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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데살로니가전서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3 : 1~1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2:01
데살로니가전서 3장


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ㅇ이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오'는 '이러한 이유로'라는 뜻으
로서 앞에서 말한 대로(2:17, 18)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다시 한번 더 열렬히
보고싶어 하는 마음을 나타내준다(Bruce).
ㅇ우리가 참다 못하여 - '참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곤테스'
는 본래 '물과 같은액체를 용기에 넣어 새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점
차 '참다', '견디다'는 뜻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바울은 아직 신앙 연조가 얼마 되지
않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박해 중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에 대해 매우 궁금하여 견
딜 수가 없었다(Thomas).
ㅇ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 아덴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고린도로 가는
길에 잠시 동안 머물러 있었던 곳이다(행 17: 22-31). 여기서 '우리'라는 말은 바울이
실라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바울이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해 베뢰아에서
아덴까지 먼저 온 후에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의 뒤를 쫓아 아덴에 오게 되었다(행 17:
13-15). 그리고 나서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다시 데살
로니가로 파송되었고 그후 실라도 임무를 갖고 마게도냐로 가게 되었다. 이처럼 디모
데를 먼저 데살로니가로 보내고, 그후 실라도 마게도냐로 보낸 다음에, 바울은 아덴에
잠시 머물다가 바로 고린도로 가서 그곳에서 실라와 디모데와 다시 합류(合流)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바울은 본 서신을 쓰게
되었다(Bruce).

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ㅇ그리스도 복음 - 본 서신에서 지금까지는 '복음'을 말할 때 '하나님의 복음'이라든
가(2:2, 9), '우리 복음'이라고(1: 5) 표현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스도가 복음의
주제요, 실체(實體)로서 '그리스도 복음'이라고 언급된다.
ㅇ하나님의 일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르곤투 데우'
는 '하나님의 동역자'(God's fellow worker, NIV)란 뜻이다. 즉 바울
은 디모데를 '하나님의 동역자'로 소개하고 있다.

3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ㅇ이 여러 환난 중에 - 2:14에 기록된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
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받았다. 바울은 그런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들
이 믿음위에 견고히 서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러한 고난이 그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ㅇ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 '요동'에 해당하는 헬라어 '사이네스다이'
는 강아지가 재롱을 부리기 위하여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
되며 여기서는 정신적인 동요(動搖)를 나타낸다.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냄
으로써 이러한 동요를 막고자 하였다.
ㅇ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 NIV는 헬라어 본문에 보
다 가까운 뜻으로 "잘 알다시피 우리는 고난을 당하게 마련입니다"(You know quite
well that we were destined for them)라고 본절을 번역하였다. 4절에 언급된 대로 바
울은 그곳을 떠나기 전에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반드
시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을 말하였다. 즉 성도들에게 있어 고난이란 믿음을 연단시켜
성장하게 해주는 훈련장이요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 인도자와 같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벧전 1:6-9).

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ㅇ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 그리스도인들이 환난을 당하게 되
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행 14:22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디아의 회심자들에
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
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겪는 것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이므로 변경
될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다(Morris).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ㅇ이러므로 나도 - 본 구절에서 바울은 1절과 같은 표현을 되풀이함으로써 데살로니
가 교인들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심정을 한층 강조하고 있다. '나도'에 해당하는 헬라
어 '카고'는 일인칭 단수이다. 바울이 지금까지 '우리'를 사용하다가 여
기에서 단수를 사용한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생겨난 일을 알기위해 디모데를 그
곳에 보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 그 자신임을 분명히 밝혀 두기 위함이다.
ㅇ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 '시험하는 자'는 2:18의 '사단'과 동일시되는
존재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역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전도자들을 훼방하거나, 올가미
를 놓아 회심자들의 영적(靈的) 붕괴를 야기시키고자 한다(마4: 3; 고전 7:5).
ㅇ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 '헛된 수고'에 대하여 빌 2: 16을 참조할 수
있다. 거기에서 빌립보 교인들의 인내는 복음을 위한 바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바울에게 기쁨을 안겨주게 될 것이
언급되어 있다. 본절에서 바울은 사단의 시험으로 그의 수고가 헛되이 될 것을 염려하
나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종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상은 70인역 사 65:23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Bruce).

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ㅇ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 '지금은'(아르티)이란 말은
디모데에게 보고를 받은 바울이 곧바로 본 서신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쓰고 있음을
시사한다.
ㅇ기쁜 소식 - '유앙겔리사메누'는 '복음을 전
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바울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어 '아팡겔루신'
('저희가 전하다') 대신에, 계 10:7을 제외하고는 오
직 '복음을 전하다'라는 의미로만 쓰이는 본 단어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디모데의 보고(報告)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나타내준다고 말한다
(Thomas).
ㅇ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
니 - '간절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포둔테스'
는 '열렬히 갈망하다' '동경하다'의 뜻으로 바울의 아가페적 애정을 강하게 표현해
준다(고후 5:2; 빌 2:26). 바울은 그의 개종자(改宗者)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용어로서 본 단어를 자주 사용하였다(롬 1:11; 빌 1:8; 딤후 1:4). 혹자는 바울의 이
러한 애정에 상응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뜨거온 사랑으로 인해 바울의 사기는 매우
고무(鼓舞)되었을 것이라고 한다(Bruce).

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ㅇ궁핍과 환난 - '궁핍'의 헬라어 '아낭케'는 '극심한 물질적 궁핍'
을 뜻하며, '환난'의 헬라어 '들립세이'는 '압박하는 것', '꽉 죄는
것'을 뜻한다. 혹자는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그 당시 바울 자신이 처해 있던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한다(Morris). 바울이 고린도에서 본 서
신을 쓸 때 그는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 당시 바울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훼방하였으며(행 18: 6), 바울을 총독 갈리오에게 끌
고가 고소하기도 하였다(행 18:12-17).
ㅇ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
니가 교인들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환난을 당하였으나(4, 5절), 그들의 믿음이 흔들
림없이 굳건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큰 위로를 받았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경우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로부터도 같은 위로를 받고 이와 유사한 표현을 하였다(고
후 7:3-7).

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ㅇ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 '굳게 선즉'의 헬라어 '스테케테'
는 견고히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
을 가리킨다. 바울은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스테케테'
를 그의 서신에서 여러 차례 사용하였다(고전 16:13;갈 5:1;빌 1:27).
ㅇ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 '살리라'의 헬라어 '조멘'은 현재형으로서
세 가지로 해석될 수있다. (1) 바울의 영적 생명력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소식을 들
었을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계속 유지되었던 것이다(Morris). (2) 데살로
니가 교인들의 견고한 믿음에 대한 소식으로 바울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Thomas).
(3) '조멘'을 '생명의 호흡'(breath of life)으로 번역하여 바울과 그 일행이 데살로
니가 교인들에 대한 염려 가운데 있다가 그들의 견고한 믿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으로 해석한다(Bruce). 세 견해가 다 타당성이 있으나 전후
문맥상 세번째 견해가 가장 적합한 듯하다(we can breathe again, JB).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ㅇ우리 하나님 앞에서...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 '하나님' 혹은 '우
리 주 예수' 등과 결합되어 '앞에서'라는 용어가 바울의 다른 서신들보다 본 서신에서
자주 사용된다(13절;1:3;2:19). 혹자는 바울이 언제나 신전 의식(神前 意識)을 가짐으
로써 자신의 개인적이고도 인간적인 성공이나 만족감을 갖지 않았으며, 따라서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것에 대한 모든 감사를 하나님께 의식적으로 돌리고 있다고한다
(O'Brien).
ㅇ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 바울과 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모진 핍박을 받았고(7절 ; 행 17:1-9) 데살로니가 교인들
역시 믿음으로 인해 동족으로부터 많은 환난을 당하였다(1:6). 그러나 이제 바울 일행
은 박해의 시련 가운데서도 훌륭하게 믿음을 지킨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통해 느끼는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Bruce).

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ㅇ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 '심히'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레크페릿수'
는 이중 강조 부사로 매우 강한 뜻을 담고 있다. 이 단어는 본
절과 5:13;엡 3:20에 만나와 있다. 단 3:22(The Greek Old Testament of Theodotion)
에서는 풀무의 불꽃을 표현할 때 '심히' 곧 '에크페릿수'
('과도하게')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본절에서 사용된 단어는 여기에 전치사 '휘페르'
('한층더')가 첨가된 형태이다. 또한 '간구함은'의 헬라어 '데오메노이'
는 '필요한 것을 간절히 요청한다'는 뜻으로 앞의 부사와 연결
되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깊은 뜻임을 나타낸다.
ㅇ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 '부족함을'의 헬라어 '휘스테레마타'
는 문자적으로 '늦다', '뒤에 오다'는 뜻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환난 가
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적 지식에 있
어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실제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웃 교회의 모범이 될 만큼
열성적인 신앙을 보였으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결여되어 신앙생활에 많
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었다.
ㅇ온전케 하려 함이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르티사이'
는 '그물을 수선하다'(마 4:21) 또는 '사람을 교화(敎化)하다'(갈 6:1)는 의미
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온전히 성숙되기를 바라는 바울의 목회자적인
심정이 잘 드러난다(Morris).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ㅇ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
본절부터 13절까지는 바울의 기도이다. 그는 기도의 첫머리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있
다. 이것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보다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요청하는 사도 바울
의 심정을 나타낸다(Lightfoot). '직행하게 하옵시며'의 헬라어 '카튜뒤나이'
는 단수 동사로 '하나님' 과 '주 예수'라는 복수 주어와 결합되어
사용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과 예수가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해 주는
바, 초대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음
을 반영한다.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ㅇ주께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퀴리오스'에 대하여 두 가
지 견해가 있다. (1) 고전 8:6에 기록된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또한 한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계시니"를 근거로 본절에서 쓰인 '호 퀴리오스' 는
'예수'를 지칭한다는 것이다(Bruce, Thomas). (2)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본질(本質)에
있어서 차이가 없으므로 두 분 중 아무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Morris).
ㅇ너희도 피차간과 - 혹자는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두 개의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
다고 한다. 즉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이 서로 나뉘었다고한다
(Harnack). 그러나 바울이 원했던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하나됨'이었다.
ㅇ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 '모든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판타스'
는 단순히 데살로니가 교인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뜻한다. 또한 '사랑'은 인간적인 '애정'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희
생적 사랑'(* , 아가페)을 뜻한다. 따라서 본절의 '모든사람에 대한 사랑'
은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부터 나오는 선물이다
(Neil). 바울은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ㅇ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 2절을 근거로 본
다면 '마음을 굳게 하다'는 곧 '믿음을 굳게 하다'이다(Morris). (2) 그리스도께서 강
림하실 때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기 위하여 '윤리적인 견고함'을 말한 것이다
(Bruce).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윤리적으로 견고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할
수는 없다. 온전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뿐이다. 따라서 전자의 견해가 보다 타
당하다 하겠다.
ㅇ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 바울은 본절에서 슥
14:5 곧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를 염두에 두고 있다(Bruce). 그 외에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본 구절의 묘사는 구
약에서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이야기한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신 33:2;시 68:17;단
7:10). 한편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재림(Parousia of Christ)을 언급한 모든 구
절들은 다음과 같다. 시 50:3;80:1;82:8;107:20;사 26:19;42:13;63:9;64:1;66:18;합
2:3;슥 1:15;말 4:1(Glasson).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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