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예레미야

[스크랩] 예레미야 12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52

예레미야 12장 주석

 

=====12:1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무슨 연고니이까 - 예레미야 선지자는 악한 자들의 번성

에 대해 탄원한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가 끊임없이 적용되고 있는데, 어떻게 악이  그

처럼 종종 맹위를 떨칠 수 있는지, 그리고 경건한 자들이 고난을 겪으며 가난하게  살

아야 하는지 의아했다. 그는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모든 것

이 다 바르게 진행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듯한 일들이 나타나는 사실에 대해 납득하기가 어려웠으므로, 그는

바로 이 주제를 놓고 하나님과 쟁론을 벌이고자 하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가르

침을 얻고자 하였다.


=====12:2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뿌리가 박히고 - 예레미야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원

인 중의 하나는 하나님 자신이 이러한 자들을 심었다고 하는 내용이다. 악인의 번성에

대한 의구심은 욥 21:7 이하에서도 표명된 바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는 말씀을 통해 찾아질 수 있겠다. 즉, 하나님의 섭리는  단

순한 인과 응보의 법칙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악인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자비로

운 것이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자는 종국적으로 엄청난 심판

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하나님이 악인

을 번성케 하셨다기보다는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악인이 번성해지는 것을 하나님이 허

락해 두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보다 차원 높은 공의와 자비의 실행을 위한  계획이

담겨 있다 하겠다.


=====12:3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그들을 끌어내시되 - 예레미야는 자신의  항변의

근거를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에서 찾고자 한다. 즉 악행 중에서도  번영을  누리는

자들과는 달리, 자신은 오직 주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왔음을 주께서 잘 아신다는 주장

이다. 그러므로 그는 행악자들을 도살당할 양을 끌어내듯이 끌어내실 것을 탄원한다.

'끌어내시되'에 해당하는 '하티켐'(*          )은 '잡아떼다', '근절하다', '당기다'

는 뜻의 '나타크'(*        )의 히필형으로서 완전하고 철저한 파멸의 의미를  강조하

고 있다(Delitzsch).


=====12:4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 혹자는 본절의 위치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

다. 그러나 본절 역시 1절 이하 내용의 연장선상에 있음이 확실하다. 예레미야는 창궐

하는 악한 새력들로 말미암아 그 땅의 모든 거민과 심지어 짐승들에게까지 재앙이  미

치게 되었음을 탄원하고 있는 것이다(C.L. Feinberg) 이런 맥락에서  존  브라이트(J.

Bright)는 이 부분을 다음 구절과 연결시켜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 '거기에 거주하는

자들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짐승들과 새들이 모두 멸절하였습니다.'


=====12:5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 여기서 우리는 선지자의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느

닷없는 대답을 볼 수 있다. 아마 하나님은 '현재의 이런 고난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더욱 험난한 일이 닥치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겠

는가'하고 타이르시고자 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또한 두 가지 은유법이 쓰이고  있는

데, 첫 번째 것은 보행자와의 경주가 힘이 드는데, 어찌 말과의 경주가  가능하겠느냐

는 것이다. 이는 유다인들의 박해나 아나돗 사람들의 음모가 장차 임할 재난과 파멸에

비하면 은유는 요단 강의 창일함에 대한 내용으로서, 이것 역시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이 평화로운 땅을 덮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12:6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 5절 말씀에 대한 하나의 실례로서, 집안

사람들에게마저 핍박을 당하는 고통스럽고 다급한 상황이 소개되고  있다(Delitzsch).

한편, 예수께서도 성도들의 당할 핍박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

하셨다(마 10:21).


=====12:7

 본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내 집, 내 산업,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

다.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표

현들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과는 내용상 정반대되는 동사들이 쓰이고 있는데  버리며,

내어던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란 말들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하

나님의 애정과 보호의 대상이었던 백성이었지만, 이제 심판이 불가피한 것임을 강조한

표현이다.


=====12:8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발하는 고로 - 이는 유다 백성들의 뻔뻔한 반항심을 묘사한

말이다. 그들은 뉘우치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악의에 찬 교만한 행

동을 보였으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참선지자들을 핍박하였다(Calvin).


=====12:9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 '무늬 있는'의 히브리어 '차부아'(*          )에 혹자는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육식조의 이름을 나타낸다고 한다(Blayney). 그러나  이  단어가

분사형인 점을 중시할 때, 이것은 단지 '매'를 수식하는 말로 이해됨이 더 낫겠다. 벌

게이트역(Vulgate)이나 시리아역(Syriac Versions)은 이를 '다채로운', '변색된' 등의

의미로 옮겼다. 결국 '무늬 있는 매'란 포학하여 길들이기 힘든 완고함(Calvin), 우상

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종교적 혼합주의, 가증스러운 변절성 등을 암시하는 듯하다.


=====12:10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 이 구절은 빈정대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즉

이제 유다 백성은 주변 열국들의 약탈과 유린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적

들에는 모압, 블레셋, 암몬, 앗수르, 애굽 등과 함께 특히 갈대아인들까지 포함될  수

있겠다(Clarke). 한편 하나님의 백성을 포도원에다 비유하는 표현은 이사야에서도  자

주 나타난다(사 3:14;5:1-7).


=====12:11

 온 땅이 황무함은 - 대적들의 침입으로 유다 땅 전체가 초토화되리라는  예언이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B.C. 7세기 말경 유다의 어떤 도시들, 예컨대 라기스 같은 도시

는 두 단계에 걸쳐 철저히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12:12

 훼멸하는 자들이 광야 모든 자산 위에 이르렀고 - 이들 '훼멸하는 자들', 곧  파괴

자들은 여호와의 손에 있는 도구로서 그의 심판의 목적을 성취시키게 될 것이다. 이런

자들 중에는 느부갓네살(34:2, 3)과 앗수르 군대(사 10:5, 6)도 들어 있다.  여호와께

서 심판을 실행에 옮기시는 날이면, 그 누구도 환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편, '혈육

있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사르'(*        )는 창 6:12의 용례에서 미루어  볼

때 죄악된 인생을 암시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12:13

  우리가 말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 본절은 7-12절에 언급된 파멸 상황에 대한 결

론 역할을 하는 바, 유다 백성의 죄악된 행위는 결국 그들의 기대와 노력과는  정반대

의 불운을 초래할 수 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시사한다(Delitzsch). 그리고  구체적으로

본문은 애굽을 의지했다가 도리어 낭패에 봉착하게 될, 혹은 바벧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할 사실에 대한 언급이라 하겠다.


=====12:14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 유다를 황폐화시키려고 작당한 주변의

모든 이웃 나라들은 이제 그들 차례를 맞이하여 황폐화되고 말 것이란 내용이다. 그들

역시 사악하기 때문에 처벌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들을 공의의 집행인들로  삼았다면,

그들에게도 역시 똑같이 공의의 집행이 시행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하나님은 종종 한 민족을 응징하기 위해 악한 민족을 도구로 사용하셨으며, 그런 다음

다른 민족을 불러 그 악한 민족을 응징하셨다(Clarke, Harrison).


=====12:15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 이것은 포로에서부터 귀환과 회복을 약속하는

내용으로서, 여기에는 또한 적들 중에서도 얼마정도는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임

을 암시하고 있다(Clarke).


=====12:16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 원문상 이 구절은 '그들이 배우고 또 배

우면'이라는 강력한 조건절로 시작된다. 또 이 구절뿐만 아니라 10:2에도 언급되고 있

는 '도'(*        , 데레크)란 '길', '여정', '양식' 등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종교적

관행, 곧 여호와 신앙을 뜻하는 것 같다. 이들 적대적 관계에 있는  이웃이  하나님의

관심의 테두리 내에 포함될 수 있는 조건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종교를 따르고  이스라

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본문에서처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맹세를

주장하는 자가 여호와를 섬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창 31:51-53 참조).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 전에는 그들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잘못된 길로  들어

서게 하였으며 또한 바알의 이름으로 맹세하도록 가르쳤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고 여호와를 그들의 주권적인 주시요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들은 장성

할 것이고 또 하나님의 백성 중에 들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약속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놀라운 우주적 구원의 성격을 띤 분명한 서술이다. 이제 이스라엘의 원수라고  하더라

도 구원의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것

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만 유용한 것이다.


=====12:17

  그리하지 아니하면  뽑으리라 - 여호와의 주권을 거부하는  자면,  이스라엘이든지

이방이든지 간에 재앙을 받아 끝장이 날 것이다. 여호와의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가능성에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Thompson).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