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7장 주석
=====17:1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 본문을 통해 우리는 비문을 새겨 넣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도구로 새기는 대상물은 대개 바위였는데, 요기서는 유다의 죄악을 새
겨 넣을 매개물이 그들의 마음 판인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 그들의 죄악은 깊이 뿌리
박고 있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본서 후반부에 묘사되고 있는 것과 같이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철저한 변화(31:31-34)가 일어나기 전에는 결코 박멸될 수가 없었다
(Thompson).
=====17:2
정형 동사(finite verb)가 없는 관계로, 본절은 해석하기 어렵다. 대략 다음 다음
두 가지 정도로 해석이 갈린다. (1) 사람들이 그 자식들을 간절히 생각하듯이, 그들의
우상 제단들을 생각한다(NASB). (2) 유다의 자녀들이 그 부모들에 의해 우상 숭배에
너무 물들어 있어서, 조그마한 부추김에도 쉽사리 그러한 욕구가 발동된다. 문맥상 두
번째 견해가 더 타당하리라 이해된다(Feinberg). 아세라들이란 아세라 우상을 새긴 목
상(木像)들을 가리킨다. 아세라는 고대 근동의 여러 족속, 특히 아모리족과 가나안족
이 숭배한 여신(女神)으로서 '아낫'(Anath), '아스다롯'(Ashtaroth)과 더불어 가나안
의 3대 여신 중 하나였으며, 이스라엘 역사에 일찍부터 등장한 우상이다(신 16:21).
따라서 본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우상 숭배에 대한 암시가 나타난다 하겠다.
=====17:3
들에 있는 나의 산아 - 여기서 예레미야는 유다 땅을 향하여 말하고 있는데, 거기
는 산이 많은 지역이었다(신 3:25). 그리고 예루살렘이 부분적으로 언덕 위에 건설되
어 있었기 때문에 유다 따의 대표격으로서의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으로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Clarke).
=====17:4
유다 백성이 유업으로 받은 땅을 상실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이다. 그 백성은 여호
와의 오래 참으심을 무시함으로써 여호와의 분노를 격발시켰던 것이다. '손을 떼다'는
뜻으로 번역된 '솨마트'(* )를 '안식년'을 의미하는 '솨바트'(* )의 어
근으로 보고, 본절이 시사하는 바 안식년 규례를 지키지 않는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
님의 징벌로 이해하는 사라모 있다. 그러나 이는 다소 지나친 해석이다(Feinberg).
=====17:5
본절에는 사람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히브리어가 세 개 등장한다. 이를 순서대로
살펴보면, 맨 처음 '사람'으로 번역된 '아담'(* )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인간을
뜻하며, '혈육'으로 번역된 '바사르'(* )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대조되는 인
생의 연약성과, 결함을 시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의 '사람'에 해당하는 '게베르'(*
)는 '강한 자', '용사' 등의 의미를 내포하는 말이다.
=====17:6
사막의 떨기나무 - 가지만 앙상한 작은 관목이나 두송(杜松)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 나무는 메마르고 무익함을 나타내기 위해 여기 언급되고 있다(Clarke).
=====17:7,8
앞의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축복받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여호와를 언약의 주로 인정하며, 그에게 복종한다. 내용상 시 1:3과 다소 유사한데 거
기서는 복있는 사람이 물가에 심기워 과실을 맺는 나무에 비유되었으며, 여기에는 보
다 더 능동적이고 동적인 차원에서 언급되어 있다.
=====17:9
'마음'이란 것은 인간의 생각과 행위의 원천이다. 여기서는 그것이 모든 것보다 거
짓되다고 묘사되어 있다. 본절을 원문에 충실하게 다시 번역하면, '마음은 그 어떤
것보다 더 더럽고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누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다.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 인간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이 마음을 하나님은 꿰
뚫어 보시며 그것을 살피신다. 한글 개역 성경은 9절의 '레브'(* )라는 히브리어
를 '마음'으로 번역하였고 본절의 '켈레요트'(* )를 '심장'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둘을 서로 바꾸어 번역해도 무방하겠다. '마음'으로 번역된 '레브'는 앞으
로 살펴보았듯이 생각과 의지의 중심으로 그리고 본절의 '켈레요트'는 다소 감정적인
요소의 중심으로 대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두 낱말은 공히 인간의 성품과 인격
을 나타내는 내면적 요소들을 총망라할 때 쓰였다. 인간에게는 숨겨진 것이라 하더라
도 여호와께는 숨겨진 것일 수가 없는 것이다(Thompson).
=====17:11
여기서는 불의로 재물을 축적하는 자가 자기 알이 아닌 것을 품는 새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 비유의 핵심은 불의하게 모은 재물은 그만큼 쉽게 허비되며 상실되어지고
만다는 데에 있다(잠 23:5 참조). 더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 모으는 데
에만 혈안이 된 자는 이미 영적, 도덕적 파산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하겠다.
=====17:12
영화로우신 보좌 - 이는 여호와의 임계를 상징하는 성전, 혹은 예루살렘을 가리킨
다. 불의로써 치부로 재물이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와의 보좌는
영원하므로 참된 의지처가 된다.
=====17:13
본절에는 이스라엘의 소망(* , 미크웨 이스라엘)이라는 대단
히 중요한 단어가 쓰이고 있다(14:8;50:7 참조), 이스라엘은 위기의 때뿐만아니라 언
제든지 그들의 희망의 근거로서 여호와께 의지하여야 했다. 따라서 여호와를 배신하는
자들은 스스로 그 희망의 근거를 무너뜨리며 또 언약을 거부하는 셈이 되었다(Thomp
son).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 여호와를 버리는 자는 결코 참된 영예를 얻지 못할 것이
다. 그들의 이름은 먼지 중에 기록될 것이며, 바람이 불기만 하면, 그 이름은 몽땅 너
날려가 지워져 버리고 말 것이다(Clarke). 이는 그 이름이 영원히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과 대조된다(빌 4:3)
=====17:14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선포된 메시지는 동족들에게 환영받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
어서, 때때로 그는 심각한 위기와 고통에 처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했다
(15:18). 오직 여호와만이 자신을 구해내시며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이 본절에서는 강
하게 반영되어 있다. 치유와 구원에 관한 예레미야의 갈망은 대적들의 핍박으로부터의
구원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서 흔들리고 허물어져 가고 있는 자신의 영적 질병에 대한
치유까지 포함하고 있다 할것이다.
=====17:15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 여기서 예레미야는 예언 성취를 입증할 만한 증거
를대라고 조소하는 자들의 말을 인용한다(Thompson). 이는 또한 '여호와의 위협과 공
갈이 성취된 것이 어디 있느뇨? 너는 이 성과 성전이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말해 왔었
다. 그러나 그 사건이 일어난 증거가 전혀 없다'라는 조롱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
나 예언된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하고 말았으며, 그 모든 심판 선언들이 그대
로 성취되었다(Clarke).
=====17:16
동족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맡은 바 사명을 내어버리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내용이
다. 이런 맥락에서 클라크(Clarke)는 계속 이렇게 지적한다 : '예언을 신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재앙이 속히 닥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나는 오히려 재판을 잠시 연기
시켜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발자취를 따라 당신의 진리를 선언하였습니
다. 나는 선지자 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주께서 명령했으므로, 나는 순종했을 뿐입니
다.' 한편 '목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 )를 '라'(* )로 보고
'악', '재앙'의 뜻으로 이해하는 입장도 있다(RSV, NEB, JB). 그러나 이는 맛소라 본
문상의 히브리어에 모음 변화를 가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이
더 나을 것이다(KJV, ASV, NASB, NIV).
=====17:17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 예레미야는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두려움
이 되지 마시고 그의 '피난처'(* , 마하세)가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피난처
란 말과 이 말의 동사인 '피난하다'(* , 하사)는 어떤 대상에 대한 강렬한 신
뢰와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로 쓰였다(시 16:1;사 14:32;30:2 등 참조). 그리고 하나님
이 무죄한 자를 변호할 것이라는 믿음은 애도의 시에서 종종 나타난다(시 17장 참조,
Thompson, Harrison).
=====17:18
나를 박해하는 자로 수욕을 당케 하시고 - 적에 대한 보복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울
부짖고 있는데, 이 같은 형식의 애가는 시편의 애가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한다(20:12;
시 17:13, 14 참조). 예레미야는 핍박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지자적 사명을 포
기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백일 하에 진실이 드러나게 될 때까지 대적들의 박해를 멈
추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그 때가 되면, 그가 믿음으로 선포해 왔던 메시지가 단순히
그읨 말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음을 분명히 입증될 것이다(Harrison).
=====17:19
유다 왕들의 출입하는 평민의 문 - 안식일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예레미야가 서
서 외쳤던 '평민의 문'이 어디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맛소라 사본은 이곳을 '백성들의
아들들의 문'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이런 명칭의 문이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고 도 어딘지 밝혀지지 않았다. 많은 학자들은 이를 베냐민의 문에 대한 필경사의
오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Nicholson, RSV). 이곳을 베냐민 문으로 주장하는 견
해는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문서상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 브라이트(Bright)도 이를
부인하고 있으며, 베냐민문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
은 본문에 대한 안일한 독법이라고 지적하였다,. 아무튼 이 문은 예루살렘 성벽 북쪽
에 있었던 것 같으며, 베냐민 영토로 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 붙어 있는 '유다
왕들의 출입하는 '이란 수식 어구에서 '유다 왕들'은 왕과 그를 보좌하였던 방백들을
포한하는 말인 듯하다.
=====17:20
유다 왕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 이 부분은 예레미야가 어떤 특정 계층을 지목하지
않고 모든 유다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된, 말씀을 선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만
약 이곳의 내용을 하나 하나 특정인을 향한 말씀이라고 한다면, 각 계층을 찾아다니면
서 말씀을 선포했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여기 언급된 자들은 최고위층에서부터
최하위층에까지 이르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다 여호와의 언
약 규정 조항에 포함되어 있었다(Thompson).
=====17:21
안식일에 짐을 지고 들어오지 말며 - 이 구절과 그 다음에 이어지는 절들을 보면,
유다인의 멸망의 근원중에 하나가 안식일 규례의 파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결국 희생 제사와 공적 예배에 대한 무성의와 태만으로 이어졌을 것이며 온갖 부
도덕한 행위를 촉발하고 말았을 것이다(Clarke). 한편, 안식일 준수에 대한 명령은 이
미 십계명에 포함되어 있었던 명령이다(출 20:8-11;신5:12-15).
=====17:22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 십계명에서 공식적으로 표명되었던 안식일
율법 규례에 대한 표현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안식일에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고
하는 명령은 출 20:9, 10과 신 5:13, 14에서 볼 수 있으며, 또한 안식일을 거룩히 지
키라고 하는 명령은 출 20:8, 11과 신 5:12에서 보인다.
=====17:23
그들은 목을 곧게 하여 -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들뿐만 아니라 현 세대의 유다 민
족 역시 여호와의 교훈을 듣지 않고 순복하지 않았다. 이러한 완악성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깊이 뿌리 박힌 고질적 병페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실례라 할 수 있겠다.
=====17:24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청종하여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 여기서는 언약 준수를
통한 축복이 '너희가 만일 청종하면'이라는 조건절로 도입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조건절은 '너희가 삼가 하면'이라는 강조형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두 가지 조건의 내용은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면'이란 조
건과 '안식일을 거룩히하여 아무 일이든지 하지 아니하면'이다. 얼핏보면, 예레미야는
이 민족의 생존이 안식일 율법에 대한 문자적 준수 여부에 조건적으로 달려 있다고 주
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런 맥락에서 본문에는 포로 후기
유다 종교가 강조하였던 안식일 문제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느 13:15
-22 참조) 그러나 이 문맥에서 이러한 주장을 펼쳐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예레미
야는 다른 어떤 선지자에 못지 않게 고대부터의 언약 전승과 밀접한 위치에 서 있었
다. 그리고 심지어는 마음에 새겨질 새 언약에 대해 말했을 때도 그는 여호와의 '법'
을 생각하고 있었다(31:33). 현 문맥에서는 다만, 십계명의 한 계명을 강조하였을 뿐
이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너희가 진실로(삼가)언약을 준수하
면'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7:23-26;11:6-8 참조). 그러므로 이것은 언약 요
구 사항의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안식일과 같은 언약 요구 사항
들 중의 하나를 도전적이고 공개적으로 파기하는 행위는 언약 전체를 거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상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17:25
여기서는 조건절(24절)에 대한 귀결절이 독특한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유다의
주권이 회복될 것이고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들이 또한 회복될 것이며, 성전의 의식들
이 회복될 것이다. 이러한 회복은 여호와께서 순종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시
는 언약의 축복 사항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신 28:1-14 참조).
=====17:26
여호와로부터 주어지는 축복의 또 다른 양상이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이 백성이
온 땅에서, 즉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지역과 서쪽으로 평지, 그리고 산악지
대에서부터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앞절과
결부에서 보면, 다윗 왕가와 성전, 그리고 예루살렘 성이 거명되었는데, 이 세 가지
요소는 언약 백성의 종교적, 정치적 존립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또한 언약의 주께 충
성을 다하고 언약의 요구 사항에 순종하는 것은 언약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17:27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 여기서는 앞의 내용과는 정반대되는 장면이 언급되고 있
다. 언약을 파기하고 불순종하게 되면 반드시 언약의 저주 조항이 발동되고 말 것이라
는 내용이 그것인데, 이러한 저주는 궁전을 사르게 될 끌 수 없는 불로 상징되었다
(49:27;암1:3-2:1). 본절에는 이렇게 될 경우 왕좌나 성전, 그리고 성(城)도 다 태워
져 없어질 것이라는 암시도 들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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