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요절/마가복음 1: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 게 하리라 하시니" 죄와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던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인 세례 요한 은 옥에 갇히고 백성들은 헤롯 왕의 억압과 가 난으로 고생할 때에 예수님은 그 백성들에게 인간적인 위로의 말 대신에 회개 와 믿음을 촉구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사람 이 날마다 죄사함과 구원을 얻고 생명과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후에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몇몇 어부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이 세상을 바다로 본다면 사람들은 인생 항해를 하는 동안 무엇인가를 건져 올리는 삶을 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 히 돈을 건 져 올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문을 건져 올리고, 명예와 권세를 건져 올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어부들을 사람을 건져 올리는 목자요 영적 지도자로 부르 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 부르심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를 배우기를 기 도합니다. 또한 우리 각 자를 향한 이 부르심의 은총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I.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 (16-20) 막이 열립니다. 때는 아마도 서기 30년 3월 중순 이른 봄, 날씨도 화창한 아 침, 장소는 '하나님의 야심작'이라 고 불리는 갈릴리 바닷가, 등장 인물은 하나 님의 아들 예수님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 시다가 시 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예수 님은 갈릴리 해변을 지나 고 계셨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이스라엘 북동쪽에 위치한 거대한 호수입니다. 호수이나 길이 가 50리 폭이 30리 수심은 깊은 곳이 50m 총 둘레가 130리나 되기 때문에 사 람들은 갈릴리 바다라고 부릅니다. 만년설인 헬몬산에서 눈이 녹으 며 흘러내린 물이 요단강 줄기를 따라 갈릴리 호수로 들어옴으로 갈릴리 바다는 언제나 물 이 맑습니다. 바다 건 너편은 산들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서 경치가 아름답기 로도 유명합니다. 죠오지 아담 스미스는 갈릴리 바다를 가리켜 "달콤한 물, 넘 치는 물고기, 반짝이는 파란 수면의 갈릴리 호수는 곧 식량이요 음료수이며 공 기이고, 눈 의 휴식이요, 뜨거운 기온의 시원함이며, 혼잡으로부터의 피난처이 다."라고 예찬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합니다. 저도 이곳에 서니 아름다운 시들이 줄줄 나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특히 갈릴리 바다에는 물고기가 풍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바다에서 물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요즈음도 이곳에서 나는 베드로 고 기 튀김 요리는 매우 단백한 맛을 내는 일품 요리입니다. 이 바다에 서 흘러 나 가는 물이 요단강을 따라 이스라엘의 남쪽에 위치한 사해 바다에 이르는 동안 요단 평야를 적셔 온갖 농산물을 자라게 합니다. 갈릴리 바다는 곧 척박한 이 스라엘 땅의 생명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 물을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여 기서 '지나가시다' '보셨다'는 두 동사가 중요 합니다. '지나가시다'는 지나간 것입니다. '보셨다'는 '관심을 갖고 주 목하여 응시하셨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몬과 안드레 곁을 지나갔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 었습니다. 이들은 지난밤에 밤새 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고기를 잡지 못하자 아 침이 되어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계속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 다(눅5:4). 밤에 고기잡이에 실패하면 누구나 기분도 그렇지 않고 해서 집에 돌아가 막걸 리 한 잔 걸치고 잠을 자 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계속하여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니 매우 성실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 니다. 또한 일이 잘 안 풀릴 때 형제간에 협동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 형제는 동역을 잘 하고 있었습 니다. 이들은 인내심도 있고, 열정도 있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 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이들에게서 무엇을 보셨을까요? 여 러분들은 시몬과 안드레 같은 분 들에게서 무엇을 보십니까? 새벽부터 밤중까 지 도서관에서 책장을 뒤적이는 사람, 옆구리에 삐삐를 차고 뭔가 바삐 움직 이는 학생들에게서 무엇을 보십니까? '참 잘 나가는구나! 부럽다.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가?'라며 자책 도 하지요? 어떤 사람은 시몬과 안드레 곁을 지나며 속으로 '참 열심히들 사는구먼'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 루살렘에서 관광온 사람은 '참 아름답고 멋져! 저 낭만적인 풍경!'하며 감상적으로 바라보았을 것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내면을 보셨습니다. 성실한 생활인의 한계와 허무를 보셨습니다. 파도와 싸우다가 언제 바다 귀 신이 될지 모른다는 속두려 움과, 하루살이와 같은 삶에서 느끼는 내면의 불안을 보셨습니다. 영혼을 가진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시몬과 안드레는 성실한 만큼 더욱 하루살이와 같 은 일상적인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어 괴 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뭔가 삶의 탈출구를 찾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주목하여 보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일부러 시몬과 안드 레와 같은 사람을 찾으러 바닷가 에 나오셨음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그들의 영혼의 고통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 입니다. 그들 을 뜨거운 사랑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이 시대의 시몬 과 안드레들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은 B.A.에 양들을 초청하기 위해 지난 2주간 동안 거의 매일 캠퍼스를 심방하여 양들을 만났습 니다. 그런데 신입생답지 않게 당돌하고 자기 표현이 분명한 양들의 모습에 위축되고 당황하는 목자들도 있습니 다. 그러나 겉모습에 속으면 안되겠습니다. 양의 반응에 관계없이 예수님과 같이 확신을 가 지고 양들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시몬과 안드레 를 어디서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캠퍼스 길가에서 찾을 수 있고, 화장실에도 찾을 수 있습니다. 행당동 할렘가 골목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 는 시몬과 안드레를 보시는 예수님의 두 눈은 소망과 비전으로 타고 있었습니다. 17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애정 어린 음성으로 '나를 따라 오 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시몬 과 안드레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청년들이었지만 지금까지의 그들의 삶은 생활인의 일상성을 벗어 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소원은 고기를 많이 잡아서 자가용 통통배라도 한척 마련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 다가 더 큰배를 마 련하고, 그 후에는 장가들고(시몬은 이미 결혼했음), 40대에는 '내집'을 마련하 고, 50대에는 갈 릴리 수산 협동조합 조합장이 되고, 60대에는 잘하면 지방의회 의원이 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큰 아들 놈을 예루살렘 대학에 유학까 지 보낼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저자 마가가 16절 하반절 에 '저희는 어부라'는 말을 굳이 부연한 것으로 봐서 저의 추측은 확신할 만 합니다. 이런 그들은 물고기 한 마리에 울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인류의 구주요 스승이신 예수님의 도제(徒弟)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리하면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란 무엇입니까? 죄와 사망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건져내어 구원하는 자입니 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목자입니다. 하 나님의 말씀을 풀어 가르치는 성경 선생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 것은 고기를 더 잘 잡는 기술을 가르쳐 주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이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기 위함이십니다. 물 고기를 잘 잡는 어부도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삶은 자기와 가 족을 위한 좁은 테두리의 삶입니다. 모든 수고와 노력이 따져 보면 물질과 소유를 위한 것 입니다. 이런 삶은 성 실하게 살아도 자기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 의 영혼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살다가 죽어 한 줌 의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할 때 그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직업들 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사람의 존재 문제를 다루거나, 죄와 죽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사람 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은 다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인간의 존재 문제를 다 룹니다. 죄와 죽음의 근본 문제를 다룹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합니다. 자기 도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으로 의미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시몬과 안드레를 예수님의 인격과 내면성을 닮은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심정과 믿음을 가진 '작은 예수'로 빚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과거에 그들의 관심과 목적은 물질과 소유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을 섬기는 자로 빚어 주시겠다고 하 십니다. 고기 잡는 기술은 그의 인격과 내면이 야 어찌되었든 바다에서 한 30년 살다 보면 일류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을 낚 는 어부는 기술자가 아닙니다. 사람의 존재 자체가 변화되어 사람을 낚을 수 있 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 다. 이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어떻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 를 따라 오너라" 예수님을 따르라 고 하십니다. 예수님께 온 관심을 집중시키고 믿고 배우고 본받으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잘 받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양들을 돕다가 예수님을 놓치면 양 만 따라 다니는 자가 되 기 쉽습니다. 발이 닳도록 캠퍼스를 오르내리지만 양들 은 그물을 피해 요리 조리 빠져나갑니다. 몇 년을 경험을 쌓아도 예수님을 배 우지 않으면 늘 빈 그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지치고 바닥나게 됩니다. 예 수님은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님을 믿고 따르면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새롭 게 빚으시고 사람을 낚는 목자 로 쓰십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뱃사람으로 일생을 살 분을 예수님의 형상을 가 진 인류의 스승이 되게 하시다니! 이것은 재창조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부르 심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예수 님의 부르심은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예 수님의 부르심은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바로 잡아 줍니다. 그러므로 예수 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가장 가치 있는 일이며, 그 자체가 말할 수 없는 축 복입니다. 본 훼퍼는 '부르심은 곧 은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75세의 평범한 할아버지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 음으로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양치던 목동 다윗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으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었습니 다. 시몬과 안 드레도 갈릴리 바다에서 일생 동안 고기잡이를 하다가 이름 없이 사라질 사람 들이었는데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음으로 초대 교회의 목자요 인류의 스승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던 산골에서 태 어나 욕심을 좇아 수고 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열매도 없이 죽고 심판을 받을 자였는데 예수님 의 부르심을 받음으로 세계 캠퍼스를 다니며 복음을 증거하는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선교사로 파송받는 김안 나 목자는 평범한 한국의 딸이 었으나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한양대 목자로 열매맺고 이제는 미국 대학생들 의 목자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윤성한 목자는 윤씨 가문의 종손으로 살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한양대생들의 목자요 장차 세계 캠 퍼스 지성인들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오진수 형제는 제주 시골에서 원주 민으로 태어나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 수밖에 없었으나 1학년 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 아 장차 교수 목자요 세계 지성인들을 섬기는 위대한 인생의 길에 접어들었습 니다. 와!! 여러분,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총을 생 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참으로 복받은 자들입니다. 어부들을 부르셔서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시는 예수님은 소망의 예수님이십 니다. 이 예수님은 마치 통나무를 깎아 위대한 예술품으로 만드시는 위대한 조 각가요 예술가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을 위대한 인물로 빚으시는 위대한 도편수요, 창조의 주님이시요, 참 목자이십니다. 18절을 봅시다.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 시몬과 안드레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고 순종했습니 다.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일도 만나고 고생도 했으나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랬을 때 예 수님은 약속 대로 이들을 3년 반동안 돌보시고 도우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들이 되게 하셨습 니다. 예수님의 약속 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르면 누구나 이들처 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9,20절을 봅시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 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 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데를 삯 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예수님은 시몬과 안드레를 데리고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을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이들은 시 몬과 안드레와 같은 어부들이었으나 자가용 배와 삯군들 을 가진 부잣집 아들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배와 부친과 삯군들을 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즉시 결단하고 예수님을 따른 것을 보면 부유한 중산층 자녀들이었으나 내면은 더욱 공허하고 허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날마다 반복되는 고기잡이 생활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뭔 가 의미 있는 삶을 찾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셨을 때 결 단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 수님은 많은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이들 의 주요 상급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대한 목자들이 요 인류의 스 승들로 키우셨습니다. II. 말씀의 권세자 예수님 (21-28) 21절을 봅시다.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 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 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예수님은 네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가버나움으로 들 어가셨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서쪽 해안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였 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을 갈릴리 복음 역사의 센타로 삼으셨습니다. 안식일이 되었습니 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규 례를 지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 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셨습니다. 이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2절을 봅시다. "뭇사람들이 그의 교훈 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뭇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여기 서 '놀랐다' 는 단어는 '놀라움과 경이로 가득 찼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시제로 미완료형입 니다. 사람들은 한동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혹은 한대 맞아 정신이 얼얼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마가는 그들이 이렇게 놀란 이유를 예수님께서 권세 있는 자와 같이 가르쳤 고,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같지 않 았기 때문이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권세'란 초자연적 지식과 능력이 결합된 힘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심 령을 움직였습니다. 마가가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고 한 말 은 서기관들의 가르 침에는 권세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왜 서기관들의 가르침에 는 권세가 없었을까요? 서기관들은 율법조문과 장로 들의 유전을 가르쳤습니다. 학자들의 학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애정 과 상 한 심정이 부족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의 삶은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 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권능을 덧입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의 가르침에는 권세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고, 믿음을 북돋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은 삶이 뒷받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의 내면의 고통과 상처를 깊이 이해하셨 고, 이들을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 의 권능을 덧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었습니 다. 영적 권세 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23,24절을 봅시다.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 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 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 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 다." 예수 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들린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더 러운 귀신'은 악령입니다. 그가 '우리'라는 복수를 쓰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악령은 여러 마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악령'의 정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악령은 '더러운 귀신'입니다. 그래서 악령은 더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악령은 평소에는 잠잠하 다가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자 발악을 했습니다. 악령은 하나님의 말 씀을 싫 어합니다. 악령은 복음 역사를 방해합니다. 악령은 '나사렛 예수여, 우리를 내버 려 둬! 우리가 당신과 무 엇을 해야 된단 말이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악 령은 예수님을 싫어하고 예수님과 관계성을 맺지 않으려 합 니다. 또한 악령은 '당신이 우리를 멸하러 왔어?'라고 말했습니다. 악령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두 려워합니다. 오늘날 기계 문명의 발달로 인해 세상이 규격화되며 삭막해져 갑니다. 꼭 이 런 이유만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인간성이 파괴되고 악령에 들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을지라도 악령의 영향 력에 이끌 려 더러운 것을 좋아하고 육신의 정욕을 좇아 행하는 자들이 많아집니다. 엊그 제는 한 청년이 사람들 이 지켜보는 앞에서 강간을 하여 구속된 일이 있습니다. 또 어떤 대학에서는 신입생 M.T.에서 신입생에게 억지 로 폭탄주를 마시게 하 여 신입생 한 명이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악령의 영향력 아래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 씀 듣기를 거부합니다. 예수님과 관계성을 맺는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가 양들을 도울 때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보다도 그 배후에 있는 악령의 세력을 보고, 악령과 싸워서 사람을 구원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어쩌다가 악령에 사로잡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악한 영에 사로잡혀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매우 불행했습니다. 그는 고 귀한 생명과 인격을 가졌으나 악령으로 말미암아 이를 말살 당하 고 자기 인생 을 꽃피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5,26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 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 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 며 나오는지라." 예수님은 그 사람과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는 악령 을 구별하 여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는 악령을 꾸짖으셨습니다. 예 수님은 악령을 향해 분 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더러 운 귀신이 그 사람 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악령은 쫓겨나면서도 그 사람을 해치고자 발 악을 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악령을 제어하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 나님의 말씀은 악령을 제어합니다. 27절을 봅시다.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정신이 얼얼했습니다. 서로 쳐다보 며 질문했습니다. '이게 뭔 일이 담?'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 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이 사건을 통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의 권세에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평범한 선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 터 권세를 받으신 분이 심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 니다. 또한 그들은 사람 낚는 어부가 무슨 일을 해야 되는가를 배웠을 것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는 하나님의 말씀 으로 악령에 시달리는 양들을 구원해 내고 살 리고 치료하는 목자임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들은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에서 도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를 덧입은 말씀의 종들이 되어야 함을 어렴풋이 나마 깨달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습니다(28).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갈릴리 어부들을 사람 낚는 어부들로 부르셨습니다. "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께 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예 수님을 따 라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같이 문제의식과 방향을 가지고 사람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메모 :
'신약 > 마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마가복음 - 서론 (0) | 2015.02.09 |
---|---|
[스크랩] 마가복음 전체 요약(1-16장) (0) | 2015.02.09 |
[스크랩] 나를 따라 오너라(막1:16-20) (0) | 2015.02.09 |
[스크랩] 복음을 믿어라(막1:1-15) (0) | 2015.02.09 |
[스크랩] 마가복음을 고난의 복음이라고 하는 이유 (0) | 2015.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