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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데살로니가전서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 내용: 4. 성결을 위한 기도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1:59

데살로니가전서(1Thessalon)


    lV. 성결을 위한 기도(5:23-24).

    23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너희를 부르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본서의 전반부를 기도로 끝낸 저자(3:11-13)는 본서 전체의 결론도 기도로 한다. 기도의 내용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23절)이다.
    평강의 하나님(호 테오스 테스 에이레네스,)이란 "평강"(1:1의 주석을 보라) 의 창시자요 원천이신 하나님을 뜻하는 것이다(롬15:3316:20,고전 14:33,고후 13:11,빌4:9).
    친히(아위토스)는 강조하기 위한 말로서 하나님 자신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히기아사이, 3:13의 주석을 보라)란, 성도가 성별되어 성결(성화)케 되는 것이 성도 자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행위에 의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자신과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안된다.
    온전히는 홀로텔레이스로서, 여기서는 질적으로 '너희가 완전해 지도록' 이 아니라, 양적으로 '전적으로'라는 뜻으로 취해야 한다(프레임).이 말은 부사로서는 아니지만, 야고보서 1:4에도 나타난다.[텔레이오스)는 끝까지 도달하는 완전함(흑기). 장성한 자(히5:14), 그리스도인의 성격의 완성(마5:48)을 뜻한다.
    바클레이는 [이 말은 대개의 경우 기정적 목표와 기정적 목적에 대하여 완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설정해 주신 목표에 도달한다는 의미에서의 완전이지,신과 같은 절대적 완전은 아니다]라고 풀이하였다
    ](약1:4의 주석).

    너희 온..의 온은 홀로클레론으로서,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물론 이 말도 신적 완전이 아니라 인간적인 완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족함이 없게 한다는 말과 연결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윤리적으로 완전해지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온전한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프레임).
    영은 토 프뉴마로서, 인간의 내적 생명을 의미하며(고전 2:11, 롬8:9),또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사는 구속받은 인간을 지시한다. [바울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 하여(고전 6:17), 신자의 내적 인간의 존재 형식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존재 형식과 같음을 보여 주고 있다(도드).1) 이러한 존재 형식을 갖는 인간은 영으로 성령과 관계하여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하며(롬8:16),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고(고전 14:2), 영으로 기도하며(고전 14:14),영으로 찬미한다(고전 14:15). 또한 영이란 사고하고(롬8:6), 인식하며(고전 2:11,롬8:16), 의지하고 (롬8:4-5)을 판단하는 기능이 있다(고전 5:3). 바로 [이 영의 지배를 받는 영의 도구가 마음인 것이다(에드맨,이상근)](엡4:23)의 "심령"의 주석).
    혼은 헤 프쉬케로서, 동물의 생명, 생기(계8:916:3), 인간(마6:25), 몸과 영 구별되는 인간의 영혼(마 10:28),애정과 의지의 자리로서의 영혼(행14:222), 자아(마10:39),인간의 인격,개인(롬13:1)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과 혼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것이며, 실상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서에서 영과 혼은 둘다 "호흡,생명,또는 생명의 원리'를 뜻한다.
    혼은 동물적 생명, 영은 보다 높은 생명으로 분류되나, 사실인즉 후자도 동물적 생명을 뜻하기도 하고(전 3:21,계16:3),전자가 하나님께 적용되기까지 한다(사 42:1,딤 9:9 암6:5,히10:38).이와 같이 두 낱말을 교대적으로 사용되는 수가 많다. 사람의 구성을 혹은 몸과 혼으로(마6:2510:28), 혹은 몸과 영으로(전10:7,고전 5:35) 밝히고, 사람의 죽음을 혹은 혼이 떠나는 것이라(창 35:18, 왕상 17:21,행15:26), 혹은 영이 떠나는 것이라(시31:5,눅23:46,행7:59)
    ]한다.2)

    몸은 토 소마로서, 바울이 인간의 실존을 특징짓기 이해 사용하는 가장 포괄적인 용어이다. 이 말은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는데 대조하기도 하고, 또는 영과 정신(혼)과 대조하여 육체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밖에도 육체의 조직이나(엡4:16195:3,롬12:4,고전 12:12-25),고통을 당하는 육체(갈6:7)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바울이 육체란 의미로 몸을 사용하지만, 헬라의 영육 이원론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결코 인간의 몸을 정신의 무덤이나, 그 자체가 파멸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롱지네커).3) 그는 표면상 몸과 영, 몸과 영과 정신(혼)을 구분하는 것이지, 결코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조직체로서 몸을 말할 때, 그것은 곧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다.
    다음, 바울은 몸을 하나님과 대립되는 인간의 피조성 혹은 주체로서 표현하고 있는데(롬8:13),그것은 곧 나약하고 낮은 것으로(고후 10:10,빌3:21,고전15:43),죄와 죽음과 관계를 가지며, 그들의 지배 아래 속박되어 있다. 이러한 몸은 죄의 몸이요(롬1:246:6128:10,고후5:10),사망의 몸이다. (롬6:127:248:11). 엘리스는 [바울은 많은 경우에 몸을 죄와 죽음에 얽매인 자아로 사용하고 있다]4)라고 설명하였다.
    육신의 의미를 갖는 몸과 죄와 죽음에 얽매인 인간의 피조성 혹은 나약성이란 뜻의 몸이란 곧 구속받지 못한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다.
    끝으로, 바울에게 있어서 몸은 영광된 것이요 영원성을 갖는다. 그는 우리의 몸 안에 성령께서 거하신다고 하며(고전 3:166:19),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몸에 대해 말한다 (롬12:1,고전6:20).이것은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과 관련된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영 또는 혼과 대조되는 인간의 보이는 부분, 즉 물질로 구성된 몸을 의미하고 있다.

    본절과 히브리서 4:12은 인간의 본성 연구에 있어서, 그 구성을 몸과 혼(정신)과 영으로 나누는 삼분설(trichotomy)5) 의 근거가 되었다. 이 견해에 반대하여 영(혼)과 몸으로 나누는 것은 이분설(dichotomy)6)이라 한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바울의 의도는 인간 본성을 분석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받은 [전체로서의 인간 존재](에어하트, 네일, 김용옥)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1:10의 주석을 보라) '흠 없게'(2:10의 주석을 보라)보전되기를 원하는 것이다(참조 3:13).
    이 점에 대해 김용옥 박사는 [학자들 중에는 이 세 낱말을 근거로 해서 바울의 인간관은 3분법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간단히 수긍할 수 없는 것은, 바울은 인간학적 용어로서 이 세 낱말 이외에도 다른 용어들(예:마음,육,양심등)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영,혼,몸'만을 가지고 바울의 인간관 전체를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보아서 바울이 이상 세 말을 중요한 인간학적 용어라고 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영,혼,몸 등의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 셋을 다 합친 전체적 인간에 대하여 관심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즉 바울은 인간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전인간이 흠 없게 완전하게 되기를 데살로니가가 교인들을 두고 기원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어서 바울은 위에 언급한 염원들이 다 성취될 것을 확신하는 근거를 가리켜,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24절)고 한다.
    미쁘시니란 피스토스로서, 신실하다는 뜻이다(살후3:3,고전 1:910:13,고후1:8,딤전 2:13,계1:5).

    독자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는 틀림없이 응답될것이다. 그러나 [그 응답은 바울의 기도 때문이 아니라, 독자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 때문이다] (Chrysostom).7) 이 하나님의 신실성은 이미 영원한 선택과 일치하여(1:4), 복음의 설교를 통해(살후 2:14)그가 그들을 부르셨을 때 명백해 졌다.(프레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우리에게서 이루신다는 것은, 우리의 기도의 불필요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그만큼 더 신실한 노력과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뤄지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존되는 것이다](헨리).
    지금까지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평강의 창시자요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로 온전히 성결케 해 주시고, 또한 그들의 온 영과 혼과 몸, 즉 전체로서의 인간 존재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그 기도가 응답될 것을 확신하는데, 이는 자기의 기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뤄 주실 것이라고 설명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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