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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스바냐

[스크랩] 스바냐 1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23:51

스바냐 1장 주석

 

=======1;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 - 선지자 스바냐가 사역을 하던  때는  요시아

왕시대였다. 당시 국제적으로는 강대국 앗수르가 본국 사정으로 인해서  서쪽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때였으며, 국내적으로는 요시아 왕이 철저한  개혁을

시행하고 국토를 넓혀가려던 때였다(왕하 22:1-23:20).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

었더라 - 다른 선지서와는 달리 본절에는 선지자의 조상이 사 대까지 언급되어  있다.

다른 선지서와는 달리 이토록 스바냐의 조상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한  것은  아마도

스바냐의 사 대째 조상인 '히스기야' 때문인 듯하다. 혹자는  '히스기야'라는  이름이

당시에 상당히 일반적인 이름이었다는 이유로 히스기야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Kapelrud). 그러나 그 근거가 빈약하다. 본절의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역사

에서 선한 왕 중의 하나였던 '히스기야 왕'을 가리킨다(왕하 18:3-8.L.L.Walker).  한

편 스바냐의 아버지 '구시'는 그 이름 자체로는 구약 성경에서 종종 에디오피아  사람

과 연관된다. 그렇다고 해서 스바냐의 아버지가 에디오피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조부와 증조부, 그리고 현조부의 이름들이 모두 유대식 이름이기 때문

이다(Smith).


========1:2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 '지면에서'(페네 하다마)는 노아의 홍수 때

를 상기시키는 단어로(창 6:7; 7:4) 특별한 수식어가 붙지 않는 한 지역적인 땅의  한

계를 넘어선 세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다(L.L.Walker).한편  '진멸하리라'(아소프  아세

프)는 문자적으로 '완전히 쓸어버리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철

저하며, 그 정도가 매우 심한 것임을 시사한다.


=======1: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

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 하나님께서는 본절에서 심판의 대상을 말씀하신다. 여기서

'거치게 하는 것'은 우상을 가리킨다(Von Orelli). 하나님은 사람과 짐승, 공중의  새

와 바다의 고기 그리고 우상을 악인들과 더불어 파멸시키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특

별히 저자는 '진멸하고'를 두 번 반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엄격하며 정도가

심한 것으로 철저한 파멸을 초래할 것임을 암시한다.


=======1:4,5,6


   본문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내용이다.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 '손을 펴서'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

하실 것을 시사한다(사 5:25;9:12,17,21).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은 크게  다섯

부류로 나뉘어진다.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 '바알'은  가나안  사람들의  신으로,

'주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알은 농경신으로 다산을 주관하는  풍요의  신이

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금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가

나안 주민들이 섬기던 바알을 섬겼다. 여기서 '바알의 남아있는 것'은 개혁을  추구했

던 요시아가 많은 바알 숭배 사상이 남아 있었음을  암시한다(L.L.Walker).  하나님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바알 우상을 파괴하실 것이다.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 '그마림'은 히브리어  '케

마림'을 음역한 것이다(왕하 23:5; 호 10:5). 이것은 바알을 숭배하는 가나안의  제사

장들을 가리키던 명예로운 칭호였다. '그마림'에 이어 기술된 '그 제사장들을' 70인역

에서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마림'을 보충 설명하고자 부연된 것 같다(Smith). 하

나님은 바알의 남은 것들만 파괴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민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

던 이방 제사장들조차 모조리 파멸시키실 것이다.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 성신에게 경배하는 자 - 이들은 별과 달을 숭배하는 자

들이다. 별과 달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별과 달을 숭배하는 의식은 가나안과 바벧론에

서 흔히 행해졌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가나안과 바벧론의 영향을 받아 왕정 시대가 끝

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별과 달을 숭배하였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

다(신 4:19; 왕하 21:3,5; 렘 8:2; 19:13; 44:8-10). 하나님은 선지자 스바냐를  통해

서 별과 달을 숭배하는 자들도 예외없이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셨다.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 - '말감'(말캄)은 문자적으로 '그

들의 왕'을 의미한다. 그래서 혹자는 가나안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이며 왕으로 섬겼던

바알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Sabottka). 그러나 70인역과  수리아  역본,

벌게이트 역본에서는 이것이 암몬 족속의 신이었던 밀곰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본문의 '말캄'은 바알을 지칭하기 보다는 암몬 족속의 신인 밀곰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이러한 '말감'은 솔로몬이 후궁들을 위해서 산당을 지은  것에

서 시작되어(왕상 11:5-8,33; 왕하 23:13)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악에  빠지게  했던

우상 중의 하나이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맹세한  후에도

말감을 섬기는 종교적 혼합주의를 행하였다. 이러한 종교적 혼합주의는  아하스  왕과

므낫세 왕 때에 예루살렘에서 흔히 자행되던 죄악이었다(왕하 16:3.Lange).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 -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기로 결정하신 대상은  배교자들과  불신앙자이다.

'찾지도'(비케쉬)와 '구하지도'(다라쉬)는 흔히 제의를 드리는 것과 연관되어  사용되

기도 하나 신명기서와 예언자들은 이것을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과 연관시켜서 사용하

기보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과 연관시킨다(신 4:29; 암  5:4-6,  Smith).

여호와를 찾고 구하는 자는 내적으로, 도덕적으로 여호와만을 바라며 그 계명을  즐겨

행한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유다 거민들 중에는 하나님을 바라기는 커녕 도리어  내면

적, 도덕적으로 배교하거나 불신앙에 빠진 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기

로 결정하였다.


=========1:7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 스바냐는 심판의 날을 선언하기 전에 먼저 '침묵

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복종을 요구하는 선언이다(Calvin). 예루살렘과  유다

거민들이 침묵을 지켜야 하는 것은 거민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분노와 파괴가 시

행될 '여호와의 날'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침묵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의 침묵을 의미한다(Von Orelli).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 '여호와의 날'에 치러

질 제사의 '희생'은 '유다 백성'들이다. 반면에 '청할 자'는 제사에 초청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어 유다 거민들을 멸망시킬 이방  국가

이다(사 13:1, Lange).

========1:8,9


 본문에는 유다 거민들 중에서 '여호와의 날'에 심판을 받게 될 대상이 묘사되어 있

다. 

   여호와의 희생의 날 - 이것은 '여호와의 날'과 동의어로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

하셨으며 친히 심판을 시행하실 것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의 의복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 '방백들'은 유다  거

민들 중의 지도자들로서 히스기야 왕이 개혁을 행할 때에 대적하였던  자들이다(미  3

장). 이들은 아마도 요시아 왕이 개혁할 때도 자신들의 기득권과 평안을 잃지 않기 위

해서 대적하였던 듯하다. 또한 '왕자들'은 유다 거민들의 지도자들이었음은  분명하나

문자적인 의미인 '요시아 왕의 아들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당시

요시아의 아들들은 매우 어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본문의 '왕자들'은 요시아의 친족들

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Lange, Hitzig, Von Orelli). 이들의 죄악은  '이방  의복'을

입는 것이다(Smith, Lange). 여호와께서는 의복에 대해서 규정을 지으셨다(민  15:38;

신 22;1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백들과 왕자들이 이방인들이 입는 의복을 즐겨 입

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어겼을 뿐만 아니라 이방 관습에 젖어  여호와

를 배척하고 우상을 섬겼음을 암시한다.

   그 날에 문턱을 뛰어 넘어서 강포와 궤휼로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

하리라 - '문턱을 뛰어 넘어서'는 이교 신전에서 행해지는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특별히 삼상 5:5의 다곤 신전에서 제사장들이 문지방을 밟지 않은 것과  연

결되는 듯하다. 그래서 혹자는 이러한 해석과 더불어 '자기 주인'을 우상으로  해석하

기도 한다(Hitzig). 그러나 이러한 이교 의식은 단지 다곤 신전에서만 행해졌을  뿐이

다(Calvin, Lange, Ewald, Keil). 그러기에 '문턱을 뛰어 넘어서'는 앞서 언급된 왕자

들과 방백들의 하수인들이 타인의 집을 마음대로 침입하여 주인인 왕자들과  방백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약탈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L.L.Walker, Von Orelli). 하수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왕자들과 방백

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도둑질과 약탈을 서슴지 않았다.


=========1:10


  어문 - 이것은 오늘날의 다메섹 문 가까이에 있는 성읍 북쪽 문을 의미하는 듯하다

(대하 33:14; 느 3:3; 12:39). 이곳은 적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방향이었다(Smith,

L.L.Walker).

   이 구역 - 이는 어문 가까이에 있는 성읍 안쪽에 있는 문을  가리키는  듯하다(Von

Orelli). 이곳은 여선지자 훌다가 살았던 곳으로(왕하 22:14) 다른 곳에서도  '제  이

구역'으로 지칭되고 있다(대하 34:22).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 '작은 산들'은 주변의 언덕들을 가

리키기 보다는 예루살렘 성읍 내에 있던 언덕들을 가리키는 듯하다(L.L.Walker). 이것

들은 '여호와의 날'에 이방 국가의 침략으로 파멸될 것이며 그곳에  거하던  거민들은

곡하게 될 것이다.


========1:11


  막데스 거민들아 - '막데스'는 히브리어 '마크테쉬'의 음역이다. 이곳은 앞서 언급

된 어문과 반대되는 지역인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저지대로서, 상업으로 이름이 난 지

역을 가리키는 듯하다. 왜냐하면 본절 하반절에서 '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

이다. 본절은 침략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이 침략로인 북쪽과 침략로가 아닌  남쪽

에서도 예외없이 이루어질 것을 시사한다.

   가나안 백성이 다 패망하고 은을 수운하는 자가 끊어졌음이니라 - '가나안 백성'은

성경에서 흔히 상인들이나 무역을 하는 자들을 가리켰다(사 23:8; 겔 17:4; 호  12:7;

슥 14:21). 여호와의 날에는 상인들도 모두 멸망당하여 막데스는 더 이상  거래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1:12,13


  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 '등불'은 점토로 만든  기름  등잔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는 모습은 하나님의 심판이 예외없이  행

해질 것이며 아주 철저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

하시며 하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 -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는 예레미야도 사용한 적이 있는 속담투의 표현이다(렘 48:11). 이것은 이어서 나오는

구절들과 연결되어 심판의 대상이 하나님께서 역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자들임을 가리킨다. 그들은 포도주에 가라앉은 찌끼와 같아서 그

냥 내버려둘 경우 질 좋은 포도주를 나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방관자

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배하시고 간섭하신다는 섭리 자체를 부정하고 하나님은  자

신들의 생활과 전혀 무관한 존재라고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무할 것이라...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

본절은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강퍅한 자들에 대한 심판 내용이다. 자신들이  받았

던 축복이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재물과 집, 그리고 포도원까지도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직접적인 심판을 통해서 그들이 부인했던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드러내실 것이다.


========1: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 '여호와의 큰 날'이라는  표

현은 요엘의 묘사와 비슷하다. 요엘은 여호와의 날에 대해서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

피 두렵도다'라고 묘사한다(욜 2:11). 그것은 여호와의 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정

도가 매우 강할 것을 뜻한다. 이렇듯 엄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

다. 앞서 언급된 심판의 대상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 '여호와의 날'에는 용사의 애곡  소리가  들린

다. 용사들이 애곡하게 됨은 자신들이 여호와의 날에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으며  하

나님의 심판 도구인 이방 국가에 의해서 패배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Keil).


=========1:15,16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 본절은 '여호와의 날'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서 '구름과 흑암의 날'은 하나님의 현현과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이다(출

19:16;20:21;신 4:11, Smith). 여호와는 정하신 날에 나타나셔서 분노하시며 진노하실

것이다.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 본절은 전

쟁터를 연상시킨다. 스바냐는 흔히 전쟁터를 상기시키는 경고용 나팔,  견고한  성읍,

높은 망대를 여호와의 날과 연관시켜서 하나님의 심판이 마치 전쟁과 같이 그  강도가

매우 심할 것을 암시한다.


========1:17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 '여호와의 날'에 유다에게 내릴 하나님

의 심판의 원인은 바로 유다 거민들에게 있다. 그들의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거부

하고 우상 섬기기를 즐겨한 유다 거민에게 등을 돌리시며 반대편에  서셔서  심판하신

다.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같이 될지라  -  본  구절은

'여호와의 날'에 유다 거민에게 내릴 하나님의 심판의 정도를 나타낸다. 유다  거민들

의 피는 티끌로, 살은 분토로 변할 정도로 하나님의 심판은 엄할 것이다.


========1:18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  '은과

금'은 유다 거민들이 하나님을 버리게 된 동기이다. 그들은 은과 금을 하나님처럼  섬

겼다. 유다의 지도자들과 그 하수인들은 오직 자신들의 물질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

해서 강포를 행하기를 서슴지 않았었다(8,9절). 그들이 그렇게 추구했던 은과 금도 여

호와께서 심판하시는 날에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  스

바냐는 유다 거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다가 다시 심판의  대상을  모든

세계의 백성들로 확대한다. 여기서 '이 온 땅'과 '이 땅 모든 거민'은 유다  거민들만

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의미한다(L.L.Walker, Smith). 선지자  스

바냐는 본장 처음에서 심판 대상을 설명할 때 '지면에서'라고 말함으로써 온 세상  사

람들과 생물들이 심판의 대상이 됨을 강조하였다(3절). 이제 본장을 마감하는  본문에

서 스바냐는 다시금 심판의 대상을 온 세상으로 확대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여호

와께 범죄한 모든 사람을 향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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