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요한복음

[스크랩] 요한복음 (6 : 1~71)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9:16
요한복음 6장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ㅇ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 여기 "디베랴
바다"란 이름은, 주님 당시의 이름이 아니고 좀 후대의 것이었으나, 저자가 이방 교회
의 식별을 위하여 "갈릴리 바다"란 말에 첨부한 것이다. 디베랴 바다라고 해야 당시
이방 사람들이 잘 알았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ㅇ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표적"이란 말
(예수님의 이적으로서 메시야이신 사실을 보여주는 표란 뜻이다. 이 표적들에 대
하여는, 마 14:14; 막 1:34,40-42,2:11-12.3:1-5,6:5; 눅 9:11; 요 2:11을 참조하여
라. 그러나 대중은 예수님의 이적의 표적 성격을 잘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호기심
과 육적요구를 위하여 예수님을 좇았던 것이다. 26절 참조, 그들은 아직 그의 말씀이
이적보다 귀한 줄 몰랐던 것이다.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ㅇ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 여기 말한 "산"
은 언덕을 의미하므로 이것은 갈릴리 바다의 해변 언덕을 가리킨다. 유대의  랍비들은
보통으로 높은 데 앉아서 그 제자들을 가르쳐 주었다. "제자들"은 열 두 제자를  가리
킨다.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ㅇ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 "유월절"에 대하여는 2:13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여기 "유월절"이란 말이 모든 사본에 있음에도 불구하
고 대다수의 교부들의 증거는, 이것이 없는 편을 지지한다. 홀트(Hort)도 그렇게 생각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있는 것이 연대적으로도 자연스럽고 저자의 신학적 견지에서도
자연스럽다(Schlatter, Barrett).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ㅇ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
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 예수님께서 눈을 드시고
큰 무리를 보신 것은, 그들을 위하여 무슨 좋은 일을 하시려고 그리 하신 것이다. "빌
립"에 대하여는 1:44, 12:21, 14:8 을 참조하여라.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으신 문제
는 그의 신앙을 시험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빌립은 신앙적으로 이 문제를 취급하지
못하였다. 그의 당한 것은 모세가 주린 백성을 앞에 두고 당한 난제와 같으며(민
11:13,22), 엘리사의 종이 당한 것과도 같았다(왕하 4:42-43).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ㅇ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 예
수님께서는, 이 때에 자기의 권능으로 군중을 먹이실 대책을 벌써 생각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육신을 먹이는 문제보다 영적 문제, 곧, 제자들의 신앙 교육을
더욱 중히 하셨다. 그는 빌립의 신앙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에게 문제를 주셨다. 그것
은, 빌립이 그 군중의 가련한 정형을 보고 동정심을 가지는 여부를 아시려는 시험이
아니다. 그것은, 비범한 방법으로 먹을 것을 준비해 주실 수 있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그의 신앙 여부를 알아 보시려는 시험이었다(Grosheide). 이와 같은 시험은 신앙을 배
양하는데 유익하다.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ㅇ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
리이다. -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이다. 그러므로 200 데나리온이
면 상당한 금액이다. 빌립의 이 계산은 다만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것이다. 그에게는
건전한 이해력은 있었으나 신앙은 없었다(Godet).그는 일찌기 예수님의 이적들을 보았
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때에 신앙적으로 생각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주님의 권능에 대해서는 건망증이 많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ㅇ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 빌립과 안드레는
종종 함께 나타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같은 고향 사람인 사실과 그들이 제
자 중 가장 먼저 선발된 까닭인 듯하다. 12:20-22, 1:41-44 참조. 안드레의 말(9절)
은, 이 부분 기사를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 곧, 그 때에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음식물
이라고는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으므로 이적으로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주었다. 이 부분 기사가 이적이 아니고 단지 각 사람에게 있었던 음식물
을 먹도록 하였다는 합리주의 해석은 안드레의 말을 위반하는 것이니, 그것은 그릇된
해석이다.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ㅇ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
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이다.
"물고기"라고 한 것은 멸치와 같이 작은 고기라고 한다. 안드레도 여
기서 그리스도의 권능을 믿지 못하고 현실주의 견지에서 낙심하고 만 것이다.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ㅇ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
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 무리를 앉힌 것은 그리스도의 긍휼의 표현이며, 그
들이 앉은 것은 그들의 순종이다. 그들은, 그저 단순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권위 있는
지도를 받으려고 감심으로 순종하였다. 언제나 신앙의 태도는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마땅히 자기 스스로 지혜 있는체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권위(權威)를 믿고 순종하
며 기다려야 한다.
ㅇ여기 5,000명이란 것은,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들만을 계수한 것이다(마 14:21).
이때에 남자들만 계수한 것은, 여자들과 아이들의 인권을 무시한 것이 아니고, 남자들
의 대표적 지위를 염두에 둔 것이다.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ㅇ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
의 원대로 주시다 - "예수께서 떡을 가져"란 말씀은, 그 제공한 다섯 개의 보리떡을
받으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여기서 전연 없는 데서 창조하심이 아니고, 조금이라도
있는 것을 가지시고 많게 하셨다. "축사"하셨다는 말은 감사하셨다는 뜻이다. 예수님
은 적은 것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셨다. 감사하는 자리에 더 많은 축복이 임한
다.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ㅇ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 예수님은 선물을 관대하게
주시지만 낭비하는 것을 금하신다. 물질이 헛되이 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
다.
ㅇ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 유대풍속에, 식사에 봉사하고 남은 음식은
그 봉사자들의 분깃이 되었다고 한다(Lightfoot, Hor., 3,302).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
하여 봉사한 12사도들은 저렇게 필경 받은 상급이 컸다.

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ㅇ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 "그 선지자"에 대하여는 신18:15에 예언되었으니 곧,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기 때문에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하였다(15절 참조).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ㅇ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
시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으나, 진리대로 바로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저희의 물질 문제나 해결하여 주실 메시아로 알았던 것이
다. 그런 생각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니, 그가 거기 응하시지 않았
다. 어쨌든 이 사건은, 그 떡 먹이신 이적이 얼마나 위대하였던 것을 증명해 준다. 그
들이 그 권능을 본 뒤에는, 로마 정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막바로  예수님을 유대의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응하시지 않은 것은, 그가 군중의 메
시아 관념이 육적인 것을 합당치 않게 보셨기 때문이었다.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ㅇ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 - 그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렇게 하였다
(마14:22). 그가 그렇게 그들을 지도하신 목적은, 그 자신이 홀로 떨어져 기도하시기
위한 것이었다(마14:23). 그는 많은 무리가 따르는 때를 도리어 위기(危機)로 보시고
기도에 열중하셨다. 이것이 그의 특이하신 점이고,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심이다.
사람들은 인기가 올라갈 때에 그것을 성공으로 알고 안심한다.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ㅇ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 그가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않은 것
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때에 제자들의 신앙을 연단시키려고 하셨다. 제
자들은, 이때에 예수님 없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지경에 빠졌다가 예수님의 권
능으로 구원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 때에 예수님을 더 믿었어야 될 것이었다. 신
32:11 참조.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ㅇ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 지중해보다도 682피드나 낮은 갈릴리 바다에
는 사방 높은 언덕사이의 골짜기로부터 강한 바람이 뜻밖에 불어오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배를 타고 풍랑 중에 있는 것은, 마치 교회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고 있음과 같다. 예수님은 얼마동안 그 배로 찾아 오시지 않았으나, 마침
내 오셔서 풍랑을 잔잔케 하셨다. 그와같이, 환란중에 있는 교회도 마침내 주님의  권
고로 말미암아 평안해진다.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ㅇ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 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
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 어떤 학자들은, "바다 위"란 말                
이 해안을 의미한다고 하며,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러 오신 것이 아니고 바닷가의
언덕으로 걸어 오셨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기사(記事)는 이적을 기록하는 것
임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1) 제자들이 두려워한 까닭이며, (2) 공관 복음의 동일한
기사가 이적을 기록하는 심리를 명백히 보여주기 때문이다(막6:29; 마14:26).

20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ㅇ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 "내니"란 말은, 예수님
께서 그 때에 자신의 현림(現臨)하심을 가리킬 뿐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계시(啓示)하심이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안전과 평안이 있다.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ㅇ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 여기 "배는 곧"이란 말을  주목해야  한
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므로 말미암아 또 다시 배는 초자연적으로 순조롭게 가게 되었
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자연계를 통솔하실 수 있는 권능으로써 자기가 하나님 아들이
심을 증거하셨다(마14:33 참조).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ㅇ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 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
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 곧, 떡 먹은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아직 바다 이 편(저희 있는 곳)에 계신 줄 알고
안심한 적이 있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생각에는, 제자들만이 거기 한 척
밖에 없었던 배를 타고 건너갔고, 바다 이 편에 남아 계셨던 예수님은 아직 머물러 계
시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뜻 밖에도 예수님도 거기 계시지 않은 사실을 그들은 발견
하게 되었다(24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ㅇ(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곳에 가까이 왔더
라) - 이 귀절 말씀은, 그 무리가 어떻게 바를 건너 가게 된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
다. 본래는 배 한 척 밖에 없었으나, 그 뒤에 여럿이 왔으므로 그들이 그 배 편들을
이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여기 알려진다. 이런 자세한 기록을 보아서도 이 사실에 대
한 목격자였던 사도 요한이 이책을 기록한 것이 분명하다.

24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ㅇ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 이 말씀을 보니, 그들은 예수
님을 찾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바로 알지는 못하였으니, 그것
은, 예수님을 찾는 그들의 동기가 불순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예수님을 찾는 동
기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전해지는 여부에 중대한 관계를 가진다(Grosheide).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ㅇ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
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 부른 까닭이로다 - "진실로 진실로"란 말
은, 그 장차 말씀하시려는 사실의 중대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무리가 예수님을 찾
은 이유는, 그를 영적 메시야로 바로 안 까닭이 아니다. 그들은 떡을 위하여 따라 다
녔던 것이다. 곧, 그들은, 5천명 이상의 무리에게 떡 먹이신 그 이적에서 그리스도의
증표를 깨달음보다 물질적인 떡에 흥미를 가졌다. 인간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육체적 만족을 위하는 때가 많다. 그것은 인간의 부패성의 결과이다.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ㅇ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 치신자니라 -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력(靈力)을 가리킨다. "인자"는 인성(人性)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바 그가 살과 피를 희생하셔서 속죄하여 주시므로 영적 생명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게 된다. "인 치셨다"는 뜻은, 예수님을 구주로 세우시고 인정
하시고 신임하셨다는 뜻이다. 이런 구주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보다
높다는 참람한 죄악이요, 하나님을 거짓말 하시는 이로 여기는 죄악이다.

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ㅇ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 여기 이른 바, "하
나님의 일"이란 말의 헬라 원어를 직역하면, "하나
나님의 일들"이란 뜻이다. 이 때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 곧,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는 것을 오해하여, 영생의 대가(代價)로 많은 인간적 업적을 생각
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더러 일 하라고 하신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가
말씀하신 "일"이라는 것은 신앙을 의미하였다. 신앙은 일 아닌 일, 곧, 그리스도 안에
안식함이다.
ㅇ유대인들은 저렇게 인간의 힘으로 어떤 고등 노동들(하나님의 일들)을 하므로 영생
을 얻고자 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들"이라고 복수 명사를 사용하였으니, 일의 수
량에 의하여 문제 해결을 보려고 한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어떤 고등 노동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것은 어리석다. 사람들은 오직 믿음에 의하여 그리
스도의 은혜로만 천국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대답
하시기를,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다(29절).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ㅇ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도록 하심이 하나님의 일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신앙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고, 신구약의 모든 말씀들은 인간에게 믿음을 가르친다.
특별히 우리 본문에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일들이
아님)하심은, 의미심장하다. 여기 단수 명사로 된 "일"은 "그 일"
이란 말인데, 모든 다른 일들 곧, 율법적인 일들과 엄격히 구분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유일한 일이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은 무슨 내용을 가진 신앙인가? 그것은, (1) 하나
님을 신임하는 믿음, 하나님의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임하
는 것이니 하나님을 모독하는 큰 죄이다. (2)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완전히 계
시하시는 살아 계신 신(神)이심을 믿음.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성육신(成肉身)하여
보내신 것은, 인간과 깊은 교제를 가지시기 위한 최고의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
을 믿지 않는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내버리신 무의 무정(無意無情)하신 이로 오해하
는 자이다. (3) 하나님 자신을 인간의 눈과 귀로 친히 보며 듣는 것과 같이 믿음. 땅
에 오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하나님 자신을 받아 가진자이니, 그로서는 하늘
의 하나님을 보겠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ㅇ어떤 성도는 말하기를, "만일 전적으로 신앙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일어난다면, 세
상의 역사는 변화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스펄죤(Spurgeon)은 말하기를, "작은 믿음은
영혼을 하늘로 가져가고, 큰 믿음은 하늘을 영혼에게 가져온다"라고 하였다. 아브라함
은 남들의 권면을 받지 않고도 믿었고 (창 18:9-15; 롬 4:19-21), 수로보니게 여자는
하나님의 권면 없이도 믿었고(마 15:22-28), 노아는 경험한 바 없이도 홍수에 의하여
세상이 망할 것을 믿었다(히 11:7).

30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ㅇ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
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 일찌기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곧, 신학적 문제에 접촉하였고, 이제 갈릴리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문제
곧, 구원론에 접촉하여 각각 불신앙을 나타냈다(Godet). 예수님께서 자기가 메시야이
신 사실을 보여주시는 "표적"을 행하셨으나, 그들은 그것을 통하여 표적다운 내용을
보지 못하였다. 고데이(Godet)는 말하기를, "그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할 때에
그의 거절하신 태도로 인하여 그들은 낙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를 메시
야 아닌줄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시 표적을 찾게 되었다"라고 하였
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야격이 이 세상의 정치적 임금이 아닌 사실을 깨닫지 못하
였다. 다시말하면,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 이상의 무리에게
먹이신 표적(메시야 표적)을 그들이 깨닫지 못했으니, 유감스럽다(26절).

31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ㅇ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셨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
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 출 16:15; 시 78:24 참조. 저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을 인
용한 것을 보니, 그들은 지도자들이었든지, 혹은 서기관인 듯하다(Belser). 그들은,
메시야가 온다면 또 다시 만나를 내려 먹게 해 줄 것으로 잘못 알았다(Midrash
Koheleth, P.73).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에게 그렇게 하여 주시기를 간접적으로 청원
한 것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ㅇ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
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린 떡"이란 말을 쓰실 때에 만나를 염두에 두시고 하신 말씀
이 아니다. 이것은 신령한 떡,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하늘에서
내린 떡이란 말로써 옛날의 물질적인 떡 곧, 만나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
정한 의미의 하늘 떡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진정한 의미의 하늘 떡은 예수 그리
스도 자신이시다. 저 유대인들은, 만나보다 더욱 위대하신 떡("참 떡" 곧, 예수님)을
소유할 수 있음에 대하여 불신앙했으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ㅇ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 여기 "하나님의"
란 어귀가 강세(强勢)를 띤 말이라고  한다(Goebel).그렇다면, 이
어귀가 그 "떡"을 가리켜 그 영성(靈性)과 그 영원성과 생명성과 및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사실을 고조한다. "하늘에서 내려"란 말씀이, 이 부분 예수님의 교훈에 일곱
번 나온다(33, 38, 41, 42, 50, 51, 58).그 만큼 이 말씀은 역설체(力說體)로서 그 떡
의 특이한 성격을 보여준다. 곧, (1)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인 만큼 광범위한
세계에 분배된다. (2)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영원 불멸의 생명을 주는 것이다.
만나는 영양을 줄 수 있었으나 하늘 떡은 생명을 주는 것이다. (3) 만나는 보이는 하
늘에서 내려왔으나, 생명의 떡은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내려온다(Calvin). (4) 하늘에
서 "내려오는" 이란 말의 헬라 원어는, 현재 분사로서 계속적
으로 내려오는 활동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양식은 사실상 모든 시대를 통
하여 끊임 없이 내려온다.

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ㅇ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 이것은, 또 다시  유대인들의
불신앙 표현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명 떡"이 육신의 양식인 듯이 오해
하고 욕심을 부린다. 여기서 그들은 그것을 "항상" 주시기를 청원한다.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ㅇ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주리지 아니할 터이
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 마르지 아니하리라 - (1)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생
명의 떡"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이 먹는 행위와 같이 실제적이
어야 할 것을 암시하심이다. 믿음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고 실제이다. 먹음으로 우리의
주린 것을 멈추는 것처럼, 믿음으로 우리의 영적 기갈이 멎어진다. 음식을 먹지 않으
면 죽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멸망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먹는 것처럼 믿
어 그를 내 분깃으로 섭취해야 된다. 예수님에게 대한 이론만 알고 그를 내게 섭취시
키지 않으면, 그것은 큰 곡창(穀倉) 문 앞에서 굶어 죽는 것과 같은 가석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음식 먹기를 계속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일을 계속해야된다. 작년
이 때 먹은 것이 오늘의 주림을 멈추어 주지 못한다. 신앙 생활을 먹고 마시는 행동에
비유한 것은, 성경에 많이 있다. 사 55:1에도 말하기를, "너희 목 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
을 사라"고 하였다. 계 3:20, 22:17 참조. (2) "내가 곧 생명의 떡"이란 말씀은, 예수
님 자신이 생명이신 동시에 생명을 주시는 이시란 뜻이다. 그는 주시는 자시며, 또 주
시는 선물 자체도 되신다(Zahn). 그 자신이 대제사장인 동시에, 자신이 제물도 되신
다. 그를 믿는 자는, 그의 속죄제의 효과를 받아 누리며 따라서 그와 일체(一體)되도
록 밀접히 연합하게 된다. 그가 자기를 떡에 비유하신 이유는, 음식물은 그 먹는 자와
밀접하게 연합하여 일체가 되기 때문이다. "내게 오는 자"란 말과 "나를 믿는 자"란
말은, 서로 병행하여 동일한 뜻을 가리킨다. 온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지향한 영적 동
태(靈的動態)를 말함이고, 믿는다 함은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합해 있음
을 가리킨다(Grosheide, 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P.439).

36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ㅇ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 하는 도다 하였느니
라 - 이 말씀은, 26절의 내용에 암시된 뜻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이 하늘 것을 본다
고 반드시 믿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는 것이 믿는 데 이르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더욱 복되다(요 20:29). 벧전 1:8-9 참조.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ㅇ이 귀절들은 (1)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의 이유가,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권위
가 부족한 탓이 아니고 다만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까닭이라는 것, (2)
믿는 자들은 그들의 의지력(意志力)으로 믿는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도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니 만큼, 그 구원이 확고 불변하다는 것이다.
ㅇ신앙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그러므로 그것을 소유한 자는, 그것을 소유한
것이 벌써 확실한 구원 소유인 줄 알고 위로를 받는다. 딤후 1:12에 말하기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하였고, 빌 1:6
에도 말하기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하였다. 위대한 신앙가요 과학자인 미카엘 파라디(Sir
Michael Faraday)는, 임종시에 어떤 사람들이 "당신의 영혼이 장차  어떻게 되겠다고
추측합니까?"하고 물을 때에 그는 대답하기를,"추측? 나는 추측에서 살지 않는다. 나
는 확신에서 살고 있노라"고 하였다. 어떤 성도는 늘 기쁘게 노래하기를, "나는 가련
한 죄인이고 그 밖에 아무 것도 아니로라. 그러나 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것이로다"라
고 하였다.
ㅇ우리의 신령한 체험이나, 혹은 도덕 생활에는 굴곡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죄인인 사실은 변치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이신 사실도 변치 않는다.
혹시 우리의 도덕 수준이 올라갔다 해도 죄인임을 면치는 못한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님 밖에 없다. 히 13:8에 말하기를,"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시니라"고 하였다. 진실한 성도들은, 끝까지 구원해 주시기로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
씀에 생명을 건다. 해버갈(Havergal)이란 성도는, 임종시에 자기 친구더러 사 42장을
읽어 달라고 하였다. 그 친구가 읽을 때 그는 6절 말씀에서 주의를 시켰다. 곧,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
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라고 한 말씀이다. 그는 이 말씀에서 "불렀다"는 말씀,
"손을 잡았다"는 말씀, "보호한다"는 말씀을 맏고 세상을 떠난다고 고백하였다.

41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42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ㅇ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인간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그가 자기를 가리켜, "하늘로서
내려 온 떡"이라고 말씀하심을 듣고 원망하였다.사람들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위대(偉
大)를 그의 인간성 때문에 의심한다. 그러나 그가 인성을 취하신 것은, 인간들에게 나
타낸신 그의 지극한 사랑이다.

4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ㅇ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믿지못한 이유는, 그 실상 그리스
도에게 하늘로서 오신 증표가 없는 까닭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만은 하나님께서 그리
스도에게로 이끌지 않으신 까닭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동시에,
그의 백성도 이끌어 그에게(그리스도에게)로 모으신다(호 11:4). 이끈다 함은, 성령으
로 말미암은 중생의 역사를 가리킨다(롬 8:9; 고전 3:16, 6:19, 12:3; 요일 3:24). 그
때는 아직 성령이 강림하시기 전이었음으로 여기서는 성령의 인도에 관한 말이 사용된
지 않았다.

45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ㅇ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
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 "선지자의 글"은 사 54:13을 가리킨 것이다. 우
리와 신학처지가 다른 버나드(Bernard)도 이 귀절에 대하여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자
가 되려면 진리를 배워야 되고, 한번 듣기만 해서는 신자가 되기 어렵다. 예정의 도리
가 요한 복음에 있으나 이렇게 인간편의 책임있는 노력을 무시하지 않았다"라는 의미
로 말하였다.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ㅇ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 윗절에,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로 한 말씀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예수님과 그 사자
들로 말미암은 전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에게로 오게 된다는 뜻이다).
ㅇ"하나님에게서 온 자"는, 오직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이 세상에 오신자 곧, 예수
님 뿐이시다. "하나님에게서"란 문구의 "에게서"란 말은 본래의 근원으로
부터 관계된 사실을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게만 사용될 말이다.
ㅇ"보았느니라."이 말의 헬라 원어는, 보았고 또 그 본 결과를 계
속해서 보존하고 있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
기 전에 하나님을 보셨고, 또 그 보신 사실이 그에게 계속해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므
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자가 없다(1:18, 14:9; 마 11:27). 하나
님은 먼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말씀을 전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만
이 하나님 아버지를 보셨고, 또 그의 말씀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ㅇ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믿는 자"란 말은 예수님을
믿는 자란 뜻이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 문구의 짧은 것을 가리켜 사상의 표
현을 강력하게 하려는 문체라고 하였다. 그것이야말로 간단  명료한 진리 표현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이 문구에 대하여는 35절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ㅇ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 예수님도 인간 편으로는 유
대인이고, 그들의 조상이 예수님의 조상도 된다. 그러나 영적으로 말할 때에, 그들과
그들의 조상은 불신앙에 속하였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물질적인 만
나와 달라서 영적인 하늘떡이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그를 영접하는  자들은 영생한
다.

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ㅇ이 귀절들은, 33, 35절에 있는 말씀을 거듭한 셈이다. 중언체(重言體)는 역설체(力
說體)이다. "내 살"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가리킨다. 그가 우리를 대신
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임이 되시므로 그를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는다.

52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ㅇ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 유대인들이 서로 다툰 원인은, 그들의 의견이 서로 다른데 있었
다. 그들 중 어떤 자들은 예수님의 속죄 교훈을 믿었으나, 어떤 자들은 믿지 않았다.
믿지 않은 자들은 예수님의 살이 세상 사람의 생명이 된다는 말씀(51절 끝)에 걸렸다.
그들은, 메시야가 죽어서 속죄하시는 진리를 왜 믿지 못했던가? 그 진리는 이사야서
53장에 명백히 예언되지 않았는가?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ㅇ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세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
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여기서는, "인자의
살"이란 말에 "인자의 피"란 말을 더하여 말씀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었
인가? (1) 그것은, 살과 피는 인간성을 모두 가리키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인간성 전
체가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셨으니, 그것은 우리 구원의 완성을 위하신  것이다. (2)
피를 첨부하여 말씀하신 또 한가지 이유는, 피는 특별히 생명을 의미하는데 (창 9:4;
레 17:11,14), 그것을 흘리셔서 속죄 제물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출 12:7,8; 레1:5;
히9:12,20). 살을 먹으며 피를 마신다는 말씀은 문자적 의미보다 비유적 의미를 가진
다. 그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것은, 곧, 그의 살과 피를 먹으며 마시는 행위와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나 자
신의 분깃으로 만드는 실제적 행위이다. 신앙은 이론 뿐이 아니다. 
ㅇ이 말씀에 근거한 기독교 성찬 교리에 대하여, 불트만(Bultmann)은, 그것이 헬라
신비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Theology of the New Testamant I, p.148). 그러나
헬라 신비 종교에서 그 의식에 참여한 자들이 신(神)을 먹는다고 한것(그들의  신으로
표상된 소위 고기 같은 것을 먹는 것)은, 범신론 사상과 마술적 사상에 근거한 것이
다. 따라서 그 먹음에 참여하는 자가 신(神)이 된다는 그릇된 주장도 거기 있다. 그러
나 기독교의 성찬은 그와 정반대로서 유신론적인 속죄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는 것이
다. 그 뿐 아니라, 기독교의 성찬은, 구약에 있는 유월절 잔치의 후신(後身)이다. 예
수님께서 성찬을 제정하실 때에 바로 유월절 만찬을 잡수시면서 그것을 성찬으로 변전
시키신 것 뿐이다(눅 22:7-23). 요 6장에서 신자들이 그의 살을 먹으며 그의 피를 마
실 필요성에 대하여, 그가 강조하신 때도 유월절이 가까운 시기였다(4절). 그 뿐 아니
라, 유월절 잔치의 영적 의미가 성찬의 그것과 같다. (1) 유월절 잔치를 먹는 것이 이
스라엘에게 구속을 준 것처럼(출 12:13), 성찬을 먹는 것이 기독 신자에게 그런 의미
를 가지며, (2) 유월절의 만찬이 애굽을 떠나 먼 길을 가는 이스라엘에게 양식이 된
것처럼, 성찬은 기독자에게 영적 양식이 되기도 한다.
ㅇ이와 같은 사실들을 보면, 성찬과 헬라의 신비 종교와는 전연 관계가 없다. 헬라의
신비 종교들 중 다요니시스(Dionysys)란 신을 예배하는 제사에서는, 거기 참여하는 자
들이 그들의 신을 상징하는 소의 고기를 생으로 먹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므로 그들
자신이 신화(神化)한다고 믿었던 것이다(Machen, The Origin of Paul's Religion, pp.
281-282). 이런 사상은 범신론(汎神論)으로서, 유신론(有神論)인 기독교와 반대된다.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ㅇ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
리리니 - 헬라 원어에 의하면, 여기 "먹고"란 말이 이때까지 사용된
먹는다는 말과 다르다. 여기 사용된 말은 맛있게 먹음을 의미한다. 이것
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 누림에 대한 적합한 술어이다. 이 귀절 말씀은, 기독 신자
가 이 세상에서부터 영생을 얻고 내세에는 몸의 부활까지 받는, 구원의 복락 전부를
가리킨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ㅇ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여기 "참된"이란 말이 사용된 목
적은 이렇다. 곧, 만나와 같은 물질적 양식에 비교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속죄의 은
혜)는 참되다는 것을 표시하려는 것이다. 곧, 물질적 양식은 그림자와 같고 물완전하
나,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는 실물이요 영원히 살리는 효과를 가진 것이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ㅇ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 이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은 자가 주
님과 연합하게 됨을 가리킨다. 요한의 신학 사상대로 보아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는, (1) 주님의 계명을 지킴(요일 3:24), (2)주님을 본받음(요일 2:6), (3) 열매를 맺
음(요 15:2), (4) 죄를 범치 아니함(요일 3:6), (5) 기도 응답을 받음(요 15:7), (6)
생명을 가졌음(요 6:57), (7)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담력을 가진다(요일 2:28).
(Bernard,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of St. Jhon, p.
212)

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ㅇ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 "아버지로 인하여 산다"는 말은, 예수님에게서는 영
원 자존의 생명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말씀은, 다만 중보자(中保者)로서의 그의
처지를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위치에 계신 것 만큼, 그의 생명 주시는 역
사는 아버지로 말미암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영원 자존하신 것 만큼, 그도 그러하시
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먹는 것과 같이 실제적으로 믿어야 그의 생명을 받아 누린
다. 고데이(Gode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곧, "자연계의 생명의 열매가 떡덩이로 나
타날 때에 사람에게 섭취됨과 같이, 신적 생명(神的生命)도 그리스도로 화육(化肉)되
어 나타났으므로 우리에게 접촉되어 받아진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
명떡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떡도 먹어야 우리의 생명 영양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그
리스도를 믿어야 그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하였다.

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ㅇ이 귀절은, 32-33 절 말씀 내용이 거듭 나온 셈이다. 같은 말씀을 거듭 하는 것은,
그 말씀을 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리한다.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ㅇ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가 있느냐 한대 - 그들이 듣기 어렵다는 부분은
어느 말씀이가? 그것은 58절 말씀이 대표한 사상, 곧,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
는 자는 영생한다는 말씀이다. 그의 살을 먹으며 그의 피를 마시면 어떻게 영생을 얻
는가? 그것이 어려운 문제란 뜻이다. 그 말씀 뜻이 어렵다고 하므로 예수님께서 답변
하시기를,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라고
하셨다(62절). 곧, 그가 승천하시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므로 사람들로 거듭 나게
하며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게 하여 살리신다는 뜻이다.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ㅇ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
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을 잘 아시는 것만큼, 그 때 그들
의 불평을 아셨다. 그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영적으로 바로 이해하지 않고 육적으로만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말씀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벧전 2:7-8).

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ㅇ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
냐 - 이 귀절에 대한 해석은 몇 가지 있다. (1) 여기 이른 바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
로 올라가는 것"이란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가리키는데(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다시 살아 승천하심에 이르는 한 계단임), 그 때에는 그들이 더욱 예수님
을 저버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2) 예수님의 속죄에 대한 말씀이 피와 살로
써 설명될 때에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그가 승천하셔서 그의 속죄를
영적으로 이루시며 나타내실 때에는 더욱 깨닫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Westcott), (3)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셔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때에 저희는 믿
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이 말씀을 하시는 내막은,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
과 같은 속죄 신앙의 효과가 그의 승천하시는 때에 확실히 성립되고야 만다는 것이다.
ㅇ여기 "볼 것 같으면"이란 말은, 하필 육신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아니고 심령의 눈으로 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신앙을 육안(肉眼)
으로 본 것에 근거하도록 한 것이 아니고, 말씀을 들음에 근거하도록 한 것이다(Er
band den Glauben nicht an das Sehen, sondern an das Horen des  Worts.
-Schlatter, Der Evangelist Johannes, P.181).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ㅇ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
이것은, 예수님의 역사가 성령으로 말미암는다는 새로운 선언이다(Schlatter). 이것
은, "인자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자가 영생을 가졌다"는 말씀에 대한 유대인
의 오해를 시정하는 것이다. 살을 먹는다 함은, 육체적 식음으로 오해할 것이 아니고
영적 식음(靈的食飮)으로 간주해야 된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영적인 것으로서
살리는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는 것이다.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ㅇ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 예수님께서 이렇게 그 제자들 중에 불
신앙 사실이 있음을 지적하시어 그들을 경성시킨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알게 될
때에 경성하게 된다.

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ㅇ내 아버지께서 오게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목적은, 그의 주장이 저렇게 탁월하심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자들
이 있는 모순을 해결하시기 위한 것이다. 곧, 예수님을 안믿는 원인은, 예수님 자신의
증거가 불충분하여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작정에 달려 있는 것이었
다.

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ㅇ제자 중에 많이 물러 가고 - 이 귀절에 대하여 어거스틴(Augustine)은 말하기를,
"그들이 생명체와 교제를 끊었으니 만큼 그들의 생명은 떠났다"고 하였다. 고데이
(Godet)는 이 사건에 있어서 예수님의 메시야 역사(役事)의 비결이 나타난 것을 지적
하였다. 곧, 이렇게 오합 군중(烏合群衆)은 일단 헤어질대로 헤어지고 소수(少數)만
남게 된다. 기드온의 300명 군대는 많은 군대보다 오히려 유력하였다.

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ㅇ너희도 가려느냐 - 열 두 제자는, 외부적 관계로 볼 때에 언제든지 모두 다 예수님
을 따를 듯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신앙은 외부적 관계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들
중에도 가룟 유다가 있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예수님은 이런 일을 염두에 두
시고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셨다. 곧, 그들도 늘 경성하여 있을지언정 방심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여기 암시하신다.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ㅇ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
"영생의 말씀"이란 것은 63절의 말씀을 염두에 둔 것이겠다. 베드로는 언제나 모든 제
자들 중에서 대표자 격으로 솔선하여 나서곤 하였다(13:6,24,36,18:10,20:3,21:3,7;
마 14:28).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ㅇ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란 말은, 메시야의 성역을 위하여 성별하여 보내심이 된자란 뜻이다. 막 1:24; 눅
4:34; 사 43:14 참조.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ㅇ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주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 이 말씀은, 제자들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너무 자신
있게 지나지 말아야 할 것을 암시하신다. 그가 택하신 열 두 사도 중에도 넘어질 자가
있다고, 그는 경고하신다.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마귀"라고 하신 것은, 그가 마귀의
도구로 사용되리라는 의미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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