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장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ㅇ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 '때와 시기'는 행 1:7에도 언급되었다. 어거스틴
(Augustine)에 의하면 '때'(크로논)는 '시간의 연장'(stretches of
tome)이며, '시기'(카이론)는 '적절한 순간'(opportune moments)이라
고 한다. 이와 거의 같은 견해로서 혹자는 '크로논'은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며 '카
이론'은 질적(質的)인 시간으로서 '파루시아'('도래','강림')
를 예측케 하는 시간으로 해석한다(Morris).
ㅇ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 '때와 시기'에 대하여 쓸 필요가 없는 이유는 바울이
이미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에 일어날 사건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살후 2:5).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ㅇ주의 날 - '주의 날'은 구약에 나오는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로움과 심판
을 나타내시는 날이다(욜 2:31; 암 5: 18;말 4:5). 이는 초대교회에서 예수가 '주'
(퀴리우)로 인식되면서 '주의 날'(살후 2:2; 벧후 3: 10), '그리스도
의 날'(빌 1:10;2:16), '그리스도 예수의 날'(빌 1:6), '우리 주 예수의 날'(고후1: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고전 1: 8), '그날'(고전 3:13; 살후 1:10; 히
10:25)등으로 불렸다.
ㅇ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 이것은 '인자의 오심'에 대한 예수의 교훈(마 24:43;
눅 12:40)에 근거해서 한 말이다. 이 비유의 요지는 신자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하
는 것이다(눅 12:40;17:24;벧후 1:10, 11;계 3:3;16:15).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ㅇ저희가 - '저희'는 4절의 '형제'와 대조를 나타내는 말로서 비그리스도인을 지칭한
다.
ㅇ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 '평안'(에이레네)은 내적인 '마
음의 평온'을 뜻하며 '안전'(아스팔레이아)은 '외부의 위협으로
부터의 안전'을 뜻한다. 바울은 본 구절을 통하여 예수께서 '인자의 오심'에 대해 하
신 말씀(눅 17:26-30), 즉 노아의 때와 소돔성의 멸망(창 6, 19장)을 데살로니가 교인
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Bruce).
ㅇ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 이 비유는 예기지 못할 때 갑자기 멸
망이 덮쳐오게 됨을 생동감(生動感)있게 표현한 것으로서 구약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
되었다(사 13:8;21:3;렘 4:31;호 13:13;미 4:9).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ㅇ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 '어두움'(스코테이)은 '불신앙의
상태) '임박한 멸망에 대한 무지, 무감각한 도덕심'등을 의미한다(Lenski, Frame). 또
한 롬 13: 12에서 바울은 '어두움의 일을 벗으라'고 권면한 바 있다.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ㅇ너희는 다 - '다'는 데살로니가 교인들 전부를 포함한다. 혹자는 이 말이 믿음이
약한자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말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Frame).
ㅇ빛의 아들이요 - '빛의 아들'이라는 말은 요 12:36의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
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와 엡 5:8의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
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빛의
아들'이란 '빛속에 있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며(Morris), 하나님은 빛이신 고로 그의
자녀들의 삶은 '빛'에 의해 특징지워진다(Bruce).
ㅇ낮의 아들이라 - '낮'(헤메라스)을 '빛'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간
주해 '빛의 아들'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는 견해(Lightfoot)와 '주의 날'을 그의 '재림
의 날'로 확대 해석하여, '낮의 아들'을 '파루시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로 해석하는
견해(Bruce, Morris)가 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ㅇ그러므로 - 헬라어 '아라 운'은 어떠한 주장에 대해 필연적인
결론을 이끌어주는 접속사로서 바울이 일상적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ㅇ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 '다른이들'은 '비그리스도인'을 언급한 말이며, 여
기서 사용된 '자다'의 헬라어 '카듀도멘'은 4:13-15에서 사
용된 '자다'(코이마오)와는 다른 의미로서 도덕적인 무감각 상태를 나
타낸다.
ㅇ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 '깨어'(그레고로멘)는 영적인
각성(覺醒)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도 이 용
어를 사용하여 재림시의 각성에 관해 말씀하셨다(마 24:42, 43;25:13;막 13:35). '근
신하라'의 헬라어 '네포멘'은 원래 '술취하지 말고 맑은 정신을
가지라'는 뜻으로 도덕적으로 단정한 생활을 강조한 말이다. NIV는 이 말을 '자제하
다'(self-controlled)로 번역하고 있다.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ㅇ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
니라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사실적인 표현이다. 바울은 본절을 통하여 6절과 8절의
'근신'을 강조한다.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ㅇ낮에 속하였으니 - 5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믿음과 사랑의 흉배 - 바울은 '근신'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군대 장비의 상
징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바울이 '근신'에 관한 것으로 군대 장비의 상징적인 표현
을 빌린 것에 대해 학자들의 분명한 견해는 없으나, 혹자에 의하면 밤에 근무하는 초
병(哨兵)에게 효과적인 경계를 위해 맑은 정신이 필요한 것과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들에게 '근신'이 필요한 것을 바울이 연계시켜 말한 것이라고 한다(Frame).
ㅇ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 믿음, 소망, 사랑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갖추
어야 할 신앙의 3요소이다. 바울은 여기서 특별히 구원의 소망을 강조하므로 주의 재
림에 초점을 둔 본 서신의 주제와 일치시키고 있다. 여기에서의 구원은 예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되는 종말론적 의미를 갖고있다(Morris).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ㅇ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어니요 - '세우심'의 헬라어
'에데토'는 롬 8:29의 '예정'같이 확실한 말은 아니지만, 인간의 구원
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주는 말이다(Milligan). '노하
심'(오르겐)은 '파루시아' 직전에 있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가리킨
다(Thomas, Bruce).
ㅇ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 '얻게 하신'의 헬라어 '페리포이에신'
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페리포이에신'을
능동적으로 해석하여 '얻다', '획득하다' 등으로 해석한다(Hiebert, hendriksen). (2)
'페리포이에신'을 수동적으로 해석하여 '구원에 입양되다'로 해석한다(Lightfoot).
전자는 구원을 얻기 위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며(살후
2:15;히 10:39), 후자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다(엡 1:14 ; 벧전 2: 10). 본절에서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종국적
인 구원으로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 근거한 것임을 본절
과 다음 절에서 밝히고 있으므로 (2)의 견해가 보다 타당하다.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ㅇ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 이 말은 데살로니가전후서를 통하여 여기에 단한
번 언급되었다. 바울이 본 서신을 쓰고 있을 때 그는 고린도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에 관해 증거하고 있었다(고전 2: 1-10;15:3-19). 그리고 본 서신보다 나중에 쓰
여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등 네개의 중요한 서신에서 바울은 이 주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본 서신에서 이것이 간략하게 한마디로 언급되어
있는 것은 바울이 이 주제를 그의 신학(神學)의 기초로서 이미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게 가르쳤기 때문이다(행 17: 2, 3).
ㅇ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 '깨든지 자든지'의 헬라어 '에이테 그레고로멘 에
이테 카듀도멘'
에 대한 해석은 다음 두 가지로 대별된다. (1) 이 말을 윤리적으로 해석하여, 파루시
아에 대하여 '윤리적 경건이 준비되었든지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로 해석하는 것이
다(Thomas). 그 이유로는 첫째,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장래의 구원이 완전히 주어졌
으므로 신자들의 윤리적인 문제는 구원과 관련이 없으며 둘째, '깨다'의 헬라어 '그
레고레오'가 육체의 생명에 비유되어 사용된 예가 성경에 나타나
지 않는다는 것을 들고 있다(Milligan). (2) 이 말을 은유적으로 해석하여, 파루시아
때 '살았든지 죽었든지'로 해석하는 것이다(Bruce, Morris). 그 이유로는 첫째, 재림
과 관련되는 본절의 주제가 4: 13-18에 언급된 주제와 일치하며, 둘째, '자다'의 헬라
어 '카듀도'가 '죽다'의 비유적인 뜻으로 사용된 예가 성경에 충분히 있다는 것을 들
고 있다(단 12: 2;요 11:11;엡 5:14). 이상의 두 견해 중 후자가 유력하다.
ㅇ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 '살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제소멘'
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얻게 된 '부활의 생명'을 의
미하며 9절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종말론적(終末論的)인 의미를 갖는다.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것 같이하라
ㅇ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 '권면하고'의 헬라어 '파라칼레이테'
는 '충고하다', '용기를 북돋우다'의 의미도 있으나, 본절
에서는 '위로하다'의 뜻이 강하다(Thomas). 또한 '덕을 세우기를'로 번역된 헬라어
'오이코도메이테'는 원래 '집을 세우다'의 뜻으로 공관복
음에서는 문자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고(마 7:24, 26;16:18), '교회의 성장'을 의미할
때도 사용되었다(행 9:31;엡 2:20-22;4:12). 여기서는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도
우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영
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살지 말고
서로의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것을 가르쳤다.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ㅇ너희에게 구하노니 - '구하노니'의 헬라어 '에로토멘'은 '요
청하다' '간청하다'의 뜻으로 바울의 겸손한 태도를 나타내준다.
ㅇ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이 세 단어는 모두 현재분사로서 하나의 관사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은 교회 안에서 세 가지 역할을 담당했던 하나의 그룹이 있었음을 나타낸
다. 혹자는 이 그룹이 '장로'들의 모임이었다고 주장한다(Morris). 당시에는 교회가
아직 조직화되지 못하였으므로 위와 같은 주장은 옳지 않다고 하는 견해도 있으나, 행
11:30;14:23을 볼 때 그전부터 '장로들'이 교회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수
고하고'(코피온타스)는 '신자들의 신앙을 지도하기 위해서 노
력한다'는 뜻으로 '다스리며'와 '권하는'의 두 단어를 포괄한다(Thomas).'다스리며'
(프로이스타메누스)는 '교인들을 치리(治理)한다'는
뜻이며(딤전 3:4, 5, 12), '권하는'(누데툰타스)은 '성
도들의 일상적인 삶을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훈계한다'는 의미이다.
ㅇ너희가 알고 - '알고'의 헬라어 '에이데나이'는 '가치를 알다'
는 뜻으로 NIV에는 '존경하다'(respect)로 번역되었다.
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ㅇ저의 역사로 말미맘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 '여기며'의 헬라어 '헤게
이스다이'는 단순히 '생각하다'의 의미를 넘어 '존경하다'
(esteem), '존중하다'(respect)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가장 귀히 여기며'는 세 번
강조된 형태로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의 영적인 지도자들을 최대한 존
경하고 순종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그들이 존경할 대상은 '장로' 혹은 '감독'들이었
을 것이다(Thomas). 그런데 그들을 존경하고 귀히 여겨야 할 이유는 그들의 직책 때문
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 즉 그들의 봉사와 수고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입각한 것이다(막 10:42-45;눅 22:24-27).
ㅇ너희끼리 화목하라 - '화목'과 '평화'에 대한 바울의 요청은 다른 서신에서도 공통
적으로 강조된 것이었다(롬 12:18;14:19;고후 13:11;엡 4:3;골 3:15;딤후 2:22;히
12:14).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ㅇ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 크리소스톰(Chrysostom)과 그 외 초대 교회 교부들
은 바울의 이 강력한 지시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혹자는
이에 반대하면서 이 말씀이 교회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전체 교인들을 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는 다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1) 본문이 교회 지도자
들에게만 주어진 말씀이라고 본다면 본절의 '형제들'이란 말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결
과를 낳게 된다. (2) 본절과 15절의 내용과 유사한 롬 12:14-17에서도 교회 전체를 대
상으로 교훈하고 있다(Morris, Thomas).
ㅇ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 '규모없는 자들'의 헬라어 '아탁투스'
는 원래 군사 용어로서 낙오한 병사에 대해 사용한 말이었다. 그들은 훈련받지
못한 병사로서 대열을 흩뜨리는 자들이었다. 본절에서 이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신세를 지며 사는 게으른자들을 의미한다(Moffatt). 이들은 4:11의 명
령을 무시하는 자들이었다. 또한 '권계(勸戒)하며'의 헬라어 '누데테이테'
는 12절의 '권하는'(누데툰타스)과
동일한 뜻의 단어로서 '충고하다'(admonish, NIV)는 의미이다.
ㅇ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 '마음이 약한 자들'
(올리고프쉬쿠스)이란 '동료들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자들'(4:13)이나 그 외의 어려운
사정으로 '낙심하고 있는 자들'을 가려킨다. 또한 '안위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뮈데이스데'는 '위로하다'(comfort), 혹은 '용기
를 북돋우다'(encourage)의 뜻이다.
ㅇ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 '힘없는 자들'(아스데논)이란
육체적으로 약한 자들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자들'을 가리킨다. '붙들어 주며'의 헬라
어 '안데케스데'는 '단단히 붙잡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지탱
해 주다' 혹은 '지지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롬 15: 1).
ㅇ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 '오래참는 것'(마크로
뒤미아)는 갈 5:22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
님의 속성이기도 하다(출 34:6;시 103:8). 사도 바울은 고전 13:4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말하였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오래 참고 용납할 것을 가르쳤다(엡 4:2;
골 1:11;3:12).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ㅇ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 바울은 이것과 거의 같은 말을 롬 12:17에서도 하
였다. 이와 같은 교훈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본적인 가르침으로서 예수의 말씀에 기
원을 둔 것이다(마 5:44-48;눅 6:27-36). 유대인들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
는 출 21:23, 24의 모세 율법을 근거로 보복을 정당화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법의 정
신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재판하라는 것이지 피해를 준 상대방에게 보복하라는 뜻이 아
니었다.
ㅇ항상 선을 좇으라 - '선'의 헬라어 '아가돈'에 대해 혹자는 '유익
이되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며(Lightfoot) NIV는 '친절한 것'(to be kind)으로 번역하
고 있다. 이것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이되는 것을 뜻한다(Bruce).
16 항상 기뻐하라
ㅇ항상 기뻐하라 - '항상 기뻐하라'(판토테 카
이레테)는 원하는 일이 성취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렵거나 힘든 일에도 기뻐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기쁨은 인간의 감정을 통해서
나타날수 없는 바,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다(롬 14:17;갈 5:22). 혹자는 빌 4:
4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와 같이 본절도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의미한다고
한다(Bruce).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ㅇ쉬지 말고 기도하라 - 엡 6:18에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라고 기록하고 있
으며 예수께서도 눅 18:1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셨다. 또
한 롬 12:1에는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혹자는 이 구절이 본절에
가장 가까운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Bruce). 한편 '쉬지 말고 기도하라'
(아디알레이프토스 프로슈케스데)는 말은 24
시간 입술을 움직여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부단히 의지하는 자세나
(Thomas),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준비를 갖추는 것(Lenski)등 항상 기도
하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라는 의미이다.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ㅇ범사에 감사하라 - '범사'의 헬라어 '엔 판티'는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라는 의미이다(in all circumstances, NIV). 성도는 이미 영원한 천국을 소
유하였으므로 모든 상황에 있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한편 감사는 1: 2에 기록된 대로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빌 4: 6에는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기록되어 있다.
ㅇ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4: 3에 언급된 바 '신자들의 성화'(sanctification)에 있다. 혹자는 '기뻐하고, 기도
하며, 감사하는 것'이 성령께서 신자들을 성화시키는 내적인 역사로 본다(Bruce).
한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장 원초적(原]初的)이며 기본
적인 요소이다. '그리스도 예수 밖에서' 신자들의 성화나 하나님의 뜻은 생각할 수 없
다.
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ㅇ성령을 소멸치 말며 - '소멸치'의 헬라어 '스벤뉘테'는 '불을
끄다'(quench, extinguish)를 의미한다. 따라서 '성령을 소멸치말며'는 '성령의 불을
끄지 말며'로 번역할 수 있다. 이렇듯 성경은 성령을 '불'로 묘사한 예가 많이 있다
(마 3: 11;눅 3:16;12:49;행 2:3). 고린도 교회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무절제하게 사용
하여 광신적 태도가 만연했음에 비해(고전 12-14장),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오히려
성령의 활동을 제한하거나 배격하는 일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ㅇ예언을 멸시치 말고 - '예언'(프로페테이아스)에 대하여
(1)직접 계시를 통한 예언과, 구약의 말씀이나 사도들의 교훈을 해석하여 가르치는 은
사로서의 예언, 이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는 견해와(Lenski) (2) 데살로니가 교회에
서 있었던 '예언'은 예수의 재림과 관련된 앞일을 예언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Morris). 일반적으로 전자의 견해가 유력하다. 한편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예언'
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이유는 예언의 은사에 비해 방언의 은사가 훨씬
더 기적적이며 신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고전
14:5) 바울은 예언의 은사를 더 큰 은사로 강조한 바 있다(Alford).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ㅇ범사에 - '범사'(판타)에 대하여 (1) 신자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모
든 것(Lenski), (2) 19,20절의 '성령의 은사'라는 범위안에서의 모든 것(Thomas),
(3) 예언의 은사에 국한되는 것(Bruce)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두번째 견
해가 가장 유력하다.
ㅇ헤아려 - '헤아려'의 헬라어 '도키마제테'는 '시험하
다'(test), '검사하다'(scrutinize)의 뜻으로 동전이나 금속을 시금(試金)하는뎨 사
용되는 용어이다. '성령의 은사'의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기준은 '예수를 주(Lord)
로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이며 또다른 기준은 '교회의 덕을 세우며 사랑의 공
동체를 이루는 데 기여하는가'의 여부이다(Bruce, Thomas).
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ㅇ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 '모양'(에이두스)은 '외형'
(appearance)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종류'(kind, NIV)를 뜻한다. 또한 '모양이라도'
에서 '도'(even)는 원문에는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본절을 직역하면 '모든 종류의
악을 버리라'이다.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ㅇ평강의 하나님 - 이 문구는 바울 서신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롬 15:33;16:20;빌
4:9;고후 13:11;히 13:20). 바울이 하나님을 '평강'(에이레네스)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과 자신 사이에 평화를 이룩하신 평화의 근원이시기 때문이었다(골 1:20).
ㅇ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 '온전히'의 헬라어 '홀로텔레이스'
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됨을 가리킨다. 이러한 '성
화'(sanctification)는 내주(內住)하는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4:8;롬 15:16).
ㅇ영과 혼과 몸 - 인간의 보편적 구성 요소와 관련되는 본문은 소위 말하는 삼분설
또는 이분설 논쟁이 제기되는 구절이다. 우선몸은 순수하게 물질적인 부분, 즉 육신을
가리킨다. 다만 여기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영'(프뉴마) 과
'혼'(프쉬케)의 차이점이다. (1) 삼분설. 그리스 계통의 교부들(Irenaeus,
Chrysostom)은 영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인간의 이성적 부분, 즉 양심이나 의지와 관련
되어 있는것에 반해, 혼은 동물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생명이나 감정,감
각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였다. (2) 이분설. 성경에는 인간의 본성을 거의 대부분
혼과 몸(창 2: 7; 마 6:25), 영과 몸(전 12:7;고전 5:3, 5)으로 구분하여 이분법적인
분류법을 말함으로 혼과 영을 혼용하고 있다. 바울은 본절에서 인간의 본성을 영과 혼
과 몸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은 당시 그리스의 사고 방식에 젖어있
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삼분법적인 표현을 사용했거나 또는 수사학
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서, 실상은 성도들의 전인격(全人格)을 가리킨 말이다. 이
의견에 대해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동의한다(Morris, Bruce, Milligan).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ㅇ너희를 부르시는 이느 미쁘시니 - '미쁘시니'의 헬라어 '피스토스'
는 '신실하다'(to be faithful)는 뜻이다. 또한 '부르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칼
론'은 현재 분사로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부르시는 부르심은 언제까
지나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ㅇ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 당신의 백성의 삶을 성화시키는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 이들을 끝까지 지키고 보호
하실 것이라는 바울의 확신이다. 빌 1: 6에서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하였다.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ㅇ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한 바울과 그 일
행은 이번에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바
울은 영적으로 탁월한 지도자였으나 그에게도 믿는 형제들의 기도의 지원이 필요했다.
바울의 이러한 기도 요청은 그의 다른 서신에도 많이 나타난다(롬 15:30;엡 6:19;빌
1:19;골 4:3;살후 3:1;몬 1:22).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ㅇ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 '입맞춤'(필
레마티)으로 인사하는 법은 고대 동방에서 유행하던 관습으로 신분이 같은 사람들끼리
는 빰에 입맞추었고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는 손이나 발, 혹은 무릎이나 가슴 등에 하
였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가 유대인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후 그리스도인 사회로
흘러들어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인사법이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인사법은 2,3세기경
까지 교회에서 통용되었으나 폐단이 많아 초대 기독교 총회에서 그것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만들었으며 후에는 폐지되었다. 초대 교회의 '거룩한 입맞춤'은 신앙 공동체
를 하나로 묶어주는 구실을 하였을 것이다(Bruce). 한편 '입맞춤'으로 인사하라는 바
울의 요구는 그의 다른 서신들에서도 등장한다(롬 16:16;고전 16:20;고후 13:11;벧전
5:14).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ㅇ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 '명하
노니'의 헬라어 '에노르키조'는 '맹세하다', '엄숙히 약속하
다'의 강의형이다. 따라서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
희를 맹세시킨다'는 뜻이다. 바울의 이런 강한 어투로 보아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본
서신이 교인들 모두에게 다 읽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 원인에
대하여 다앙한 견해가 있다. (1) 특정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4:13-18)에게만
읽혀질 가능성 있기 때문이다(Ellicott). (2) 데살로니가 교회 내에 잘못된 교리를 가
르치는 자들이 있었음을 바울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Lightfoot, 살후 2:2, 3).
(3) 데살로니가 교회 내에 이방인 회심자들과 유대인 회심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
로 모임을 달리 가졌으며 본 서신은 이방인 회심자들에게 보내진 것이었으므로 바울은
유대인 회심자들에게도 본 서신이 읽혀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Harnack).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신앙관을 형성하기를 바울이 원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읽어 들리라'의 헬라어 '아나그노스데나이'
는 문자적으로 '큰소리로 낭독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낭독했던 이유
는 서신에 쓰여진 문자를 독해할 만큼 교육받은 사람들이 교회 내에 많지 않고 사본
(寫本)을 만드는 일도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바울이 '큰 소리로 낭
독하라'고 말한 취지는 교회 전체의 모임에서 공식적으로 낭독하라는 것이었다고 본다
(Bruce).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ㅇ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은혜'(카
리스)는 본 서신 서두에서 인사말로 쓰여졌는데(1:1) 여기 끝나는 축복문에 다시 채택
되었다. 이와 같이 축복문은 바울 서신의 전형적인 형식으로서 그의 서신들에서 다양
한 길이로 나타난다(골 4:18;살후 3:18).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ㅇ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 '때와 시기'는 행 1:7에도 언급되었다. 어거스틴
(Augustine)에 의하면 '때'(크로논)는 '시간의 연장'(stretches of
tome)이며, '시기'(카이론)는 '적절한 순간'(opportune moments)이라
고 한다. 이와 거의 같은 견해로서 혹자는 '크로논'은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며 '카
이론'은 질적(質的)인 시간으로서 '파루시아'('도래','강림')
를 예측케 하는 시간으로 해석한다(Morris).
ㅇ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 '때와 시기'에 대하여 쓸 필요가 없는 이유는 바울이
이미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에 일어날 사건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살후 2:5).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ㅇ주의 날 - '주의 날'은 구약에 나오는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로움과 심판
을 나타내시는 날이다(욜 2:31; 암 5: 18;말 4:5). 이는 초대교회에서 예수가 '주'
(퀴리우)로 인식되면서 '주의 날'(살후 2:2; 벧후 3: 10), '그리스도
의 날'(빌 1:10;2:16), '그리스도 예수의 날'(빌 1:6), '우리 주 예수의 날'(고후1: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고전 1: 8), '그날'(고전 3:13; 살후 1:10; 히
10:25)등으로 불렸다.
ㅇ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 이것은 '인자의 오심'에 대한 예수의 교훈(마 24:43;
눅 12:40)에 근거해서 한 말이다. 이 비유의 요지는 신자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하
는 것이다(눅 12:40;17:24;벧후 1:10, 11;계 3:3;16:15).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ㅇ저희가 - '저희'는 4절의 '형제'와 대조를 나타내는 말로서 비그리스도인을 지칭한
다.
ㅇ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 '평안'(에이레네)은 내적인 '마
음의 평온'을 뜻하며 '안전'(아스팔레이아)은 '외부의 위협으로
부터의 안전'을 뜻한다. 바울은 본 구절을 통하여 예수께서 '인자의 오심'에 대해 하
신 말씀(눅 17:26-30), 즉 노아의 때와 소돔성의 멸망(창 6, 19장)을 데살로니가 교인
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Bruce).
ㅇ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 이 비유는 예기지 못할 때 갑자기 멸
망이 덮쳐오게 됨을 생동감(生動感)있게 표현한 것으로서 구약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
되었다(사 13:8;21:3;렘 4:31;호 13:13;미 4:9).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ㅇ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 '어두움'(스코테이)은 '불신앙의
상태) '임박한 멸망에 대한 무지, 무감각한 도덕심'등을 의미한다(Lenski, Frame). 또
한 롬 13: 12에서 바울은 '어두움의 일을 벗으라'고 권면한 바 있다.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ㅇ너희는 다 - '다'는 데살로니가 교인들 전부를 포함한다. 혹자는 이 말이 믿음이
약한자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말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Frame).
ㅇ빛의 아들이요 - '빛의 아들'이라는 말은 요 12:36의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
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와 엡 5:8의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
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빛의
아들'이란 '빛속에 있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며(Morris), 하나님은 빛이신 고로 그의
자녀들의 삶은 '빛'에 의해 특징지워진다(Bruce).
ㅇ낮의 아들이라 - '낮'(헤메라스)을 '빛'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간
주해 '빛의 아들'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는 견해(Lightfoot)와 '주의 날'을 그의 '재림
의 날'로 확대 해석하여, '낮의 아들'을 '파루시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로 해석하는
견해(Bruce, Morris)가 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ㅇ그러므로 - 헬라어 '아라 운'은 어떠한 주장에 대해 필연적인
결론을 이끌어주는 접속사로서 바울이 일상적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ㅇ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 '다른이들'은 '비그리스도인'을 언급한 말이며, 여
기서 사용된 '자다'의 헬라어 '카듀도멘'은 4:13-15에서 사
용된 '자다'(코이마오)와는 다른 의미로서 도덕적인 무감각 상태를 나
타낸다.
ㅇ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 '깨어'(그레고로멘)는 영적인
각성(覺醒)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도 이 용
어를 사용하여 재림시의 각성에 관해 말씀하셨다(마 24:42, 43;25:13;막 13:35). '근
신하라'의 헬라어 '네포멘'은 원래 '술취하지 말고 맑은 정신을
가지라'는 뜻으로 도덕적으로 단정한 생활을 강조한 말이다. NIV는 이 말을 '자제하
다'(self-controlled)로 번역하고 있다.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ㅇ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
니라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사실적인 표현이다. 바울은 본절을 통하여 6절과 8절의
'근신'을 강조한다.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ㅇ낮에 속하였으니 - 5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믿음과 사랑의 흉배 - 바울은 '근신'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군대 장비의 상
징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바울이 '근신'에 관한 것으로 군대 장비의 상징적인 표현
을 빌린 것에 대해 학자들의 분명한 견해는 없으나, 혹자에 의하면 밤에 근무하는 초
병(哨兵)에게 효과적인 경계를 위해 맑은 정신이 필요한 것과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들에게 '근신'이 필요한 것을 바울이 연계시켜 말한 것이라고 한다(Frame).
ㅇ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 믿음, 소망, 사랑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갖추
어야 할 신앙의 3요소이다. 바울은 여기서 특별히 구원의 소망을 강조하므로 주의 재
림에 초점을 둔 본 서신의 주제와 일치시키고 있다. 여기에서의 구원은 예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되는 종말론적 의미를 갖고있다(Morris).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ㅇ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어니요 - '세우심'의 헬라어
'에데토'는 롬 8:29의 '예정'같이 확실한 말은 아니지만, 인간의 구원
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주는 말이다(Milligan). '노하
심'(오르겐)은 '파루시아' 직전에 있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가리킨
다(Thomas, Bruce).
ㅇ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 '얻게 하신'의 헬라어 '페리포이에신'
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페리포이에신'을
능동적으로 해석하여 '얻다', '획득하다' 등으로 해석한다(Hiebert, hendriksen). (2)
'페리포이에신'을 수동적으로 해석하여 '구원에 입양되다'로 해석한다(Lightfoot).
전자는 구원을 얻기 위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며(살후
2:15;히 10:39), 후자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다(엡 1:14 ; 벧전 2: 10). 본절에서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종국적
인 구원으로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 근거한 것임을 본절
과 다음 절에서 밝히고 있으므로 (2)의 견해가 보다 타당하다.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ㅇ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 이 말은 데살로니가전후서를 통하여 여기에 단한
번 언급되었다. 바울이 본 서신을 쓰고 있을 때 그는 고린도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에 관해 증거하고 있었다(고전 2: 1-10;15:3-19). 그리고 본 서신보다 나중에 쓰
여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등 네개의 중요한 서신에서 바울은 이 주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본 서신에서 이것이 간략하게 한마디로 언급되어
있는 것은 바울이 이 주제를 그의 신학(神學)의 기초로서 이미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게 가르쳤기 때문이다(행 17: 2, 3).
ㅇ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 '깨든지 자든지'의 헬라어 '에이테 그레고로멘 에
이테 카듀도멘'
에 대한 해석은 다음 두 가지로 대별된다. (1) 이 말을 윤리적으로 해석하여, 파루시
아에 대하여 '윤리적 경건이 준비되었든지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로 해석하는 것이
다(Thomas). 그 이유로는 첫째,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장래의 구원이 완전히 주어졌
으므로 신자들의 윤리적인 문제는 구원과 관련이 없으며 둘째, '깨다'의 헬라어 '그
레고레오'가 육체의 생명에 비유되어 사용된 예가 성경에 나타나
지 않는다는 것을 들고 있다(Milligan). (2) 이 말을 은유적으로 해석하여, 파루시아
때 '살았든지 죽었든지'로 해석하는 것이다(Bruce, Morris). 그 이유로는 첫째, 재림
과 관련되는 본절의 주제가 4: 13-18에 언급된 주제와 일치하며, 둘째, '자다'의 헬라
어 '카듀도'가 '죽다'의 비유적인 뜻으로 사용된 예가 성경에 충분히 있다는 것을 들
고 있다(단 12: 2
ㅇ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 '살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제소멘'
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얻게 된 '부활의 생명'을 의
미하며 9절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종말론적(終末論的)인 의미를 갖는다.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것 같이하라
ㅇ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 '권면하고'의 헬라어 '파라칼레이테'
는 '충고하다', '용기를 북돋우다'의 의미도 있으나, 본절
에서는 '위로하다'의 뜻이 강하다(Thomas). 또한 '덕을 세우기를'로 번역된 헬라어
'오이코도메이테'는 원래 '집을 세우다'의 뜻으로 공관복
음에서는 문자적인 의미로 사용되었고(마 7:24, 26;16:18), '교회의 성장'을 의미할
때도 사용되었다(행 9:31;엡 2:20-22;4:12). 여기서는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도
우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영
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살지 말고
서로의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것을 가르쳤다.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ㅇ너희에게 구하노니 - '구하노니'의 헬라어 '에로토멘'은 '요
청하다' '간청하다'의 뜻으로 바울의 겸손한 태도를 나타내준다.
ㅇ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이 세 단어는 모두 현재분사로서 하나의 관사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은 교회 안에서 세 가지 역할을 담당했던 하나의 그룹이 있었음을 나타낸
다. 혹자는 이 그룹이 '장로'들의 모임이었다고 주장한다(Morris). 당시에는 교회가
아직 조직화되지 못하였으므로 위와 같은 주장은 옳지 않다고 하는 견해도 있으나, 행
11:30;14:23을 볼 때 그전부터 '장로들'이 교회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수
고하고'(코피온타스)는 '신자들의 신앙을 지도하기 위해서 노
력한다'는 뜻으로 '다스리며'와 '권하는'의 두 단어를 포괄한다(Thomas).'다스리며'
(프로이스타메누스)는 '교인들을 치리(治理)한다'는
뜻이며(딤전 3:4, 5, 12), '권하는'(누데툰타스)은 '성
도들의 일상적인 삶을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훈계한다'는 의미이다.
ㅇ너희가 알고 - '알고'의 헬라어 '에이데나이'는 '가치를 알다'
는 뜻으로 NIV에는 '존경하다'(respect)로 번역되었다.
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ㅇ저의 역사로 말미맘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 '여기며'의 헬라어 '헤게
이스다이'는 단순히 '생각하다'의 의미를 넘어 '존경하다'
(esteem), '존중하다'(respect)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가장 귀히 여기며'는 세 번
강조된 형태로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의 영적인 지도자들을 최대한 존
경하고 순종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그들이 존경할 대상은 '장로' 혹은 '감독'들이었
을 것이다(Thomas). 그런데 그들을 존경하고 귀히 여겨야 할 이유는 그들의 직책 때문
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 즉 그들의 봉사와 수고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입각한 것이다(막 10:42-45;눅 22:24-27).
ㅇ너희끼리 화목하라 - '화목'과 '평화'에 대한 바울의 요청은 다른 서신에서도 공통
적으로 강조된 것이었다(롬 12:18;14:19;고후 13:11;엡 4:3;골 3:15;딤후 2:22;히
12:14).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ㅇ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 크리소스톰(Chrysostom)과 그 외 초대 교회 교부들
은 바울의 이 강력한 지시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혹자는
이에 반대하면서 이 말씀이 교회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전체 교인들을 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는 다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1) 본문이 교회 지도자
들에게만 주어진 말씀이라고 본다면 본절의 '형제들'이란 말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결
과를 낳게 된다. (2) 본절과 15절의 내용과 유사한 롬 12:14-17에서도 교회 전체를 대
상으로 교훈하고 있다(Morris, Thomas).
ㅇ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 '규모없는 자들'의 헬라어 '아탁투스'
는 원래 군사 용어로서 낙오한 병사에 대해 사용한 말이었다. 그들은 훈련받지
못한 병사로서 대열을 흩뜨리는 자들이었다. 본절에서 이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신세를 지며 사는 게으른자들을 의미한다(Moffatt). 이들은 4:11의 명
령을 무시하는 자들이었다. 또한 '권계(勸戒)하며'의 헬라어 '누데테이테'
는 12절의 '권하는'(누데툰타스)과
동일한 뜻의 단어로서 '충고하다'(admonish, NIV)는 의미이다.
ㅇ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 '마음이 약한 자들'
(올리고프쉬쿠스)이란 '동료들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자들'(4:13)이나 그 외의 어려운
사정으로 '낙심하고 있는 자들'을 가려킨다. 또한 '안위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뮈데이스데'는 '위로하다'(comfort), 혹은 '용기
를 북돋우다'(encourage)의 뜻이다.
ㅇ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 '힘없는 자들'(아스데논)이란
육체적으로 약한 자들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자들'을 가리킨다. '붙들어 주며'의 헬라
어 '안데케스데'는 '단단히 붙잡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지탱
해 주다' 혹은 '지지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롬 15: 1).
ㅇ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 '오래참는 것'(마크로
뒤미아)는 갈 5:22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
님의 속성이기도 하다(출 34:6;시 103:8). 사도 바울은 고전 13:4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말하였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오래 참고 용납할 것을 가르쳤다(엡 4:2;
골 1:11;3:12).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ㅇ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 바울은 이것과 거의 같은 말을 롬 12:17에서도 하
였다. 이와 같은 교훈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본적인 가르침으로서 예수의 말씀에 기
원을 둔 것이다(마 5:44-48;눅 6:27-36). 유대인들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
는 출 21:23, 24의 모세 율법을 근거로 보복을 정당화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법의 정
신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재판하라는 것이지 피해를 준 상대방에게 보복하라는 뜻이 아
니었다.
ㅇ항상 선을 좇으라 - '선'의 헬라어 '아가돈'에 대해 혹자는 '유익
이되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며(Lightfoot) NIV는 '친절한 것'(to be kind)으로 번역하
고 있다. 이것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이되는 것을 뜻한다(Bruce).
16 항상 기뻐하라
ㅇ항상 기뻐하라 - '항상 기뻐하라'(판토테 카
이레테)는 원하는 일이 성취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렵거나 힘든 일에도 기뻐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기쁨은 인간의 감정을 통해서
나타날수 없는 바,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다(롬 14:17;갈 5:22). 혹자는 빌 4:
4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와 같이 본절도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의미한다고
한다(Bruce).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ㅇ쉬지 말고 기도하라 - 엡 6:18에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라고 기록하고 있
으며 예수께서도 눅 18:1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셨다. 또
한 롬 12:1에는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혹자는 이 구절이 본절에
가장 가까운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Bruce). 한편 '쉬지 말고 기도하라'
(아디알레이프토스 프로슈케스데)는 말은 24
시간 입술을 움직여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부단히 의지하는 자세나
(Thomas),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준비를 갖추는 것(Lenski)등 항상 기도
하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라는 의미이다.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ㅇ범사에 감사하라 - '범사'의 헬라어 '엔 판티'는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라는 의미이다(in all circumstances, NIV). 성도는 이미 영원한 천국을 소
유하였으므로 모든 상황에 있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한편 감사는 1: 2에 기록된 대로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빌 4: 6에는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기록되어 있다.
ㅇ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4: 3에 언급된 바 '신자들의 성화'(sanctification)에 있다. 혹자는 '기뻐하고, 기도
하며, 감사하는 것'이 성령께서 신자들을 성화시키는 내적인 역사로 본다(Bruce).
한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장 원초적(原]初的)이며 기본
적인 요소이다. '그리스도 예수 밖에서' 신자들의 성화나 하나님의 뜻은 생각할 수 없
다.
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ㅇ성령을 소멸치 말며 - '소멸치'의 헬라어 '스벤뉘테'는 '불을
끄다'(quench, extinguish)를 의미한다. 따라서 '성령을 소멸치말며'는 '성령의 불을
끄지 말며'로 번역할 수 있다. 이렇듯 성경은 성령을 '불'로 묘사한 예가 많이 있다
(마 3: 11;눅 3:16;12:49;행 2:3). 고린도 교회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무절제하게 사용
하여 광신적 태도가 만연했음에 비해(고전 12-14장),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오히려
성령의 활동을 제한하거나 배격하는 일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ㅇ예언을 멸시치 말고 - '예언'(프로페테이아스)에 대하여
(1)직접 계시를 통한 예언과, 구약의 말씀이나 사도들의 교훈을 해석하여 가르치는 은
사로서의 예언, 이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는 견해와(Lenski) (2) 데살로니가 교회에
서 있었던 '예언'은 예수의 재림과 관련된 앞일을 예언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Morris). 일반적으로 전자의 견해가 유력하다. 한편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예언'
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이유는 예언의 은사에 비해 방언의 은사가 훨씬
더 기적적이며 신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고전
14:5) 바울은 예언의 은사를 더 큰 은사로 강조한 바 있다(Alford).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ㅇ범사에 - '범사'(판타)에 대하여 (1) 신자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모
든 것(Lenski), (2) 19,20절의 '성령의 은사'라는 범위안에서의 모든 것(Thomas),
(3) 예언의 은사에 국한되는 것(Bruce)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두번째 견
해가 가장 유력하다.
ㅇ헤아려 - '헤아려'의 헬라어 '도키마제테'는 '시험하
다'(test), '검사하다'(scrutinize)의 뜻으로 동전이나 금속을 시금(試金)하는뎨 사
용되는 용어이다. '성령의 은사'의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기준은 '예수를 주(Lord)
로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이며 또다른 기준은 '교회의 덕을 세우며 사랑의 공
동체를 이루는 데 기여하는가'의 여부이다(Bruce, Thomas).
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ㅇ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 '모양'(에이두스)은 '외형'
(appearance)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종류'(kind, NIV)를 뜻한다. 또한 '모양이라도'
에서 '도'(even)는 원문에는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본절을 직역하면 '모든 종류의
악을 버리라'이다.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ㅇ평강의 하나님 - 이 문구는 바울 서신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롬 15:33;16:20;빌
4:9;고후 13:11;히 13:20). 바울이 하나님을 '평강'(에이레네스)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과 자신 사이에 평화를 이룩하신 평화의 근원이시기 때문이었다(골 1:20).
ㅇ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 '온전히'의 헬라어 '홀로텔레이스'
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됨을 가리킨다. 이러한 '성
화'(sanctification)는 내주(內住)하는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4:8;롬 15:16).
ㅇ영과 혼과 몸 - 인간의 보편적 구성 요소와 관련되는 본문은 소위 말하는 삼분설
또는 이분설 논쟁이 제기되는 구절이다. 우선몸은 순수하게 물질적인 부분, 즉 육신을
가리킨다. 다만 여기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영'(프뉴마) 과
'혼'(프쉬케)의 차이점이다. (1) 삼분설. 그리스 계통의 교부들(Irenaeus,
Chrysostom)은 영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인간의 이성적 부분, 즉 양심이나 의지와 관련
되어 있는것에 반해, 혼은 동물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생명이나 감정,감
각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였다. (2) 이분설. 성경에는 인간의 본성을 거의 대부분
혼과 몸(창 2: 7; 마 6:25), 영과 몸(전 12:7;고전 5:3, 5)으로 구분하여 이분법적인
분류법을 말함으로 혼과 영을 혼용하고 있다. 바울은 본절에서 인간의 본성을 영과 혼
과 몸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은 당시 그리스의 사고 방식에 젖어있
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삼분법적인 표현을 사용했거나 또는 수사학
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서, 실상은 성도들의 전인격(全人格)을 가리킨 말이다. 이
의견에 대해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동의한다(Morris, Bruce, Milligan).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ㅇ너희를 부르시는 이느 미쁘시니 - '미쁘시니'의 헬라어 '피스토스'
는 '신실하다'(to be faithful)는 뜻이다. 또한 '부르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칼
론'은 현재 분사로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부르시는 부르심은 언제까
지나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ㅇ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 당신의 백성의 삶을 성화시키는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 이들을 끝까지 지키고 보호
하실 것이라는 바울의 확신이다. 빌 1: 6에서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하였다.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ㅇ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한 바울과 그 일
행은 이번에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바
울은 영적으로 탁월한 지도자였으나 그에게도 믿는 형제들의 기도의 지원이 필요했다.
바울의 이러한 기도 요청은 그의 다른 서신에도 많이 나타난다(롬 15:30;엡 6:19;빌
1:19;골 4:3;살후 3:1;몬 1:22).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ㅇ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 '입맞춤'(필
레마티)으로 인사하는 법은 고대 동방에서 유행하던 관습으로 신분이 같은 사람들끼리
는 빰에 입맞추었고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는 손이나 발, 혹은 무릎이나 가슴 등에 하
였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가 유대인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후 그리스도인 사회로
흘러들어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인사법이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인사법은 2,3세기경
까지 교회에서 통용되었으나 폐단이 많아 초대 기독교 총회에서 그것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만들었으며 후에는 폐지되었다. 초대 교회의 '거룩한 입맞춤'은 신앙 공동체
를 하나로 묶어주는 구실을 하였을 것이다(Bruce). 한편 '입맞춤'으로 인사하라는 바
울의 요구는 그의 다른 서신들에서도 등장한다(롬 16:16;고전 16:20;고후 13:11;벧전
5:14).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ㅇ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 '명하
노니'의 헬라어 '에노르키조'는 '맹세하다', '엄숙히 약속하
다'의 강의형이다. 따라서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
희를 맹세시킨다'는 뜻이다. 바울의 이런 강한 어투로 보아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본
서신이 교인들 모두에게 다 읽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 원인에
대하여 다앙한 견해가 있다. (1) 특정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4:13-18)에게만
읽혀질 가능성 있기 때문이다(Ellicott). (2) 데살로니가 교회 내에 잘못된 교리를 가
르치는 자들이 있었음을 바울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Lightfoot, 살후 2:2, 3).
(3) 데살로니가 교회 내에 이방인 회심자들과 유대인 회심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
로 모임을 달리 가졌으며 본 서신은 이방인 회심자들에게 보내진 것이었으므로 바울은
유대인 회심자들에게도 본 서신이 읽혀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Harnack).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신앙관을 형성하기를 바울이 원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읽어 들리라'의 헬라어 '아나그노스데나이'
는 문자적으로 '큰소리로 낭독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낭독했던 이유
는 서신에 쓰여진 문자를 독해할 만큼 교육받은 사람들이 교회 내에 많지 않고 사본
(寫本)을 만드는 일도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바울이 '큰 소리로 낭
독하라'고 말한 취지는 교회 전체의 모임에서 공식적으로 낭독하라는 것이었다고 본다
(Bruce).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ㅇ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은혜'(카
리스)는 본 서신 서두에서 인사말로 쓰여졌는데(1:1) 여기 끝나는 축복문에 다시 채택
되었다. 이와 같이 축복문은 바울 서신의 전형적인 형식으로서 그의 서신들에서 다양
한 길이로 나타난다(골 4:18;살후 3:18).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메모 :
'신약 > 데살로니가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4 : 1~18) 주석 (0) | 2015.02.09 |
---|---|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3 : 1~13) 주석 (0) | 2015.02.09 |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2 : 1~20) 주석 (0) | 2015.02.09 |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1 : 1~10) 주석 (0) | 2015.02.09 |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서론♧ (0) | 2015.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