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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룻기

[스크랩] 룻기서 1장 깅해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1:58

룻기서 1장 강해


    1절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삿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계셨 고, 그러면 사사를 세우실 때가 있으면 안 세울 때도 있습니다. 사사 시대라 말씀하시지만 계속해서 사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사를 세워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 사사와 함께 있어서 치리 하실 때도 있었고 사사를 끊어 주셨 다가 또 다시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세우신 사사와 함께 하셔서 말씀하시고 권능으로 치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에 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니까 하나님께 서 사사를 세우시고 말씀하시고 치리하고 계시는 그 때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 다.

     

    그 땅에 흉년이 들게 하셨는데 사사로 치리 하게 하시는 그 때에 왜 그 땅에 흉 년이 들게 하셨느냐, 그 사사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십니다. (렘7:25)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너 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가 볼 것은 사사가 살아 있을 때에는 사사로 인하여서 말씀하시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리하는 권세 안에 살고 있다가 그 사 사가 죽으면 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삿2: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섬기던 그들이 되었습니다.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던 그들보다도 사사 를 세워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더 악한 자가 되고 있는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워 그들 앞에 부지런히 말씀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마저 들으려 하지 아니하는 그들에게 말씀이 있으나 열매 없는 자기들의 생활 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흉년을 주셨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눅15:14) 그 지방에 흉년이 들어 그 아들이 주려 죽게 되었을 때를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지요 그러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재산을 받아 가지고 있으면서도 허랑 방탕 한 것이 무엇입니까?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말씀으로 한 생명 한 생명을 살리시는 역사에 쓰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무엇을 위하거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말할 때에는 생명이 되지 못하니까 또 하나님의 뜻대로 쓰지 못하고 자기를 위해 쓰고 있으니까 헛되이 쓰는 허랑방탕이 되고 말지요 그러니까 열매 없는 흉년 을 그에게 보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흉년 들었을 때에 그 아들이 주려 죽게 되었고 주려 죽게 된 아들의 고통보다 그 고통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고통이 얼마나 더 컸겠느냐 그러면 그 땅에 흉년들게 해서 그들이 받는 고통보다 흉년을 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고통이 얼 마나 더 컸겠느냐 그것을 우리들은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왕상17:1)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 850인이 미혹하여 열매 없는 자신들의 생 활을 보게 하시기 위하여 엘리야로 기도하게 하시고 삼년 육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아니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때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시지 아 니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으시기로 이미 작정하 시고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운데 있는 그들을 보는 불타는 심령 을 가진 엘리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셨느냐 그것을 우리는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왕상17:1) 엘리야가 기도해서 3년 6개월 동안 비오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 니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다 그렇게 보면은 아합 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왕상18:17) 아합이 엘리야를 만났을 때에 네가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주는 자라 고 말했지요 엘리야는 뭐라고 합니까? 누가 이 일을 하게 하여 이스라엘에게 고통 을 주는 자가 되었느냐 너와 네 아래 있는 이세벨에게 속한 거짓 선지자들로 말미 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열매 없는 죽은 자 가운데 있게 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 서 미리 정해 놓고 그들을 보는 불타는 심령을 가진 나로 기도하게 하신 것이요 내 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은 결단코 아니니라 순 서를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암8:11)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 때에는 선지자가 없어서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그 기갈을 말씀하셨고, (마24:7)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말씀했는데 왜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느냐 처처니까 한꺼번에 온 지방에 다 있는 것은 아니지요 여기는 물이 있는데 저기는 물이 없습니다.

     

    또 여기도 물이 있는데 저기도 물이 없으니까 처처에 기근이 있다고 말씀했지요 그러나 이것이 계속 되면은 마침내 온 땅에 기근이 임할 것을 우리들은 보아야 하 는 것입니다. 선지가 없어서 기근이 땅에 임하는 것보다도 사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 을 듣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므로 인하여 열매 없는 죽은 자 가운데 있는 그들을 보게 하시기 위해서 그 땅에 흉년들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심정을 우리들은 먼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야곱의 네째 아들인 유다 지파에게 주신 베들레헴 땅인 것입니다. (창49:9-10) 네째 아들인 유다 지파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게 하실 것을 예언하셨 던 것입니다. (미5:2) 베들레헴은 만주의 주여 만왕의 왕 예수께서 탄생하시므로 말미암아 가 장 적다 일컬음을 받지 아니하리라 분명히 말씀했던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삼상16:1)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중 에서 예선한 왕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다윗의 동네라 부르게 하셨던 곳이 베들레헴 인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탄생한 예수를 베들레헴 사람이 제일 먼저 보게 되었지요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은혜의 땅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베들레헴은 우리에게 무엇을 나타내 주십니까?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가 신랑 예수를 먼저 보게 되느니라 신랑 예수를 먼저 보는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라 야 베들레헴에 있는 자니라 이 말씀을 명심해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흉년이 들었다고 해서 모압으로 내려가서 우거하게 된 것은 그의 중심이 모압 사람과 같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기뻐하니까 한 번 흉 년이 들었을 때에 도리어 모압 지방으로 내려가서 우거하는 자가 되었느니라 말씀 하십니다. (민22:19) 발람의 마음 가운데에 세상에 부귀와 영광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었으 니까 모압왕 발락의 유혹에 넘어진 것입니다.

     

    발람의 마음에 세상의 부귀 영광을 바라보는 기쁨보다 언제나 하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는 기쁨으로 충만하였더라면 발락의 유혹이 들어 갈 틈이 없었지요,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하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하나님 께서 흉년들게 하신 것을 깨달았을 것인데 세상에 부귀 영광을 내려다 보고 있었으 므로 흉년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도리어 모압으로 내려 가는 자가 되었 습니다. (사30:20) 돌이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모압으로 내려갔으 니 환난을 떡으로 받지 못하고 돌로 받고 있습니다.(막5:5)

     

    우리들도 오직 하늘 위엣 것만 바라보는 그 기쁨으로 충만하다면 세상에 유혹을 받을 까닭이 없고 환난에 넘어질 까닭도 없는 것입니다. (창44:2)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어 주었는데 왜 그것으로 점을 친다고 하셨 나요 은잔은 아래보다 위가 넓습니다. 잔을 한 번 떼구르르 굴려 보면 알 수 있습 니다. 엎어지면 입이 땅에 닿았으니까 세상을 내려다 보는 자요 바로 서면은 하늘 위엣 것을 바라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굴려 보면은 엎어지는 자가 많습니다. 왜요 위가 넓으니까 바로 서서 물 을 담아 놓았다 가도 한 번 엎어지면 다 쏟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위엣 것만 바라 보아야지 어느 한 구석이라도 세상을 사모하는 마 음이 있다면 엎어지고 맙니다. 따라서 돌이켜 주시는 흉년과 환난을 주실 때에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압 땅으로 가는 사람과 같이 되는 것을 보아야 됩니다.

    ◈ 참 고 ◈

    ※ 데리고 가는 남편과 따라 가는 두 아들과 끌려가는 나오미 이 네 사람의 입장을 살펴서 내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가 찾아보아 올바 른 자리에 서야 하겠습니다.

     

    남편은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얻기 위하여 열심 하다가 흉년을 주시니까 흉년 주 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풍족한 모압을 향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창13:11) 소돔과 고모라를 여호와의 동산 같이 보는 롯은 요단 들을 택하여 소 돔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집을 크게 짓고 부요한 생활을 할찌라도 아브라함의 눈 에는 자기들을 부요하게 하신 하나님을 져 버리는 애굽과 같이 보였느니라 우리들 이 어떻게 보느냐 자기의 신앙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자기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 생활을 본 받는 그 두 아들들은 아버지가 가는 그 길을 기뻐서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눅14:26)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의 땅을 보는 특별히 베들레헴의 영광을 보는 그 아내는 남편과 두 아들과 모든 재산을 이끌고 모압으로 내려가고 있는 그들에게 억지로 끌려 가고 있다는 것도 보아야지요, 그러나 한 가지 더 우리가 여기서 살펴 볼 것은 그들이 베들레헴에 있으면서도 하늘나라의 영광보다 세상을 더 기뻐하는 것을 보는 그 아내는 베들레헴에 있을 때 에 계속해서 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하루 빨리 위엣 것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는 남편에게 권고하고 아들들을 가르쳐 왔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들에게 끌려가는 그 아내는 두 아들과 남편과 재산에 이끌려 가는 아내 만 보고 있느냐? 내가 베들레헴에 같이 있으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권고 하고 기도 하는데도 불구하고 모압 땅으로 내려가고 있는 그들인데 그들만 내려보내면은 아주 모압 사람들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죽음의 땅으로 가는 그들을 따라 가면서 끝까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 기 위해서 따라 가고 있느냐 각자 보는 눈과 신앙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거한다 말씀하고 있는데 우거하는 것은 본향을 떠나서 타향에 임시로 잠간 살 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지요, (약4:13)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 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은 거기서 일년 동안 장사해서 이를 보고 다시 돌아 올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고향을 사모하고 돌아 오려고 합니까? 육신이 태어난 고향 베 들레헴으로 돌아 오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은 베들레헴 땅이 얼마나 영광된 땅 이라는 것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히11:15-16)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 비하셨느니라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더 좋은 부활을 보여 주십니다. (히11:35)

     

    나오미는 그들을 따라 가기는 따라 갔는데 끝까지 그들을 위해서 가르치며 기도 하여 하나님께서 돌이켜 주실 날을 바라보는 그 심정이 우거하는 자로 만들어 놓았 다는 것도 우리들은 여기서 구별해 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약4:14-15)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것이거늘 말씀했지요, 주의 뜻을 먼저 살펴야지 내 뜻을 먼저 앞세워서 내가 일년 동안 가서 이를 보고 다시 돌아오리라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 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창35:19) 네 사람이 다 같이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이라고 하셨으니 이 에 브랏은 드라빔을 가지고 있던 라헬이 죽을 때에 베들레헴 길에 장사 된 곳입니다. 베들레헴 길이라고 했으니까 베들레헴에 들어 갈 수도 있고 못 들어 갈 수도 있 고 그러면 그 때에 엘리멜렉과 나오미와 말론과 기룐만 에브랏 길에 있느냐 나도 그 길에 있지 아니하느냐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에브랏 길이니까 베들레헴에 들어 갈 수도 있고 모압으로 내려 갈 수도 있고 거기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세 가지를 살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의 뜻은 하나님은 왕이시라는 뜻인데 하나님은 왕이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 자기는 세상 임금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어 주신 성령의 역사 안에 살지 못하고 세상을 보여 주는 마귀의 영에 속한 자는 엘리멜렉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나오미의 뜻은 희락이라는 뜻인데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시는 그 기쁨을 말씀했습니다.

    모압 땅으로 가는 나오미는 그 희락을 가지고 있습니까? 빼앗기고 있습니까? 그 희락을 버리고 세상 희락에 따라가는 자는 아닙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여기서 다른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을 예비하게 하시는 그 기쁨을 버리고 남편과 두 아들들이 모압으로 이끌려 가는 것을 보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크고 자기도 이끌려 가게 된 오늘의 모든 것을 볼 때에 그 고통이 얼마나 더 컸겠느냐 나오미의 희락을 가진 자들은 그 고통 가운데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 고통은 반드시 돌이켜 주시는 날이 있을 것을 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말론의 뜻은 약하다는 뜻이니 좌우로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 하늘나라가 보이고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 세상이 보이고 흔들리다가 마침내 아버지 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기룐의 뜻은 낭비라는 뜻인데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모든 재산을 헛되이 쓰는 것이 낭비지요 하늘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모든 은혜와 복을 세상을 위해 쓰고 있으니 낭비하는 자가 되었느니라 그것을 낭비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마저 낭비하는 자가 되는 것을 보아야 됩니다.(눅16:19)

     

    (창13:11)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졌지요 아브라함에게 속한 목자들과 양들은 아브라함을 따르고 롯에게 속한 목자와 양무리들은 다 롯을 따라 소돔으로 갔습니다. 얼마 있다가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실 때에는 롯과 그 아내와 두 딸만 이끌어 내셨고 그 가운데서 그 아내는 뒤를 돌아다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서 오늘도 우리들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롯을 따라 나갔던 롯에게 속한 목자들과 그 많은 양무리 가운데서 한 마리도 소돔에서 나오지 못하고 유황불에 다 불타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고 있느냐 말입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엘리멜렉이 되어 있으면 두 아들을 데리고 갈 것이고 어머니가 나오미라고 해서 반드시 아버지의 인도대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엘리멜렉이 되면은 어머니가 나오미가 되었을지라도 두 아들들이 엘리멜렉을 따르는 아들들이 되기가 쉽다는 것을 또 여기서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딤후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런데 롯을 따르던 목자와 양무리 가운데 하나도 구원 받지 못하고 다 유황불에 불타게 되었다는 사실은 오늘의 교역자 하나가 그 모든 자녀들을 소돔으로 끌고 가는 자가 된다는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암6:1) 큰 교단을 만들어 놓고 많은 목사들을 안수해서 목자로 내보내지요 그 목자로 인해서 많은 양들을 어디로 인도하며 그 목자들도 어떠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냐,(대하13:9)

     

    롯 한 사람의 잘못된 신앙이 얼마나 많은 목자들과 양무리를 유황불에 불타게 만들어 놓았느냐, 그러나 반대로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목자들과 양무리들을 살렸느냐를 볼 때에 주의 종 한 사람의 위치가 얼마나 많은 생명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명심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에브랏에서 그들의 앞날이 결정 되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 이 자리가 에브랏길이라는 것을 보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신 베들레헴만 보지 말고 신랑 예수로 오시는 첫째 부활의 영광으로 이끌어 주시는 그 예수와 더불어 공중혼인 잔치 자리까지 올라가는 그 베 들레헴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느냐 엘리멜렉을 따라서 모압으로 내려 가는 자가 되느냐 자신들을 먼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3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그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네 사람을 다 말하지요 모압 지방에서 사는 것은 하늘나 라는 다 져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세상에서 부귀와 영광 누리기 위하여 수고 하는 자들의 생활인 것입니다.

     

    거기 유한다는 것은 모압 사람들의 생활대로 살았다는 것을 말하지요 하늘 위엣 것은 보지 못하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 받은 것도 보지 못하고 세상에 난 사 람들이 세상에서 사는 날 동안 부귀와 영광을 더 누려 보겠다고 수고하는 자들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했다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기는 죽었는데 몇 살에 죽었다는 나이가 없지요 왜 그러느냐 그는 몇 살을 살았던지 다 열매 없는 죽음을 위해서 살았으니까 헛되게 됐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명심해 볼 것은 (창11:10)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밧삭을 낳았고 아르밧삭을 낳은 후에 오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 으며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셈은 자녀를 낳는 생활 한 것을 일일이 여기 기록해 놓았지만은 함과 야 벳에게 대해서는 이 말씀이 없습니다. 그들이 언제 자녀를 낳았고 얼마 동안 자녀를 낳았느냐 그 말씀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수 많은 자녀를 낳고 장수 하였을찌라 도 다 헛된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명심해 볼 것은 (창23:1) 말씀에 사라가 127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말씀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127년을 정하셨고 그 127년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케 하시는 그 생활을 이루게 하셨느니라 그것을 말씀하시 기 위해서 향년이라고 말씀했고, (창25:7) 말씀에도 아브라함의 향년이 175세라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여기 는 엘리멜렉의 나이가 없다는데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6:6) 천년의 갑절을 산다할찌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라고 말씀하시는데 누구와 같이 한 곳으로 돌아 가느냐 낙 태한 아이와 같이 돌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낙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 낙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이고, 세상의 부귀와 영광으로 낙을 삼던 그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29:20) 여호와께서 필경은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신다 말씀하셨는데 천하에서 도말 한다고 하신 것은 세상에 사는 날 동안에 모든 생활이 다 불타 버리 고 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베들레헴을 기업으로 받은 엘리멜렉이 에브랏 길에서 모압으로 내려 갔으므로 인 하여 마침내 열매 없이 죽은 자가 되고 말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여기 나오미라는 말씀이 또 나오는데 나오미는 아직도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기쁨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몸이 모압에 와 있으니까 열매는 못 맺고 있지요 이것이 옥에 있는 영들입니다.

     

    (벧전3:19) 옥에 있는 영이 무엇입니까? 노아의 때에 노아가 몰래 방주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방주를 짓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또 주의할 것은 자기가 방주를 지으면서 전도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 속에도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 아들들의 영은 있으니까 그 영이 아멘으로 받습니다.

    방주를 지어야지 하나님께서 한번 심판하신다 말씀했으니까 반드시 심판 할 것을 영은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이 짓지를 않습니다. 육신을 앞세우는 자들이 영의 생각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그 때에 방주를 짓지 아니하는 것을 보는 그들의 영이 옥에 있는 영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나오미는 어떤 옥에 있는 것입니까? 자기는 하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남편과 두 아들들로 인해서 모압 땅에 왔고 그 엘리멜렉이 죽었는데 도 불구하고 아직도 열매 없는 모압 땅에 있는 것을 볼 때에 그 영이 옥에 있는 자가 되었느니라 그것을 보아야 됩니다.

     

    나오미는 남편이 죽고 과부로 남았고 그 두 아들도 남았는데 그 아버지의 교훈을 따르던 아들들에게 얼마나 간곡한 심정으로 기도하며 가르치고 있지만은 아직도 어 머니의 교훈을 듣지 아니하는 모압 땅의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남기는 똑 같이 남았는데 나오미는 어떠한 자로 남았고 두 아들들은 어떠한 자로 남았느냐 그것을 또 구별해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열매 없는 죽은 자로 죽는 것을 본 나오미가 얼마나 불타는 심정으로 두 아들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가르쳤지만은 아버지로 말미암은 잘못된 교훈과 그 생활 이 몸에 젖어 있으므로 어머니의 간곡한 심정을 몰라보는 아들들이 되었느니라 그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4절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다 그 남편의 열매 없는 죽음을 본 나오미는 그 아들들에게 본향으로 돌아 갈 것과 선민된 유대인 여자 중에서 아내를 택 하여야 한다는 것을 간곡히 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 모압 여자에게 장가들게 되었느냐 (창6:1-2)에서 하나님의 아들 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장가 드는 자가 된 것과 같이 그들이 육체가 되었다 하는 그 것을 여기서 다시 한번 보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 참 고 ◈

    ※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부모 된 자들이 다 그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지요 기도하는데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느냐 그것을 한번 구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기도


    엘리멜렉은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도 세상 축복을 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요 그 중심이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으니까 자기가 보는 그것을 위해서 기도 했을 것을 보아야 되지요, 그런데 명심할 것은 (
    출20:5)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 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 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했지요.

     

    (겔18:1) 말씀에서는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하는 속담을 못하게 할 것을 또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두 군데 말씀이 서로 상충 되는 것 같은 데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 나를 미워하는 자가 누구인가 그것부터 살펴 보아야 되 지요, 하늘나라의 영광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을 사 랑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가 되느니라.

     

    좀 심한 말씀 같이 들릴런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님께서 시험 당하신 일을 말씀하 실 때에 (마4:8) 세 번째 시험이 산에 올라가서 천하만국을 보였다 말씀 했지만은 (눅4:5) 말씀에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고 말했습니다.

     

    내게 넘겨 주었다 누가 누구에게 넘겨 주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넘겨 주 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천하 영광을 넘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구하기만 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세상 영광이 네 것이 되리라 말씀했지요, 엘리멜렉은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 이미 마귀의 영이 그 속에 들어가 있어서 마귀 자식 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는데 자기의 아들들의 세 상 축복을 위해서 기도하면 누구에게 기도하는 것이 되겠느냐 그것입니다. 오늘 축 복 기도할 때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은 마귀를 사랑하는 자가 되고 마귀를 사랑하는 자가 되면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가 되고마느니라, 그러면은 그 아버지 죄를 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느냐 우리가 곡식을 심을 때 에 알곡을 심지요 알곡을 심는데도 다 알곡이 되지 못하고 쭉정이가 더러 섞여 있 거든 하물며 쭉정이를 심어 놓고 알곡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한번 쭉정이가 되면은 그것을 알곡으로 만드는데는 삼 사대가 걸리느니라 애굽에 내려간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사대까지 430년 동안 있게 했지요 왜 그러느냐 요셉 의 형들이 요셉을 찾아 가는데 쌀 자루 가지고 육신이 먹을 양식을 얻기 위해서 찾 아 갔습니다.

     

    그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대까지 애굽 사람의 종 노릇하다가 하나님께서 모세로 인도해 주신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신23:7-8)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그들의 삼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 그 일은 그 때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시는 그 영광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그 자손에게 천대까지 그 은혜 안에 생명 안에 살게 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사59:21)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5절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모압에 내려가서 살면서 십년 동안에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바로 보지 못하는 두 아들도 다 함께 열매 없는 죽은 자로 죽게 되었습니다. (
    겔18:32) 죽는 자의 죽는 것을 내가 조금도 기뻐하지 않노라 말씀 하셨는데 남편과 두 아들이 열매 없는 죽음의 땅 모압에서 죽고 모압에 장사 되는 것을 보는 나오미의 마음도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펐겠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얼마나 슬퍼하셨겠느냐 그것도 우리들은 보아야 하고, 내 생명이 어디 있느냐 내 가족들의 생명은 어디 있느냐 내게 맡겨 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명은 어디 있느냐 그 생명을 보는 것이 올바른 부모요 교역자들이라 는 것을 여기서 밝히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여기는 나오미라 부르지 아니하고 그 여인이라 말씀했지요 왜 여인이라고 말씀하셨느냐 그 남편과 두 아들로 인하여 억지로 끌려 갔던 그 여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먼저 죽고 두 아들이 그 뒤에 죽었는데 여기서 엘리멜렉의 죽음보다 두 아들의 죽음을 먼저 기록하신 것은 그 여인의 두 아들의 죽음은 그 여인이 오늘까 지 두 아들을 잉태하여 낳고 젖 먹이고 길러 주고 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한 모든 공력이 다 헛되게 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하여 수고하였으나 다 쭉정이가 되고 말면은 금년 농사 헛 농사 지었다고 그러지요 그러면 오늘까지의 모든 생활이 자기로 인하여 난 아들들의 죽음을 보고 그 모든 수고가 헛되게 된 것을 보게 하시기 위해서 그 여인의 두 아들 의 죽음을 먼저 기록해 놓았습니다. 남편의 죽음은 그 여인을 모압으로 이끌었고 돌아가지 못하게 하던 모든 미련도 다 끊어 주시는 사실을 보게 했던 것입니다.

     

    그 때에 만약에 남편이 없이 두 아들만 있어서 모압 땅으로 가자고 했어도 나오미가 만류 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 되는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갈 때에 나오미의 말을 듣지 않는 남편 엘리멜렉을 돌이킬 수가 없었고 따라서 두 아들도 엘리멜렉을 따라 가게 되지 않았느냐, 뒤에 남았더라고 말씀하셨는데 열매 없이 먼저 죽은 자들 뒤에 남아 있는데 죽은 자로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까? 산 자로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까?

     

    죽은 자와 산 자를 여기서 구별하고 있지요 육신이 죽은 자와 육신이 산 자를 말 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열매 없이 죽은 자들과 열매 맺는 생명으로 살아 있는 자로 남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나오미도 그 때에 함께 죽었다면은 열매 없이 죽은 자가 되어 버리고 말 았지요 그러나 열매 맺는 생명으로 살았던 나오미는 끝까지 그 열매 맺는 생명으로 산 자로 남아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재산도 다 없이 해 주셨을 때에 하나님을 원 망 했던들 그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깨닫고 나니까 이제는 살았을 뿐아니라 살아 있는 자는 자라나 지요 남편과 두 아들과 모든 재산까지 다 없이 해 놓고 세상에 속한 모든 미련을 끊어 주시는 것을 보는 나오미의 믿음은 도리어 자라나게 되었느니라 그것을 보아 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 볼 것은 해가 뜨겁게 쪼이는 햇빛 아래서 죽은 풀 과 곡식과 나무는 해가 뜨겁게 쪼일수록 더 빨리 마르지요, 그러나 풀과 곡식과 나무가 살아 있다면은 해가 뜨겁게 쪼일수록 더 빨리 자라나고 곡식과 과목나무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구별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똑 같은 환난이지만은 산 자에게는 영광을 더하게 하시는 찬송이 되고 죽은 자에게 원망하며 죽게하는 저주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의 날에 대한 교훈


    (
    욥36:20) '너는 밤 곧 인생이 자기 곳에서 제함을 받는 때를 사모하지 말 것이니라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네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환난이 임할 때에 도리어 죽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환난을 통해서 열매 없는 죽은 자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돌이켜 주시는 사랑으로 깨닫지 못하면은 그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죽기를 구하는 자가 되어 버리고 말지요 그것을 말씀해서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말씀하시고, 네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했다 하셨는데 환난으로 인해서 살려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죽기를 구하는 악한 자가 되지 않았느냐 마치 뭐와 같습니까?

     

    우리 부모 된 사람들이 자녀들이 잘 못하면 책망해 보고 어떤 때는 초달도 때리 지요 불타는 심정으로 그 아들을 돌이켜 주기 위하여 초달을 때리는데 그 아이가 돌아서서 하는 말이 아버지 나 그렇게 밉거든 차라리 죽여 주시요 하며 죽여 달라 고 대들면 그 아버지가 얼마나 안타까울 것입니까 꼭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려 주시기 위해서 환난을 주시는데 도리어 죽기를 구하고 있으니 얼 마나 악한 자입니까? 패역한 자를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있느냐 그것도 우리들은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24: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라 말씀하셨 는데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평안할 때에는 원기 왕성하다가 환난이 임할 때에 낙심한다면 햇빛이 뜨껍게 쬐 일 때에 쉬 시드는 초목과 같지요 네가 약하니까 환난 날에 도리어 낙담하는 것이 아니냐 네 힘의 미약함을 보인다 그럼 어느 힘을 말씀합니까? (느8:10)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네 힘이니라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 생명 안에서 그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고 기뻐하는 그 힘이 없으니까 넘 어져서 낙심하는 미약한 자가 되고 있지 않느냐 말씀하십니다.

     

    (욥4:3)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교훈 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매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매 네가 놀라는구나 특별 히 교역자들이지요, 교인들을 심방하면서 어려운 일 당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고와 위로를 하 고 붙들어 주었지요 자기에게 이 일이 임할 때에 슬퍼하고 놀라고 또 답답해하는 자가 되면은 네가 이전에 교인들을 붙들어 주던 것은 입으로 한 것이요 네 중심에 서 믿음에서 한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상30: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에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 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말씀했습 니다. 다윗과 생사를 같이 하던 육 백 명 동지들 마저 쭉 둘러서서 다윗을 치기 위하여 돌을 들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의지할 이 하나도 없고 육 백 명 동지들도 돌을 들고 서 있습니다. 얼마나 군급하였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 입어 용기를 얻 었더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이 짚푸라기라도 잡는다 그러지요 왜 짚푸라기라도 잡을까요 짚푸라기가 자기를 살려 주리라고는 믿지 않아요 그러나 잡아 봅니다. 그것 밖에 붙잡을 것이 없으니까 붙잡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것 저것 다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붙들게 하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불태워 주시는 환난으로 임할 때에 하나님 마저 버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는 보게 되 는 것입니다.

     

    (삿6:12)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로 인하여 식물도 빼앗기고 집도 빼앗 길 때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심히 약해졌고, 또 미디안 백성들과 군인들을 무서워하여 산에 구멍과 굴과 산성을 만들고 피해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밀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 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십니다.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미디안 사람들로 인해서 세상에 속한 것은 빼앗겼지만 그 로 인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러러 보게 하시는 위로로 써 모든 환난을 이기 는 자가 되었느니라 이것을 큰 용사라고 말씀하십니다.

     

    (행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 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말씀했는데 이 가운데는 작은 계집 아이 앞에서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하던 베드로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의 성령을 부어 주어 성령의 역사가 그 안에 함께 하실 때에 주의 이름으로 능욕을 받고서도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는 이것이 참 기쁨이요 용기이니라,

     

    만약에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기뻐하는 자가 되지 못했다면은 능욕하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실 때에 기뻐하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떤 예수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나도 너희들과 똑 같은 육신을 가지고 너희와 똑 같은 세상에서 똑 같이 행함에 속한 자들에게서 핍박을 당하면서도 이 환난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는 그 기쁨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 보는 기쁨으로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환난 가운데서 이겼으니까 내 안에 있는 너희들에게도 똑 같은 환난에서 이기게 해 주실 것을 지금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24:12) 그 때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말씀했는데 불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이 아닌 것은 불법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해서 세상의 미련을 다 끊어 주시므로 서 순 교하게 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인데, 불법은 악한 자들이 일어나서 교회를 핍 박하고 성도들을 잡아 죽이는 줄로 압니다. 그러니까 무서워하게 하는 불법입니다. 또 하나의 불법은 하나님께서 첫 삼년반 환난을 통해서 순교자의 수를 채우시는 역사를 이루시는데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환난 전에 휴거 당한다 들려 올라간다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법이 아닌 것을 우리는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말씀했지요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교 당하는 자들에게 첫째 부활의 영광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법이요 휴거 당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이 아닌 불법이니 마귀에게서 났느니라 그러나 십 사만 사천의 믿음의 있는 사람을 데려 가심을 받는 것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또 구별해 보아야 합니다. (살전4:17)의 말씀은 세상 끝 날에 육신으로 살아 남아 있는 자들을 이끌어 올리십니다.

     

    6절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그가 아직도 모압 지방에 있다 말씀했지요 마음으로는 베들레헴을 항상 사모하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베들레헴으로 향하여 떠나지는 못하고 있지요, (창19:16) 롯과 그 가족들이 두 천사로 말씀하셨고, 또 두 사위에게 그 말씀을 전하게까지 하셨지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지체하고 있습니까? 세상 보따리가 남아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 하사 말씀했는데 무엇이 여호와께서 권고하신 것입니까? 회개하는 그 백성들에게 양식을 다시 주신 것만이 권고하심인가? 나오미가 보는 권고는 어느 권고를 보고 있느냐 그것을 보아야지요, 열매 없는 그들의 생활을 보게 하시기 위해서 흉년을 주신 것부터가 하나님의 그 백성을 위한 권고이라는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출2:25) 그 언약을 기억 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말씀하셨지요 그 권념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의 고통으로 인해서 부르짖으니까 부르짖는 그 고통 소리를 듣고서 그 백성을 권념하셨느냐 아브라함으로 부터 주신 언약을 기억하여 그 백성을 권념하심으로써 어제까지 복 주게 하던 그 애굽 사람의 손을 돌이켜 그들에게 고통을 주게 하신 때부터 권념하셨느냐를 보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를 보내서 인도 해 내신 그 하나님 만 보지 말고 (창15:16)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네 후손들이 이방에 객이 되어 400년 동안 4대 동안 정확히 말하면 430년 동안이지요, 애굽에 보내셨다가 다시 인도해서 가나안 땅으로 돌이켜 주신 것은 (신4:20)에 서 말씀하시는 애굽의 쇠 풀무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는 자가 바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 먹을 수 있는 믿음 주신 것을 나오미는 보고 있습니다. 흉년을 통해서 배고픔을 주시고 열매 없는 그들의 생활을 보게 하시고 이제 주시는 그 양식은 생명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열매 맺게 하시는 기쁨으 로 찬송케 하시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왕상17:15-16) 사렙다 과부의 가루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 그 통에 가루를 다 긁어서 떨었고 병의 기름도 다 기울여서 따라 먹었는데 저녁에 가 보니까 또 가루가 있고 기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것으로 날마다 감사하면서 받아 먹었고 이것이 일용할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계속 될 때에는 날마다 주시는 하나님께 먼저 감사했을까요 그 가루 통과 기름병이 보물이 되었을까요 조심히 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가루 떡 그 기름을 먹으면서도 여인과 아들 은 무슨 양식으로 먹었을까요 오늘 한 날 사는 육신의 양식으로 먹었고, 엘리야는 역시 오늘도 한 날 사는 육신의 양식을 먹으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엘리야는 그 양식도 그 생명을 위해서 주시는 양식이니까 이것 역시 생 명의 양식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느니라 이것도 우리는 구별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똑 같은 양식을 먹으면서도 하나는 육신을 위해서 먹는 육의 양식으로 하나는 그 생명을 위한 열매 맺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먹는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 오려 하여"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셨다 하는 그 말씀을 들은 나오미의 영혼이 새 힘을 얻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굶주렸던 그 영혼이 양식을 주셨다 하는 말씀을 듣고 새 힘을 얻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모압 지방은 그 남편과 두 아들까지 열매 없는 죽음으로 죽어 장사 된 지방이었고 두 아들이 죽었으니까 두 자부도 나오미와 함께 과부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주께서 주신 기업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참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재산까지 다 없어졌지만은 항상 마음 가운데 사모하고 있으면서도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일어나지 못하는 나오미에게 하나님 께서 다시 그 백성을 권고하여 양식을 주셨다 하는 말씀을 그에게 주시므로 인하여 그가 일어나서 돌아 갈 수 있는 힘도 주셨느니라, 이 양식을 어느 양식으로 보고 있습니까? 영이 살아 있는 나오미에게는 생명의 양식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7절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 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있던 곳은 사망의 땅입니다. 나오미는 본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 오려고 떠났고 두 자부는 시모를 따라 알지 못하는 곳으로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고 있습니다. 똑 같은 나오미의 교훈을 받은 자부들이지만 중심은 다릅니다. 왜 다릅니까? 나 오미의 입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그 속 생명이 살아 있는 룻은 나오미가 영생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땅으로 가는 것을 보고 따르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오르바는 본향으로 돌아가는 나오미를 따르고 있는 것을 구별해서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길을 보는 것이 올바른 길을 보는 것입니까? 영이 살아 있는 자는 생명 길로 올라가는 길을 보게 되었고 육에 있는 자는 같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그 생명 길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8절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시모라 하지 않고 나오미라고 말씀하셨으니 비록 남편과 두 아들은 다 죽었을지 라도 그 마음의 소원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기업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신 기쁨이 충만한 나오미라는 것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재산까지 다 없어진 그 슬픔보다도 다시금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시는 기업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모든 미련을 끊어 주시는 그 기쁨이 충만한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압 땅에서 난 두 자부들에게 이 기쁨을 알지 못하는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은 아비의 집으로 돌아가라 아니하시고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20:20)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했지요 왜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와서 그렇게 구하게 하셨느냐 어미는 역시 세상에 속한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은 아비에게서는 생명을 받았고 어미에게서는 육체를 받았지요 생명의 아 버지이고 육체의 어머니이라는 것을 구별해 보아야 합니다. 또 너희들의 어미들이 남편에게 시집을 와서 너희들을 낳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너희들도 너희 어머니 같이 다시 남편을 구하여 시집가서 자녀를 낳고 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합니다.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너희가 죽은 자 곧 너희 남편들이 살아 있을 때에 얼마나 선대하는 아내가 되었느냐 또 시어미가 된 나에게도 지극한 효성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지 않느냐 따 라서 여호와께서 나를 떠나서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는 너희들에게 그 댓가로 선대 하기를 원하노라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죽은 자와 나에게 선대 하는 그 마음을 주신 여호와께서 순종하는 너희들에게 먼저는 여호와의 뜻을 주시고 그 뜻에 합당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축복하고 있는 나오미의 심정을 보아야 합니다.

     

    9절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이제 너희가 어미 집으로 돌아가서 너희 마음에 맞는 남편을 얻어 평안히 살라고 하는 말씀도 아니고 또 그와 같이 너희 마음에 맞는 남편과 사는 그 가정에 여호와 께서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각각 너희에게 주시는 그 남편에게 함께 하시는 은혜로 인하여 영과 육이 함께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 축복입니다.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절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그들에게 시어머니가 입맞추는 것은 작별의 인사입니다. 나오미는 나오미 대로 보는 그 본향으로 돌아가고 너희는 너희 본향인 모압 땅에 남아서 너희 마음의 소 원대로 이루시는 은혜 안에서 살게 하실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두 자부가 똑 같은 태도와 말로 한결 같이 행동합니다. 나오미는 그 두 며느리들을 모압 땅에 남겨 두고 가게 된 것을 울고, 오르바는 자기 남 편만 살아 있더라도 헤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을 보고 울고, 룻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던 시어머니와 헤어질 것을 울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대로 남편과 두 아들까지 죽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그 시어머니를 보는 며느리들의 본심입니다. 인간의 본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소리 높여 우는 것은 시아버지와 자기 남편들이 다 죽고 그로 인하여 각각 헤어지게 된 슬픔이 북 받쳐서 소리 높이 우는 것입니다. 엘리멜렉만 살아 있더라도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같이 돌아가는 것을 보는 그 두 며느리의 마음이 좀 나았겠지요 또 자기 남편들이 살아 있다면 그 시어니와 헤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자기 남편들이 죽은 그 슬픔 위에 자기 남편들이 죽음으로 인해서 시어머니와 또 헤어지는 것을 볼 때에 그들이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똑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하는 것 보니까 두 며느리가 같이 말하 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 그 들의 마음이 그 시어머니를 공경하는 효성은 둘이 다 똑 같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백성이 어떠한 백성인 것을 보는 눈은 다릅니다. 어머니의 백성인 유대인에게 시집을 왔으니까 비록 남편은 죽었더라도 우리도 유대인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우리도 돌아가겠습니다. 우리라고 하는 그 두 며느리는 똑 같은 입으로 말하고 여기까지는 똑 같습니다.

     

    11절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며느리들은 우리 어머니라고 하며 친정 어머니와 구별하지 아니했고, 나오미는 딸들아 라고 하여 며느리라고 구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나오미와 며느리들의 사이의 살아 온 과거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어미가 있어야 딸이 있는 것과 같이 나오미와 같은 시어머니가 있어야 룻과 오르 바와 같은 며느리가 있게 된다는 것도 우리들은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참된 교훈이 앞서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
    창38:8) 남자가 아내와 결혼하였으나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그 여자 와 결혼하여 처음 난 아들을 형의 이름으로 대를 이어 기업을 얻게 하였습니다. (신25:5) 그러므로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하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의 남 편 될 아이들이 오히려 있느냐 하는 것은 내가 이제라도 아들들을 낳으면 그 아들 들이 자라나서 너희의 남편으로 다시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마저 없지 않 느냐 그것을 말씀합니다.

     

    (창38:4) 말씀에 유다에게 엘과 오난과 셀라라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유다가 먼 저 맏아들 엘을 위해서 다말이라는 자부를 데려 왔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악한 씨를 남겨 놓지 않기 위해서 젊어서 기한 전에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엘에게서는 딸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둘째 아들 오난에게 네 형수에게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서 죽은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하셨습니다.

     

    형이 씨가 없이 죽었으니까 네가 형수 되었던 그 여자에게 들어가서 먼저 맏아들 을 낳을 때에 그 아들을 형의 이름으로 형의 대를 잇게 하라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 니다. 그런데 오난이 그 씨가 자기의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가기는 들어갔는데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므로 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악한 자의 씨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엘을 기한 전에 죽게 했 는데 그 형수에게 잠자리는 같이 하면서도 형의 대를 잇게 아니 하기 위해서 땅에 설정하고 마는 그 아우가 더 악한 자가 되고 하나님께서 그도 죽게 하였습니다.

     

    12절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시어머니 되는 내 앞날을 염려하여 나를 따라 가려는 그 마음을 돌이켜 너희들의 앞날을 위하여 너희의 갈 길로 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며느리들이 그 시어머니가 불쌍해서 시어머니를 위해서 따라 갈려고 하는 것 같으니까 나를 생각하지 말고 나는 나의 갈 길을 가니까 너희는 너희 갈 길을 가라 그것을 지금 말씀하십니다.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못할찌니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나는 늙었으니까 또 남편을 둘 수도 없고 또 가령 내가 소망이 있어서 오늘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을 하나든지 둘을 주신다고 하자 그러면 쌍둥이지요, 남편을 두어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그 아들이 남편 구실을 할만큼 자라나려면 너희가 또 늙지 않느냐 그것 때문에 시간을 버리지 말고 빨리 다른데로 시집가서 살아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늙었으니 생산하기 위하여 남편을 두지도 못할 것이요 가령 내가 젊어서 오 늘밤에라도 남편을 두어서 쌍둥이 아들을 생산한다고 하자 그래도 그들이 자라기까 지 기다릴 수가 없지 않느냐 세상에서는 너희를 위해서 바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합니다.

     

    13절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오늘 밤에 내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았다고 하자 그들이 자라나면 너희가 다 늙어서 그 남편이 필요치 않게 되지 않겠느냐 그것을 바라지 말고 빨리 가서 남편 얻어 서 잘 살아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남편 두기를 멈추는 것은 소용 없는 일을 위하여 할 것을 아니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하는 것은 젊은 여자로써 자기 남편이 죽었을 때 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가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딤전5:14) 성경에는 바울로 말씀 하실 때에 처녀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도 반대하지 않았고 결혼하지 말라는 말씀도 없고 결혼하는 것도 나쁘다 하지 않았습니다. 또 만약에 과부가 되었을 때에 시집가지 말아라 하신 말씀도 없습니다. (고전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그러므로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하신 말씀은 젊은 여자로서 과부가 되었을 때에 다른 남편에게 시집가서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아니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여호와의 손은 나오미가 이끌리는 남편과 두 아들과 모든 재산을 치시고 세상에 대한 모든 미련을 끊어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손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 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그러면 치셨다 무엇을 위해서 치셨습니까? 아직도 나오미에게 남편과 아들들과 재산에 대한 미련이 조금 남아 있었으니까 그것을 끊어주시기 위해서 그것 마저 치셨는데 그것을 치시는 바람에 너희들은 과부가 되지 않았느냐 나로 인해서 너희들이 과부 된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기를 쓰고 세상에 사로 잡혀 모압 사람이 되어 버린 남편과 두 아들을 버리고 혼자서라도 베들레헴으로 돌아갔더라면 그들이 조금 더 살아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그 남편과 두 아들을 보니까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는 다 틀렸으니까나 혼자서라도 갔더라면 엘리멜렉과 두 아들들은 조금 더 하나님께서 회개케 하시 기 위해서 남겨 두지는 않았었을까 그들을 남겨 두었다가는 나오미가 못 돌아가고 있으니까 이것에 붙잡혀서 가지 못하는 나오미를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죽게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그 세계까지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미련이 그들을 좀 더 일찍 죽게 한 것으로 보고 마음이 아픈 나오미는 그로 인하여 두 자부까지 과부가 된 것을 보고 더욱 마음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있을 때에 죽어라 하고 못 내려가게 붙잡고 있었던들 그 두 아들이 모압 여자에게 장가 못 들었겠지요 그렇다면 그 두 며느리가 과부는 되지 않았을 것인데 내가 붙잡지 못하여서 너희까지 과부로 만들어 놓았지 않았느냐 그것을 볼 때에 내 마음이 더 괴롭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쫓았더라" (룻1:9) 그들이 크게 소리내어 울었고 여기서 소리를 높여 다시 울면 처음보다 작은 소리 내어서 울었단 말입니까? 더 큰 소리를 내어서 울었단 말입니까? 더 큰 소리로 울었다는 말씀이지요 나오미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자기들의 처한 오늘의 신세가 참으로 소리 높여 울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가자니 앞날에 소망이 없고 또 내 앞날을 개척하자니 시어머니를 떠나야 되고 그러니까 소리 높여 운다는 것입니다. 떠나기 위해서 웁니까? 떠나지 않기 위해서 웁니까? 오르바는 자기 앞날을 생각 하여 그 불쌍한 시어머니를 떠나야 하는 자리에서 소리 높여 울고 있고, 나오미는 자기 아들들은 죽어서 이 땅에 장사 지내고 두 자부는 살았으나 모압 땅에 남겨 두고 십 년 동안의 생활이 아주 헛된 것을 보고 소리 높여 울고 있습니다.

     

    모압 땅에서 십 년 동안 얼마나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까? 그런데 아들은 죽 고 며느리 둘 마저 모압 땅에 남겨 놓고 가면 십 년 동안의 생활이 다 헛되게 된 것을 보고 울고, 똑 같은 나오미의 교훈을 받았으나 오르바는 육에 속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시모에게 입맞추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작별이 어떠한 길로 가는 작별이라는 것을 보고 있습니까 못 보고 있습니까? 영원한 낙원과 음부로 향하는 작별인 것을 오르바는 모릅니다. 그것을 보는 나오미가 얼마나 크게 울었겠습니까? 그러나 영에 속한 룻은 그 생명을 살게 한 그 어머니를 붙잡고 좇고 있는 것입니다.

    ◈ 참 고 ◈

    오르바는 처음에 기룐의 집에 풍족한 재산을 보고 결혼했고, 룻은 나오미의 신앙과 그로 증거 하는 말씀을 보고 말론과 결혼했습니다. 결혼하는 본인들도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신랑과 신부의 믿음을 먼저 봅니까? 재산을 먼저 봅니까?

     

    부모는 부모대로 혹시나 사돈댁에 재산을 먼저 보는 자는 되지 않았느냐 이것도 우리들은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느냐? 자신들부터 돌아 보아야지요 (요6:66-68)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말씀했지요 그러면 많은 사람이 다 물러 가고 그와 같이 다니지 아니하면은 그들은 멸망 길로 가고 다시 돌아 오지도 아니합니다. 영생의 말씀을 보는 제자는 베드로와 함께 하는 제자들뿐입니다. 이것이 오르바 와 룻의 작별하는 그 자리와 같은 것입니다.

     

    (눅13:23)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제자들이 예수 앞에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어느 구원을 말합니까? 오늘 우리가 구원받았다 하면 어느 구원들을 대개 말하나요 지옥에서 천당 가는 구원을 말하지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열매 없는 죽음에서 열매 맺는 생활 영혼의 구원을 지금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구원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15절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나오미를 붙좇는 룻에게 또 말하는 이 말은 오늘 우리들에게 룻의 참된 신앙을 나타내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룻이 나오미를 붙좇습니까? 나오미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이 룻을 붙잡고 있습니까? 내가 예수를 붙잡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붙잡고 있습니까? 이것도 우리가 보 아야지요, 나오미는 자기의 본향인 기업의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그 기쁨이 충 만하고 있는 사실을 우리들은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네 동서 오르바는 지금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고 있는데 그것을 옳게 보 라는 말씀입니까? 잘못 된 것으로 보라는 말씀입니까? 너와 한 집에서 몇 해 동안 함께 교훈을 받은 네 동서인데 그러나 육에 속한 자 가 되었으므로 그 백성은 세상에 속한 백성이지요, 그 신에게 돌아간다 우리가 글자대로 보면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로 돌아간 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오늘 하나님은 똑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세상 축복만 주시는 하나님으로 볼 때에는 오르바가 돌아가는 모압 신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여기서 보 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백성은 모압 백성이니 세상 축복으로 만족하는 이방인들이라는 것을 보아야지요 우리가 이방인이라 하면은 대개 예수 안 믿는 사람 또 율법 시대에는 율법이 없 는 사람들을 보기 쉬운데 (마6:32)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구하지 말라 이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말씀하셨고, 아직도 예수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속해 있지 못하고 육신을 앞세워 세상에 속한 자들을 말씀해서 이방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신은 다른 하나님이라고 볼 수가 없고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으로 부르 는데 또는 믿는다고 하는데 그들은 육에 속해 있으니까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시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구하는 대로 세상 축복만 주는 하나 님으로 보는 자들은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모압 사람의 신이라는 것을 구별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7:14) 환난으로 세상에 속한 것들을 끊어주시고 생명 길로 인도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은 버리고 세상 축복 주시는 하나님을 찾아 돌아가고 있는 오르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믿는다고 열심 하는 것 같은데 아직도 그 속 사람이 살지 못하고 육신을 앞세워 세상 축복을 기뻐하며 그것을 구하는 자들은 오르바가 돌아가는 모압 땅 사람과 같은 자들이니라,

     

    (신23:3)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 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옛날 오르바가 돌아가는 모압 땅만 보지 말고 오늘 교회 현실을 바로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계속해서 말하는데 룻만 한번 더 시험하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일까요 우리들에게도 말씀하지요 네 동서가 지금 육신을 위해서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지 않느냐 너도 돌아가라 끝까지 나를 따를 것이냐 네 동서를 따라 갈 것이냐 한번 더 말씀합니다. (
    왕상18:21)

     

    엘리야로 말씀하실 때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말씀했습니다.

     

    바알이 너희 하나님이면 그 바알은 어느 바알을 말합니까? 그 때에는 우상의 이름을 바알이라고 말했는데 오늘도 하나님을 바알처럼 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을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신 그 생명 길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세상 축복이나 주는 그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부르기는 하나님이여 소리치며 부르는데 하나님이 들으실 때에는 바알이여 바알이여 하는 소리와 똑 같이 들리느니라 그것을 보아야 됩니다.

     

    옛날에만 바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더 많이 있다는 것을 보아야지 되는 것입니다. 또 아세라 목상을 볼 줄을 알아야 되는데 아세라의 선지자라 또는 아세라 목상이라 나무로 만들었으니까 목상이지요 십자가를 말합니다.

     

    십자가는 커다랗게 세워 놓았는데 예수가 없습니다. 그 예수는 무엇 때문에 죽으신 예수입니까? 나를 영원한 구원으로 구원해 주신 예수가 있어야 되는데 예수 잘 믿는 사람 골라서 구원해 주시는 예수와 병 잘 고치는 예수 떡을 떼어 주시는 예수는 있는데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아세라 목상입니다.

     

    오늘 병 고치는 것 세상 축복을 앞세우는 그 교회는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우상의 산당 밖에 되지 못하느니라 분명히 들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룻에게만 하시는 말씀인가?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인가? 처음에 두 동서들이 함께 있을 때에 돌아가라고 하는 말보다 지금 동서가 먼저 가는데 먼저 가는 그 동서를 따라 가라 하는 말씀이 더 강하게 들립니다. 네 동서는 먼저 가지 아니하느냐 너도 거기로 가라 그 말씀입니다. 그 얼마나 큰 유혹입니까 조금이라도 오르바가 보는 그 세계가 마음 가운데 숨어 있었다면 그 동서를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16절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왜 강권하지 말라고 합니까? 암만 강권해도 나는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나이다 하는 굳은 결심이 있으니까 이 말로 대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강권하고 또 강권해 보았자 그건 쓸데 없는 말이 될테니까 더하지 마시옵소서 시어머니에게 이루시는 신령한 역사를 보는 룻의 신앙 고백입니다. 이러한 환경에 있을 때에 나와 여러분들도 이 룻의 신앙 고백이 나올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룻의 신앙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오르바가 보고 가는 그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면 오르바를 좇아가고 나오미가 보는 그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면 나오미를 좇고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그것을 말씀 하지요 여호수아로 말씀하실 때에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리라 여호와만 섬기는 자가 되어야지 그것에 무엇을 섞지 말라 그것입니다. (요6:68)

     

    그 어머니에게서 생명의 말씀을 받았고 영생의 말씀이 여기에 있는 것을 아니까 나로 떠나가라고 백 번해도 내가 떠나지 않겠습니다. 홀로된 시어머니를 생각해서 안 가겠다고 하는 말도 아니고 그 시어머니로 주시는 말씀으로 인하여 살려 주신 그 생명이 살았으니까 끝까지 따라오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그 길이 생명 길인 것을 보고 있습니다.

     

    시어머니를 따르지 않고 동서인 오르바를 따르면 멸망 길이고 내가 생명 길을 보았는데 멸망 길로 가라고 아무리 권한다고 거기로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더 권하지 마옵소서 말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돌아가라 라고 강권하셔도 영원한 생명을 버리고 영원한 사망으로 돌아 갈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신앙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 하겠나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내 생명을 살려 주신 어머니시요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은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기업의 땅이라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은 오늘 이보다 더 어려운 환난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나도 함께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해 주시는 은혜로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세상의 소망을 따라 평안을 찾아가는 오르바와 하늘의 소망을 따라 고난을 찾아 가는 룻의 신앙을 여기서 구별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마음이 어느 한구석이라도 앞으로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 보지 못하나 하는 마음이 있으면 오르바가 가는 길을 따라 가게 될 것입니다. (눅16:22)

     

    나사로라 이름한 거지와 부자를 말씀해 주실 때에 거지는 죽을 때까지 거지로 죽었다 말씀했는데 우리가 지금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를 나사로와 같은 거지의 자리에 두시더라도 기쁨으로 그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마음에 준비는 되어 있느냐 묻고 싶습니다.

     

    (합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혹시나 어느 마음 가운데 부자가 음부에 간 것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는데도 불구 하고 나도 한번 세상에 부자들과 같이 살아 보면은 좋겠다 하는 그 유혹을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는 오르바의 길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내 자신이 어디 있느냐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사로의 가는 길을 걸어가게 하시더 라도 찬송할 수 있느냐 그 믿음을 먼저 준비들 하시기 바랍니다. (고후1:8-10)

     

    내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 노니 말씀하셨는데 왜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한다 하실까요 바울이 당한 환난을 알아 달라고 하는 말입니까? 너희에게도 그 러한 환난이 준비 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내 힘에 지나치도록 고난을 받아 꼭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 이제 살 길이 없는 줄 알았더니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더라 왜 이 일을 하십니까? 너희 육체를 의 지하지 말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것 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건지시고 또 건져 주실 것을 믿는다 한번 그런 시련을 겪었으면 앞으로 없을 것 같은데 또 있고 또 있을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 하면은 내가 이러한 환난과 시험을 겪었으니까 앞으로는 편안하겠지 그러한 생각이 들어 올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험에서 나를 건져 주신 그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까 앞으로 그보다 더 갑절이나 큰 환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것을 믿게 하시는 것이 하 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련이니라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의 백성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고 믿음의 사람을 말씀하지요 (시23:4) 비 록 세상에 치우칠지라도 지팡이와 막대기로 돌이켜 주시는 하나님 이신 것을 보고 있습니다.

     

    시어머니 되는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을 따라서 모압까지 왔지요 하나님께서 그 나오미를 버리지 않고 세상 줄을 끊어서 다시 돌아가게 만들어 놓았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사망의 길로 갈지라도 주의 지팡이는 나단 선지입니다.

     

    나단 선지로 책망해서 회개케 하시고 막대기는 압살롬이지요 압살롬에게 몽둥이를 주어 때려서라도 나를 새롭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보고 있으니까 내가 죄를 지 으면 버림 받지 아니할까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비록 죄를 짓고 사망의 길을 갈지라도 하나님은 책망으로 회개케 하시고 막대기로 때려서라도 나를 다시 돌이켜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안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야곱이 환도 뼈가 위골 된 다음에 그 천사가 야곱에게 네가 하나님과 사람과 겨 루어 이겼다고 말했는데 하나님을 이길 자가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이기겠느 냐 그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업고 길을 가는데 어머니가 생각해 보니까 아기에게 걸음 걷는 것을 배워 주고 싶어서 야 너 좀 내려서 걸어가자 하면 처음에는 걸어서 잘 따라 오지요 그런데 조금 걷고 나면 꾀가 나서 업히고 싶으니까 걷지 않고 업어 달라고 합니다.

     

    엄마 업어 줘 하며 떼를 쓰지만 엄마는 그 애를 조금 더 걸어가게 하기 위해서야 조금 더 걸어가자 하면은 싫다고 울면서 주저 않습니다. 엄마는 나 혼자 저기 간다 하면서 혼자 갑니다. 아기가 따라 올 줄 알았더니 안 따라 옵니다. 너 말 안 들을래 하고 엄마가 너 그럼 맴매한다 그러고는 아기 있는 곳으로 오면은 어떻게 합니까 도망을 가지요 매를 안 맞으려고 도망은 빨리 가면서도 따라는 안 오고 울고만 있습니다.

     

    너 정말 말 안 들을래 엄마 혼자서 간다 하고서 또 갑니다. 그러면은 아기가 따라 올 것 같은데 그래도 안 따라 오고 주저 앉아 울기만 합니다. 엄마가 어떻게 합니까? 그냥 두고 갑니까 따라 가서 업고 갑니까 따라 가서 업고 가지요 누가 이겼습니까? 아기가 이겼지요 그러면 아기가 무엇을 믿고 앉아서 울기만 합니까? 어머니의 사랑을 믿거든요 나를 못 버리고 간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하나님을 이기는 것입니다.

     

    힘으로 이기려면 하나님을 이길 자가 없지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말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이 한 번이라도 우리의 생활을 보고 이랬다 저랬다 변하시면 하나도 남 을 자가 없습니다. 한번 택하신 그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은 끝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 변합니까? 우리 말에 인생은 조석변이라 아침 저녁 변한다고 그러지요 그러면 하루에 두 번 밖에 안 변하는 것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앞에 서 두 번만 변합니까? 수없이 변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안 변하십니다. (신30:4) 너의 쫓겨간 자들이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우리가 돌아 올 때를 기다린다는 말씀입니까? 거기 찾아 오셔서 이끌어 주신다는 말입니까? 찾아 오셔서 이끌어 주십니다.

     

    (삼하14:14)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 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어쫓긴 자로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 고백입니다. 내 생활을 보면은 땅에 쏟아진 물 같아서 다시 모으지 못할 것 같은데 이제 꼭 죽은 것 같은데 하나님은 방책을 베푸사 그 생명을 육신 생명을 말씀하십니까? 열 매 맺는 생명을 말씀하십니까? 열매 맺는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신다 왜요 그것을 위해서 너희들을 보내셨고 그 생명을 위해서 예수님은 죽으셨고 오늘도 성령께서 역사 하지 않느냐 말씀하십니다.

     

    17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어머니의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어머니가 죽는 것은 하나님이 불러 주시는 그 순간까지 열매를 더하게 하시는 그 땅에서 살게 하실 것이니 그 땅이 열매 맺게 하시는 땅이지요 나도 그 땅에서 죽도록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라는 뜻을 말씀하시는데, (계2:10)에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말씀했지요 이 말씀을 잘못 보는 위험성이 많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하니까 죽는 그 순간까지 충성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할 때에 내가 다시 나오지 않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릴 수 있도 록 충성하라는 말씀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마10:38)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은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말 씀하십니다. (창23:20) 어머니께서 죽어 장사되는 그 땅은 아브라함이 에브론에게서 은 사 백을 주고 산 매장지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장사된 곳이 아닙니까?

     

    그러면 장사되고 썩어지는 그 땅을 말합니까? 그 육체는 썩어지지만은 그의 몸이사는 날 동안의 그 열매를 가지고 부활할 것을 보지요 사도 신경에서 맨 마지막에 몸이 다시 사는 것과 할 때에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서 영원한 하늘나라에 올라가니까 영원토록 살 것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몸이 다시 사는 것은 내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사는 날 동안의 모든 열매가 영광으로 살아나는 것이 몸이 다 시 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영원히 사는 것은 산 자는 자라나지요 무궁한 영광 가운데 날마다 영 광을 더하게 하시는 세계를 말씀해서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그것이 올바 른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이방에 살다가 장사된 자는 썩어져 없어지고 기업의 땅에 장사된 자는 그 열매대 로 영광 입혀 주시는 부활의 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압 땅에 살다가 모압 땅에 장사된 자들도 부활은 하는데 열매 없는 죽음 가운데 죽었으니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지만 영광은 없을 것이고 지금 기업의 땅에 장 사된 자들은 육신으로 사는 날 동안에 그 열매가 영광으로 부활하니까 그 몸이 다시 산다는 것을 우리가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어머니께서 먼저 부르심을 받아 돌아가시든지 나를 먼저 부르사 죽게 되는 이 일외에 나에게 이 생명의 말씀으로 내 생명을 살려 주신 그 어머니를 내가 어떻게 떠날 수 있겠사옵니까 그 어머니 곁을 떠난다는 것은 내 생명을 살려 주신 그 어머니를 져 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나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아무리 큰 벌을 내리시더라도 왜 마땅합니까? 그 나오미 시 어머니를 통해서 내 영원한 생명을 살려 주시고 영원한 생명 안에 영광을 예비케 하신 이 몸을 살리심 받았는데 그 영광을 내가 죽음 이 외에 버렸다면 시어머니를 버리고 간 오르바 보다도 더 심판이 클 것입니다.

     

    룻이 만약에 그 어머니를 버린다면 자기 영원한 생명을 살려 주신 그 어머니를 버리는 것입니다. (왕상3:11)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얼마나 귀한 존재입 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시어머니를 버리고 세상으로 떠나간 오르바 보다 더 큰 벌 을 내리시고 마침내는 하늘나라의 상급과 영광을 다 불태우게 하시는 벌까지 받게 됩니다. 큰 벌이 무엇입니까?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 맺게 하시는 그 상급 마저 불태우 게 하시는 벌이 큰 벌입니다.

     

    (벧후2: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져 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 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 진리를 몰랐다면 몰라서나 세상대로 살았 다 하거니 왜 진리의 말씀을 받아 가지고 또 세상으로 치우친다면 차라리 알지 아 니한 것만 보다 못하느니라,

     

    (히6:4-6) 까지의 말씀을 보면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 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 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하셨는데 한번 은사를 맛보고 내세의 능력까지 맛본 자들이 타락했다 하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말씀했으니까 아주 버림 받는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또 돌이켜 주시는 방책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여기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 하신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하늘 위엣 것으로 보여 주셨는데 그것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갔다는 말이지요 그럼 왜 그렇게 하셨느냐 처음에는 세상만 보고 있던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영원한 세계를 보여 주셨으니까 그 곳으로 돌아 왔지요 그런데 이제 그 것을 버리고 또 세 상으로 돌아갔으니까 이제 돌이키려면 아까 보여 주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보여 주어야지 돌아오지요 그런데 없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까 안 된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그 아래는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히6:7)에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가 있다 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책망과 채찍입니다. 자주 책망하고 자주 채찍으로 때려 주십니다. 이게 자주 내리는 비입니다. (계3:18)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네가 열심을 내라 말씀하셨 지요 나를 때리시는 채찍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큰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때려 준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도리어 힘을 내라 그 말씀이지요 자주 내리는 비를 보아야 합니다.

     

    그럼 이 비를 흡수해서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계속해서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은 계속해서 8절 말씀에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하였 는데 여기 가시와 엉겅퀴는 하나님은 돌이켜 주시기 위해서 책망도 하고 채찍으로 때려까지 주시는데 하나님을 도리어 원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돌이켜 주시기 위해서 책망하고 채찍으로 때려 주시는데 하나님을 원망 하는 것을 보면 이제는 할 수 없다 이제는 저주를 받아 다 불사름이 된다는 것입니 다. 그것을 잘 구별해 보아야 합니다.

     

    18절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그러면 생명 길로 인도하심을 받는 그 기쁨을 가지고 있는 나오미가 룻의 참된 믿음에서 나오는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결심이라 지금 룻이 가지고 있는 결심과 (마26:35) 내가 주와 함께 죽을 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는 베드로의 결심은 다릅니다. 룻의 결심은 믿 음에서 나고, 베드로의 결심은 내게서 난 결심인 것을 구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눅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말씀했지요 예수께서 하시는 결심은 예수님 자신에게서 나오는 자신을 위한 결심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로 인하여 이루시는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 녀들의 영광을 보는데서 나오는 결심입니다. 결심의 출처를 바로 살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룻의 굳은 결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결심이고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말씀했지요, 주를 의지하는 믿음에서 나오는 결심이라야 하나님께서 끝까지 함께 하시지 내가 주를 위해서 무엇을 하겠습니다 하는 베드로의 결심은 계집 아이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룻은 신랑 예수에게로 인도하는 나오미를 따르고 오르바는 그를 버렸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오르바가 걸어가는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느냐 룻이 걸 어가는 그 길을 걸어 갈 것이냐 옛날 오르바는 모압 신에게로 돌아갔고 룻은 나오미를 따랐다는 그것만 보지 말고 내가 오늘 어느 길을 따를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을 자신들이 한번 더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9절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그 두 사람은 열매 없는 이방인의 땅에서 열매 맺는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그 두 사람입니다. 모압 땅으로 나갈 때에는 네 사람이 나갔었으나 지금 네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세 사람은 죽고 한 사람만 오는데 모압 여인으로써 똑 같이 나오미 의 교훈을 받았으나 오르바는 모압 땅에 남았고 룻만 따르고 있습니다.

     

    (민2:33) 애굽에서 인도하심을 입어 나온 자는 이십세 이상 남자만 육십만 삼천 오 백 오십 인이 되었는데, (민14:29) 그러나 가나안 땅에까지 들어가게 하심을 입은 자는 두 사람뿐이지요 오르바는 모압 땅에 남았고 룻은 지금 베들레헴까지 인도하심을 받았는데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느냐 나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 둘 중에 하나인데 내가 오르바의 가는 길을 걸어 갈 것인가? 룻이 따르는 길을 갈 것인가? 이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옛날 그 룻과 나오미만 보지 말고 또 오르바만 보지 말고 오늘 이 자리에서 내 갈 길을 택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룻기서 입니다. 옛날에 있는 사실만 보지 말고 오늘 이 자리에서 시작해야 됩니다.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 베들레헴은 예수께서 탄생하신 곳인데 예수님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땅이 베들레헴입니다. 오늘 내가 먼저 예수님을 보려면 공중 재림하시는 신랑 예수를 보 는 자가 베들레헴에 이르는 자가 된다는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갔다가 돌아오는 것만 보고 기뻐하여 떠드는 자들은 1948년 5월에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는 것만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 밖에 되지 못합니다. 1948년 5월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 시켜 주시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 를 회복시켜 주었다 이것만 보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회복 되었지 만은 그들에게서 신령한 이스라엘은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말씀하셨고, 이틀 후는 언제이고 제 삼일은 언제 입니까? 이틀이 지나면 제 삼일이 되지요 그러면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신다는 것은 주후 70년에 지도상에서도 이스라엘 나라를 없이 했고 다 흩었습니다.

     

    이틀 후에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 시켜 주실 것을 말씀했고, 이천 년이 지나서 이 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제 삼일에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하신 말씀은 천년 왕국의 때에는 오늘까지 예수의 유적은 팔아먹으면서도 믿지 않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돌이켜 하나 가 되게 해 주시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천년 왕국에서 이루실 그 일을 제 삼일 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연대가 어느 정도 보일 것입니다.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의 뜻은 희락 곧 즐거움인데 지금 이 형편에서 무슨 희락이 있느냐라고 하 여 나오미의 참된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편 죽고 두 아들 다 죽고 과부 되어서 과부인 며느리 하나와 거지 꼴을 하고 돌아오는 네 이름이 나오미라 희락이라 했는데 네게 무슨 희락이 있느냐 합니다. 참 희락을 모르는 자들이 지금 떠들고 있습니다. 이가 나오미가 아니냐라고 하는 그들은 풍족한 중에 즐거워하던 나오미가 오늘 어찌하여 이 같이 불쌍하게 되었느냐고 놀라는 자들도 있고 놀리며 떠들고 있습니다.

     

    (룻1:1) 베들레헴 땅에 한 해 흉년이 들 때에는 가족을 다 데리고 많은 재산까 지 다 가지고 모압 땅으로 갔던 그들인데 모압 땅에서 사는 십 년 동안 모든 사업 에서 실패를 거듭하게 하실 때에는 돌이키지 못하고 더 세상에 대하여 집착하고 있 던 엘리멜렉과 두 아들들이지요 하나님께서 그들이 십 년 동안 살 때에 첫 해부터 그 모든 사업에 계속해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그 때에라도 빨리 돌아오면 되는데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계속해서 더 세 상에 치우치던 그들은 마침내 그 땅에서 죽고 두 과부만 돌아오지 않았느냐 그런데 유대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 떠드는 자들은 그 하나님의 참된 뜻을 깨닫지 못하고 나오미가 가지고 있는 그 기쁨을 가지지 못하고 남의 처량한 신세만 보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압 땅에 장사하게 하시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 오게 하신 그 사랑과 은혜에 대한 위로를 받는 나오미와 룻은 보기가 어렵다는 것 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0절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 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나오미가 육신의 본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기쁨만 보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오미가 거지꼴은 다 되었지만은 그래도 베들레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 았느냐 그것만 보고 기뻐하는 그들에게 말하고 있으니 너희가 보는 그것만 보지 말고 신령한 세계를 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2:23)

     

    애굽 사람들의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치게 하실 때에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기는 부르짖었는데 애굽 사람들의 고난 가운데서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던 그들이 많은 것처럼 오늘 이 사람들은 무엇으로 나오미라 하느냐 네가 거지꼴이 다 되었지만은 네가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느냐 네가 고향에 돌아 온 그것만 기뻐했지 열매 맺지 못하는 땅이었던 그 모압의 환난을 통해서 열매 맺는 땅으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수6:20)

     

    오늘까지 자기가 마음에 품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나타내고 있는데 나오미가 오늘까지 자기의 가지고 있는 고통과 슬픔은 무엇입니까? 먼저는 자기 남편 죽은 슬픔과 아들들이 죽은 슬픔만 보고 있습니까? 그들이 열매 없는 모압 땅에 장사하게 된 그 슬픔을 보고 있습니까?

     

    (눅1:37) 먼저 하나님을 전능 자라고 하는데 나오미는 자기를 하늘나라의 산 소 망을 바라보는 영원한 생명으로 살려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 신경으로 예배 시간에 신앙 고백을 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두번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부를 때에는 나는 아들의 자리에서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 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천지를 지으신 전능도 크고 두 번째 전능은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말씀하셨지요 이 전능은 하늘의 영광을 예비해 놓고 그 영광으로 입혀 주시는 전능을 말씀하지요 어느 전능이 더 큽니까? 두 번째 전능이 더 크지요 두 번째 전능을 위해서 첫 번째 전능이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여기 전능 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 했는데 어느 전능을 보고 있습니까? 짧은 인생을 사는 날 동안 순간적인 이 짧은 인생을 통해서 하늘나라의 영 원한 영광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 전능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함께 하시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창17:1)

     

    우리가 그 전능 자를 보는 믿음 안에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남편이 모압 땅으로 데리고 가는 그 괴로움은 사람에게서 받는 괴로움이고 열매 맺게 하시는 땅에서 이 방의 땅으로 내려가는 그들의 죽음을 보고 괴로워하는 심한 괴로움은 성령으로 받는 괴로움입니다.

     

    지금 나오미가 자기 남편과 두 아들 때문에 열매 없는 모압으로 끌려 갔는데 고향을 떠나서 모압 땅으로 가는 그 괴로움을 가지고 괴로워 합니까? 열매 맺게 하시는 기업의 땅에서 열매 없는 이방인의 땅으로 가는 것을 보는 이 괴로움이 더 크지요 이 괴로움은 그 생명이 살았으니까 보고 있지요 그러니까 내 속 생명을 살려 주신 전능 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했다고 합니다.

     

    십 년에 걸쳐서 실패를 거듭 주셨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이방인의 땅에 장 사된 그 남편과 두 아들을 보는 괴로운 심령이 그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만 보는 고통보다 몇 배나 더 심한 고통이라는 것을 여기서 말씀 해 주시고 있습니다. (렘22: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서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니라 하 셨는데 지금 죽어서 시체가 된 사람을 붙들고 울지 말아라 이왕 죽은 자이니까 운 다고 해서 살 수 없지요, 누구를 위해서 울 것인가? 잡혀간 자들을 위해서 울어라, 잡혀간 자가 누구입니 까?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심을 받았는데 세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 육신은 살 았으나 사망의 권세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울어라 그 말씀입니다. 열매 없는 죽음에 있는 그들을 위해서 울어야지 죽은 시체를 붙들고 울고 있느냐 그것입니다.

     

    21절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내가 모압으로 나갈 때에는 남편도 있고 두 아들도 있고 재산도 풍족하였으니 그 모든 풍족한 것들이 나를 모압 땅으로 이끌어 갔더니 내 속 생명을 살려 주시고, 그 생명을 살려 주신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남김 없이 털어 버리고 빈손으로 돌아 오게 했는데 이 빈손으로 돌아오게 한 것이 복이라는 말씀입니까? 저주라는 말씀입 니까? 이게 복이란 말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면 풍족한 재산이 잘못 되었습니까? 그 재산을 잘못 쓰는 남편과 아들이 잘 못 되었습니까? 재산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예요 그 재산을 바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불태워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멜렉에게 그 많은 재산을 주셨을 때에 하늘나라의 상급을 쌓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그것으로 인해서 모압 땅으로 갔으니까 다 불타 버렸습니다. 재산만 불탔습니까? 하늘나라의 상급도 불타고 있는 것을 보아야지요, (눅16:24) 부자가 보는 음부의 불꽃은 하나님께서 부자를 위해서 상급과 영광을 예비해 놓고 그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부자 되게 복을 주셨는데 연락하는 그의 생활이 다 불태우고 있습니다.

     

    (창16:19)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 하심이었더라 왜 인자를 더 하시느냐 천사들도 우리가 보는 인자를 더 하시려면은 그 딸들과 롯의 식구들이 한 손에 보따리 하나씩 들 고 남은 것은 천사들이 그것을 몽땅 들고 나와 주었으면 그게 인자를 더하여 주는 것인데 다 빼앗아 버리고 사람만 이끌어 내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볼 때에 인자를 더한 것 같습니까? 더 망하게 한 것 같습니까? 보따리 빼앗아 놓고 빈 손들고 나오게 한 것이 인자를 더 한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여호와께서 남편과 두 아들과 풍족한 재물에 이끌린 나를 징벌하셨다 남편과 두 아들이 재물을 이끌고 모압으로 갈 때에 나오미도 이끌려 갔지요 이끌려 간 나를 여호와께서 징벌하시지 않으셨느냐 내 속 생명을 살려 주신 전능 자는 내 마음속에 심한 괴로움을 더하셨느니라, 그 때에 이끌려 가면서 마음에 괴로움을 가지고 이끌려 갔습니까?

     

    괴로움 없이 끌려갔습니까? 괴로움을 가지고 이끌려 갔지요 그러니까 이끌려 가긴 가면서도 그 때에 내 마음에 얼마나 괴로움을 더 하셨는지 너희가 아느냐 그것이 여호와께서 내 게 주신 마음의 괴로움이고, 만약에 여호와께서 내 생명을 살려 주지 않으셨다면 기뻐서 그 아비를 따라 가는 두 아들과 같이 되지 않겠느냐 말씀하십니다. 육신적으로는 징벌을 받았고 마음속에는 옥에 있는 영이 되어 얼마나 큰 고통 중 에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3:19) 옥에 있는 영이 무엇입니까? 천주교에서는 지금 연옥설을 여기서 만 든 모양인데 옥에 있는 영이라 계속해서 노아의 때를 말씀하셨지요 노아가 하나님 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셔서 방주를 지을 때에 나 혼자 구원받자 하고 노아가 외딴 곳에 가서 몰래 지었나요 방주를 지으면서 너희들도 방주를 지어라 하나님께 서 홍수로 심판하신다 하며 얼마나 전도했습니까?

     

    노아는 분명히 방주를 지으면서 나가서 너희도 방주 지으라고 했지 자신은 방주 를 짖지 않으면서 너희들은 방주 지으라고 떠들지는 않았습니다. 저를 책망하면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내 방주는 지으려고 생각지도 않고 남보 고만 방주 지으라고 떠들고 다니니 그 사람들이 방주를 지을까요 안 지을까요?

     

    노아가 방주를 지으면서 방주를 지으라고 해도 안 짓는데 자기는 안 지으면서 방 주 지으라고 떠들고 다니면 이 사람아 너도 안 지으면서 누구보고 방주 지으라고 그러느냐 그럴까요 안 그럴까요 내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방주를 짓고 있느냐 방주를 지으면서 지으라고 해야지 나는 짓지 않으 면서 방주 지으라고 떠들고 다니다가 홍수가 나면 나도 죽을 것이지요,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육신의 본향으로 돌아 온 것만 보는 너희들은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마침내 열매 를 맺는 땅으로 인도하시는 참 기쁨을 보지 못하는 너희들인데 나오미라고 할 수가 있느냐, 우리 말로 하면은 쫄당 망해서 돌아오는데 뭘 보고 너희가 나를 나오미라고 하느 냐 내 이름만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이 기쁨을 보는 자 가 되어 주려무나 그것을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스라엘 본토에 돌아가 있는 그들은 이 나오미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께 서 우리를 돌아 보사 우리 이스라엘을 회복 시켜 주셨다 그것만 보고 있습니다.

     

    22절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이방에 나갔던 나오미가 이방인의 땅에서 그 자부가 된 여인 룻을 데리고 함께 돌아온 것을 보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비록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과 재산에 이끌려 모압 땅에 가서 십년 동안 허송 세월 한 것 같지만은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의 기도를 응답 하사 모압 여인 룻을 하 나 살려서 데리고 돌아오게 하였느니라,

     

    (롬11:19) 말씀을 우리가 잘 보아야 되는데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 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 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말씀하시는데 원 가지는 이스라엘을 말하지요 율법을 가지고 있던 이스라엘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다 쫓겨났지요, 그러므로 인해서 이방인 되었던 우리들이 그 복음을 받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 고 우리는 그 때에는 돌감람나무 되었던 우리들이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서 살았거든 하물며 원가지인 그들이야 얼마나 접붙임을 받기가 쉽겠느냐 말씀하시는 데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자기네들은 선민이라고 하면서도 예수는 죽어라고 안 믿습니다. 예수님의 유적까지 팔아먹으면서도 안 믿고 있지요 저들이 예수를 믿 겠나 그런 생각이 들어가겠지만 너희들을 생각해 보라 그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던 조상을 둔 우리들이지요 그런데도 하나님이 너희 를 믿게 했거든 하물며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율법까지 가지고 있던 그들이야 하나 님께서 믿음으로 돌이키기가 너희보다 얼마나 더 쉽겠느냐 그것입니다.

     

    천년 왕국 때에 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찬송케 하실 것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이 구원 역사를 보는 자가 나오미와 함께 누리는 기쁨을 가지게 되느니라,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보리 추수 시작할 때와 타작할 때를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룻3:2)에서는 보리 타작할 때라 말씀했고 여기는 보리 추수할 때를 말씀했는데 보리 추수할 때는 언제 로부터 언제까지를 말씀할까요, 이스라엘을 1948년 5월에 회복 시켜 주셨는데 그 때로부터 첫 삼년반 환난이 시작 될 때까지는 보리 추수하는 때이고 첫 삼년반 환난의 때는 타작할 때입니다. 구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삼년반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낫으로 베어 단으로 묶이어 있어야 그 때에 단 을 타작 마당에 끌어다 놓고 타작해서 그 알곡을 창고에 넣을 수가 있는 것과 같이 첫 삼년반 환난 전에 단에 묶이어 있지 못하면 타작 마당에 들어 갈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는 첫 삼년반 환난의 때를 예언하여 순교자의 믿음을 준비 하여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 책에 그 이름이 녹명 되게 하는 때요 (단 12:11-12) 1290일부터 1335일의 때까지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1290일은 이스라엘 회복을 말씀하셨고, 1335일은 환난이 시작 되는 때 곧 타 작을 시작할 때를 말씀하십니다.

     

    (요4: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말씀했 고, (요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말씀하 셨습니다. 여기 넉 달은 이천 년을 말씀합니다. 일년은 열 두 달이니까 3분의 1이고, 성령 시대의 이천 년이 지나야 심판 때가 이른다 너희들이 그렇게 보고 있지만은 예수께 서는 지금이 추수 때라 말씀하십니다. 왜 지금이 추수 때입니까?

     

    우리가 영생의 열매를 하나 맺으면은 이 다음에 추수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가지고 올라가게 하나요 성령 시대 이천 년이 지나서 그 마지막 때에 심판할 것만 보고 있지 말고 오늘 한 날 한 날의 모든 열매가 그때 그때 하늘의 창고에 쌓여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24:32) 그러므로 보리 추수 시작하시는 그때 곧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이루신 주께서 이미 추숫군들을 보내고 계시느니라 무화과나무의 비 유를 배우라 분명히 말씀하시고 그 끝에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면 그 날과 그 때라 한 날을 천년으로 말씀하실 때도 있고 한 시간을 천년으 로 말씀하실 때도 있지요 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말씀하시고 그 날과 그 때를 모른다고 말씀하셨고, (마25:13)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신 말씀은 기름 가진 처녀들에게 하신 말 씀입니다. 그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운 자들과 기름을 가진 처녀들이라야 그 날 과 그 때가 어느 때를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이지 그것을 가지지 아니한 자들은 볼 수 없습니다.

     

    (출17:11) 엘리멜렉과 같은 교역자로 인하여 모압으로 끌려가는 교회가 되고 있 지 아니하냐 왜 이 말씀 드리는가 하면은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 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지요, 그러면 교역자가 손을 들면 하늘 위엣 것을 가르치는데 교역자가 하늘 위엣 것을 보면 손을 들어서 위엣 것을 가르쳐 줄 것이고 교역자라고 하면서 아랫것을 보면 손을 아래로 내리게 되지요 그러면 교인들이 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말렉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지 않겠느냐, 온 교회가 세상으로 치우쳐 가는 그것을 보고 괴로워하는 나오미와 같은 성도는 몇 사람이나 있느냐 그것도 보아야지요,(눅18:8) 엘리멜렉 한 사람으로 인하여 자기와 두 아들은 죽었고 나오미로 인하여 두 사람 자부 가운데서 한 생명이 살았습니다.

     

    그러면 왜 나오미의 기도로 말미암아 남편과 두 아들이 살았으면 더 좋겠는데 나 오미가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겠습니까? 그런데 엘리멜렉과 두 아들은 죽고 모압 사람 가운데서 며느리로 맞았던 두 사람 가운데서 하나는 살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까? 한번 육신에 치우친 자들은 그만큼 돌이 키기가 어려우니라 차라리 이방인 되었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가 더 쉽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렵다 말씀했지요 바로 그 말씀입니다. 왜 부자라고 했나요 세상에 쌓아 놓고 기뻐하는 부자입니다. 부자 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욥도 부자였는데 내 것으로 가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고 여호와께서 취하여 가신 것인데 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나오미나 룻과 같이 다 남편이 죽어서 과부가 되어야 여기에 들어가겠느냐 (요4:16)야곱의 우물에 물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 남편을 데려 오라 나 는 남편이 없나이다 대답하는 여인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지요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느냐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하셨습니다.

     

    어느 남편을 남편으로 섬기느냐 너는 율법을 남편으로 가지고 있지만은 없다고 대답했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남편과 함께 살고 있지만은 내 남편만 남편으로 생각지 말고 내 진짜 남편인 신령한 예수를 보는 자가 되라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나오미와 같은 교역자 앞에도 야곱과 에서가 있습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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