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4:18-22, 막1:16-20 비교하라 여기서 부른 제자들과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누가는 예수께서 이미 시몬과 안드레를 접촉했을 사건인 시몬의 장모를 고쳐준 일을 먼저 기록했다. 이로 보아 예수께서는 이미 이들과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2절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구약을 따라 바다라고 부르는 반면 누가는 항상 호수라고 불렀다. 이곳은 대략 넓이 13마일, 길이 7마일의 면적이며 바다보다 700피트나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일반적으로 '갈릴리'라고 불렀는데 이곳에서만 '게네사렛'이라고 불렀다(구약에서는 '긴네렛 바다'(민34:11, 수13:27), 요한복음에서는 두 번 '디베라'(요21:1)로 불렀다). 예수님은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하시기 위해서 두 배를 사용하시고자 했다. 그런데 이 배의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이로 보아 이 두 척의 배는 방금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왔지만 고기가 없는 빈배임이 틀림없다. 고기를 잡지 못하고 돌아온 배인 것이다. 고기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도 예수의 말씀을 순순히 응한 것으로 보아 예수의 말씀을 거절 할 수 없었던 어떤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시몬의 장모를 고쳐준 일을 기억했을 것이다. 가르치시기를 마친 후,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제안하셨다. 대답에서 베드로가 5절 선생이여 !Epistavta(에피스타타) 누가는 히브리어에서 온 '랍비'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누가복음에서 6번(눅5:5, 눅8:24, 눅8:45, 눅9:33, 눅9:49, 눅17:13)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누가가 이방인을 염두 해 두고 사용한 용어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용어가 '랍비'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과 권위에 있어서 더 의미가 있다. 4-5절 목수의 아들인 예수가 바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을 것인데, 그리고 그들은 이미 밤을 세워 고기를 잡았지만 잡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예수의 병고침의 능력을 본 이들은 크게 기대는 안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져보겠다고 하였다. 6-7절 말씀의 결과는 주효했으며 다른 배를 동원하여 나누어 실어야 할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다. 8절 시몬 베드로 Sivmwn Pevtro"는 지금까지는 베드로의 이름이 '시몬'으로만 나왔다. 시몬과 베드로라는 이름이 함께 사용된 경우는 본서인 누가복음과 함께 기록한 사도행전에만 나타난다. 여기서 누가가 '시몬'에 의도적으로 '베드로'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중대한 전환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자신이 죄인임을 예수께 고백했다. 5절까지는 예수님을 "선생이여"라고 불러오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주여라고 부르고 있다(눅1:43 주를 참고하라). 9절 놀라고 qavmbo"(담보스)는 매우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말한다. 우리말에 말문이 막히다와 유사한 표현이다. 11절 많은 물고기가 잡혔는데 이들은 물고기에는 관심이 없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방금 잡은 고기도 배와 함께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았다.
5:12-25 문둥병자를 고침
마8:2-4, 막1:40-45 비교하라 구약에서의 문둥병은 오늘날 정확한 의학 용어로 한쎈씨병(Hansen's Disease)으로 이 병에만 국한하지 않고 넓은 의미의 모든 피부병(레13:1-59)을 포괄하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문둥병은 옮겨지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판단하고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았다. 만일 문둥병이 깨끗해지면 제사장에게 검사를 받고 확인되었을 때 감사예물을 드리고 사회로 복귀되었다(레14:1-32). 13절 손을 내밀어 특별히 사람들과 철저하게 격리되어 생활하는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부정한 사람을 만지면 그 사람도 부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16절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는 NIV에서는 문장속에 종종(often)이라는 단어를 넣어 이러한 행동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원어에서 uJpocwrw'n(엔 휘포코론)는 "스스로 물러나다"로 미완료 과거형이며, 귀찮아서 물러가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시기 위해서 잠시 물러가셨다가 말씀과 병 고치는 일을 계속하신 것을 알 수 있다.
5:17-26 중풍병자를 고침
17절 교법사 nomodidavskaloi(노모디다스칼로이)는 "율법의 해석가, 율법교사"를 말하며 '서기관'이나 '학자', '랍비'와 거의 같은 뜻이다. 같은 단어가 디모데전서 1:7에는 "율법의 선생"이라고 나온다. 21절 참람한 blasfhmiva"(블라스페미아)는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에 대한 도전이다. 하나님에 대한 모독으로(계13:6) 예수께서 죄를 사하실 때(막2:7), 메시야 임을 주장하실 때(막14:64), 하나님과 동등하고 주장하실 때(요10:30)에 신성모독으로 생각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형 역시 이 죄목으로 고소당하신 것이다(막14:64).
24절 인자 oJ uiJo;" ajnqrwvpou(호 휘오스 안드로푸)는 누가복음의 핵심사상으로 34회 사용되었다. 이 말은 요12:34를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 자신을 사용하여 사용하였다(마5:19, 마8:20, 마17:22, 마25:31, 막2:10, 막8:24, 막14:41, 눅5:10, 눅11:24, 눅18:8, 요1:51, 요6:10, 요18:17 등). 원문상의 의미로는 人子(사람의 아들)아들을 의미하지만 이 말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관계된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3:13)에 잘 나타난다. 이 말은 문자 적으로는 '인자'이지만 의미상으로는 다니엘이 이상 중에 본 '인자'가 장차 올 메시야였던 것이다(단7:13). 인자로 오신 목적은 그래야만 그의 수난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눅4:29 눅11:53, 눅20:20, 눅22:63-65, 눅23:11).
5:27-32 세리 레위를 부르심
27절 좇으라 !Akolouvqei(아콜루-데이)는 연결하는 접두사 '길'에서 유래한 말로 "좇다, 따르다"의 뜻이 있다. 같은 단어는 마8:22, 마9:9, 마10:38, 마16:24, 마19:21, 막2:14, 막8:34, 막10:21, 눅9:23, 눅18:22, 요1:43, 요10:4, 요12:26, 요21:19, 요21:22, 행12:8, 계14:13에 나타난다. 28절 모든 것을 pavnta(판타) "전체를 내버려두고"의 뜻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를 의미한다. 전체를 버리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막10:17-22, 눅9:57-62), 전체를 버리는 사람에 대해서(마4:19-22, 막10:28-30, 눅5:28), 전체를 버린 사람에 대해서(요17:4-5, 빌2:4-11) 약속을 주신다. 29절 레위는 자기 집에서 th'/ oijkiva/(테-오이키아)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께 기꺼이 필요에 따라 자신의 집을 사용하도록 했다. 마태의 집은 눅5:27-29에서, 베드로의 집은 마8:14-15에서, 소경의 집은 막8:22-26에서 부자인 바리새인의 집은 눅8:22-26에서, 그 밖의 집 막2:1-4, 14-15, 막7:24, 막9:28에서, 제자들의 집은 눅10:38-42에서 사용되었다. 사도시대의 제자들의 집(행2:46, 행5:42, 행9:43, 행12:12-13), 유스도의 집(행18:7), 시몬의 집(행9:43, 행10:6-7), 부리스길라, 아굴라의 집(행18:1-3, 7), 알려지지 않은 사도들의 집(행21:7-11), 빌립보의 집(행21:8-9), 빌레몬의 집(몬1:22)이 있는데 이 집들에서부터 초대교회가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5:33-39 금식에 대한 교훈
금식 nhsteuvousin 예수님 당시의 금식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일반화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유대민족의 원래 금식 일은 속죄일(7월 10일)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졌다(레16:29). 이는 히브리어로 !k,ytevop]n"Ata, WN['T](아나 네페쉬) "영혼을 귀롭게 하다"는 뜻이 있다. 유대인의 금식은 국가적 재난(삿20:26)이나, 병들었을 때(시35:13), 애곡할 때(삼상31:13), 회개할 때(왕상21:27), 위험이 임박할 때(대하20:3)에 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 당시에는 자신들이 제사를 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회개의 뜻으로 그리고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의미로 금식을 했다. 이 금식은 예루살렘 파멸과 관련해서 이루어졌는데 ① 성전이 불탄 날(5월 7일 / 왕하25:8-9) ② 그달리야 피살일(7월 2일 / 왕하25:23-25) ③ 성전 포위 개시일(10월 10일 / 왕하25:1) ④ 성전 함락일(4월 9일 / 왕하25:3-4) 등이 있었다. 이 외에도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눅18:12), 즉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간 목요일 날과 그것을 가지고 내려온 날 월요일을 기념하여 금식 일로 지켰고 개인의 신앙에 따라 경건함을 보이려고 더 많은 금식을 했다(참고: 외경 유딧서 8:6). 예수님은 이들의 신앙을 과시하기 위한 형식적인 금식기도를 외식된 행위로 질타하셨다(마6:16, 마9:14). 금식할 때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말고 하나님께 하라고 하신다(마6:18). 또한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막 2:20, 눅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