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4장 주석
=====14:1
가뭄에 대하여 - 팔레스틴 땅에는 강우량의 부족으로 원래 가뭄이 잦기는 하였으
나, 성경에서 가뭄은 기근과 함께 언약적 저주의 일환으로 나타나는 예가 많다(신 28
:23, 24 참조). 본문 역시 그러한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마땅하겠다(R.K. Harrison).
=====14: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애통하니 - 여기에서는 네 가지의 짤막한 서술들
이 등장하고 있다. '성문의 무리'의 문자적 번역은 '성문들'로서 유다의 전도시들을
가리키는 제유법적 표현이다. 예루살렘에서 울부짖으며 슬퍼하는 소리가 백성들 중에
서 올라온다. 우리는 민족 재앙 때에 볼 수 있는 민족적 애도의 장면을 소개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애도의 장면은 대개 곤경, 가뭄, 적의 침략과 그에 대한 패배 등에 대한
서술로 시작된다. 어떤 주석가들은 2-9절을 시편에 등장하는 애도가들과 같은, 예배석
상에서의 애도가로 이해하고 있으나(시 70, 74편 ; 욜 1, 2장) 근거가 불확실한 견해
이다. 클라크(Clarke)는 '애통하니'에 해당하는 '카다르'(* )를 '검다'라고 번
역하며, 슬픔과 재앙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서 머리에서 발까지 검은 옷을 뒤집어쓰
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다(Clarke).
=====14:3
그 머리를 가리우며 - '가리우며'의 히브리어 '하파'(* )는 '덮다', '가리
우다'는 뜻이지만 브라이트(J. Bright)는 본문을 '고개를 떨군 채'라고 번역하였다.
어쨌든 이는 당황과 비탄에 대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4절 끝부분에도 나온
다. 70인역(LXX)에는 4절 후반부에 이것이 누락되어 있다. 그러나 동일한 어구를 반
복하는 것은 히브리 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표현이다(Thompson).
=====14: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 '갈라지니'(* , 하타)는 '낙담하다'는
의미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메마른 땅이 쩍쩍 쪼개짐으로 인한 농부들의
비통한 심경을 암시적으로 전달하는 말이다(Feinberg). 한편 심한 가뭄시에 팔레스틴
땅의 균열은 어떤 곳에서는 폭이 한 규빗 정도 되는 곳도 있으며, 또 때로는 깊이가
사람의 키만큼 이를 때도 있다고 한다(Clarke).
=====14:5
가뭄으로 인해 들의 야생 동물들도 고초를 격는다. 암사슴이 새끼를 낳았지만 새
끼를 먹일 풀이 없으므로 그 새끼를 내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14:6
들 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같이 헐떡이며 - '사랑'으로 번역된 '탄님'(*
)은 때로는 하마와 같은 물 속에서 사는 짐승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이것은 보통
물 속에 있다가 건조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오곤 하였다. 그리고 들
나귀는 갈증이나 굶주림을 오래도록 견뎌내는 강한 체질을 가진 짐승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의 일환으로 재앙이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여
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본문의 '들 나귀'는 굶주림에 지쳐 있음은 물론 뜨거운
열기로 인해 호흡마저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Calvin).
=====14:7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 예레미야는 자신을 자기 백성과 동일시 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의 대변자로 나서서 하나님께 호소하였다. 그는 민족의 과거와 현재
의 잘못된 죄악을 고백하면서 구원해줄 것을 요청한다(Thompson). 히브리인에게 있어
서 이름은 종종 그 이름을 가진 이의 본질적 의미는 '당신은 하나님이시기에 그 이름
에 맞도록 우리를 위하여 구원하소서'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J. Bright). 한편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그의 명성과 명예가 위태롭다
고 생각하거나, 여호와께서 이 반역된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가하는 것이 그의 이름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시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축복 조
항들이 가동되게 하셨던 것과 같이 언약 파기로 인한 저주 조항들의 가동을 허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여기서 비록 저주받아 마땅한 백
성이지만 여호와의 은혜와 자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자하는 간절한 소원을 피력하고
있다 하겠다.
=====14: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 주께서는 이 백성의 유일한 희망의 대상이라는 호소이다
(Clarke).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 예레미야는 여기서 여호와께 어찌하여 이 곤궁한
때에 나그네가 지나가는 길손처럼 이 땅에 관심을 갖지 않으신지를 묻고 있다. '행인'
이라 하는 것은 밤중에 잠시 투숙하였다가 날이 밝는 대로 급히 떠나가야 하는 여행자
를 가리키는 것 같다.
=====14:9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자이오니 - 여호와의 이름에 호소하는 내용이
다시금 반복된다. 예레미야 당시 유다에 절실히 요구되었던 사안은 갈대아인의 진군에
의한 임박한 재난으로부터의 실질적인 구원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땅에 영원
히 관심이 없는, 하룻밤 유숙하는 나그네처럼 멀리 계신다. 하나님과 백성들 간의 괴
리를 자초한 측은 바로 백성들이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의 주권을 거부하였으며
또 그의 계명을 순종치 않았던 이런 민족이 어떻게 하나님의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비로우시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의 자비
롭고 용서하시는 성품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같은 소외의 감
정은 오직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였던 것이며, 설령 그들이 이론적으로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는 자는 오직 그와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는 자들에게로 국한될 것이다.
=====14:10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 '어그러진'에 해당하는 '누아'(* )는 '흔
들리다', '방황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을 의뢰하지도 순종하지도 않고
헛된 것에 자신을 내맡기는 변덕스러움을 지적하신 내용이다. 그러한 방황과 변덕의
구체적인 예는 그들이 이방 열국이나 이방의 우상들을 의지한 데서 엿볼 수 있다. 위
기가 닥쳐올수록 이 백성은 사 30:15의 말씀처럼 잠잠하고 여호와를 신뢰해야만 구원
을 얻을 수 있었으나 정반대로 행동하였다(Calvin).
=====14:11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말라 - 7:16;11:14에 이어 중보 기도 금지 명령
이 다시금 주어졌다. 백성들을 중재하는 일은 선지자들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였다
(삼상 7:8). 그러나 당시 유다의 죄악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으
므로, 이제 하나님의 징벌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12절에 가서는 그들에게 임할 재앙이
보다 상세히 설명된다.
=====14:12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 형식에 치우
친 종교 제사의 무익함이 재강조되고 있다. 순종이 결여된 '금식', '번제', '소제' 등
은 여호와께 수납되어질 수 없다. 그리고 '칼', '기근', '염병' 등의 세 항목은 전쟁
때에 언제나 수반되는 것들이었으며, 구약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5:12;14:15
;29:18;삼하 24:13 등). 이러한 재난들은 B.C. 586년 예루살렘 파괴 때 적나라하게 임
했다.
=====14:13
클라크(Clarke)는 본절을 다음과 같이 의역하여 의미 전달을 명확히 해보고자 하였
다 : '오, 여호와여. 그들은 참으로 지나치게 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 선지
자들에게 속아서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처벌을 완화해주옵소서.'
=====14:14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 여호와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당신의 생각
을 밝히신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설교했었지만 그들이 설교한 것은 모두 거짓
이었고 아무런 가치없는 복술, 혹은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들에 불과했다. 예레미
야와 같은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사이의 구별은 그 말씀의 성취가 이루어질 때에 비
로소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Thompson).
=====14:15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 여호와께서 보내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신적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런 자들은 제일 먼저 '칼'과 '기근'의 심판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쉽게 현혹되었던 불충한 백성들이 그 뒤를 따를 것이며,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주의를 두다가 묻어줄 자도 없는 상황에서 예루살렘 거리에 내동댕
이쳐질 것이다(16절). 땅에 묻히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는 것은 가장 비참한 결말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14:16
그들의 악을 그 위에 - '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 )는 도덕적인 악이
나 그것으로 인해 일어나는 재앙을 동시에 다 가리킨다.
=====14:17
내 눈이 밤낮으로 - 본문의 1인칭 주어인 '나'는 예레미야를 가리키다. 여기서
선지자는 반대 감정 병존 상태(ambivalence)인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즉 파멸 선고를
받은 백성들의 대표자인 입장에서는 가슴이 녹아 내리는 듯한 비애감을, 아울러 그 백
성을 징벌하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큰 아픔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D.R.
Jones). 한편 '파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베르'(* )는 단순한 부상(wound,
NIV) 정도 이상을 의미하는 말로서, '분쇄', '파멸', '파괴' 등의 뜻인 바, 개역 성경
의 번역이 정확하다 하겠다.
=====14:18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 가는 곳곳마다 끔찍하고 무서운 광경이다. 상
처입은 자, 죽어가는 자, 기아에 허덕이는 자, 살해당한 자들뿐이다. 죽은 자를 묻어
줄 자도 없으며, 죽어가는 자를 위로해줄 자도 없다. 구원과 희망이 될 만한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 선지자나 제사장들도 그 성읍들을 떠
나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찾아다닌다(Clarke). 블레이
니(Blayney) 박사는 이 어구를 '그들은 돈벌이를 위해 물건을 싸들고 다니는 행상들처
럼 거짓 교리나 잘못된 예언을 퍼뜨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라고 이해하였
다.
=====14:19
7-9절과 13절에 이어 또다시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가 나오고 있다. 22절까지 이어
지는 이 기도는 아브라함과 (창 18:23-33) 모세의(출 32:11-13) 중재의 탄원을 연상시
킨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 내용은 하나님의 응답이 점
차 강렬해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점차 움츠러들고 있다는 점이다. 즉 '버리지 마옵소
서'(9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유혹 때문임을 참작하여 주십시오'(13절), 그리고 '버
림받아 마땅하지만 주의 언약을 생각하사 용서해주십시오'(21절)라고 전개되어 가는
것이다.
=====14:20
우리가 우리의 악과 인정하나이다 - '우리 조상의 죄악'이란 말 속에는 여러 세대
에 걸쳐 지금까지 축적된 민족 공동의 죄가 포함된다. 선지자는 지금 이 백성을 대신
해서 그리고 자신과 백성을 동일시하여 죄악을 고백하였다. 그렇지만 선지자의 고백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이다(Clarke). 이처럼 당대의 죄악뿐 아니라 조상들의 죄악을 인식
하는 것은 전형적인 애가의 형식을 반영한다(레 26:40;시 79:8,9; 106:6, D.R. Jones)
약속의 땅에 대한 언약이 언약 당사자와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듯이(창 18:1-8). 그것
을 상실하게끔 만든 죄악과 거기에 대한 책임 또한 양자에게 속하는 것이다(3:24;7:26
;11:10;16:12,13 참조).
=====14: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미워하지 마옵소서 - 이 백성의 곤경에 대한 묘사와 자비를
구하는 고백에 이어 하나님의 이름에 호소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열방은 여호와를 유
다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도우심이 없으면 그의 신용과 명예
가 땅에 떨어지고 말것이라는 호소이다(Thompson).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들에 의해
오해와 목욕을 당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백성의 죄악을 철저히 징계하신다.
주의 영광의 위 - '당신의 영광스러운 보좌'란 뜻이다(J. Bright). 여호와는 성전
안 보좌에 앉아 계신 것으로 여겨졌으며, 그 보좌가 유다 민족의 안전에 대한 보증인
격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적 실체가 결여된 채 형식적 종교 행사만 치르
어지는 성전은 이미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었다(마 24:2 참조).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 이 '언약'은 출 24:7, 8에 언급되어 있
다. 그러나 언약을 파기한 것은 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거절하였
으며, 우상에게 자신의 몸을 바쳤던 것이다. 언약의 한 당사자가 이를 파기한 이상,
상대방은 이제 언약에 속박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이제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Clarke).
=====14:22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 예상되는 심각한 기근 상황과 관련되는 호소
인 듯하다. 자기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사 비를 주시는 것은 참된 하나님만이 할 수 있
는 능력과 권한인 것이다(Clarke).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 이 어구는 '우리는 주께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라
고도 번역된다(J. Bright). 따라서 하나님께서 돌봐 주시기를 거부한다면 철저히 망하
고 말 것이라는 애절한 탄원이다. 그러나 이 백성이 여호와의 사랑과 은혜를 인정하면
서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는 구원의 말씀을 기다린다고해도 이제 그들이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의 허황되고 속이 빈 호소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뿐이었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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