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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예레미야애가

[스크랩] 예례미아 애가 4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8:08

예례미아 애가 4장 주석

 

=====4:1

  어찌 그리...정금이 변하였으며 - 금이나 정금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하

여, 본 구절의 원래 히브리어상에 어떤 수정이 가해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그토록 소중한 것이 제 값어치를 못하는 모습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문구로  이해

될 수 있다(마 5:13 참조).  본 구절의 '금'이나 '정금'에 대해서는 (1) 유다백성, (2

)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 혹은 (3) 성전과 그 장식품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들이  있

는데, 본절 하반절로 미루어볼 때 세 번째 견해가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다(Ellison).

한편 '금'과 '정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각각 '자하브'(*      )와 '케템'(*       )

인데, 전자는 '반짝반짝 빛나다'는 뜻의 사용하지 자낳는 어근에서 유래한 말이며, 후

자는 '조각하다', '새기다'는 뜻인 '카탐'(*       )에서 유래했다.


=====4:2

  어찌 그리...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 예레미야가 종종 사용한 토기장이의

비유를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는 유다에게 임한 현재의 환난이 범죄에 따른

하나님의 주권적 심판의 결과임을 암시하고 있다(Calvin).


=====4:3

 들개 - 로 번역된 히브리어 '탄닌'(*         )을 히브리인들은 대개 '바다  괴물'

로 이해하였는데(sea-monsters, KJV), '뱀'(Calvin), '고래'(Clarke) 혹은 '들개'(jac

kals, NIV, RSV)로 번역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짐승은 잔인하여 제 새끼마저도 제대

로 보살피지 않는데 유다 백성이 이 짐승보다 더 잔인해졌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이

본 구절의 의도이다.  또한

   광야의 타조 - 는 알을 낳자마자 그것을 잊어버리고 내팽개치는 우둔한 새로서, 혹

독한 기근으로 인해 자녀들을 제대로 먹일 수조차 없어진 유다 백성을 비유하고 있다. 

즉, 본 구절의 강조점은 유다 백성의 잔인성 자체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광야에 타조나

들개마냥 잔인해지게끔 만든 환난과 기근의 심각성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Calvin).


=====4:4

  최우선적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할 젓먹이와 어린아이들마저 굶주림에 시달려야  한

다는 것은 극도의 기근 상태를 보여준다.  예루살렘성은 바벧론 군대에 의해 오랫동안

포위당해 있었으므로 함락 직전에는 기근이 극치에 달해 있었다(10절 참조).

 

=====4:5

 진수 - 를 먹고

   붉은 옷 - 을 입는 것은 부유함에 대한 표시라 하겠다.  그러나 극심한 환난  가운

데서는 사회적인 특권과 재물로도 음식을 구할 수 없었다.  한편, 본절의 묘사는 고대

동방 세계에서 패망당한 성읍 거민의 비참한 처지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종종  쓰였다. 

유다 백성의 경우는 거듭되는 선지자들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회개했었다면 이렇듯  비

참한 지경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지만 끝내 완악한 마음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환난을

자초한 꼴이 되고 말았다(Harrison).


=====4:6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경각간에 무너지더니 - '사람의 손'으로 번역된 '야드'(*

   )는 '일격', '공격'이란 뜻도 지닌다.  그리고 '대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루'

(*       )의 어원은 다소 불명확한데, 아마 '돌진하다', '떨다', '몸부림치다'란  뜻

의 '홀'(*       )에서 유래한 듯하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아무런  두려움도  느낄

틈도 없이 경각간에 공격당해 파괴되었다.' 혹은 '사람의 손을 빌지 않고 일순간에 파

멸되었다'는 정도로 이해될 수 있겠다.  어쨌든 본절은 유다의 죄와 심판이 소돔의 그

것보다 더 크고 심각하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는데, 소돔은 음란과 더러움으로  인해

멸망당한 존재의 대명사와도 같은 도시이다(창 19:1-28; 유 1:7). 한편

   죄와 죄악 -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온'(*       )과  '하타트'(*           )는

모두 '죄' 및 그에 따른 '징벌'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4:7,8

  5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부귀를 누리던 유다의 지도층 인사들의 수치와  파

멸이 다시금 언급된다.

   존귀한 자 - 에 해당하는 '나지르'(*        )는 '나실인'을 뜻하기도 하나(Calvin

), 여기서는 단순히 '유력자' 혹은 '존귀한 자'정도의 의미로 번역함이 무난하겠다(Bl

ayney). 이에 대한 예로, 창 49:26에서 이 말이 요셉에게 적용된 바 있음을 들 수  있

다.  그리고 '산호'(*        ,  파닌)는  '진주'(Bochart),  '천연자석'(Parkhurst),

'루비'(Calvin)등으로도 번역되며, 붉은 색을 띤 보석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4:9,10

 선지자는 앞에서 갑작스럽게 멸망한 소돔이 차라리 유다의 형편보다는 나음을 언급

한 바 있거니와(6절), 여기서는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를 보여준다.   극한  기아

상태에 빠져 온갖 괴로움을 당하며 서서히 죽어가는 광경(9절)과 심지어 자기  자녀를

삶아 먹는 광적인 모습(10절)이 바로 그것이다.  북이스라엘이 아람의 침공을  당했을

때에도 10절과 유사한 장면이 묘사된 적이 있다(왕하 6:24-29).  이런 상상하기  조차

힘든 만행은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자녀의 어머니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데서 더 큰  전

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이 부녀는 '자비한' 영인으로  묘사되고  있음에  유의하라.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흐마니'(*            )는 '동정심이 많은', '인정  많은'

이란 뜻으로 모성애(母性愛)의 일면을 암시하는 말이다.


=====4:11

  본절은 유다의 멸망이 하나님의 주권적 심판 행사(行事)로 말미암은 것임을 확언한

다.  특히 '그 지대(地臺)를 사르셨도다'라는 표현은 유다에 임한 심판의 철저함과 심

각성을 잘 드러낸다.  어떤 건물에 불이 났을 경우 지상의 건물 벽이나  지붕은  쉽게

타지만 기초 공사의 토대까지 타버리는 일은 여간해서 보기 힘든 것이다(Calvin).


=====4:12

 세상 열왕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 이는 예루살렘이 천연적, 인위

적 방어망으로 인해 난공 불락의 요새로 간주되었던 사실을 다소 과장하여 표현한  내

용이다(Ellison).  아울러 이 표현 속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성도(聖都) 예루살

렘은 결코 함락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유다 백성들의 자만 섞인 기대도 반영되어 있

는 것 같다.  한편 심판의 원인을 기술한 본절 이하의 내용은 신 29:14 이하의 내용을

상기시킨다.  '백성'에 해당하는 '요쉐베'(*        )는 '(재판 자리에)  앉다'  혹은

'거주 하다'는 뜻인 '야솨브'(*     )에서 유래한 말인데, 혹자는 이를  '통치자들'로

번역하나(Hillers) 단순히 '거주자들'이란 뜻으로 이해함이 무난하겠다.


=====4:13

  저자는 예루살렘 패망의 1차적 원인을 당시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게 돌리고  있

다.

   성읍 중에서 - 라는 말은 의인에 대한 그들의 핍박이 공개적으로 자행되었음을  암

시한다(Clarke).  특히 선지자는 제사장과 같은 종교적 지도자들의 범죄는 일반  백성

들의 영적 안목을 흐리게 하기 십상이었고 죄앙까에 대해 뻔뻔스러운 마음을 품게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백성들의 죄에 대한 책임이 면제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래도록 참된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셨으나  그들

이 진리보다는 거짓을 더 사랑하고 스스로 왜곡되고 망령된 행실을  일삼았기  때문이

다.


=====4:14,15

  본 구절들은 아주 난해한 부분이다.  해석의 관건은 '저희'를 누구로  보느냐이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를 유다 백성 개개인들을 일컫는다고 해석하지만(Hillers, Rudolph

), 그보다는 앞절에서 지적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문

맥적이다.  즉 저들은 무죄한 피를 흘린 가인의 표를 받은 자들로서 가는 곳곳마다 배

척과 멸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소경같이 방황함이여 - 이는 예수께서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말씀을  연상

시킨다(마 15:14; 23:16).  유다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는 커녕

스스로 거짓된 말로 미혹하고 범죄에 앞장섬으로써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함

께 구덩이에 빠지는 처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부정하다...만지지 말라 -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정결을 담당하는 직분임에도  불구

하고, 여기서는 그들이 도리어 부정한 자로 취급당하고 있다(레 13:45, 46참조).


=====4:16

  여호와 - 로 번역된 히브리어 '페네 야훼'(*                  )는 문자적으로 '여

호와의 얼굴'이다.  악인들에 대해 진노하시는 여호와의 얼굴에 관한 묘사는 레 20;3,

6; 시 34:16; 겔 14:8 등에도 나온다.  한편 본절의

   저희 - 에 대해서도, 앞의 두 절의 연장선에서 13절의 종교  지도자들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Ellison) 그보다는 포로지에서 만나게 된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듯

하다.


=====4:17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 - 이는 애굽을 가리킨다.  예레미야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의지하도록 거듭 촉구한 바 있다(렘 38:17-19).   한편,

본절에서 예레미야는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동족의 죄악을 자신의 것으로  고백

하고 회개하고 있는 바, 이것은 어떤 이들의 주장처럼 본문의 예레미야 저작설을 부인

케 하는 표현이 아니라 도리어 유다의 운명에 동참하고자 하는 선지자의 참다운  민족

애를 보여주는 것이다.


=====4:18

  저희가 우리 자취를 엿보니...거리에 행할 수 없음이여 - '엿보니'의 히브리어 '차

두'(*       )를 '차단하다'는 뜻의 '차라르'(*       )에서 유래한 말로 보고,  본절

을 '우리의 걸음이 너무도 차단(제한)되어 있어 밖에 나갈 수조차  없다'고  번역하는

이들도 있다(Ehrlich, Ginsburg).  그러나 굳이 맛소라 사본(M.T)을 변형시키지  않아

도 본절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는다.  즉 '차다'(*       )는

'추적하다', '매복하다'는 뜻인 바, 본절은 얼씬 거리지도 못하게 된  살벌한  상황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4:19

 앞절에서는 유다 백성들이 성 안에서 제대로 돌아다닐 수 없음을 언급하였는데, 본

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광야나 산골짜기로 도주해 보았자 곧  추적당하고  만다고

하는 진퇴양난의 절박한 상황을 묘사한다.

   한편 독수리 - 는 바벧론을 상징하는 말로 언급되었으며(사 46:11) 여기서는  특히

독수리의 민첩성과 파괴적인 공격성에 초점을 맞추어 사용되었다.


=====4: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 - 혹자는 이를 요시야에게 적용시키려 하

나 그것은 무리한 해석이며, 문맥상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를 지창함이  분명하

다(Calvin, Clarke).  '콧김'으로 번역된 '루아흐'(*       )는 '호흡', '생명'이라는

뜻도 내포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한 개인에게 있어 호흡이 중요하듯이, 국가에  있어

왕이 차지하는 위치가 그만큼 중요했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 말속에는  인간  왕을

생명처럼 의지하던 과거의 소위(所爲)가 얼마나 어리석었던지를 자조(自照)하는  의미

도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왕권을 충실히 대리할 때에 실

로 생명과 같이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었지만, 대다수 열왕들은 그러지 못하였다.


=====4:21,22

 지금것 절망적인 현실에 절규하던 선지자의 목소리는 극적으로 희망의 목소리로 바

뀐다.  공허한 희망은 사라졌지만 엄연한 현실에 입각하여 새롭게 제시되는 참된 소망

과 비전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유다의 모든 대적들을 대표하는

   에돔(사 34장; 겔 35장)에게 시인은, '심판이 가까워오고 있으니 즐거워할 수 있을

때 실컷 기뻐해보라'고 조롱조로 말한다.  그리고

   벌거벗으리라 - 는 말은 수치와 죄악의 폭로뿐만 아니라 노예로 잡혀가게 될  것도

암시한다(사 47:2, 3참조).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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