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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요한복음

[스크랩] 요한복음 (9 : 1~41)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9:17
요한복음 9장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ㅇ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
니이까 - 나면서 소경 된 자를 고치신 것은, 창조적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제자들의 물어본 말, 곧,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라고 한 것은, 한 번 생각할 만
하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무슨 죄를 지었겠기에 "자기오니이까"(자기 죄 때문입니
까)라고 하였을까? 이것은, 유대인 랍비들의 그릇된 교훈대로, 사람이 나기 전에 그
영혼이 벌써 있었다는 사상에 근거한 말이다. 어쨌든 이런 말은 진리에 합당치 않은
것이다. 이렇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에 납득되실 수 없는 그릇된 말을 한 것이다.
인간의 질병이나 불행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성경상으로 보아 확실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본인의 죄악으로 말미암지 않는 불행이나 고통도 있으니, 그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답변에서 그런 의미를 밝히
신다.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ㅇ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
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
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 3절 말씀은, 마
치 나면서 소경 된 것이 하나님의 하실 일을 위하여 계획된 불행인 듯이 가르친다. 그
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 사람의 불행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는 의미까지는 아
니다. 그것은 그 불행에 대하여 이러니 저러니 이론을 붙이는 것보다, 불행을 상대하
고 하나님의 하실 일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다행한 일들만 가지고 일하
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는, 인간의 불행을 고쳐서 복이 되게도 하시는 사랑과 능력을
가지셨다. 인간들은 불행한 것을 보고 피하며 저주하기에 급급하나, 하나님은 그런 것
을 상대하셔서도 자비를 베푸신다.
ㅇ여기 "일"이란 말의 헬라 원어는 복수명사로서 "일들"이란 뜻이다. 이
"일들"은, (1) 이제 예수님의 고쳐주시는 은혜(그것도 하나님의 일)로 나타났고, (2)
그 고침 받은 자가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일로도 나타났다. 말쿠스 다즈(Marcus Dods)는
말하기를, "불행(고통)은 하나님의 일을 증진시킨다. 곧, 그것을 극복하는 데는 하나
님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ㅇ"낮"이란 말은 예수님이 땅에 계신 기간을 가리킨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이시어서 영원토록 선을 행하신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국한하여 하셔야 될
일들이 별도로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런 의미의 사명 실행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
셨다. 그는, 사명 실행의 때가 지나간 다음에는 밤과 같은 일할 수 없는 때가 온 줄
아셨다. 사람들이 땅 위에 있는 시기는, 낮과 같이 귀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금보다 귀한 시간인 것이다. 기회는 귀하다. "기회는 오직 한 번만 문을 두드린다"
(Opportunity knocks the door only once).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ㅇ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
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은 번
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 예수님께서 이
제 빛을 소유하지 못한 소경에게 눈을 밝히는 권능을 행하시기 위하여, 먼저 자기가
누구심을 알려 주신다. 여기 그의 알리는 말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고 하신 것은, 영적 의미를 가진 넓은 범위에 속한다. 그는 소경을 고치시느
빛이 되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소경 되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고쳐주시는
영생의 빛이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기가 누구이신 것을 먼저 알려 주신다. 실상
이 소경은, 자기의 눈이 밝아지기를 원함보다 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그에게도 예
수님을 바로 아는 참된 지식이 무엇보다 귀한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명
백히 알고 거기서 살아야 한다. 다시말하면, 그에게 있어서 눈 뜨는 것보다도 더 귀한
것은,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이다.
ㅇ이 때에,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신것은, 혹설에
의학적 치료를 위하여 그리하신 것이라고 한다. 실상 침은 안질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학설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행동은, 그런 자연적 치료에 의하여 그 소경의 눈을
밝히시려는 것이 아니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예수님이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셔서 그로 하
여금 보게 하신 것은, (1) 그가 어떤 피조물을 가지시고라도 능력을 행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함. (2) 진흙은 예수님의 인간성을 비유하고, 침은 그의
말씀의 신성을 비유한다고 함. (3) 하나님 아버지께서 맨처음에 사람을 지으실때에 흙
으로 하신 것 같이, 예수님도 그와 같은 원리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다는 의미라고
함. 그러나 (4) 이것은, 그 소경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곧, 소경은 본
래 보지 못하여 매우 갑갑함을 느끼는데, 그의 눈에 진흙을 바른 것은 그로 하여금 더
욱 갑갑함을 느끼도록 만드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예수님을 신뢰
하고 그 명령을 따라 실로암 못에 가서 그것을 씻었다. 이는 마치, 엘리사가 나아만으
로 하여금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그게 하여, 그의 문둥병이 고침 받도록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왕하 5:10-14). 비켄하우젤(Wikenhauser)도 이와 같이 해석하였다
(Nicht weil das Wasser des Teiches besonders heilkraftig ware, sondern um seinen
Glauben auf die Probe zu stellen.-Das Evangelium nach Johannes, P.187).
ㅇ"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실로암"이란 것은, 히브리 원어 쉴로아크란
말과 같다. 이 말은, 사도 요한이 해명한 것과 같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러
므로 예수님께서 그 소경을 실로암 못에 보내신 목적은, 그 소경의 눈을 예수님 자신
이 고쳐 주신다는 뜻이다.
ㅇ예수님께서 실로암 못을 관설하신 것은, 실상 그 때 유대인들이 반대하는 하나님의
참된 종교를 반영시킴이다. 하나님의 참된 종교는 요란스러운 폭력이나 인간의 수단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성령에 의하여 고요히 진리로 역사한다(왕상 19:12). 그러나 유
대인들은 옛날부터 이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사야도 말하기를,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암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니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
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고 하였다(사 8:5-8).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실로암 물로 상징된 여호
와의 종교를 반대하는 의미에서, 예수님의 이적에 대하여  불신앙으로 놀란하였으니,
그것이 14-34절에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의 참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로 대표되었으며,
실로암 물로 상징되었다.
ㅇ"실로암 못"은 예루살렘 동남쪽으로 성 안에 있다. 그것은 히스기야왕이 전쟁 때에
사용하기 위하여 팠던 것이다.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ㅇ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
걸하던 자가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
은 내가 그로라 하니 - 칼빈(Calvin)은 이 점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곧,"
이 소경이 그 이웃 사람에게만 잘 알려졌던 것이 아니라 그 지방  모든 거민들에게도
걸인(乞人)으로 알려졌던것이 확실하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던 소경이 이제 눈을
떴으니, 그 이적은 의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도 변론하면서 그
이적을 유쾌하게 믿지 아니하려는 경향을 나타내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명백하게 나타나도 인간성은 거기에 대하여 희박하게(혹은 적게) 믿는 악한 근성을 나
타낸다. 그러나 이 사건에 있어서 그들의 의심은, 그 이적을 사실로 드러내는데 도움
이 된 것 뿐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 눈 뜬 소경에게 힐문할수록 그의 증언은 더욱
확실히 진술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진리는 모든 반대와 시험을 겪을수록
더욱 빛난다"라고 하였다(Calvin's Commentary,John's Gospel, P.372).
ㅇ"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이것은, 저 눈 뜬 소경이 그 받은 은혜에 대하여 증
거한 제 일보(第一步)이다. 그는, 소경으로서 눈을 뜨게 된 큰 은혜를 받고, 그 사실
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은, 자기(하나님) 자
신을 증거하고자 하심이다. (1)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자가 그 사실을 증거하지 않으
면, 하나님의 은혜는 그에게 계속될 수 없다. (2) 그리고 사람들 중에는 은혜 받은 사
실을 증거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나타내지 않는  폐단도 있다.
이것이 역시 그 증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으로 하여금 근심되게 하
는 행동이 되어진다. 그러나 이 눈 뜬 소경은 최후까지 주님을 나타냈다. "내가 그로
라"고 한 말도 그 자신을 자랑하는 의미가 아니고, 소경 되었던 자기 처지를 밝혀 예
수님을 나타내는 말이다.

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ㅇ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하는 그 사람이 진흙
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
었노라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 고침 받은 소
경은, 여기서 (1) 자기의 신념 그대로를 발표한다. 곧, 그는 자기의 개인적 체험을 사
실 그대로 말한다. 이것은,그의 순수한 확신을 남들에게 알게 하여 주는 고백이다.
(2) 그 뿐 아니라, 그는, 그리스도에게 대한 순종의 열매가 얼마나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 틀림 없이 효과를 가져왔다는 고백이다.

13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ㅇ이 부분의 중요한 문제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랐으므
로 안식일을 범하였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그 고침받은 소경더러 "어떻게 보게 되
었는가?"라고 물은 것은, 안식일에 진흙을 이겨 눈에 발랐다는 말을 듣고자 함이었다.
저렇게 바리새인들은, 계명을 존중히 한다고 하면서 계명의 정신(사랑)은 알지 못하
고, 외모를 따라 머리털을 쪼개는 듯한 기계적 해석에 흘러 번쇄주의에 빠졌다. 안식
일에 일하지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께 드릴 예배에 방해될 영업을 중지하라는 뜻이고,
무슨 동작이든지 금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취할 수 있는 동
작은 안식일에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은, 주로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선행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와 같은 계명의 정신을 모르고, 안식일에
는 사소한 동작이나 일까지 일체 할 수 없는 듯이 가르쳤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들의 주장을 아시면서도 안식일에 병 고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바리새
인들과의 의견 충돌을 각오하시고 진리를 행동으로 드러내신 처사이다. 진리는, 비진
리로 더불어 충돌되는 기회에 도리어 그 빛을 나타내고 더욱 힘있게 전파된다.

17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ㅇ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 바리새인은, 고침 받은 소경이
저희들의 마음에 맞는 대답을 할까 하여 또 다시 물어 보았다. 그들은, 사실이나 진리
그대로를 알고자 함보다, 자기들의 편벽된 고집을 그 어디서든지 통과시키려는 완강한
마음을 가졌다. 그들은, 사실과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그들의 부패한 고집을 끝까지
애착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간교한 계획은, 진리나 사실 앞에서 실패를 당하였다. 그
고침 받은 소경은 사실 그대로에 입각하여 대답하였는데, 그것이 그들의 간장을 서늘
하게 만들었다. 그 고침 받은 소경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증거하였다. 물론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증거한 것은 만족하지 못한 고백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기대
하였던 것과는 반대 방향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진리는 여러가지로 곤고(困苦)한 처지
에 설 때마다 도리어 빛을 나타낸다.

18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ㅇ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
되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
느냐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
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그 부모가 이렇
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
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하였더라 - 바리새인들은, 고침 받은 소경의 사건에 있어서 믿
으려는 마음으로 질문하지않고, 어쨌든지 믿지 않으려는 악한 마음으로 거듭거듭 질문
한다. 신자들은 믿으려는 목적으로 사실과 진리를 찾으나, 악도들은 어쨌든지 믿지 않
으려는 결심으로 끝까지 진리와 사실을 피하며 또 힐난한다. 바리새인들은, 고침 받은
소경의 부모에게서 저희의 불신앙을 지지하는 좋은 재료가 나타날까 하여 저렇게 질문
하였던 것이다.
ㅇ그 부모는 정직하게 그를 저희 아들이라고 증거하였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대답을 회피하였다. 이것은, 받은 바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그들의 어두운 태도인 동시에, 진리 증거를 회피하는 겁약인 것이다. 그들
이 저렇게 겁약하여진 이유는,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
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던 까닭이다. 그들은 저런 불의한 법을 무서워하였다. 진리와
경건을 떠나서 인간의 고집을 세우기 위한 법은 실상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들이 저
렇게 두려워하였으니, 그들의 심령의 어두움과 생활의 부패가 이로써 추측된다. 칼빈
(Calvin)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출교권을 주신것은 교권자들로 하여금
영혼들의 목을 매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다만 그의 백성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집권
자는 하나님 뿐이시고 사람들은 그의 사역자가 되는 것 뿐이다. 소위 감독이라는 자들
로 하여금 그들의 소원대로 교권을 가지고 우뢰와 같이 덤빌려면 덤비라고 하여라. 그
들의 공허한 소리는, 진리를 배우지 못하여 의심 가운데 방황하는 자들 외에 아무도
두렵게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Calvin's Commentary, John's Gospel, Eerdmans
Publishing Co. 1949, Vol. I,P.381).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하였더라

24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ㅇ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
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 여기 "이에"란 말의
헬라 원어를 직역하면, "그러므로"란 말이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불신앙
을 고집하기 위하여 이 때까지 이론하여 왔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
들은 두 번째 그 소경 되었던 사람을 불렀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한 말은 진
리를 말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판정한다. 이것은 그들이
저희의 구원 받지 못한 사실을 자증(自證)하는 말이다. 실상은 저희들이 죄인이고 예
수님은 절대의 의인(義人)이시건만, 그들은 이 사실을 거꾸로 인식하였다 사 5:20  참
조.
ㅇ이 원통한 사실에 대하여, 소경 되었던 사람은 그 마음 속에 가득한 확신을 발표하
려고 일정 풍자식(諷刺式)으로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한다. 곧, "그가 죄인인지 내
가 알지 못하나"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죄인이 아닌 사실을 그가 참으로  모른다는
말이 아니고, 바리새인들의 그릇된 판단을 풍자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의 말한 바,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라고 한 것은, 이
론보다도 실제적 사실에 호소하여 바리새인들의 이론을 사정 없이 꺾어 버림이다. 우
리는 이론을 존중히 하여야 한다. 원칙상으로는 진정한 이론이라면, 거기에 기준하여
사실이 결론되는 법이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사람들이 참되지 않은 이론으로 사실을
매장하려는 일도 없지 않다. 그런 때에는, 이론보다도 사실이 계속적으로  주장되어야
한다. 소경 되었던 사람은 여기서 그런 방법을 취하였다. 그는 사실을 그대로 주장하
였다. 크로솨이데(F.W.Grosheide)는, 이 점에 있어서 소경 되었던 사람의 심리를 바로
파악하고 말하였다. 곧, "그가 '한 가지'를 안다고 했는데, 그것은 실상 그에게 있어
서 한 가지이면서 모든 것을 의미하는 중대한 것이다. 곧, 그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본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I,1950, P.82).

26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ㅇ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대
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
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
지 못하노라 - 바리새인들은 그 불신앙의 고집을 계속하였다. 그들이 소경 되었던 자
에게 다시 묻기를,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라고 하였다. 이것은, 듣기 싫으리 만큼 역스러운 질문의 중복인 것이다. 그들은 담벽
을 문이라고 할 만큼 어두워지고 강퍅해진 것이다. 그들의 이론은, 소경의 눈 뜬 놀라
운 사실 앞에서 여지없이 막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쓸데 없는 질문을 거듭했던
것이다. 그처럼 그들은 불신앙의 철면피였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자의 신앙의 뱃심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그들의 불신앙의 철면피를 산산히 깨뜨릴 만큼, 날카롭게 사정
없는 풍자식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것은, 그들을 꾸지람하는 방식으로 나오면서, "내
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라고 한 말이다. 신앙자는 어떤 때에 그 대적을 향하여 조롱하는 태도
를 취한다. 물론 그것이 상대방의 영혼을 증오하는 악독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불신앙
사상 그것에 대하여 사정 보지 않는 심판의 철퇴(鐵槌)인 것이다. 저런 사정 없는 철
퇴를 효과적으로 사용 할 수 있는 자는, 실상 상대방의 영혼을 위하여 울 수 있는 자
이다. 신앙자의 속에는 악독이 없다. 이제는 바리새인들이 하는 수 없이 악독과 욕으
로 저 소경 되었던 자를 대적한다. 불신앙자의 무기는 저렇게 불법과 악독인 것이다.
사람이 악독해지면 사상과 이론도 어두워진다. 그들은, 이론에 있어서 모순성을 띠었
다. 곧, 그들 자신이 자칭 모세의 제자라고 하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모세의 제자가
못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세의 제자였더라면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 5:46에 말하기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
록하였음이라"고 하였다.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ㅇ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
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 내어 보내니라 - 소경 되었던 자는 이 점에 있어서
도 자기의 굳센 신앙을 나타낸다. 그는 바리새인들의 불신앙에 대하여, "이상하다"라
는 말을 하게 되었다. 불신앙자에게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심리는, 천국과
맥(脈)을 통하고 있는 굳센 신념인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론에 기준하여 그들의
불신앙을 이상히 여겼다. (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한 자를 들으신다
는 확신(31절). 이 사상에 대하여 버나드(Bernard)는 성경에서 여러 귀절들을 참조하
였으니, 참고할 만하다. 욥 27:9; 시 66:18; 잠 1:28, 15:29, 28:9; 사 1:15, 59:2;
렘 11:11,14:12;겔 8:18; 미 3:4;슥 7:13;행 10:35. (2)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
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은 전연 없는데, 예수님께서 이런 위대한 일을 행하셨으니,
어찌 그를 죄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확신(32-33). 이것은 역사적 사실에 의한
힘있는 논증이다.
ㅇ바리새인들은, 소경 되었던 자 한 사람의 신앙적 증거 앞에서 산산히 실패를 당하
고, 이제는 더 할 말이 없어서 그를 출교하였다. 소경 되었던 자는  초신자(初信者)였
다. 그러나 그의 올바른 신앙이 확신 있게 증거를 나타낼때에, 많은 바리새인들도 여
지없이 패배하였다.

34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35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ㅇ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
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 주님은, 불법하게 출교 당한 신자를 가까이 하신
다. 주님은 그를 만나서 더 깊은 신앙으로 인도하신다. 곧,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하시어, 그의 신앙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신다. 이 때까지 소경 되
었던 자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또 혹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로 알 뿐이었다. 물론
그만한 신앙 지식에 강력한 신념이 함께 하였던 것만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신념은 좀 더 명백한 진리 지식이 필요하였다. 곧, 예수님을 인자로 아는 지식이 필요
하였다. "인자"란 말 뜻은 메시야를 의미한다.
ㅇ이런 친절한 주님의 계시 앞에서 그는 신앙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졌다. 신앙은 무
한히 장성할 수 있게 하는 그리스도의 영적 부요(富饒)를 상대하고 있다. 확신의 소유
자도 또 다시 더 깊은 신앙에 들어가기를 원해야 된다. 고침 받은 소경은 그것을 원하
였고, 또한 그 소원을 구체화하여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하였다.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ㅇ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 예수님께서는, 이 부분에 있어서
인류를 소경이라고 생각하신 것이 드러난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야 된다. 사람의
육안은 표준이 아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야 된다. 사람의 육안은 표준이 아니다.
우리의 육안은 어떤 짐승의 눈만도 못하다. 예를 들면, 매는 여러 십리 밖에 있는 작
은 것도 밝히 본다고 한다. 사람의 눈의 표준은 심령의 눈이다. 심령의 눈은 하나님
보기를 목적한다. 심령이 하나님을 보기 전에는 소경임을 면치 못한다. "만물보다 거
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렘 17:9).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
한 자이다(잠 28:26). 인간은 이렇게 소경인데도 자기가 본다고 하며, 불행가운데 아
주 떨어진다. 요 9:41에,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고 하였다. 다시말하면, 자기들이 소경인 줄  알았더라면 주님을
믿었을 것이고, 따라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 무죄한 자처럼 되었을 것이라는 말씀
이다.
ㅇ우리가 영적으로 소경이 아니라고 자처한다면, 죄를 더욱 범함이다. 그것은, 곧,
요일 1:8에 말한대로,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하였고, 요일 1:10에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안
니하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소경이면서 소경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죄와 하나님을 거짓말 하시는 이로 여기는 죄를 범함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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