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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예레미야애가

[스크랩] 예례미아 애가 2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8:07

예례미아 애가 2장 주석

 

=====2:1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 하나님의 진노는 마치 천둥치는 구름처럼 유다

왕국을 덮고 있으며 무서운 권세로서 그 진노를 폭발 시키실 것이다.  이와 유사한 표

현한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도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사 1:7; 렘 4:31; 6:2,23 등

).  이 민족은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특권을  나

타내는 증표로만 생각했었으나, 도덕적, 영적 영역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를 다하

지 않는 한, 그런 특권적 위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 민족의 찬란하던 수도는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신성 불가침으로 여겨졌던 성소, 곧

   발등상도 정복자들에게 짓밟혔다.  성소가 이처럼 파괴되었다고 하는 것은  선택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한다(Harrison).


=====2:2

  전유다가 황폐해졌다.  70인역은 '나라' 대신에 '왕'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왕

과 그 대신들도 그들의 영광스럽던 신분을 다 상실했다.

   욕되게 하셨도다 - 의 히브리어 '할랄'(*       )은 '상처를 입히다', '살해하다',

'모독하다', '더럽히다'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2:3

  이스라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 '뿔'에 해당하는 '케렌'(*        )이란  말은

구약에서 권세와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흔히 사용된다(신 33:17; 삼상  2:1,  10;  암

6:13; 미 4:13).  본절은 거대하고 튼튼한 성과 요새들이라도 하나님의  분노가  집어

삼킬 때는 막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


=====2:4

 시인은 여기서 신인 동형론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서 하나님을 자기  백성에  대한

강력한 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백성들은 오랫동안 죄와 우상 숭배에 젖어서  하

나님께 대항하여 왔었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행사되었던  하나

님의 권세가 이제 이들을 파멸시키는 목적으로 등장한다.  본절에는 불타오르는  장막

이 예화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우리는 좋은 것이면 무엇이나 약탈해 가는  약탈자의

모습을 상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이들에게는 그나마 약탈해 갈 만한  좋

은 것도 없다.  또한

   불 - 의 이미지(image)가 사용되었는데,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이를 심판에 대한 상

징으로 사용하셨다(마 13:42; 18:8; 25:41 등).


=====2:5

  근심과 애통 - 은 히브리어 '타아니야'(*            )와 '아니야'(*          )를

번역한 말이다.  이 두 단어는 동의어로 두운법을 이루고 있으며  통렬하고  날카로운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개역 성경에서는 그런 뉘앙스가 잘 살아나지 않는다.


=====2:6

  '성막'으로 번역된 '소크'(*     )는 원래 '오두막', '천막'이란 뜻이며, '공회 처

소'(*        , 모에드)는 원래 '성회'(聖會), '집회 장소'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이

둘 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칭하는 듯하다.  또한 '초막같이'의 히브리어 '카간'(*    )

은 문자적으로 '정원같이'로서 원문상의 정확한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는다.  70인역(

LXX)은 '덩굴(포도나무)같이'라고 읽고 있다.  또한 성전과 함께 '왕과 제사장'이  언

급되고 있는데, 이는 왕정 정치의 일면을 보여준다.  즉 왕은 물론  제사장  직무에서

배제되어 있었긴 하난, 그는 이를 보호,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던 듯하다(Ellison).


=====2:7

 여기서는 예루살렘이 약탈당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수세기 동안  이  민족의

자존심이었던 찬란한 솔로몬 성전도 이 파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궁장(*                           , 호모트 아르메노테하).  곧 왕궁 벽돌은 성전

복합 건물의 일부였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제단, 성소와 함께 언급되고 있는 것

이다.  성전은 몇개의 부속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7년에 걸쳐 건축되었고 왕궁

을 세우는 데 다시 13년이 걸렸었다.  한편

   훤화(*        , 콜) - 는 적들이 승리를 기뻐하며 내지르는 함성을 말하는 것으로

서, 히브리 경배자들의 축제 함성이 아니었다(Harrison).


=====2:8

  여기서는 건축자가 어떤 건물을 파괴시키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한치의 오차도  없

이 시행하는 것을 예로 들어서 여호와의 주건적 의지에 따라 시온이 황폐화되는  상황

을 묘사하고 있다.  이곳의

   곽 - 곧 성벽이란 말은 일부로서 전체를 가리키는 환유법적 표현으로서,  예루살렘

성벽 전체를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의 파괴 작업은 너무나 정확하고 섬세하여서 성전

돌 하나가 다른 돌 위에 놓이지 않을 정도였다.  기독교 초기에 예루살렘은 다시 이런

운명을 당하게 된다(마 24:2; 막 13:2; 눅 19:44; 21:6, Harrison).


=====2:9

  7절에서는 성전 파괴에 대한 애도의 노래가 울려 퍼졌으나, 8절과  본절에는  다시

예루살렘 성의 파괴와 왕이 포로로 잡혀가는 사건을 애도하고 있다.

   율법 없는 열방 가운데 있으며 - '율법 없는'(*                 ,  엔  토라)이란

말에 대해 혹자는 판이나 돌에 새겨 성전에 비치된 율법이 갈대아인에 의해  파괴되어

없어져버린 사실을 가리킨다고 본다(Gataker).  그러나 한글 개역 성경처럼 이를  '열

방'을 수식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겠다.  이스라엘은 제의적, 도덕적,  시민법

적 차원의 율법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특권을 누렸으나 이를 거역하고 파기함으로써,

이제 이방 땅에 추방당하여 율법 없는 이들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Calvin).


=====2:10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 '장로들'은 가문의 머리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

리고 민 11:25에는 모세를 도와서 백성들의 재판을 주관하기 위해서 장로 70인이 임명

되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출 24:1 참조).  그리고 가나안 정착 시대 이후에는 각 고

을에 장로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지역적 문제를 관장하였다(신 19:12; 21:2; 삿  8:14

참조).  '이스라엘의 장로들'로 알려진 이 국가적 위치의 집단은  포로기를  전후해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제 이 땅이  황폐해졌기  때문에

장로들은 더 이상 시민의 업무에 관여할 것이 없었다.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란

말은 슬픔과 애도의 독특한 표현이었다(욥 2:12; 겔 27:30).  '굵은 배' 옷은  초상집

에서 입던 것으로서, 고인을 애도한다는 의미를 가졌다(창 27:34; 삼하 3:31).   이것

은 주로 자며소 털로 만들어졌으며 검은 색깔이었다.


=====2:11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 졌으니 - '창자'와 '간'이란 말은 예리하고도

견딜 수 없는 감정적 혼란이나 슬픔을 상징한다.  간은 정신적 요소를 담고 있는 것으

로 여겨졌으가, 또한 깊은 정서적 반응과 결부된 곳으로 여겨졌다.  몇몇 영역 성경들

은 이를 심장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heart, NIV, RSV), 이와 동일한 뜻을 지닌  것으

로 여겨졌기 때문이다(Harrison).


=====2:12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 예루살렘 포위 공격 동안 어린 아이들이

당한 그 처절한 운명이 언급되면서 슬픔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 주제는 19-21절과

4:4, 10 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곳에 보여지는 생생한 장면은 그것을 묘사한 자가 목

격자임을 분명하게 나타내 준다.  이 아이들은 어미 품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양식을 호소하고 있다.  '곡식과 포도주'란 것은 문자 그대로의 뜻을 나타내기 보다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식량에 대한 일반적 표현이다.  한편, 이런 장면들은

민족이 회복될 때의 약속의 상황, 곧 예루살렘 거리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  노는

행복한 때와 뚜렷이 대조를 이룬다(슥 8;5).


=====2:13

  시인은 그들의 고난이 너무나 커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굳이  비교

한다면 바다의 크기에나 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바다는 그 크기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도시의 황폐가 마치 태초의 혼돈의 바다를 연상시킴도 아울러 말하고

자 하는 것 같다(Ellison).


=====2:14

본절에서 시인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거짓 선지자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였음을 밝

히며(렘 23:18-22; 겔 13:10-16), 또한 이 거짓 선지자들을 환영하고  좇은  백성들의

영적 우매도 신랄하게 지적한다.  거짓 선지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위대하고도  찬란

함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또 신성 불가침이라는 대의 명분에만 집착하고 있어서  그들

이 해야 할 의무는 실행치 않고 기득권 유지와 세속적 인기에만 연연하고 있었다.한편

   어리석은 - 이라 번역된 '타펠'(*       )은 음식에 적용될 때에는 '평범한',  '맛

없는'이란 뜻이지만 '우둔한', '거짓된'의 의미도 내포한다(Calvin). 

    

=====2:15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 유다 대적들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그것

이 마침내 이루어짐으로 매우 기뻐하는 광경이다.  한편, 고대에 각 도시들은 그 자체

의 신들을 섬겼는데 그 신들이 비록 서로 경쟁적 위치에 있기는 하였으나 재난을 당할

때는 공개적으로 비웃거나 하는 것을 자제하고 상호 묵과해 주는 것이 일반적  관습이

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루살렘 멸망을 두고 대적들이 기뻐 뛰며 조롱과  혐

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Ellison).


====2:16

  우리가 저를 삼켰도다 -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유일한 하나님이시고 또  이스라엘이

그의 백성이며 예루살렘이 그 수도임을 주장하면서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자

부심에 대해 주변 국가들은 시기하고 있었던 빠, 그 도시가 파괴되자 마치 자신이  예

루살렘을 멸망시킨 것처럼 기뻐하였다.


=====2:17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 여기서 시인은 유다를 대적자들의 비소거리

로 전락하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분면히 지적한다.  포로기 이전 대다수  유

다인들은 하나님의 성품에는 변함이 없으심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이 그 성전을 버린다

는 예레미야의 신탁을 노골적으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이  선

언하셨던 내용은 오경에 잘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그 뜻에 불순종하는 것에 대한  처

벌이었다(레 26:1-45; 신 28:15-68).


=====2:18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 본절에서부터는 주제의 흐름이 급격히 바뀌

고 있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변화는 이 책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시인은 황량한 이 도시를 향해서 하나님께 탄원할 것을 촉구한다.  '처녀 시온의 성곽

아'라는 말은 그곳 인구 전체를 집합적으로 가리키는 표현이다.  맛소라 본문(M.T.)은

'주'란 말과 '성곽'이란 말을 나란히 병기함으로써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대상이었던 사실을 암시하는 듯하다.


=====2:19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 '경'(*               , 아쉐무로트)이란 밤을

12 등분하는 시간 단위였다.  이곳의 '밤 초경'이란 말은 아마도 밤 동안에 어떤 간격

을 두고 계속 애곡하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생존자들의  잠을

깨워 이전의 죄악으로 인해 처절한 심판을 받았다는 슬픈 사실을 상기 시키기  위함이

었을 것이다.  그리고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 라는 특이한  표현은  열정적이고도

진지한 기도를 나타낸다(Harrison).


=====2:20

 여인들이...아이를 먹으오며 - 부모들이 굶주림에 견디다 못해 죽은 자기 자녀들을

먹는 끔찍한 장면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광경은 예루살렘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

하고 허물어져 간 그 당시의 비극적인 상황(렘 3:23-26)을 극명하게 반영시키고 있다. 

아마 시인의 뇌리에는 그때의 그 사건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한

편, '손에 받든'에 해당하는 '티푸힘'(*            )을 70인역(LXX)은 '젖을 빨던'이

라 의역하였고, 탈굼역(Targum)은 '비단옷을 입은'이라고 옮겼다.  그러나 개역  성경

처럼 '손에 받든'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원문적이라 하겠다(Blayney, Calvin).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 은 여호와의 집과 관련된 최고의 영적 전통의 근간이  되었

던 무리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이 범죄하였던 그 무대 위에서 종말을 맞게  되었

다.  그 어떤 제사 의식이 종교 행사라 하더라도 그것이 신적 권위를  가질  때에야만

효력이 있었고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외적인 제사보다는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정결한 상태에서 마음으로 예배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

나 강조해 오셨던 것은 제사 절차라는 기계적이고 의식적인 것 자체보다는 순수한  동

기에서 비롯된 영적인 예배를 추구하는 일이었다(삼상 15:22; 시 51:17).


=====2:21

  내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나이다 - 젊은 남녀들이 살육당한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세대란 점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였다.   시온은  이제

바람의 씨를 뿌리면 결국 태풍을 거두게 된다는 쓰라린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

고 이러한 고난은 변함없으시고 또 일관된 신적 심판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2:22

 절기 -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에드'(*        , 1:15)는 '정해진 시기', '모임'

, '지정된 장소'란 의미를 가지는데, 주로 정해진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서 종교적  절

기나 축제를 지키는 것을 가리켜 쓰인다.  사 33:20에는 시온이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으로 묘사되었고 시 74:4에서는 이 말이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적용되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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