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Amos)의 외침
- 하나님 말씀에 대한 기근 -
"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암 8:11-14,참조. 참1:1,2,7:12-16,8:1-2).
기라성같이 늘어선 히브리 선지자들 중에 아모스는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찬란한 영광과 미덕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이 사실은 그가 아마샤에게 한 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암7:14). 여기서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는 말은 그가 선지자의 학교에서 공부한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한다면 아모스는 평신도였다. 그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였다. 그는 아마 남왕국 유다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드고아 출신이었다.그는 실로 가장 고상하고 진실한 의미에서의 선지자였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다음 구절을 들 수 있다.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7:15)
사진설명 : 나무판에 못을 박아 만든 전통적인 타작 썰매
이처럼 아모스는,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도 여호와의 선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메시지에서는 흙 냄새와 가축 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다. 그는 말을 할 때 자신의 직업에서 비유를 끌어다 썼다. 그는 솔직했으며 인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사미라아 궁에 가서 그곳의 사람들을 향하여 암소들이라고 비난한 사실에서 그러한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단지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어라"고만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때때로 이러한 그의 특징은 쉽게 간과되어 버리기도 한다.
아모스의 방법을 답습한 선지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드고아를 출발하면서 전파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의심할 바없이 곧바로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주변 국가들을 책망하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맨처음에 그는 북동쪽 너머에 있는 다메섹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 후, 눈길을 남서쪽으로 돌려 가사에 대해 다루었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두로를 책망하고 나서 남동쪽의 에돔을 향해 외쳤다. 또한 그는 동쪽에 있는 암몬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으며 그 다음 남동쪽의 모압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였다. 곧이어 그는 유다에 대해 말하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 관해 다루는데 이제까지의 모든 메시지는 바로 이를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그는 다메섹의 잔인함과 가사와 두로에서 성행하던 노예매매 및 에돔의 용서할 줄 모르는 비정함, 그리고 물욕이 깔려 있는 암몬의 잔학성과 타민족에 대한 모압의 맹렬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증오에 대해 말하였다. 그는 유다로 가서 그 나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경멸한 것을 책망하였다. 마침내 그는 이스라엘을 책망함으로써 그의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 메시지는,이미 놀라운 구원을 몸소 체험한 민족의 타락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서, 지금까지 주변 국가들에 대해 언급된 모든 메시지를 통해 이미 조명된 것이다.
이 선지서를 읽을 때 주목할 만한 점은 아모스가 이스라엘 내에 있으면서 주변 국가를 책망하는 동안은 좋은 평판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언제나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우리가 독일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소련을 비난한다 해서 원한을 사지는 않는다. 그런데 아모스가 자기 자신의 나라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자 그의 명성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을 때,아마샤는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 땅에서 떠나갈 것을 명했다.
그의 전 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점이 내포되어 있다.첫째로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 즉 다메섹,가사,두로,에돔,암몬,모압 등 모든 나라를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그의 메시지는 그들 각 나라의 의무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권에 따라 달라진다는 놀라운 사실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는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에 대해 이야기한 것과 같은 그런 심한 말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특권을 받은 나라에 가장 큰 진노를 내리려고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본문으로 읽은 구절은 본서의 예언 중 세번째 부분으로, 거기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에게 임할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그느니 4가지 은유 즉 "황충"과 "불"과 "다림줄"과 "여름실과 한 광주리"의 은유를 사용하여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그 여름 실과 광주리가, 모든 것들이 참으로 완결되었으며 이스라엘의 범죄가 극에 달하였고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게끔 의도되었다는 점이 그에게 계시되었다. 다가올 심판의 임박성을 나타내는 이 마지막 은유와 더불어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올 것을 선포하는 이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 말이, 하나님 편에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일을 변덕스럽게 그만두신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 아님을 즉시 알아야 한다. 그것은 오히려 들을 수도 분별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인간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며 선지자들의 선포 역시 계속될 것이다. 글은 계속 읽혀질 것이지만 백성들은 그 음성, 곧 그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말씀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이로부터의 메시지를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가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즉 어떻게 그러한 상태가 일어나게 된느가? 우리는 다음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무릇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멩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8:14)
이 북왕국 사람들은 진리되신 분 대신에 거짓 것을 숭배하였었다. 옛날에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상징하는 송아지를 세웠었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을 상징화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여전히 그것을 그들의 신으로 삼고 숭배하였다. 다시 말해서 이 백성들은 창조주를 피조물로 대체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그들 자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계에서 나온 것이 아닌, 가치도 내용도 전혀 없는 것들로 대체했었다. 따라서 그들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영혼의 깊은 곳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이 거짓 신들에게 바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위치에 다른 어떤 것을 놓으면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만다. 그는 둔해지며 무감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말씀하고 계시지만 그는 듣지 않는다. 하나님을 자연으로 대체시켜 자기들은 자연을 섬기고 있노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또한 하나님을 교권주의적인 형태로 혹은 형식적이거나 의식적인 어떤 형태로 대체시키는 자들도 있다. 그러한 경우에, 그리고 그와 유사한 모든 경우에, 인간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면 성경은 언제나 봉인된 책이 되고 만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며, 그러한 기갈은 인간성을 약화시키게 된다.
그때 선지자는 일어나게 될 일을 매우 주목할 만한 방법으로 서술하였다.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불안에 빠지게 하였을 것이다.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8:12)
하나님이 없는 삶에 만족하려는 모든 시도는 이런 결과를 낳는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매우 뚜렷하게 보이는 모든 침착하지 못한 열광에 대한 이유이다. 오늘날 영국의 도로위에 쇄도하는 자동차들을 보라, 확실히 그것들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북에서 동으로 뒤로 앞으로 비틀거린다.나는 최근에 채링 크로스(Charing Cross:런던시의 중심부에 있는 광장 - 역주) 에 있느니 웨일즈 교회(Welsh Chapel)옆을 지나가면서, 노변 강단이라고 부르는 것에 쓰여진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다.
당신이 도착할 곳은 당신이 달리고 있는 그 속력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빠른 것만이 전부일 뿐 종착지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이 백성들이 분주히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찾으나 이는 부질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통치하지 않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그들은 죄와 연루되어 있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따라서 우주가 세워진 원리들을 무시해 버린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그것은 체계화된 교회 생활속에서 새로운 설교자들, 새로운 운동들,새로운 신학들을 찾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이 소리들을 듣느라고 매우 분주하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곳에 사마리아의 송아지를 둔다. 또한 초라하고무가치하며 사라져 버릴 유해한 곳이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가 된다. 따라서 그 결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있게 되는 것이다.
선지자는 그들이 계속해서 구할 것이나 얻지 못하리라고 말하였다. 물질주의는 끝없는 욕망이다. 감각주의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아편이다. 새로운 것은 유해한 자극제이다. 인간의 마음은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으로도 안식이나 평온을 얻지 못한다. 침착치 못한 것은 열광의 징후이며, 열광은 대단히 파괴적인 불이다.
여호화의 말씀에 대한 기갈이 있을 이유로 결코 없다. 아모스가 기갈의 문제를 설명하에 있어서 생략한 것들이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그는 완전히 성장한 남녀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노인들에 관해서도 전혀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물론 그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기갈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은 더 나아지기를 꾀하기보다는 과거에 안주하려 한다. 노인들은 옛날 일을 생각하며, 계속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고통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선지자는 기갈의 결과를 말하면서 젊은이 곧 가장 강하고 가장 희망적이며 아름다운 젊은 청년들과 처녀들을 언급하였다. 그는 가장 좋은 시기의 인생을 묘사하였지만, 그에 대해 말하기를 '갈하고 피곤하리라'고 하였다. 아모스가 언급하지 않았던 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아침에는 어두워지며, 한낮에는 대소동이 일어나고,밤에는 한 점 별빛도 없게 된다. 아름다운 처녀들과 젊은 남자들로 상징된 가장 훌륭한 능력들이 올바른 영감의 결핍으로 실패하고 타락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우리 세대에 대한 히브리 선지자의 음성이며, 오래 전 이스라엘에게 선포되었던 것만큼 확실히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을 통해 먼저 우리는 특권에 따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에게는 빛이 주어졌었다. 그들에게는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책임은 아모스가 언급한 다메섹과 기타 나라들의 책임보다 훨씬 컸다. 나는, 오늘날 우리나라보다 큰 특권을 가진 나라는 없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 비례적으로 커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데에 주저치 않는다. 나는, 이 시대에 있어서 아마도 가장 희망적인 징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지를 깨닫고 있다는 증거가 보인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서나 사람들은 이렇게 탐문하고 있다."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는 언제나 말씀하고 계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의 징표라고 거듭 말하는 바이다.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듣기 위해 멈추어 설 때 기갈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뛰어난 비유 속에서 우리는, 권위에 복종하기를 거부한 것 때문에 기근이 든 곳에 처하게 되었던 한 인간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다. 우리는 그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있다. 그가 우선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되었을 바로 그때는 헐벗고 굶주림의 고통으로 쇠약해졌을 때였다. 그때 그는 두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즉 그것은 그 자신의 극도의 궁핍함에 대한 깨우침이며 아버지 집에 있는 풍족한 양식에 대한 깨우침이었다. 그곳으로 가면서 이렇게 말하는 자는 남녀를 막론하고 복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힘은 그와 같이 돌아서는 자세에서 생기는 법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 4:4,참조 신8:3).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다. 만일 인간이 기다리며 귀기울이려 한다면,그 말씀이 혹 희미한 속삭임 뿐이건 천둥소리 같건 그의 음성은 계속 들릴 것이며,따라서 기갈은 사라지며 삶은 충만하고 만족스러워질 것이다.
영국 성서 공회(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는 1936년 '밀물'이라는 제목의 간략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보고서에서 우리는,공회 역사상 어느 해보다도 그 해에 숫자적으로 훨씬 많은 성경이 보급되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다. 그는 현재도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시다. 지금도 성경은 팔리고 있으며 배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가길이 있다. 이 성경책을 사서 읽는 것은 가능하며 그것을 연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ㄷ지는 못하는 것이다.
또다른 히브리 선지자는 하나님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으로 선포하였다.우리가 얼굴을 그에게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영혼 깊은 곳을 향해 말씀하시며 충만하고 결정적인 권위로 말씀하시는 그의 음성을 듣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 모두는 물론 개인 개인에 대한 것이지만 국가적으로도 똑같이 해당되는 것이다. 이 나라에는 아직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있다. 우리는 예수께서 완전하고 궁극적인 삶의 철학을 보여 주시기 위해 인용하시면서 재강조하신 예수 모세의 말로 되돌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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