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요한복음

[스크랩] 요한복음 (7 : 1~5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9:16
요한복음 7장


1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ㅇ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 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 다니신다는 말은, 제자들과 성역(聖役)하시고 계심을 가리킨다. 그
는 때가 되기 전에 일부러 위험 중에 들어가시지 않은 것이다. 박해를 당할 때 구차스
러이 면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일부러 박해를 청하여 받는 것도 지혜롭지 못하다.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ㅇ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 "초막절"은, 유대인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막에 거주한 사실을 기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명절이다(레
23:34).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ㅇ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 일설에, 여기 기록된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보다 연로한 자들이었다고
하나(Bernard), 성경적이 아니다(눅 2:7). "제자들"이란 말은 12제자 밖에 일반 신자
들을 가리킨다.
ㅇ형제들이 예수님에게 저런 말을 한 것은, 예수님에게 또 한 번 고통을 드린 것이
다. 그들은 예수님을 명예주의자로 오해하고 저렇게 권면했다. 그들이 예수님과 형제
관계이면서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하스킨
스(Hoskyns)는 말하기를, "그의 형제들의 권면은, 마치 저 떡 먹은 무리가 그를 억지
로 임금 삼으려던 것과 같고(6:15), 자기에게 절하면 천하 만국을 주겠다고 한 마귀의
시험과도 같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엄밀하게도 하나님 중심이었지만, 그 형제들은 이
세상주의로 행하였다.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ㅇ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 이 말은 이 세상 처세술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인본주의에서 취할 원리이다. 신본주의에서 행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그대로 움직인다.

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ㅇ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 행 1:14을 보면, 그들이 후에
믿는 자들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현재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여
기 이른바 "믿지 아니함"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아니함을 말함이다. 신앙은 혈통
관계로 발생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엡
2:8).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ㅇ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 여기 "내 때"란 말의 "때"는, 여기서 하나님이 친히  정하
신 시간을 가리킨다(Grosheide). 이것은 주로 예수님의 수난 시기(受難時期)를 가리키
는데, 여기서는 그의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시기를 가리킨다. 예수님의 행동은 그 어느
것이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시키시는대로 하신 것이다(5:19,30). 그 이유는, 그는 아버
지와 일체(一體)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고 제멋대
로 행동하는 것인 만큼, 언제든지 그들의 원대로 행하는 그 때가 그들의 때이다. 그들
은 굴레 벗은 송아지와 같아서 자율주의로 덤빈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 앞에
서 가치를 가지지 못하고 겨와 같이 가벼운 것이다.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ㅇ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 이 세상은 타락하여 본질적으로 악해졌으므로 완전히 선하신 예수님과
정반대이다. 거기서 예수님은 미움을 당하신다(창 3:15). 그가 미움을 당하시는 사실
이 도리어 그가 세상의 구주 되신 증표이다. 우리는, 그의 미움 받으신 사실을 보고
도리어 그를 진심으로 믿어야 된다.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ㅇ이 귀절에 대하여는 6절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ㅇ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 그의 머무심은, 그 어떤 다른 힘이
변동시킬 수 없는 태산보다 무거운 것이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 밖
에 다른 것이 없다.

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ㅇ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교훈하실 때에는 비밀히 하시지 않고 공개적으로 하셨
다(26,28,18:20).그런데, 그가 올라가실 때에 비밀히 하신 것은, 도중에 원수들의 위
험이 있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는 때가 이르기 전에 그의 생명을 함부로 내버리기
를 원치 않으셨다.

11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ㅇ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 명절에 모
인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대하여 말하기를 조심하였다. 그 이유는, 종교 지도자들의 의
견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까닭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대하여 옳은 의견도 공적
으로 발표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진리보다 사람을 더 무서워한 잘못이다.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ㅇ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 이 명절 기간은 한 주
간이었다(레 23:36). 이제 그 중간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을 것이다.
이 때에 그는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다.

15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ㅇ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 여기서 "글"이란 말의
헬라 원어는, 문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갈 6:11), 성경을 의미하
기도 하나(딤후 3:15), 여기서는 학문을 가리킨다(W.Hendriksen). 유대인들의 이와 같
은 의문은, 그의 교훈이 권위(權威)있기 때문이었다(마 7:28-29).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ㅇ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 예수님께서 만일 자기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라고 하셨더라면, 서기관들은 그를 가리
켜 속이는 자라고 하였을지 모른다(Bernard). 그러므로 그는,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
버지의 교훈을 그대로 말한다고 하신다. 그는 나면서부터 아는 이라고 하기보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것을 말씀하시는 이시다.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啓示)하시기 위하여, 또는 아버지의 뜻을 대언하시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ㅇ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
함인지 알리라 -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방법에 관하여 말한다. 그 방법은, 사람의 지능(知能)을 첫째로 하는 것이 아니고 종
교 윤리와 관련되어 있다. 그의 말씀을 행하려고 하는 자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게 된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말하기를,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의 교
훈을 알 수 있는 자는 지능의 인물이거나 혹은 통찰력의 소유자가 아니고, 그 말씀을
행하려는 자라고 하셨다. 영적 지식을 얻는 방법에는 이렇게 종교 윤리적인 것이 먼저
관계된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이론이 첫째가 아니고 순종이 첫
째이다. 무디(Moody)는 말하기를,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좋은 학교이다"라고
하였다.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ㅇ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 즈안(Zahn)은, 여기 "스스로 말하는 자"란 것은 그 때의
불신 유대인을 가리키고,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란 것은 예수님을 가리켰다
고 하였다. 불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지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생각하며  말
하였다. 그들이 구약 성경을 존중히 하는 듯하며 그것에 기준하여 말하는 듯하면서도,
실상은 그것을 자기들의 사욕을 위하여 그릇되이 이용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율주
의 자들임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시는 처지(보내심
을 받은 처지)였으니 만큼,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시는 처지(보내심을 받은 처
지) 였으니 만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만 대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은 참
되고 그의 행동 원리에 불의가 없다. 그는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명대로 순종하시니,
그 사실(보내심을 받은 사실) 앞에서 참되시고 또 불의함이 없다. 일반인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생활을 하는 자라면 비교적 참되고 불의함이 없다. 그 이유는, 그는 마
땅히 두려워해야  할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히 행하기 때문이다.
8:29,49-50,54,16:32 참조.
ㅇ참되고 불의가 없는 생활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경건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및 그를 믿는 사람의 생활이다. 그러나 참되지 못하고 불의한 생활
(불의로 진리를 막는 생활)은 모든 경건치 못한 자들의 것이다(롬 1:18).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ㅇ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 이 귀절부터 24절까지는, 윗절 끝에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는 불의가 없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변증하신다. 곧, (1) 자
기의 반대편인 유대인들 측에 불의가 있다는 것.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어겨 가면서,
율법의 예언대로 오신 메시야를 죽이려고 하니, 그것이 불의하다. (2) 예수님께서 안
식에 병자를 고치신 것(5장)은 율법을 어김이 아님. 만일 그것이 율법의 안식법을 어
긴 것이라면,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그것이, 종교 의식으로서 혹은 사람을 위생적으
로 돕는 자비의 일로서 허용된다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이 자비의
일로서 허용되지 못할 것이 무엇이랴? 저것이 정죄되지 않는 한, 이것도 정죄되지 않
는다(21-24).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ㅇ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 유대인들
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독한 미움을 품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저희 마음 속에
숨은 악독을 몰랐다. 그들은, 도리어 그들의 악을 바로 지적하신 예수님을 미쳤다고
지적하며,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라고 하였다. 불신앙은 이렇게 예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모든 불신앙의 사람들은 무언 중에 예수님을 "귀신 들렸다"고 욕하는 자들인
셈이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ㅇ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
이히 여기는도다 - 여기 "한 가지 일"이란 것은,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
신 일을 가리킨다(5:10)."괴이히 여긴다"함은, 그들이 불신앙으로 인하여 도리어 놀람
을 가리킨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ㅇ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
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 할례가
모세의 법(구약 율법)에 제정되어 있다. 그 만큼 그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실상 모세
이전 부조 시대(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시대)부터 내려온 법이다(창 17:10,21:4; 행
7:8). 유대인은 부득이 하여 안식일에도 이 법을 지키는 일이 있었다. 곧, 그들은 난
지 8일 된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였는데, 제 8일이 안식일에 해당하면 그것을 그 날에
도 행한 것이었다(Rabbic Akiba).

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ㅇ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
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 여기 나타
난 대조를 해석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의견들이 있다. (1)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도
하나의 의식적 제도인 할례를 행한다면, 행치 못하실 이유가 어디 있으랴? (2) 할례
는, 의식적(意識的) 의미로 그것을 받는 자의 한 지체에 축복이 된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이적은, 그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만들었다. (3) 그리고 어
떤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할례는, 그것을 받는 자의 한 지체를 위생적으로
건강하게 하는 정도이지만,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은, 그 사람의 온 몸을
건강하게 하셨다고 한다. (4) 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 점에 있어서, 할례를 위생
적 유익에 관계된 일로 생각하지 않고 영적 유익에 관계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해석하
기를, "할례는 다만 그것을 받는 자에게만 영적 유익을 주지만, 그리스도께서 38년 된
병자의 온 몸을 고치신 일은 모든 시대를 통한 교회에 유익을 주는 계시이다"라고 하
였다(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 p.516).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ㅇ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 "외모로 판단하지 말
고." 외모로만 본다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죄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안식일에
할례 받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저것이 죄라면 이것도 죄이다. 이 문제는 공정하게 다
루어져야 한다.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

ㅇ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 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 유대인의 종교적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사실은,
여기 예루살렘 사람의 증거로도 알려진다. 그러므로 20절의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
이까"라고 한 군중의 변명은 무식한 말이다. 예수님께서 드러나게 말씀하셔도 당국자
들(유대의 지도자들)이 그를 잡지 못한 원인은, 때가 이르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것
을 허락하시지 않은 까닭이었다(30절).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ㅇ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이것은, 예수님 나시기 전 중간 시대에 나온 계시 문학에 있는
사상인 듯하다. 계시 문학에는, 그리스도께서 갑자기 "구름에서 나타난다",혹은 "해에
서 나타난다"고 하였다(제 4 에스라 7:28,13:32).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ㅇ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
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내력을 안다는 것은, 그의 인성(人性)편의 역사와 환경을 아는
데 불과하였다. 그것은 예수님도 인정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신성(神性)에
관계된 사실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 사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 때에 그(그리스도)를
배척하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유대인들의 그 앎이 참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심이
다. 하나님(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을 참으로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를 안다. 그 이유
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이가 진정한하나님이시기 때문이
다. (2) 이 말씀은, 또한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사실도 참되다
는 뜻을 가진다(Grosheide). 그가 참으로 메시야이신 것 만큼, 사람들은 그를 절대로
믿어야 된다.
"내가 그에게서 났고,"이 문구의 헬라 원어는, "내
가 그에게서 왔고"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여기에 "났고"라는 개념은 도무지 들어 있지
않다(Calvin). 이 문구의 강조점은, 그가 하나님을 아시는데 있어서 근본적으로 참되
시다는 것이다.

30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ㅇ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
니하였음이러라 - 그는 많은 위험으로 포위되었으나 잡히우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아직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위험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보호하신 것이, 여기에도 나타났다. 그는, 일반 신자들에게 대해서도 꼭 마
찬가지로 보호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앙을 가장 위험한 줄 알고 경계해야 된다.

31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찌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ㅇ무리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
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 그 때에 예수님을 잡으려는 무리가 있었던
반면에(30절), 그를 믿는 큰 무리도 일어났다(31절). 진리가 박해를 당할 때에 택한
백성들은 자던 잠을 깨어 진리편으로 오는 법이다. 어두운 밤이 깊어지면 새벽이 가까
와 오는 것처럼(롬 13:12), 죄악이 혹독하게 그 정체를 드러내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정의감이 일어나게 되면서 진리 편에 가담하게 되는 일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
받을 믿음을 가지게 될 근본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의 예택을 받은 사실에 달렸다.
6:37, 44 참조.

32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ㅇ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
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 "수군거리는 것"은 윗절 하반에 기록된
내용과 같은 것이겠다. 그렇게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제 시기하는 마음으로 그를 잡으려고 한다. 종교가들도 부패하면 저
렇게 남의 잘 되는 것을 시기하는 악독을 발한다. 좋은 것이 썩으면 더욱 괴악하여지
는 법이다.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ㅇ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
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 이것은, 예수님께서 땅 위에서 역사하시는 기간이 길지 못할 것을 가리킨 것이다.
멀지 않은 장래에 그는 하늘에 가실 예정이었다. 그러므로 그 때 그를 핍박하던  유대
인들은 그의 가시는 하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그는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물론
예수님을 해하려는 자들의 종국(終局)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여 찾는 신자들은 벌써 어느 정도 그 (예수)를 소유하고서,
더욱 풍부히 그를 소유하기 위하여 찾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찾음은 헛되지 않다. 이
세상의 우물에 물을 길러 가는 자는 물을 못 길어 올때가 있어도, 구원의 생수(예수)
를 얻으려고 찾아 가는 자들은 언제나 기쁨으로 찾아 만난다.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ㅇ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
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 유대
인들은,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
신다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서 잘못 생각하기를,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이란
말은, 헬라와 기타 외국에 분산하여 사는 유대인들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외국에 흩
어져 사는 동포들을 천하게 보았으며, 특히 이방인(헬라인)들을 멸시하였다(Bernard).
그러므로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란 말
은, 예수님의 권위를 업신여긴 말이다. 그들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고 하신 무서운 말씀 앞에서도 두려워 회개할 줄 모르고,
오만한 태도로 그저 한 번 의문하고 지나간 것이다. 불신앙은, 이렇게 내세(來世)에
당할 일에 대하여 둔감(鈍感)하다.

37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ㅇ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초막절은 한 주간이지만, 거기 하루를 더하여 8일 동안 지켰다(레
23:36; 민 29:35). 유대인들은, 이 초막절 기간에 매일 실로암못에서 물을 길어 가지
고 행렬을 가지고 행렬을 지어 성전 문에 돌아와서 물을 붓는 행사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선조들이 광야에 있을 때 바위에서 이적으로 솟아나온 물을 기념하는 뜻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초막절 행사와 관련하여 영적 생수에 관한 설교를 하셨
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큰 말씀이다. 이것은, 메시
야로서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의 권위는 마 11:28 말씀과 같다. 사 55:1 참
조.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만이 인류의 갈증을 멈추어 주실 수 있음이 확실하다. 인
간은 작은 자이지만, 그의 소망과 요구는 무한한 것으로야 채울 수 있다(전 3:11). 이
무한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인류의 갈증을 참으로 만족시키신다는 사실은, 약 2,000년 동안의 진실한 기독 신자들
의 경험이 증거한다.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ㅇ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 어떤 학
자들은, 이 귀절 초두에 있는 "나를 믿는 자"란 말을, 앞절 끝의 "마시라"는 말의 주
격으로 올려 붙인다. 그것이 문법상으로 가능한데, 그렇게 하는  경우에는 그 뜻은,
"나를 믿는 자로 마시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 "그 배에서"란 말을
"그리스도의 배에서"란 뜻으로 간주한다(Lagrange, Bultmann, Wikenhauser). 옛날 교
회에서는 히폴리트(Hippoliyt)가 그렇게 해석하였다. 그러나 우리 한역과 같이 번역함
이 옳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였고, 그들에게서 나온 영적 역
사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미쳤다. 후대의 일반 신자들도 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남들
에게 신령한 은혜로 충만하였고, 그들에게서 나온 영적 역사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미
쳤다. 후대의 일반 신자들도 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남들에게 신령한 은혜를 강수처
럼 풍성히 전달해 준다. "성경에 이름과 같이"란 말씀은 다음 성귀들을 기억하게 한
다. 곧, 사 43:20, 44:3, 55:1,58:11; 겔 47:1-12; 욜 3:18; 슥 13:1, 14:8등이다. 여
기 이른 바 "그 배에서"란 말은 성령님께서 신자의 가장 깊은 심령 속에서 역사하실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영적 역사는, 이렇게 인간의 가장 깊은
요구를 만족시켜 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준다. "생수"는  성령님을 비유하는
데, 이런 비유가 성령님의 인격성을 제외함이 아니다. 요한 복음은  성령님의 인격성
(人格性)을 밝히 말하고 있다(1:33, 3:34, 6:63).

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ㅇ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영광을 받음"에 관
한 말씀은, 여기서는 특히 그의 승천을 가리킨 것이다. 14:26,16:7을 보면, 성령님의
강림은 그의 승천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뷕셀(Buchsel)은, 여기 "영광"이란 말이, 예
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까지 포함한다고 하였다(Theo., S.74).
ㅇ슐라테르(Schlatter)는, 이 귀절들(37-39)에 있는 성령 관설은 그리스도의 말씀 운
동, 곧, 신약 시대의 전도 운동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다(Theo., d. Apost., S.
152). 그러나 여기 이 말씀은 신자에게 대한 성령님의 내적 역사, 곧, 거듭 나게 하는
역사를 가리킨다. 구약시대에도 성령이 역사하셨으나, 신약 시대의 역사는 그 성격이
특이하다. 이 시대(오순절 때)에 임하신 성령은 강수와 같이 풍성하고, 교회 안에 유
하시며 교회를 근거점으로 하고 일하신다(Grosheide, Hij in de gemeente woonte en
uit de gemeente werkt. 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P.535).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ㅇ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
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어두어졌기 때문에,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해서
도 저렇게 견해가 달라졌다.
ㅇ"그 선지자"란 말은 모세가 예언한 바(신 18:15) 메시야 명칭이다. "다윗의 씨."
삼하 7:12 참조.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미 5:2 참조.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ㅇ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 그들은 진
리를 신앙하므로 구원 받기를 원치 않고 도리어 그를 잡아 치우려고 한다. 그것은, 어
두움이 빛을 물리쳐 보려는 어리석은 일이다.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진리의 존
재가 괴로운 것이 되어진다(계 11:10).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눌러 보려고도 하며,
잡아 치우려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멸망을 자취함이다. 그들이 그 때에 그
를 잡지 못한 원인은 아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30절).

45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ㅇ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 오지 아
니하였느냐 - 여기 나타난 그들의 질문을 보아서, 그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해하려는
마음으로 불 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6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ㅇ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 하속들(성전 경
비원들)의 느낌에도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었다. 따라서 그 말씀은 권세 있는
자의 말씀으로 나타났을 것이다(마 7:29). 그러므로 저 하속들도 압도되어 그를 잡지
못하였다.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ㅇ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 예수님을 잡으려던 하속들은, 그래
도 그의 말씀 앞에 압도를 당하였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미혹된 자들
이라고 한다. 그 만큼 바리새인들은 더욱 강퍅하였던 사실이 드러난다.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ㅇ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 이  점에 있어서 어거스틴
(Augustine)은 해석하기를, "그 때에 율법을 모르는 무리는 도리어 율법의 제정자이신
그리스도를 믿었으나, 율법을 가르치노라고 하는 자들은 그를 정죄하였다. 그것은, 그
가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시리라는 말씀(9:39)의 성
취이다"라고 하였다(Catena Aura IV,P.279).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불신앙이 진리의
표준인 듯이 여기서 호언 장담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그들의 시기로 인하여 발
표된 역설(逆說)이다. 그들 자신이 그들 자신의 죄악에 미혹되었다. 그들의 이 말은
그 자리에서 모순된 것으로 탄로된다. 곧, 그들의 이 말 끝에, 그들중 하나인 니고데
모가 그리스도 신앙의 방향으로 돌아온 표를 나타내었다(50-51). 여기에 따라서 그들
의 호언 장담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ㅇ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가리켜 율법을 모르는 자라고 망단(妄斷)한다.

50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ㅇ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
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 니고데모의 이 말은, 바리새인
들의 호언 장담한 내용, 곧,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예수 믿는 자가 없다는 주장
(48절)을 수포화시켰다. 그 이유는, 니고데모는 관원이요 바리새인(3:1)이면서도 이
때에 예수님을 변호할 정도의 신앙이 있었던 것으로 이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바리새인들의 또 한 가지 호언 장담, 곧, 자기들딴은 율법을  안다고 하면서
율법을 모르는 무리를 저주한 것도, 니고데모의 이 말 한 마디로 인하여 헛된 것으로
드러난다. 그들이 남들을 율법 모르는 자들인 사실이, 니고데모의 이  말로 확증되었
다. 그들은, 남들을 정죄하려다가 도리어 자기들 자신을 정죄한 셈이다. 신 1:16; 출
23:1-3 참조.

52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ㅇ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
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 그들이 니고데모를 업신 여기는 태도로 이 말을 하
였다. 그러나 이것도 모순된 말이니, 율법과 성경에 대한 그들의 무식을 자증한 것 뿐
이다. "상고하여 보라"는 것은 율법책(혹은 성경)을 상고하여 보란 말이다. 그들은 이
렇게 도전적으로 자기들딴은 율법이나 성경의 권위자인 듯이 자처하며 남들을 무시한
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그들 자신의 무식이 여기 이 말로 나타났다.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못하느니라"고 한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사 9:1 참조.

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ㅇ이 귀절은, 8장 초두에 취급된 사본 문제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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