺的) 표현이다. 이는 곧 우리 속담에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는 말과 비슷하다. 그런데 Living Bible은 영어 속담을 인용하여 본절
을 '알이 부화되기도 전에 병아리 수효를 세지 말라'(Dont't count your chickens
before they hatch!)로 번역하였다. 아무튼 본절과 관련해서 우리는거추장스러운 갑옷
을 벗어버린 채 돌과 물매만 갖고서 갑옷 입은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소년 다윗을 상
기할 수 있다(삼상 17"39-49).

12 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 이 말을 듣고 그 신복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을
베풀라 하매 곧 성을 향하여 진을 베푸니라

ㅇ장막 - '장막'(수코트)은 '오두막'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고대 근동의
사막에서 왕과 장수들을 위해 설치하는 병영내의 가건물을 가리킨다.
ㅇ마시다가 - 이에 해당하는 '쇼테'는 곧 '술을 마시다가'란 뜻이다. 이는
우리말에서도 '마신다'는 말만 가지고 음주를 완곡(婉曲)하게 묘사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한편 전쟁터에 와서까지도 한가롭게 술을 마시는 벤하닷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이스라엘군을 깔보았는지 여실히 증거해 준다.
ㅇ진(陳)을 베풀라 - 원문에는 흔히 '진'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마하네'
나 '타하나' 같은 명사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마치 '위치로!'하는 군
대식 명령이 곧 군대로 하여금 맡은 바 위치에 포진(布陳)케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
절 역시 '베풀다'는 말 속에 이미 그 같은 의미가 층분히 포함되어 있다.

13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나아가서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ㅇ한 선지자가 - 이 선지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Micaiah)라는 주장도 있으나 22:8에 의해 부인된다. 왜냐하면 본절의 선지자는 아합
에게 기쁜 예언을 전하나 미가야는 한번도 아합에게 좋은 예언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
다(Hammond). 또한 메시지의 성격으로 보아서 이 선지자는 엘리야가 아닌 것도 분명하
다. 왜냐하면 아합에 대한 엘리야의 메시지는 대체적으로 경고와 심판의 내용만을 담
고 있기 때문이다(18:18;21:20-26). 따라서 이 자는 당시의 무명(無名)의 선지자 생도
중 한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5절 주석 참조.
ㅇ너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 본장에는 아합이 벤하닷에게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
가 나온다(16-21, 26-34절). 엘리야의 투쟁과 아합의 범죄를 그려 나가던 본서 기자가
이처럼 본장에서 느닷없이 아합의 숭리를 수록한 것에 대해 독자들은 석연치 않게 생
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절은 아합이 심판받아 마땅한 왕임에도 블구하고 대승리
를 거둘 수 있었던일에 대한 신학적 답변을 제시해 준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크신 권
능을 나타내심으서써 오직 당신만이 환난날의 구원자시요(시 9:9)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심을 아합은 물론 온 백성들에게 거듭 거듭 알려주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요컨대 이
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영원하신 언약을 상기시키려는 집요한 노력의 표현이
라 할 수 있다(8:9;삿 2:1;대상 11:3;대하 23:16등). 그런데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
구하고 향후(向後)의 태도에서 입증되듯이 아합은 하나님의 은총 앞에 감격하여 회
개하기는 커녕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한갖 위기극복을 위한 수단 정도로 간주하였
을 뿐이다. 따라서 그러한 아합의 태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色慾)거리로
바꾼 것이나 진배없다 하고다(유 1:4). 아합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비
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만 것도 실상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22:29-40).

14 아합이 가로되 누구로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가로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

ㅇ각 도(道)의 방벡(方伯)의 소년들 - '각 도의 방백'이란 아합의 행정 구역을 관할
하는 지방 장관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비록 본문은 상세한 기록을 삼가하고 있지만 계
속 이어지는 기록으로 볼 때(15-20절) 벤하닷의 침공이 개시되자 이들 지방 장관들은
자기 휘하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수도 사마리아에 집결, 농성(籠城)을 계획했던 듯하
다. 한편 본절에서 '소년'(나아르)은 어린 소년을 의미하기보다는 '젊은 청
년'을 의미한다. 특히 군사적 맥락에서 사용될 때 이 단어는 대개 '병사들'을 가리킨
다(수 6:23;삿 9:54;삼상 9:2;25:5;삼하 2:14). 그러므로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이
란 지방 장관들이 끌고 온 군대를 의미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출증한
무용(武勇)으로 인해 특별히 뽑힌 정예병들로 보인다.
ㅇ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 '시작하리이까'는 '공격을 개시하다'는 뜻인 '아사
르'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누가 맨처음 공격을 개시하리이까'라는
뜻이다. 그런데 공동 번역은 이를 "진두에는 누가 설 것입니까?"로 옮겼다. 이는 원어
에 함축된 뜻이 개역 성경에 비해 더 잘 전달된 번역이라 할수 있다.

15 아합이 이에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을 계수하니 이백 삼십 이인 이요 그 외에 모든
백성 곧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계수하니 칠천인이더라

ㅇ이스라엘군의 병력을 소개하는 본절은 그 왜소한 규모를 알림으로써 더욱더 전쟁
의 승리가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즉 최소한 10만 이상의
적과 대치한 이스라엘군은 불과 7,232명인 것이다(29절). 그런데 이처럼 소수의 병
력으로 대군을 격파한 전공(戰功)이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라는 모티
프(motif)는 구약에 자주 등장한다(창 14:14-16;삿 7:16-22).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
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

16 저희가 오정에 나가니 벤하닷은 장막에서 돕는 왕 삼십 이인으로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

ㅇ탐지군(探知軍)을 보내었더니 - 원문에는 '탐지군'에 해당할 만한 용어가 따로 보
이지 않는다. 단지 '벤하닷이 보낸 그들이 말하기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이 척후 활동에 있음이 분명하므로 '탐지군'이라 호칭한 것이다. 그런데 18절로
미루어 볼 때 탐지군들의 보고는 좀 명확치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보고를 받은
벤하닷이 진출한 이스라엘군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탐지군들 역시 맨처음 진출한 '각도 방백의 소년들'이 너무나 소수였기 때문에 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다.

17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이 먼저 나갔더라 벤하닷이 탐지군을 보내었더니 저희가
회보하여 가로되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 하매

ㅇ본절 역시 당시 벤하닷의 자만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 준다. (1) 즉 이스라
엘군이 화친하러 나오든 싸우러 나오든 무조건 그들을 사로 잡으라는 명령에서 우리는
그가 앞서 아합의 답변(11절)에 몹시 기분상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Hammond). (2)
다음으로 사로잡으라는 명령에서 우리는 당시 벤하닷이 이스라엘군을 숫제 맞붙어 싸
울만한 상대로 여기고 있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즉 벤하닷은 설령 이스라엘군이
싸우러 나왔을 경우에도 어른이 어린아이 다루둣 쉽사리 그들을 제압하여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정녕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만심(慢心)에 빠져 있는
벤하닷과 같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지 않는가(잠 16:5;벧전 5:5)!

18 저가 이르되 화친하러 나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지라도 사로잡으라 하니라

ㅇ저희를 좇는 - 원문은 '아하레이헴', 즉 '그들의 뒤에'라는 뜻
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각 도 방백의 소년들'과 7,000명의 수도 방위 병력(15절)
간의 관계 및 임무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즉 본절에 의거할때 당시 각 도 방백의 소년
들은 특별한 용맹과 무예로 선봉대의 임무를 맡음과 동시에, 수도 방위 병력의 단위
부대를 이끄는 하급 지휘관 역할도 한 것으로 보인다.

19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과 저희를 좇는 군대들이 성에서 나가서


20 각각 적군을 쳐 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쫓으니 아람 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마병으로 더불어 도망하여 면하니라

ㅇ각각 적군을 쳐죽이매 - 원문은 '각자 자기가 맏은 적을 치매'
(와야쿠 이쉬 이쇼)라는 뜻이다(KJV, they slew every
one his man). 이로 미루어 보건대 이스라옐 정예병들은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각기
습격해야 할 요소(要所)들을 정하는 등철저하고 조직적인 사진 계획에 따라 일사 불란
하게 적진을 난타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이러한 승전의 왼리는 성도들
의 영적전투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엡 6:10-20).

21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크게 도륙하였더라

ㅇ크게 도륙(屠戮)하였더라 - 원문은 '들이쳐서 큰 학살을 하다'
(... ,웨하카 마카 게도르)는 뜻이다. '도륙'(屠戮)이라는 역어(譯語) 역시 '무
참하게 마구 죽이다'는 뜻이니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러한 표현에서
당시 아람군은 대군임에도 불구하고 겁에 질려 변변히 대항도 못한채 죽임당했음을 알
수 있다.

22 그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가로되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의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 해가 돌아오면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 하니라

ㅇ왕은 가서...알고 준비하소서 - 아합에게 내린 선지자의 예언처럼 싸움을 준비하고
훈련된 자만이 다가올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일회적 승
리는 있을지언정 계속된 승리의 보장은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무장할 때(엡
6:10-13;벧전5:9) 연승이 약속될 것이다. 따라서 아합은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즉각적으로 회개하고 여호와의 능력에 힘입어 싸움을 예비혜야만 했었다.
ㅇ해가 돌아오면 - 이에 해당하는 '테슈바트하솨나'는 '해
의 되돌아감'(the return of the year)이란 뜻으로 '명년 봄'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
한 표현으로는 '테쿠파트하솨나'가 있는데 이는 '해의회전
'(the turning of the year)dl란 뜻으로 '명년가을'을 의미한다. 한편 근동 지방의
겨울은 우기(雨期)에 해당하므로 전쟁을 하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성경 총론, '성경의
무대 팔레스틴' 참조. 그러므로 당시의 침공은 대개 건가(乾期)인 여름에 이루어졌
다. 그러나 얕잡아 보던 상대에게 의외의 패배를 당하는 수치에 절치 부심(切齒腐
心)한 벤하닷은 해가 바뀌자 마자 재차 이스라엘을 침공하려 들었을 것이다.

23 아람왕의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저희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저희가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저희와 싸우면 정녕 저희보다 강할지라

ㅇ저희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 고대의 다신론적 관념에 따르면 한 신은 보통 한 지
역 또는 한 기능을 맡는 신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여호와는 아람인들 눈에 산신(山
神)으로 비치었다. 한편 주변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신을 이처럼 산의 신이라 믿은 데
는 나름대로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은 아직 왕정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던 시
절. 가나안 주민들과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을 겪고 있었다. 그때 철병거와 마병을 소
유한 가나안의 도시 국가들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이스라엘인들이 잡은
거점은 팔레스틴의 여러 산악 지대이다. 즉 그러한 장소에서는 가나안의 우수한 병기
들이 크게 효력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삿 4:1-16). 더군다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악
지대에서 물을 찾아내고 거기서 거주하는 적응력을 갖고있었다. 이러한 모든 점이 곧
주변 부족 및 국가들에게 이스라엘의 신은 산의 신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겨 놓은 것
이다.
ㅇ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저희와 싸우면...강할지라 - 군사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첫번
째 전투에서 호되게 패한바 있는 아람 왕의 신복들은, 가장 큰 패인(敗因)을 어떤 이
적적 신통력에서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것 싸다(23절). 또한 그러한 미신적 배경외에
객관적 전략 면에 있어서도 그들은 평지에서 싸우는 것이 우세하리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평지에서는 기습 공격이 쉽사리 먹혀들지 않으며 더구나 아람군은
기병들과 전차 병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히다(1, 25절).

24 왕은 이 일을 행하실지니 곧 왕들을 제하여 각각 그곳에서 떠나게 하고 저희 대신에
장관들을 두시고

ㅇ제하여...떠나게 하고 - '제하여 떠나게 하고'에 해당하는 '하세르'는
'돌이키다', '떠나다'는 뜻인 '수르'에서 온말이다. 여기서는 32왕들(1절)이
아람 연합군 내에서 맡았던 임무를 해제하도록 권고하는 말로 쓰였다. 즉 벤하닷의 신
복들은 나름대로 이전의 패인(敗因)을 분석한 것이다. 그리하여 왕들의 지휘 체계에
구멍이 났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왕들은 엇갈린 이해 관계 때문에 성의 있게 전
투에 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초반 접전에서 이스라엘군에게 밀리자 책임을
다하지 않고, 그대로 퇴각하기 바빴을 것이다. 그러므로 벤하닷의 신복들은 이번에는
그런 결함을 제거하고 전쟁에 임하자고 건의한 것이다.
ㅇ저희 대신에 장관들을 두시고 - 비록 아람 소국(小國)의 32왕들이 명색상 군통솔
자들이었기는 하지만 그들이 실제 전투 지휘 능력에 있어서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벤하닷의 신븍들은 벤하닷에게 그들 대신 실제 작전에 능한 군대 장관들로 병
력을 통솔하도록 주청(奏請)한 것이다.

25 또 왕의 잃어버린 군대와 같은 군대를 왕을 위하여 충수하고 말도 말대로, 병거도
병거대로 충수하고 우리가 평지에서 저희와 싸우면 정녕 저희보다 강하리이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그리하니라

ㅇ군대를...충수(充數)하고 - 흑자는 앞서 벤하닷의 신복들이 32왕들을 연합군에서
배제하자 한 것(24절)은 곧 지원군들의 철수를 주장한 것이라고 풀이한다(Bahr). 그러
나 본절은 군대를 이전 규모로 복원할 것을 건의하는 말이다. 특히 여기서'충수하고'
(티메네)는 '수를 세다'는 뜻인 '마나'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이는 정확히 이전에 유지했던 군대의 숫자 만큼 보충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각 왕들
의 휘하 부대를 제외하고 단지 벤하닷의 다메섹군만으로 그만치의 군대를 보유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24절에서 볜하닷 신복들의 건의는 다만 각 단
위부대의 지휘관인 32왕들만 실제적으로 유눙한 장관들로 교체하자는 뜻이었음이 분명
해진다.
ㅇ그 말을 듣고 그리하니라 - 하나님을 믿지 않는자의 당혹감, 의지할 곳 없는 자의
외로옴....이러한 자들이 선택하여야 할 길은 겉만 번지르르한 사망의 길이다(잠
2:18;시 1:6). 인간의 생각에 일견 번쩍이는 섬광같은 지혜도 하나님의 깊은 경륜
을 따를 순 없다.

26 해가 돌아오매 벤하닷이 아람 사람을 점고하고 아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매

ㅇ해가 돌아오매 - 즉 '명년 봄이 되매' 22절 주석 참조.
ㅇ점고(點考)하고 - 이에 해당하는'파카드'역시 '마나'와 비슷하게 '수를세
다'는 뜻이다. 25절 주석 참조. 그러나 그의미는 퍽 차이가 난다. 즉 '마나'는 산술
적(算術的)인 의미에서 '계산하다'인데 반헤, '파카드'에는 '아랫사람을 감독하다'
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본절의 '점고하다'는 말은 전쟁에 나갈만한 성인 남자
의 수를 센다는 뜻으로 곧 병력 소집을 의미한다.
ㅇ아벡 - 아벡(Aphek) 또는 아빅(Aphik)의 뜻은 '샘터', '강바닥', '요새'이다. 그런
데 성경에는 같은 지명이지만 서로 다른 곳이 몇 군데 나오니 혼돈해서는 안 된다(수
13:4;삿1:31;삼상4:1;왕하 13:17), 그 중에서 본절의 아벡은 트랜스 요르단 븍부 지역
에 위치한 성읍으로 다메섹과 벧산 또는 이스르엘 골짜기를 연결하는 도로상에 위치하
였다.

27 이스라엘 자손도 점고함을 입고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저희 앞에 진을 치니
이스라엘은 염소 새끼의 두 적은 떼와 같고 아람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28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아람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ㅇ하나님의 사람 - 원문에는 이 단어에 정관사 '하'가 붙어 있다. 따라서 이 사
람은 13, 22절에 나오는 선지자와 동일인인 것으로 사료(思料)된다.
ㅇ여호와의 말씀이...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 이미 앞에서도 언급된 사항이긴 하나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시요 통치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일개 지역신으로 간주한 아
람인들의 처사는 여호와 신앙에 비추어 볼 때용서받을 수 없는 독신(瀆神) 행위이
다. 23절주석 참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벡 평지에서의 전투를 통해, 아랍인들의
편협하고 우매한 생각을 무너뜨림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로 그례듯 허탄한 이교 사상
에 물둘지 않도록 미연에조치를 강구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한편 오늘날일부 신학자들
중에도 기독교의 생성 베경을 이스라엘 역사의 발전 과정에 종속시키고자 하는 이들
이 있다. 즉 원래 여호와는 씨족신 내지는 부족신이었으나 가나안 정착 이후로는 주로
국가신으로 받들어졌으며. 그 후 예수에 의해문자 그대로 온 인류의 신으로 발전 소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얄팍한인지(人智)에 근거한 추측으로서,
창세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온 인류와 우주의 역사틀 꿰뚫고 있는 하나님의 영원
하신 경륜을 의심한데서 기인한 것이다(엡 1:4).

29 진이 서로 대한지 칠일이라 제 칠일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을 죽이매

ㅇ제 칠 일에 접전하여 - '접전하다'에 해당하는 '카라브' 는 '전투에 들어
가다'는 뜻이다. 그런데 두 군대가 막바로 접전하지않고 왜 하필 7일째 되어서야 비
로소 전투를 개시하였을까? 한번 패배한 적이 있는 아람군(16-21절)이 신중한 공세를
취하기 위해서라든지(hammond). 7을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이스라엘인들의 관념 때문
이라든지(bahr)하는 주장들도 물론 일면의 통찰을 제공하기는 한다.그러나 우리는 무
엇보다도 하나님의 개입(28절)에 의한 승리라는 점에서 여리고의 승리와 아벡의 승리
가 갖는 유사점에 주목하는 것이 좋겠다. 즉 여호수아 당시 여리고 성읍도 제 7일째
에 함락되었다(수 6:1-21). 십만을 죽이매. - 여기서 '죽이다'로 번역된 '나카'
는 '치다','격파하다'라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8만
대군을 모두 죽였다는 뜻이기 보다는 그들을 격파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왜냐하면 뒤
이어 타오는 절에서 남은자 27,000명이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다는 언급
이 있기 때문이다(30절).

30 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이 그 남은자 이만
칠천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

ㅇ그 성이...위에 무너지고 - 이처럼 아백 성이 무너진 현상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었었다. 즉 지진이라든가 이스라엘군의 작업에 의한 결과라든
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Bahr, Hammond). 그러나 그 상세한 방식을 본문이 알리지 않는
한, 집요하게 추측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정작 중요한 점은 이 사건이 여호와를
무소 부재하신 분으로 선포하는 사건이라는 점이다(keil & Delitzsch). 즉 인위적인
수단에 대한 언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이 붕괴된 일은 명백히 여리고 성의 전례에
비교된다(수 6:20). 그리고 두 사건의 유사성에서 아벡 성의 붕괴는 여리고 성의 붕괴
를 일으킨 같은 주체, 즉 하나님에 의한 결과라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실 평지에
위치한 아벡 성의 붕괴는 여호와가 산의 신만이 아님을 명백히 알리는 사건이다(23,
28절).
ㅇ벤하닷은...골방으로 들어가니라 - 본절의 '골방'(헤데르 베헤
데르)은 '가장 깊숙한 내실'을 의미하는 '헤데르'가 두번 거듭된 말이다. 즉 이는 '골
방 중의 골방'이란 뜻이다. 사실 대개의 성은 유사시에 대비해 은밀히 숨을 곳이 만
들어져 있기 마련이다. 벤히닷이 피신한 곳도 아벡 성내의 바로 그와 같은 장소이다.

31 그 신복들이 저에게 고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나아가면 저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ㅇ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 여기서 이스라엘의 왕정(王政)이 당시 고대
근동의 주변 국가들에게 어떻게 비쳤었는지 그 일면을 포착할 수 있다. 즉 대개의 주
변 국가들에 비해 이스라엘의 왕정은 덜 포학하고 덜 전체적인 것으로 비친 것이
다. 그런데 이같은 이스라엘 왕정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이 출애굽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출발한 민족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되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애굽
왕권의 포학성을 익히 경험한 이스라엘 자손은 비록 역사적 요구에 따라 왕정 시대를
개막하긴 했으되, 율법으로써 왕권에 상당한 제동을 가하였던 것이다(신 17:14-20).
그러므로 비록 자체의 기준(즉 율법)으로 볼 때는 열왕의 성향은 대체로 타락한 것이
지만, 주변국가들의 눈에는 상당히 어질게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ㅇ굵은 베..머리에 이고 - 이러한 행동은 죄인이 용서를 빌거나 또는 상대방에게 복
을 표할 때 취하던 고대의 관습적 자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굵은 베는 '참회'의 표
시이며 테두키(rope)는 '굴복'의 표시이다(Bahr). 그런데 '테두리를 머리에 이다'
(하발림 베라슈누)라는 말은 요세푸스의 주장을 참조하면,
'줄을 목에 걸다'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때 줄을 목에 걸었다는 것은 자신의 생사가
오로지 상대의 결정에 달렸다는 완전한 굴종의 표시이다.

32 저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러
가로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나의 생명을 살려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가로되
저가 오히려 살았느냐 저 는 나의 형제니라

ㅇ왕의 종 벤하닷 - 여기서 '왕의 종'이란 말은 신하의 입장을 자청하는 굴복의 표
시이다. 앞서 4절에서 '내 주 왕이여'라는 굴욕적 표현을 써야 했던 인물은 이스라
엘 왕 아합이었다. 그러나 이제 본절에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처지가 뒤바뀌었
다. 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역전은 벤하닷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이다
(28-30절).
ㅇ나의 생명을 샅려 주옵소서 - 이처럼 비참한 벤하닷의 간구는 한때 기세 등등했던
그의 오만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6, 10절).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어
티끌 속에 묻어 버리시며(욥 40:11-13) 자신의 힘을 믿고 악한 계교와 횡포를 일삼는
무리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올무에 빠져 들게 만드신다(시 141:9, 10).
ㅇ저는 나의 형제니라 - 여기서 '형제'란 말은 이웃 나라끼리 사용하는 공식적 외교
용어일 경우, '동맹국'또는 '동맹국의 수반(首班)'을 가리킨다. 본절의 경우가 바로
이러한 의미인데 이는 아합의 경솔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즉 아람 왕 벤하닷은 이스
라엘의 대적이자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한 자이다. 28절 주석 참조. 따라서 하나님
께서는 그러한 벤하닷을 멸하기로 작정하셨다(42절). 그런데도 아함이 벤하닷을 가리
켜 '나의 형제'라 아였으니 이는 크나큰 실책인 것이다.

33 그 사람들이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가로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저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저를 병거에 올린 지라

ㅇ징조(徵兆)로 여기고 - 이에 해당하는 '열심히 관찰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
이다. 이때 이 말은 곧 어떤 결과를 판단해 내기 위해 열심히 동정을 살펴보는 동작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절은 항복 소식을 전하러 온 벤하닷의 신복들이 과연 벤하닷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 열심히 살피는 교활한 눈매를 연상하게 해준다.
ㅇ얼른 받아 대답하여 - 벤하닷의 신복들은 아합 왕이 자신이 뱉은 말을 철회할 수
없게끔 얼른 그 말을 받아 되풀이하였다. 이렇게 된 이상 아합으로서는 설령 자신의
말을 철회할 마음이 생기더라도 체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열왕기 기
자로부터 역대 최악의 왕으로 평가받는 아합은 줏대없음과 함쩨(19:1) 이처럼 경솔한
면도 노출시키고 있다.
ㅇ왕이 저를 병거에 올린지라 - 이처럼 아합이 벤하닷을 자신의 병거에 태워 자세를
나란히 한 것은 곧 그와의 동반자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고 또한 이스라엘 영토를 침략한 벤하닷에게 아합은 마치 동지처럼 행동하고 있
는 것이다. 32절 주석 참조. 그런데 아합의 이처럼 애매한 처신은 곧 아합 통치의 성
격을 은연 중 드러내보여 주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아합의 통치는 외국과의 교
류와 경제에 의존하는 기반위에 토대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심지어 아합이 속한 오므
라 왕조는 순수 이스라엘 혈통이 하니라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아합이 이방 여인을
왕비로 맞아들인 점(16:31)이나 우상 숭배를 자행(恣行)한 점(16:32, 33),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을 경시한 점 등은 모두 이스라엘의 민족적 입장에 대치되는 처사들이었
다. 즉 그 모든 행위들은 피아(彼我)를 구별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
런데 아합이 지금 벤하닷을 자신의 병거에 함께 태우고 있음 역시 그 같은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드러내 주고 있는 행위와 다름없다. 한편 아합의 이러한 처사를 다른 각도
에서 살핀다면, 그는 아람 같은 강국(强國)과 적대하기를 피하고 싶었는지 도 모른다.

34 벤하닷이 왕께 고하되 내 부친이 당신의 부친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
보내리이다 또 나의 부친이 사마리아에서 만든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가로되 내가 이 약조로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약조하고 저를 놓았더라

ㅇ내 부친이...빼앗은 모든 성읍 - 혹자는 이 말을 15:20-22에 기록된 내용과 동일시
하면서, 벤하닷이 바아사(Baasha, B. C. 909-886)를 아합의 부친으로 착각했을 것이라
추측한다(Hammond). 그러나 이 견해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아합의 부친 오므
리(Omri, B.C. 885-874)는 당시 주변 세계에 널리 알려진 왕이었다. 일찍부터 이스라
엘과 때로는 친선, 때로는 적대 관계를 맺어 온 아람국들이 바하사와 오므리를 구별
못할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사마리아 성읍은 바아사 당시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다.
사마리아가 건축된 때는 오므리 시대이다(16:24). 또한 우리는 열왕기가 왕정 시대의
모든 사건을 수록하고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전쟁이 벤하닷 1세와 오므리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는 게 좋다.
ㅇ다메섹에서...거리를 만드소서 -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절에서 말하는 '거리'
(후초트)를 도시의 특정 지역에 세워진 무역 시장으로 해석한다
(ontgomery, Keil & Delitzsch, R.D. Patterson). 그렇다면 아마도 이전까지는 사마리
아에만 아람의 무역시장이 있어 아람인들만이 일방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었던 것 같
다. 더군다나 다메섹에 '거리'를 만들도록 한다는 조치가 항복의 조건으로 제시되는
것을 보면, 거기서 올릴 수 있는 수입이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ㅇ이 약조(約條)로 당신을 놓으리라 - 이처럼 아합이 몇몇 성읍의 반환과 무역 이익
을 보장 받고선 벤하닷을 살려준 조치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가들에겐 납득할 수
없는 행위였을 것이다. 즉 그들에게는 분명 아합의 처사가 눈앞의 조그마한 경제적
이익과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맞바꾼 불순한 결정으로 보였을 것이다(42절).

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그 동무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ㅇ선지자의 무리 - 이에 해당하는 '베네 하느비임'은 '선
지자의 아들들'(sons of prophets)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문자적으로 선지자의
혈육을 이르는 말은 아니다. 대신 이는 B.C. 11세기 경 사무엘 시대부터 등장하기 시
작한 선지자 학교의 생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선지자 집단들은 엘리사의 활
동과 관련해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왕하2:3;3:11;4:1,38;6:1,2). 이에 관한 보다 자
세한 내용은 삼상 10:1-16 강해, '선지자 학교'를 참조하라.
ㅇ동두 - 이에 해당하는 '레아'는 '교제하다', '사귀다'는 뜻인 '리아'서
에서 온 말이다. 여기서 이는 선지자 생도의 동료. 즉 함께 생활하고 교제하는 친
구를 가리킨다.
ㅇ너는 나를 치라 - 하합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할 선지자가 왜이처럼 얻
어터지고 상처입은 형상을 취해야만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추정컨대 이는 장
차 아합이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을 당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시하기 위함인 듯하다
(Pulpit Commentary). 아무튼 본문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 위해 온갖
고초마저 무릅쓰는 등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36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저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ㅇ선지자의 동무는 선지자의 단호한 결의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분변치 못하고
인간적 정리(情理)에 사로잡혀 감히 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35절). 그러나 본절에
서 보듯 그는 그로 인해 사자의 밥이 되는 끔찍한 저주를 당하고 만다. 이에 대하여
독자(讀者)들은 상당향 의아심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합왕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그만큼 크고 단호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그러한 의아심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선지자의 동무는 인간적 정리에 연연하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뜻에
순복했어야 마땅했다.

37 저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가로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저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ㅇ그 사람이..상하도록 친지라 - '상하도록'은 '타박상을 입히다'는 뜻의 '파차'
이다. 그런데 다음절에서 선지자는 눈을 붕대로 감고 있다. 물론 이는 변장의 목적이
기도하지만, 아마도 이때 타박상올 입은 곳이 눈부위였던 것 같다. 한편 본절에 등
장한 익명의인물 역시 선지자 생도 중 한 명이다. 왜냐하면 '또 다른'에 해당하는 '아
헤르'는 영어의 another(one more of the same kind)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또 다른 사람'이란 '또 다른 선지자 생도'임이 분명하다.

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그 눈을 가리워 변형하고 길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 왕이 지나갈 때에 소리질러 왕을 불러 가로되 종이 전장 가운데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저를
잃어버리면 네 생명으로 저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 종이 이리 저리 일 볼 동안에 저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41 저가 급히 그 눈에 가리운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저는 선지자 중 한 사람인
줄 알아 본지라

42 저가 왕께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 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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