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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데살로니가전서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1 : 1~10)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2:00
데살로니가전서 1장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ㅇ본절의 인사는 바울 자신이 기록한 모든 서신들의 인사말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바울 당시의 다른 서신들과 같은 문체로 되어 있다.
      ㅇ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 세 사람의 이름은 데살로니가 후서의 인사에서도 나타
      난다. 바울은 그의 다른 서신들에서처럼 서두 부분에서 그의 동역자들과 더불어 인사
      를 표하고 있다(고전 1:1;고후 1:19;빌 1:1;골 1:1;몬 1:1). 아마 실루아노와 디모데
      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하는 데 관여했을 것이다(3:2). 실루아노
      (Siluanus)는 '실라'(Silas)의 로마식 표기이다. 실라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으
      로서(행 16:20, 37), 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신실한 그리스도의 일꾼이었으
      며, 예루살렘 내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높이 존경을 받았다(행 15:22, 32).
      그리고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하면서, 빌립보에서는 혹독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
      기도 했으며(행 16:23-25), 데살로니가에서는 교회 설립에 지대한 공헌(貢獻)을 하였
      음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함께 성난 폭도들에게 쫓기어 도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하였다(행 17:5). 또한 디모데는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회심한 자
      로서, 바울이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 1:2)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깊이 사랑하였던
      자이다. 그는 바울이 제 2차 전도 여행 중 루스드라를 다시 방문하였을 때 복음 사역
      에 동참하였으며, 바울과 실라가 폭도들에게 쫓기어 데살로니가를 떠났을 때에도 그곳
      에 계속 남아 복음을 전하였다. 폭도들을 피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약 400km 정도
      떨어진 아덴에 이르렀을 때(행 17:15) 디모데는 그에게 달려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당
      면한 여러 가치 어려운 일을 보고하였고 이를 들은 바울은 다시 그곳으로 디모데를 보
      내어 계속 목회 사역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아덴에서 고린도로 가서 일년 육
      개월을 유하며 주의 복음을 전하였는데(행 18:1-4, 11), 이때 디모데는 다시 고린도
      로 바울을 찾아가 데살로니가 교회가 짧은 역사에 비해 신앙 생활에 모범을 보이며 박
      해를 받는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켜나간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
      하고 교인들 사이에 종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만연함으로써 신앙적으로 많은 어려
      움을 겪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였다. 이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더욱
      열성적으로 신앙 생활을 할수 있도록 격려하고, 동시에 재림과 종말에 대한 올바른 인
      식을 심어줌으로써 그들이 보다 건전한 신앙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배려(配慮)하는 입
      장에서 본 서신을 기록하였다.
      ㅇ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 - 본 서신의 수
      신인에 관한 언급이 나타난 본문에는 다음세 가지 사항이 주목된다. (1) 바울의 초기
      서신들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보여준다. 즉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라는 표현은 후기의
      서신서들이 수신자들로서 보편적인 교회의 성도들을 염두에 둔 것과 달리, 한정된 지
      역 교회를 대상로 하였음을 나타낸다. (2) '하나님 아버지'(데
      오 파트리)와 '주 예수 그리스도'(퀴리오 예수
      크리스토)라는 두 가지 표현이 등위 접속사인 '카이('그리고')에 의하여 결
      합되어 있다. 이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되신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임을
      시사한다. 이로써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강조
      하고 있다. (3)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과 '데살로니가인의 교
      회'(테 엑클레시아 뎃살로
      니케온)라는 두 가지 표현이 전치사 '엔'('...안에')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은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흔히 사용하는 것으로(롬 6:23;고전15:31;엡
      1:15;빌 2:19),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관계에 있음을 나
      타낸다(Morris).
      ㅇ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사도 바울은 본서를 비롯한 그의서신들의
      인사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카리스)와 '평강'
      (에이레네)이 수신자들에게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롬 1:7;고전 16:23;골 4:18;
      살후 3:18). 여기서 '평강'(샬롬)은 마치 '기쁨'이 일상적인 헬라인들의
      인사말이었던 것처럼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인사 용어이다(삿 19:20). 그러나 기독교에
      서 사용하는 '평강'은 구약 시대 유대인이 의도했던 것보다 더깊은 의미를 갖는다.
      본절이 의미하는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
      의 불화 관계가 화합의 관계로 해결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지는 절대적이며 궁극적인
      '마음의 평안함'인 것이다(Thomas).

      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ㅇ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 '너희 무리를 인하여'
      (페리 판톤 휘몬)란 말은 '녀희 모든 무리를 인하여'(for
      all of you, NIV)란 말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말 속에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 중
      어느 누구라도 제외시키지 않으려는 사도 바울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데살로니가 교
      회는 비록 복음의 역사는 짧으나 성도들이 복음에 근거한 바른 신앙을 소유하여 하나
      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날마다 성장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처럼 성장하는 데살로니
      가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사도의 이런 감사는 관
      습적이며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부터 부단히 계속되는 참된 것이었다. 이
      러한 사실은 본절의 '감사하고'에 행동하는 헬라어 동사 '유카리스투멘'
      이 현재형이며 '항상'(판토테)이라는 부사가 사
      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한편 본절 초두의 '우리'는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1절에 언급된 '실라'와 '디모데'도 동일한 감사의 마음을 가졌음을 나타낸다.
      ㅇ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 바울은 '말함' 
      (므네이안 포이우메노이)이란 말을 오직 기도와 관련된 부분에서만 사용하고 있
      는 바(롬 1:9;몬 1:4), 이는 자신이 세운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복음 위에 바로 서서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
      를 드렸음을 의미한다(L. Thomas).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ㅇ본절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삶속에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
      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기뻐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 나오는 '믿음'과 '사랑'과 '소
      망'은 초대 교회 당시 널리 사용되던 어휘로서 자주 한 단위로 결합되어 언급된다
      (5:8;롬 5:1-5;고전 13:13;갈 5:5, 6;골 1:4, 5;히 6:10-12;10:22-24;벧전 1:21, 22,
      Bruce, Hunter). 이 세 가지는 서로 유기적 관계에 있는 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들에게 부여하신 삶의 진수(眞髓)를 이루는 덕목들이다(Bornkamm).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 덕목들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의 영역을 지배하는 매우 중요
      한 요소들이다.
      ㅇ믿음의 역사(투 에르구 테스피스테
      오스) - 이 말은 '믿음 가운데서 우러나온 너희의 역사'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Morris).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구속 역사에 근거한다. 이러한 믿음은 필연적으로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게 한다.
      ㅇ사랑의 수고(투 코푸 테스 아가페스) -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우호적인 관계를 나타내 주거니와 믿
      음과 마찬가지로 실천적 행위를 동반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병자와 굶주린 자를
      돕기위해 자선을 행하였으며,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열성적 헌
      신을 다하였다(Hendriksen). 이것은 사도 바울이 다른 곳에서 표현한 바, 복음을 위한
      수고들이다(3:5;고전 15:10, 58;고후 10:15;갈 4:11;빌 2:16).
      ㅇ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 -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
      도께서 재림하실 궁극적인 승리의 날을 바라보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이처럼 그리
      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자들은 현실속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온다 해도 그것을 극
      복할 수 있는 인내를 지니고 있다. 본절의 '인내'로 번역된 헬라어 '휘포모네스'
      는 진취적이고 용기있는 그리스도인의 특질로서 용감한 군인이
      극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나가는 기상(氣像)을 의미한다(Findlay). 그리스도인
      들은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결코
      낙심치 아니하고 인내로써 전진해야할 것이다.
      ㅇ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 본절은 2절에 나오는 바울의 중보
      기도의 때를 말해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에 대한 기억이 매우 자주 떠올랐
      던 까닭에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특히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의 기도가 신실함을 나타내준다. 데살로니가 교회
      의 어떤 자들은 자신들을 대하는 바울의 동기(動機)에 대해 의심을 품었던것으로 보인
      다. 그리하여 바울은 본 서신의 서두에서부터 그러한 의혹을 일소하고자 한다
      (2:5,10;3:9, Thomas).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ㅇ바울은 2절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함을, 3절에서는 감사의 구체적인 원인을 그리
      고 본절에서는 그러한 감사의 긍극적인 동기를 말하고 있다.
      ㅇ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 바울은 '형제들아'(아델포
      이)란 호칭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만도 21회나 사용하고 있다.
      '성도'란 말이 하나님과 관련된 표현이라면, '형제'란 말은 인간 관계에 대한 표현으
      로서 예수를 중심으로 모든 성도들이 하나되어 있음을 나타내준다(마 12:46-50;막
      3:31-35;눅 8:19-21). 본절에서 '형제들아'라는 호칭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받은'이
      란 말과 연결됨으로써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음 위에 굳게 서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
      하면 '사랑하심을 받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가페메노이는
      현재 완료 분사로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완성되었으며 현재에도 여전
      히 행사(行使)되고 있음을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ㅇ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 '택하심'(에클로겐)이란 신구약 전체에
      면면이 흐르는 성경의 위대한 개념으로서, 인류의 조상 아담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
      미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의 신자들과 그 외의 모든 신자들을 그의 주권으로 택하셨다
      는 것을 의미한다(엡 1: 4). 혹자는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을 택하신 것은
      그들이 회심(回心)했을 때이거나 그 이후의 일이었다고 주장한다(Airhart). 그러나 바
      울은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이 택하심을 입은 것은 과거(창세전)의 일로서, 그택하심은
      결코 인간의 어떤 응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에 의한 것임을 말
      하고 있다.

      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ㅇ본절에서부터 2:16까지는 바울이 처음으로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의
      상황을 회고한 부분이다.
      ㅇ이는(호티) - 접속사 '호티'는 앞에 있는 절을 받아 그 근거를 밝힌다.
      즉 바울이 데살로니가인의 피택을 확신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신당을 구체적으로 분석
      한 결과로 말미암은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ㅇ우리복음(유앙겔리온 헤몬) - '복음'이란 말은
      데살로니가전후서를 통하여 8회 나오는데, 이는 선포의 행위보다는 선포의 내용, 곧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쁜 소식을 강조
      한다. 한편 본문에서 소유격으로 되어 있는 '우리'라는 호칭은 대체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복음을 전한 행위와 그 사람들을 가리킨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복음
      을 창시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 부여받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이행
      하였다(Bruce). (2)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필
      요로하며 또 복음을 소유한 자들임을 암시한다(Morris).
      ㅇ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 '말로만'(엔
      로고 모논)은 성령의 감화(感化)시키는 능력을 동반하지 않는 설교를 의미한다. 이런
      설교는 아무리 웅변적이고 수사적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가 지적인 의사 전달에 그치므
      로 청중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바울은 아덴에서 웅변적인 설교를 했으나
      냉담한 반응을 채험한 적이 있었다(행17:16-33). 그 후로 바울은 결코 인간의 지혜로
      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는 결의를 굳게
      하였다(고전 2:4, 5).
      ㅇ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 능력과 성령과 확신은 불가분의 관계
      에 있는 것으로서 능력은 외적 현상이고, 확신은 내적 요소이며, 성령은 능력과 확신
      의 원동력이다. 첫번째 요소인 '능력'(뒤나메이)은 '이적'
      (뒤나메이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력'(靈力)을
      가리킨다(Van Leeywen). 이 말은 영어에서 '다이나마이트'(daynamite)로 번역되어 폭
      발하는 힘을 나타내며, 사람의 마음속까지 변화시키는 성령의 감화력을 의미한다. 복
      음이 전파될 때 인간들을 파멸의 세력에서 끄집어내어 새 생명 가운데 옮겨놓은 것은
      바로 이 '능력'에 기인한다. 두번째 요소인 '성령'(프뉴
      마티 하기오)은 앞에 있는 수어인 '능력'의 출처(出處)이다. 성령은 언제나 능력을 통
      해서 인간들에게 실체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능력을 채험한 자들은 궁극적으로 성도
      의 신분으로 변화된다. 세번째 요소인 '큰 확신' 역시 성령의 활동하심에 기인한다.
      본절에 '확신'으로 번역된 헬라어 '플레로포리아'는 문자적
      으로 '충만', '풍부'의 의미를 가지며, 이는 데살로니가 교회 가운데 내적으로 역사하
      는 성령의 사역을 말한다(Bruce).
      ㅇ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
      니라 - 본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2:1-12에 나온다. 이 구절을 통해서 바울은 데살로니
      가 교회 내에 숨어있던 바울의 적대자들을 경계하고 있다(2:2, 5:3 : 5). 이들은 동방
      의 신비주의 사상을 가지고 자기들만의 독특한 교회를 세운 '시몬'(행 8:9)과 '엘루
      마'(행 13:8) 등으로서, 항상 말로써 사기적 수법을 행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복
      음의 진리 가운데 서지 못하도록 방해하곤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을 퉁하여 자
      신이 전하여 준 능력의 복음과 성령과 큰 확신을 간직할 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ㅇ바울은 이제 본절에서 데살로니가인들이 기쁨으로 복음을 받아들였으며, 또한 바울
      과 그 일행의 신앙의 모범을 따랐음을 말하고 있다. 즉 전도를 받은 그들이 복음으로
      인해 받은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ㅇ또 너희는 많은 환난 기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 '환난'(들립세이)
      은 외적 환경에 의해 생기는 고통과 핍박을 의미한다. 데살로니가에는 처음부터 복음
      에 대한 반대가 강하게 일어났으며, 이러한 환난은 바울이 떠난후에도 계속해서 데살
      로니가 교인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받은 환난에 대해서는 2:14과
      행 17:1-10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뎨살로니가의 성도들은 많은 환난 가운
      데서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환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다. 혹자는 본절과 관련하
      여 '신자는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도록 허락된 정도만큼 기쁨을 누린다'고 말하였다
      (Lightfoot).
      ㅇ도를 받아 - '도'(톤 로곤)는 '복음' 즉 '말씀'을 의미한다.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이 전한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여 신실한 믿음 생활
      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ㅇ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을 받기 전에는 죄
      의 세력에 매이는 생활을 했으나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인 후
      에는 전혀 다른 삶, 즉 성령의 능력에 힘입은 삶을 살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와 주
      를 본받은 자'라는 사도 바울의 표현의 순서를 주의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궁극적
      으로 신앙은 주(主)를 믿는 것이나 신앙 생활은 보다 앞선 성도를 본받는데서 향상된
      다. 그러므로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는 말뿐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서 모본을 보여주
      어야 한다. 만일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전도자의 삶을 통해서 성도의 삶을 배우지 못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무의미한 것이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
      은 바울의 신앙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들이 되었
      다. 한편 바울은 그의 서신서 곳곳에서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는 자들이 될 것을 권
      면하고 있다(고전 4:16;11:1;빌 3:17).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ㅇ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의 본이 되었던 것처럼 데살로니가인들
      도 전(全)헬라에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는
      B.C. 146년 이후 헬라 지경의 두개의 거대한 주로서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마게
      도냐의 수도는 데살로니가이며 아가야의 수도는 고린도였다. 특별히 마게도냐의 수도
      인 데살로니가는 남방 유럽의 상업 중심 도시로서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 의해 그들의
      신앙을 더욱더 급속히 헬라 전 지역에 전파(傳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요인은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전하였다는 것에 있으며,
      아울러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이 되었다는 데에 있다. '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튀
      폰'은 '찍어서 생긴 표', '일격을 가한 흔적'이란 뜻으로서 '똑같이 따
      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ㅇ데살로니가 교회의 진보를 본 바울의 기쁨의 상태는 그가 그들을 칭찬하는 정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특히 바울이 한 교회를 향하여 다른 교회들의 모본이 된다고 말하
      고 있는 곳은 오직 여기 뿐이므로 그 기쁨의 정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ㅇ주의 말씀이...들릴 뿐 아니라 - 먼저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로부터 각
      곳으로 전파된 사실을 지적한다. '주의 말씀'(호
      로고스 투 퀴리우)이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의 예언서에 자주 나오는 말로서 바울 서
      신에서는 본서(4:15)와 후서(살후 3:1)에서만 나타난다. 이것은 초대 교회의 사람들
      이 굳게 믿고 있는 바가 무엇임을 잘 드러내 주는 표현이다. 즉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자신들이 선포하고 있는 말씀이 인간 지혜의 산물(産物)이 아니라 신적 기원을 가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 말씀은 데살로니가를 출발점으로 하여 온 헬라 경내에 계
      속 퍼져 나갔다. 한편 '들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세케타이
      는 '소리를 울려낸다'는 뜻으로 계속해서 퍼져 나가는 반향(反響)을 의미한다. 이는
      나팔 소리가 울려나가는 것처럼(Chrysostom) 또는 우뢰소리가 울려나가는 것처럼
      (Lightfoot) 크고 분명하게 선포되는 것을 암시한다. 즉 복음이 데살로니가인들로 말
      미암아 온 헬라 경내에 힘있게 전파된 사실을 말한다.
      ㅇ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 바울은 후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모범적인 신앙 생활에 대해 자랑한 바 있다(고후 8:1-5). 그러나 본 서신을
      기록할 당시 그들에 대해 자랑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들의 믿음에 대한 훌륭한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라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ㅇ저희가 -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위시한 각처의 교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데살로니
      가 교회의 믿음의 소문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ㅇ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 2:1 이하에 보면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들어간 날은 그에게 있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
      음을 전할 때 비방과 훼방, 박해 등 많은 고난을 당하였던 것이다. 구체적 내용은
      2:1-3 주석을 참조하라.
      ㅇ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회개를
      묘사한 말이다. '돌아와서'에 해당하는 '에페스트 렙사테'
      는 완전히 전환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서 헬라어에서 '마음을 고침'을 의미하는 '메
      타노이아'(마 3:8)와 함께 회개를 나타내는 중요한 단어이다. 그
      리고 '우상'(에이돌론)은 '신상'(행 7 :41)을 의미한다. 데살로니
      가 교인들은 대부분 헬라계 이방인으로 헬라의 다신교적 우상을 숭배하던 자들이었다.
      이러한 우상 숭배에 빠져 방황하던 자들이 참 하나님에 대한 복음을 듣고 이제는 이전
      의 모든 생활( 우상 숭배 등)에서 돌이켜 거룩한 성도가 되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옛날의 악습들에 대한 단호한 단절, 즉 생(生)의 근본적이고도 전인격적
      인 전환을 수반한다.
      ㅇ사시고 참되신 하나님 - 이는 성경 전체에 편만한 사상을 반영한다(삼하 7:28;렘
      10:10;단 2:47;롬 3:4;계 6:10). 하나님은 죽은 우상과 대조되는 살아계신 분이며, 허
      탄하고 비실재적인 것과 대조되는 참되신 분이다.
      ㅇ섬기며(돌류에인) - 이 말은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을 가리
      킨다. 그러므로 이는 전심읕 다해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감격을 나타낸다.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ㅇ본절에는 그리스도의 부활, 삼위 일체 하나님, 그리스도의 재림, 최후의 심판 등의
      중요한 교리들이 제시(提示)되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둘러싼 종말의 사건들
      이 강조되고 있다.
      ㅇ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
      하여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도에서 역설한 바 있거니와 (행 17:3), 그들은 이를 그
      들의 신앙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였다(행 2:24;3:15;13:30). 사실 초대 교회에서 언
      제나 강조하였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부 하나님의 역사에 직접 기인하는 것으로서 벵
      겔(Bengel)은 이에 대하여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중요한
      변증이다"라고 설파하였다.
      ㅇ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 그리스도의 '재림'은 본서와 데살로니
      가후서의 중요한 주제이다. 바울은 재림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경계하였으나(살후
      3:10, 11) 재림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 재림의 때는 아버지 외에 아무도 알지
      못하나(마 24:36), 분명한 것은 이때 신자의 구원이 완성되고 불신자는 하나님의 완
      전하신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4:13-17 주제강해 '그리스도의 재림', 마 24:1-14
      주제강해 '성경 종말론의 관심과 그 해석상의 문제점' 참조) 한편 '기다린다'에 해당
      하는 헬라어 '아나메네인'은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타나는 독특
      한 용어로서 바울이 보통 사용하는 '아페크데코마이'(롬
      8:19;고전 1:7;빌 3:20, '고대하다')보다 훨씬 절실하게 소원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와 관련하여 혹자는 '아나메네인'은 누군가가 오기로 되어 있는 사람을 인내와 신뢰
      로써 기다림을 함축하는 개념이라고 말하였으며(Grimm-Thayer) 혹자는 끊임없이 기대
      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말하였다(Findlay). 그리스의 부활로 말미암은 그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성도가 갖는 최고의 소망이며, 아울러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
      음과 인내가 요구된다.
      ㅇ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 '장래 노하심'
      (테스 오르게스 테스 에르코메네스)은 '오고 있는 진
      노'(the coming wrath, NIV)라고 번역할수 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임하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뜻한다(습 1:14;요 3:36;
      롬 9:22;엡 5:6;골 3:6).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노하심'(에르
      코메네스)은 현재 분사형으로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확실히
      이루어질 사건임을 나타낸다(렘14:10;암 3:2;롬 1:18).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노하심 이전에 있어야 할 예언된 사건들이 그때 당시에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15, 16). 그러나 성도들은 이때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구원의 때라고 생각
      하여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편 '건지시는'(뤼오메논)이
      란말은 '노하심'과 동일한 용례로써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항상 현재적으로 예수께
      서 구원하실 것을 의미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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