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절 3.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이 이렇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해도 되는가? 믿는다고 다 그렇게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은 더 비참하게 죽게 되는데 그의 죽음을 예표하고 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책임지겠다고 외쳤던 유대인들이 비참한 신세가 되듯이 요한을 불법적으로 처형한 헤롯과 헤로디아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4. 헤롯이 두려워한 것 세 가지는? 1) 민중 2) 자신의 권위 손상 3) 요한 5. 헤롯은 결코 세례 요한을 처형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원하지 않는 일을 행하고 두려워했는가? 자신의 호언 때문에 6. 요한의 죽음에 대하여 아무 반응도 없으신 예수님이 다른 지방으로 가셔서 기적을 행하셨다. 그 정도의 능력이라면 요한처럼 용감하게 헤롯의 비리에 대하여 저항하거나 따르는 민중을 지휘하여 헤롯을 몰아낼 수는 없는 것일까? 멋진 예수라고 인기가 팍 오를텐데.....? 정치적 메시아가 아닌 예수님으로서는 갈 길이 따로 있었다. 7. 베드로도 물위를 걸었나? 그런데 왜 빠졌나요? 조금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이 걸었을 텐데); 8. 예수님은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 주시곤 하셨는 데 본문에서는 좀 다르다. 불쌍히 여겨서 9.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과학을 과신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됐다. 그 합리적인(이성적인) 사고가 가끔 기독교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인간이 생각하는 합리성을 뛰어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1) 무리를 보내어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0. 이렇게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제자들이 본격적으로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변한 것은 오순절 이후 성령을 받고 난 후부터다. 구걸하고 있는 앉은뱅이 거지에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일어나 걸어라라고 명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된다. 그러나 부분적이고 불완전하지만 본문에서도 이렇게 비합리적인(말도 안되 는) 모습이 있기는 하다. 어디에?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28) 11. 과학적이고 동시에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에게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온 인류를 위하여 자기 한 몸을 드리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12. 五餠二魚의 기적 후에 예수님은 급히 제자들을 호수를 건너 가게하고 무리들을 보내는 일을 서두른다. 1) 요한이 죽고 난 후에 방황하던 백성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왕을 삼을 생각이 있었을 것, 13.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죽을 고생을 하고 있음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 그 고생을 시키는 것은 무슨 악취미 때문일까? 시련의 기간을 지나서 믿음은 완성된다. (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
'신약 > 마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마태복음 16 장 강해 (0) | 2015.02.09 |
---|---|
[스크랩] 마태복음 15 장 강해 (0) | 2015.02.09 |
[스크랩] 마태복음 13 장 강해 (0) | 2015.02.09 |
[스크랩] 마태복음 12 장 강해 (0) | 2015.02.09 |
[스크랩] 마태복음 11 장 강해 (0) | 2015.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