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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스가랴

[스크랩] 스가랴 7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23:57

스가랴 7장 주석

 

  슥 7:1


  다리오 왕 사년 구월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

다리오는 바사 왕이니 고레스의 장인 다리오가 아니고, 히스타스페스(Hystaspes)의 아

들 다리오이다. 여기 "기슬래월"은  유대 성력대로 9월 달의 이름이니(우리 본문에도

구월 곧, 기슬래월이라 했음), 그것은 양력 11월에 해당한다.  그 달 "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 였다고 한 것은,  또다시 하나님의 계시가 역사성 있게 임한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일자까지 자세히 기록 함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선지자에게

임할 때에 막연하게 나타난 것도 아니고, 또 그것을 전달하는 선지자도 막연하게 말하

지 않는다.  인간의 분명치 않은 사상으로 꾸며 놓은 공환은, 시대적으로 일정한 역사

적 기원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그 역사성을 생명으로 가지

는 것이다.




  슥 7:2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종자를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 여기 "벧엘 사람"이라는 것은, 바벧론에서 돌아온 벧엘 사람인데 스 2:28을 보면 그

때에 벧엘과 아이 사람이 223명이나 돌아왔다고 한다.  칼빈(Calvin)은 여기 벧엘이라

는 말을 자역하여 "하나님의 집"이라 하고 생각하기를, 여기서  바벧론에 아직 머물러

있는 유대인들이 사람들(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 수종자) 을 유대 성전에 보내어 금식

문제를 물어본 것이라고 하였다. "사레셀"은 앗수르풍의 이름이니(사 37:38; 렘 39:

3,13), 아마 그가 바벧론에서 출생 하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받은 듯하다.  그리고

"레겜멜렉"은 팔레스틴에 속하는 이름 으로서 팔레스틴 출생을 보여준다(대상 2:47).

"그 종자"라는 것은 그들의 수종자를 의미한다.  "여호와께 은혜를 구"한다 함은, 3절

이 설명하여 주는데 곧,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금식 문제에 대한 여호와의 해

답을 구함이다. 그들이 바벧론에 포로되었던 동안에 선지자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

었으나(시 74:9), 이제 바벧론에서 해방되는 때를 당하여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 말

씀을 듣게 된 것은 가장 큰 위로의 은혜이다(사 40:1).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

는 것은 하나님 백성에게 있어서 큰 은혜이다.





  슥 7:3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월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하매 - 여기 이른바 "오월간에 울며 재

계"한다 함은, 제 오월에 성전 훼파의 사건을  기념하여 바벧론에서  애통하며 금식한

사실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이 이제 바벧론에서 해방되어서 성전을       재건하는 중에 있

으니 아직 바벧론에 머물러 있는 자들로서 그 같은 금식을 앞으로도 계속 하여야 될런

지가 문제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주신 해방의 은혜를 받아 순종하지 않고 (다시 말하

면,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거기 머물러  앉아서 이런 금식 문제 같은  것을 가지고

논란하고 있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순종하는 것보다 사람이  만든 규

례를 숭상하는데 치중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들의 종교 생활이 얼마나 어두워진 것을

알 수 있다.




  슥 7:4,5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 들에게 이르

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 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

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 여기 이른바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함은

, 금식 문제에 대하여 유대 민족 전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지적 하려 함이다.

그 잘못된 생각은 이렇다.  곧, 외부적 의식 문제를 영적 생명이나 또는 하나님의 도

덕적 의지보다 중대시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사리의 경중을 구분할줄 모르는  잘못이

다.  사리의 경중을 구분하지 않고 경미한 것을  취하느라고 중대한 것을 희생 시키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 그 경미한 것도 바로 취해지지 않는 것이다.  비유를 들면, 가죽

보다 살이 중요한데 살을 손상시키면서 어떻게 가죽을 올바로 보호할 수  있을까?  그

러므로 주님께서도, 종교 사리의 경중을 바로 구분하지 아니하고 행동하는  자들을 꾸

짖어 말씀하시기를,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라고 하셨다(마23:24).

"오월과 칠월에 금식"은 위에 벌써 말한 바와 같이, "오월 금식"은, 성전 훼파의 사건

을 기념하기 위하여 바벧론에 잡혀 간 유대인 포로들이 금식한 것이고, "칠월 금식"은

, 바벧론 군대로 말미암아 유대 총독 그달리야와 및 유대 땅에 남아 있었던       유대인들

의 살해된 사건을 기념 하느라고 금식한 것을  가리킨다(왕하 25:25, 26; 렘 41:1-).

유대인들이 바벧론에 칠십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는 중 이런  금식일들을 정하고 행하

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기도하기 위함보다 다

만 저들의 민족적 사정이 애달퍼서 그 금식을 통하여 비애를 표시하였던 것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금식을 자기들이 하나님앞에 설 수 있는 공로와 같이도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 종류의 금식은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금식은

공로도 아니며 그 누구의 비참한 처지를 애처롭게 여겨서 동정하는 행위도 아니다.

금식은 하나님을 향하여 회개함과 기도하기 위함이니 어디까디든지 자기와 및 기타 인

간적 요소를 기껏 낮춤이다.  그러나 그 때 유대인들은 벌써 위에 말한 바와 같이 그

릇되이 금식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기서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라고 하셨다.  여기 두 번씩이나 "나를 위하여"라는 말씀이 나왔으니 이 중

언체는 역설체이다.  곧, 그들의 금식이 주님을 위하지 않은 것이 확실한 것을 힘있게

지적하는 것이다.  금식을 하는 자가 그것을 하나님의 도덕적 의지에 대한 순종보다

더욱 존중시하여 그것으로써 진정한 종교 생활의 내용을 대표할 것처럼 생각하거나,

혹은 그것을 공로로 내세운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 아니다.




  슥 7:6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

그 때 유대인들은, 그들의 얼마 동안의 금식이 그들의 다른 때의  모든 불의한 생활을

칭의해 줄것처럼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금식하지 않는 때  곧,  먹고

마실 때에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였던 것이다.  진정한 금식자는 그  금

식을 공로로 알지 않기 때문에 금식하지 않는(곧, 먹고 마시는) 때에도 금식하는 때와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가지도록  된다(고전 10:31).  그러나 그

때의 유대인들은 먹으며 마시는 생활(곧, 금식하지 않는 때의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

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몇 번 금식하므로써 공로를 삼아 장구한 세월의 불

의한 생활이 괜찮은 줄 알았다.  금식한 결과로 그 뒤를 따르는 생활은, 하나님의  말

씀을 순종하는 생활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슥 7:7


  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 때에는 예루살렘

과 사면 옵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었느니라 - 하

나님께서 여기서 진정한 종교 생활의 요점은, 금식이 아니고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

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여부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부터 실례를  들어 이 사

실을 설명한다. 곧, 선지자들이 예루살렘 멸망 전에(다시 말하면, 예루살렘과 그 주

위의 모든 지방의 백성들이 잘 살고 있던 때) 하나님 말씀을 주셨던 것인데,  그 때에

그들이 순종하였더라면 바벧론에 잡혀 가지 않았을 번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필경 하나님의 예고대로 바벧론으로 잡혀 간 것이

다.  이 사실은 8절에서 14절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잘못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말씀을 주신 것은 얼마나 큰 사

랑인가!  (1)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는 사랑은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캄캄한  세상에

서 생명 길을 밝히 보고 가도록 하신 것이고, (2) 장래의 멸망 위험을  면하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말씀을 주시되  막연하게 주신 것이 아니고  누구나

깨달을 수 있게 주셨으니 누구든지 핑계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

여 그는 말씀하시기를,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이라고  하신다.  여기  "외친"이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에 카라라고 하였으니 곧, 선포 혹은 부르짖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충만한 내용을 가지고 힘껏 말한 것을 이름이다.  이와 같이 밝히 나타낸 말씀 앞에서

도 계속적으로 멸망 길을 가는 자는 핑계할 말이 전연 없을 것이다.




  슥 7:8-10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

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

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 여

기 이른바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이라고 한 것은, 유대인들이  바벧론에 의하여 망하

기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스가랴가 하나님의 말씀(9,10절)을 이 아래 인용하는 것은, 그의 시대의  사람들도 그

것을 순종하여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암시한다.  7절 참조.  하나님의 도덕적  의지를

가리키는 말씀은 어느 시대에나 변치 아니하고 계속적으로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임한다

.

  하나님께서 금식 문제로 물어보는 유대인들에게 이 아래 역설하시는 말씀은, 하나님

에게 대하여 직접 행할 계명보다도 사람에게 대하여 옳게  행할 도덕을 보여 주신다.

그는 여기서 종교의 어떤 의식(예컨대 금식과 같은 것) 보다도 사람에게  대하여 옳은

도덕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표시한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과 관계 없는 인본주의

도덕을 관설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미에서 그의 명령  실천으로서 사람에게

대하여 옳게 행함을 말씀하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사람과

의 관계에 있어서 옳게 행해야 될 도덕이 강조되었다는 사실이다.  곧,  "너희는 진실

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는 것과 고독한 자를 "압제 하지 말"

라는 것과 "남들을 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훈을 볼 때 우리는 신본주의

종교가 사람에게 대한 사랑을 얼마나 심히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자들 중에는

, 신본주의 신앙을 강조하는 자들로서 사람에게 대한 공의와 사랑의 의무를       무관심하

게 생각하는 일이 종종 나타난다.  그것은, 심리적으로 그렇게 잘못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에 끌림이다.  신본주의는 하나님을 중심한다고 하니까, 그들은 하나님 중심,  하

나님 중심하면서 사람에게 대한 사랑을 주요시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

착이다.  신본주의는, 사람 사랑하는 것도 그 불가결의 표현으로 가진다(요일 4:20).

  "진실한 재판"이라는 것은 사실과 진상대로 바로 재판함을 의미하나니 곧, 공의이다

.  사람들이 남의 외모를 따라 그릇되이 판단하기 쉬우니, 예를 들면, 자기의  사랑하

는 자에게 대하여는 편견을 가지고 사정을 보아주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인애와 긍휼"은, 하나님께서 사람더러 행하라고  하시되

공의를 강조한 것 만치 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남들에게 인애와 긍휼을  행함

에 있어서 너무도 등한히 한다.  그들은 인애와 긍휼을 행할 책임감조차 명백히  가지

지 않는다.  그러나 공의(진실한 재판)만 있고 인애와 긍휼이 없으면  실상 사해와 같

은 사나운 사람이 되어진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는

것은, 고독한 자들을 억울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 나그네라는 것은,  외국 사

람을 의미하나니 성경에 외국인을 과부와 고아와 같은 부류에 넣어서  말씀한  귀절이

여러 곳에 있다.  신 24:17, 27:19; 레 19:10; 시 146:9; 레 19:33; 말 3:5 참조.  사

람들이 이런 고독한 자를 업신여기는 심정으로 홀대하기 쉬운 것이다.  그들에게 이런

자를 돌아볼만 한 힘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저렇게 업신여기는 심정이  앞서서 그만야

그들을 섭섭하게 한다.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고 한 말씀은, 행위

의 근거로서 심령을 중요시할 줄 모르고 나타난 것만을 간구할줄 아는  부패한 인생들

에게 필요한 경고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들의 마음 속에 있는 악독을  문제시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행동상 죄악보다 못하지 않게 크게 문제시하신다.

잠 16:2 참조.

  우리는 위의 몇 가지 도덕의 강조를 보아서 하나님 중심하는 신자들이  명심해야 될

것을 알게 되었다.  곧,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위주하는 신앙가라면, 사람들에게 대

하여(특별히 믿는 형제들에게 대하여) 착하게 행해야 될 사실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하여 엄격한 경건을 주장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대하여 몰인정하고, 사납고, 악독하

게 행하는 것은 진정한 경건이 아니다.  약 1:27 참조.




  슥 7:11,12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

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

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  바벧론으로 잡혀 가

기 전에 유대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이 귀절들은 자세하

게 진술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기 싫어하는 것은,  고금이 일반

이다.  암만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하나님 중심하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

면, 자기 자신에게 영광이 돌아가지 못할 일이라면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라       할지라도

행하기를 싫어하고 귀를 막는 태도를 가진다.  마음이 "금강석 같"다 함은, 그 심령이

부드럽지 못하고 굳어서(겔 3:9; 렘 17:1) 하나님 말씀에 대한 섭취력이 전연  없음을

이름이다.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  이 말씀은 선지자들의 가르친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전하여진 것임을 보여준다.  유대인들이 선지자들의 말씀을

순종치 않은 것은, 곧 바로 하나님의 성령을 반역함과 같았다.  그러므로 여호와 께서

진노하셨다.




  슥 7:1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

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 이 말씀은 응수식으로 표현되어서, 인간의 불의에 대한 하나

님의 보응이 어떻게 정확하게 또는 불가항적으로 임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그

들이 행한 대로 갚음을 받는다는 말씀으로써 그들의 망하는 책임이 그들  자신에게 있

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슥 7:14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

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 여기 "회리바람"은 그들이 막을 수 없는 환난을 의미하는바 곧,  바벧론으

로 사로잡혀 갈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은 하나님께

서 예고하신 바였다.  그 예고 대로 그들이 바벧론에  잡혀 갔고 그들의  국토는 아주

황무지가 되었다.

  여기서도 유대인들이 저렇게 비참스러워진 것이, 저들 자신의 자작지얼 곧,  자기들

이 만든 앙화라는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그들의 불회개가 그들을 그

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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