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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누가복음

[스크랩] 누가복음 6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9:00

누가복음 6장

6:1-5 안식일의 주인
6:6-16 손 마른 자를 고침
6:17-26 복 있는 자와 저주받은 자
6:27-38 원수를 사랑하라
6:39-45 비판받지 말라
6:46-49 반석 위에 지은 집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르다(마 12:1-8; 막 2:23-28)

(눅 6: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신23:25
(눅 6: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눅 6: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ㄱ)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삼상21:6
(눅 6: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출29:32
(눅 6: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다(마 12:9-14; 막 3:1-6)

(눅 6: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눅 6: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막3:2
(눅 6: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눅 6: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요7:23
(눅 6: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막3:5
(눅 6: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열두 제자를 사도로 택하시다(마 10:1-4; 4:23-25; 막 3:13-19)

(눅 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눅 6: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눅 6: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1)셀롯이라는 시몬과
(눅 6: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눅 6: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2)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마11:21
(눅 6: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눅 6: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복과 화를 선포하시다(마 5:1-12)

(눅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 6: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눅 6: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눅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행7:51
(눅 6: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눅 6: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눅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1요4:5

원수를 사랑하라(마 5:38-48; 7:1-5,12 상, 17-20; 12:34 하-35)

(눅 6: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눅 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눅23:34, 행7:60
(눅 6: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눅 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눅 6: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마5:46
(눅 6: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눅 6: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눅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3)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눅 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눅 6: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네 눈 속에 있는 들보

(눅 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사9:16, 마15:14
(눅 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눅 6: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눅 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잠18:17
(눅 6: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마7:16
(눅 6: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마12:33
(눅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잠4:23, 롬8:5

듣고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아니하는 자(마 7:24-27)

(눅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눅 6: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눅 6: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눅 6: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1. 열심당원 2.사본에 따라 이 구절은 18절 상반절에 나타날 수도 있음 3. 어떤 사본에, 아무에게도 실망하지 말고


6:1-5 안식일의 주인
마12:1-8, 막2:23-28 비교하라
안식일에 ejn sabbavtw/(엔 사빠토) 제자들이 ... 비비어 먹으니 "마태는 제자들이 시장하여"(마12:1)란 말을 첨가하여 그들의 배고픔 때문에 행해진 일이라는 것을 말했다. 제자들의 행동은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고 하였기 때문에 잘못을 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제기하는 것은 안식일에 했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한("비비어"를 아래 4,5,7항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것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39가지 안식일 금법에 관계된 다음 조항들이 있다.
1. 씨뿌리지 말 것
2. 밭 갈지 말 것
3. 곡식 단을 묶지 말 것
4. 곡식을 거두지 말 것
5. 곡식을 타작하지 말 것
6. 곡식을 까불지 말 것
7.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들지 말 것
8. 곡식을 찌지 말 것
9. 채질하지 말 것
10. 반죽하지 말 것
11. 굽지 말 것
12. 털 깍지 말 것
13. 빨래하지 말 것
14. 때리지 말 것
15. 염색하지 말 것
16. 실 짜지 말 것
17. 밧줄 끌지 말 것
18. 두 끈 만들지 말 것
19. 두실 을 짜지 말 것
20. 두실 을 가르지 말 것
21. 매듭을 짖지 말 것
22. 매듭(끈)을 풀지 말 것
23. 바늘로 두 번 깁지 말 것
24. 두 뜸을 깁기 위해 찢지 말 것
25. 사슴을 잡지 말 것
26. 죽이지 말 것
27. 껍질을 베끼지 말 것
28. 소금 치지 말 것
29. 그 가죽을 만들지 말 것
30. 머리털을 밀지 말 것
31. 그 것을 깍지 말 것
32. 두 글자를 쓰지 말 것
33. 두 글자를 쓰기 위해 지우지 말 것
34. 집 짓지 말 것
35. 헐지 말 것
36. 망치로 납작하게 때리지 말 것
37. 불을 끄지 말 것
38. 불을 켜지 말 것
39.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물건을 옮기지 말 것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다는 이유로 예수께 물어왔을 때, 예수께서 다윗이 시장할 때에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할 진설병을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먹었지만 정죄를 받지 않았었다는 다윗의 예를 통하여 한 원리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안식일의 율법도 다른 요소들로 말미암아 제쳐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마 12:5에는 마가도 누가도 언급하고 있지 않는 내용이 거론되어 있다. 그것은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안식일의 법을 깨뜨렸다. 왜냐하면, 그 날 그들이 예배 의식을 집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겐 안식일이 평일보다 더욱 바쁘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규례에 의하면 제사장들은 안식일마다 법을 범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오경에는 그들은 죄를 지었다고 언급함이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원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율법들은 다른 율법이나 원리가 덜 중요한 율법보다 우선권을 차지함을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사실은, 마가와 누가는 안식일에 대한 논쟁의 본문을 언급하기 전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내용이 언급되어진 후에 본문들이 전개된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요점은 예수께서 새 일을 만들고 있다는 진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즉 그것은 예수께서 완전하고 새로운 종교적인 형태와 그것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것으로 가져왔다고 가르치고 있다. 안식일 그 자체가 메시야 시대의 도래와 회복의 주제와 연관이 있고, 또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사실에는 안식일의 개념이 본질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는 깊은 의미가 여기에 포함이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막 2:27-28).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거룩하고 복되게 하여 인간에게 주시고 하나님과 인간이 영교하게 하신 것은 인간을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안식일의 종이 되거나, 또는 그 날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시고, 인간은 하나님께 나가서 영적으로 교제하고, 거룩함을 누리고, 축복을 받게 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을 지키면 거룩하여 지고, 또 안식일을 지킴으로 복을 받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수단과 방편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내용은 하나님과 영적 교제이다. 먼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그 죄악을 청산하고, 진노와 형벌에서 면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죄인들로 죄악을 사유함을 받고, 진노와 형벌에서 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면 안식일이 죄 문제를 해결하며, 하나님께서 안식일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하였는가? 그것 또한 아니다. 단지 안식일은 영적인 사건의 그림자이다. 그 안식일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실체는 인격적 존재이다. 즉, 인자이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 인자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자로 신성으로는 하나님 편에, 인성으로는 인간 편에 서서 양편을 중재하신 중재자시다. 그 중재자는 누구 신가? 마가복음 2장 28절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한 날이다. 성경에 근거하면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즉, 초림에 관한 예언이다.
그러므로 할라카에 의하면 분명히 제자들의 안식일의 행위는 랍비들의 규례를 파괴했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모세오경의 규례를 범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위의 공관복음의 본문들은 안식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안식일의 기원은 출34:21, 출23:12, 신5:12이하, 레23:1이하, 레19:3, 26:2에서 나온다. 바벨론에서도 유사한 것들이 있지만 이것들은 달의 주기와 관련이 있으며 속죄일의 의미를 갖고 있다. 포로기 이전 시대에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짐승과 모든 생명체에게 절대적인 휴식을 명한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거행하고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다(왕하4:23). 포로기 이후시대에는 이방인을 구별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법으로 이용되었다(겔20:12). 이러한 안식일을 모독하는 자는 재앙이 내리리라는 저주를 받았다(겔20:13). 이 시기에 안식에 관한 다양한 휴식 명령들이 출애굽기 35:3, 16:22, 레위기 24:8의 규칙들이 강화되어 만들어졌다(겔45:17, 느13:15).
랍비의 저작들은 금지항목을 더 만들어 모두 41가지의 항목을 만들어 확대시켜서 각 항목마다 6개씩의 보조적인 내용을 분류했다.
안식일 법에 저촉되지 않는 보다 우선 되는 것들도 있는데 "제사장이 번제물를 준비하는 일,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잇는 사람들, 자기 방어, 병중에 사람을 돕는 것, 출산, 할례, 장례"는 안식일보다 우선하였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날까지 모든 음식의 준비와 많은 거리를 걷지 않기 위해서 미리 도착하고 거의 모든 일을 쉬어야 했다. 예수님 시대 때(신약)의 안식일 역시 유대 문헌에서 밝혀진 바와 일치한다. 예수의 시체는 안식일 전에 매장되었으며(막15:42), 밀 이삭을 뽑는 것이 금지되었고(막2:23-24), 죽음의 위험에 있지 않은 사람은 도움을 받거나 병 고침을 받아서 안되며(막3:1), 여행이 제한되고(행1:12), 물건을 운반할 수 없었다(요5:9-10).
현재의 예수그리스도의 교회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어떤 의무나 예수의 명령이 없다. 이 날에 집착해야할 아무 이유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유대인식의 안식일의 계명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를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것이다. 현재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지키는 주일(부활일)은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날을 기념하여 예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안식일이 부활일 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6:6-16 손 마른 자를 고침
마12: 9-14, 막 3:1-6 비교하라
안식일에 다시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송사하기 위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가를 엿보고 있었다. 눅6:7에 의하면 이 엿보는 사람들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로 간주하고 있다. 세 복음서들의 저자들 모두가 엿보는 사람들의 의도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엿보는 무리들이 이해하고 있는 안식일의 개념과 예수님의 생각과 대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의 잘못된 인식을 고치고,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 엿보고 있는 무리들 앞에서 병을 고치셨다.
여기서 분명히 예수님은 그들의 할라카를 공격하고 있다. 사실 모세오경에도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랍비들이 출31:14에 근거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은 일을 하는 것으로 해당된다고 해석했고, 그리고 나서 그들이 수정하길 안식일에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는 제외된다고 규례를 정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업적인 의사도 아니요, 어떤 약도 사용하지 않았고, 그리고 어떤 특별한 행위도 그 환자를 고치기 위해 하지 않았다. 오직 말씀으로 고치셨다. 그러므로 랍비들이 제정한 규례들에 의하여도 예수님의 행위는 안식일에 병을 고쳐서 할라카를 범했다고 결론을 내리기에 간단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행한 자기의 행위를 변호한 방식은 그가 안식일을 폐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종종 그 반대를 의미한다. 기존의 랍비들의 교훈으로부터 나온 백성들의 관습에 대해 구약 성경을 거론한다는 것은 안식일에는 안식이 필요하다는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6:17-26 복 있는 자와 저주받은 자
17-49절 마5-7장에 기록된 산상수훈보다 짧지만, 누가는 함축하여 전하는 것 같다. 마태는 예수께서 산 위에 계시다고 기록했는데(마5:1), 누가는 17절 예수께서 평지에 계셨다고 했다. 설교가 이루어진 이곳은 먼저 예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서 12절 가버나움 근처의 언덕으로 올라가셨고 12제자를 부르셨다. 그리고 질병과 말씀하시기 위해서 평지로 내려가셨다(17-19절). 그 이후에 군중들을 떠나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더 높이 올라 가셨다(마5:1). 무리들은 산에 올라와서 설교를 들었는데(마7:28, 눅7:1),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서로 다른 기록을 남긴 것이다.
20, 21절 복이 Makavrioi(마키리오이) "복된, 축복된, 행복한"의 뜻으로 공관복음서에 30번 이상 나온다. 그 중에 두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태, 누가복음에 나왔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를 때 그 속에서 복을 받거나 행복한 네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다.
20절 ① 가난한 자 21절 ② 주린 자우는 자 22절 인자를 인하여 ...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를 말씀하셨다. 예수의 말씀을 듣는 이 사람들은 마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 누가는 "가난한"이라고만 함으로 물질적으로도 가난함을 드러내었다. 누가는 예수를 따랐던 사람(제자)들이 모든 것을 떠났다는 것을 두 번이나 언급하였다(눅5:11, 28). 구약에서도 '가난한 자'와 '경건한 자'가 거의 동일하게 사용되었다(시40:17, 72:2, 4). 세상의 부요 함은 자기 자신이나 그 물질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24-26절에 oujai;(우아이)라는 단어가 네 번 나온다. 화 있을찐저는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 이 말은 "슬픔의 탄성"이며 동정과 애도의 표현이다. 이 부분은 의미 전달을 위해서 약간의 의역을 할 필요가 있다. [오! 화로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이러한 화가 미칠 사람은 "① 부요한 자 ② 배부른 자 ③ 이제 웃는자 ④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으로 나타난다. 가난한 사람과 상반되는 개념의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다. 반대로 성경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어떤 화나 저주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제 웃는자는 예수의 반대편에 서서 예수를 조롱하며 비웃는 자를 가리킨다. 가까이는 현재 말씀을 전하실 때와 십자가에 달리실 때가 있으며 지금까지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 ④의 사람들은 ③의 입장을 지지하는 그런 모든 사람이다. ①-②, ③-④를 두 개씩 묶어서 생각하면 두 그룹의 비슷한 사람에게 경고하고 계신 것이다.

6:27-38 원수를 사랑하라
이 설교는 24-26절의 화에 대한 경고와 저주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는 것이다. 이 사랑은 자연적 감정인 스토르게가 아니요, 낭만적인 에로스도 아니요, 친구간의 사랑인 필리아도 아니다. 예수께서는 ajgaphJJ(아가페)를 말씀하고 계신다. 이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자에 대한 사랑이요, 사랑을 받을 만한 행위와 무관한 사랑이요, 사랑의 대상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랑이다.
이러한 수준 높은 사랑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신체적인 폭행을 예로 들어 설명하신다.
29절 siagovna(시아곤)은 뺨보다는 '턱'에 가깝다. 뺨을 후려치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치는(tuvptontiv)은 "주먹으로 치다"이다.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하여 때려눕히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강하게 얻어맞고도 그 피해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자 적인 의미에서 뺨만 돌러대는 것만이 최선의 길은 아닐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얼굴만 돌려대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약오르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요점은 사랑이다. 그래서 것 옷과 속옷의 이야기를 또 하신다.

옷(의복)
속옷 : 짐승의 가죽이나 털 혹은 말총이나 아마포 등으로 만들었으며 자루 모양으로 발목까지 오도록 되었으며 서민층에서는 소매 없이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부자들은 집안에서만 그렇게 입고 외출할 때는 별도의 옷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은 최소한 한 벌 이상 갈아입을 옷이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도 많았다(눅3:11).
겉옷 : 길고 헐렁한 옷으로 낮에는 외투로 밤에는 담요로 사용하기도 했다(막14:51-52). 일반 서민들은 이 옷을 쉽게 가질 수 없었다.
띠 : 속옷이나 겉옷이나 대부분 걸치는 형식이 되다보니 띠는 필수였다. 일반적으로는 가죽으로 만들었고(마3:4), 고급품은 아마나(렘13:1) 실크로 만들었으며 수장식물로 된 것도 있었다. 허리띠의 중간 곧 허리춤 부분은 겹으로 되어 주머니로 사용했으며(삼하18:11), 칼을 차는데도 허리띠가 이용되었다(삼하20:8).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단단히 준비하는 것을 '허리띠를 두른다'는 말로서 표현하기도 한다(시18:39, 엡6:14).
두건 : 팔레스타인의 강렬한 햇볕과 모래바람으로 인해 두건은 필수품 중의 하나였다. 두건은 주로 터어번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이마나 목면으로 만든 두꺼운 직물로 머리에 여러 번 겹쳐 두르는 것이다(사3:23). 유대인들은 공석에서는 항상 터어번을 쓰는 것은 예의로 되어있었다.
신발 : 오늘의 구두와 비슷한 신발도 있었지만 이런 것은 사치품에 속했고 일반적으로 나무나 가죽으로 만든 바닥에 가죽끈을 메어 발에 묶는 샌들 형식이었다. 세례요한은 예수께 대하여 이 신발끈 묶기도 감당키 어렵다고 했다(막1:7).

31절 남에게 대접하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원리는 인생의 모든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황금률(黃金律)이다. 이러한 사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서나 있었던 진리의 기본이다.
35절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mhde;n ajpelpivzonte"(메멘 앞엘피존테스)는 "소망이 없다고 포기하여 버리지 말고"란 뜻도 있다.
38절 주라 divdote(디도티)는 동사로 "받기를 바라지말고 먼저 은혜를 베풀라"는 뜻으로 값없이 주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3:16에 "독생자를 주셨으니"에 같은 말이 사용되었다.

6:39-45 비판받지 말라
이 말씀은 31절의 추가적인 설명이다.
41절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로 비유하신다. 이 비유는 예수의 어린 시절 아버지 요셉의 일을 도와 목수 일을 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목수 일을 하다보면 '티' kavrfo(칼프호스)톱밥이 눈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것을 대들보에 사용하는 목재 들보 doko;n(도코뉘)로 비유함으로 위선적인 면을 날카롭게 지적하신다.

6:46-49 반석 위에 지은 집
46-49절은 17절부터 이어지는 평지 수훈 전체의 결론이다.
예수께서는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가며 이제 직접 그 사랑을 실천에 옮기도록 말씀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여 주여 하면서도 ... 행치 아니하느냐고 반문하심으로 행함 없이 입으로만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외식에 대해서 다시 지적하신다. 마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마7:21)고 하였다.
47절에는 신앙의 원리를 찾을 수 있는 세 가지 동사가 나온다.
나아와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요1:12), 듣고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롬10:17), 행하는은 실천하는 것(약2:17)을 말한다.
48절 깊이 파고는 다른 모든 곳이 마찬가지 일수 있지만 특히 팔레스타인의 건축에서는 깊이 파지 않으면 그 지역에 집중적으로 여름에 폭풍이 쏟아지고 나무가 별로 없는 비옥한 땅과 언덕이기 때문에 기초가 든든하지 않은 집은 쉽게 쓸려 내려가는 일이 있다.
49절 주초 없이 흙 위에 집은 한마디로 부실 공사다. 마태는 '모래 위에'(마7:26)라고 한다. 모래가 더 나쁜 상태를 말하지만 흙이라고 그 의미가 약화되지는 않는다. 탁류가 부딪히매 이스라엘은 건조한 지역이지만 장마철에 쏟아져 내리는 비는 매우 강하다. 이 비에 쓸어 내리는 흙탕물을 말한다. 영적인 의미에선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될 시련과 시험을 의미한다(고전3:11-15).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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