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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아모스

[스크랩] 아모스 (2) :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선언 (3-6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23:32

아모스 (2) :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선언 (3-6장)


2.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선언(3-6장)

  앞에서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지적하고 나서 아모스는 그것을 다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3-5장은 마치 법정에서 고소하는 형식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이 진술되고 있다. 각 장들은 "이 말씀을 들으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으며, 이어서 수신자의 이름이 열거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 그들이 범한 죄를 고발하고, 이에 합당한 심판이 선고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말로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하고 있다.


2-1. 아모스를 부르심(3:1-8)

  아모스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쳐서 이르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외치고 있다.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말씀하셨다(1). 이는 이 권고가 북 이스라엘 뿐 아니라, 남 유다 백성들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후에 언약을 통해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여기에서 '알았다'는 말(야다)은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특별히 선택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창 18:19).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소유로서(출 19:5; 말 3:17), 제사장 나라이며(출 19:6), 여호와의 백성(삿 5:11;삼하 14:13)과 거룩한 백성(신 7:6;14:2,21)이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본분에 맞는 삶을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 범죄하였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내가 그들을 징계하겠다"고 선언하셨다(2).

  아모스는 잠시 심판에 대한 선언을 중단하고 이스라엘을 향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은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는 것이었다(4(상)). 아모스는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어떻게 함께 동행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어 그 뜻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모스가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예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했다. 아모스가 던진 두 번째 질문은 "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느냐?"는 것이었다(4(하)). 사자가 부르짖는 것은 그가 먹이를 움켜 잡았기 때문이다. 아모스가  예언하는 것도 명백한 이유와 근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를 보고 아모스를 통해 그들의 심판을 선언하신 것이다. 아모스가 던진 세 번째 질문은 "창애를 땅에 베풀지 아니하고야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아무 잡힌 것이 없고야 창애가 어찌 땅에서 뛰겠느냐?"는 것이었다(5). 첫 번째 '창애'로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 '파흐'이고, 두 번째 창애로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로 '모케쉬'라는 말이다. '파흐'는 새를 잡기 위해 땅에 놓은 덫을 의미하고, '모케쉬'는 미끼, 또는 함정을 의미한다(BDB). 새가 덫에 걸리는 것은 사냥꾼이 그 곳에 미리 덫을 놓았기 때문이며, 덫이 흔들리는 것은 짐승이 그 돛에 걸려서 몸부림을 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모스가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언하는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모스가 던진 네 번째 질문은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면 어찌 백성이 두려워하지 않겠으며, 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어찌 재앙이 성읍에 임하겠느냐?"는 것이었다(6). 파수꾼은 보초를 서다가 적군이 공격해 오면 성읍 거민들을 위해 경고의 나팔을 불었다. 이러한 경고의 나팔이 울려퍼지면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미리 예고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예언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만 한다.

  아모스는 네 가지 질문을 통해 자기의 예언의 신실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선언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7)."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자신이 하실 일을 미리 알려주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실 때에 선지자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그 일을 예고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은 결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사람들을 심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노아 때에 인류를 홍수로 심판하시기 전에도 미리 예고해 주셨으며(창 6:13-21),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미리 말씀해 주셨다(창 18:17-21; 19:12-13). 그러므로 심판의 경고를 들은 사람들은 신속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결국 그 예고대로 심판을 받고 멸망하게 될 것이다. 아모스는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고 질문하고 있다(8(상)).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실 때에 그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는 아무도 없다. 또 아모스는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않겠느냐?"고 외친다(8(하)). 아모스에게 메시지를 주신 분은 여호와였다. 그러므로 아모스는 그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면, 그것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그 말씀을 전해야만 한다.


2-2. 심판의 이유(3:9-6:14)

  이제 아모스는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스돗의 궁들과 애굽 땅의 궁들을 향해 사마리아의 산들에 모여서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가 있는 지 보라!(9)" 하나님은 블레셋의 성읍인 아스돗과, 애굽인들을 향해서 이스라엘(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수도였다)의 죄가 얼마나 큰 지 한 번 와서 보라고 초청하셨다. 이스라엘 죄는 이방인들도 놀랄만큼 크고 중대했다.

 가. 부자들이 사치를 위해 가난한 자들을 핍박함(3:9-4:13)

  가)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이 자행되고 있음(3:10-12)
  하나님은 "사마리아의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른다"고 고발하셨다(10). '포학'(하마스)는 잘못이나 폭력을 의미하는 말로서, 불의나 무법한 행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겁탈'(쇼드)은 파괴, 살상의 의미를 가진 말로서, 잔인무도한 죄악을 의미한다. 사마리아의 궁궐에서는 불의와 잔인무도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른다고 말씀하고 책망하셨다. 이로 인해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이 심판을 선언하셨다.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할 것이라!(11)" 장차 이스라엘은 그죄로 인해 사방에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며, 결국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힘을 잃고 궁궐이 약탈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언은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의 길르앗과 갈릴리 침략과(주전 733년),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살만에셀 5세를 통해서(주전 722년) 성취되었다. 그러나 아모스는 심판을 선언하는 때에도 일말의 소망을 제시하고 있다. 아모스는 그때에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내는 것처럼, 사마리아 침상 모퉁이와 걸상의 비단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건져냄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했다(12). 목자는 자기가 치던 양을 잃어버리면 자신이 그 양을 훔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그 양을 찾든지 아니면 그 양이 야수에게 잡혀먹고 남은 시체의 일부를 제시해야 했다(출 22:13). 장차 이스라엘은 사자와 같은 앗수르게 잡혀 먹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 죽은 시체의 일부분을 찾는 것처럼, 그들 중에 일부만이 겨우 남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멸망을 당할 것이나, 완전히 진멸되지는 않고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나) 심판 선언(3:13-15)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기 위해서 임의로 증인들을(아스돗과 애굽) 세우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거하라"고 말씀하셨다(13). 이스라엘의 죄악상은 이방인들을 불러 증언할 정도로 심각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단들을 벌하고 그 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14). 여로보암 1세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그것을 섬기게 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제사 제도를 왜곡시켰다(왕상 12:26-33). 이러한 점에서 벧엘에 세워진 제단은 배도의 상징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배도의 상징물인 벧엘의 제단을 치고, 그 제단의 뿔들을 꺽어서 땅에 떨어지게 하실 것이다. '제단 뿔'은 권위와 영광, 그리고 속죄의 능력을 상징한다(신 33:17; 삼상 2:1,10; 시 89:17,24). 이러한 점에서 제단 뿔이 꺾여 땅에 떨어진 것은 제단이 영광과 속죄의 능력을 상실하고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인위적으로 만든 이스라엘 종교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또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내가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칠 것이며, 이로 인해 상아궁들이 파멸되고 큰 궁들이 파괴될 것이라!(15)" 이스라엘의 상류층들은 겨울과 여름에 사는 궁전을 따로 지을 정도로 호화롭게 살았다. 그들 중에 부유한 자들은 상아로 지은 궁궐과 거대한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로움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 '결단난다'고 번역된 말(사푸)은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사치로 쌓은 집들을 완전히 제거하실 것이다. 아모스는 이 예언을 한 후에 이 말이 자기의 말이 아닌 여호와의 말씀이라! 고 증거하고 있다.

  다) 여인들의 죄(4:1-3)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여인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서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에게 이 말을 들으라!"고 선언하셨다. 바산은 요단 강 동편에 있는 기름진 땅으로, 살진 소와 양의 생산지였다(신 32:14; 겔 39:18). 어떤 학자는 여기에서 언급된 '바산의 암소'가 사치와 방종을 일삼던 이스라엘의 귀부인들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들으라'는 말(쉬므우)이 남성형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바산의 암소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암소로 묘사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웠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바산의 암소들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고 외쳤습니다(1). 본문에서 '가장'으로 번역된 말(아도네이헴)은 3인칭 남성 복수 어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RSV는 이를 "그들의 남편들(their husbands)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바산의 암소를 이스라엘의 귀부인으로 보면, 이는 이스라엘 귀부인들이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술에 취해서 향락에 빠져 사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산의 암소를 이스라엘로 보는 경우에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사치와 방종에 빠져 사는 것을 고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학대와 향락과 방종에 빠진 이스라엘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맹세하셨다.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할 것이라(2)."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때가 임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그리고 그때에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갈고리에 걸린 생선처럼 끌어갈 것이며, 이를 피한 자들도 낚시에 낚인 고기 신세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이러한 예언은  후에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아가고, 남은 자들도 자유를 잃게 됨으로 성취되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성 무너진 데로 말미암아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지우게 될 것이라!(3)"고 선언하셨다. 장차 이스라엘은 무너진 성벽을 통해 사로잡혀 가서 하르몬에 내던져서서 살게 될 것이다. '하르몬'은 장차 이스라엘이 잡혀갈 곳으로, 이 곳이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모스는 다시 이 예언이 여호와의 말씀이었음을 확증하고 있다.

  라) 형식적인 종교 생활(4:4-5)
  이스라엘은 종교 행위에 있어서도 크게 타락해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 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온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 내어 광포해보라!(4-5)" '벧엘'은 야곱이 돌기둥을 세우고 돌아와서 제단을 쌓은 곳으로서 후에 에배 장소가 되었다(창 28:18-19, 35:1-7, 삼상 10:3). '길갈'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입성한 첫 지점으로 할례와 유월절 행사를 지킨 곳이었다(수 4:19-20, 5:2-12). 그러나 아모스 당시에 벧엘과 길갈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 전락하고 말았다(5:5; 호 4:15; 10:5,8,15).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침마다 희생 제사를 드렸고, 3일마다 십일조를 드렸다. 그들은 '수은제'(감사제)와 '낙헌제'와 같은 화목제물을 드렸다. 당시에는 누룩을 넣은 떡이 낙헌제에 드려지기도 했고(레 7:12,13), 또는 불로 태운 소제를 제물 위에 드려지기도 했다(레 2:1,2,8).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그들의 제사들이 모두 내용이 빠진 형식적인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시고, 제물보다 사랑을 원하시지만, 그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빠져 있었다.

  마) 징계를 받았으나 회개하지 않음(4:6-11)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를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징계를 내리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징계를 받고도 도무지 돌이킬 줄을 몰랐다.

  * 양식이 떨어짐(6)
  하나님은 그들을 돌이키려고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그들의 이를 한가하게 하고,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셨다(6)." '이를 한가하게 했다'는 말은 양식이 없어서 이빨에 끼일 음식조차 없게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흉년으로 쳐서 각 처소마다 양식이 떨어지게 만드셨다(왕상 8:37; 왕하 4:38). 이러한 징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키게 하려고 내린 징계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죄악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6). 아모스는 이러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8-11), 이스라엘이 완강하게 버티며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 기근(7-8)
  또 하나님은 "추수하기 석 달 전에 이스라엘에 비가 그치게 하셨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땅 은 일부는 비를 얻고, 일부는 비를 얻지 못해서 말라 있었다(7)."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리는 비는 12월-2월에 내리는 비로서, 이는 늦은 비(봄 비)에 해당한다. 이러한 비는 추수를 앞두고 내려서 알곡을 숙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이 비가 내리지 않으면 수확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역에 따라 선택적으로 비를 내려서 수확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이러한 일을 깨다지 못했다. 또 하나님은 그 땅에 극한 가뭄이 오게 하셨다. 이로 인해 "두 세 성읍 사람이 한 성읍으로 비틀거리면서 물을 마시러 갔지만 원하는 만큼 물을 마실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른 하나님의 징계로 내린 극한 가뭄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았다(8)."

  * 병충해와 질병(9-10(상))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곡식을 풍재와 깜부기 재앙으로 치셨고, 팟종이로 그들의 많은 동산들과 포도원, 그리고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모두 먹게 하셨다(9)." '풍재'(쉬다폰)는 이삭을 까맣게 만드는 흑수병이며, '깜부기'(예라콘)는 식물을 말려서 곡식을 붉게 반드는 병이었으며, '팟종이'(가잠)는 메뚜기의 일종이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병충해로 곡식을 치셨고, 메뚜기 떼가 그들의 유실수를 먹게 만드셨다. 또 하나님은 "애굽에서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중에 염병이 임하게 하기도 하셨다(10(상))."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올 줄 말랐다.

  * 전쟁(10(하))-11)
  또 하나님은 "칼로 이스라엘의 청년들을 죽였으며, 그들의 말들을 노략당하게 만들고, 그들의 시체가 썩은 악취가 코를 찌르게 하셨다(10(하)). '칼'은 전쟁을 의미하며 이는 수리아(아람)와 치른 오랜 전쟁을 기억나게 한다(왕하 13:3).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군사들이며 민족의 희망인 청년들을 대적의 칼에 죽임을 당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시체가 썪는 냄세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이스라엘의 희망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성읍을 무너뜨리고, 그들이 불붙는 가운데서 겨우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게 만드셨다(11). 아마도 이러한 묘사는 수리아의 침입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성읍들이 초토화된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왕하 13:1-9). 이로 이해 이스라엘 성읍은 무너지고,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다가 빼낸 그을린 나무조가처럼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바) 회개를 촉구함(12-13)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그들에게 내린 심판이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해 주셨다. 이제 하나님은 앞으로도 그들이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이러한 징계가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러한 징계를 피하기 위해서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고 권고하셨다(12). 이 권고는 징계를 전제로 하고 있어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최후통첩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었다. 아모스는 심판 때에 만난 하나님의 속성을 묘사하면서 이 단락을 마치고 있다.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산들을 지으시고 바람을 창조하시며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었다(13(상)). 이스라엘은 피조물로써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분을 만나기 위해서 예비해야 한다. 또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사람에게 보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동기를 모두 아시고 이를 드러내신다.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시다(13)." 하나님은 빛을 주관하시어 아침을 저녁이 되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높은 곳을 밟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온 세상의 주인이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아도나이 엘로헤이 체바오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심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권능으로 전 우주를 다스리시며, 마지막 때에 그 백성들을 공의로 심판하실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이러한 전능하신 만군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날을 예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 재판 법정에서의 부정(5:1-17)

  가) 여호와께 돌아오라!(1-6)
  사실상 이스라엘은 죽을 병에 걸려 있었다. 아모스는 죽게된 그들을 향해 애가, 즉 장송곡을 부르고 있다(1). '애가'(키나)는 슬픔을 표현하는 노래나 시로서, 사람의 죽음이나 민족의 멸망을 애도하기 위해 불렀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여 애가를 불렀다. 장차 "처녀 이스라엘은 엎드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땅에 던져지나 일으킬 자가 없게 될 것이다(2)."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처녀'(베툴라트)로 부름으로(사 37:22; 렘 14:17), 그들을 남자를 알지 못하는 순결한 여인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표현은 이방의 침략을 받지 않고 여호와를 섬기던 과거의 순결한 때를 회상하며 부른 호칭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음란한 여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장차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공격을 받고 엎어지고 내팽개쳐져서 다시는 회복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명만 남고, 백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게 될 것이다(3)."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로 인해 이방인에 의해 멸망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성읍에 살던 인구는 1/10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성읍의 인구의 9/10를 잃는 것은 그 심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 중에 1/10을 남겨 두어 다시 소망의 기회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신 후에 다시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 것이라!(4)"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지금이라도 여호와를 찾으면 죽기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 권고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마지막 회개의 기회였다. '나를 찾으라'는 말은 '내게 돌아와서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면 심판을 피하고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벧엘을 찾지 말고,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이라(5)." 5절에 언급된 '벧엘', '길갈', '브엘세바'는 당시에 우상을 섬기던 대표적인 장소들이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창 21:33), 여호와께서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신 곳이었다(창 26:24; 46:1-2). 그러나 이러한 곳이 이제는 우상을 섬기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그 곳에서 우상을 섬기는 일을 중단하고 돌아오라고 권면셨다. 하나님은 장차 길갈이 사로잡히게 되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더 이상 브엘세바와 벧엘과 길갈에 희망을 두어서는 안되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희망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 것이라!(6(상))" 이스라엘이 사는 길은 우상을 떠나 여호와를 찾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찾는다면 그들은 반드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하면 하나님께서 "요셉의 집(이스라엘)에 불같은 심판을 내려 그들을 멸하실 것이며, 그때에 벧엘에서 그 불을 끌 자가 없게 될 것이다(6(하))." 그러므로 이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우상을 섬기든지 아니면, 우상을 떠나 여호와를 찾을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에 따라 그들의 미래의 운명도 결정될 것이다.

  나) 공법을 인진(독초)으로 변하고,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7-9)
  하나님은 회개를 촉구하신 후에 다시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법을 인진으로 바꾸고,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이었다(7)." '공법'(미쉬파트)은 율법이 지향하는 바른 삶을 실천하는 것이며, 공법은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공정하게 시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진'은 '쓴 쑥'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된 삶을 사는 도인 율법을 사람이 먹지 못할 쓴 쑥으로 만들어 버렸고, 공의로운 법을 행하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상적인 삶을 떠나 상처와 해를 주는 백성이 되었으며, 공평한 길을 떠나 편벽과 불의한 삶을 사는 무법한 백성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무법한 삶을 지적하신 후에, 즉시 이를 떠나 "여호와를 찾으라!"고 촉구하셨다(8). 그러면 이스라엘이 찾아야 할 여호와는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고 조화 속에 운행하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묘성(키마)은 일곱 개의 큰 별을 비롯해서 40개 이상의 별자리로 구성된 별자리를 말한다. 그리고 삼성(케실)은 70인역에서 '오리온'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에서 '묘성'과 '삼성'은 전체 별자리를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하늘을 만드시고 그것을 질서와 조화로 운행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또 하나님은 "사망의 그늘을 아침이 되게 하시며, 낮을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낮과 밤, 즉 시간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또 하나님은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바닷물을 증발시켜 비가 되게 하고, 그 것을 육지에 다시 내리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자연 질서를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허무한 우상을 떠나서 참 신이신 여호와를 찾아야 한다(8).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무리 강한 성도 갑자기 심판하여 그 성을 파멸케 할 수 있는 분이시다(9)."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이스라엘은 속히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우상을떠나 여호와를 찾아야 한다.

  다) 무리가 공의로운 재판관을 싫어함(10)
  이스라엘은 공의로운 재판관을 싫어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하게 말하는 자를 싫어했다(10)." 여기에서 '책망하는 자'(모키아흐)는 '불의에 맞서 대항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문'은 법률 소송이 제기디고 재판이 이루어진 장소였다. 아모스 당시에 이스라엘은 공법이 실행될 수 있는 구조가 깨지고 말았다. 백성들은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나 '정직하게 말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싫어했다. 그들은 공의를 싫어하고 거짓말하고 뇌물을 받고 불의와 타협하는 자들을 환영했다.

  라)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와 의인들을 억울하게 함(11-13)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와 의인들을 억울하게 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가난한 자를 짓밟고 그들로부터 부당한 세금을 착취했다(11(상))."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착취했으며 부당한 세금을 거둬들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불의한 행위를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불법으로 벌어서 지은 집에 살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포도원에서 거둔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게 될 것이다(11(하))." 이스라엘의 탐욕을 상징하는 저택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비게 될 것이며, 화려한 포도원은 돌볼 사람이 없이 방치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많은 허물과 그들의 죄악이 중함을 알고 계셨다(12(상))."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죄를 모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악한 행위를 알고 계셨다.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은"의인을 학대하여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고 있었다(12(하))." 재판관들은 불의한 '뇌물을 받고 악한 범죄자를 무죄로 선언했다(삼상 12:3). 그들은 정직한 자를 미워했으며, 적극적으로 궁핍한 자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당시 이스라엘에는 "지혜자가 입을 다물고 침묵하고 있었다." 지혜자가 인정 받지 못하는 시대는 악한 세대이다. 악이 범람하면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고, 의인들이 멸시를 받으며 괴로움을 겪기 마련이다(잠 9:7,8; 29:2; 사 53:7). 그러므로 아모스는 이 시대를 향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외쳐야 했다.

  마) 회개의 요청(14-15)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그리하면 너희의 말과 같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라!(1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에서 떠나 여호와를 찾고 선을 구하라고 촉구하셨다. 이것만이 심판을 앞 둔 이스라엘이 살 길이었다. 아모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범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범죄로 인해 그들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선을 구하고 악을 떠나면 그들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금이라도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우라!"고 촉구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이라도 악을 미워하고 선을 구하기만 한다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셉의 남은 자들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15)." 이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바) 천명 나가던 성읍이 백명, 백명 나가던 성읍이 열 명만 남음(16-17)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끝내 돌이키지 않는 경우에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미리 말씀해 주셨다. 그들이 끝내 회개치 않으면 장차 그들은 "모든 광장에서 울게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모든 거리에서 오호라! 오호라! 하면서 애통해 하고,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만들 것이며, 울움꾼을 불러다가 울게 만들고, 모든 포도원에서 슬피 울게 될 것이다(16-17(상))."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는 날 이스라엘의 모든 장소는 후회하며 애통하는 곳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광장이나 거리 뿐 아니라, 사람이 적은 농촌에서도 애통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슬픔을 표시하기 위해서 전문적인 울음꾼을 사서 애곡하게 할 것이다. 즐거움을 주던 장소인 포도원은 그 날에 슬픔의 장소로 변할 것이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이 이렇게 울음바다가 될 것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사자가 이스라엘 가운데로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었다(17(하)).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은 죽음의 사자를 애굽에 보내서 애굽의 장자를 치셨다. 그때에 온 애굽 땅은 애통의 장소가 되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에도 이와 같이 심판의 사자를 보내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이스라엘은 울음의 장소가 될 것이다. 아모스는 이 예언을 한후에 다시 한 번 이 예언의 말씀이 자기의 말이 아니라, 여호와께로부터 주어진 말씀임을 확증하고 있다.


 
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5:18-27)

  가)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18-20).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들을 벌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여호와의 날"을 사모했다. 그러나 아모스는 오히려 그 날이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18). 아모스는 그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난 사람이나, 집에 들어가서 벽에 손을 대었다가 뱀에게 물린 사람"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19).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큰 위기를 넘겼다고 안심할 그 때에 결정적인 재앙을 내리실 것이며, 이스라엘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게 하실 것이다. 여호와의 날은 그들이 생각했던 대로 빛의 날이 되지 않고, 그들을 심판하는 어두움의 날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날을 소망하며 살았지만, 그들의 죄로 이해 그 날은 이스라엘을 심판할 재앙의 날이 될 것이다(20).

  나) 형식적인 예배를 중단하라!(21-23)
  이스라엘의 죄악은 종교 생활에도 깊이 침투해 있었다. 그들의 종교 생활은 형식적인 외식으로 변해 있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절기를 미워하고 멸시하며, 그들의 성회들을 기뻐하지 않으셨다(21)." 이스라엘에는 3대절기가 있었으며, 이 절기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앞에 모이게 하여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 절기들을 탐욕의 절기로 만들어버렸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정한 주기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이러한 제사 역시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번제나 소제를 드려도 그것을 받지 않으셨으며, 그들이 드리는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돌아보지 않으셨다(22)." '번제'(올로트)는 제물을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제사로 헌신을 의미했으며, '소제'(민호테이켐)는 '번제'와 함께 드려진 곡식 제물이었다. 여기에서 '번제'와 '소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화목제'(쉘렘)는 서원이나 감사의 의미로 드려진 감사 제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따라 이러한 제사 의식을 행했으나, 그 제사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로 이해 그들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이 받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서 "네 노래소리를 내 앞에서 그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연주하는 "비파 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솔로몬 성전 건축 이후에 희생 제물을 드릴 때에 찬양대의 찬양이 함께 드려졌으며(대상  16:41-42; 23:5), 이때에 나팔이나 제금 등의 악기를 함께 연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사 예식들은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진실과 사랑이 빠진 형식적인 것이었다.

  다) 공의와 의를 요구하심(5:21-24)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러가게 하라!"고 촉구하셨다(24). '공법'과 '정의'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사회 정의와 질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무시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사회는 공법과 정의가 무너져 버렸다. 그들은 이러한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제사를 받으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공법과 정의를 실행할 것을 요구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때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해 왔다. 그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면서  형식적인 희생과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아 정착하게 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25).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 희생 제사를 드렸지만, 그 마음은 우상 숭배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그들은 우상인 식굿과 기욘을 섬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차 그들이 왕으로 섬기던 "식굿"과, 그들이 만든 별모양의 우상인 "기윤"을 스스로 등에 지고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26). 이러한 우상이 별의 신이었다면, 그 우상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유입되었을 것이다(행 7:42-43). 그들은 하나님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러한 우상을 섬긴 결과로 "다메섹 밖으로 사로 잡혀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우상을 섬긴 죄로 인해 이방인에게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아모스는 여기까지 말한 후에, 다시 한 번 이 말씀이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임을 확증하고 있다(27).


 
라. 지도자들의 사치와 교만과 안일함(6:1-4)

  가) 화있을 진저!
  하나님은 자만에 빠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셨다.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1). "화 있을진저"(호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심판을 선포될 때 사용되었다. '안일한 자'(하솨아나님)와 '마음이 든든한 자'(하보테힘)는 '시온'과 '사마리아'의 지도자들로서,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정욕과 쾌락을 좆아 자기 뜻대로 살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그 곳에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2)" '갈레'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지만 시날 땅과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으며(창 10:10), 이 곳은 이사야가 언급한 '갈로'(사 10:9)와 에스겔이 언급한 '간네'(겔 27:23)와 동일 지역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갈레는 티그리스 강  건너편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이다. 또 '하맛'은 원래 가나안에 속해 있다가(창 10:18),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 지역으로 소속되었다(민 34:7,8; 수 13:5; 삿 3:3; 왕하 14:25; 겔 47:16). '가드'는 블레셋과 유다의 경계 지역이었다. 이 지역들은 변방에 있는 도시들로 보잘것 없는 도시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이러한 도시들로 가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러한 도시들에 비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도시들에 비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무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흉한 날, 즉 심판의 날이 멀었다고 떠들어대면서 폭력을 가까이하고 있었다(3)."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부와 영예로 풍요로은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고 폭력으로 부와 향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이러한 죄를 엄히 추궁하셨다.

 
 나) 안일과 사치한 삶(4-7)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지적하셨다. 그들은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를 켜고,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해 악기를 제조하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해서 근심하지 않았다(4-5)."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제적인 풍요로움 속에 빠져서, 방탕과 쾌락을 탐닉하고 있었다. 그들은 술에 취해서 곡조를 흥얼거리고 있었고,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많은 악기를 제조하고, 그것을 연주하면서 흥을 돋구었다. 또한 그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위해 사용하는 대야, 즉 제물 그릇으로 포도주와 술을 마셔대고 있었다. 그들은 몸에 귀한 기름을 바르고 방탕한 삶을 살면서, 요셉의 환난, 즉 장차 이스라엘에게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심판은 하나님을 분노케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심판을 예고하셨다. "그들이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칠 것이라!(7)." 쾌락과 방탕을 좆으며 심판을 대비하지 않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가장 먼저 사로 잡혀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기지개를 켜며 거만하게 외쳤던 그들의 소리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다) 공법을 쓸개로 정의를 인진으로 바꾼 백성들(8-14)
  그러면 심판의 날에 포로로 끌려 가지 않고 이스라엘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은 그들 역시 비참한 생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맹세하셨다.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해도 다 죽을 것이라!(8-9)" 하나님은 이에 대해서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다. 이러한 맹세는 변치 않고 반드시 실행될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영광', 즉 이스라엘이 누리는 부와 궁궐들을 가증히 여기셨다. 그들은 풍부한 재물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의 쾌락만 추구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모든 재물을 대적을 보내어 탈취당하게 하실 것이다. 그 때에는 한 집에 열 사람이 사는 집에서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죽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죽은 사람의 친척이 시체를 불사르기 위해서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내실에 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묻게 될 것이다 "아직 너와 함께한 자가 있느냐?" 그러면 그때에 내실에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살아 남은 자가 없다"도 대답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완전히 패망하여 입을 다물 것이며, 다시는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불리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10). 일반적으로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시체를 화장하지 않고 매장했다. 그러므로 시체를 화장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전염병으로 죽은 시체)에 속했다. 그때에 포로가 되지 않고 이스라엘 땅에 남은 사람들은 전염병으로 죽게 될 것이며,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도 죽음을 기다리면서 겨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때에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잘못 부르다가 심판을 받을 것을 두려워 해서 여호와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며 살게될 것이다.

  이러한 고난은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한 결과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공법을 쓸개로 만들어 버리고,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바꾸어 버렸다(11-12)."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마치 "말이 바위 위에서 달리고, 소가 바위 위에서 밭을 가는 것처럼 순리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은 공법과 정의의 실천을 위해 주신 율법을 버리고, 써서 먹을 수 없는 쓸개와, 해를 입히는 독초와 같은 우상의 법을 받아들였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공익을 위해 주어진 법을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사용했다.  그들은 법을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가진 자를 비호하는 도구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그들은 "허무한 것을 기뻐하면서 모든 영광을 자기 힘으로 얻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13) 그들은  구원을 주지 못하는 허무한 우상을 좆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들은 풍요와 영토확장을 하는 동안, 한껏 자만해져 있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심판을 선언하셨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장차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게 하리니, 그들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할 것이라!(14)." 하나님은 장차 공의를 버리고 쑥을 받아들이며, 공익을 위해 주어진 법을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도구로 만들어 버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한 나라를 일으키실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는 이스라엘의 전 영토를 정복하고 그들을 학대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하맛어귀에서 아라바 시내까지'는 여로보암이 회복한 이스라엘의 경계선을 가리킨다(왕하 14:25,28). 이 영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영토이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공의를 버린 죄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영토를 대적에게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아모스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교만하게 행하다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하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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