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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룻기

[스크랩] 룻기서 3장 강해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1:59

룻기서 3장 강해


      
    

    [ 서 론 ]

    3장을 시작하기 전에 물어 볼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스의 밭입니까? 보아스에게 속한 밭입니까? 보아스에게 속한 보리밭은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보아스의 보리밭이 있는 장소는 베들레헴 성안에 있느냐 성 밖에 있 느냐 룻기서 1장에서 에브랏 길이라고 하셨으니까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왜 또 보아스의 보리밭을 말씀하느냐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보아스의 보리밭이 되어 있고 따라서 이 자리에서 이 영광의 복음을 받는 우리들이 나가서 목회 하는 모든 교회가 또 보아스에게 속한 보리밭이 되어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앞에 있는 보아스의 보리밭을 보고 그 밭에서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아스의 보리밭에서 일하는 일군들은 몇 가지의 사람들이 있습니까? 보 아스는 신랑 예수이고 사환은 영광의 영이고 보리 베는 자는 낫을 들고 베고 있으 니까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해서 세상의 미련을 끊어주시는 사랑을 보는 자입니다. 따라서 베는 자가 되려면 자신부터 세상에 속한 것을 다 끊어 버리고 회리 바람 을 타고 올라가는 엘리야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14:30)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속한 것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니 까 세상 임금이 관계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각 자가 어느 마음 한 구석에 세상에 속한 것이 없는가 항상 살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온전히 세상에서 끊어져 있을 때에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하여 세상에 속한 미련을 끊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자리에 있지 못하면 (마24:12) 말씀과 같이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 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악한 자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떠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불법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 책에 그 이름이 녹명 된 자 곧 순교자의 영광을 바라보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성도들을 순교하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속한 것을 완전히 끊어주시는 사랑이 첫 삼년반 환난인데 도리어 악 한 자의 권세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곧 불법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베는 자가 되어야 하고 베는 자가 되려면 자신이 먼저 세상 에 속한 것을 완전히 끊어 버리고 언제 회오리 바람이 휘몰아치더라도 그 바람을 타고 올라 갈 수 있는 믿음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물길어 온 소년들은 어디서 무슨 물을 떠오느냐 첫 삼년반 환난의 때에 하늘의 영광을 더 하시는 큰 기쁨이 곧 이 소년들이 길어 온 이 물은 신랑 예수로 부터 길어 오는 생수가 되는 것입니다. (요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좋은 것은 알면서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 온 하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신랑 예수로부터 받은 생수가 넘쳐 날 때에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수도 있고 그 소년이 자라나서 베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녀가 있었지요 시녀는 누구냐 라헬과 레아가 시집 갈 때에 시녀를 데리고 갔습 니다. (창29:2429) 옛날에는 시집가는 신부가 시녀를 몸종으로 데리고 갔지요 이 시녀는 침방에까지 들어가서 신랑 신부의 잠자리를 봐 주기까지는 하는데 그 잠자 리에 신랑과 함께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까지는 바라보면서도 순교하게 해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아직도 시녀라고 부르게 됩니다. 소녀가 있지요 소녀는 아직도 안방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소녀는 첫째 부활의 영광을 듣기는 하는데 그 자리까지 이끌어 주시는 과정 곧 순교하게 하시는 과정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녀는 작은누이 같아서 아직도 사춘기에 이르지 못한 신앙 단계이고,(아8:8) 이삭을 줍는 룻이 있지요 이 첫째 부활의 영광을 증거 하게 하시는 말씀을 하나 하나 주어 모으고 있습니다. (단12:4) 말씀과 같이 (창1:1)에서 (계22:21)까지 빨리 왕래하며 주어 모으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면 이제 처음부터 올라갑니다. 이삭을 부지런히 줍고 소녀로 자라나고 소년의 자리에서 물을 길어 오고 베는 자 가 되어 단으로 묶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 해 볼 것은 3장에서는 타작 마당이 나오는데 보리 단을 타 작 마당에까지 옮겨오는 역사는 기록되지 아니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단들을 타작 마당에까지 옮겨다 주실까요 은 삼십에 예수를 판 가 룟 유다 같은 친구들을 통해서 하속들과 군병들과 합력 하여 끌어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를 아니합니다. 왜요 그들은 악한 마음을 가 지고 일 했기 때문입니다. (마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 하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빌라도의 관정까지 오리요 빌라도의 관정에서 골고다 언덕 까지가 오리가 되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까지 십리가 됩니다. 보리 단을 타작 마당에까지 옮겨다 주는 친구들이지만 악한 마음으로 일 했기 때 문에 이름도 없습니다. 타작 마당에서 도리깨로 떠는 자도 있어야 하는데 떠는 자도 기록되지 아니했습 니다. 세례요한의 목을 베어 소반에 담는 자들의 이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보리 단을 타작 마당에까지 끌어 간 자들과 도리깨로 때린 자들은 악한 마음으로 역사 했기 때문에 도리어 심판의 대상이 되어 후 삼년반 환난의 때에도 회개하지 못하고 원망하는 가운데 죽게 하십니다.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셔서 니느웨에 사는 12만 여명을 회개케 하는 역사는 이루 었지만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이 다 죽기를 바라는 악한 마음으로 일 했기 때문에 면류관이 없다는 사실을 보게 하시기 위해서 해가 요나의 머리에 뜨겁게 쬐고 있습 니다.(욘4:8) 2장에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신랑 예수께서 순교하게 해 주시는 역사 를 3장에서 나타내 주시고 계십니다. 3장에서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의 역사를 보지 못하면 환난의 때에 예수 를 버리고 도망하는 제자들과 같이 된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시고 계십니다. (막14:51-52)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 오다가 무리에게 잡 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 하니라 하시는 그 청년의 뒤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1절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지금까지는 나오미가 룻에게 말했고, (룻1:15) 시모가 자부에게 말하였습니다. (룻2:20) 그러나 여기서는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자기 신랑 예수가 되는 것을 보았고 따라서 첫째 부활의 영광도 보고 있습니다. 룻의 시모니까 룻을 낳아 준 어머니는 아닙니다. 그의 아들 곧 자 기 남편 되었던 말론을 낳은 어머니 입니다. 그러니까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라고 한 것은 자부가 아니라 신랑 예수의 신부 가 된 룻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19:27)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가리 켜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나신 예수께서 요한을 불러 십 사만 사천의 영광에까지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나오미의 몸에서 난 아들 말론으로 인하여 엘리멜렉의 집으로 시집을 왔고 나오미로 인하여 순교자의 영광의 자리까지 인도하심 받게 된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말론 이 없었으면 룻이 나오미의 자부가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 되게 하여야 하지 않 겠느냐" (아8:8)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 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라고 하셨지요 작은 누이는 유방이 없다고 했으니 아직 사춘기가 되지 못했단 말입니다. 첫째 부활은 바라보면서도 환난의 날에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로부터 기 쁨을 받는 자리에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준 내가 그 첫째 부활의 영광을 사모하는 네 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로 복 되게 하는 것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말씀하신 (계19:9)의 복입니다.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은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 랑 예수의 사랑 안에서 찬송하는 생활입니다. (행12:6) 야고보가 헤롯의 칼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서도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있는 베드로의 안식인 것입니다. 이 안식을 받으면 순교하게 해 주시는 기쁨으로 찬송하게 하시는 복이 되고 이 안식을 받지 못하면 내가 순교한다고 큰소리치다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부 인하는 베드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는 그 신랑이 어느 신랑인가? 순교하게 하시는 신랑입니다. 그러므로 (단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말씀하셨지요 호위한다는 것은 높은 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원수들에게서 지 켜 주는 것이지요 첫 삼년반 환난의 때에 순교하게 해 주심으로써 천년 왕국을 잃 어버리지 않게 지켜 주십니다.

    ◈ 참 고 ◈

    (마26:3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 다 말하였고, (요13:37)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하는 베드로입니다. (마26: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있고, (막14:54) 베드로는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고, (눅22:56) 베드로가 불빛을 향하여 앉아 있었고, (요18: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하였고 계집 아이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눅22:62)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고 밖에 나가 서 심히 통곡합니다. 특히 주의할 것은 (마26:3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그 제자들은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마26:56) 교역자가 그와 같이 가르치면 모든 교인들이 다 도망하는 자가 될 것 입니다. 그러므로 나오미는 룻에게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 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말하고 있습니다.

    ◆ 순교하게 하시는 길

    1.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고 첫 째 부활의 영광을 보이셨습니다.(마17:1) 2. 큰 다락방에서 이 유월절을 먹게 하셨고,(눅22:12) 3.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을 데리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마 26:37) 4. 가룟 유다를 보내셔서 억지로 오리(빌라도의 관정)와 십리(골고다 언덕)을 동 행 하셨고,(마5:41) 5.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 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21:14,행 6:15) 6. 내가 감추었던 만나와,(계2:17)(채찍으로 매를 맞을 때에 주시고) 7.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사형장에서 주시기 때문에 받는 자 밖에 알지 못 합니다.) 8. 함께 못 박힌 두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다리를 꺾었고 (요19:32) 예수님 께서는 벌써 죽은지 오래 되었으니 죽음의 고통도 감하여 주십니다.(막15:44) ※ 예수께서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알더라 말씀하셨는데 환난의 날에 산 깊은 곳에 모여서 기도하는 동지들 가운데도 가룟 유다 같은 자 하 나를 섞어 두실 것을 말씀하십니다.(요18:2) 첫 삼년반 환난이 끝날 때까지 끌어다 죽게 하지 아니하면 순교를 못하겠으므로 유다 같은 자 하나를 섞어 두었다가 고발하여 끌어다 순교하게 하십니다. 농부가 콩을 타작하다가 한 알이 멀리 튀어 나가면 거기까지 가서 주어 오거든 신랑 예수 께서 자기 신부 한 사람인들 남겨 두시겠느냐 깊이 생각해 두십시다. 2절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울 때에 함께 하던 그 시녀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지성으로 신랑 예수를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내 신랑은 아닙니다. 그러나 룻에게는 지금 내 신랑으로 맞이하 게 하시는 말씀을 교훈하고 있습니다.(룻2:13) 우리의 친족이라는 말씀은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갈 때에 버리고 간 그 기업을 물 러 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룻2:20 엘리멜렉에게 주셨던 기업의 땅은 첫째 부활의 영광에까지 인도하시는 에브랏 길 에 있었습니다. 엘리멜렉은 모압 땅으로 갈 때에 그 기업의 땅을 버리고 갔었습니 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 기업의 땅을 물러 주어 첫째 부활의 영광에까지 인도하실 것 을 말씀하십니다.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가 라고 하시는 보아스는 신랑 예수님이시고, 오늘밤은 환난의 때 곧 첫 삼년 반 환난의 때를 말씀하십니다. 타작 마당이라고 하신 것을 보니까 보리 단을 타작 마당에까지 옮겨 온 자들이 있고 그 보리들을 타작하기 위해서 도리깨로 때린 자들도 있습니다. 한때 두때 반때에 걸쳐서 세 번 순교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한 때보다 두 때가 더 크고 마지막 반 때가 고통이 더 크게 하십니다. 손에 키를 들고 까불고 있으니 순교하게 하시는 기쁨으로 찬송하는 자는 알곡이 되고 그 기쁨이 없는 자는 쭉정이들이 되어 바람에 날려 가게 됩니다. 기름을 준비 하지 아니한 다섯 처녀 같은 자들입니다.(마25:12) (계11:12) 마흔 두 달 동안에 대추나무에 열매가 많은 가지가 매를 더 많이 맞 는 것과 같게 되는 것입니다.(욜1:12) (마25:9)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한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할 때에 우리와 너희 쓰기에 부족할까 하노라 하여 주지 아니했습니 다. 열매가 많은 자들은 더 큰 매를 맞게 하셨으니 그 매를 이길 만큼의 기름이 준비 되어 있기 때문에 나눠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목사님과 장로님과 집사님들이 함께 붙잡혀 가면 누구를 더 크게 때릴 까요 더 크게 맞을 자에게는 그 매를 맞는 고통을 이길 만큼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 는 것입니다. 3절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여기서 너는 목욕하라고 하는 말씀은 몸에 더러운 것을 씻으라는 말씀이니 육에 속한 것이 조금도 남지 않게 씻어 버려서 깨끗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육에 속한 것을 조금이라도 남겨 놓으면 한때 두때 반때를 주실 때에 앞서가는 자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한발이라도 앞서 가는 자의 영광이 얼마나 큰 것도 보아 야 하는 것입니다. (렘12:6)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 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하셨지요, 남편이나 아내가 순교자로 끌려 갈 때에 뒤에서 여보 아버지 이제라도 예수 안 믿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죽지 않고 살 것인데 무엇 때문에 고집스럽게 끌려가느냐 고 부르짖게 될 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21:12-13)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할 때에 선지자 아가보가 와서 바 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수족을 잡아매고 이 띠 임자가 이와 같이 된다고 예언 할 때에 그곳 사람들이 바울에게 올라가지 말라 권하였고 바울은 내가 너희들에게 증거한 영광의 복음을 그렇게 못 받았느냐고 심히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마25:4) 등에 기름을 준비하라고 하셨지요 기름을 담아 두는 그릇은 우리들의 몸이니 악한 자들이 아무리 큰 몽둥이로 어떠한 고통을 더하는 악형 가운데서도 영 광을 더하게 하는 기쁨으로 이기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온 몸에 채우라고 하시는 말씀은 그들이 몸 어디에 어떠한 고통을 더 하더라도 찬송할 수 있는 기쁨을 채우라는 말씀입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그 때에 주실 것을 보아야 합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 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말씀하셨고, (히11:35)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 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였으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 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 실 화 ◈

    신사 참배로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시험하게 하셨을 때에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 가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함께 잡혀가서 구속당했습니다. 얼마 후에 재판을 받는데 목사님은 징역 일년을 선고하고 전도사는 일년 반을 선 고했답니다. 그 때에 목사님께서 혹시나 그 전도사님이 목사님은 징역 일년인데 전 도사인 나에게 징역 일년 반을 선고하는가 하여 불평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하시 는 말씀이 아무개 전도사 나는 목사로서 징역 일년 밖에 못 받았는데 너는 전도사 로서 징역 일년 반 나보다 반년을 더 살게 되었으니 네 영광이 얼마나 크겠느냐 라 고 권유했답니다. 그 목사님과 전도사님 본 받을만한 분들입니다. 의복을 입으라는 말씀은 (창37:3)에서 이스라엘이 노년에 얻은 아들 요셉에게 입혀 주었던 채색 옷입니다. 아들의 영에는 가죽옷으로 입혀 주시고 육신에는 채색 옷을 입혀 주시는데 천사 에게도 없는 이 육신을 입혀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늘의 무궁무진한 영광에 합당한 그 열매를 더하게 하시는 것을 보는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재산을 다 허비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가 입혀 준 제일 좋은 옷입니다. 끝 으로 순교를 통해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영광입니다. 이 육신이 얼마나 존귀하고 영화로운 것을 보는 신앙입니다. 그와 같은 신부들에 게 흰 두루마기도 예비 되어 있습니다.(계6:11) (마12:11)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베푸신 혼인 잔치 자리에 들어가는 예복은 가죽옷이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예복은 채색 옷이고 순교할 때 에는 흰 두루마기를 주십니다. "타작 마당에 내려 가서 그 사람의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 지 말고" 타작 마당은 순교자의 수를 채우게 하시는 첫 삼년반 환난의 때이고 거기에 내려 가라는 것은 피하여 도망하지 말고 기쁨으로 달려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은 보아스요 신랑 예수님이십니다. 그가 먹고 마시기를 다 한다라고 하셨는데 (요4:34)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여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신부가 된 나오미와 같은 사자들을 보내셔서 순교자의 수를 채우게 하시는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교자들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 책에 녹명 되어 앞으로 순교 하는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는 신부들입니다.(계13:8) (계6:11)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그 때를 묻는 순교자들에게 그 수가 차기까 지 하라고 하시는 그 때입니다. 그가 곧 신랑 예수께서 네게 찾아 오셔서 순교하게 해 주실 때까지 기다릴 것이 요 네가 그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은 내가 순교하려고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곧 신랑 예수께서 신부 된 나에게 이루시는 역사 안에 사는 자가 되어 순교 하게 해 주시는 기쁨 안에 사는 자가 되어야 마땅하고 그렇지 못하면 내가 주를 위 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하는 베드로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4절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요14:10) 그는 신랑 예수시니 그가 눕는 곳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안식입니다.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 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하셨습니다. 너는 그가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라는 말은 그가 눕는 그 장소를 말씀하시는 것 이 아니라 그를 눕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예수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그 성령께 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1:38)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그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라고 하신 그 계신 데는 어느 장 소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 고 계시는 그 역사인 것입니다. 이제 들어가라는 말씀은 네가 그대로 하려하지 말고 그대로 이루시는 역사 안에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지구가 돌아가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구와 함께 나도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것은 아는데 내가 지구를 타고 공전하고 있는 사 실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는 말씀은 그 말씀대로 반드시 그가 이루시는 역사 안에서 함께 안식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불을 들고 한 이불 안에 누워 있으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십니다.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발치 이불을 들고 한 이불 안에 누워 있는 네게 네가 할 일을 명하시는 것은 네 가 그를 위해서 할 일이 아니라 그가 네게 해 주실 일을 미리 말씀하여 믿게 하시 는 것입니다. (창18: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 셨습니다. 반드시 미리 다 말씀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룻이 할 일은 그 말씀을 믿고 안식하는 일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들의 대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만약에 예수께서 육신을 입지 아니하셨다면 우리가 당하는 육신의 고통을 알지 못하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다 체휼하셨습니다.(히4:15) 5절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첫째 부활을 더 하시는 신랑 예수의 신부가 된 룻이 지금은 시모에게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육신의 남편 되었던 말론을 낳아 준 시모가 아니라 신랑 예수를 맞이하게 하신 어머니입니다. 룻은 자기가 말론의 아내로 시집 온 그날부터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씀이 참된 영 생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었고 오늘까지 이 자리로 인도하신 그의 교훈이 다 참된 영생의 말씀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상17:24) 사르밧 과부가 자기 아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후에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고 한 것과 같이 나오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어머니께 대하여 이루시는 그 뜻대로 내게 도 이루실 것을 믿고 다 행하는 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 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 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되는 아브라함도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실 때에 반드시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그 믿음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고 가나안 땅에 이르렀습니다.(창12:1) 6절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룻이 그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는 것은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해서 순교하게 해 주 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보지 못하면 도리깨로 치고 바람에 날리는 그 타작 마당에 자기 발로 걸어서 내려 갈 수 없고 도망치는 자가 될 것입니다. 7절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보아스는 신랑 예수시니 그로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믿는 자들 속에서 역사 하시 는 성령께서 그대로 다 이루시고 계시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요16:13) 바울과 실라가 밤중쯤 되어 깊은 옥중에서 기도하고 찬미하는 그 소리를 듣고 즐 거워하고 있는 신랑 예수님이십니다.(행16:25) 바울과 실라의 기도는 죄인 가운데서도 괴수가 된 나와 너를 부르시고 사도로 세 우시고 복음과 진리를 증거 하게 하시고 이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더하게 하시기 위하여 순교까지 하게 해 주시는 예수님 앞에 감사하고 찬미하고 있습니다. (행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 뻐하고 있는 것을 보시는 신랑 예수의 마음이 즐겁습니다. 보아스 곧 신랑 예수께서 누워 있는 것만 보지 말고 그 예수님의 안식의 품에 들 어 와서 함께 누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적가리는 알곡을 모아서 쌓은 곡식 더미이니 첫 삼년반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자기에게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 다.(계7:13-17) (단12:1)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으니, (계19:9)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 책에 녹명 된 자는 하나도 빠짐 없이 이끌어 순교하게 하여 주시는 복이 있습 니다.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신랑 예수께서 반드시 그 자리까지 이끌어 주실 것을 믿고 안식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8:4)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찌니라 하시는데 아직도 흔들어 깨우는 예루살렘 여 자들은 사람의 열심과 충성으로 순교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랑 예수께서 나를 깨워 주시는 그 때에는 내 영혼이 제단 아래서 흰 두루마기 를 받아 입고 있을 때가 되는 것입니다.(계6:11)) 복음으로 불러 믿게 하신 이도 예수요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신 이도 예수요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게 하신 이도 신랑 예수시오니 그 자리까 지 인도하시는 역사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가 참된 믿음 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단12:49) 두 번이나 말씀하신 대로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 하셨다가 그 마지막 때에 보내심을 받은 나에게 이 말씀을 열어 보이셨으니 그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그 믿음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 룻으로 보여 주시는 안식입니다. 8절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 지라" 밤중은 (마25:6) 말씀과 같이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시는 환난의 때 입니다. 그 사람 보아스는 신랑 예수님이신데 무엇 때문에 놀라고 계실까요? 이와 같이 신부의 믿음까지 자라게 하시는 역사는 계속 되고 있으나 그것을 듣고 보고 이 자리까지 나오는 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만나지 못하였는데 이제 이 자리 까지 나온 한 사람 룻을 보고 놀랍도록 기뻐하고 계십니다. 내가 죽을찌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 또는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 이다 하는 베드로와 같은 무리들은 많이 보았으나 자기 발치 이불 아래 들어와 있 는 룻과 같은 신부는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현실을 나타내 주십니다. 9절 "가로되 네가 누구뇨" 보아스가 그 여인을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신랑 예수께서 자기 신부를 몰라 볼 수가 없고 그 신부는 자기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신랑이 그 자리까지 이끌 어 오게 하신 신부인데 몰라 볼 수가 없습니다. (마25:12) 기름을 사 가지고 온 다섯 처녀들에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니 라고 말씀하셨으니 너는 신랑인 내가 아는 자냐 알지 못하는 자냐 네가 누구뇨 묻고 계 십니다. 네가 신랑 예수를 찾아 온 자냐 신랑 예수께서 이끌어 주신 자냐 네가 누구뇨 묻 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각자가 네가 누구뇨 물으시는 물음에 확실한 대답을 해야 합니다. 만약에 네가 나를 찾아 왔다면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고 도망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나는 아직도 시녀의 자리에 있는 룻이오니 이제는 신랑 되신 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어 주셔서 신랑의 품안에 안기는 신부가 되게 하소서 구하고 있습니다. 옷자락이라는 말씀은 (사6:1)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내가 주를 영화롭게 할 수도 없고 나를 영화롭게 할 수도 없사오니 주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셔서 주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 게 하소서 구하고 있습니다. (계4: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 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라고 하셨습니다. 이십 사 장로는 십 사만 사천이요 자기 면류관은 영광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금 면류관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경건하게 두 손으로 받쳐 드리지 않고 먼데서 던지고 있습니다. 그들도 자기들의 생활대로 심판하신다면 가시 면류관 밖에 쓰지 못할 자기들에게 금 면류관으로 씌워 주시는 것을 보고 이 금 면류관을 받아 쓰기에는 너무나 거리 가 먼데 있는 자기들을 보기 때문에 오직 금 면류관을 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영광 돌리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금 면류관을 씌워 주기 위하여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이십니다.(마27:29)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엘리멜렉에게 주셨던 그 영광된 기업의 땅을 팔고 모압으로 내려가서 그 땅을 사 가지고 죽은 자의 자리에 있을 때에 우리를 다시 기업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셨으 니 그 기업의 땅도 물러 주셔서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큰 기쁨으로 찬송케 하 실 자이십니다. 이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하여 죽은 자들은 모압 땅에 장사 지내게 하시고 살리신 자들을 이곳 기업의 땅으로 인도하셨나이다. 기업을 물려주신다는 말씀은 그 기업의 땅을 도로 주셔서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 시는 생활입니다. 엘리멜렉은 비록 그 영광된 기업을 버리고 모압으로 가서 죽은 자가 되었을지라 도 그의 아내가 된 나오미는 그 영광된 기업을 이미 받았고 엘리멜렉의 두 아들은 모압에서 죽었을지라도 말론으로 인해서 룻을 살려 이 영광된 자리까지 인도하셨습 니다. 그 기업의 땅이 헛되지 않게 지켜주십니다. 10절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2:8)에서 말씀하시는 내 딸은 이삭을 줍고 있는 어린 딸 곧 첫째 부활의 영 광을 바라보기만 하는 딸이고, 여기서 말씀하시는 내 딸은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 시는 자로 인하여 함께 기뻐하며 영광을 돌리는 자라난 내 딸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살리심 받은 생명이 그 속에 있고 함께 영광을 찬송하는 생명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제는 첫째 부활의 영광까지 보이셨으니 그 자리까지 이끄시고 찬송 케 하시는 복 주시기를 원하는 그 복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의 영원한 복이 되 고 있습니다. 신랑 예수로 인하여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게 하셨으니 만유를 임의로 주관하시 는 (계20:6) 영광의 아버지로부터 악한 자들의 권세까지 역사 하게 하여 이루시는 그 복이 반드시 네게 있기를 원하노라 축복해 주시고 계십니다. 천년 왕국에서 그 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며 제사장 노릇하게 하시는 복입니다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보아스를 좇는 것은 재물이 부요 한 것을 보고 좇은 것도 아니니 비록 내가 가난하였더라도 좇았을 것이며 연소자를 좇지 아니한 것은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 는 것보다 차라리 순교를 통해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더하게 하는 기쁨을 얻기 위 한 것이니라, 세상의 부귀 영광이나 정욕의 쾌락보다 하늘의 영광과 고난을 통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큰 기쁨을 보고 좇은 것을 나타내십니다. (왕상1:3) 늙은 다윗왕에게 오는 동녀 아비삭을 보게 하십니다. 아비삭은 다윗왕 이 늙었을지라도 얼마동안 왕비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늙은 다윗왕에게 온 것은 아닙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 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말씀하십니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룻이 동서 오르바와 같이 모압 땅으로 돌아갔으면 부자로 젊은 남자와 결혼하여 세상의 부귀 영광도 누리고 육신도 정욕대로 쾌락을 누리며 자녀를 낳았겠지요 그 러나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나오미의 하나님을 보고 유대 땅으로 따라 온 그 룻에게 첫째 부활의 영광을 더 하셨습니다.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인애라는 말은 내가 사랑하지 아니하여도 될 자를 사랑하는 것이 인애입니다. 룻 이 처음에 자기 남편 말론이 죽었을 때에 시모 나오미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시 집가도 허물이 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룻은 동서가 그 백성 그 신에게로 돌아 갈 때에도 나오미를 붙좇았습니 다. 이제는 나오미로 인하여 시작된 그 믿음이 신랑 예수를 보는 자리까지 자라게 되었으니 나중 인애가 더 하다고 하십니다. 엘리야로 인하여 생명이 살았고 믿음이 자라난 엘리사는 아버지라고 불렀고 끝까 지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부어 주며 따르다가 회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엘리야의 겉옷을 받았습니다.(왕하3:11) 복음과 진리를 자기에게 전하여 살리심을 받은 그 믿음이 자랄수록 그 생명을 살 려 주신 그 부모를 더 크게 존경할 것입니다. 이 인애를 더하는 자와 그 인애를 받는 자들의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은 그 자리에 있는 자만 알 것입니다. (요삼:4) 말씀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 거움이 없도다 육신의 사랑으로 나서 키워 준 그 자녀들 중에는 부모를 거역하는 불효 자식이 있더라도 복음과 진리로 살려 준 그 자녀들은 끝까지 인애를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왕상17:6)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는 엘리야에게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 도 떡과 고기를 가져오게 하시는 까마귀가 그들입니다. 11절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보아스가 룻에게 내 딸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 번째요 또 마지막 입니다. 마치 결 혼을 앞둔 딸에게 시집가서 어떻게 생활할 것을 말해 주는 부모의 심정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부터는 룻이 신랑을 영접한 신부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 니다. 순교하기까지의 모든 핍박과 환난과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 다. 신부들의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악한 자들도 역사 하게 하셨 습니다. 따라서 그 때마다 찬송케 하시는 기쁨을 더하여 이기게 해 주십니다.

    ◈ 참 고 ◈ (피조물의 구별)

    (롬8:19)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육신으로 세상에 사는 동안 에 영광된 열매를 맺는데 쓰여지게 하시기 위해서 지으신 것을 보고 그 일에 쓰여 지기를 고대하는 피조물이 있으니 본래의 뜻대로 있는 피조물이고, (롬8:39) 다른 아무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아 름답게 지음 받은 천사장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범죄 하여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고 나서 흑암에 가두셨기 때문에 자기로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지옥을 가져다 주고 멸망을 가져다주는 피조물의 본래의 뜻과 다른 목적으로 역사 하는 마귀와 그 에게 속한 모든 악의 역사까지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을 더하게 하시 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첫째는 에덴 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따먹게 하여 지옥의 심판을 가져다주었으나 하나님은 그 아들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고, 둘째는 육체 안에 거하는 정욕과 원죄로 역사 하여 범죄 하게 하여 멸망을 가져 다주고 있으나 하나님은 성령의 역사로 열매를 맺게 하시고 나 같은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 안에서 감사하며 찬송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피조물은 마귀와 그에게 속한 자들의 역사까지도 우리 자녀들의 영광을 위해서 이루시는 역사가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범죄 하여 지옥의 심판을 받은 마귀가 잠시 동안의 지옥의 심판을 통하여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여자가 따 먹으려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따먹지 못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네 말대로 내가 행하는 것도 아니요 내 말대로 네가 행하는 것도 아니요 네 말대 로 내가 네게 다 행하여 주실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이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님의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현명한 여자는 주의 말씀을 빨리 깨닫는 지혜 있는 여자요 현숙한 여자는 그 말 씀을 믿음으로 인하여 아름다운 생활로 나타내고 있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나의 성읍 백성들이라고 하셨으니 영광의 주께서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영광의 성 읍이요 그 성읍에 사는 백성들은 진리의 영으로 역사 하여 하늘의 산 소망 안에 살 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진리 안에 사는 자는 룻을 다 알아보지만 진리 안에 살지 아니하 는 자들은 도리어 이단이라고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성읍 백성들은 다 아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참으로 참된 기업으로 물려주는 친족이 있고,(영에 속한 교역자) 거짓으로 거짓 된 기업으로 물려주는 친족도 있습니다.(육에 속한 교역자)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라는 말씀은 현재 눈앞에 있는 세상 축복을 보여 주고 있으니 가까운 친족이 되고 신랑 예수께서는 천년 왕국 때에 이루실 영광을 주시니 가깝기는 가깝지만 세상 축복을 말하는 자들이 나보다 더 가깝습니다. 똑 같은 세상에 있는 소망인데 하나는 첫째 부활의 날에 주시는 천년 왕국의 영 광이고 하나는 현재 이 육신이 사는 동안에 받아 누리는 부귀와 영광입니다. 13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이 밤은 아직도 어두움의 권세 곧 악한 자의 권세를 두려워하 는 때입니다. 순교자의 영광은 보면서도 끌어다 죽이게 하는 악의 권세를 두려워하 고 있습니다.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 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아침이 되었으니까 어두움 곧 환난을 통하여 이루시는 영광을 보고 있습니다. 그 러므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된 그가 기업을 물러 줄자의 책임을 성실하게 행 하면 얼마나 큰 영광이 그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자녀들을 보내실 때에 하늘의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모압으로 내려가는 엘리멜렉과 같이 다 버리고 세상에 치우쳐 사는 자 되었을 때에 하늘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시는 생명으로 살려 그 기 업의 땅으로 물러 주는 교역자가 됩니다. 교역자 자신이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을 때에야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성실 히 행하게 됩니다.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 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보아스는 육신대로 살고 있는 그 친족 된 사람이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 하지 아니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세상에 속한 교역자들은 모두가 교인들에게 하늘의 소망을 보여주는 유익보다 자 기의 세상 유익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목회 하는 근본 목적을 바로 가져야 합니 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는 것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까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소금 언약의 말씀입니다.(민18:19)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신랑 예수께서 반드 시 순교하게 하셔서 천년 왕국에까지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침까지 누울찌니라" 지금까지의 말씀은 날이 밝기 전 아직 어두움의 권세 아래 있는 룻에게 밝은 빛 이 비취는 아침이 되어 이 모든 사실들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그 발치 이불 아래 누 워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때까지 누워 있지 아니면 내가 내 목숨을 주를 위하여 버리려는 베드로가 됩 니다.(요13:37) 14절 "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는 신랑 예수요 이 여인은 그의 신부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신부 야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부르시는 자기 신랑 예수의 음성을 들은 여인입니다.(아 4:8-9) 그러므로 이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와서 그의 신부가 되게 하시는 비밀을 사람 들의 지혜로는 알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영광의 영으로만 보게 하십니다. 만약에 사람의 지혜로 알게 되면 사람들이 순교하려고 열심 하게 되고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고 도망하는 자가 되게 할 것입니다. 15절 "보아스가 가로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펴서 잡으라" 주의해 볼 것은 네 겉옷을 벗어서 펴서 잡으라고 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아직 도 그 겉옷을 입지는 않고 있으나 자기를 위해서 예비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 다. (계6:10)에서 흰 두루마기를 말씀하시는데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에게 각각 주 신 흰 두루마기요 장차 순교하게 하시는 날에 네게 줄 그 흰 두루마기를 가져다가 펴 보라는 말씀입니다. 순교자의 믿음을 가진 자들도 알고 지은 죄 곧 사함 받지 못하는 죄가 있어서 그 들의 영광과 상급이 불타 버릴 것들이 남아 있을지라도 순교의 제단에 그 몸을 번 제로 드려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 돌리는 그 날에 다 면제해 주십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시는 긍휼이십니다.(계2:11) 십 사만 사천에게도 그들이 육신으로 살아 있는 동안에 시므이와 같은 자로 저주 하게 하셔서 그 영광과 상급을 온전케 해 주십니다. 그것이 흰옷입니다.(계3:4,삼 하16:12)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이워 주고 성으로 들어가니라" 그 겉옷을 내 것으로 가져다가 펴서 잡고 있으니 그 비밀도 다 보고 있습니다.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고 있으니 여섯 호멜이요 두 사람의 삼일 분의 식량입니다. 보리는 첫째 부활에까지 가는 길양식으로 주셨고,(창45:21) 여섯 번 되어 주신 것은 나오미와 룻 두 사람의 식량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삼일 분 식량을 주셨는가 (눅13:33) 말씀에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라고 하신 그 사흘이요 성령시대 이 천년과 천년 왕국 일 천년을 합해서 사흘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아스의 손으로 룻의 머리에 이워 주고 있으니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 에게 주시는 금 면류관을 보게 하십니다. 보아스가 들어가는 그 성은 삼일만에 부활하신 신랑 예수께서 들어가신 영광의 성이요 신부들을 인도하여 들이시는 성입니다.(계21:4) 16절 "룻이 시모에게 이르니 그가 가로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3:5)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고 나간 룻 에게 네가 어떻게 행하였느냐 묻지 아니하고 그대로 행하는 너에게 어떻게 되었느 냐 묻고 있습니다. 시모인 나오미는 십 사만 사천의 믿음으로 장성한 자라는 것을 분명히 보면서 들 어야 합니다. "룻이 그 사람의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하고" 룻은 그 사람 보아스가 자기에게 행한 모든 것을 보고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므 로 자기가 그에게 행한 것을 말하지 아니하고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 하고 있습니다. (행12:17) 천사의 인도하심을 받아 깊은 옥에서 나오게 된 베드로는 주께서 자 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결코 자기의 무엇을 자랑하지 아니합 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와 행함의 사람들의 간증이나 고백이 여기서 구별되고 있습 니다. 17절 "가로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준 것과 보리를 준 것은 다릅니다. 이 보리를 삼일 분 길양식으로 주신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이 보리 (눅 22:16)의 이 유월절, (마24:14) 이 천국 복음을 구별해 보게 하십니다. 시모에게 빈손으로 가지 말라 하시는 것은 룻이 먼저 시모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의 말씀을 믿고 행하였으니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있 을 것이니 그 은혜를 가지고 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노년에 눈이 어두어진 이삭은 털이 많은 에서의 손에서 별미를 받아 먹고 즐기고 있습니다.(창27:1) 또 특별히 주의해 볼 것은 나오미가 무엇을 바라고 있으니까 너는 빈손으로 가지 말고 무엇을 가지고 가라는 말씀은 아닌 것입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기에게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열매를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18절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 만히 앉아 있으라"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보아스가 룻에게 보여준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실 사 건입니다. 어떻게 네게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가만히 앉아서 그의 말 씀을 묵상하여 기도할 것이요 결코 네가 일어나서 뛰놀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 이와 같은 것들을 자랑삼아서 간증하며 돌아다니지 말 것도 명심해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수6: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찌니라 하고, 다섯 번째로 나오미가 내 딸아 부르는 자리까지 자라났느냐 찾아 볼 것입니다. 이 보리 여섯 번을 되어서 겉옷에 싸서 이워 준 그 양식을 나눠 먹는 자리에서 말 씀하십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부터 룻을 자기의 자부로 부르시고 이 영광의 자리까지 자기로 인하여 자라나게 하신 딸 룻을 보는 기쁨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말씀은 주님의 발 앞에 앉아서 (창1:1)에서 (계22:21)까 지 빨리 왕래하라고 하십니다.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그 사람은 보아스이니 신랑 되신 예수님이시고 오늘날이라고 하셨으니 룻기서를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오늘날입니다. 룻기서를 기록하게 하신 연대를 찾아보기 전에 오늘날 내게 하시는 신랑 예수의 말씀과 음성으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5: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 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모든 성경은 오늘 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 씀입니다. 먼저는 이 사건이라고 했고 여기서는 이 일이라고 하고 있으니 보게 하신 이 사 건을 그대로 이루시는 이 일이 되고 있습니다. 신랑 예수께서 네게 보여 주신 그 모든 일 곧 순교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그 일 은 그가 네게 이루시기 위하여 쉬지 않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룻3:1) 이 안식할 곳이 신랑 되신 예수께서 이루어 주시는 순교의 영광입니다. 깊은 옥중에서 잠자고 있는 이 잠이 베드로의 안식이 되고 있습니다.(행1:6) 특별히 주의 해 볼 것은 순교는 아무 사람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첫째 부활 의 영광을 보여 주신 신랑 예수께서 순교하게 해 주시는 기쁨으로 찬송케 하시는 것입니다.

    [ 결 론 ]

    1장에서는 모압 여인 된 룻을 나오미로 인하여 베들레헴으로 인도하셨고. 2장에 서는 보아스의 보리밭과 같은 첫째 부활의 영광을 증거 하는 교회로 인도하셨고, 3장에서는 나오미와 같은 사자로 안식할 곳 곧 순교하게 해 주시는 길을 가르치 시고 안식하게 하시는 신랑 예수와 그 길을 동행하면서 찬송하게 하소서, 아 멘

    ◈ 참 고 ◈ (아8:6-7)

    6절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너는 이라고 하시는 너는 신랑 예수를 오라비로 보는 그의 신부가 된 누이를 말씀하셨고, 나를 하는 나는 첫 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신랑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인 같이 마음에 품고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계약서를 작성하면 서로가 도장을 찍어서 반드시 그대로 책임지고 행할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부의 자리에 있는 네가 신랑의 음성으로 들려주신 첫째 부활의 영광 을 보았느냐 이 말씀은 신랑 되신 예수께서 반드시 책임지고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랑 예수께서 책임지고 그대로 이루실 언약의 말씀으로 믿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엡1:13)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셨는데 성령으 로 반드시 이루실 것을 인치셨고 지식으로 전한 것이 아니고 신랑 예수께서 그 신 부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 주시기로 인쳤으니 너는 믿으라는 말씀이고 결단코 그 자리까지 사람의 열심으로 달려가라는 말씀이 아닌 것을 명심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라고 하셨으니까 그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도장 같이 팔에 두라' 하셨는데 인은 마음에 품으라고 하셨고 도장은 팔에 두라 고 하시는 뜻은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 로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띄우고 원 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하여 베드로를 끌어다가 순교하게 하실 것을 말씀 할 때에 네 팔을 벌리리라고 하셨고, (벧전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이 장막을 벗어 날것이 임박한 줄 앎이라 증거 하였는데 이것이 (요21:18)의 말씀을 마음에 인 같이 품고 있으면서 도장 같이 팔에 두고 있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신앙 고백은 모든 준비가 다 끝나고 순교의 그날을 기다리는 자신을 나타내고 있고 반드시 순교하는 그 자리에서까지 찬송케 하시는 주님을 말씀하십니 다. 그러면 십 사만 사천의 영광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순교하게 하시는 주님을 말 씀하시느냐 순교의 과정을 거쳐서만 십 사만 사천의 자리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 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먼저 죽음 같이 강한 것은 무엇인가 목숨을 가지고 사 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금수까지라도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강하고 또 죽음에 대 한 두려움이 강한 것입니다. 죽을 때에 당하는 그 고통을 생각하는 그 두려움이 강하고 그러므로 죽기를 싫어 하고 그 고통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강한 것을 말씀하셨는데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 는 신부들의 마음에도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게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26:38) 예수께서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 여 죽게 되었으니 말씀하셨고, (막14:34)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말씀하셨고, (눅22:40)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마26:39)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 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14:35)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 게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 소서, (눅22:41)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여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 하나이다. (눅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말씀하셨고, (요12:27)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 다, 십자가에 피로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을 이루시는 영광된 죽음 을 위해서 오신 것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얼굴을 땅에 대셨고 마가복음에서는 땅에 엎드리셨고 누 가복음에서는 무릎을 꿇고 세 번이나 기도하실 때에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같이 되더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러므로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고 말씀하시는 사랑은 어떠한 사랑입니까? 세 상 만민 가운데 가장 큰 죄인을 복음으로 부르시고 진리로 인도하시고 마침내 첫째 부활의 영광으로 이끌어 주시고자 순교하게 하시는 그 사랑입니다. 따라서 신부 된 너희들이 마음 가운데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이 크게 일어날수록 너를 순교하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고 있는 그 신부에게 대하여 신랑 되신 내가 신부 된 너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너희가 순교를 앞에 두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게 일어날 때에 이기게 하실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요19:33) 예수께서는 이미 죽은 것을 보았고 함께 못 박힌 두 사람은 아직 살 아 있었습니다. (막15: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 부장을 불러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에게는 죽 음의 고통과 죽는 시간도 단축시켜 주실 것을 보게 하십니다. (행7:56)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증거 하는 스데반이 복음과 진리로 인하여 돌에 맞아 죽게 되는 그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에 하늘이 열리고 있으니 하늘에 예비 되는 영광이 보이고 인자가 우편에 서 있는 것을 보게 하신 것은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하리라 하신 말씀과 같이 신랑 예수께서 스데반을 위하여 예비하신 영광의 보좌를 보이시며 스데반의 머리에 씌워 줄 금 면류관을 손에 들고 서 계시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계2:17) 또 그 순간에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주셔서 돌에 맞는 고통과 죽 음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죽음을 이기게 하시는 사랑이 강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약해서 말하면 사랑하는 신부가 알지 못하고 죽을 자리에 뛰어들 때에 그 신부 를 사랑하는 신랑이 자기가 사랑하는 신부가 혼자 죽으라고 내버려 둘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신부가 죽으려는 힘이 강할수록 그 신랑이 죽지 못하게 붙잡는 힘도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혼자 죽으라고 놓아주지 못하고 끝까지 붙들고 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첫째 부활의 영광까지 보여 주신 그 신랑 예수께서 그 신부 하나가 육신 의 죽음을 두려워하여 주를 부인하고 도망가려 할지라도 결단코 놓지 아니하실 것 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돌이켜 주시는 역사를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 습니다.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투기는 신랑이 사랑하는 신부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 여 자기를 버리는 것을 보는 질투심 곧 시새움을 말합니다. 따라서 신부를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투기하는 불길도 크게 타오 를 것입니다. 보통 세상 사람의 생각으로는 자기가 사랑하는 신부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자기를 버리고 그 사람을 따라가서 잘못 되어 고생하고 형편이 처참하게 되었다면 그것을 보는 전 신랑은 네가 나를 버리고 가서 잘 될 줄 알았었느냐 하면 서 더 처참하게 되기를 바라게 될 것입니다.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라고 말씀하시는 신랑 예수께서는 첫째 부활의 영광 까지 주신 사랑을 버리고 다시 세상을 사랑하여 (눅4:5) 천하 영광을 보여 주는 마귀를 따라가는 간음하는 여자가 되었을지라도 그가 걸어가는 그 길은 음부의 불 꽃 가운데로 가는 발걸음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바라만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잔혹하다 곧 누가 보아도 잔인하고 혹독하다고 할만큼 때려서라도 기어 코 돌이켜 주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단7:25) 한때 두 때 반 때를 말씀했습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신부 들에게 세상의 미련을 끊어주시기 위해서 첫 삼년반 환난을 예비해 두신 주님께서 일년이 지나서 순교할 기회를 주실 때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세상의 미련이 남아서 나 예수 몰라요 부인하는 그들을 위해서 2년 동안 갑절의 환난으로 세상의 미련을 끊어주시고 다시 순교할 기회를 주셨을 때에 또 다시 나 예수 몰라요 부인하는 자 가 있을지라도 마지막 반년 동안 더욱 지독하리 만큼 큰 환난으로 인하여 기어코 신부 중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순교하게 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막차 타려고 기다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마치 무엇과 같은가 농부가 밭에 콩을 심어 가꾸어서 거두어 들여 타작 마당에 널어 놓고 도리깨로 칠 때에 처음에는 크게 때리지 아니합니다. 콩알이 멀리 달아나지 않도록 적당히 치고 나서 보니까 떨어지지 않은 것이 있습 니다. 이제는 뒤집어 놓고 갑절이나 크게 때리고 그 때리는 시간도 길어집니다. 다시 살펴보니까 아직도 남아 있는 콩꼬투리가 보입니다. 그래서 다시 뒤쳐 놓고 나서는 콩 집이 부셔져라 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크게 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콩 한 알이라도 남아 있게 되면 그 콩은 그 짚과 함께 불타서 버리게 되는 것이기 때 문입니다. 그 농부는 자기가 농사 지은 콩 한 알을 불타게 하지 아니하려고 세 번씩이나 콩 집이 다 부서지도록 도리깨로 있는 힘을 다해서 치고 있거든 하물며 신랑 예수께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그 신부 한 사람인들 음부로 끌려가게 내 버려 두실 수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잔혹하게 치셔서라도 돌이켜 주고 계시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여기서 주의해 볼 것은 환난의 때에 맞는 신부의 자리에 서는 자의 영광과 그 들을 때리게 하는 자들의 멸망을 구별해 보게 하십니다. (살후1: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십니다. 이 말씀을 미리 들어 두어야 환난의 날에 깨닫고 찬송하는 자리에 설 수가 있고 그렇지 못하면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했고, (요 18: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또 (마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말씀하셨는데 겨울에 추워하는 자들은 환난까지 예비해 두신 하나님의 사 랑을 깨닫지 못하고 악한 자의 권세를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리라 첫째 부활의 영광을 버리고 주를 부인하는 그 들을 보시는 신랑 예수님의 심령에 긍휼이 불붙고 있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호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말씀하시는 긍휼의 불 같이 타 올라서 주를 부인하는 신부를 결단코 버리지 못하십니다. 따라서 신랑 예수의 긍휼의 불길이 크게 일어날수록 악한 자를 일으켜 때리게 하 시는 고통은 더 크게 하실 것입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그 신랑 예수를 부인하는 그 신부일지라도 때리고 또 때리고 또 때려서 기어코 돌이켜 주심으로 보여 주신 그 첫째 부활의 영광으로 입혀 주시는 주님의 긍휼이 불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환난이 일어나기 전에 왜 미리 말씀하십니까? 이 말씀을 들어 둬야 그때 가서 네가 깨달을 수 있지 않겠느냐, (눅22:34)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 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주님께서 베드로야 지명하시고 내가 네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듣게 하셨고, (눅22:61-6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 니라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지명하여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자기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주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닭의 울음 소리를 들을 때에 자기에게 하신 주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던 제자들은 듣기는 들으면서도 자기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닭의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하시는 신랑 예수의 말씀을 내게 하시는 신랑 예수의 말씀으로 들을 때에 첫 삼년반 환난의 때에 이루시는 역사를 밝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주의해 볼 것은 그 기세라고 하셨는데 첫 삼년반 환난의 때에 신부가 된 내 가 비록 신랑 예수를 부인하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돌이켜 주시고자 하시는 긍휼의 불길의 기세가 강하게 일어나고 악한 자들의 너를 치는 그 기세가 함께 강하게 일 어나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까지 보여 주시고 그 자리까지 이끌어 주시는 신랑 예수께서는 그 첫째 부활의 영광을 버리고 주를 부인하는 그 신부 한 사람을 보실 때에 그 심 령에서 긍휼의 불길이 맹렬할 것이고 그 첫째 부활의 영광을 불태우는 음부에 빠지 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악한 자들을 들어 잔혹하리 만큼 때리게 하시는 그 사랑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7절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 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찌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리니' 이 사랑은 어느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까? 태초의 말씀으로 아들의 영들을 지으실 때에 미리 아신 자로 택하셨고 아담과 함께 무화과나무 아래서 가죽옷으로 지어 입혀 주셨고 십자가의 피로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죽어라고 믿지 아니하는 나를 기어코 복음으 로 불러 믿게 하셨고 그 중에서도 택함을 입어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영광된 열매 를 맺게 하셨고 마침내 신랑 예수로 오셔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시고 그 영 광에 합당한 길로 인도하시는 그 신랑 예수 마저 부인하는 나를 잔혹하게 때려서 돌이켜 주시는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불들은 아 무리 큰 불이라도 많은 물로 꺼질 수가 있지요 그러나 이 사랑은 제아무리 많은 물 로도 능히 꺼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물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창13:10)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 라보니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였고, (나2:8)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말씀하여 세상의 부귀와 영광이 풍성한 곳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한다고 하시는 것은 세상의 부귀 와 영광으로 유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민22:37) 이 사랑의 불길을 보지 못하는 발람은 모압왕 발락이 특별히 두 번이 나 높은 귀족들을 보내서 부를 때에 따라가고 있는 사실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창13:7) 그런데 특별히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롯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하 여 소돔으로 따라갔던 많은 목자들과 양 무리들이 하나도 구원받지 못하고 유황불 에 멸망당하고 있는 사실인 것입니다. 신랑 예수의 이 사랑이 내 가슴에 불붙는 신부의 믿음에 서 있다면 불타 버릴 세 상의 부귀와 영광으로는 유혹할 수가 없는 것을 밝히 나타내십니다.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리니' (창7:23) 노아의 때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 셨을 때에 모든 사람이 땅에서 쓸어버림을 받았으나 노아와 그 가족 여덟 명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벧후2:5) 그 당시에는 홍수로 인하여 육신이 죽었지만은 오늘에는 세상의 부귀 와 영광을 기뻐하는 그들을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 곧 첫 삼년반 환난의 때가 눈앞에 있는 오늘 온 세계가 과학 문명과 물질문명으로 인하여 세상에 치우치게 하고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까지 그 부귀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감투싸움까지 벌이고 있는 현실입니다. (벧전1:24) 풀의 꽃과 같은 세상 영광을 자랑하는 그들의 권세가 결단코 첫째 부활의 영광을 엄몰 하지 못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엄몰이라는 낱말의 뜻은 물의 세력이 배를 덮어서 침몰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 니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자랑하는 그들의 권세가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그 신부 한 사람을 능히 사로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계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라 고 하신 말씀은 용이 그 입을 벌려 토한 강물은 세상 영광이고, 교회 안에서 세상 영광을 사모하는 자들이 보는 높은 지위를 말하고 따라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는 그 신부들도 마음으로는 은근히 사모할지라도 땅에 속한 자들이 앞다투어 그 감투 는 다 잡아 쓰게 하여 지극히 작은 자리 하나도 차지하지 못하게 지켜 주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현실에서 교회 안에서까지 높고 권세 있는 감투를 몰아 쓰고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누리고 자랑하는 그들을 노아의 때에 홍수에 엄몰 당하여 죽어 가는 자들과 같이 보는 눈을 가진 그 신부가 복된 것입니다.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온 가산은 사람이 일평생 동안 모아 놓은 재산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일평생 동안 충성된 신앙 생활로 이루어 놓은 상급과 영광을 말 씀하십니다. 그러니까 70 또는 80을 살면서 제아무리 충성하는 신앙 생활로 이루어 놓은 상 급과 영광이 크다고 해서 (계20:6) 첫째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여 천년 왕국에서 신령한 몸을 입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하며 제사장 노릇 하는 그 영광에는 족히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70년을 산다고 해도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를 맺는 날 수도 얼마 되지 못하고 또 몸 안에 원죄가 있어서 그 영광을 불태우는 둘째 사망까지 역 사하고 있습니다.(계20:15) 그러나 원죄도 없는 신령한 몸을 입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하고 제사장 노 릇하는 천년 동안에 이루어지는 그 영광은 아무도 측량할 수가 없으니 그것과 바꾸 려 하는 자가 있으면 오히려 멸시를 당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 곧 첫째 부활의 영광으로 이끌어 주시는 이 사랑 내가 그 주님 을 부인할지라도 잔혹하리 만큼 때려서라도 돌이켜 주시는 이 사랑 세상의 부귀와 영광으로도 유혹할 수 없는 천년 왕국의 영광이요 일평생 충성하는 그 신앙 생활로 이루는 하늘의 영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년 왕국에서 왕노릇 하고 제사장 노릇하 게 하는 영광으로 찬송케 하시는 이 사랑이 충만케 하여 이김을 주시는 신랑 예수 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할 것입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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