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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스가랴

[스크랩] 스가랴 9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23:57

스가랴 9장 주석

 

  슥 9:1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

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 - 여기 "경고"라는 말은, 히브리 원

어로 맛사니 짐(burden)이란 뜻이다.  이것은 이 예언의 상대자가 아주  망하게 될 것

을 가리키는 무거운 말씀임을 보여준다.  "하드락"은 수리아의 지명 혹은 수리아 나라

를 가리킨다.  "다메섹"도 역시 수리아에 속한다.  이 경고가 거기에 머무른다 함은,

수리아 나라가 아주 망하기까지 그 경고의 내용이 실시될 것을 가리킨다.  "세상 사람

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본다" 함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

함을 의미한다고 한다(Calvin).  이 해석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회개하기 때문에  하나

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 수리아와 기타 나라들을 멸망시키게 된다는 뜻이다. 일설에,

여기 "세상 사람"이란 것은 모든 다른 나라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수리아와 같은 이스

라엘의 적국들이 멸망하는 동시에 장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 이방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을 여기서 예언한다고 한다.

  본절에 예언된 수리아의 멸망은, 이 아래(2-5절) 두로와 시돈과 불레셋과 함께 주전

332년 경에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으로 말미암아 실현되었다.




  슥 9:2-4


  그 접경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 에게도 임하

리라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 같

이 쌓았은즉 주께서 그를 쫓아 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찌

라 - 이 귀절들은 하맛에 대한 멸망 경고를 주었으니, "하맛"도 멸망에 속한 지방으로

서 칼빈(Calvin)은 이것을 안디옥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 귀절들이 두

로와 시돈에 대한 멸망 경고를 주었으니 이 두 도시는 베니게에 속한다.

  "두로"는, 비록 작은 섬이지만 150영척이나 높은 성으로 방위되어 있어서  앗수로의

살만에셀왕이 5년 동안 아무 성공도 없이 포위하였던 일이       있고,  느부갓네살은 13년

동안 그것을 포위하였으나 정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후에 이 예언대로 헬라의 알렉

산더 대왕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였다.  두로가 "보장을 건축하"였다 함은, 요새를 건축

하였다는 뜻이다.  두로는, 해상 무역을 통하여 많은 재물을  모았으며 권세를 잡았으

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므로 필경은 멸망하고 말았다.  두로가 멸망할 때에(알렉산더

로 말미암아) 6,7천명이 학살당했고, 2천명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3만명이 노예로 팔

려 갔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재물과 지형(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서 성까지 소유하

였던 요새)을 믿는 자는 필경 저렇게 비참하게 망하였다.




  슥 9:5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

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 여기 이른바 "아스글론"은 불레셋 나라의 도시들이다.  이 도시들이  망하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는 이유는, 이제부터는 전화가 자기들에게 미칠 차서였기 때문이다

.  그들이 실상 순망치한의 위험을 느꼈던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공포심을  가졌던

것과 같이 사실상 멸망의 자리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어

질 정도였다.  과연 후일에 알렉산더 대왕이 불레셋을 칠 때에 가사에  있었던 임금을

사로잡아 갔고 백성들을 많이 치워버리고 다른 나라사람들을 그곳으로 이민하였다(Pu

-sey).




  슥 9:6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불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 여기 이른바 "잡족

"이라는 말은, 타국인을 의미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 예언과 같이 타국인들을 불레

셋에 많이 거주시켰다.  "불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는다 함은, 그 족속이 일찌기 이스

라엘을 많이 괴롭게 하므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의 죄가 많았음을 암시한다.  이제

그 민족이 자랑하던 나라가 무너짐에 따라 그들은 수그러지게 되었다.  하나님 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복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먼저 그들의 교만을 꺾으신다.




  슥 9:7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중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

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

이 귀절은, 위에 말한 것과 같이,  교만이 꺾이운 불레셋 사람들도 필경 복음을  받아

하나님 백성에 참여할 것을 예언한다.  "그 입에서 그 피를...제"한다 함은,  다른 민

족을 착취하는 죄를 다시 범치 않도록 함이고, "그 잇사이에서 그 가중한 것을 제" 함

은, 가중스러운 우상의 제물 같은 것을 먹는 악습을 버리도록 함이다.  그들이 복음을

받을 때에 이와 같이 된다.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된"다 함은, 그들이  복음을  믿어

유다의 어떤 높은 지도자처럼 하나님의 총애를 받을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부스

사람 같이 된"다 함은 그들이 복음을 믿어 하나님 백성 가운데 참여하기를  옛날에 다

윗의 정복을 당한 여부스 사람들이 이스라엘 나라에 귀화한 것 같이 될 것을 예언한다

(삼하 24:16; 대상 21:15).




  슥 9:8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 이 귀절

은, 이스라엘의 적국들은 멸망을 당해도 이스라엘 나라만은 그 때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안전할 것을 예언한다.  여기 이른바 "내 집"이라는 것은, 하나님 백성 곧, 이스

라엘 나라를 의미한다.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고 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억울함(열국으로 말미암아 받은 억울함)을 친히 보셨기  때문에

이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겠다는 뜻이다.

  이 귀절은, 실제로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하던 때에 유대 나라만은 그 침략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성취를 본 것이다.  요세보 사기에 말하기를,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

부근에 침입할 때에, 대제사장은 예복을 입고 많은 제사장 앞에서 알렉산더를 표시 하

는 예언을 왕에게 들려주므로 왕은 감동되어 예루살렘을 침해하지 않고 유대인에게 특

전을 주었다"고 하니, 이 귀절은 예언은 알렉산더 대왕의 한 일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

이 분명하다(W.C. Erdman).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 여기 와서는 선지자가 신약 시대를 성립시키는 메시야의 내림을

예언한다.

  여기 이른바 "시온의 딸"은 딸 같은 시온 곧, 약소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킨

다.  "예루살렘의 딸"이라는 말도 역시 같은 것이다.  "네 왕"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

를 가리킨다.  "그는 공의로우며".  이것은 메시야께서 그 백성을 원수들의 무리한 침

략 하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필경 공의를 발동해서 구원하여 주심을 의미 한다.   이

공의는 실제에 있어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히우는 데까지 낮추사 그 백성의 죄 값을

담당하시므로 성립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라는 말씀이

따른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왕이시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겸

손한데 떨어지므로 그 백성을 구원하신 겸손의 왕이시다.  "나귀 새끼" 를 타신  것은

그의 겸비의 극치를 의미하는 참된 왕의 덕을 상징한다.  마 12:17-21 참조.




  슥 9: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

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

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 이 말씀은, 메시야께서 초림하신 때부터  이루어지기 시작

한 것인데 그것이 완성되기는 대종말 때 곧, 그리스도 재림시에 이르러서야 될 일이다

.  사 2:4, 9:4-6; 시 115:9 참조.

   그 뿐 아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왕국은 폭력으로 성립될 것이 아니고 다만 고

요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 갈 것을 보여주며, 또한 그 나라는 어떤 한 민족에 국

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적이고, 또 무궁할 것을 보여준다.




  슥 9:11


   또 너로 말할 찐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없는  구덩이

에서 놓았나니 - "너"라는 말은 유대 백성을 가리킨다. 위 절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

계에 전파될 것을 결론 하였는데 여기서부터는 유대 나라가 앞으로 당할 일에  대하여

특별히 말하고 있다.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계약하신 사실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이 언약은 장차  올  신약시대의

새 언약의 예표라고도 할 수 있으나 유대 민족에게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하

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기억하시고 유대 민족을  돌아보시며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말하기를, 내가 너희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

았나니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때에도 아직 바벧론에 남아 있는 유대인 포로

들을 해방시키실 것을 예언한다. 물 없는 구덩이는 유대인에게 대하여 소망 없는 바벧

론을 비유한다. 이 말씀은, 아직소수로 돌아와 있는 유대인들에게 위로와 힘을 준다.




 슥 9;12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 찌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

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 소망을 품은 이라는 말은 바벧론에서 유대로  돌아

올 소망을 품었다는 뜻이다. 보장은, 요새를 의미하는 것인데 실상은 하나님을 비유하

는 것이다. 그 때에 유대는 말할 수없이 빈약한 사정하에 있었으나. 그곳을       보장이라

고 하는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신 까닭이겠다.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는

것은, 앞으로 유대인들에게 주실 축복이 풍부할 것을 의미한 것 뿐이다.




  슥 9:13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 많은  주석가

들은 이 귀절부터 유대 나라가 유다 마카비의 지도하에서 헬라의  실루시대의  왕조를

승리할 일에 대한 예언이라고 한다. 여기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이것은 전혀 그 전쟁의 힘이 여호와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다

윗에게 힘을 주시어 골리앗을 이기게 한 것과 같이 그가 미약한 자들에게 힘을 주시어

승전케 하시는 일은 역사상에 종종 나타났다. 한가지 실례를 들면, 그가 기드온의  삼

백명을 통하여 미디아의 큰 군대를 이긴 것과 같은 것이다.




  슥 9:14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다 - 이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위하여 친히 그 권능으로써 전재하여주실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다. 하나님의 위엄을

묘사하기 위하여 여기서 그의 동작이 번개, 회리바람 같은 현상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나팔을 분'다고한 것은 그 원수들을 두렵게 한 것이다. 어쨌든 이  표현은  대종말에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원수를 남김 없이 정복 하실 위세를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행

동은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이든지 전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든지 그 성질과 이법은 동일

하다.




  슥 9:15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멧돌을 밟을  것

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

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다 - 윗말에 계속하여 원수들에게  대

한 유대인의 승리를 진술함. '원수를 삼킨'다 함은 이긴다는 뜻, '물맷돌을 밟'는  것

은 원수들의 사격앞에서 두려움 없이 전격하여 용이하게 승리를 걷울 것을  가리킨다.

'피를 마심'은 승리를 비유, '즐거이 부른다'는 모든 승리 표시의 행동이  방종스러운

것이 아니고 조심스러이 하나님 앞에서 가져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백성들이

이 땅 위에서 이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의 주시는 승리를 걷우는 일이 많지는 않다. 그

이유는 영적승리가 유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표본으로서 어떤  때에       세상일에

있어서도 승리를 걷우는 일이 있다. 그건, 무척 경건 하게 싸워 나가는 중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어지는 일인고로 그 승리에 대한 그의 희열도 경건되이 하나님 앞에  있다

는 의식으로 행하여진다.




 슥 9:16


  이 날에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

들이 면류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양떼

같이 구원하심은 자력으로 자기를 방위할 수 없는 양과 같은 자들을 오직 그의 능력으

로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한다. 그들이 전적으로 그들의 무능을 깨닫고

하나님을 목자와 같이 볼 때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그들을 돌보신다. 그들은 왕의  면

류관에 보석이 빛남과 같이 하나님의 왕권을 빛낸다. 곧, 하나님은 다스리고  저들은

다스림을 받는 관계가 드러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세계에 언제나  나타나

는 현상이다.




  슥 9:17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하리로다 - 이는 윗절에 대한 결론이다. 은혜를 받는 이스라엘의  아

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그들이 저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결과로 곡시과 새 포도주

로 풍성하였다. 구약에서는 신령한 은혜를 이런 물질적 부요로써 비유하기도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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