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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요한복음

[스크랩] 요한복음 (4 : 1~54)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9:16
요한복음 4장


1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ㅇ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
이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남들과 무의미한 충돌을 피하신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종종 바리새교인들과 변론 하신 일도 있다. 그러나 무의미하게 그들과 충돌하기를 피
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때에 시기심을 발하였다. 예
수님께서 실상 세례를 베푸신 일은 없었으나 소문이 잘못 퍼져서 그가 친히 세례를 베
푸신 것처럼 선전되었다. 세상 사람은 언제나 진리와 사실대로 믿는 것보다 뜬 소문을
얼른 청취하여 쉬이 전한다.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ㅇ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 유대에서
갈릴로 가는 길은, 일반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베뢰아로 돌아가는 법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피하려는 까닭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에서 자기의 영
광을 나타내셔야 할 필요를 느끼셔서 그곳을 직접 통과하시게 되었다.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ㅇ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 "수가"라는 곳은 세겜을 가리킨다고 하나,  유세비우스(Eusebius)이래로 이
두 지방은 각각 다른 곳으로 생각되어 왔다. "수가"는 오늘날의 아스카(Askar)라는 지
방이었을 것이다.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 수 24:32; 창 33:19 참조.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ㅇ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 여기 이른바, "그대로"란 말은 피곤한 태도를 숨김 없이
그대로 나타내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그대로 나타내신 태
도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체휼(體恤)하신 대제사장이시다(히 4:15). "제 육시"는 유대
시간으로 말한 것인데 우리 시간으로는 정오를 가리킨다.

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ㅇ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 예수님께
서 사마리아 여인더러 물을 좀 달라고 하신 동기는, 그 자신의 갈증을 멈추시기 위함
보다 그 여인의 영적 요구를 채워 주시려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청구하신
다. 그러나 그의 청구는, 언제든지 우리를 유익하게 해 주시기 위한 동기에서  일어나
는 것이다.

8 이는 제자들이 먹을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ㅇ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여
자에게 물을 청하시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제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더면 그들이 예수
님을 위하여 물을 공급하였을 것이다.

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ㅇ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 이 여자가 예
수님을 유대인으로 알게 된 원인이 어디 있었는가? 그의 옷을 보고 알았는지, 혹은 그
의 말을 듣고 알았는지 우리는 추측하기 어렵다. 어쨌든, 예수님은 일반 유대인과는
달리 민족 차별의 기분이나 감정을 전연 가지지 않으셨으므로 그 여자로서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다른 민족을 형제시하심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일찍
부터 이스라엘 민족더러 그들 중에서 거주하는 이방인들을 동포와 같이 대우하라고 하
셨다(레 19:34).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ㅇ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
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
라 - "하나님의 선물"이란 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선물을 가리키고,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지"란 말은 메시야를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샘에
서 솟아는 "생수"로써 성령을 비유하셨다.

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ㅇ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
삽나이까 - 그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적(靈的)으로 알아 듣지 못하고 오해하였다.
곧, 물 길을 그릇도 없고 그 우물은 깊은데 거기서 생수를 길어낼 수는 없는 것이었으
니, 어디 다른 우물에서 길어 올 수 있을 것인가 하였다. 실상 그 지방에는 다른 우물
이 없었다. 옛날에 야곱도 그 우물을 사용했던 것이다.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ㅇ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 예수님께서 "생수"를 주신다고 하니, 그 여자는,
야곱보다 위대한 자가 아니고는 그런 더 좋은 물을 내어 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생수"란 것을 이 세상의 음료수로 아는 착각에서 한 말이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ㅇ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 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 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예수님은, 여기 물질적 생수와 영적 생수와의 구분을 말씀
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란 말은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을 다 함께 가리킨
것이니, 기독교 구원의 보편성, 곧, 무차별성을 보여준다. "목마르지 아니하리니"란
말은 영적 기갈이 없다는 뜻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성령님을 생수로 비유한다(사
58:11). "솟아난다"는 말은 그 영적 생명이 무궁 무진할 것을 가리킨다.

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ㅇ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 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
도 않게 하옵소서 - 그 여자는 또 다시 주님의 말씀을 오해한다. 그는, 예수님께서 말
씀하신 생수에 흥미를 가지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늘 갈증 없이 생(生)의 욕망을 채우
고자 하며, 또한 물 길러 다니는 수고도 면하려 한다. 이것은, 그릇된 인간의 욕심을
대표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언제나 영적 요구를 채우려 함보다 육적 요
구를 채우려 하는데 급급하다.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ㅇ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 고데이(Godet)는  말하기를,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주인공 없는 환경에서 중대한 생명 문제 있는 말씀을 주시기 원하지 않으셨
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이 함께 있는 장소에서만 여자
에게 전도할 수 있다는 사상은, 성경에 없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곧, 사마
리아 여자는 남편을 취하므로(불법하게라도) 이세상 만족을 찾았다. 심지어 방금 예수
님의 전도를 듣는 중에 생수란 것도 이 세상 행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먼
저 그릇된 인생관이 깨어져야한다. 그 여자의 생활은 개편되어야 한다. 그 뒤에야 진
정한 생수를 받을 만한 준비가 성립된다. 생수 곧 복음이라는 보화는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야 사는 법이다(마 13:45-46). 천국은 이 세상의 연장이 아니다. "육으
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3:6).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
다"(6:63). 사마리아 여자의 육적사상은 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네 남
편을 부러 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그 여자의 육적 심리에 대한 심판이었다.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ㅇ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
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 그 여자는 한 남편을 사귄 것이 아니라, 다섯 사람이나 사귀었던 것
이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정확히 아시기 때문에 그 여자의 생활상을 지적하시면서
그 가슴을 뜨끔하게 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여기 다섯 남편이란 것을 풍유적(諷諭的)
으로 해석한다. 곧, 사마리아 지방에는, 바벧론, 구다(Cuthah), 아와(Auva),하맛
(Hamath), 스발와임(Sepharvaim)등 다섯나라 사람들을 식민하였는데(왕하17:24), 그
다섯 나라에서 들어온 이방 신(異邦神)이 역시 다섯이었다고 한다. 사마리아인은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이방 신을 섬겼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있는" 남편은, 이교 사상(異
敎思想)과 혼합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그들의 종합 종교를 가리킨다고 한
다. 이 해석은 너무 상상적이다. 차라리 여기 이른 바 "남편"들은, 그 여자의 생활에
여러번 개가(改嫁)하게 된 것을 지적하시는 말씀으로 생각된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ㅇ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 이 여자는 예수님의 초자연적 지
식에 놀라 이제 겨우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았다. 그 여자는 중심에 있어서 이제부터
종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인간은 초자연(하나님)을 접촉하기 전에는 진정한 종
교심과 영적 사색을 가져보지 못한다. 그 여자는 이제부터 정상적으로 예수님에게 돌
아오기 시작한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ㅇ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
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
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
여야 할 것을 본래부터 주장하여왔다(신 12:5, 16:2, 26:2). 사마리아 사람들은 게르
심산에서 예배하여야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유대 사람들이 바벧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전을 게르심산에 세웠다(400 B.C). 그 뒤에 유대인
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미워하였다.
ㅇ그 여자의 의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신약적 예배를 보여 주시므로 문제 해결을 주
신다. 곧, 이제부터는, 게르심산이니 예루살렘이니 할 것 없고, 오직 어디서든지 하나
님을 아버지로 알고 영적 예배를 드릴 때가 왔다는 것이다. "아버지께 예배할 때"란
말은 이 부분에 있어서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약적
예배를 가리킨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하는 예배는 어떤 장소의 제재를 받는 외부적
예배가 아니고,성령을 받은 자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의식(意識)하고 부르면서 드
리는 영적 예배이다.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ㅇ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
인게서 남이니라 -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 5경만 믿고 다른 선지서들을 버렸으니 만
큼,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 있어서 잘못된 것이 많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약을
전부 가졌으니 만큼, 진정한 종교를 받았다. 이렇게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받
아 보수하였고 메시야(그리스도)도 그들 중에서 나오실 것인 만큼, "구원이 유대인에
게서 난다"고 말씀하시게 되었다.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ㅇ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 "신령으로 예배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위의 21절에 벌써 말한 "아버지께
예배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떤 지방, 어떤 민족이 독점적으로 소유할 신(神)이
아니시다.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성령으로 거듭 난 자이면 그를 아버지로 섬길 수 있
다. 거듭 난 자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성령으로 거듭  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벧전 1:23). 사람의 거듭 난 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성경
말씀을 듣기 좋아하며, 읽기 좋아하며, 순종하기 좋아함이다. 이렇게 그가 성령에 의
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가 영적인 자녀로서 영적인 아버지에게 예배하게 되
는데, 그것이 신령한 예배이다.
"진정으로 예배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정"이란 것은, 예수님이 22절에 말씀
하신 내용의 성취 형태이다. 이스라엘의 "아는 것"(22절 하반), 곧, 구약적 계시가 신
약 시대에 성취된 형태이다. 이것이 유대인에게서 난 구원 사건(예수 그리스도)이다.
이에 근거한 예배가 "진정"으로(진리로)예배함이다. 그것은, 실상 아브라함의 자손 중
에서 메시야가 나시리라는 약속의 성취를 내포한 구원사적(救援史的) 진리에 순종하고
드리는 예배이다. 참된 예배는, 결코 사람들의 추측이나 깨달음에 근거한 것이 아니
고, 하나님의 계시(啓示)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참"이란 말은 "진리"
를 의미하는데,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메시야 약속)
이 성취된 사실, 곧, 그리스도를 말함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
서 예가 되었다(고후 1:20).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신앙적 예배가 될 수 밖에 없
다. 신앙적 예배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히 11:6에 말하기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고 하였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ㅇ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
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 이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야를 대망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신 18:15-18에 있는 모세의 예언에 기준하여, 사마리아인들도 메시
야를 대망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모세 5경만을 성경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ㅇ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심리가 이제 진정한 종교로 바로 움직이는 것을 보시고 그 기회를 타서 자기가 메시야
인신 것을 알려 주신다. 이 부분(1-26)의 의미를 좀 더 명백히 알기 위하여 앞에 있는
강해를 자세히 읽음이 좋다.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ㅇ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
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 "제자들이 돌아
왔다" 함은, 그들이 먹을 것을 구하려고 동네에 들어갔다 온 것을 말함이다(8절). 유
대 랍비들의 예법대로는, 유대 남자가 거리에서 여자로 더불어 말하지 못했고, 심지어
자기 아내와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사상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제자들에게
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하심이 이상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
의 생각에 그것을 허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이
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질문하지 않았다.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ㅇ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 그때의 물동이는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으므로, 그 여자는 그것을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갔다. 그 여자
는 그처럼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열중하였다. 그는 급히 동네에 들어가서
전도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ㅇ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 그
여자는, 자기의 과거 생활을 알아 맞히신 예수님의 초자연적 지식 때문에 그를 믿었
다. 그는 이제 그 사실에 대하여 증거한다.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ㅇ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 제자들은 육신의 양식만을 양식으로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
적 양식을 참된 양식이라고 생각하셨다. 영적 양식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구
속사업을 완성하심이다.
ㅇ슐라텔(Schlatter)은 이 귀절에 대하여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므로 하
나님의 일을하게 되는것은 그의 생명의 근거가되며, 그의 능력의 원천이된다"라고 하
였다(Dieses Einssein mit dem gottlichen Willen, das ihn dem gottlichen Wirken
dienstbar macht, ist der Grund seines Lebens und  der Quell seiner Kraft.-Der
Evangelist Johannes, P.130). 이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특수한 의미로 그러하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일반 신자도 하나님의 일을 하므로 하늘의 생명력을 받는다.
음식을 먹음으로도 육신이 생명력을 얻음과 같이, 신자는 하나님의 일을 참되이 할 때
에 영적 생명력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의 일을 하는 자에게 한하여 이런 귀한 은혜를
주신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이 이룰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설
명할 수 있다. 곧,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요 6:29에 말하기를, "하나님의 보내신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였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금보다 귀하다(엡 2:8; 벧전 1:7). 우리가 전쟁하
듯이 힘쓰지 않으면 믿음을 지킬 수 없다. 딤전 6:12에 말하기를, "믿음의 선한 싸움
을 싸우라"고 하였으며, 히 12:4에는 말하기를,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하라고 하였
다.
ㅇ그리고 신자는 믿음으로 남들을 위하여 행해야 될 선한 일들도 책임 지고 있다. 행
함이 없는 믿음은 실상 죽은 믿음이다(약 2:17,26). 엡 2:10에 말하기를, "우리는 그
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하
였다.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ㅇ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
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이것은 하나의 속담으로서, 사람들이 추수 때를 고대한다
는 의미이다. 그러면, 이 귀절의 뜻은, 사람들이, 곡식을 거둘 일에 대하여는 미리부
터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영적 추수에 대하여는 등한히 생각한다는 것이다. 영적 추수
의 때는 그때에 임박하였으니 만큼, 예수님은 화급히 일하셔야 될 것을 느끼고 일하셨
다.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이것은, 영적 추수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영적 추수는 무엇인가? 선지자들이 예언해 두었던 진리가 이제 예수님의 역사로 말미
암아 성취되었는데, 제자들이 그 성취된 진리, 곧,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교회로 모
으는 영적 추수이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ㅇ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
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 "삯도 받고"란 말씀은 그 아래 말씀이 해
설한다. 곧, "삯"은 다른 것이 아니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받음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여 영생에 들어가도록 인도함이다. 믿
음에 순종하여 돌아오는 자들은 그 전도자에게 상급이 된다. 그러므로 바울도 복음으
로 돌아온자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나의 기쁨이요 면
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하였고(빌 4:1),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
류관"이라고 하였다(살전 2:19).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ㅇ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 심은자는 수고할
뿐이고 거두지는 못한다. 그것은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수고에 해당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거둔다"함은 제자들의 수고에 해당된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ㅇ이 귀절에 대하여는, 37절 해석을 참조하여라.

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ㅇ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
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 여기 말한대로, 사마리아인들의 신앙은 예수님의
선지자적 역사(役事)때문에 생겼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과거 역사를 누구에
게 물어보신 일도 없이 아신 것은 (16-18),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ㅇ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
매 - 이것은, 마치 루디아라 하는 여자가 바울에게 한 말과 같다. 그 여자는 말하기
를,"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하였다(행 16:14-15).
전도자를 귀하게 아는 그들 자신도 귀하다.

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ㅇ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 그들의 믿음은 점점 높은 수준에 도
달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친히 예수님 자신을 보았고, 또 그의 말씀을 듣고 믿기 때
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의 구주"라고 한 것도 (42절) 퍽 자라난 믿음으
로 한 말이다.

42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ㅇ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
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 이것은, 남들의 증거에
의뢰함보다 자기들이 친히 예수님을 듣고 본 사실에 근거한 신앙을 말함이다. 예수님
의 교훈은 서기관의 그것과 달라서 권세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신앙을 얻는다.
ㅇ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알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들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의 자손, 곧, 그리스도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되리라는 약속)을 일찍부터 알았을 것이다(Godet).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도하실 때에 자기가 세상의 구주(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구주)이신 사실을
가르치셨다.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ㅇ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로 가시며 - "이틀"은 예수님께서 사마리
아에서 역사하신 기간을 말한다(40절).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던 도중
에 사마리아에서 역사하신 것은, 하나의 도중 행사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일에
이틀을 잡으신 것을 보아, 사마리아 사람들의 회개하는 열심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
다.

44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ㅇ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길릴리로 가시는 동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고향에서는 대접을 받
지 못할 줄 아시면서 왜 그리로 가셨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몇 가지 학설이
있다. (1) 고향이란 말은 유대를 가리켰거나(Keil),예루살렘을 가리켰다고 한다
(Hoskyns). 그렇다면 이 귀절의 의미는, 예수께서 유대나 예루살렘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할 줄 아시고 갈릴리로 가신다는 뜻이겠다. (2)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심은 고향
나사렛에 가심과 다르다. 그가 고향 나사렛에서는 환영 받지 못할 줄 아시고, 나사렛
이외의 다른 갈릴리 지방에 가신다는 의미라고 한다(Calvin,Lagrange). (3) 예수님께
서 유대를 떠나실 때는 갈릴리를 목적지로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사
마리아 전도에 성공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또는 고향 갈릴리에서는 환영 받지 못할 줄
아시면서도  초지(初志)대로  관철하시기 위하여 그리로 가신다는 의미라고 한다
(Grosheide).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ㅇ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
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이
유는, 예수님의 하신 일(권능 있는 일)을 본 까닭이었다. 그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신앙보다 떨어진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하여 믿었다(41절). 어떤
권능을 보지 못하고 말씀만 듣고 믿는 것은 더욱 아름다운 신앙이다.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ㅇ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 "왕의 신하"는 헤롯 안디
바의 신하를 말함이다. 여기 "그 아들"이란 말의 헬라 원어에 관사(冠
詞)가 있음을 보아 "외아들"을 의미한다(Grosheide). "가버나움"은, 수리아에서 애굽
으로 갈 때에 지나게 되는 도시로서 거기 관리들과 세리들이 많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ㅇ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
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 왕의 신하로서 사환을 보내지
않고 친히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을 보니, 예수님께 대한 그의 존경이 컸다.

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ㅇ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이적 행하실 것은 믿었으나,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다. 이런 의
미에서 그는 아직 믿음이 부족한 자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기서 저 사람의 불신앙
을 간접적으로 꾸짖으신다. 예수님의 말씀(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의 인격을 믿
는 것이 건전한 신앙이다.

49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ㅇ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 오소서 - 왕의 신하의 신앙은 저렇
게 약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이, (1) 거리나 시간에 제재를 받을 듯이 생각하였으
며, (2) 죽은 다음에는 못 고칠 듯이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도리어 인력으로
는 불가능한 것을 맡아 취급하신다.

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ㅇ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 예수님은, 그 사람과 같이 가시지도 않고 그의 아들을 고쳐 주셨다. 그
는 아무 방법도 사용하시지 않고, 먼 거리에서 "네 아들이 살았다"고 한 마디 말씀만
하시므로 고쳐 주셨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이신 증거를 보여 주심이다. 여기 "살았
다"란 말의 헬라 원어는 현재동사로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현재에 바로
살아난다는 뜻이다.
ㅇ그러면, 여기 "살아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의 생명이 살아남을 가리킨 것일까? 그
것은, 여기서 질병을 고침 받음에 관하여 사용된 말이니 만큼, 물론 육신의 생명이 살
아남을 가리킨다. 그러면, "살아난다"는 말이 요한 복음에 있어서 일반적으로는 영생
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이 말이 예외의 의미(곧, 육신적 생명의 뜻)를 가진다는 말
인가? 질병에서 고침 받는 것이, 물론 육신적 생명과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육신의
생명 구원도 마침내 영생의 프로그램에 들어 있는 것이니 만큼, 그것이 도외시(度外
視)될것은 아니다.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일도 육신적 생명과 관계된 것이지만, 예수
님은 그것으로써 영생에 관한 설교(11:25-26)의 기회를 삼으신 것이다. 스밀데
(E.Smilde)는 말하기를, "우리는 이렇게 보는 것이 당연하다. 곧, 4:46-53의 말씀은,
5장에 있는 영생의 생명 주시는 (영생은 몸을 제외하지 않음) 그리스도  복음에 관한
말씀의 예비적 계단이다. 요한 복음에 있는 '생명'이란 말씀(살린다는 말씀) 귀절들을
영화(靈化)하여 버리는 해석은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Leven in de Johanneische
Geschriften, P.36).
ㅇ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하신 말씀에 부딪혀 믿음을 얻었으니, 그것이 과연 건전한
신앙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사람의 심령의 병을 고치고 믿음을 주셨으니, 그것이
그의 아들의 육신의 병을 고친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예수님의 말씀은, 육신의 질병
도 고치시지만 심령의 병(불신앙 병)을 고치시는 것을 위주한다.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ㅇ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 이 말씀은, 왕의 신하
가 예수님의 말씀을 신앙으로 상고한 사실을 보여 준다. 그는, 그 아이가 어느 시간에
나았는지 상고해 보므로 그 낫기 시작한 시간이 예수님의 말씀하시던 그 시간과 일치
한 줄 알게 되었다. 그 때에 그는 예수님의 능력의 신기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의 신
앙은 한층 더 굳세어졌다. "제 칠 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후 한 시 경이다.

53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ㅇ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 아비가 예수님을 믿음에 따라 그의 온 가족이 믿음은, 계약 원리(契約
原理)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실현이다. 아버지는 하나님 앞에서 그 집의 대
표자인 만큼,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그 온 집을 축복하신다. 창17:7; 시105:8-10
참조.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ㅇ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 "표적"
이란 말의 의미에 대하여는 2:11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 만드신
표적으로써, 예수님은 자연계의 주님이신 사실을 나타내셨다. 여기 "두 번째 표적"은,
예수님께서 거리(距離)를 초월하셔서 권능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수님께서
는, 그의 하시고저 하시는 일을 거리 관계로 못하시는 법이 없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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