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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데살로니가전서

[스크랩] 데살로니가전서 - 내용: 5. 끝맺는 말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1:59

데살로니가전서(1Thessalon)


    V. 끝맺는말 (5:25-28)

    1. 문안 및 부탁 (5:25-27)

    25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본서의 마무리 단계에 와서 바울은 먼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 (1:2의 주석을 보라) (프로쉬케) 하라(25절)1)고 요청한다. 중보 기도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하나님께 붙잡혀 쓰이고 있는 교역자들을 위한 기도이다. 여기의 우리란 물론 바울 자신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같은 교역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교역자라 할 수 있는 바울은 종종 교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곤 하였다(롬15:30-31,엡6:19-20,빌1:19,골4:3,살후3:2).그가 요청하는 기도의 내용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주로 자신의 복음 사업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중보 기도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위대한 겸손의 사람이었다. [가장 위대한 성도들이 낮은 교인들의 기도에 의해 격려되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확실히 멋이있다](바클레이).
    다음, 바울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26절)고 요청한다. 이것은 당시의 독특한 서신 문학의 인사 형식을 취한 것이다(프레임).

    '거룩하게'(하기오, 3:13의 "거룩함"의 주석을 보라) 입맞춤으로(롬16:16,고전 16:20,고후13:12,눅7:4522:48,벧전5:14)의 입맞춤은 고대 세계의 관습이었다. 고대인들은 애정 또는 경의의 표시로 다른 사람의 손이나 가슴이나 무릎이나 발등이나 또는 입술, 그리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헤로도터스(Herodotus)는 입술에 키스하는 것은 페르샤인들의 풍습이라고 하였다. 아마 그들의 풍습이 유대인들에게 전해졌던 것 같다. 이 풍습은 또한 초대 교회에 들어와 교인들의 관습이 되었다. 순교자 저스틴의 글에는 초대 교인들이 모여 기도한 후, 서로 입맞춤으로 환영하였다고 기록되었고, 이 외에 터툴리안 ,크리소스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등의 문헌에도 그런 풍속이 기록되어 있다.
    본래 교회의 입맞춤은 같은 가족들끼리 그 친밀한 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행하는 입맞춤과 대단히 유사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인간적 가족들보다 더 밀접한 유대 관게를 맺고 있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마12:46-50). 따라서 하나의 상징적인 문안 인사가 채택된다는 것은 매우 적절한 일이었다.
    제2,3세기에서 입맞춤은 교회의 예식이 되었으나 그후 폐단이 일어나므로 서방 교회에서는 제13세기에 이르러 이를 폐지하였으나, 동방 교회에서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2)
    모든 형제를 지도자들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는 이들3)이 있으나, 27절을 보아 전체 교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4) 그런데 문장의 형식으로 보아서 바울은 직접 그들에게 문안하는 것이 아니라, 짐작컨대 교회의 지도금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전체 신도들에 대하여 문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흑기.김용옥). 바울에게 있어서 문제 교인이란 여전히 사랑의 지도를 받아야 할 모든 형제들 중 하나로 여겨졌다.

    끝으로 바울은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27절)고 강력하게 요청한다.
    끝으로 바울은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27절)고 강력하게 요청한다.
    물론 [이 표현은 그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하나님의 형벌이 있을 것이라는 위협이 함축되어 있다](헨드릭슨,토마스,p.286).

    명하노니는 에노르키조5)로서 맹세케 하는 것, 서약을 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 말에 주를 힘입어, 즉 '주로 말미암아' 란 전체가 붙어 매우 권위가 있으며 진지하고도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 엄명은 바울이 아니라 주의 것이며, 이 엄명을 받들어 모든 형제에게 본서를 읽어 들려야 할 책임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특히 읽어 들리라는 아나그노스테나이로서, 일관성을 지닌 부정 과거로 해석하여 일반적인 행사로서 규칙적으로 읽으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바울이 이러한 격식을 갖추어 특별하게 부탁한 것에 대해(1) 교회의 지도자들이 바울과 친했으므로 자기들만 본서를 읽고, 신자들에게는 알리지 않을 듯하므로("Theodoret",6) (칼빈),(2)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개종한 이방인들 외에 유대인들이 있어서 본서가 양자 모두에게 읽혀질 것 같지 않으므로(Harnack),7) (3) 데살로니가후서 3:14의 빛에서 볼 때, 바울의 권면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Lightfoot",8) 프레임), (4)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4:13-18)에 관한 문제와 같은 어떤 특수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 자들에게만 국한될까 염려했으므로 (Ellicott),9) (5) 바울이 자신의 이름과 권위를 빙자하여 잘못 가르치고 있는 자들이 있음을 알았으므로 (살후 2:22,Hogg and Vine), 10) (6) 바울이 모든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사도적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신실한가를 보여 줄 목적으로 (흑기,김용옥) 등의 추측이 있어 왔다.
    어느 하나를 택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아뭏든 바울의 의도는 본서가 사랑하는 교인 모두에게 읽혀져야 할 중대한 서신임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탁은 골로새서 4:16에도 나타난다.
    [교육의 혜택이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기독교 집단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스스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복사본들이 크게 부족하였으며, 문방제구들의 값이 비싸다는 등의 제약으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배포해 주기가 어려웠다. 모든 사람이 본서의 내용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을 공중 예배에서 구약과 함께 읽어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교회는 본서에 대해 일종의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토마스, p.278).이와같이 공동집회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말씀의 낭독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의 개방성과 확실성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면서 예배의 생활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생활 방법을 깊이 나타내는 것이다(궁천무천).
    지금까지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가장 위대한 교역자라 할 수 있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그는 중보 기도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겸손한 사도이었다. 다음으로 그는 거룩한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고 한다. 끝으로 그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본서를 공중 예배 때에 전교인에게 읽어주라고 강력하게 명한다. 특히 권위 있게 주로 말미암아 명한다고 하여 거역할 수 없는 진지하고도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2. 축도(5:28).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바울 당시에는 '안녕히'라는 한 마디로써, 편지를 끝맺는 것이 상례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항상 축도로 끝마쳤다. 그중에 가장 간단한 것은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골4:18)이며, 가장 길고 장엄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후 13:13)이다.
    본서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1:1의 주석)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11)라고 하였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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