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룻기

[스크랩] 룻기서 2장 강해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1:59

룻기서 2장 강해


      
    

    [ 서 론 ]

    모압 여자로 태어나서 모압에서 자랐으나 말론의 아내로 시집와서 나오미의 교훈 을 받고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생명으로 살리심 받은 룻입니다.
    
      그러므로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재산도 다 없어졌으나 나오미가 항상 마음
    속으로 바라고 간구하던 그 기업의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살아 계신 나오미의 하나님을 보고 따라 온 룻입니다.
    
      (히11:8)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는 아브라함은 여
    호와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을 듣고 떠났고 룻은 나오미로 인하여 그 믿음으로 자라
    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 
    옳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떠났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믿는 
    아브라함 속에 그 말씀이 역사 해서 떠나게 하셨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네 본토를 떠나라 네 본토는 네가 세상에서  난 본향이지요 본토
    를 떠날 때에 하늘나라 본향을 보게 하시고,
    
      친척이라 친척은 어느 때 필요하나요 먹을 때는 남이고 어려울 때는 친척이라 하
    지요 어려운 일 당할 때에는 친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네가 어려움 당할 때에 도와주는 친척을 떠나면 성령께서 너에게 함께 하
    실 것이니라,
    
      아비 집을 떠나라 아비의 집에 있으면은 무엇을 얻습니까? 세상에  속한 것을 기
    업으로 받을 수 있지만 세상에 불타 버릴 세상 기업 받을 아비 집에서 떠나면 영원
    한 영광을 입혀 주시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너의 아버지가 되느니라,
    
      그것을 보여 주니까 떠났지 그것 안 보여 주셨는데 어떻게  떠난단 말입니까? 아
    브라함이 떠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떠나게 해 주셨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늘 살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창22:2) 하나님께서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그 아들은 언약의 
    아들입니다. 그 아래 내려가다 보면은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고 하셨
    는데 잠자다가 일어났을까요 아닙니다 엎드렸단 말입니다.  
    하나님 내 아들은 언약의 아들이 아닙니까? 이 아들을 재로 만들어 놓으면 하늘의 별과 같이 너의 후손을 
    많게 하리라 이 언약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때에 아브라함에게 오늘  너는 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려 재로 만들지라도 나는 능히 내 아들로 다시 살려 내 아들
    을 온 땅에 충만하게 하리라,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온 땅에  충만케 하시리라 그것을 보여 주셨습
    니다. 그 믿음이 일어나게 하시고 그 믿음으로  이끌고 가니까 아브라함의 그 믿음
    을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이지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고 해서 그것을 받으신 것이 아
    닙니다.
    
      갈 때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같이  갔지요 아브라함 내 아버지여  내 아들 이삭아 
    그 부자끼리 같이 갔는데 본인들이 돌아 올 때는 둘이  같이 왔나요 아브라함 혼자 
    왔나요 아브라함 혼자 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삭은 안 보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열매 맺는 생명으로 살려 주신   그 하나님하고 아브라함은 같
    이 오고 이삭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하나님 아버지에게 맡겼습니다. 오늘도 그 자
    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보여 주시는 보아스는 오늘 우리들에게 신랑 예수를 나타내 주십니다. 그
    러니까 보아스라 하면은 신랑 예수를 우리가 보아야 되고, 엘리멜렉의 친족이라 말
    씀했는데 엘리멜렉은 보아스의 친족이 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친족이 되면은 엘리멜렉은 보아스의 친족이 되고 있지요 내
    가 어느 사람 한데 사촌이 되면 그도 내게 사촌이 되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십 사만 사천의  믿음에 올라간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모압 땅으로 
    내려 갈 때에는 나오미가 하나님의 아들로 내려가고 모압 땅에서  올라 올 때는 십 
    사만 사천의 믿음을 가진 신부로 올라 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아스에게 속한 밭이 있는데 보아스의 보리밭이라고 하지 않고 보아스에게 속한 
    보리밭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첫째 부활의 영광을 증거 하는 교회가  보아스에게 속한 보리밭이고 여기에 베는 
    자들은 보리를 베는 자들인데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하여서 세상의 미련을 끊어주시
    는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 하는 것이 보리를 베는 자들입니다.
    
      보리를 베면 보리를 땅에서 끊어 놓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세상에 미련을 끊어
    주시기 위해서 첫 삼년반 환난까지 주셨느니라 순교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
    를 증거하는 것이 보리를 베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이 있지요 베는  자들이라 하는 것 보니까 베
    는 자들은 여러 사람이고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영광의 영
    입니다.
    
      영광의 영으로 베는 자들 속에 역사 하여 그  일을 이루게 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소녀라 하신 말씀이 있는데 왜 나의 소녀라 말씀합니까? 첫째 부활
    의 영광을 증거 하는 말씀은 들으니까 첫째 부활의 소망은 바라보고 있으나 그대로 
    이루시는 기쁨은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혼녀와 같아서 신랑과 함께 하는 
    기쁨은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물을  길어 오고  소년들이  길어 온  물을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롬
    8:18) 소년들이 길어 온 물은 환난 가운데서 주시는 위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해서 순교하게 하시고  첫째 부활의 영광까지 더하게 하시는 
    것을 보는 소년들입니다.
    
      당신의 시녀가 있는데 시녀와 아내와 무엇이 다릅니까?  야곱에게 라헬과 레아가 
    있고 그녀들에게 시녀들이 있었지요 아내나 시녀나 야곱을  섬기는 것은 같은데 잠
    자리하는 데는 다릅니다.
    
      시녀들은 잠자리를 같이 못하니까  신랑 예수께서 나를  순교의 자리에서 찬송케 
    하시는 기쁨은 보지 못하고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입니다.
    
      단 사이에서 줍는 이삭은 무엇이고  이삭을 줍는 자는 누구입니까?  이삭은 베기 
    전에 떨어져 있고, 왜 떨어졌느냐 이 이삭을  줍는데 쭉정이 이삭을 주울까요 알곡 
    된 이삭을 주울까요 알곡이니까 줍지 쭉정이이면은 주울  까닭이 없지요 알곡은 되
    어 있습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은 보고  있는데 그만 떨어졌습니다.  왜 떨어졌습니까? 환난을 
    통해서 순교하게 하시는 그 신랑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환난에 지고 있는 것입
    니다.
    
      우리들에게 환난을 더하게 하시는  것은 세상의 미련을  끊어주시는 사랑인 것을 
    모르면 도리어 악한 자의 권세가 두려워지니까 먼저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삭을 줍는 자는 아직도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를 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순교하게 하기 위해서 첫 삼년반 환난까지 두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합니다.
    
      단이 있는데 단은 이미 낫으로 다 베어서 묶어  놓았지요 이젠 타작 마당으로 옮
    겨가지요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해서 순교하게 하실 그날을 바라보는 것이 단에 묶이
    운 자들입니다.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베는  자들은 줌에 쥐고 있는데  이삭만 줍는 룻에게 
    뽑아 주어서 지금까지 떨어진 이삭들 주운 것과 조금식 뽑아 준 이삭이 다 같이 첫
    째 부활에 참예 하게 하실 것을 보이셨습니다.
    
      떨어진 이삭도 버리지 않고 함께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해서  순교하게 하시는 그 
    신랑 예수를 룻에게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1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
    라"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베들레헴 에브랏에서 흉년  들 때에 깨닫지 못하고 모
    압으로 내려가서 죽은 자요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  보아스가 있다 말씀했으니 보아
    스의 친족인 엘리멜렉인 것을 보게 하십니다.
    
      따라서 나오미는 엘리멜렉의 집에 시집을 왔기 때문에 보아스의 친족이 되었습니
    다. (창43:7) 친족과 친척의 관계는 친척은 일가  친척 곧 같은 혈족 관계를 말하
    고 친족은 그 중에서도 촌수가 가까운 가족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면 보아스를 신랑 예수로 볼 때에 엘리멜렉도 첫째 부활의 영광을 증거 하는 
    영광의 복음은 받고 있었다는 사실도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베들레헴 길 에브랏까지  올라갔지요 그러나 그들의  열매 없는 생활을 
    돌이켜 주시기 위해서 흉년을 주셨을 때에 깨닫지 못하고 모압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흉년까지 주셨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모압으로 내려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민22:37) 선지자 발람의 마음속에 모압의 영광이 있으니까 모압왕 발락으로 유
    혹하게 하였던 것처럼 영광의 복음을 받으면서도 마음 어느 한 구석에 세상을 보는 
    마음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모압으로 내려가는 자가 되고 있느니라,
    
      마음속에 혹시나 모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언젠가는 고개를 들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흉년을 주실  때에 이것이 머리를 들고 
    나를 모압으로 끌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수24:15) 여호수아는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하는 이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공기가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어딘가 조금 빈자리가 
    있으니까 들어옵니다.
    
      유력한 자라고 한 것은 그들의 기업을 도로 물러 주고 또 다시 가장 큰 영광으로 
    돌이켜 줄 능력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벧후3:8) 또 보아스는 모압에서 속히  돌아오게 하시는 역사를 계속 하면서  하
    루가 천년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보아야 합니다.
    
      그 숫자만 보지 말고 이방에 나가서 사는 천년이  빛 가운데서 사는 하루만 못하
    지요 그것을 우리들에게 간접적으로 보여 주십니다.
      2절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하소서"
    
      그냥 룻이 그래도 되는데 왜 모압 여인 룻이라고  밝힐까요 모압 여인 룻은 그가 
    비록 모압 땅에서 살았으나 영원한 생명 안에 살고 있는  나오미로 인하여 그 생명
    이 살리심 받은 것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를 낳아 준 생모보다도 내게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 생명으
    로 살려 주신 이는 주님이시지만 누구로 인하여 주님께서 그를 살려 주셨습니까?
    
      나오미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통해서 살려 주셨습니다. 그것을 보는 룻이 지금 
    자기 생명의 어머니인 나오미에게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나오미와 룻과의 관계를 바로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압 땅에 자
    기를 낳아 준 어머니 보다도 자기의 그 생명을 살려 주신 그 어머니를 섬기고 있느
    니라 자기 남편의 어머니인 시어머니로만 보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남편은 죽었
    지만은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시는 그  생명을 나오미를 통해서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셔서 나를 살려  주셨으니까 그 어머니를 사랑하고  지극히 섬기느니라 
    그것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왕하3:11) 마치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엘리사가 있지요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는 것은 엘리야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 다 버리고 떠났을 때에 엘리
    야의 불타는 심령을 보면서 끝까지 혼자 남아서 불타는 엘리야의 심령에 위로를 주
    는 엘리사입니다.
    
      똑 같은 며느리로 똑 같은 사랑을 받았는데 오르바는 모압으로 갔고 룻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따라오게 되었느냐 또 같은 시어머니로  섬기던 두 며느리인데 하나
    는 모압으로 돌아갔고 하나는 베들레헴으로 왔으니까 룻이 똑똑하고 지혜가 있어서 
    깨닫고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오미로 말씀하시고 나오미의 입으로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있는 룻에게 그 생명을 살려 주신 것입니
    까?
    
      똑 같은 말씀으로 같은 시어머니에게서 들은  두 며느리인데 하나는 모압으로 가
    게 되었고 하나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아직도 육의 세계가 남아 있으니까 내 시어머니의 말로 들었고 하나는 영
    에 속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그 어머니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된 것입니다.
    
      (요8: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
    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친히 오셔서 삼년  사개월 동안 전도하셨는데 그 당
    시에 유대인 가운데서 믿은 사람이 몇이나 있었나요 병도 고쳐 주시고 귀신도 쫓아
    내 주시고 죽은 사람까지 살려 주시는 것을 보면서도 십자가  앞에 몇 명이나 나왔
    습니까?
    
      예수를 죽이라고 소리지를 때는 얼마나 나왔습니까? 그러면  예수께서 설교를 잘 
    못해서 그랬나요 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를 않았습니까?
    
      요셉의 아들 예수의 말로 들으니까 믿을 까닭이 없지요 똑 같은 말씀이지만 마음
    의 자세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 번 말씀 드리는데 교역자의 아내와 그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 받
    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요 사모님은 앉아서 우리 남편의 말로 듣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남편 설교 잘
    한다 남편의 설교 채점들하고 앉았고 자녀들은 우리 아버지 오늘 설교 잘한다 아버
    지의 말로 듣고 있으니까 깨닫기 어려우니라 특별히 들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로 밭에 나가게 하소서 하는 것은 그들이 비록  농사 지은 것이 없을지라도 이 
    기업의 땅으로 인도하신 주께서 양식을 주실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마6:32) 너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육신을 위하여 구하지 말라 말씀하
    시고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시고 그 끝에 이 모든 것이 너희
    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말씀했지요,
    
      내 속 생명이 살았다면 그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서는 육신도 먹고 입어야지요 
    그러니까 그것을 다 미리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룻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속 생명을 살려 주셨으니까 그가 내 육신의 먹을 
    것도 주시고 그 생명을 위해서 다 예비 해 놓으신 것을 믿고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
    다.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내게 은혜 입혀 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게서 내게 은혜 입혀 주
    실 사람도 예비해 두셨을 것을 믿고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삭을 줍겠다고 말합니까? (레19:9)에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는 말씀하셨지요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고 남겨 두신 것도 믿고 있습니다.
    
      나는 농사는 안 지었으니까 낫 들고 나갈 수는  없고 농사 지은 사람들이 이삭을 
    남겨 놓았으면 그 이삭을 주우러 나가겠습니다 말하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찌어다"
    
      남편과 두 아들과 재산까지 다  없이 하게 하시고 다시  기업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기쁨을 가지고 있는 나오미라는  것을 우리가 늘 보
    아야지요,
    
      (합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
    다.
    
      이제부터 주께서는 십 사만 사천의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신 나오미로 말씀해 주
    시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 땅을 내려 갈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내
    려갔고 올라 올 때에는 십 사만 사천의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신 것을 여기서 구별
    해서 보아야 이 말씀이 깨달아 지기가 쉽습니다.
    
      바벨론 땅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위하여  다니엘을 함께 보내신 것과 같은 
    역사입니다.
    
      (룻1:12) 오르바와 함께 있을 때는 내 딸들아 돌아가라고 하였고 여기서도 룻을 
    보고 내 딸아 말씀하는데 그러면 똑 같은 딸이라고 말씀합니까?
    
      모압 땅에서 두 며느리에게 내 딸들아 할 때에는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했고 여기 
    말씀하실 때에는 나로 인하여 네 생명을 살려 주신 것을  보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
    래서 그 생명을 보고 내 딸아 부르고 있습니다.
    
      (딤전1:2)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를 부를 때에  참 아들이라고 불렀지요  그러면 
    여기서 나오미가 룻에게 내 딸아 하는 것은 참 딸을 말한 것입니다.
    
      갈찌어다 왜 갈찌어다 하고 허락합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에게 좋은 길도 인
    도하실 것을 믿고서 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또 여호와께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갈찌어다 하는 것은 네 마음대로 가라는 말씀입니까?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를 좋
    은 길로 인도하시리니 갈찌어다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룻을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
    하실 것을 믿으니까 갈찌어다 허락하고 있습니다. 
      3절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
    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이 이 밭 저 밭 돌아다니다가 베는 자를 따라서 이삭을 줍다가 또 그의 발걸음
    이 우연히 보아스의 속한 보리밭에 이르렀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룻이 보아스에게 
    속한 밭을 찾아서 간 것입니까?
    
      뜻하지 않게 룻은 보아스의 밭인지도 모르고 보아스의 밭을 찾아 간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보아스의 밭으로 룻을 인도하여 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아스의 밭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보아스에게  속한 밭이라고 하셨으니 보아스
    의 속한 밭이니까 신랑 예수에게  속하여 첫째 부활의 영광을  증거 하는 교회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진리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마침내  영광의 영으로 이 자리까지 인도하
    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으로 오실 때에는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마침내는 보아스의 밭과 
    같은 첫째 부활의 영광을 증거 하는 자리까지 이끌어 주시느니라,
    
      (계19:9) 이것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의 복이 되고 있는 것입
    니다. (마22:14) 어떠한 임금이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풀었는데 거기에도 
    청함을 받은 자는 많고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말씀했지요,
    
      그러면 아들의 혼인 잔치 자리에서 택함을 입은 자라야  이제 어린 양의 혼인 잔
    치 자리까지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그 자리에 아무리 많아도 깨닫지도 못하고 인도하심을 받지 못
    하게 될 것을 또 보아야 됩니다.
      4절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신랑 예수 되는 보아스가 베들레헴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부터 왔다고 말씀하지요 그러면 보아스는 신랑 예수이지만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베
    들레헴에 오실 때에는 아기 예수로 오셨고,
    
      내게 아기 예수는 구주 예수님이지요 나를 구원해 주신 구주 예수는 아기 예수이
    고, 조금 자라나면은 하늘나라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그 열매를 맺게 하시는 영광
    의 주가 되고, 이제는 마침내 신랑 예수로  오신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베들레헴
    에서부터 왔다고 합니다. 그 순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베는 자들에게 베는 자들은 밭에서 난 그 곡식을  낫으로 베니까 이제는 세상 줄
    을 끊어주시는 것이 됩니다.
    
      세상을 완전히 끊어주시는 것이 보리를 베는 자의 추숫군들 입니다. 완전히 끊어
    지지 않고 세상에 속한 미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미련으로 인해서 베드로
    와 같이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자 되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보증 못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끊어져야 됩니다. 낫으로 벨 때에 한 뿌리라도 남겨 놓지 않습니다. 베는 
    자들은 먼저 자신들이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믿음의 준비가 다 되었으니까 
    그 말씀을 증거 하는 베는 자가 되어 있지요,
    
      (요14:30)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가 나와는  관계할 것이 없느니라 
    말씀했지요 세상 임금은 누굴 말씀합니까? 
    
      세상에 속한 자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자입니다. 누굴까요 마귀이지요 그런
    데 예수님 하고 관계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속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도 없
    는데 세상에 속한 그 임금이 예수님과 관계할  것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 들어 갈려면은 있어도 없는 것으로 여겨야 됩니다.
    
      특별히 우리가 마음에 간직할 것은  (마24:17) 그 때에 지붕  위에 있는 자들은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이 말씀을 늘 간직해 두시기 바랍니다.
    
      왜 지붕 위에 있느냐 하늘나라의  창고에 쌓기 위해서 지붕  위에 올라가 있습니
    다. 우리가 높은 선반에다가 물건을 올려놓으려면은 올려놓을 물건을 들고 의자 위
    에 올라가서 올려놓지요 이것이 지붕인데 그 전에  얼른얼른 다 올려놓아야지 집안
    에 물질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요것 마저  올려놓겠다고 내려가지 말라는 말씀
    입니다.
    
      첫 삼년반 환난이 시작 될 때까지 남아 있는 것은  다 세상에 속해 있는 악한 사
    람들에게 주는 것입니다.(계19:17-18)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면은 나를 순교자의 자리까지 이끌어 주는 그들의 품삯으
    로 줄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들 이해하고  들어주세요 그러나 그들에게 
    품값을 주기 위해서 남겨 놓을 수는 없지요 
    
      (마24:4)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뇨 묻고 있는데 충성되다 왜  여기서 충성된 종을 찾을
    까요 충성되지 못하면은 그 말씀을 증거 하다가 이단 삼단  핍박을 당할 때에 계속
    해서 말씀을 증거 못하지요,
    
      (계2:13) 사단의 위가 있는데서 당당히 이 말씀을  증거 하는 자가 충성된 종입
    니다. 내가 이런 말을 했다가 이단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마음 가지고 있으
    면 충성된 종이 되지 못합니다.
    
      지혜 있는 종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느냐 (단12:3) 말씀에 지혜 있는 자
    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를 말씀했지요,  그러면  잘못된 대로 
    가는 자들이 많이 있으니까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했다 말씀했지요,
    
      휴거설을 따라 가는 자들은 잘못된  데로 이끌려 가는 자요  그들에게 이 말씀을 
    증거 해서 많은 사람을 돌이켜  순교자에게 주시는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고 
    이끌어 주는 역사가 지혜 있는 종들이니라,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준다 우리는 아침도 먹고 점
    심도 먹고 저녁을 먹어야지요 그게 때를 따라 먹는 것인데  아침에 안 먹은 사람도 
    점심때 밥을 먹습니다. 오늘 처음  먹는 거예요 그런데 아침  먹은 사람은 두 번째 
    먹으니까 점심 먹는데 오늘 처음  먹는 사람은 때는 점심때인데  먹기는 조반 먹고 
    있습니다.
    
      점심도 못 먹은 사람은 저녁에도 조반을 먹게 되지요  첫 번째 먹으니까 왜 그러
    느냐 구원의 복음은 조반이고 은혜의 복음은 점심이고 첫째 부활의 영광을 증거 하
    는 영광의 복음은 저녁인데 이것을 때를 따라 나누어 줄줄  모르고 남은 저녁 먹고 
    있는데 조반 들고 돌아다니는 자들도 있습니다.
    
      (요21:15) 조반, (마22:4) 오찬, (요13:4) 저녁, (눅11:15) 떡 세 덩이, 오늘
    도 아침 밥 들고 돌아다니고 도시락 들고 다니는 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내가 저녁
    을 먹고 있다면 다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면 보아스는 신랑 예수인데 신랑 예수 되는 보아스가 지금 밭에서 일하는 사
    람들에게 말씀하시지요,
    
      (고후11:2) 여기서 말씀하시는 너희는 먼저 순교자의 믿음을 받았고 이제부터는 
    자기들로 증거 하게 하시는 그 말씀으로 인하여 신부로 중매하는 자들입니다.
    
      (계3:4) 사데 교회에서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으로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한 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베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을 
    하기에 합당한 자라는 말씀입니까?
    
      예수께서 나와 함께 다니기에 합당하다 그  말씀이지요 그러면 예수께서 베는 자
    와 함께 다닙니까? 베는 자가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것입니까? 예수께서 나와 함
    께 다니리라 그러면 왜 예수께서 혼자 다니시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데리고 다니니
    까 나와 함께 다니리라 하신 말씀인데,
    
      예수님 혼자서 그 생명을 살려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그 말씀을  증거 하는 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그들을 살려  주시는 겁니
    까?
    
      그러니까 그 말씀을 증거 하는  자가 있어야 됩니다. 그  말씀을 증거 하는 자를 
    데리고 다니신다는 말씀입니다.
    
      언제나 주께서 나를 데리시고 함께 다니시는 자의 자리에 서서 말씀을 증거 하는 
    자 되어야 하고 나 혼자 다니면은 안 되지요,
    
      베는 자들은 언제나 보아스가 데리고 다니는 자들이고 그 말씀을 증거 하게 하신 
    자들이라는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신2:30)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함께 하시기를 원하는  것은 살리시는 여호와가 
    되시고 그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멸하시는 여호와인 것도 보아야 합니다.
    
      (아7:4)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못 같고 하신 말씀을  명심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증거 할 때에 이단 삼단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기 위
    해서 대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어나서 나를 대적하는 것으로 보면 무서워하게 되지요 그런데 헤스본을 
    멸하게 하기 위해서 대적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이 말씀을  증거 할 때에 이단이니 
    삼단이니 대적하는 자들이 있거든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시기 위해서 너를 대적하게 
    하시는 것을 보는 자가 되라,
    
      (신2:30) 그를 네 손에 붙이려고 완강하고 강퍅케 하십니다. (시3:6)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다윗은 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은 다른 사람이 나를 이단  삼단 하면은 나는 어떻게 할
    꼬 두려워해서 이 말씀을 증거 하지 못합니다.
    
      (왕상22:14) 미가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행24:5) 바울은 이단의 괴수
    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기를 원하나이다"
    
      그들은 베는 자들이지요 베는 자들이 보아스를  위해서 복을 비는 말씀으로 들리
    지요, 신랑 예수가 보아스인데 베는 자들이 보아스를  위해서 복을 비는 것으로 보
    아서는 안 되고 보아스의 복을 받은 베는 자들이 보아스에게 대답하고 있으니 결단
    코 복을 비는 것은 아닙니다.
    
      보아스는 신랑 예수이고 베는 자들은 그의 종들인데 이 말씀이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요 여호와께서 우리들에게 함께  하시는 그 모든 역사로  인하여 더 많은 
    신부들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셔서 신랑 되신 예수의 큰 영광이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 이 말씀인 것입니다.
    
      먼저 우리를 베는 자로 세워서 이  말씀을 증거하게 하셨으니 그가 보아스이지요 
    그 보아스 되신 신랑 예수께서 베는 자들에게 복을 주셨으니까 보아스가 베는 자들
    에게 주신 복이 더 많은 말씀을 증거 하게 하고 그 말씀으로 인하여 보아스는 하나
    님의 자녀들을 신부의 자리로 이끌어 주시는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많은 신부들로 인해서 신랑 예수의 영광이 더 커지지요 그러니까 지
    금 우리들에게 복을 주신 보아스로 인하여 우리들에게  역사 하시는 영광의 복음으
    로 많은 신부가 이루어짐으로써 신랑 예수의 영광이 더 커지기를 원하는 말씀인 것
    입니다.
    
      베는 자들이 신랑 예수인 보아스를 위해서  복을 줄 수는 결단코 없는 것입니다. 
    (히7:7)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위해서 축복 할  수 있지만은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위해서 복을 빌 수는 없지요 하물며  신랑 예수를 위해서 복을 빌  수는 없지요 잘 
    구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은 결코 자기들이 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자기들의 
    영광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베는 자로 택하신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함께 하시는 역
    사로 인하여 영광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고 있
    습니다.
    
      내가 이 말씀을 증거 해서 첫째 부활의 영광으로  자라나게 하는 역사를 이룰 때
    에 신랑 예수의 신부가 되지요 그러면 내가 말씀을 잘 증거 해서 예수의 신부 하나
    를 더 만들어 드렸으니까 내 영광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습니까? 
    
      나로 이 말씀을 증거 하게 하신 이가 신랑 예수이니 이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은 
    또 역시 신랑 예수님이지요 그러니까 그의 영광이  크게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것을 
    말씀하시지 내가 주를 위해서 영광을 더하게 할 수는 결단코 없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게 역사 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주님의 영광이 더 커지기를 원하나이
    다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5절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
    
      베는 자들이라는 것을 보니까  여러 사람들이지요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 사환은 누가 보낸 사환일까요 그러면 신랑 예수께서 베는 자들에게 보내
    신 사환인데 영광의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7:55) 영광의 영을  받으려면은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하고 은혜와 권능으로 
    충만하고 지혜와 성령으로 충만하고 마지막에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에 성령이 충
    만한 것이 영광의 영입니다.
    
      (벧전4:14)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임하심이라  일곱 단계의 성
    령 충만함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은 베는 자들에게 보내셔서 그 속에 역사하여 자기의 뜻
    을 이루게 하시는 영광의 영을 말씀하십니다.
    
      사환은 주인으로부터 받아 주인의 뜻을 이루고 있으니 베는 자를 거느린 그 사환
    은 그들 속에서 보내신 자의 뜻을 이루도록 주관하고 있습니다.
    
      베는 자들이 열심으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영광의 영이 그들을 주관하
    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성령 주시옵소서 무슨 은사를 주시옵소서 구하는데 은사는 구하는 대로 
    주신다 하셨나요 그의 영광을 이루기 위하여 그의 뜻대로 주신다고 하셨나요,(고전
    12:11)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 사업을 위해서  그 뜻대로 주시는 것이 은사이
    지 우리가 무엇을 주시옵소서 구한다고 그대로 주시는 은사는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무슨 은사를 주시옵소서 그 은사를 지목해서 구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순서부터 우리가 보아야 되지요,
    
      하나님께서 쓰기에 합당한 은사를 내게 주심으로써  그 은사의 역사를 통해서 하
    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는 자리에서야 됩니다.
    
      사환은 영광의 영이고 영광의 영 되는 사환에게 뉘 소녀냐고 묻고 있는데 보아스
    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오늘 알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그것을 나타내 주시기 
    위해서 지금 묻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의 인도로 이 밭에까지 인도하심 받았으며  이 밭에까지 인도하심 받는 과정
    에서 처음에는 믿음과 성령으로 은혜와 권능으로 그  다음에는 지혜와 성령으로 인
    도하시다가 마침내 영광의 영으로 이 자리까지 인도 해 주신 그 순서를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찾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비록 한번 시집을 갔다가 그 남편이 죽은  과부이지만 모든 지난날을 다 져 
    버리고 이제 새 신랑을 사모하는  소녀가 된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뉘 소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시집갔던 것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예요 한번 시집갔던 것을 알지만 과부
    라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뉘 소녀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모압에서 나서 말론에게 시집갔다가  과부가 된 그 룻이지만 과부
    라 하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속했던 모든 것은 다 끊어  버리고 이제 새 신랑 예
    수를 사모하는 소녀입니다.
      6절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
    방에서 돌아 온 모압 소녀인데"  7절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
    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그 룻에 대한 사실을 그렇게 세세히 잘 알고 있습니다.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은 영광의 영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러면 이 영광의 영이 룻을 모압에서부터  이 자리에까지 이끌어 주시는 과정을 
    같은 성령으로 인도해 왔지요 믿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셨으니
    까 그 영광의 영이 얼마나 세밀하게 잘 알고 있느냐 그것입니다.
    
      우리들을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시는 역사가 영광의 영이 직접 와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성령은 같은 성령이지만은 믿음과 성령으로 은혜와 권능으로 지혜와 성령으
    로 이제는 영광의 영으로 단계적으로 이끌어 주셨으니까 영광의 영이 룻을 룻 되게 
    하신 과정을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여기서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좌 앞에 일곱 등불과 일곱 영이 있습니다.(계4:5)
    
      사환은 보내심을 받아 보내신 자의 뜻을  이루는 것이 사환의 본분이니까 주께서 
    보내신 그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 하나 이루시고 계십니다.
    
      (요16:13) 그가 자의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말을 그에게 한다고 말씀하셨지
    요 주님께서 하신 일을 온전케 하시는 것이 성령이지 주님 따로 성령 따로 있는 것
    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주님께서 내게 함께 있을 때에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시는 것이
    지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 없이 성령께서 직접 오셔서 일할  수 없다는 것을 또 보
    아야 됩니다.
    
      또 주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이 내게 있을 때에 그  말씀에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
    시는 것이지 주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이 없는데 성령께서 자의로  말씀하시고 역사 
    할 수도 없는 것이 사환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소녀라고 하시는 말씀도 나오미에
    게 역사 하시는 그 성령으로 함께 하여 돌아오게 하신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오미에게 일곱 단계로 역사 해서 신랑  예수를 보는 자리까지 이끌어 주셨으니 
    룻에게도 그 나오미를 통해서 일곱 단계 역사로 이루셨습니다. 나오미가 있는 곳에 
    룻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아야 됩니다.
    
      베는 자는 세상에 속한 것을 온전히 끊어주는 역사요 순교자에게 허락된 첫째 부
    활의 영광을 증거 하게 하시는 종인 것을 나타내 주시며  이제 단이 여기서 나오는
    데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베는 자들이 있으니까 단이 있지요,
    
      베는 자가 세상 다 끊어 놓고 단으로 묶어 놓았는데  이 단은 어디로 갈 것을 바
    라보고 있을까요 지금 밭에서 낫으로 베어 가지고 단으로 묶어  놨지요 그럼 벨 때
    에 고통이 컸습니까? 기쁨이 컸습니까?
    
      벨 때에 세상 줄 끊어주시는 기쁨을 가져야 단에  묶어 가지고 타작 마당에 언제
    나 나를 이끌어 주시려나 기다릴 수 있습니다.
    
      타작 마당에 가면 어떻게 할까요 도리깨로 두둘겨 패지요 두둘겨 주시는 그 타작 
    마당을 사모할 수가 있지 만약에 끊어 줄 때에 그 기쁨을 가지지 못할 때에는 산에
    는 올라갔지만 굴속에 거하는 롯과 같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롯은 왜 산에는 올라갔는데 굴속에 들어가 있습니까? 굴은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어둡지요 어두움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굴속에 들어가니까 하늘나라가 안 보입니다.  롯이 산에 올라가서 뭐하고 있느냐 
    신세 한탄하고 있습니다.
    
      부인은 죽었지요 재산은 다 불탔지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나 그것을 걱정하고 있
    습니다. 그것은 굴속에 있는 자들이고,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
    를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갔지요 거기를  우리는 변화산이라고 하는데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산입니다.
    
      (마24:16)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하셨는데 어느 산으로 첫째 
    부활의 영광을 증거 하는 교회로 도망하라는 말씀입니다.
    
      빨리 달려가는 것은 내가 그 목적지를  바라보고 빨리 달려가는 것이고 도망하라
    는 것은 나를 붙잡으려고 하는 그 원수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거든 지체하면 붙잡히
    니까 빨리 도망하라 하십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을 빼앗으려는 원수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지요 그 가운
    데는 내 아내도 될 수 있고 남편도 될 수  있고 내 아이들도 될 수가 있습니다.(렘
    12:6)
    
      다윗에 속한 두 지파는 그 산을 보니까 그  산으로 도망갈 수 있지만은 다윗에게
    서 업이 없다고 도망갔던 열  지파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그  산이 보이지도 않습니
    다.(왕상12:10)
    
      단은 이제 타작 마당과 같은 첫 삼년반 환난의 날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단 사
    이에 있는 이삭들이 왜 이삭이 되었습니까? 단에 묶이우지 못하고 이삭이 되었지요 
    왜 그러느냐 아직도 환난의 때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믿기는 믿는데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본다 하면서도 환난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니까 떨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떨어지느냐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를 보지 못하면은 그 환
    난을 무서워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본다고 하면서도 베는 때가 임하기 전에 먼저 떨어지는 이삭
    이 되고 마느니라 룻이 이삭을 줍고 있는데 알곡 되어 있는 이삭을 줍지요 벨 때가 
    되기 전에 미리 떨어져 있는 그 이삭을 줍는 것이 단 사이에서 줍는 이삭이라는 것
    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는 룻은 (계11:3)에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
    는 자들도 여기서 찾아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아침부터 보아스의 밭에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말씀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냥 잠시 쉰 후에 하면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잠시 동안 쉬고 계속해서 이삭을 줍
    는다고 보게 되는데 룻은 집에서  잠시 동안 쉬었다는 것은  밤에 잤다는 말씀인데 
    왜 잤다고 하지 않고 쉬었다고 합니까?
    
      쉬는 것은 일하기 위해서 쉬지요  룻은 밤에 집에서 자기는  잤지만 아침 일찍이 
    나와서 일하기 위해서 쉬는 잠을 잤지 어제 일한 것이  피곤해서 잠잔 것이 아니라
    는 말씀입니다.
    
      내일 아침부터 나가서 내가 일해야겠는데 내가 일을 하기 위해서 쉬는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잘 때에는  쉬는 잠을 잤고 잠시  쉬었으니까 일찍 나와야지요 
    일찍 나와서는 계속해서 일하는 중이나이다.
    
      그러면 룻이 늦잠 잤다는 말입니까? 아침 일찍부터 나왔다는 말입니까? 일을  하
    기 위해서 잠시 동안 쉬었으니까 아침 일찍부터  나왔지요 일찍 나와서부터 지금까
    지 계속해서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젯 밤에 다들 잤는데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해서 잠 잔 사람도 있을 것
    이고 내일을 위해서 쉬는 자도  있었지요 우리는 언제나 내일을  위해서 쉬는 잠을 
    자야지 오늘 일과가 다 끝났으니까 잠자는 것은 잠이지요,
    
      여기서 또 찾아보고자 하는 것은 (계6:10) 아침부터는 육신으로 사는 때부터 순
    교할 때까지를 말씀했고 집에서 잠간 쉬는 때는 그 영혼이  제단 아래서 쉬는 때이
    고 지금까지 계속한다는 것은 천년 왕국을 말씀하십니다.
    
      순교자는 제단 아래서 수가 차기까지 쉬고,(계6:11)  십 사만 사천은 평안히 쉬
    고,(단12:13) 환난 전에 취하여 감을 당한 자는 자기 침상에서 편히  쉬고 있습니
    다.(사57:2) 기업의 땅에 오게 하신 하나님 앞에 넘치는 기쁨이 그로 잠들지 못하
    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말씀 드리는데 지금 제 나이 되신 분들 70이나 80을 넘
    어 오는 분들 얼마나 지루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까? 할 것이  없으니까 지루하
    지요 겨우 한다는 일이 경노당에  가서 화투나 치고 술이나  한잔 먹고 우두커니들 
    앉아 있는데 그러나 얼마나 지루할 것입니까? 날마다 그것만 할 수  없지요 그런데 
    제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이  마음이 늘 바쁘고 시간이  없어요 시간에 쫓긴단 
    말이지요,
    
      어떤 분이 요즘은 많이 바쁩니다 바쁜게  복입니다. 이제는 바쁜게 복인 것을 알
    았습니다. 세상일에 바쁘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일에 바쁜 자가  되어야지 이른 
    아침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중입니다.
    
      지금 그 영광의 영을 증거 하게 하시는데 그러면 룻이 열심으로 일 했습니까? 룻
    의 속에 있는 영광의 영이 룻으로 하여금 잠들지 못하게  부지런히 일하게 하고 있
    습니다.
    
      모다가 열심히 돌아가는데 모다가  열심히 돌아갑니까? 전기가  열심히 돌려주고 
    있습니까? 내 속에 있는 영광의 영이 나를 부지런히 돌아가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
    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부지런히 할 수는 없느니라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
    다.
    
      (골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만약에 우리들이 게으른 마음이 들어  올 때는 무엇을 구하여야  될까요 내가 왜 
    게으르게 되었을까요 내 속에 성령의 역사가 약해지니까 게으르지요 이제는 하나님 
    앞에 그 성령으로 충만해서 그 성령께서 나를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그러므로 (단12:4)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 하리라고 하신 것과 
    같이 룻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이삭을 줍는 것만 보지 말고,
     
      (창1:1)부터 (계21:22)까지 부지런히  왕래하는 자가  되어야 지식이  더하리라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어 두어야 눈감고 묵상할 때마다 머리에서 빙빙 돌아가지 읽
    어 두지 않으면 돌아 갈 수가 없지요,
    
      성경책은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이라도 읽어야지  내 것이 되지 읽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닙니다. 남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8절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보아스는 신랑인데 지금 모압  땅에서 영광의 영으로  인도하심 받아서 보아스의 
    밭에까지 와 있는 그 룻에게  말하지요 보아스가 내 딸아  말씀했는데 나의 신부야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왜 내 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아8:8)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라는 말씀하셨지요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라 
    하는 것 보니까 우리는 누구입니까? 신랑 예수와 신부 된 큰 누이를 말씀하고,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작고  신랑을 영접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올라가지 
    못하였으니까 작은 누이지요, 
    
      여기서 왜 룻을 내 신부야 부르지 않고 내 딸아 부르는 것은 아직도 작은 누이의 
    자리에 있으니까 그가 청혼을 받을 때에 먼저 신부가 된 우리가 신랑 된 예수와 함
    께 그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되겠느냐 이제는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를 증
    거해 주어야 되느니라 이것을 보아야 됩니다.
    
      공중 재림하실 신랑 예수 첫째  부활의 영광만 보여 주지  말고 이제는 우리들을 
    순교하게  하시는 신랑 예수를 그에게  증거 하여 주어야 되느니라  룻에게 이삭을 
    줍게 하시는 것도 그가 아직 순교자의 믿음에는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아야 됩
    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은 바라보면서도  순교할 수 있는  믿음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
    다. 내가 순교하려고 하는 베드로의 자리에 있다는 말이지요 베드로의 자리와 신부
    의 자리를 잘 구별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
    께 있으라"
    
      (계10:1-11) 보리를 베는 추숫군들은 힘센 천사의 손에 있는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 먹고 다시 예언하는 자들입니다.
    
      펴 놓인 작은 책이라 하면은 언제는 봉함 해  놓았었는데 언제 봉함 해 놓았었나
    요 (단12:4 8) 두 번 이 말씀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하라 말씀했지요 이 
    말씀은 다니엘에게 기록하라 하시면서  예언해 놓았지요 그러나 봉함  해 놓았습니
    다.
    
      닫아 놓았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이번에는 펴  놓인 작은 책이라 하나님께서 열
    어 주셔야 됩니다. 그 작은 책을 내가 보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갖다 먹으라는 말
    씀입니다. 갖다 먹으면 그 말씀은 내 안에서 역사 해서 그대로 이루시는 역사를 보
    게 될 것입니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받아 먹은 후에 이제 다시  예언하라 다시 예언하라는 말씀은 다니엘서를 
    열어 주셨으니까 다니엘서 12장을 다시 예언하는 자의 자리에서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이 말씀을  증거 하게 하시는 교회가 많
    지 못한 것을 나타내십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순교까지 하게 하시는 신랑  예수를 증거 하는 
    보아스가 보낸 그 베는 자들이 있는 그 교회에 남아  있어야지 다른 밭으로 가면은 
    어느 밭으로 간다는 말씀입니까? 휴거설을 따라 가는 자가 되고 마느니라,
    
      지금 증거 하게 하시는 이  말씀을 내게 하시는 신랑  예수의 음성으로 들었다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가서 물어 볼 필요가 없지요 사람의 말로 듣고 있습니다.
    
      그럴듯 하긴 한데 어디 다른 목사님 한데 가서 좀 물어 보자 다른 목사님도 그대
    로 증거 해 주시면 참 고맙겠는데 그것이 아니고 그건  이단이야 하게 되면은 어떻
    게 되나요 다 놓쳐 버리고 맙니다.
    
      다른 밭으로 가는 것은 믿지  않으니까 다른 밭으로 가지요  빼앗기는 자가 되고 
    마느니라 그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떠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때로는  환난과 핍박도 있을 것을 말씀하시
    는데 우리들에게 환난과 핍박이 있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한다고 해서 다른 밭으로 
    가면 무엇을 말하는 밭으로 갈까요 휴거설을 따라 가는 자가 되리라,
    
      나의 소녀들과 말씀했는데 나의 소녀들은 약혼한 처녀와 같아서 약혼한 처녀들은 
    이 다음에 만날 신랑 예수를 바라고 있지요 이 다음에 공중 혼인 잔치 자리만 바라
    보고 있습니다.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와 함께 하지 못하는 자들을 말씀해서 나의 소녀들
    이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소녀의 자리에서 올라가서 신랑 예수를 영접한 신부의 자리에 서야 나를 순
    교하게 해 주시는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송케 하시리라 그것을 우리가 잘 구별
    해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25:6)에서 기름 가진  처녀와 기름 안  가진 처녀를 말씀하실 때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하는 신랑은 공중 재림하시는 신랑 예수를 말
    씀하는 것이 아니라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를 영접하라는 말씀인 것을 분명
    히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지 못하면은  아직도 소녀의 자리에 있는 것입
    니다. 
    
      (사62:4)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헵시바는 약혼한 처녀가 결혼할 날을 바라보
    는 마음의 즐거움입니다.
    
      약혼하였으니까 내가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다  결혼할 날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은 소녀 헵시바의 자리에 있고,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쁄라는 결혼한 신부를 말
    합니다. 
    
      그럼 여기서 소녀는 헵시바의 자리에 있고  쁄라라 결혼한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
    다. 결혼한 자리는 순교하게 해  주시는 신랑 예수와 더불어  함께 하는 자가 되라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러면 보아스의 밭이 하나만 있다는 말씀입니까? 다른데
    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다른데도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그들의 베는 밭을 보라 오늘 이 밭에서 다 베면 저쪽 밭으로 보내실 것
    을 말씀하시는데 이 밭에 보리 베는 일이 끝났다 그러면 보아스의 보리밭은 보리만 
    심어 놨으니까 그것을 다 베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그건 육신의 눈으로 보
    는 것이고 보아스에 속한 보리밭이지만은 그 교인들이 백 명이면  백 명이 다 보리
    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다 익어서 벨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교인 백 명이 이 믿음에 섰다면 얼마나 큰 영광이겠습니까? 이  말씀을 백 명 교
    인 앞에 똑 같이 증거 하지만은 이 말씀을 믿는  신부의 자리까지 올라오는 교인이 
    많을까요 올라오지 못하는 소녀의 자리에 있는 자가 많을까요 그렇지 못하면 이 말
    씀도 받지 못하고 누구 한데 물어 보니까 그렇지 않다고  하던데 이 말씀은 이단이
    라고 하던데 하는 교인들이 많을까요 보리 베는 것이 끝나는  것을 잘 보아야 됩니
    다.
    
      이 말씀을 증거 하는 보리 베는 자들이 한 교회에 계속해서 오래 있지는 않을 것
    입니다. 그 밭에 보리 베는 일이 끝나면 다른 밭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를 따라 가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 동안 그 말씀을 증거 하게 하시고 받을 사람이  다 받고 나면 또 다른 밭으
    로 보내십니다. 그러면 다른 밭으로 보내심을 받는 베는 자들 그 종들도 마음 깊이 
    명심하는 바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
    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말씀했
    지요 그러면 보리가 되어서 베임을 받는 교인 수 보다 말씀을 받지 못하는 교인 수
    가 더 많습니다.
    
      그러면 쫓아낸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슬퍼하지 말고  또 다른 동네로 피하라는 말
    입니다. 주님께서 보내실 만한 보리밭이 또  있을 것입니다. 그리로 가라는 말씀입
    니다.
    
      그 곳에서도 또 말씀 증거  하는 일이 끝나면 또  쫓겨날 것입니다. 또 쫓아내면 
    또 다른 곳으로 피하라는 말입니다.
    
      거기서 있으려고 애쓰지 말고 피하면 네가 몇 밭에서 쫓겨나서 몇 밭을 돌아다니
    든지 네가 다 돌아다니기 전에 인자가 오리라 이 말씀을 잘 들 기억해 두시기 바랍
    니다.
    
      저는 늘 최 권능 목사님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데 최 권능 목사님이 일흔 몇 군
    데를 개척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 예수 믿으면 천당 안 믿으면 지옥 그것만 가지고 있습니다. 병 고치는 
    신유 은사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안수 해 병도 고치고 전도를 열심 해서 교회 하
    나가 이루어집니다.
    
      교인이 몇 십 명되면은 그 때에 평양 신학에  다니던 분들이 학비도 조달해야 되
    겠고 말씀도 전해야 되겠는데 무엇이 앞설까요 말씀 전하고자 하는 열심이 먼저 앞
    설까요 학비 조달이 앞설까요 학비 조달이 앞서지요 어디 가서 교회 하나 맡아야겠
    는데 개척할 힘은 없고 연구해 봅니다.
    
      옳지 최 권능 목사님 시골에 가서 개척해서 몇 십 명 모아 놨다고 하니까 거기나 
    가 보자 그것이 겉옷을 가지러 가는 자나요 속옷을 가지러  가는 자나요 속옷 가지
    러 오는 자예요 갈 때에 설교 말씀을 멋지게 하나 만들어 가지고 찾아갑니다.
    
      최 권능 목사님은 말씀의 은사는 없으니까  설교하기 참 힘들거든요 말씀은 전해
    야 하는데 말씀이 있어야지 그런데 나 평양 신학 3학년에 다니는  아무개 조사입니
    다 인사하니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설교하기 힘드는데 아이구 조사님  오늘 저녁에 
    말씀 좀 전해 주세요 그것 하러 왔으니까 그럼 하지요 그래 설교를 한번 잘합니다.
    
      그럼 교인들이 누구 한데 따를까요 아이구 이번 오신 조사님 설교 재미나게 잘하
    더라 그 조사님에게 쏠려 가지고 압살롬이 다윗을 쫓아내듯이 최 권능 목사님을 쫓
    아냅니다.
    
      그 최 권능 목사님 마음으로 내가 피땀 흘리면서 세우고 사랑하는 성도들인데 떠
    날 때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섭섭했을까요 그 분도 사람인데 섭섭했지요 또 괘씸
    한 생각도 들어 갔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그것뿐이니까 또 나와서 또 교회를 세우면 또 그
    렇게 해서 또 빼앗깁니다.
    
      그럼 몇 번 빼앗겼다는 말씀입니까? 일흔 몇 번 빼앗겼으니까 일흔 몇 군데 개척
    했지요 이 마음들을 늘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저 동네에서 또 너를 쫓아내거
    든 도피하라 이스라엘 동네를 다 다니기 전에  이스라엘 동네로만 보리가 있으니까 
    그 보리를 베라고 보아스가 보내지요 다 끝나기 전에 인자가  신랑 예수로 너를 영
    접하러 오리라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눅22:10)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
    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하신 말씀하셨습니다.
    
      물 한 동이를 가지고 하셨는데 빈  동이 입니까? 물이 가득한 동이를  말합니까? 
    물이 가득한 동이를 가지고 지금 길에 다니고 있지요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영광
    의 복음을 증거 하는 보리 베는 자들인데 이 말씀을  그대로 증거 하니까 교단에서
    는 이단이라고 쫓겨 났습니다.
    
      그 사람이 이 말씀을 교회에서 그대로 증거 하는데  못 듣는 교인의 수가 많으니
    까 이것을 당회장이나 사찰회에 가서 고자질합니다.
    
      시찰회나 노회에서 와 가지고 아무개 목사, 전도사 이단이라고 교회 안에서 말하
    니까 이 말씀을 못 듣는 교인들이 정말 자기 교역자가  이단인 줄을 알고 쫓아냅니
    다.
    
      교단에서 쫓아내고 교회에서 쫓겨났으니까 갈 곳이  있어야지 그러니까 물 한 동
    이를 가지고 가는 자를 너희가 만나리라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그 사람을 만나
    게 하신 그 주님께서 그를  보게 하셨지요 그가 들어가는  교회로 가라고 하셨나요 
    그 집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나요 이제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집은 예비해 놓았습니다.  그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유월절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라 객실은 나그네들이 들어가는 방이 객실이지요 하나님께로부터 보
    내심을 받아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신 나그네 생활을  하는 자라야 그 
    방을 볼 수 있으리라,
    
      그러면 그가 큰 다락방을 보인다 인천에도 다락방이라는 기도원이 있고 삼각산에
    도 다락방이 있습니다. 그러나 큰 다락방은 없습니다.
    
      이상해요 이왕이면 다락방이라고 이름을  붙일 바에야 큰  다락방이라고 붙일 것 
    같은데 무슨 다락방, 무슨 다락방 간판은 붙이면서도  큰 다락방 간판은 못 붙이게 
    만들어 놓았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큰 다락방이 어디 있느냐 순교자들과 십 사만  사천 인들이 함께 올라 갈 
    공중 혼인 잔치 자리가 큰 다락방입니다.
    
      다락방은 이층이지요 아랫 층에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어요 천년 왕국이 있다는 
    말입니다. 천년 왕국 위에 공중 혼인 잔치  자리가 큰 다락방으로 보이고, 거기 들
    어 갈 때에 이 유월절을 먹고 이 유월절을 먹을  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다
    가 가룟 유다와 같은 자들에게 이끌려 빌라도의 관청에 오리까지 가게 되고 거기서 
    골고다 언덕까지 십리를 너희를 억지로 끌어가게 해 주시리라 그 순서를 우리가 보
    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소년들은 베는 자들과 함께 하면서 환난까지 예비해 두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
    고 있는 소년들입니다. 소녀와 소년은 다릅니다.
    
      소녀는 첫째 부활의 영광만 바라보는 소녀들이고  소년은 이제 그들이 자라면 베
    는 자가 되지요 그러면 이 소년들은 환난을 왜 예비 해 두신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 소년들이 길어 온 물이  환난 때 주시는 신령한  위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소년들은 소녀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올라가서 환난을 통해서 순교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소녀와 소년의 차이를 우리가 보아야  합니다. 그 소년들을 명하여 너를 건드
    리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글자대로 본다면 소년은 남자이고 룻은 소녀이니까 이성으
    로 건드리지 말라 그런 말씀은 아니지요,
    
      지금 영의 세계에서 말씀하시니까 왜 건드리지 말라고 말씀하나요 건드리면 괴롭
    힌다는 말씀이지요 왜 괴롭히지 말라고 하셨느냐,  (롬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
    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말씀했지요 내
    가 소년의 믿음으로 먼저 자라났다고 해서 아직도 소녀로 있는 그를 왜 모르느냐고 
    괴롭히지 말고 너보다 약한 자를 붙들어 주라고 내가 명했느니라,
    
      그럼 그 때에 소년들에게만 하신 말씀입니까? 오늘  나와 여러분들에게도 명하신 
    말씀입니까? 한번 붙들어 주고 말아야 될까요 끝까지 붙들어 주는 자가  되어야 됩
    니다.
    
      떡 다섯 개로 오 천 명을 먹이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 두 바구니지요 떡 일곱 개
    를 가지고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일곱 광주리라  그러면 광주리와 바구니의 차이가 
    뭡니까? 바구니는 작고 광주리는 큽니다.
    
      그런데 떡 다섯 개 가지고 부스러기 열 두 바구니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 떡을 나
    누어주게 하신 제자들에게 한 바구니씩 주었지요 한  바구니씩 떡을 받았으니까 혼
    자 실컷 먹으라고 그랬을까요 네가 떡을 먹으라고 돌려주었는데 못 다 먹은 자들이 
    있으니까 부스러기가 남았지요 누가 못 다 먹었느냐 못 다  먹은 사람 따라 다니면
    서 먹도록 먹게 하라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일하라고 한 바구니씩 주었지 너 혼자 실컷 먹어라 그런 것이 아닙니다. 네가 
    떡을 나누어주었는데 못 다 먹은 자들이 있으니까 남지 않았느냐 네가 남은 부스러
    기를 들고 다니면서 그들이 먹도록 먹여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 책임이 제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하시니까 일곱 개 밖에 없습니다. 일곱 개 밖에  안 되는 것 보니까 다른 제자들은 
    다 팔아 먹고 일곱 사람만 한 개씩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요,(마15:34)
    
      일곱 개 떡으로 일곱 광주리가 남아 있을 때에는 사 천명 밖에 못 먹었지요 그럼 
    먹는 자가 적어졌다는 것이지요 왜  먹는 자가 적었느냐 일곱  영의 역사로써 첫째 
    부활의 영광의 자리까지 이끌어 주시는 말씀의 단계가 떡 일곱  개인데 떡 일곱 개
    로 거두어 들인 것이 일곱 광주리가 되었다 그러면 열  두 바구니가 남았을 때에는 
    제자들 한 바구니씩 줄 수가 있었는데 일곱  광주리만 남지 않았습니까 누구에게만 
    주었을까요,
    
      아까 처음에 떡을 가지고 있던  자들은 부스러기도 한 광주리씩  받아 가지고 또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명까지 주었지만 애당초 떡을 안  가지고 있던 제자들은 나누
    어는 주면서도 무슨 떡인지도 모르고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한번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갈 때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사두개인의 누룩과 바
    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 말씀하실 때에 배에 떡이  없는 것을 알았지요 우리가 
    떡 가져오기를 잊었다 그때 배 안에 떡이 몇 개 있었나요  한 개 밖에 없지요 떡은 
    누가 가지고 있었습니까? 
      
      요한이 가지고 있는 떡입니다. (막8:14) 뭘 보고 아느냐 떡을 가지고 있던 요한
    은 십자가 앞에까지 와 있지요 그때 떡 가지고 있지  않던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
    다.
    
      우리가 이 떡 한 개를  가지고 있어야지 잠시라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 떡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느 때를 말씀하느냐 주의 말씀에 역사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항상 내 속에 있어야지 그것이  없다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자가 되지 않겠느냐 떡은 내 뱃속에 있는 자와 내 뱃속에 없는 자를 구별
    해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찌니라"
    
      추울 때 목이 마르나요 더울 때에 목이 마르나요 날이 뜨거우니까 목이 마르지요 
    그러면 보리 베는 때는 환난 때를 말하지요 환난 때는 목이 마를 것입니다.
    
      목이 마르는데 그릇에 가서 하면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요 (요2:6) 돌 항아리  여
    섯 개가 있는데 항아리에 물을  길어다 채우라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다 주라 
    말씀했는데 그 때는 돌 항아리로 보여 주셨는데 오늘 영의  세계에서 내 육체를 말
    합니다. 
    
      내 육체가 그릇이 되고 있습니다. 내 몸에 채울 줄을 알아야지 다른 그릇들을 보
    면 안됩니다. 
    
      (마25:4) 에서 등은 다 같이 가지고 있는데 기름을 가진 처녀와 기름을 안 가진 
    처녀들을 말씀하실 때에 그릇에 기름을 준비 한  다섯 처녀를 말씀하십니다. 그 그
    릇은 우리의 육체입니다.
     
      내 육체에 주시는 고난을 통해서 하늘나라의  영광을 더하시는 기쁨을 가지고 있
    어야 됩니다.
     
      그러면 소년들은 그릇에다 물을 갖다가 붓는데  그 때에는 밭 모퉁이 어디에다가 
    그릇을 예비해 놓고 소년들로 하여금 물을 길어다가  붓게 하였겠지만 실상은 자기 
    몸이 그 그릇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날이 뜨거울 때에 목이 마르고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면서도 이삭을 
    줍는 자와 같은 네게 부닥치는 환난으로 연단 하실 때에 목이 마르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소녀의 자리에 있으면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고만 있고 그 자리까지 
    이끌어 주시는 신랑 예수의 역사를 보지 못하니까 환난의 역사가 부닥치면 그 때에 
    목이 마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너보다 앞서 있는 소년들은 그 때를 위해서  예비 해 놓은 생수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그들이 길어 온 물을 너희가 마시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릇이 준비되어 있고 소년들은 물을 길어다  물그릇에 채워 놓고 있으니까 슬기 
    있는 처녀들이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지고 있는  것과 뜻이 같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마25:4)
    
      지금 이 밭에 있는 그 소년들은 자기들의 몸이  그릇이 되고 환난을 통해서 하늘
    나라의 영광된 열매를 더하게 하시는 그 기쁨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소년들은 자기들의 몸에 환난을 통하여  환난의 날을 예비하게 하시는 기쁨을 
    가지고 있고 자기들에게 환난이 임할 때마다 순교하게  하시는 그 순간까지 환난의 
    날에 찬송케 하시는 기쁨으로 채워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순교하게 하시는 그  순간까지 어떠한 환난을 더하시더라도 나를 
    때리게 하시는 몽둥이가 더 클수록 내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그 기쁨을 가지고 있
    는 자가 되어야지 그것이 감추어진 만나를 먹는 자가 되고 있느니라,
    
      그 기름 가진 처녀들에게 기름 안 가진 처녀들이 좀 나누어 달라고 할 때에 내가 
    가지고 있는 기름을 네게 나누어주면 나도 너희도 다 쓰기에 부족할까 하노라 어떻
    게 보면 인색한 것 같지요 내가 기름을 가지고 있으면  조금 나누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나누어주지 않습니다.
    
      왜 안 나누어줍니까 네게 조금 나누어주면 너도 부족하고 나도 부족해 그것은 무
    엇을 말씀합니까?
    
      우리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몽둥이가 예비 되어  있는데 내게 있는 기름을 누구에
    게 조금 나누어주면 그 고난을  감당할 기쁨이 모자란단 말이지요  쉽게 말해서 이 
    말씀을 많이 증거 하는 목사님들과  이 말씀을 받은 교인들을  같이 붙잡아 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악한 자가 누구를 더 때릴까요 이 말씀을 증거한 목사님을 더 때리
    지요,
    
      그러면 목사님이 그 고난에 합당한 기름을 준비해 가지고 있는데 이 기름을 누구 
    한데 나누어주면 그때 그 고난을 어떻게 이기겠느냐 그것입니다. 인색해서 안 나누
    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여기서 대추나무를 말씀 드리는데 대추나무는  다른 과목 나무와 달라서 하
    나 하나 따지 않고 막대기로 때립니다.
    
      (요엘1:12) 그러면 열매를 많이 맺은 가지가  매를 더 맞지요 열매를 조금 맺은 
    가지가 매를 덜 맞습니다. 똑 같은 것입니다.
    
      순교하는 자리에 같이 끌려갔지만 열매 많이 맺은 가지는 많이 맞을 것이니까 기
    름을 더 많이 준비해 놓아야 그 고난을 이길 수 있지  그 기름을 많이 준비해 놓지 
    못하면 그때 가서 넘어지지요 하나님께서 미리 기름을 채워 놓은 것입니다.
    
      기름의 분량대로 때리게 하시고 몽둥이도  만들어 놓았단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
    가 잘 마음에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몽둥이가 크면 클수록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것을  바라 볼 때에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추었던 만나 입니다.
    
      만약에 감추어진 만나를 보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그 기쁨을 가지지 못하면 무엇
    만 보일까요 큰 몽둥이만 보이지요 그럼 무서워집니다.
    
      (마24:12) 이것을 보지 못하면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게 
    되리라 말씀했는데 불법이 무엇입니까? 악한 자의 권세가 일어나서  성도들을 대적
    하고 죽이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순교하므로 써 첫째 부활의  영광을 주신다는 것도 불법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아닌 것은 불법입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이가 신랑 예수이시니 그 예수께서 나를 순교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지요,
    
      하나님의 법안에 있는 자들은 환난이 더 크면 클수록 사랑이 더 뜨거워지고 나를 
    기쁨으로 순교하게 하시기 위해서 첫 삼년반 환난까지 주신 사랑을 깨달을 때에 자
    꾸 사랑이 뜨거워지고 순교하는 자들에게 첫째 부활의 영광을 준다는 것을 보게 되
    면은 내가 순교하려니까 그 환난이 무서워진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사랑이 식어진다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불법과 하나님의 법을 구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베드로와 같은 자들이 많
    아요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는 그 때에 첫째 부활의 영광을 주신다는 것은 베드로의 
    법입니다.
    
      내가 죽을찌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 죽는데  까지 주를 따라 가겠나이다 내 
    목숨을 주를 위하여 버리겠나이다 하는 이것은 베드로의  법이고 예수의 법은 그게 
    아닙니다.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신 신랑  예수께서 찬송하면서 순교하게 해 주시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것을 잘 구분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요18: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말씀했지요 그러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 때가 추운 겨
    울이라는 말씀이 아니예요 그 때가  춥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추운 때입니
    다. 무섭다는 말이지요 세상 권세가 무서우니까 덜덜덜 떨려 그러니까 춥다는 말씀
    입니다. 
    
      (마24:20) 겨울에나 안식일에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셨는데 왜 겨
    울이냐 추운 때라는 말이지요 환난의 날이 무서워지면  추울 때이지요 하속들이 숯
    불을 피워 서서 쬔다 공관 복음에서는 그냥 불을 피었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숯
    불이라 분명히 밝혔는데 왜 숯불일까요,
    
      숯불은 한번 탔지요 또 타는 것은 숯불이지요 이게 둘째 사망입니다. 첫 번째 사
    망이 있으니까 두 번째 사망이 있지요 왜 하속들이 숯불을 쬐고 있습니까 추우니까 
    불을 쬐는데 베드로도 거기 서 있습니다.
    
      하속들은 세상 권세가 무서우니까 나도 예수를 붙잡아 오는데 공을 세운 하속 중
    에 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지금 서서 쬡니다.  앉아서 쬐면 얼굴이 가리워 져서 모
    를까 봐 나도 예수 잡아오는데 공을 세운 자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서서 불을 
    쬐는데 베드로도 왜 서서 쬡니까? 나도 예수 잡아오는데 공을 세운  사람이라는 것
    을 나타내기 위해서 서서 쬐고 있습니다.
    
      무서우니까 숯불을 쬐는데 이 숯불이 무엇을 태우는  숯불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하늘나라의 영광을 불태우는 숯불이 되고 있느니라 이것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
    습니다.
    
      첫 삼년반 환난을 무서워하면은 겨울이  되고 맙니다. 안식일은 아직도 안전하다 
    안전하다 하여 그 때의 징조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살전5:3)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오늘  비가 오겠나 안 오겠나 날
    씨를 쳐다보지 않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120년이 되리라고  하신 그 연도를 가르
    쳐 주셨으니까 앞으로 몇 해 몇 년만 알았지 달과 날은 몰라요 노아는 모르니까 칠
    일 전에 말씀해 주었지요 그러나 120년쯤 되리라 하는  그 연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 그 날이 가까워질수록 부지런히 일하고 해 쳐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해를 쳐다  볼 위험성이 많습니다.  걸프 전쟁이 일어나니까 이게 
    첫 삼년반 환난을 알리는 삼차 대전이 아닐까 좀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것 같더니 
    또 안전해지니까 아직 때가 남았나 보다 마음들을 놓고 있습니다.
    
      마음을 푹 놓고 있으니까 지금 무엇들하고 있습니까?  세상에 쌓기 바쁩니다. 전
    에 92년 10월에 휴거 한다고 떠들면서 부지런히 다니던 그들을 통해서 권고하셨는
    데도 지나고 나니 다시 주저 앉아 있습니다. 세상 잠들을 자고 있으니 그들보다 더 
    미련하지 않습니까? 빨리 준비해야지요 우리들을 위해서 그들도 세워  주셨던 것입
    니다.
    
      (삼하23:15) 다윗이 베들레헴 우물물을 사모했지요 이  베들레헴 우물물에서 길
    어 온 것을 보아야 됩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환난의 때에 기쁨으로 찬송케 하시는 그 물을  길어 오는 소
    년들이 있고, 그 그릇은 그들의 육체니 너도 네 몸에 그 물을 채우는 자가 되라 그
    러면 그 소년들이 될 때에 또 베는 자들로 역사 하게  해 주시는 그 단계를 우리가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10절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룻이 자기 신세를 말합니까? 지금 우리에게 있는 모든 환경을  룻으로 하여금 대
    변하게 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은 아무 것도  은혜를 받을 만한 조건이 없는
    데도 가장 크신 은혜로 베푸신  것을 보는 감사와 찬송으로써  지금 절하고 있습니
    다.
    
      룻이 지금 보는 은혜는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고 나는 아무 보잘 것 없는 죄인인
    데 모압 땅에서 난 이방인인데 어찌하여서 나를 첫째 부활의 영광까지 보여 주십니
    까? 그 은혜를 지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첫째 부활의 영광에까지 이끌어 주시는 신랑 예수님 앞에 지금 엎드리고 있
    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나는 이방인이어늘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룻은 모압에서 났으니까 모압에서 온 이
    방인이고 우리들은 율법 시대에는 다 이방인 있었지요  또 우리 조상들이 이방인이
    지요 그 다음에 우리는 특별히  성령 시대에 보내심을 받았지만  처음부터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갔습니까? 처음엔 세상 복만 바라고 있던 이방인의 자리에 있었던 우리
    들을 신랑 예수께서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셨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세상  축복만 보던 이방인의 자리에 있었
    는데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신 그 신랑 예수 앞에 엎
    드리는 자가 되라고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 나는 남보다 지혜가 있고 의가  있어서 이렇게 이끌어 주셨다는 말씀입니
    까? 이방인 되었던 아무 것도 없는 나를 오직 주님께서 주권 적으로 이끌어 주셨다
    는 말씀입니까?
    
      (요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
    는 자는 살아나리라 말씀했는데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죽은 
    자들이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데 음성을 들을 수가 없지요  그러면 어느 죽은 자들
    을 말합니까 열매 없는 죽은 자 가운데 있는 것을 아는 죽은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
    다.
    
      내가 열매 없는 죽은 자 가운데 있는 죽은 자들이 영광 받은 하나님의 아들의 음
    성을 듣게 하시는데 이것은 성령으로 듣게 하십니다.
    
      영광 받으신 주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그 성령을 부어  주실 때에 그 
    영광의 주의 음성을 듣게 하시는데 그 때가 곧 성령 시대를 말씀하십니다.
    
      양심 시대 율법 시대에 있던 사람들은 이 음성을  다 듣지를 못했는데 성령 시대
    에 보내심을 받은 너희들에게만 이 음성을 듣게 하시느니라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성령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가장 큰 영광이라는 것은 양심 시대의 사람들
    은 곡식의 뿌리와 같고 율법 시대 사람들은 줄기와 같고  성령 시대에 보내심을 받
    은 우리들은 이삭과 같은데 뿌리와 줄기가 이삭을 위해서 있었지요 이삭 된 우리들
    이 알곡이 되어 있어야지 뿌리도  살고 줄기도 사는 것이지  이삭이 쭉정이가 되고 
    말면은 뿌리도 줄기도 다 함께 죽은 것이 되고 마는 것을 보아야 됩니다.
    
      (요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써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하시나이까 물었지요 사마리아 여자 나는 이방인인데 유대 사람인 
    선민 된 당신이 어찌하여 이방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나이까 그 말씀인데,
    
      그 사마리아 여자는 이방인 인줄  알고 있지요 그럼 내가  이방인 되었다는 것을 
    알 때에 은혜 받을 만한 조건이 없는데 신랑 예수의 음성을 듣게 하시는 은혜를 보
    고 그 신랑 예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자가 되느니라,
    
      내가 이방인으로 안 보고 선민으로 본다면 내가 선민이고 의인이니까 내게 이 일
    을 이루셨다고 내가 나오게 됩니다.
    
      나는 온전히 이방인인 것을 볼 때에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신 신랑 예수 앞
    에 엎드리는 자가 되느니라 그것을 보여주십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라고 말하게 하시는 
    것은 율법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만이 선민이 아니고 미리 아신 자들 중에서 미리 
    정하심을 받은 우리 곧 성령  시대에 보내시기로 예정을 입은  우리가 참된 선민이 
    되고 있는 사실도 우리들에게 나타내 주시고 있습니다.
    
      율법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그 때에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을 볼 때에 자기
    들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이방인은 다 지옥 갈 불택자로 보았지요,
    
      그런데 룻은 모압 여인인데 분명히 이방  여인인데 하나님께서 지금 나오미를 통
    해서 보아스의 밭에까지 인도하여 주셨지요 그러면 이방인에게도 기본 구원 십자가
    로 구원해 주신 구원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지요, 그러면 선민 아브라함의 자손에
    게 주신 율법은 율법을 통해서 지옥 갈 데서 천당 가는  그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
    한 율법입니까? 구원해 놓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까?
    
      모세가 율법과 계명을 가지고 애굽에 가서 그들을 이끌어 냈습니까? 하나님의 선
    민 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호렙산에  와서 율법을 주셨지요 마찬가지로 
    율법은 누구에게 주셨느냐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인도해 내
    신 그들에게 말하자면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이지요 율법을 보고 행
    함으로써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모압 여인 된 나에게 이방인 된 나에게 어찌하여 이 은혜를 베푸시나이
    까 하는 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그때 당시에는  우리 조상들도 이방인이였고 이방인
    의 후손 된 우리들이지만은 우리 조상들에게도 에덴  동산에서 가죽옷으로 입혀 주
    신 그 구원이 있다는 말씀을 여기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잘 보아야 됩니다. 어떤 분들은  개신교는 백년 전에 들어 왔고 천주교는 
    이 백년 전에 들어 왔다 하는데 그러면 우리 나라의 복음이 들어오기 전 우리 조상
    들은 예수를 알고 죽었습니까? 모르고 죽었습니까? 다 모르고 죽었지요,
    
      그러면 다 지옥 갔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잘못 보았습니다. 내가 보리
    면 우리 조상들은 보리나요 콩이나요 내가 보리면 우리 조상도 보리야 되지요 보리 
    심었으니까 보리가 나왔지 콩 심었는데 보리가 날 까닭이 어디 있겠느냐 말입니다. 
    잘 들 구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 내가 가죽옷을 입고 앉아서  성경을 볼 줄 알아야지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에게만 입혀 주신 것으로 보면은 이 성경이 내가 믿고 행하면 천당 
    가는 구원받고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 여기서 구별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내게 입혀 주신 가죽옷을 내가 입고 앉아서 성경을 볼 때에 이 세계가 보
    이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조상들이 예수 안 믿고 죽었으니까 지옥  갔다 하는 그 분들은 내가 
    믿었으니까 구원받았다 하게 되지요 그것도 바리새인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 생활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합동측 장로교에서 말씀
    을 증거 하던 부흥사 김 정덕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가신 분의 대해서 그 말
    하고 싶지는 않지만은 반드시 고쳐야 하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그분이 로마서를 푸는데  이신득구 이신득의라고 풀었습니다  옳지요 믿음으로써 
    구원함을 받고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받는다 옳기는  옳은데 그 믿음이 누구에게
    서 나온 믿음이냐 믿음의 근본을 잘못 보았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요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실 때에 누구에게 주시는 선물
    입니까? 예수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주시는 선물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니까 사람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받고 사람이 예수
    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 이렇게 풀어 갑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사 복음을 다 못 보았습니다. 사 복음에서 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사도행전에서 주시는 성령을 내가 받아야 됩니다.
    
      그 성령을 받아 가지고 로마서를 보았다면 그렇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신
    득이 이신득구를 며칠 동안 증거 해 놓고 그 목사님이 이야기를 합니다.
    

    ◈ 예 화 ◈

    자기가 어느 교회를 시무 하는데 그 교회에 장로님의 아버지가 한번도 교회에 안 나왔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아무리 가서 전도해도 안 나와 그런데 밤에 갑자기 그 장로님의 집에서 사람이 왔는데 장로님의 그 아버님이 돌아 가셨다고 목사님 오셔 서 예배드려 달라고 합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장로님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한번만 교
    회를 나왔더라도 찬송 부를 것이 얼마나  많은가?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부를 찬송이 있는데 교회를  한번도 안 나왔으니 분명히  지옥 갔는데 지옥 
    간 사람을 어떻게 우리가 만날  수 있느냐 그러니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찬송은 
    못 부르는 것이고, 한번만 나왔다 죽었어도 가서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부를 수 있
    는데 한번도 안 나왔으니 꼭 지옥 갔는데 어떻게 우리가 찬송을 부를 수 있느냐 장
    로님의 아버님이 돌아 가셨는데 목사가 안 갈 수도 없고 그래 이제 가서 무슨 찬송
    을 부르나 걱정을 하면서 갔답니다. 
    
      대문 앞에 갈 때까지도 걱정이 태산 같았었는데 대문  안에 들어 설 때에 하나님
    께서 지혜를 주시더랍니다. 그럼 무슨 지혜를 주셨느냐  예수 앞에 나오면 그 찬송
    을 불렀지 장로님 아버지는 별 수 있나 예수 앞에  나와야 구원받지 바로 보았습니
    까? 잘못 보았습니까? 교회 한번만 나왔으면 천당 갈 것인데 한번도 안 나와서 지
    옥 갔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잘못 보았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그 예수 믿는 생활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지 애굽에서 아무 사람이나  불러서 유대 땅에 
    들어오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아닙니다.(마2:15)
    
      베들레헴에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님께서 오셨지요  애굽에 가서 있을지라도 하나
    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애굽에 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다시 불러서 오게 
    하신 것을 보아야 합니다.
    
      가죽옷을 입혀 주신 그 부모들을 통해서 나를 가죽옷으로 입혀 주신 그 영에다가 
    육신을 입혀 보내셨다는 것을 잘 보아야 합니다.
    
      내 부모들이 택자이니까 택자를 낳은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내 부모가 택자이니
    까 택자를 통해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아담이 누구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나요 여자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습니까? 
    그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하였습니까?
    
      여자의 이름을 하와라고 한 것이 아니예요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하고 이는 모
    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라 아담이 미리 아신 자로 택함을 받은 산 자이니까 아담의 
    아내가 되면은 아담의 씨를 받아서 낳은 자녀들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산 자의 어미라고 하였고 더러 산 자가 아니지요 더러 산 자가 있
    다면 산 자도 낳고 죽은 자도 낳을 수 있겠는데 모든 산 자이니까 아담이 살았으니
    까 아담의 씨를 통해서 그 아내에게서 나오는 모든 자녀들은 모든 산 자가 되는 것
    입니다.
    
      아담의 아내 되었던 그 사람이 아담의 아내로 있을 때에 낳은 아들 딸들은 산 자
    들이지만은 그 여자가 아담과  헤어져서 만약에 불택자에게 시집을  갔다면 여자는 
    같은 여자인데 이제부터는 누구를 낳을까요 그 때는 죽은 자를 낳는 것입니다. 
    
      (고전7:14) 남자는 씨고  여자는 밭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자기의 아내 이름을 하와라  하였으니 이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러라 
    이 말씀을 잘 들 분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받지 못하니까 장로 아버님인데도 한번이라도 교회에 나왔으면 구원받
    아 천당 갔을 것인데 한번도 안 나왔기 때문에 지옥 갔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분간 해 보시기  바래서 저는 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해서 순교자의 수를  채우게 하시는 역사는 유대인들과는  관계가 없습니
    다.
      11절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보아스는 신랑 예수를 말씀하시고 그러면  그는 룻이지요, 그러면 보아스를 신랑 
    예수로 보는 룻의 신앙을 먼저 보아야 됩니다.
    
      네 남편이 죽은 후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세상 육신에  속한 남편이 죽은 것을 말
    씀하지요 네 남편이 죽은 후에 네 시모에 대하여 더욱  효성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네 남편이 죽고 난 후에 네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는 내 남편이 살아 있으니까  시모를 섬길 수 있지만은 남
    편이 죽은 후에는 그 시모에게서 떠날 수가 있지요 내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 시모
    지 남편이 죽은 다음에는 그 시모를 떠나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모를 떠나지 않고 그 시모에게 효도를 하는 그것이 주께서 인정하시
    는 효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구별해 보아야지요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는 그 남편의 아내가 되
    었으니까 그 남편의 어머니가 되는 시모에게 효도할  의무가 있지요 그러면 남편이 
    죽은 다음에는 그 시모를 섬겨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룻이 그 시모에
    게 효도한 그것을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남편은 죽었는데 그  시모에게 효성을 다하게 되었느냐 오르
    바와 룻이 모압 땅에 있을 때에 함께 효도할 때에는  남편은 없지만은 남편의 어머
    니 되는 시모에 대한 효도를 했고,
    
      그러면 오르바가 효도하는 효성과 룻이 나오미에게  하는 효성이 같은 종류의 효
    성입니까? 다르지요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효도를 볼 줄 알아야  됩니다. 룻은 그로 
    인하여 자기 속 생명이 살리심을 받은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창37:3) 하나님 아버지를 따라 네 육신의  부모를 떠났으니 그 몸을 무엇 때문
    에 주신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만 보았다면 육신의 부모에게 난 이 몸만 보고 있지요 그런데 육신의 
    부모를 떠나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온 룻은 이 몸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부모를 
    통해서 주신 몸인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모를 따라서 네가 베들레헴으로 오지 않았느냐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것은 네 부모가  너를 낳아서 얼마나 길러 
    줄려고 수고를 했느냐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네 부모에게 효도해라 그 말
    씀이지요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말씀은 같지만 뜻은 다릅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몸도 얼마나 존귀한 몸이냐 그 말씀입니다. 내가 아들의 영
    에다가 네 부모를 통해서 입혀 준  그 몸이 얼마나 지극히 영광된  것을 본다면 그 
    부모를 공경하지 말라고 해도 공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래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내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내가 네게 준 땅은 열매 맺게 하시는 땅이니 그 땅에서  열매를 맺게 하는 그 생명
    을 내가 길게 해 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가르침하고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
    라는 말씀은 다른 것입니다.
    
      전에 네가 알지 못하던 백성으로 오게 된 것은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
    님의 나라 백성이 된 것을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육신의 부모를 통해서 네게 몸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고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이 몸은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
    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서 잠시 동안 내 영에다가 육신을 입혀 주신 옷으로 보는 것
    이 채색 옷입니다.
    
      천사들은 이 채색 옷을 아나요 모르나요 천사는 육신이 없으니까 채색 옷을 입을 
    수가 없지요 이제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에게만 입혀  주신 채색 옷이라는 말씀입니
    다.
    
      그런데 이 말씀을 증거 하게  하신 제 자신부터도 이 몸을  그 채색 옷으로 입고 
    있습니까? 못 입고 있습니까? 
    
      채색 옷으로 입고 있다면 이 다음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 입고 가나요 벗고 가나
    요 옷을 벗어 리고 하나님 앞에 가지요 잠시 동안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
    서 입혀 주신 옷입니다.
    
      옷을 입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언제 오라고  하시든지 부르심 받아서 가면 그것으
    로 끝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전에 네가 알지 못하던 이방인으로써 지금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 
    가운데서 첫째 부활의 영광까지 보여 주시는 그 땅으로 오게  하신 그 하나님 나라
    의 백성 된 것을 아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룻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그 말씀이지
    요,
    
      룻은 주님께서 나오미를 통해서 주신 그  기쁨을 가지고 찬송하니까 주님께서 기
    뻐 받으시지요 그것이 찬송이지 그것을 받지 못했다면  아무리 찬송을 열심히 불러
    도 찬송은 되지 않습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하셨지요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한다 찬송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노래를 부른다
    고 찬송이 될 수는 없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녹음기 만들어  놓고 녹음기 듣고 있
    지 그럼 더 잘 부르지요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입혀 
    주심으로써 그 영광을 입혀 주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송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이 백성을  지으셨으니까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영광
    이라도 더 입혀 주시기 위해서 오늘도 일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이고,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다 말씀하고 있는데 그러면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
    느니라고 하시는 말씀은 네가 한 일이 아니라 네 속에 있는 말씀과 함께 하시는 성
    령께서 이루신 일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분명히 알았지요,
    
      룻이 열심히 하는 그 일을  예수께서 분명히 아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네 안에 역사 하여 이루신 일이니까 내가 분명히 안다는 것입니다.
    
      (마3:25) 주여 주여 내가 선지자 노릇도 하고 권능도 행하였고 귀신도 쫓아내지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셨지요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
    는 은사까지 주셔서 역사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주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였기에 모른다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감사와  찬송의 열매를 맺을 때에는 주께
    서 맺게 하신 열매이니까 내가 분명히 알지마는 사람의 열심으로써 열심 한 열매는 
    내가 모르지요 그것을 구별해서 보아야지요,
    
      그런데 오늘도 요한복음 21장을 보는데  예수께서 지금 신령한 몸으로  베드로를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부르시는데 베드로야 부르시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그렇
    게 불렀을까요 베드로라는 이름은 예수께서 주셨지요 그런데 베드로야 하시지 못하
    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부르신단  말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아직  베드로가 못되어 
    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
    냐 왜 그랬을까요 이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나이다 장담했
    으니까? 네가 지금도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 베드로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주께서 사랑하는 사랑 안에 있다는 
    말입니까? 그들이 예수를 사랑한다는 말입니까? 그  안에 요한만은 빠지고 있습니
    다.
    
      지금 베드로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걸 자
    랑으로 여기고 있지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러니 예수님께
    서 한번 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또 묻습니다.
     
      왜 또 물으시는 것도 모르고 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렇
    게 대답하는 베드로에게 세  번째 물어보지요 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부르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했더니 이번엔 근심했지요 왜 근심합니까?
    
      내가 주를 다른 제자들보다 더 사랑한다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가 주를 다른 사
    람보다 얼마만큼 더 사랑하는 것을  몰라주면 이 다음에 세상  영광을 바라고 있는 
    베드로가 그것을 못 받을까 봐 근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베드로에게 네가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
    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말
    씀하셨지요 그건 순교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베드로보고  너는 나를 따르라 말
    씀할 때에 베드로가 뒤를 돌아보았지요 뒤를 돌아다보니까  예수님이 있고 그 뒤에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은 뒤따르고 있다는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베드로보
    고 내 앞서 다니지 말고 나를  따르라 내가 주를 사랑하는 자는  나보다 앞서 가는 
    자니 내 사랑에 이끌리는 자가 되라 나를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돌아다보니까 예수께서 계시고 사랑하는 제자가 그  뒤를 따르더라 우리가 늘 이 
    예수님의 사랑에 이끌리는 자가 되어야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자는 앞선 자가 되느
    니라 내가 앞서게 되면은 예수님을 끌고 다니게 되지요 하나님  지금 내가 이것 하
    려고 하는데 이것 좀 도와주세요 예수를 조수로 데리고 다니면 예수보다 앞서는 자
    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도 잘못하면 예수님을 조수로  데리고 다닐까 두렵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려고 하오니 예수께서 좀 도와 주시옵소서 그럼 예수를 조수로 데리고 다니는 자
    가 되지요 예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신 역사 안에 사는 자가 되라 또 영광도 예수
    께서 보여 주시고 그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역사를 통해서  이끌려 가는 자가 되어
    야지 내가 주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면은 또 앞서가는 자가  된다 그것을 늘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위치를 늘 보아야지요 이 사실을 본  베드로가 예수님의 뒤를 따를 때
    에는 예수님 뒤에서 따르는 요한을 제치고 새치기 할 수도  없고 요한의 뒤에서 따
    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십 사만 사천의 영광이고 베드로는 순교자의 영광입
    니다.
      12절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룻이 이와 같이 행하였다고  해서 그 행한 대로  보응한다고 볼 수가 
    있지요 그러나 보아스는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 룻의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대로 
    보응하시겠다는 말씀이고 네가 이렇게 행하였으니 그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는 말씀
    은 아닙니다.
    
      글자를 그대로 보면 룻이 그대로 행하였으니까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보응 해 주
    시기를 바란다 보응한다는 것은 상과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것인데 행한 대로 보응
    한다고 볼 위험성이 많은데 네가 이렇게 행하게 하신 이가 성령이시니 그 성령으로 
    행하신 그 일에 보응하시고  또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시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십니
    다.
    
      그 마음의 소원대로 열매를 더하게 하사  하늘의 영광으로 더하게 하시는 보응을 
    지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 참 고 ◈

    (마7:24)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다 하셨 지요 글자대로 보면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내가 행하는 자 같이 보이 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믿으라고 말씀하셨지요 누가 행하라고 말씀하셨나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믿는 자를 말씀합니다.
    
      믿는 자 속에 하나님이 역사 하여 이루어진 열매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이고, (마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라고 말씀했는데 그러면 예수
    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자 같이 보입니다. 잘못 보았습
    니다.
    
      그러면 이젠 그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진 것을 보니까 행하기는 행했습니다. 그런
    데 창수가 나면 무너지고 그 무너짐이 심히 크니라 말씀했지요  내가 그 말씀을 듣
    고 내가 행한 것을 말씀해서 이 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한 자로 말씀합니다.
    
      믿지 않았으니 이 말씀을  듣고 너희가 행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행하는 자와 
    행치 아니하는 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아무 것도 행한 것이 없
    다는 말씀이 아니라 내가 행한 자이고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한 자는 이 말씀을 믿
    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행하여지고 구별해서 보아
    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야곱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무엇이 다릅니까? 
    야곱이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이 야곱인데 야곱의 단계는  어느 단계이고 이스라엘 
    단계는 어느 단계입니까? 
    
      그 믿음의 단계를 보아야지요 야곱은 복중에서부터  하늘나라 위엣 것을 보게 하
    였으니까 한 톨의 열매라도 더 많이 맺으려고 형님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이고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야곱이 나쁜놈이라 말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마땅히 할 일을 했습니
    다. 세상에서 친척이나 이웃이 잘 살면 나도 이렇게 한번 잘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
    치는데 하물며 하늘나라의 영광을 보게 하셨는데 무슨 수단을 가릴 것이 있느냐 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니까 그대로 두면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무엇을 내
    밀까요 내가 이 상급을 받으려고 얼마나 수고했는지 아십니까?
    
      형님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여 열심 했다고  할 것이니까 그러면 안되지요 그러니
    까 하나님께서 천사야 저 야곱 좀 봐라 내가 하늘나라의  영광을 보여 주었더니 자
    기가 영광의 열매 하나라도 더  맺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라도 더 
    맺으려고 밤이나 낮도 가리지 않고 죽도록 애쓰고 있는데 그냥 두어서는 안돼 네가 
    가서 그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도와 주라 그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서 보내신 것이 천사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붙들고 씨름합니다. 내가  해야지 그럴 수 없습니다. 천사는  하나
    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보냈으니까 가만히 있거라 내가 해 주마 하니까 아닙니다 내
    가 해야 됩니다. 누가 이길까요 천사가 못 당합니다.
    
      우리는 기도 조금 해 놓고서는  뭐라고 합니까? 기도 열심히  했더니 하나님께서 
    주시더라 누가 기도하게 하셨기에 이건 하나님도 못  당하지요 그러니까 환도 뼈를 
    쳐서 위골 되게 만들었지요 환도 뼈가 위골 되었지 부러지지는 않았습니다.
    
      환도 뼈를 치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자신을 분명히 볼 때에 천사를 붙듭니다. 자
    기를 축복하기 전에는 놓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요 하늘나라의 영광은 보았는데 그 열매를 나는 맺을 수 없으니까 당신이 열매 
    맺게 해 주기 전에는 당신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젠 이스라엘이 되었다 야곱은 많이  보이는데 이스라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들은 많이 보이는데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하
    나님의 영광만을 나타내는 그 자리에 선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들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야곱인가 이스라엘인가 그것을 살펴보
    아야지요 그러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늘나라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그 열매를 맺
    게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왔다 그 날개 아래 보
    호를 받으니까 환난과 핍박이 있을 때에도 환난과 핍박을 통해서 더 하나님의 따뜻
    한 사랑을 느끼게 해 주시는 것이 날개 아래입니다.
    
      병아리들이 어미 닭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지요 추운 때 날개 아래 들어가고 날개 
    아래 보호하심을 입기 위해서 우리들도 들어 갈 줄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품안에 능력 안에 사랑 안에 사는 자가  되어야지 날개 밖에 나와서 네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자는 되지 말아라 지구는 공전과 자전으로 분명히 도
    는데 나는 지금 돌아갑니까?  안 돌아갑니까? 다  지구는 돌아간다고 하는데 나는 
    돌아가는 걸 모릅니다.
    
      나는 밖에 있어서 지구 돌아가는 것만  구경들하고 있지요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
    니까 왜 제가 이 말씀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만물을 다 지으시고 마
    지막에 사람까지 지어 놓고 좋았더라 하셨나요 심히 좋았더라 하셨지요,
    
      뭐가 심히 좋았더라 그러십니까? 사람을 지어 놓고 사람만 보고 심히 좋았더라가 
    아니예요 모든 만물이 사람을 위해서 영광된 열매 맺는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그
    것을 보고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럼 그 사람은 어디 들어가  있습니까? 모든 만물을 통해서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신 역사 안에 지음 받았지요 그럼 내가 그 안에 있습니까?  밖에 나와 
    있습니까? 거의가 밖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그 역사 안에 들어가 있으면 모든 피조물들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지금 지구 안에 같이  돌아가느냐 지구 밖에서 돌아가는 지구를 
    구경하고 있느냐 자신을 잘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룻을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
    셨나요 그냥 억지로 손을 붙잡고 이끌어 주셨습니까? 나오미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믿는 그 룻의 속에 역사 하여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셨나요 룻이 나오미
    의 말을 듣고 따라 왔습니까?
     
      나오미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그에게 하나님께
    서 역사 하여 이끌어 주셨습니까? 우리 자신들이 이 자리에서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오늘까지 이끌어 주신 것이지 내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걸어 온 것은 아닙니다.
    
      나오미로 말씀하시는 그 말씀으로 그 날개 아래까지 이끌어 주신 것을 보고 온전
    한 상이라 말씀하셨는데 왜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한다 말씀하셨을까요 그 신앙 생
    활이 온전한 신앙 생활이 되었으니까 온전한 상을 줄 수가  있지 그러면 온전한 신
    앙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루실 것을 보고 있지요,
    
      그러면 룻이 하나님 앞에 한 것이 좀 섞여 있습니까? 안 섞였습니까? 안  섞였으
    니까 온전한 신앙 생활이고 그 온전한 신앙 생활이 그 신앙대로 하나님께서 온전한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 그것을 보는데 사탕 파는 구멍가게에서 코 묻은 돈 긁어모은다고 하지
    요 어린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이라 하나님이 코 묻은 돈 받을까요 안 받을까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사람의 땀내 나는 것은 안 받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서 하늘 위에서부터 주신 것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
    송으로 열매 맺게 하시는 것이지 사람의 때묻은 것은 안 됩니다.
    
      (대상29: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
    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다윗의 헌금 감사 기도를 보아야 합니다.
    
      다윗의 감사 기도가 되지 못하면 (눅20:47)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
    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둘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안에서 그  하나님을 감사하는 것이 온전한 상급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전한 상이 있게 하려면은 아무리 룻이 믿음을 가졌더라도 죄를 지을 때
    가 있나요 없나요 아무리 성령이 충만했다 해도 우리 지체  속에는 원죄가 있기 때
    문에 죄를 안 지을 수 없습니다.(롬7:20)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루라도 내 속에 죄가 없다면 내 의가 나오지요 내 의가 
    나오면 내가 주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내게 죄가 있으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나타낼 수도 없고 또 나 같은 죄인을 주께
    서 사랑하시는 사랑 안에 거하게 하셨느니라  그것을 보아야 되고,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요 주의 지팡이
    와 막대기가 지켜 주실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온전한 상입니다.
    
      그 다음에 한군데 더 내려가서 (계6:10)에는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에게 흰 두
    루마기를 주시지요 내가 알고 짓는 죄는 사함 받지 못합니다.
    
      사함 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상과 영광이  그 만큼 불타 버리는 것
    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데려오게 할 때에 내가 보내는 곳에 이러한 여자가 있으
    리니 누구인가를 알아 보라 보냈지요 그 사람들이 와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
    니니이까 그 당시에 다윗으로서는 처녀나 과부라면은 또 데려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이니까 데리고 오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아의 아내라는 것을 알
    면서 데려 왔으니까 이것은 알고 지은 죄입니다.
    
      그러니까 그에게 마침내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죄까지 범하게  되었는데 이 죄는 
    사함 받지 못합니다.
    
      사함 받지 못하니까 그 죄 사함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시므이로 저주하게 
    했지요, 시므이로 저주하게 했을 때에 그 군대  장관이 그 시므이를 죽이려고 했습
    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로 나를 저주하게  하신 것이니까 내버려 두라 혹
    시 그로 말미암아 내게 선한 것으로 갚아 주시리라,(삼하16:12)
    
      무엇을 말씀하느냐 하면은 다윗은 십  사만 사천의 믿음에 올라  서 있기 때문에 
    그 간음하고 살인한 죄로 말미암아 그 만큼 또 우리아의  아내와 즐거워하던 그 순
    간에 하늘나라의 쌓아 놓았던 영광이 불태울 수 있는 조건이  남아 있는 것을 보시
    는 하나님이 더 아까울까요 다윗이 더 아까울까요 하나님이 더 아깝지요 온전케 하
    기 위해서는 시므이를 보내서 저주하게 하셨습니다.
     
      그 저주를 통해서 그것을 면제해 버렸습니다. 그것이  흰옷이고, (계3:4) 순교자
    들에게는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셨는가 그것을 보아야 되지
    요,
    
      순교할 때에 순교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번제단 위에 내 몸을 번제물로 드리는 것
    인데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이라 하셨으니까 제물이 있어야 되지요 번제단에 내 몸
    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순교입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기쁘단 말이지요  베드로가 순교할 때에 네가 어
    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말씀했지요 우리들이 순교하므로 말미암아
    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셨으니까 이젠  그 영광 받으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좀 더 
    줄 것을 찾고 계시다가 보니까 여기서 지금 지난날에 영광을  불태울 만한 사함 받
    지 못한 죄가 남아 있는 것을 보시고 네게 이것을 제하여 주리라 그것이 흰 두루마
    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상을 온전케 해 주신 것이 여기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에는 책망하고 
    징계해서 돌이켜 주시고 그 다음에는 사함 받지 못할 죄가 있어서 하늘나라의 영광
    을 불태우게 할 만한 죄가 있을지라도 네 몸을 번제로  드리고 순교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 죄 마저 제하여 주심으로써 흰 두루마기를 주시리라 그것이 네게 온
    전한 상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룻이 보아스에 대해서 내 주여 첫번이지요 이제 내  주여 하는 말이 여기서 나옵
    니다. 그 은혜까지 베푸시는 사랑과 은혜와 영광을 볼  때에 이제 내 주여 누가 내 
    주여라고 부르지 말라고 해도 내 주여 하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룻이 여기서 내 주여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부터 자기를 온전히 맡겨 버리는 것을 
    또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종이다 하려면은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주의 종입니다. 주의 뜻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는 것이 주의  종입니다. 내 주여 할  때에는 내 몸은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 대해서 주여라고 불렀지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남편 된 아브
    라함에게 내 전신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룻이 이제는 신랑 예수를  보게 되었으니까 그 예수께서  내게 무엇을 해 
    주실 것을 보고 있으니까 내 몸을 온전히 맡겨 버리는 신앙 생활이니라,
    
      당신의 은혜 입기를 바라나이다 먼저 보아스로 말씀하신 그 말씀을 내게 주신 하
    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으니까 지금까지는 그 말씀을 내게 주시는 은혜는 베푸셨지요 
    말씀을 주시는 것도 은혜인데 이 말씀을 주셨으니 이제는 그 말씀대로 내게 이루시
    는 은혜를 받기를 원하나이다 그것을 말씀합니다.
    
      (겔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
    에게 이루어 주시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어다 말씀했지요 왜요 하나님께서 말씀하
    신 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역사가  함께 하시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너희들이 
    이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가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이
    루어 주실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무엇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하느니라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15:7) 너희는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어느 생명을 말씀하십니
    까?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신 그 생명 안에 거하고 이제 내 말을 듣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이제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네가 행하라는 말
    씀입니까? 그 말씀을 네가 받아 먹고  그 말씀이 네 속에서 역사  하라는 말씀입니
    까?
    
      네가 받아 먹으면 네 안에 들어가고 네가 보고 있으면 밖에 있는 것이지요 내 말
    이 네 안에 거하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자가  되어라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 주시리라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
    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아까는 소녀가 되었다가 이번에는 시녀가 되는데  소녀가 될 때에는 신랑 신부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볼까요 못 볼까요 그건 못 보지요 시녀가 되면은 신랑 신
    부가 잠자는 잠자리를 갖추어 줄 은 아는데 잠자리에 들어가지는 못하지요 지금 자
    라나는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올라가는 것입니다. 시녀는 아직도  순교하게 해 주시는  영광이 내 속에 역사는 
    못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기는 합니다.
    
      (창29:29) 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였는
    데 그 딸 레아와 라헬은 야곱과 같이 잠자리에 들어 갈 수가 있지요 시녀들은 들어 
    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소녀의  자리에서 시녀의 자리로 올라  온 것을 말씀해서 
    시녀 중 하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내가 주를  사랑하여 섬기고 있으면 
    시녀의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순교하게 하여 주시는 주님을 볼 때에 이젠 잠자리를  같이 하는 자가 되지요 아
    직도 내가 순교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어느 한 구석에 남아 있으면은 아직도 시녀의 
    자리에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는 베드로는 지금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아직도 시녀의 자리에 있습니다.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다는 것은 아무 것도  주를 위하여 한 것이 없습
    니다. 다른 시녀들에 비해서 나는 아무 재능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자 중에 하나입
    니다.
    
      (요1:27)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는 요한의 고백이 있지요 
    왜 나는 신들메 하나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부잣집에 종들이 많은데 그의 주인이 그 종들에게 너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일을 
    맡기실 때에 그 사람의 재능을 보고 맡기지요 재능이 있는 자는 너 이것 해라 재능
    대로 맡겨 주시니까 요한이 많은 종들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보니까 세상에 무능한 
    것은 나 밖에 없습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습니다.  도무지 재능이 없는  자고 무능한 자고 신들메라도 
    나는 할 만하게 못 됩니다.
    
      가장 나는 무능한 자라는 것을  볼 때에 누가 내게 역사  하는 것을 보게 될까요 
    주님께서 내게 이루시는 역사를 보게 되느니라 이것을 잘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1:28-29)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
    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
    하게 하려 하심이라 네 무엇이 남아 있으면 이젠 자꾸 자라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녀를 위로했다 환난 중에  찬송케 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
    셨으니 보여 주신 그 소망대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내게 충만
    케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제 시녀의 자리에서 어느 자리로 옮겨가게 하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까? 
    이제 순교의 자리로 옮겨오게 하시는 그 계단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14절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식사할 때에 어디에서 일하기  위해서 식사하고 있나요  보리밭에서 일하게 하기 
    위해서 지금 식사를 주시지요 그러면 보아스가 주는  식사인데 보아스가 룻에게 이
    르되 이리로 와서 하는 것을 보니까 룻을 위하여 미리  예비하여 놓은 자리가 있습
    니까? 없습니까? 신랑 예수께서 보아스가 룻을 위하여 미리 예비하여 놓은 자리가 
    준비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리  와서  말씀하십니다.  이리로  와서라는 말씀을  잘 들어야   (계
    11:11)의 이리로 올라 오라 말씀하셨지요  이리로 올라 오라 거기가  어디입니까? 
    공중 혼인 잔치 자리이지요 이리로 와서 그 자리가 그 자리입니다.
    
      떡을 먹으며 말씀했는데 (마12:1)과 (눅6:1) 말씀에 밀 밭 사이로  예수님은 지
    나가시고 제자들은 그 앞에서 길을 열고 있지요 밀 밭  사이로 지나가신다 하는 것 
    보니까 밀 밭 사이로 지나가서 또 갈 곳이 있으니까 지나가시지요 그 길을 여는 것
    이 제자들의 사명입니다.
    
      갈 곳이 어디입니까? 보리밭이라는 말이지요 오늘 교회가 밀밭이라면 보리밭까지 
    인도하는 길을 여는 역사가 교역자들의 사명입니다.
    
      밀 밭 사이를 지나서 보리밭으로 예수님은 가고 있으니까  그 길을 여는 것이 오
    늘 교역자의 사명이라 그것을 우리가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떡을 먹으며 누가 주는 떡을 먹으며 보아스가 주는 떡을 먹으며 이 떡
    은 무슨 떡일까요 환난의 떡을 말하고 있습니다.
    
      환난을 떡으로 받아 먹는 자가 되라 (마7:9-11)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
    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주며 알을 달라고 하면  전갈을 줄자가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
    지께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떡을 달라는 아들에게  돌을 주지 않는다  분명히 말씀했는데 아버지께서 
    떡으로 주는데 돌로 받아 먹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없다는 말씀입니까? 있
    으니까 말씀하지요,
    
      아들이 무엇을 위해서 떡을 달라고 할까요 내 생명이 살았으니까 그 생명의 양식
    으로 그 떡을 먹고 자라 날려고 달라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게 해 주십시오 기도들 합니까? 안 합니까? 하지요 믿음을 자라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환난을 주십니다.
    
      이 환난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자도 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
    서 일하는 자도 되지 말고 나는 죽고 하나님께서 내게 이루시는 역사 안에 살기 위
    해서는 연단 하는 환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고후1:8-10)
    
      그런데 나를 죽여주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 안에 살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환난을 
    우리가 떡으로 받습니까? 돌로 받습니까? 돌로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이 내
    게 왜 이 고통을 주십니까! 원망하는 자가 되지요 환난을 떡으로 먹는 자는 감사와 
    찬송이 넘쳐 날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해서 또  우리들을 이단이라고 핍박하는 환난을 주실 
    때에 내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떡으로 받아 먹을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고 환
    난을 주실 때 돌로 받으면은 넘어지는 자가 됩니다.
    
      또 그들을 저주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환난을 떡으로 
    먹을 줄 알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떡이니까 보아스가 주는 떡이니까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환난을 
    떡으로 받아 먹을 줄 알아야 됩니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말씀하셨는데 환난의  떡까지는 쉬운데 초에 찍으라고 하
    시는데 왜 떡을 초에 찍으라 했느냐 성경에서도 근거가 나와야 되겠는데,
    
      (시69:21)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 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목이 갈 한 
    자에게 초를 주었다 말씀하셨고, (잠25:20)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
    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으니라 말씀했는데 쏘다는 가성 소
    다를 말합니다.
    
      상처 위에 기름을 부어야지요  (눅10:34) 기름을 부으면  유하게 되고 상처에다 
    초를 부으면 더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쏘다  위에 초를 부어 놓으면 그 쏘
    다가 끊어 오르게 됩니다.
    
      끊어 오르게 하는 것이 쏘다 위에 초를 붓는 것이라 말씀하시는데 지금 우리들에
    게 무엇을 말씀하느냐 (요4:14) 목이 갈 한 자에게 생수를 주면 그 속에서 샘물이 
    솟아 날 것이지요,
     
      (출17:3)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이  마르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습니까? 원망했습니까? 원망했지요  하나님께서 왜 목이  마른 것을  깨닫게 
    하셨을까요 물을 주시기 위해서 목마른 것을 깨닫게 해 주셨는데 목마른 것을 깨닫
    게 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실 것을 믿고 구하면 되겠는데 도리어 원망하고 있습
    니다.
    
      우리들도 이런 때가 없지 않겠나 보아야  됩니다. 환난 때에 내가 목마르지요 그 
    때에 목마르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생수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생수는 무엇입니까? 하늘나라의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기쁨  가운데 하나님을 찬
    송케 하시기 위하여 그것을 주셨는데 이것을 모르면은 초를 마시우는 자가 되어 버
    리고 마느니라,
    
      쏘다에 초를 부으면 끊어 오르니까 지금  내가 당하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더 크게 되니까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지요,
    
      그러면 상처에 초를 부어서 그 아픔을 더하여 고통으로 인하여 원망하게 하는 것
    은 쏘다에 초를 부은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한다 하셨는데 나는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그 생명을 위
    해서 말씀도 전하고 기도 해 주는데 그 말씀을 받지  못하는 자들로 인해서 마음이 
    상한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그들은 반드시 살리심을 받을 것인데 이 말씀
    을 죽어 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고 마음이 상한 자를 말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 울며 씨를 뿌린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씨를 뿌린다는 
    것은 복음과 진리인데 복음을 전할 때에 이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그들이 믿을텐데 
    들었으면 믿어야 되고 그러면 살리심 받겠는데 죽어라 하고 안 믿습니다.
    
      그러니까 그를 믿지 아니하는 그들의 죽음을  보고 슬퍼하며 복음의 씨를 뿌리고 
    그 다음에 또 씨를 뿌린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제는 영광된 열매를 맺는 생명으로 살아야  되는데 자꾸 세상으로 치우치는 그
    들의 죽음을 보고 울면서 나가서  씨를 뿌리니 단으로 거두게  해 주시리다 복음과 
    진리를 증거 하면서 죽어 라고 이 말씀을 듣지 않고 믿지 않는 그들을 인해서 마음
    이 상한 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앞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노래하고 있습니까? 세상을 
    기뻐하니까 노래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이단이니 삼단이니 훼방하면서 자기들의  잘못 된 것을 깨닫지 못
    하고 자기들은 세상 축복을 즐거워하는 자가 되었으니까  노래하는 자가 되어 버리
    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을 증거하고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므로 영광된 열매를 맺는 생명으
    로 살지 못하고 죽음 가운데 있는 그들을 보고 마음이  상한데 그들은 도리어 세상 
    축복을 기뻐서 노래하고 이단이라고 대적하고 있으니 마음이  상한 자가 얼마나 더 
    마음이 상하겠느냐 상한 자 앞에서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과 같다 가
    뜩이나 추운데 옷을 벗겨 놓으면 더 춥지요 얼마나 그  고통이 더 하겠느냐 말입니
    다.
    
      그 마음이 상한 자가 그들이 세상을 기뻐하는 노래  소리를 듣고 얼마나 그 마음
    이 상하겠느냐 그것을 말씀하시고,
    
      (마26: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
    며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하라 너를  친자가 누구냐 하더라 지금 
    예수님을 희롱하고 있지요 그럼 예수님은 자기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 고통을 당하
    고 있는데 도리어 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고 기뻐하고 있다 그 말씀이지요,
    
      그것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더 아프겠느냐  그것을 지금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의 그 마음이 아픔을 더하게 하니까 추운 날 옷을 벗기
    는 것과 같아서 그 마음의 고통을 더하는 자가 되지 않겠느냐 우리들 앞에 이런 일
    이 있을 것을 분명히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갈 할 때에 초를 마시운다 왜 갈 할 때에 초를 마시우느냐 예수께서 목마르다 말
    씀하셨지요 무엇으로 인해서 목이 마를까요 예수님이 피 흘리고 땀 흘려서 목이 마
    를까요 아직도 이 말씀을 받지 못하고  한 생명 한 생명을 살려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시는 그 생명을 보지 못하는 그들의 죽음을 볼 때에 목이 마릅니다.
    
      그러면 갈 할 때에 그들은  그 예수님 앞에서 지금 무슨  말들을 하고 있습니까? 
    (마21:47)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여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 아래는 널 구원하면 그것을 보고 우리가 믿겠노라 떠들고 있지요 그들은 하나
    님의 자녀로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신 그 몸을 입혀 보내셨는데도 불구하
    고 아직도 세상을 기뻐하는 죽음 가운데 있으면서  도리어 자기들의 구원을 위해서 
    죽으시는 예수님 앞에 나와서 조롱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고통이 더 클까요 그것을 보는 고통
    이 더 클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보다 그것을 보는 고통이 더 큽니다.
     
      이것이 쏘다에 초를 부은 것 같다 이 다음에  우리들에게 이런 고통이 있을 것을 
    미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던지 불에  태우게 하던지 우리들을 순교하게 하실 
    때에 그들을 오히려 불쌍히 보아야 될까요 미워하여야 될까요 그를 불쌍히 보게 되
    지요 그런데 그들은 기뻐합니까? 슬퍼합니까? 도리어  기뻐하고 있고 조롱하고 있
    습니다.
    
      그것을 보는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더 컸겠느냐 이것이 쏘다에  초를 친 것이고 
    상처 위에 초를 친자와 같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초를 찍어 먹으라고 했지요  초를 찍어 먹어라 환난의  떡에다가 이 초를 
    찍어서 먹는 자가 되어야 그 때에 그들을 위해서 그들로  인해서 네 영광이 더하게 
    하시는 것을 보는 기쁨으로 인해서 기도하는 자가 되지요 이것을 먹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요 그를 저주하는 자가 됩니다.
    
      초를 찍어 먹으라 환난의 떡에다가 이 초를 찍어 먹는 자가 되어야 그때 가서 주
    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뭐라고 기도 하셨나요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기도 하셨
    고 돌에 맞아 죽는 스데반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잤습니다.
    
      (눅23:24) 말씀과 (행7:60) 말씀에 기록하신 것처럼  기도하는 자가 되지요 그
    것을 보지 못하면은 마음속으로 그들을 원망하는 자가 되지요 원망하게 되면 그 자
    리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미리 초를 환난의 떡에다가 찍어 먹는 자가 되어야지 그때 가서 그 기도를 할 수 
    있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먹지 못하는 자가 있지요 먹지 못하는 자는 어떤 사람이 먹지 못하는 자 입니까? 
    (잠24:1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
    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네 원수는 나를 해롭게 하는 자들이지요 나를 죽어라  하고 못 살게 하던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시고 벌하실 때에 마음이 고소하나요 불쌍하나요 나를 따
    라 다니면서 못 살게 굴다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하실 때에  아 참 고소하다 그
    런 마음이 들어가면 그는 초를 먹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네 원수가 넘어지고 엎드러질  때에 기뻐하지 말아라  그것을 기뻐하면 그들에게 
    내릴 진노를 네게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초를 먹지 못하면 이 자리에 들어갈까 심히 
    두려운 것입니다.
    
      (출12:8) 유월절 양의 고기를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하셨지요 그 양의 고기
    를 불에 구워 먹을 때에  그냥 먹었으면 좋겠는데 왜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그
    럴까요 유월절 양은 예수님의 대속을 말하지요 예수님의  대속을 말하는데 그 복음
    을 들을 때마다 내 죄 사함 받는 기쁨만 보지 말고  내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죽
    으신 주님을 항상 생각하라 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죄사함 받는다 그것만 기뻐하지 말고 내 죄로 인해
    서 오늘도 피 흘리고 계시는 주님을 항상 생각하는 자가 되라 이것이 어린 양의 피
    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하는 성도들의  생활이니라 이것을 늘  보아야 하는 것입니
    다.(계7:14)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아까는 이리로 와서 앉으라 자리를 예비 해 놓았더니  이번에는 곡식 베는 자 곁
    에 앉았다 그러면 룻을 위해서 예비 해 놓은 자리가 곡식  베는 자 곁에 앉게 하셨
    으니까 앞으로 곡식 베는 자로 만들어 주실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곡식 베는 자 
    곁에 앉게 하였습니다.
    
      룻을 곡식 베는 자 곁에  자리를 주어 앉게 하신 것으로  보아서 그 만큼 믿음이 
    자라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 그 자리까지 이끌어 주실 것을 먼저 말씀하시고 계십니
    다.
    
      그런데 볶은 곡식을 주셨다 이  볶은 곡식은 언제 누구에게  제일 먼저 주셨나요 
    (수5:11) 요단강을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일 먼저 주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오기까지는 만나를 주시고 요단강을  건너온 그들에게 볶은 곡식을 
    주었지요 요단강 건너가기 전에는 볶은 곡식을 주시지  아니하였지만 받아 먹을 수
    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히브리인이다 말씀했는데 그러면 히브리인이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건너 왔다는 뜻이지요 어디를 건너 왔다는 말인가요  요단강을 건너 왔다는 말이지
    요 요단강을 건너 왔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육의 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건너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약에 히브리서가 있지요 히브리인들에게  주신 것이 히브리서인데 그러
    면 내가 히브리인이 될 때에 히브리서를 볼 수가 있는  것이지 내가 히브리인이 되
    지 못하면 요단강 동쪽에 있는 것이니까 히브리서를 암만 보아도 모릅니다.
    
      만약에 육적 히브리인에게 주신 히브리서라면 구약에  있어야 될 것인데 왜 신약
    에 히브리서가 있느냐 그것입니다.
    
      영적 히브리인들에게 주시는 히브리서 입니다.  그러면 내가 영적 히브리인이 되
    려면 요단강을 건너가야 된다는  말이지요 요단강을 건너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육의 세계를 벗어버리고 영에 세계에 서라 이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실 때에 사람이 거듭나라고 하셨지요 짐승
    도 거듭 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이지요 사람만이 거듭 날 수  있는 것입
    니다.
    
      왜요 한번 육신의 부모에게서 났지요 한번  더 나야지 됩니다. 어떻게 나야지 되
    느냐 너희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나라의 영원한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
    서 보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이게 한번 더 나는 것입니다.
    
      생활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근거를 다시 잡으라 하시는 말씀입니
    다. (삼상17:17) 말씀에 이새도 싸움터에 나가서  싸우는 아들들에게 볶은 곡식을 
    보내 주고 있습니다.
    
      (히5:11) 말씀에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는 자는 속히 볶은 곡식
    을 먹을 수 있는 믿음으로 자라라는 말씀입니다.
    
      볶은 곡식을 먹으려면은  요단강을 건너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에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그것은 죽음을 말하지요 그 죽음보다 먼저 육의 세계는 
    버리고 영의 세계로 건너가는 자가 되라 그러면 볶은 곡식도  주시고 먹을 수도 있
    느니라 그것을 보아야 됩니다.
    
      (요5:2)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과  육적 히브리인들이  가데스바네아의 
    관계도 보게 하십니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삼하12:8) 우리아의 아내를 취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네게 만일 이것 저것이 
    부족하였더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말씀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언
    제나 우리들에게 넘치게 주십니다.
    
      룻이 먹고 모자르는 것 더 달라고 그랬나요 주신  것 가지고 남았지요 언제나 우
    리들에게 넘치게 함으로써 감사와 찬송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을 말씀해서 먹고 
    남았더라 하셨습니다.
    
      영이 살아서 산 소망 안에  살며 열매를 맺는 기쁨으로  찬송하는 자에게 물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리라 내가 먹고 입고하기 위해서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
    나님의 일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이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구제할 때에라고 말했지 얻으러 다닐  때에 그렇게 말씀은 안했지요 구제
    할 때에 하신 말씀은 구제하라는 말씀이고 구제하라고  하신 말씀을 보니까 넘치게 
    주실 것을 말씀했지요 그것을 우리가 잘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15절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
    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그러면 룻은 시녀의 자리에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듣고 보고는 있는데 이삭을 줍
    고 있는 룻은 아직도 세상  줄이 완전히 끊어지지 못하고  시녀의 자리에 있으니까 
    내가 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자리에 있는데 보아스는  자기 소년들에게 말씀하고 있
    으니 그 소년들은 순교하게 하시는 기쁨을 가지고 있는 소년들이지요,
    
      그들에게 곡식 단은 베는 자들이 베어서 타작 마당에 가져가려고 묶어 놓은 곡식 
    단인데 곡식 단 사이로 다니면서 이삭만 줍고 있는 룻에게 이젠 말씀하지요 그러니
    까 그 소년들의 길어 온 물을 마시게 해라 소년들이 길어  온 그 물을 마시고 있는 
    룻에게 할 일을 소년들에게 지금 말하고 있는데,
     
      책망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약1:5) 지혜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책망하지  않는
    다고 하셨지요 그러면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는 책망치  않지만은 다른 것을 과도하
    게 구하는 자는 책망하신다는 말씀이지요,
    
      지혜는 아무리 많이 구해도 책망치 아니하시고 더 후하게 주시지만 욕심 많게 세
    상에 속한 것을 많이 구한다면 그것은 책망들을 일입니다.
    
      타작 마당으로 옮기기 위해서 묶어 놓은 곡식 단 사이로 다니면서 계속해서 이삭
    을 줍고 있는 룻을 책망하지 말고 끝까지 돌보아 주라고 하십니다.
      16절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이삭만 줍고 있는 룻에게 낫으로 베어서 손에 쥐고 있는 단으로 묶을 수 있는 그
    것을 조금씩 뽑아 주라고 하는 것은 이제부터는 환난 전에 세상의 미련으로 인하여 
    떨어진 이삭과 환난을 통하여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기쁨까지 가지고 있는 이삭과 
    그 열매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 그것을 비교해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진 이삭만 줍고 있던 룻에게 낫으로 벤 곡식을 버려 줍게 하실 때에 세
    상의 미련을 끊어 하늘나라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기쁨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송케 
    하시는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시느니라,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 줍게 하는 것하고 이삭을 줍는 것하고 구별해서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년들은 그것을 알고 있으니까 소년들에게 말씀하지요,
      "꾸짖지 말라 하니라"
    
      책망하는 것은 빨리 자라지 못하는 것을 보고 책망하지 말라는 말씀이고 또 꾸짖
    지 말라는 것도 줌에서 뽑아 버리는 것을 줍는 룻이  그것을 깨닫지 못해도 꾸짖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뽑아 버린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서 환난 날에 낙심하는 자가 될지라도 그를 꾸짖
    지 말고 그들이 그 자리까지 자라날 수 있도록 붙들어  주는 것이 너희들의 사명이
    니라,
      17절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룻은 보아스로 인하여 베는 자들과 소년들과 소녀들로 베푸시는 은혜가 감사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밭에서 쉬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베푸신 은혜를 감사한 마음이 열심히 일하게 했지요, (단12:4) 육신을 
    위하여 이삭을 줍는 그 일보다  성경책에서 이삭을 줍는 일이  더 열심히 부지런히 
    하여야 되지 않겠느냐 이것을 보아야 됩니다.
    
      성경책에서 이삭을 자꾸 주어야지 그러면 줌에서 뽑아 주신 것도 주울 것이고 그
    것을 계속해서 부지런히 줍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여기서 볼 것은 보아스의 밭이라고만  지금까지 말씀하시고 보리밭이라고는 하지 
    않으셨고 여기서 처음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는 보리 추수가 시작 될 때라고만 했고 보아스에게 속한 보
    리밭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곡식 베는 자라고만 하시고 보리 베는 자라고도 말씀하지 아니 하셨고 이삭을 줍
    는다고 말씀하시고 보리 이삭이라고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보리 이삭으
    로 알고 주었겠지만 그 보리  이삭 주운 것을 어떻게  떨었을까요 도리깨로 떨어야 
    떨지요 그러면 때려 주시는 그 은혜까지 깨달을 때에 온전한 보리가 되지요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아직도 덜 익은 보리입니다.
    
      언제 보리가 되었다는 것을 잘 보아야  됩니다. 그 이삭을 막대기로 때려서 떨고 
    바람에 날려 알곡만 골라 놓고 보니까 보리가 한 에바쯤 되었더라 말씀하고 있습니
    다.
    
      그러면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하여 악한 자의 손에  막대기를 주어 치게 하고 세상 
    유혹과 거짓의 미혹의 바람에 날려  알곡이 될 때에 첫째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되느니라,
    
      바람에 날려야 알곡과 쭉정이를 가릴 수 있지요 그런데 이 바람 가운데는 하나님
    이 엘리야를 회리 바람으로 끌어 올렸지요 엘리야는  회리 바람으로 끌려올라 갔습
    니다.(왕하2:11) 
    
      그런데 우리가 회리 바람 불 때에 보면은 아주  마른 잎사귀는 바람 타고 올라가
    지요 젖은 나무 잎사귀에 회리 바람이 불면 땅에서 뒹글뒹글 굴지요 돌은 어떻습니
    까? 회리 바람이 불어도 끄덕도 않습니다.
     
      오늘 만약에 엘리야를 끌어올리신 회리  바람이 불면 나는 타고  올라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직도 땅에서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젖은 나무 잎사귀가 되고 있
    습니까?
    
      세상에 속한 것이 완전히 없어져야 회리 바람을 타고  올라 갈 수가 있지 세상에 
    속한 것 쥐고 있다가는 땅에서 구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가 되고 돌과 
    같이 되면 순교자들에게 돌을 던지는 자가 됩니다.
      ◆ 한 에바에 대하여
     
      (출16:16) 광야에서 만나를 주실 때에는 매일 아침마다  한 사람의 하루 양식으
    로 한 호멜을 말씀했지요,
    
      (민11:32) 만나를 먹으면서도 정력이 약하다고 고기를  구하는 그들에게 메추라
    기를 보내셨는데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을 모았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한 에바지
    요,
    
      (창43:34) 요셉이 자기 식물로  형제들에게 나누어 줄  때에 베냐민에게는 다섯 
    배를 주었지요 그러면 여기서 왜 다섯 배 다섯 호멜만 주면  되는데 열 호멜 한 에
    바를 주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몇 사람 먹으라고 한 에바를 주셨을까요  나오미도 먹어야지요 두 사람의 식량으
    로 한 에바를 주셨느니라 그러면  베냐민에게 요셉이 식물을 줄  때에 다섯 그릇을 
    주었는데 형들은 한 그릇 먹고도 충분하니까 한 그릇 주었지요 베냐민은 다섯 그릇
    을  주었는데 형들은 한 그릇이면 충분한데 다섯 그릇을 혼자서  어떻게 다 먹었겠
    느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다섯 그릇을 다 먹을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성경 한번 볼 때에 다섯 번  읽을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러면은 형들과 더불어 아버지를 모시고 오게 하실 때에 형들에게는 옷 
    한 벌 밖에 안 주고 베냐민에게는 다섯 벌을 주고 형들에게는 은을 안 주었는데 베
    냐민에게는 은 삼 백을 주었습니다.
    
      왜 은 삼 백을 줍니까 그때 종 하나 값이 은 삼십이지요 그러면 은 삼십 받는 종
    보다 십 배나 더 영광 되느니라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식물을 다섯  배나 먹을 줄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
    님께서 성경보고 싶은 마음을 주시고 읽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은혜인지 모릅
    니다. 
    
      마리아가 주의 발아래 앉아서 주의 말씀을 듣고 마르다는  밖에 나가서 뭐 한 가
    지라도 더 대접하려고 하는데 예수께서는 주님 발아래 앉아서 말씀 듣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이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가장 귀한 것이니까 이것을 빼앗길 수 없지요, 기도
    원에서 자칫하면 이런 문제들이 많이 나와요 저는 제게 주신 은사가 있으니까 아침
    부터 조용히 앉아서 성경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앞세웠고 기도도 조용히 하면 좋겠는데 
    삼각산 꼭대기 올라가서 주여  주여 떠들면 삼각산이 들썩거리지요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보좌까지 들리게 해야  한다고 하지요 그게 들릴 까닭이  없지요 
    고래 고래 소리 지르고 내려와서 한다는 말이 내가 밤이  새도록 열심히 큰 소리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 응답 해  주신다고 자기들의 기도를 자랑하지
    요,
    
      그래 놓고 와서는 뭐라고 하느냐 집사님은 어떻게 밤낮 앉아서 성경만 보고 있습
    니까? 한번 나가서 주여 주여 하고  외쳐야 후련해  지지 갑갑해서 어떻게 성경만 
    보고 있느냐고 어느 것이 올바른 은사입니까?  하나님은 어느 것을 기뻐하십니까? 
    명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룻이 주운 보리 한 에바를 보지 못하면 메추라기를  잡아서 자기를 위하여 진 사
    면에 펴 두고 자랑하는 십 호멜을 보게 될 것입니다.
      18절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 가서 시모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보아스로 인하여 자기에게 은혜 베푸신  것을 가지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종일토록 열심히 부지런히 주운 것을 가지고 돌아갔습니까?  보아스가 자기
    에게 은혜 베푼 것을 가지고 돌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을 잘 보아야지요,
    
      룻은 결코 자기가 종일토록 쉬지  않고 열심히 많이 주운  것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시모는 자기를 모압에서 보아스의 밭에까지 인도  해 주는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
    에 룻이 그 주운 것 곧 보리 한 에바는 순교하게  하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보고 있
    으므로 보리를 시모와 더불어 같이  먹기 위해서 가지고 가는  사실을 보아야 합니
    다.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 
    
      보아스가 룻에게 양식을 줄 때에  룻만 먹을 것으로 주셨나요  룻을 이 자리까지 
    인도하고 있는 나오미에게 필요한 양식까지 미리 주셨나요  룻은 자기에게 주는 양
    식은 다 먹었고 시모에게 주시는 양식도 보고 있기 때문에 시모에게 드리고 있습니
    다.
    
      (룻2:14) 보아스가 그 밭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볶은 곡식과 떡이 무엇인
    가를 보았고 그 시모도 그 볶은 곡식과 떡을 기쁨으로 받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시모는 룻보다 장성한 신앙이니까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 먹고 있는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룻과 시모가 함께 앉아서 볶은 곡식과 떡을 나누어  먹는 것과 같이 우리들의 가
    정이 다 함께 모여 앉아서  먹는 가정이 된다면 얼마나  영광스럽겠느냐 하는 것을 
    말씀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시어머니 나오미와 룻이 보리 이삭을 주운 것이 한  에바 된 것을 보고 그 남
    은 볶은 곡식과 남은 떡을 감사하며 받아 먹는 그 가정이 얼마나 복된 가정인가?
    
      (욥1:18) 욥의 자녀 십 남매는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다 죽었
    습니다.
    
      생일을 기뻐하는 욥의 자녀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에서 즐거워하는 기쁨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신앙 생활이 다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을 보여 주시
    고 있습니다.
    
      욥의 자녀들의 죽음만 보지 말고  내 가족과 교역자는 내게  맡겨 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 주고 있는가 항상 돌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19절 "시모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이 말씀은 시모 나오미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룻이 깨닫고 있는가 못 깨닫
    고 있는가?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나와 여러분이 깨닫고 있는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가 하는 것을 알아 보기 위해서 묻고 있습니다.
    
      룻을 모압 땅에서 보아스의 밭까지 인도한 나오미가 묻고 있는데 이 많은 보리를 
    줍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많은  보리를 주울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푼 자가 누구냐 하는 것을 묻고 있습니다.
    
      또 누가 너로 종일토록 일할 수 있도록 떡과  볶은 곡식과 물까지 주셨느냐 묻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일할 수 있는 직장도 주고 일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는 자가 
    있어야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이와 같이 돌봐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으로 돌보
    게 하시는 것입니까?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20:7)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하고 있습니다. 종
    일토록 써 주는 이가 없어서 놀고 섰다가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시니까 얼마
    나 품삯을 받을 것은 묻지도 않고 기쁨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써 주지 아니하는 자 아무 쓸모도 없는  자기를 써 주는 기쁨으로 포도원
    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
    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십니다. 
      "너를 돌아 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을 돌봐 주어서 나오미에게까지 은혜가 되었으니  보아스에게 더 큰 복이 있기
    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오미가 보아스를 축복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글자대로 보면 나오미가 보아스
    를 위해서 축복한 것으로 잘못 보게 될 위험이 많습니다. 
    
      이 곡식과 음식을 은혜로 받은 우리들의 생활이 그  은혜를 베푸신 자의 뜻에 합
    당한 자가 될 때에 그 은혜를 베푸신 자에게 복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굶주리고 있을 때에 양식을 주었으면 그 양식을  먹고 선한 일을 했을 때에 
    그 양식을 준 자에게도 복이 되는 것이고 만약에 그 양식을 먹고 나가서 악을 행하
    면 악을 행하게 하는 양식이 되니까 양식을 준 사람에게는  저주가 되는 것과 같습
    니다.
    
      (약4:4) 그러므로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하셨는데 언제 세상에  벗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셨을 
    때에 도리어 세상과 짝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신32:15) 하나님께서 넘치는 은혜로 복 주실 때에  은혜 베푸신 하나님의 뜻대
    로 열매가 이루어질 때에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니까 복이 되고 있습
    니다.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모에게 알게 하여 가로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
    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룻은 우연히 가게 된 그  보리밭에 있는 사환과 베는  자들과 소년들과 소녀들의 
    모든 일과 소년들의 길어 온 물과  떡과 볶은 곡식과 초에 대하여  모든 일들을 다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다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을 보아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일
    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말씀을 증거 하면서도 룻과 같이 모든 것을 다 밝히 증거하지 못하는 자
    신을 부끄럽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호도의 겉껍데기만 벗겨서 증거 하니까 여러분들이 속껍질을 벗겨
    서 먹을 때에 참 호도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아6:11)
    
      (계1:2)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다 보았다고 증거  하였습니다. 그 
    모든 일을 보고 그 사람의 이름이 보아스라는 것을 말하는 룻은 자기와 보아스라는 
    사람의 관계도 보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자기의 신랑이 되고 자기는 그  신랑의 신부가 된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읽는 우리들도 삼천 년 전에 살던  보아스라는 사람으로 보는 자는 
    옛 말로 듣는 자요 자기에게 오늘 하시는 말씀으로 듣는 자는 신랑 예수를 보게 될 
    것입니다.
      20절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여시서는 시모라 하지 아니하고 나오미라고 한  것은 그 이름대로 신랑 예수께서 
    주시는 참된 희락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또 자기로 말미암아 룻이 보아스를 자기 신랑 예수로 보는 믿음으로 자라난 것을 
    보는 그 기쁨은 얼마나 큰 것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은 것을 보는 슬픔보다 룻이 자라나는 그 한 생명을 보는 기
    쁨이 얼마나 더 큰 기쁨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고전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
    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삼:2) 형제들이 와서 내게 있는  진리를 증거 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
    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교역자라면 마땅히 이 기쁨이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
    를 원하노라 하는 것도 이 모든  일들로 인한 모든 영광이 그  신랑 예수의 영광이 
    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신부의 영광이 신랑의 영광이 되고 이 모든 영광이 아버지의 영광의 찬송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첫째 생존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시고, (시23:4)
    
      나오미는 기업의 땅에서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생명으로 살리심을 받
    았고 남편이 그 생명을 보지  못하여 흉년을 주시는 뜻을  깨닫지 못하고 모압으로 
    내려 갈 때에는 함께 이끌려 가면서도 그 심령에 고통을 주셨고,
    
      모압으로 내려가서 실패를 거듭하실 때에도 깨닫지  못하는 그 남편을 볼 때마다 
    더욱 심한 고통을 주셨고 그 두 아들도 그 아버지의 죽음에 따라서 이방 여인을 취
    할 때에 더 큰 고통을 주셨고,
    
      마침내 두 아들도 죽은 자로 죽어 모압 땅에 장사되는 것을 보는 슬픔이 더 크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까지 모압 땅에서 죽게  하신 것도 나오미로 하여금 모
    압을 떠나게 하시려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모압에서 떠나지 못하는 그에게 베들레헴에  양식 주신 것을 알려 주셔서 
    떠나게 하시는 은혜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와 교훈으로 룻을 주시고  첫째 부활의 영광에까지 이끌어 주시
    는 은혜를 그치지 아니하고 계십니다.
      둘째 사망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시고,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푸시는 것은 엘리멜렉이 열매 없는 죽음 가운데 있는 것을 
    보시고 흉년을 주셨고 그가 깨닫지 못하고 모압으로 내려갔을지라도 계속해서 실패
    를 주셨고,
    
      그가 사망으로 이끌고 가는 두 아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으로 열매 없는 죽음을 보
    이셨고 그러므로 그들이 모압 땅에서 열매 없이 죽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여 죽은 것이요 결코 그들의 죄로 인하여 저주로 죽은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 세 사람이 죽기는 똑 같이 모압 땅에서 죽었지만 은혜는 각기 다릅니다. 보아
    스의 친족 되는 엘리멜렉이 있었기에 나오미도 보아스의  친족이 될 수가 있었습니
    다. 
    
      말론도 모압에서 죽기는 죽었으나 말론이 있었기에  모압 여인 된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자신들이 비록 열매는  없이 죽었더라도 그들로 말미암아 보아스의 
    아내가 되게 하고 신랑 예수를 영접하는 믿음으로  자라난 나오미와 룻으로 인하여 
    그들의 상급이 되게 하시는 것을 보고 은혜  베푸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기룐은 그의 아내 되었던 오르바로 인하여 그와 같은 은혜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볼 때에 어떻게 해서라도 한 톨의 열매라도 더하게 하
    시는 하나님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삼하14:14)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
    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어쫓긴 자로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 하셨고,
    
      (겔18: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
    하랴 그가 돌이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말씀하십니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나오미는 자기로 인하여 한 생명을  살려 첫째 부활의 영광까지  보게 하시는 그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또 그 사람 보아스는 엘리멜렉이 버리고 갔던 그  기업의 땅을 도로 물러 주시는 
    근족 중에 한 사람인 것도 보고 있습니다.
    
      기업을 물러 줄 근족이 보아스 한 사람만이 아니라  또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
    해서 근족 중 하나라고 말씀했습니다.
    
      신령한 기업을 물러 줄  자와 세상 기업을  물러 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왕하
    8:6) 죽었던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권속과 함께 
    블레셋에 가서 7년 동안을 우거 하게 하시고  돌아 왔을 때에는 그 7년 동안의 소
    출까지 합쳐서 돌려주게 하신 사실도 있습니다.
    
      왜 그러냐 애굽에 가 있을지라도 또 다시 불러  주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달
    을 때에 갑절이나 더 빨리 달음박질하지 아니하겠느냐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십 사
    만 사천의 믿음으로 자라난 나오미로 증거 하게 하십니다.
      21절 "모압 여인 룻이 가로되"
    
      모압 여인 룻은 모압에서 나서 모압 사람들과 함께  열매 없는 죽음 가운데 있는 
    자기를 어떻게 오늘 이 영광에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사 백 삼십 년 동안 그이 후손을 애굽에 보
    내셨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해 들이시는 쇠 풀무의  역사도 보는 자가 복됩
    니다.(신4:20)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오늘 종일토록 이 모든 은혜를 베풀어 준 그  보아스라는 사람이 오늘 뿐 아니라 
    자기의 모든 밭의 추수를 다 끝내기까지 네게 줌에서 조금씩  버려 줍게 하고 길어 
    온 물을 마시게 하는 소년들과 함께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소년들과 가까이 하면 그 소년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야하고 그들의 
    모든 생활을 보고 함께 해야 합니다.
    
      이 소년들과 가까이 할 때에 그 소년들과 같이  자라고 베는 자의 자리까지 이르
    게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마26:56) 그 소년들과 가까이 하여 그들의 생활을 본 받지 못하면 예수를 잡으
    려는 자들 앞에서 도망하는 제자들과 같이 될 것입니다.
      22절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년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이 말씀을 특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나오미는 벌써 첫째 부활의 영광을 보는 
    룻에게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보다도 얼마나 영광된 룻의 믿음을 보고 말합니다.
    
      자부를 내 딸이라고 계속해서 부르는 것은 자기로 인하여 살리셨고 그 믿음이 신
    부의 자리까지 자라게 된 것을 보고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를 참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고 했는데 나오미는  그 소년들과 나가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룻2:8) 보아스로 말씀하신 나의 소녀들입니다. 아직도 순교하게 하시는 신랑 예
    수의 기쁨은 가지지 못한 자들입니다.
    
      보아스의 밭이 아닌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아직
    도 거짓의 미혹과 세상의 유혹을 물리 칠 수 있는 믿음에 자라지 못하였습니다.
    
      너는 다른 밭에서 일하는 소년들과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고 나오미 나는 그들
    과 만나더라도 미혹 받을 까닭이 없습니다.
    
      (요이: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
    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 하는 자 임이니
    라,
    
      (딛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
    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져  스스로 정죄 한 자로써  죄를 짓느니라 말씀하십니
    다.
      23절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보아스의 권고와 나오미의 교훈에 순종하는 룻 입니다. (에2:20) 에스더는 왕후
    가 된 후에도 모르드개의 명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좇음이더라 하셨고,
    
      (갈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과 함께 있을  대에 소년들과 베는 자들과 베
    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과 함께 있게 됩니다.
    
      또 여기서 말씀하시는 보리 추수는 첫 삼년반 환난  곧 순교자의 수를 채우게 하
    시는 때이고 밀 추수는 순교하지 못한 자들을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
    를 증거 하게 하십니다.
    
      보리 추수 때보다 밀  추수 때가 더  뜨겁지요 첫 삼년반  환난을 말씀하실 때는 
    (마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하셨고 (단12:1)
    
      (눅21:26) 후 삼년반 환난을 말씀하실 때에는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
    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고 하셨고, 
    (계6:12-17) 후 삼년반 환난의 때를 말씀하신  것은 그와 같이 무서운 환난이  있
    을 것을 생각해서라도 첫 삼년반 환난의 때에 순교하게 하시는 경고가 되고 있습니
    다.
    
      (출9:31-32) 삼과 보리와 밀과  나맥이 있는데 보리는  십 사만 사천이고 삼은 
    순교자들이고 밀은 열매가 있는 자들이고 나맥은  벌거벗은 자들입니다. 보리와 삼
    은 첫째 부활의 들어가지만 밀과 나맥은 못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결 론

    나오미와 룻을 보아스의 밭에서 보리 추수 할 때에 베들레헴으로 인도하시고 보 아스의 밭에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가 끝날 때가지 이삭을 줍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속에서 역사 하시는 신랑 예수의 인도하심을 보는 자들에게는 앞
    으로 그 자리까지 자라게 하시는 기쁨이 넘치게 하십니다.
    

    기 도

    영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의 예비 된 그 영광을 입혀 찬송케 하시기 위하여 미리 아신 자로 택하셨고, 가죽옷을 입혀 주신 아들의 영에 미리 정하셨던 그 뜻대 로 육신을 입혀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성령 시대에 보내 주셨고,
    
      모압 땅에 있는 자들과 같이 열매 없는 죽음 가운데  있을 그 때에 불러 믿게 하
    시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도록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셨고 마
    침내 신랑 예수로 오셔서 나의 신부아 나이 누이 나의  신부야 불러 주심으로써 이
    제는 첫째 부활의 영광으로 인도해  주시는 신랑 예수와 더불어  동행하는 자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모든 죄인 중에서 가장 큰 죄인 된 자들을 이 영광의 자리까지 이끌어 주신 주님 
    앞에만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 말씀을 증거 하여 신랑 예수 앞으로 한 생명 한 생명을 인도하는 역사로 말미
    암아 영광의 아버지 앞에 찬송 되게 하시옵소서,
    
      이 마지막 때에 증거 하게  하시는 모든 말씀을 먼저  들었으니 그대로 이루시는 
    역사 앞에서 증거 되는 보아스의 보리밭과 같은  교회가 되게 하시옵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메모 :

'구약 > 룻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룻기-서론과 개요-  (0) 2015.02.07
[스크랩] 룻기서 4장 강해  (0) 2015.02.07
[스크랩] 룻기서 3장 강해  (0) 2015.02.07
[스크랩] 룻기서 1장 깅해  (0) 2015.02.07
[스크랩] 룻기강해 - 요지  (0) 2015.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