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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현대인의 출애굽기 3> “흑암의 재앙”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0:00

<현대인의 출애굽기 3> “흑암의 재앙”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결정적인 사건은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신 열 가지의 재앙들이었다. 그 중에서 아홉 번째 재앙은 일반적으로 “흑암의 재앙”이라고 불린다. 재앙이 가져오는 피해가 점점 심해지는 것이라면 열 번째 재앙이 애굽의 장자들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재앙이므로, 그 앞의 재앙인 “흑암의 재앙”은 그에 못지않은 큰 피해를 주는 재앙으로 생각할 수 있다.
출애굽기 10장 21-29절에 기록되어 있는 이 “흑암의 재앙”에 관한 내용들 가운데, 여기에서는 21절부터 23절까지의 내용만을 깊이 있게 살펴보려고 한다. 이 재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흑암”의 의미를 정리하는 일이 될 것이다. 흑암을 “빛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한다면, 그것은 흑암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없는 상태”라는 부정적인 정의는 정의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실체를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 21절을 보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을 하신다. 이 구절에서의 초점은 “흑암이 있게 하라”에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 부정적인 정의에 관해서 언급한 것처럼, 흑암이 “빛이 없는 상태”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명령은 “흑암이 있게 하라”가 아니라 “빛이 없게 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실체가 있는 흑암이 내리도록 명하신 하나님은 그 흑암이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해주신다. 21절 후반부에 보면 “더듬을 만한 흑암”이라고 되어 있다. 히브리어 원문은 “느낄 수 있는 흑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흑암은 실체가 있어서 느껴지는 흑암임을 알 수 있다. 빛이 없는 상태의 흑암은 빛을 비추면 사라지지만,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실 흑암은 만져질 수 있는 것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흑암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대로 모세는 3일 동안 애굽 전역에 “캄캄한 흑암”이 있도록 한다(22절). 하루도 아니고 삼일씩이나 흑암이 애굽에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아무리 등불을 켜도 여전히 흑암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등불로 인해 흑암이 사라졌다면 이것은 재앙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홉 번째 위치한 이 재앙은 겉으로 보기에는 가축이나 식물, 그리고 사람에게 아무런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재앙으로 보기 힘들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흑암이 내리고 등불을 밝혀도 그대로 흑암이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는가? 여전히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23절에 보면, “그 동안은 사람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라고 기록하고 있다. 불을 켜면 흑암은 사라진다는 일반적인 상식이 완전히 깨지는 것을 이 재앙은 보여준다. 애굽 사람들의 신체에 피해를 주는 재앙이 아니라, 애굽 사람들의 마음에 내리는 재앙인 것이다. 인간이 알고 있고 경험한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흑암의 재앙은 깨닫게 해준다. 불을 켜도 어둠이 사라지지 않았을 때 느끼는 공포감은 무척 컸으리라고 짐작된다.
23절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고 되어있다. 결국 애굽 사람이 거하는 곳에는 흑암이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빛이 없는 상태의 어둠이 내린 재앙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함으로 빛을 밝혀도 사라지지 않는 실체로서의 흑암이 내린 재앙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애굽 사람들처럼 얄팍한 지식에 현혹되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흑암의 재앙에서 애굽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주신 진리의 말씀은 결국 우리 인간들이 가진 지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에 우리를 맡기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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