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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스바냐

[스크랩] 스바냐 3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23:52

스바냐 3장 주석

 

======3:1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 '성읍'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으나, 본절 이후에 '선지자','제사장','성소'등이 언

급되는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Smith, Von Orelli).  선

지자 스바냐는 예루살렘의 죄악에 대해 세 가지 수식어를 붙여 고발하고  있다.  첫째

로, '패역하고'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여 순종하기를 거부한 것을  의미한다

(2절). 둘째로, '더러운'이다. 이것은 이교도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의식적

인 불결을 나타낸다(4절). 예루살렘은 외부적으로 깨끗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적으로

매우 부패하였으며 부정하였다(Calvin). 셋째로, '포학한'이다. 이는 예루살렘에 거주

하는 백성들간의 관계를 나타낸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와 위치를  무시하고  광포하게

대하는 것을 뜻한다(3절). 예루살렘 거민들은 가나안 자들이나 과부들 혹은  고아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였다.



=======3:2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 예

루살렘의 대표적인 죄악은 패역이다. 그들은 삶속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듣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소유한 재물을 의지하였다(1:11). 또한 그들은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기를 거절하였으며 자신들의 생각과 방법대로 삶을  살아갔

다. 



=====3:3


 그 가운데 백방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 '방백들'은 모든 일을 정의와 공평으로  행

해야 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로, 귀족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잘

인도하기보다는 먹이를 찾아 부르짖는 사자처럼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

다.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이라는 표현은 재판장들이 갖고 있던 탐욕과 약탈성을 의미한다.

그들은 배를 곯은 짐승이 먹이를 남겨두지 않고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것처럼  불의한

재물을 축적하기 위해서 재판을 굽게 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3:4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 '경솔하고'는 악하고 방탕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삿 9:4). 또한 '간사한'은 신실하지 못

하고 거짓으로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Calvin).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들이며 오직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스바냐 당시 예루살렘  선지

자들은 간사하여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지 않고  오직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거짓 예언을 일삼았다.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 '성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데쉬'는 성소를 의미하기보다는 '거룩한 것'을 가리킨다. 제사장들은 제사  의식을

행함에 있어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여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바침으로 하나님을 모독하였다(Hitzig, Von Orelli). 또한 그들은 율법을 준수해야 하

는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나 행동, 곧 생활전반을 통해서 율법에 어긋나는  일들을

거침없이 행하였다.



======3:5


  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아침마다 간단(間斷)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

내시거늘 -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예외없이 불의를 행한 반면 여호와는 공의를  행하

신다. '아침마다 공의를 나타내시거늘'은 예루살렘의 재판장들이 먹이를 이튿날  아침

까지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3절). 더욱이 '아침마다'는 아침이  되

면 해가 어김없이 돋아 빛을 비추는 것처럼(호 6:3) 하나님께서는 변개함 없이 지속적

으로 공의를 행하심을 시사한다(Smith, L.L.Walker).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 '불의한 자'는 앞서 언급된 예루살렘의  지

도자들을 가리킨다(3,4절). 하나님께서는 아침마다 계속적으로 공의를 드러내시나  예

루살렘거민들은 완고하여서 자신들의 죄악과 수치를 깨닫지 못하였다(Lange).



======3:6

  

   내가 열국을 끊어 버렸으므로...그 모든 성읍이 황폐되며 사람이 없으며 거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 본절은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졌음을 예시적으로  보

여준다. 그러나 열국이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힘과 경제력을 믿고 교만해진 모든 열국들은(L.L.Walker)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음이 드러날 뿐이다.



======3:7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

니하리라 하였으나 - 본절은 하나님께서 열국을 심판하신 일을 예시하신(6절)  목적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열국을 심판하신 일을 설명하시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하

여금 죄로 인해 심판을 당한 열국을 보고 반성하여  돌아오도록  권고하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심판당한 열국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돌아서기를

간절히 원하셨다(Smith, Von Orelli). 그래서 만약 예루살렘이 돌아선다면 이미  심판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돌이키셔서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신다. 하

나님의 심판은 그 자체가 목적을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로  돌아서도

록 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들이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심판을 작정하신 것조차 변경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셨음에도 불구

하고, 예루살렘은 완고하여서 그 경고를 무시하고 더욱더 악을 행하기를 즐겨하였다.



=====3:8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  본절은  예루살렘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악을 즐겨 행하는 예

루살렘의 부패와 죄악 때문에 일어난 결과임을 언급한다. 한편 '나를 기다리라'는  명

령을 받는 '너희는'은 열국을 가리키는 듯 보이나 그럴 경우 앞절과의 문맥상 맞지 않

는다. 따라서 '너희는'은 예루살렘의 경건한 날은 자들이나(Lange,  Taylor,  Driver)

예루살렘 자신(Calvin)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나님은 자신의 권

고를 무시하고 악을 행하는 예루살렘에게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신다.

   내가 뜻을 정하고...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  '내

가 뜻을 정하고'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시사한다.  그

심판은 열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한편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는 하

나님의 우주적인 심판을 뜻한다(1:1-3). 심판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 죄를 얼마나 싫

어하시며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는가를 온 땅이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Von Orelli).



======3:9


  개역 성경에는 히브리어 '키'가 번역되어 있지 않다. 혹자는 '키'를 원인으로 해석

하여 '왜냐하면'으로 이해하나(Henderson), 본절의 '키'는 반의 접속사로 보아  '그러

나'로 해석하여야 한다(Calvin). 왜냐하면 앞절에서는 심판을 예고하는  반면  본절은

회복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 - '그 때에'는

앞절에서 언급된 심판 이후의 때를 가리킨다(L.L.Walker). 심판 이후에 벌어진 결과는

열방의 회개이다. '열방의 입술'은 하나님보다 우상을 찾으며 찬양하던 부정한 입술이

다(시 16:4).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그들의 부정한 입술을  정결케  하셨다.

이런 입술의 정화는 마음의 정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Keil). 그 결과는 두  가지이

다. 첫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우상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이름만을  부르

게 된다. 둘째는 하나님을 일심으로 섬기는 것이다. '일심으로'(쉐켐 에하드)는  문자

적으로 '한 어깨'를 가리킨다(Von Orelli). 이는 어깨를 맞대고 짐을  나르는  짐꾼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으로(L.L.Walker), 합심하여 하나님께 순종함을 뜻한다(Calvin).



======3:10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

지고 와서 내게 드릴지라 - '내게 구하는 백성들'과 '내가 흩은 자의 딸'은 동격으로,

돌아오는 이방열국을 가리키기보다는 유대인 중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내가 흩은 자의 딸'은 이방열국을 지칭할 수 없으며 오직 유다를 지칭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Calvin).  그들은 이방 국가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진실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다이다(Von Orelli). 그들은 이방 국가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진

실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다이다(Von Orelli). 여기서 본절을 이해하는 데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있다. (1)유다를 가리키는 '내게 구하는 백성들'과  '내가  흩은  자의

딸'을 목적격으로 이해하여 이방 열국들이 유다를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오는  것으로

해석한다(Keil). (2)'내게 구하는 백성들'과 '내가 흩은 자의 딸'을 주격으로  해석하

여 이방 열국에 흩어진 유다가  여호와께  돌아와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이해한다

(L.L.Walker, Von Orelli, Smith).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더 자연스럽다. 유다의 남

은 자들은 '구스', 곧 2:12에서 심판받을 것이라고 언급된 열국에서 돌아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할 것이다.



=====3:11

  그 때에 내가 너의 중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제하여 - 유다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포로 생활을 하며 이방인들로부터 수치와  멸시를  당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하시는 날에는 결코 죄로 인해서 수치를 당하지않

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변화시키며 교만한 자들을 제하여 버리실  것

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는 자신들을 높이며 즐거워하는 자들을

가리킨다(Henderson).유다의 남은 자들 중에는 결코 교만한 자들이 없을 것이며  오직

겸손한 자들만 남게 될 것이다.



=======3: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희중에 남겨두리니 - 본 구절은 앞절과 대조를  이

룬다. 돌아온 남은 자들은 교만한 자들이 아니라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다. 이것

은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Smith),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

들이 누려야 할 팔 복중에서 첫 번째와 동일하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은  심령

이 가난한 자들이었다(마 5:3).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의 구원 사상은  비단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많이 나타난다(시 22:26; 25:9; 69:33; 147:6; 사 11:4; 32:7;  암

2:7).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 본 구절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유다의 남은 자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

을 의탁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고, 하나님의  보호

를 기대하는 자들이었다(사 14:30).



======3:13


  이스라엘은 남은 자는...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 본절은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악행이나 죄를 범하는 말이나 궤휼한 혀가 있지 않다. 뿐만  아니

라 그들은 평안과 안전을 보장받게 된다. 여기서 '먹으며 누우나'(이레우 웨라베추)는

목축용어이다. 하나님은 유다의 남은 자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보호하시며 공급하실 것이다.



=====3:14


  시온의 딸아...이스라엘아...예루살렘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

'시온의 딸'과 '이스라엘', 그리고 '예루살렘 딸'은 모두 동격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L.L.Walker). 한편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는 승리의 확신에서 비

롯된 찬양이며, 기쁨에서 비롯된 외침이다(Calvin).



======3:15


   본절은 14절에 언급된 찬양의 이유이다. 그것은 모두 세 가지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심판을

거두셨다는 사실은 이미 그들의 죄악이 모두 사하여졌음을 시사한다. 남은 자들은  교

만한 자들이 아니라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을 떠나는  범

죄를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남은 자들에게는 더 이상 심판이 없게 될  것

이다.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 '너의 원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사

용하신 도구들이다. 이미 남은 자들은 범죄함과 형벌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심판

의 도구인 원수들, 곧 교만한 이방 열국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 이스라엘은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의 왕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시온

에 있는 그 보좌에서 왕노릇하실 것이다. 여호와는 남은 자들의 왕으로서 보호자가 되

신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악한 일이나 화나 재앙이나 두려워해야  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다.



======3:16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 '네손을 늘어뜨린다'라는 것은 절망이나 낙심하

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이다(삼하 4:1;  사  13:7;  렘  6:24;  히  12:12,  Calvin,

L.L.Walker). 남은 자들은 이제 절망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이미 지나갔으며 여호와께서 자신들의 왕이 되셔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

다.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 본 구

절은 남은 자들이 손을 늘어뜨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구원자되신 하나님께서 그들가운데  거하며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너를 보호하시

는 전사와 같은'(like warrior, to keep you safe, NEB), 혹은  '승리하시는  전사'(a

warrior who givesn victory, RSV)이며 (2) '승리한 전사'(victorious warrior,  JB).

혹은 '전능한 구원자'(mighty savior, NAB)이다. 결국 남은 자들과 함께 거하시는  여

호와는 승리하신 구원자이시며 전능하신 분이시라고 할 수 있다.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 본 구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뉜다.  KJV에서는

'그가 자신의 사랑안에서 안식하실 것이다'(he will rest in his love)라고  번역하였

으며, RSV에서는 '그가 자신의 사랑 안에서 너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he will  renew

you in his love)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사본에 따라 '잠잠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하리쉬'가 다른 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맛소라 본문에서는  '야하리쉬'를

그대로 사용하여 KJV처럼 '안식할 것이다'라는 의미로 보나, 다른  사본에서는  RSV가

따르는 것처럼 '하다쉬'(새롭게 하다)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굳이 RSV처럼  해석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맛소라 본문의 '야하리쉬'로 보아도 본 구절의 의미가  이어지

기 때문이다(L.L.Walker). 하나님은 남은 자들로 인해서 즐거워 하시며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안식하실 것이다.



==========3:18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  '대회'

(모에드)는 '초막절'만을 가리키기보다는(Lange) 예루살렘에 모여서 참예해야 했던 이

스라엘의 모든 절기를 가리킨다(J.Lewis, L.L.Walker). 그러나 이방 열국에  흩어졌던

남은 자들은 절기가 되어도 사실상 그 축제에 참예할 수 없었기 때문에  늘  근심하며

안타까워하였다(Von Orelli).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심판 도구인 이방  열

국의 침략을 당하였으며 그것으로 인해 수치와 경멸을 당하였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당하게 된 그 경멸과 수치는 남은 자들에게 무거운 짐과 애통거리가 되었다.



=====3:19


  그 때에 -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 곧 남은 자들을 구원하는 때이다.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 '너를 괴롭게 하는 자'는 15절의  '원수'

와 동일한 표현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제까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모든 이

방 열국들을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셨다(사 60:14).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 본 구절은 구원을 얻은 남은 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저는

자', '쫓겨난 자', 그리고 '수욕받는 자'이다. 이것은 12절의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

의 또 다른 표현으로, 구원받아 남은 자들은 철저한 고난을 통해서 겸손하여진 자들임

을 보여준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당한 모든 고난들, 다시 말해서 '저는 것', '쫓겨나

는 것', 그리고 '수욕을 당하는 것'과 같은 처참한 상태에서 완전히 회복될 뿐만 아니

라 그 이상의 칭찬과 명예, 그리고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3:20


  본절은 앞서 18,19절에 언급된 약속들의 반복이다.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 '이끌고'와  '모을지라'는

이방 열국에서 조국 이스라엘이 당한 치욕을 애통해 하며 절기 축제에 참예하지  못함

으로 안타까워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이끄심과 모으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산으로 돌

아오게 됨을 시사한다.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아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 '너희 자로잡힘을 돌이킬 때에'는 2:7의 반복이다. 이것은 남은

자들이 이방 열국의 포로 생활에서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됨을 뜻한다. 그 역

사는 '너희 목전에서', 곧 머지않은 미래에 유다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서 성취될 것이

다(Smith). 또한 남은 자들이 돌아올 때는 포로 생활 동안에 당한 수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칭찬과 명성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것은 이제까지 언급된 남은 자들에 대한 회복의  약속들

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취하실 것임을 보증하는 표현이다. 남은 자들의 회복과 구원,

그리고 영광된 모습으로의 변화는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Keil, Lange).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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