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6:6, 막8:15 비교하라 1절 수만 명이 muriavdwn(뮈리아스) 문자 적으로는 "만 명"을 말한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가리킬 때도 종종 사용한다(행21:20, 계5:11). '수만 명' 앞에 정관사 tw'n(톤)이 있어서 늘 그랬듯이 "수많은 무리"라는 뜻이다. 바리새인들의 누룩 여기서는 나쁜 의미로 누룩의 퍼지는 속성이 사용되었다. 고린도전서 5:7-8에서는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말하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말하는 것이다. 3절 골방 tameivoi"(타메이오이스)은 방의 안쪽으로 창고나 때로는 비밀회의나 보물을 보관하는 은밀한 곳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 결국은 없다는 강조이다.
4절 친구 fivloi"(필로스)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친절한"의 이 단어는 공관복음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친구"라고 하신 유일하신 말씀이다. 요한복음 15:14에는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하셨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마11:19, 눅7:34)는 놀리는 말로 사용되었고, 예수께서는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요11:11)고 하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약2:23)의 "벗"은 친구를 말한다. 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단어는 세상의 친구를 의미한다. 신약에 28회 나타나는 이 말은 가까이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눅14:12, 눅15:6)사용되고, 술친구를 가리키는 말로(눅7:34)사용되었다. 개인적인 친구로(눅11:5, 8, 눅23:12), 손님으로(눅7:6), 집단으로(행10:24)도 사용되었다.
5절 지옥 gevennan(게헨나)은 히브리어 "힌놈의 골짜기"에서 나온 단어로 예루살렘에 인접해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다. 옛날에 이곳에서 어린이들을 몰록신에게 제물로 드렸었는데(레18:21, 왕상11:7)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으로 근절시켰다(왕하23:16). 그래서 이 골짜기는 저주받은 곳으로 간주되었다(렘7:31, 렘19:6). 신약시대 때에는 쓰레기장으로 변해서 연기가 피어오르곤 하였는데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지옥을 연상했다. 이 단어는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에 사용되었고 신체 중 일부를 버리더라도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30, 마18:9, 막9:43, 45)와 "지옥에 멸하시는 자"(마10:28)를 두려워하라고 사용하신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고에서(마23:15, 33) 사용하신다. 야고보는 혀(말)에 대한 충고로 약3:6에 사용한다. 또 다른 지옥에 해당하는 말로는 음부 a{/dh"(하데스)는 죽은 자들의 거처로 이해되었다(눅16:9, 23, 26). 신약에서의 음부는 유대인의 음부관과 비슷하게 나타난다(마11:23, 마12:40, 눅16:9, 계20:13). 비슷한 또 하나의 단어는 무저갱 a[busson(아뷧손)인데 이곳은 불순종하는 자들의 감옥이며(눅8:31, 계9:1), 죽은 자들이 거하는 세계(롬10:7)를 말한다. 원래는 깊은 바다 속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신약에서는 적 그리스도(계11:7), 마귀들(눅8:31), 전갈 비슷한 걸들(계9:3) 및 망령들(계9:1, 계20:1, 3)을 가두어 두는 감옥을 말한다. 6절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ajssarivwn(앗싸리온) 드라크마의 1/16에 해당하는 아주 작은 금액이다. 그러나 이런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7절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세심하게 아주 작은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시고 보호하심을 말한다. "그의 머리털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삼상14:45, 왕상1:52, 행27:34) 이런 완벽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제자들에게 주지시키신다. 8절 앞에서 e[mprosqen(엠프로스덴)는 공개적인 고백을 의미함과 동시에 판사 앞에서 선서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12:10-12 용서받지 못할 죄
마태와 마가는 비슷하게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일, 바엘세불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악평한 다음에 전했다(마12:22-27, 막3:20-30). 그러나 누가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시인과 연결시킴으로 그에 대한 시인이 성령의 훼방죄로 연결되어 그 심각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누가의 이런 배열에 대해서 헨드릭슨은 예수께서 한번만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장소에서 제자들에게 교훈 하시기 위해 다시 사용하신 것으로 말한다.) 성령훼방죄에 대한 것은 "다시 사함이 없는 죄"이기 때문에 성경의 난제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편집자는 여기서 어떤 것이 성령훼방의 대상이 되는지 다루지는 않겠다. 하지만 성경을 잘 묵상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동기와 상황을 이해하면 된다(마12:31-32, 34, 막3:28, 29 참고하라). 주의할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말할 때 함부로 "성령훼방죄"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칫 하나님의 권위에 침범하는 것이 된다. 구원의 문제가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처럼 용서받지 못하는 죄 역시 하나님께 그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12:13-21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이 비유의 시작은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질문으로 시작한다. 상속에 대한 율법은 민27:1-11, 신21:15에 명시되어 있으며 그 분배가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랍비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지금 온 이 사람은 예수를 율법선생으로 이해하고 온 것이다. 14절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청을 거절하신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율법선생으로서 대답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15절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신다. 탐심 pleonexiva"(플레오넥시아스)은 "더 많은"과 "소유하다"의 말이 합쳐진 단어로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가리킨다. 21절까지 이어지는 긴 비유로 부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17-18절 부자는 더 많은 곡식을 쌓아두기 위해 심중에 어찌할꼬 고민하고 결국은 곡간을 더 크게 짓는다. 곡간 (아포데케)은 "창고"(눅3:17, 마3:12, 마6:26)를 가리킨다. 19절 영혼아 ... 마시고 즐거워하자는 그의 물질에 대한 관념과 삶의 목표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20절 어리석은 자여 #Afrwn(아프론) "생각이 없는 자, 무분별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부자는 여러 해를 계획했으나 하나님은 오늘밤이라고 하신다. 21절 자신만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부자의 어리석음에 대한 결론이다.
12:22-34 염려하지 말라
마6:25-34 비교하라 목숨 yuch'/(프쉬케) "생명, 영혼"의 뜻으로 처음에는 단순히 육체적인 목숨과 관계 있는 단어였던 것 같으나 예수님 이후에 생명과 연결되어 육체적인 목숨 위에 영혼의 생명으로 연결되어진다. 신약의 이 단어는 대체적으로 구약의 vp,n(네페쉬)를 번역한 것으로 생명력 혹은 지성과 영의 좌소를 의미한다(민35:11, 신11:18). 예수께서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준다고 언급했을 때, 그가 의미한 것은 혈과, 육, 즉 개인의 자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생명이다(막10:45). 바친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동사는 "바친다"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다"라는 의미도 있다(요10:11). 예수께서는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고 잃고자 하는 자는 얻는다고 하셨다(막8:35, 마10:39, 눅17:33, 요12:25). 마가복음 8:31이하의 내용에서는 생명을 드린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드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감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을 요한복음 12:25에서 처음으로 예수 자신에게 연결시켰으며 제자들에게도 잠시 언급되었다. 누가복음에서 나타난 사후에도 이 단어가 나타난다(눅12:4-5, 눅9:25, 행2:31). 누가복음 12:20에는 부자농부가 죽게될 것임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께 다시 찾아야 될 저당물처럼 제시되었다. 24절 까마귀는 신약에서는 여기에만 나온다. 까마귀는 불결한 짐승(레11:15) 인대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대상이다(시147:9). 예수께서는 이런 하찮은 새 까지도 보호하시는데 제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신다(7절 참고). 25절 키 (헬리키아)는 나이를 말하기도 하고(요9:21), 키를 말하기도 하고(눅19:3), 시간을 말하는데도 사용되었다(시39:5). 여기서는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27절 백합화 krivna(크리논)는 우리가 생각하는 백합화가 아니며 정확히 어떤 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A.G. 사전에는 이 꽃이 가을에 피는 크로크스이든지, 터어키산 백합화이든지, 혹은 아네모네나 글라디오러스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구약시대에는 입술에 바르는 루즈로 사용되기도 했다(아5:13). 어떤 사람은 그래서 붉은 아네모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31-32절 마태는 "염려"(마6:34)로 결론을 맺고있는 반면 누가는 모든 결론을 "하나님의 나라"로 맺고 있다.
12:35-40 깨어 주의 재림을 기다리라
35절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예수께서는 두 가지의 명령을 주시는데 첫째는 허리띠를 띠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옷은 허리띠가 필수적이다. 이것을 하는 것은 일할 자세를 갖추라는 것이다(출12:11, 왕상18:46, 왕하1:8). 두 번째는 등불을 켜라는 것이다. 이 등불은 비추이기 위한 것이며(마5:15),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마25:1-10, 벧전1:13).
12:41-48 신실한 청지기 비유
예수를 메시야 즉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 알고 있는 자들에게는 이 말씀은 가혹한 충격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승리자와 왕으로 간주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메시야 시대를 황금시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유대인의 사상으로는 불은 언제나 심판의 상징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심판의 때로 간주하신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여러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자기들에 대한 심판은 표준이 각각 다르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실상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죄는 조건이 된다고 믿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로부터 심판의 요소를 제거하려고 우리가 아무리 애태운다 하더라도 그것은 변함 없이 엄연히 남아 있다. 흠정역은 50절을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로 번역하고 있다. 헬라어 밥티제인은 물에 담그다란 의미이다. 수동형으로 그것은 물에 잠긴다는 뜻이다. 이것은 흔히 비유적으로 쓰인다. 이를테면 그것은 배가 파도 밑으로 가라앉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쓰인다. 사람에게 사용하는 경우에는 술에 빠진 사람, 즉 죽을 정도로 술 취한 상태에 쓰인다. 우리가 현대적인 용어로 끝장이 났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학생이 시험관의 질문에 혼이 난 상태를 나타내는데 쓰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말은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체험하는 경우 즉 "나는 이사회의 물결과 세파를 헤지고 나왔다."고 말하는 사람에 쓰인다. 바로 예수가 여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요법이다. 그는 "나는 내가 통과해야 할 무서운 체험이 있다. 내가 그것을 통과하고 승리로서 그것을 헤쳐나 갈 때까지 나는 긴장으로 가득 찬 생을 지내야 한다. "고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훨씬 전부터 그의 눈앞에 있었다. 유대인이 생각하던 하나님의 메시야와 얼마나 다른가! 예수는 오셨다. 그러나 그는 복수의 군대와 기치와 창검을 휘날리며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을 많은 사람을 위해서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의 도래는 필연적으로 분리를 의미한다. 사실상 그것은 사실화하였다. 로마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미워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기독교는 가정을 둘로 분리시켰다. 거듭거듭 사람은 자기 친족과 일가를 더 사랑하느냐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를 결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충성보다 선행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의 철칙이다.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에 때문에 모든 것을 상실하는 것으로 생각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12:54-59 시대의 징조를 분별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일기를 잘 알아 맞추었다. 서쪽 지중해의 상공에 구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보면 비가 오겠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사막에서 남풍이 불어오면 열풍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기상은 그처럼도 현명하게 볼 줄 알았던 그들도 시대의 징조는 분별할 수가 없었으며 분별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벌써 그 이전에 하나님나라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예수는 대단히 생생한 실례를 들었다. 그는 말했다. 네가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희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여기에서 주의해 두어야 할 것은 피고가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다고 가정하고 있는 점이다. 그것은 확실히 피고의 목을 누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서면 악조건 투성이 뿐이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이라면 아직 시간이 있을 동안에 하나님과 화해하고자 할 것이다"라는 뜻으로 암시하셨다. 예수와 그의 위대한 종들도 언제나 시간의 긴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59절 호리 lepto;n(렙톤)은 헬라 동전의 명칭이며 두 렙톤은 로마동전 한 kodravnth"(코드란테스)에 해당된다(막12:42). 마5:26에서는 kodravnth"로 기록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철저하게 빚을 갚기 전에는 옥에서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