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 오너라
- 강가를 지나 내륙쪽으로 걸어들어가면 석회질의 황량한 민둥산과 인적이 전혀없는 광야가 나타났습니다. 썰렁한 광야 독사와 전갈과 사나운 짐승이 무섭게 움직이는 땅, 예수님은 세례를 받은신 후에 그 광야로 들어가셨습니다. 밤에는 무서운 추위로 온 몸이 얼어붙고 낮에는 가슴가까이 뜬 태양의 빛으로, 더위로 기진하게 만드는 그땅에서 40주야을 금식하며 지냈습니다.
어떤 인간도 흉내낼 수 없는 빈곤함, 결핍과 눈물과 고통, 그것은 십자가의준비였습니다. 신성의 모든 능력은 감추어진채 인간들을 사랑하는 참된 고통의 인내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40일을 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 아 ! 광야 ! 광야 ! 광야 !
이렇게 광야에서 40일을 지내신후 다시 돌아간곳은 갈릴리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맨처음 가셨던 곳은 그가 나셨던 나사렛이란 동리였읍니다 나사렛의 회당에서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 "(누가복음 4:16-19)그러나 고향 나사렛은 주님을 반겨하지 않았습니다.이처럼 그에대한 배척은 가장가까운 나사렛에서부터 시작된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회당을 다니시면서말씀을 전하시고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시며 다니시던 예수는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씻고있던 어부시몬 베드로, 아드레, 야고보, 요한들을 만납니다 그리고그들을 부르십니다. 예수의 부르심은 간단하였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하리라"(마가복음 1:17)
말씀
본문말씀:막 1:16-20
중심말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1:17)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당신의 제자들을 찾으셨고 오늘본문의 말씀처럼 어부들, 세리, 열심당원들을 제자들로 부르셨습니다. 대체적 으로 예수의 부름받은 제자들은 불학무식한 자들이었고 그 당시의 귀족계층이아닌 평민이거나 멸시받는 세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질문한 내용이지만 왜 주님께서 그와 같은 이들을 제자로부르셨읍니까?
고전 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하나님께서 세 상의 미련한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하심이라
놀라운 광경이 해변가에서 일어납니다. 예수가 부를 때마다 취하는 그들의응답모습입니다. 그들은 어떤 태도로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나요? 즉시 응답했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마가복음 1: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
그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세상의 관심사, 세상일을 다 포기하고 주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마가복음 1:18-20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포기한 내용이 무엇인지 적어보세요)
오는 우리가 이 말씀에서 느끼는 또하나의 놀라운 일은 과연 갈릴리 해변가에 과연 이들 어부만 있었을까하는 점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어부들이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그들만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응담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고 모든 근심과 것정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가질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가리켜 키에르케고르란 철학자는 "죽음을 향한 존재" 란 표현을 씁니다. 사실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볼때 그 모습은 이런 표현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베드로후서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웨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 하며 시편 82:7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같이 엎더지리로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부르고 찾고 믿음으로 모든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여전히 근심의 구름과 믿음의 확신이 없었으므로 늘불안함을 느낍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 위로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늘 평안과 소망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예레미야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참된 평안과 소망을 얻으려 한다면 매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욥기 37:2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성경은 우리의 모슴을 양으로 표현하는데 양들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즉대에게 혹은 골짜기 가시덤불, 웅덩이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인도롤 따르지 않는다면 그 삶은 참으로 "죽음을 향한 존재"의 삶에서 벗어날수 없을것입니다.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따르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사도행전 28: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왜 그럴까요?
주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까닭은 기도하며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 다.
즉 주님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거시은 교만함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주님께 고백하지 아니하는 모습으로는 결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선 구하는 자에게 이미 채워질 준비가 다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께 구한다는 것은 그 분이 가득 채워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편 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즉시 응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기다리며 간구하는 자에게 역사하는데 그것을 깨닺지 못하는것은 즉시 응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갈릴리 해변의 많은 사람들중에서 유독 오늘 4명의 어부들만이 제자가 된 이유는 그들이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리고 그들만이 즉시 응답했기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쫓았습니다. 세상적인 방법, 지혜들을 버리고 쫓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응답지 못하는 까닭은 이들과 달리 우리의 경헙, 지혜 지식, 방법을 더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구할때 그것은 참으로 빈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기대함으로, 사모함으로 우리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며불 확실한 삶을, 죽음을 향한 삶을 멈추고 확신, 소망, 영생의 삶으로 나갈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묵상해 적어 보세요)
오늘 내가 예수를 전적으로 신앙하지 못하게 막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예수님보다 내게 더 귀중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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