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출애굽기

[스크랩] 출애굽기 (3 : 1~22)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00:31

출애굽기 (3 : 1~22)


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ㅇ이드로 - 치더니(하야 로예) - 이는 분사형으로서 일회적인 의미가 아니라
습관적이고 지속적으로 가축들을 돌봤다는 의미이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가 되기에 앞서 약 40년간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로서 
지속적인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요셉을 애굽 총리로 등용하기
전, 그를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의 신분으로 가사(家事)일을 돌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맥을 같이 한다.
ㅇ광야(마드바르) - (양떼들을) '정렬시키다'란 뜻의 '다바르'에서 유래하
였다. 따라서 '광야' 혹은 '사막'보다 '목초지'라 옮기는 것이 더 좋다.
로젠뮬러(Rosenmuller)에 의하면 이 곳은 시내 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나
매우 비옥한 골짜기들이 있어 목초지로서 안성마춤이라 한다.
ㅇ인도하여(나하그) - 이 말은 이스라엘을 장차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모세의 사명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이 말이 시
80:1에서는 '요셉을 양또같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묘사하는데 사
용되었다.
ㅇ하나님의 산 호렙 - 성경 기록에 의하면 호렙산은 종종 언약의 산으로서, 
십계명을 부여받았던 시내산과 혼용되고 있다. 즉 성경은 두 산의 지리적
구별을 엄밀히 하고 있지 않다. 이런 견지에서 두 산의 관계에 대한 몇몇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산의 총칭은 호렙인데 특별히 정상 부분
만을 일컬어 '시내'라 한다. (2) 한 산에 두 봉우리가 있어 하나는 호렙이고
다른 하나는 시내이다. (3) 두 산은 동일한 산으로서 두 가지 이름을 갖는다. 
이처럼 각 견해를 종합해 보더라도 두 산의 관계를 엄밀히 구분하기란 어렵
다.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오늘날 호렙(시내)산은 시내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해발 2,291m의 '예벧 무사'(jebel Musa,모세의 산)에 해당한다고 전
한다. 그런데 이곳을 특별히 하나님의 산이라고 명명한 것은 혹자의 주장
처럼 이곳에 '이드르'의 신전이 있었기 때문(pulpit commentary)도 아니고,
그 이전부터 거룩한 곳으로서 그렇게 불려왔기 때문(Knobel)도 아니다.
그것은 출애굽 직전 모세가 이 산 정상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소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고, 나아가 출애굽 직후에 하나님께서 이 산에 현현하사
언약의 증표로 율법을 수여했기 때문이다(Keil). 따라서 이 산은 하나님
께서 인간을 만나시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신 현현의 장소로 간주되어 이스
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산으로 성별되어 영영히 기억되었던 것이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ㅇ여호와의 사자(말라크 예호와) - 여기서 '말라크'는 '파견하다'란 의미의
어근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이 말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파송된 '특사'(왕하 5:10),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대
하 36:15), '천사'(시 148:2)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소위 신현현
(Theophanic Angel)으로서 삼위일체의 제2위이신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리스
도를 가리킨다(Calvin,Pulpit Commentary). 자세한 내용은 창 16:7 주석을
참조하라.
ㅇ떨기 나무 - 학명은 '아카시아 닐로티카'곧 시내 광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종의 '가시덤불'(thron bush)을 가리킨다. 이 나무는 주위의 고상하고 
당당한 나무들과는 대조적으로 앙상하고 아주 볼품없이 생기 나무로서 곧
노예로 전락하여 곤핍하고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현생
활을 상징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무에 거룩, 전능하신 여호와
께서 임재하신 것은 이스라엘 위에 머물러 있던 모든 고통의 멍에를 끊고
해방과 기쁨을 제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하는 계시 사건
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임재 사건은 후일 죄 중에 신음하던 인류를 구원하
시기위해 이땅에 육화(Incarnation)하셨던 예수의 임마누엘 사건을 예표
한다(마 1:21-23; 요 1:14).
ㅇ불꽃(벨라바트-에쉬) - '창끝'을 뜻하는 '레하바'에 '불'을 의미하는 '에
쉬'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는 모든 불의한 세력을 태워 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성을 상징한다(Kurtz,Keil, 사 10:17). 특히 이 불꽃이 떨기나
무로부터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임을 암시한다.
ㅇ나타나시니라(라아) - 이 말은 '주목하다', '제시하다'(보이다)란 의미도
내포한다. 모세는 낙심 가운데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었으나, 하나님
께서는 항상 그를 지켜보고 계셨으며, 이제 때가 차매 그에게 위대한 비젼을
계시하시기 위해 초자연적 현상 가운데 모세의 시선을 '주목 시키시면서'
나타나신 것이다.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ㅇ여호와...하나님(예호와...엘로힘) - '자존자' 또는 '영원한 자'를 뜻하나 
'예호와'(야웨)라는 이름과 '전능자'나 또는 '위엄을 가지신 자'를 뜻하는
'엘로힘'이 동시에 사용되었다. 이는 모세에게 계시된 신이 절대 유일하신
분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ㅇ보려고(라아) - '면밀히 관찰하다', '깊은 주의를 기울이다'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명사로 쓰이면 '맹금'(독수리)을 뜻하는데 이는 예리한 관찰
력에서 유래한 듯하다. 한편 (하나님이)'보신지라'에 해당하는 본절의 히브
리어도 이와 동일함에 유의하라.
ㅇ불러 - '명하다', '초대하다', '선포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에 참여케 하시기 위해 일꾼을 불러 소명(召命)을 부여하심을 가리키는
말이다(삼상 3:6). 특히 이 말 속에는 일꾼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일꾼으로 부름받은 자의 고귀한 특권이 암시되어 있다.
ㅇ모세야 모세야 - 모세의 이름이 거듭 불려짐으로써 상황의 긴박성과 사명
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삼상 3:10).
ㅇ내가 여기 있나이다 - 초자연적 불꽃 가운데서 들리는 음성을 듣고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감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대답은 지극히 초라한
자신에 대한 고백과 겸양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비교, 창 3:10;삼상 3:10).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ㅇ가까이...말라 - 이 말은 죄악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을 암시한다. 에덴 범죄 이전, 인간은 하나님과 대면
하며 교제할 수 있었으나 범죄 이후 인간은 자력으로는 하나님께 감히 가까
이 갈 수 없는 열악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창 3:24).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
한 간격을 좁히시기 위해 구약 시대에는 예표적 의식으로서 피흘림 있는
제사 제도를 제정하셨고 신약 시대에는 그 제사의 절정이요 완성으로서 독
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제물로 내어 주셨다(요일 4:10).
ㅇ거룩한 땅(코데쉬-아다마) - '코테쉬'는 '성별된', '성결한'이란 뜻이고, 
'아다마'는 '붉다'란 뜻의 '아담'에서 유래한 말로 이는 팔레스틴 지경의
땅이 대체로 붉은 색을 띰을 반영한다. 한편 언약 백성이 정주했던 가나안
땅, 예루살렘, 혹은 하나님의 성전이 각각 성지, 성도(聖都), 성소 등으로 
불리웠거니와(느 11:1;시 18:2;슥 2:12),본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
서 임재하시는 바로 그곳은 어디나 거룩한 땅이라 하겠다.
ㅇ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여호수아에게도 반복된 명령으로(수 5:15) 여기
서 신(Sandals)은 인간의 타락된 품성과 행위를 상징한다. 즉 죄악된 장소를
두루 다니고, 죄악된 행위를 하느라 더러워진 신에는 온갖 냄새나는 더러운
먼지나 때가 끼여 있는 법이다. 따라서 그러한 신을 신은 채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거룩한 땅을 밟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상의 의미를 좀더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 허물과 죄로 오염된 인간은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설 수 없으며 그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속 사람이 강건하게 무장되
어야 한다는 뜻이다(엡 3:15) (2) 인간 스스로의 재능, 자존심 등을 과감히
버리고 겸손히 순복하는 자세롤 지니라는 뜻이다-고대에 노예는 신발을 신지
않았다(눅 15:22).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도 각오하라는 뜻이다(롬 
8: 17) (4) 거룩하신 하나님께 마땅히 경외와 경배를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5) 부패한 인간은 중보자의 피가 없이는 감히 거룩한 하나님과 동거할 수
없다는 뜻이다.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ㅇ네 조상의 하나님(아비크 엘히) - 여기서 '아브'는 '아버지'(창 2:24), '족
장'(창 24:40), '선조'(왕하 14:3) 등 다양하게 사용되나 여기서는 선조를 뜻
한다. 특히 본절에서는 대표적인 믿음의 조상들의 이름이 언급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이 추상적 관념속에 국한된 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
는 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ㅇ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
곱은 일찍이 선민을 대표하여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 되시는 하나님과 언
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3대 족장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항상 이들과 맺은 언
약에 근거하여 자신을 계시하셨고 또한 백성들을 보호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세 족장들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이 각각 연계된 것은 (1) 그들 각자가
단독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으며, 직접 후손과 기업에 대한 약속을 얻었기
때문이다. (2) 각자에게 거듭  허락하신 언약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그 언약의 
계속성과 불변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창 15:1-21; 26:2-5; 35:1-12). 한편 이
부분이 제공하는 중요한 의미는 천지를 지으시고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민족과
약속하신 한 분 하나님에 의해서 모세가 부르심을 받고, 또한 이스라엘 벡성
들이 출애굽 하게 되며, 그리고 그 백성을 통해 만방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
라는 사상을 나타내는 데 있다.
ㅇ두려워하여(야레) - '파하드', '구르' 등이 주로 공포심을 가리키는데 비하여
(신 1:17;대하 14:4), 이 말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유한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외경심을 뜻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었다(9:30;느 1:5;시 99:0.
ㅇ얼굴을 가리우매 - 여기서 '가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타르')는 '숨기
다', '감추다'는 뜻이다. 얼굴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허물 많은 인간이 취하게 되는 지극히 생래적인 태도이다(Keil). 엘리야(왕상
19:13) 도, 심지어 하나님을 호위하는 천사들조차도(사6:2) 이러한 행동을
취했다.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ㅇ간역자 - 히브리인들을 일선에서 직접 감독하고 그들에게 육체적으로
고통을 직접 가했던 애굽 출신의 하급 지배자들을 가리킨다(1:11; 2:11).
ㅇ우고 -  '괴로움', '비탄', '슬픔' 등의 뜻으로서 이는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통
의 정도가 극에 달한 상황을 대변해 주는 말이다.
ㅇ알고(야다) - 본래 의미는 (직접 보아서) '확인하다'는 뜻이다. 따라
서 이 말은 단순히 지식적, 추상적으로 인지하는 데서 그친다는 것이 아니라, 뼈져린
체험을 통해 속속들이 깨닫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
스라엘이 당한 압제를 깊이 유념하사 도움의 손길을 베푸시고자 함을 가리킨다.


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ㅇ내가 내려와서 -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하에 친히 개입하심에 대한 신인동형동성
론(Anthropomorphism)적  표현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때가 찬 경륜에 따라  역사에 
깊이 개입하셔서 당신의 뜻하신 바대로 그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이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다. 후일 이말은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당신의 특별한 처소를
두고 계신다는 '세키나 사상'으로 연결 된다.
ㅇ건져 내고 - '회복하다',  '구출하다', '고치다', '빼앗다' 등의 의미로  하
나님의 구원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를 한마디로 함축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은  

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ㅇ이제(아타) -  '이제부터는', '곧장'이란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
라엘 역사에 개입하셔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시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를 담은 표현
이다. 이렇듯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 경륜에 따라 당신의 때에 개인적으로든  민족적
으로든 한 때를 마감하고 새로운 때를 여시는 바, 그 경륜의 가장 두드러지는  구획
선은 예수의 강림이다. 그러므로 히9:26에는 이러한  사실이 '이제', 곧 '그러나 이
제는'(but now)이란 말로 나타난다.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ㅇ보내어 - '임명하다',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여 멀리 파송하다'란 뜻으로 하나
님께서 선지자들을 파송하신다는 표현으로도 사용된 말이다(사 6:8;렘 7:25). 한편
여기서 모세가 보내어져야할 곳은 모세의 생명을 찾던 왕이자 고대 최고의 권력을 행
사하던 애굽의 바로 왕 앞이었다. 따라서 그는 온 세상을 대표하는 세속적 힘의 상징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권력자에게 가는 것은 일마개 목사인 모세 혼자만이
아니라, 그 목자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며 온 세상의 왕들을 폐하기도, 세우기도 하시는
권력과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이다(대상29:12;시 22:28;단  2:21;롬
13:1).


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ㅇ내가 누구관대 - 여기서  '...관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는 겸양과
자기 비하(卑下)의 뜻을 담고 있다. 40년 전 모세는 자신을 스스로 이스라엘의 구원자
요 재판관으로 내세웠으나(2:14), 이제는 초라한 한 목자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무능
감을 절실히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그는  미디안
이라는 학교에서 겸손의 덕을 배웠던 것이다(Keil). 한편 또한 이 말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바로에 대한 모세의 두려움과 의기소침을 반영한 탄식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신의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은 철저히 자아를 부인하는 자를 들어 귀하게  쓰시는
역설적 방법을 많이 사용하신다(욥 5:11;고전 1:27)
ㅇ가며(엘레크...웨키) - 여기서 '엘레크'는 '알라크'의
강의형 능동태로서 '내가 가야만 한다'(KJV: 'I should go')는 뜻이고, 접속사  '와
우'와 함께 쓰인 '키'는 '게다가', '더군다나'의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사지(死地)로 가서 애굽 왕을 만나는 일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데 거기다  이스라
엘 자손을 출애굽시키는 사명까지  감당해야 한다니 도대체 내게 무슨 능력이 있어 그
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란 뜻이다.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ㅇ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 문자적으로는 '내가 너와 함께 있는 한에는'이
다. 출애굽은 단지 피지배 민족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단순한 역사적 서건일 수는
없으며 또한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성취될 성질의것도 아니었다. 요컨대, 하나님의 일
은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심으로써만 가능하다. 따라서 하나님은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지레 낙담에 빠진 모세에게 '임마누엘'의 약속을 해주신 것이다(수  1:9).
실로 이 약속이야말로 막강한 100만 대군을 얻는 것보다 더 확실한 보장으로서 그 어
떤 세력에도 담대하며 능히 무찌를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사 35:3;고저  1:27;히
12:12)
ㅇ섬기리니(아바드) - (하나님께) '예배드리다'(말 3:14), '종살이하다'
(렘 27:7), '봉사하다'(창 29:15)등 다양하게 사용된 말로서 신앙 생활 전반을 일컫는
다. 진정 인간이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곧 만군의 주이신(사 28:22) 하나님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 땅의 우상 숭배에 깊이 물들어  있었다
(32:1-18).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들의 해방을  주도
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제 일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섬김 받으시기 위함이다.
ㅇ증거(오트) - '신호', '표시'란 뜻이다. 당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
님의 계획(언약)이 역사상 구체적인 성취로 나타난 것은 당신의 신실하심에  대한 확
실한 증거라 할 수 있다.

13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ㅇ戮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로서 그
사람의 기질과 성품과 지위와 생애를 반영한다. 특별히 고대 세계에서 권력자들은 자
기의 사신(使臣)을 타인에게 보낼 때 그 사신에게 자신의 권위를 위임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명호가 담긴 도장, 편지 내지는 그 사신에게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게  하였다
고 한다. 이런 점에서 모세가 자신을 애굽에 파견하시는 절대자의 이름을 확인한 것 
은 자연스런 일이다. 한편 신약 시대의 사도들도 복음 사역에 있어서 자신의 권위로서
가 아니라 자신을 사신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행
하는 이적과 기사의 출처를 사람들에게 분명히  제시하였다(행 4:7-12). 향편 혹자
(pulpit commentary)의 견해에 따르면, 다신교를 신봉하는 애굽인들은 당시 개개의
신들에게 다양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따라서 애굽 우상들에 익숙했던 백성들은 하
나님의 이름도 물어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모세가 자기를 보내는 분의 이름을 확인
했다고 한다. 물론 이 견해도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으나 전자의 견해가 더욱 환영
할 만하다.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ㅇ나는 스스로 있는 자(예흐웨 아쉐르 예흐웨) -  
여기서 '아쉐르'(who)는  관계 대명사로서 '나는 존재한다'(I  am)는 뜻인 '예흐웨'  
성호를 결합시켜 자존성(自存性)을 강조한다. 즉 시작과 끝이 없으신, 언제나 존재하는
자존자(自存者)란 뜻으로 피조된 존재들과는 달리 능동적으로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스
스로 계시는 분 (I am who I am)이심을 강조한 표현이다(계 1:4,8). 이는 절대 완전하
고, 독립적이시며 우주 안의 모든 인과 법칙을 초월한, 모든 존재의 근거와 기반이 되
시는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 말이다. 더욱이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은
존재에 있어서 변함없으시며 그 말씀하신 바를 온전히 성취하신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이 말이 언약과의 관계에서 쓰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속주로서(6:6)
언약의 주체자가 되사 그 언약하신 바를 변개치 않으시며 영원히 성취해 가시는 분임
을 강조하는 말이다.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ㅇ여호와(예호와) - '나는 스스로 있는 자'(14절)란 말과 같은 뜻을
지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다. 즉 이 이름은 '존재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하야'
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말로서 하나님의 자존성과 영원불변성을 강조한 이
름이다(14절). '여호와'의 히브리형 '예호와'는 원래 자음만으로 구성되었는데  영
어식으로 표현하면 4개의 자음 곧 'YHWH'가 된다. 따라서 발음하기에 곤란하나 통
칭 '야웨'(야훼), '예호와' 등으로 불려져 왔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성호에 대한 경외심에서 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아도나이'(나의
주님)라는 명칭으로 대신했다. 따라서 성경을 옮겨 기록하거나 낭독하는 일을 맡고
있던 서기관들은 이 단어가 나오게 되면 '야웨' 대신 '아도나이'라 발음했다.  따라서
결국 '여호와'(Yehowah)라는 명칭은 '야웨'의 히브리 자음에 '아도나이'의 모음이 합
쳐져 구성되었다. 한편 우리말 '여호와'는 헬라어 및 라틴어를 거쳐 정착된  영어
'Jehovah'의 음역이다.
ㅇ나의 영원한 이름  - 하나님에게 가장 합당한 이름이자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속
성과 본질을 지니신 당신의 영원 불변의 이름 이란 뜻이다. 실로 이름의 영원성은 그
존재의 영원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ㅇ표호(表號) - '표하다', '기억을 되살리다'는 동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기념
물'이란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는 '표시가 되는 이름', 곧 그 이름만 들어도 그분의
품성과, 이뤄 놓으신 놀라운 사건들과, 미래에 완성하실 원대한 계획까지 생각
할 수 있을 그러한 기념비적 이름이란 뜻이다.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ㅇ장로(자켄) -  '나이 먹다'란 뜻의 동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문자
적으로는 '노인'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한 가문의  어른으로서 추앙받을 만한 재덕을
겸비한 자를 가리킨다(6:14,25). 체계적  행정  체제가 미비하였던 당시대에  이들은
백성의 대표자 역할을 폭넓게 감당하였다.
ㅇ권고하여(파카드) - '방문하다'(KJV: 'visited'), '감시하다',  '보살
피다'(RSV:'observed), '판단하다' 등의 뜻이다. 요셉이 임종시에,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고하실 것이라던 예언의 말과 같은 표현으로
서 (창 50:24). 영감된 예언의 필연적 성취를 보여준다. 실로 하나님은 요셉의  말을
기억하시고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보살피시기 위해 지금 이 땅에 방문하실 것을 모세에
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ㅇ고난(마아나) -  '위협하다', '괴롭히다', '강탈하다'의 뜻을 지닌
동사 '아나'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애굽의 압제를 집약한 말이다. Living Bible은 
이를 '고역'(drudgery)과 '굴욕'(humiliation) 등 구체적으로 번역했다.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ㅇ들으리니(솨마) -  '순종하다', '경청하다'란 뜻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요구에 순복하리라는 의미이다. 한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유명한  신앙
지침인 '쉐마'(들으라) 부분도 동일한 말로 시작된다(신 6:4). 실로 애굽의 강력한
압제하에  신음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일개 초라한 망명객의 말에 순복하리라고
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결과는 인간의  생각과 판이했다(4:31).
ㅇ장로들과 함께 - 모세는 여호와의 권능에  찬 이름과 더불어 백성의 장로들과
함께 바로 앞에 서서 담대히 말해야 했다. 즉 그에게는 하늘과 땅의 많은 후원자들
이 있었다(5:1).
ㅇ히브리사람의  하나님(엘로헤 하이브리임) - 아브라
함을 우상의 땅 갈대아 우르에서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으로' 불러내 그와 언약을  
맺으신 그 하나님(창 12:1,7;14:13)을 특별히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이 말
이 사용된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또 한번의 '건너는'(히브리, 창 14:13)  역사
(홍해 사건)를 통해 그들의 구원을 주도하시겠다는 의미이다.
ㅇ우리에게 - 하나님께서 실제로는 모세에게만 나타나셨으나, 임하신 목적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모세가 그들의 대표격이었으므로 '우리'라는
복수형이 사용된 것이다.
ㅇ희생(제바흐) -  '짐승을 살육하다'란 뜻의 동사 '자바흐'에서 유래한
말로서 '제사', '헌물'(제물)을 의미한다. 어느 종교에서건 제사 의식은 종교  생활의
핵심 중 하나이다. 더욱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 제사 의식은 유일신 여호와 신앙으
로 전민족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희생 제사 요청, 그것도 민족적 대이
동을 수반해야 하는 이 요청이 강퍅한 애굽 왕에게 받아들여질리 만무했다. 따라서 결
국 이 요청은 바로를 시험하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ㅇ사흘 길 -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주지인 고센 지역으로부터 제사를 위해 하나님의
현현 장소인 시내산까지 이를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동시에 애굽의 속박과 추격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리를 지칭한다.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ㅇ아노니(야다)  -  '확신하다'로 번역됨이 더 낫다(KJV, 'be sure'). 시공
(時空)을 초월하신 하나님은 출애굽 과정에서 겪게 될 우여곡절을 이미 알고 계셨다.
ㅇ강한(하자크) -  '정복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말로서 상대의 어떤 공격
에도 굴하지 않고 기필코 이겨낼수 있는 강력한 힘을 암시한다.
ㅇ손(야드) -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손'은 주로 당신의
권능을 상징한다(7:4;15:9).
ㅇ전에는(울로)  - '심지어...할지라도...않다'(KJV:not even)로 번역될
수 도 있다. 참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절대 권력자로 자처한 바로 왕의 완
악함을 잘 드러낸 표현이다.
ㅇ허락지(나탄) - 이 말 속에는 '보내다'란 뜻도 포함하고 있어 문맥상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해준다. 애굽의 경제와 사회는 노예에 의해 유지된다고 할 정도로
노예의 가치는 대단했다. 그들은 농사와 건축 등에서 무한정한 노동력을 쏟아내었으므
로 바로에게는 굉장한 재산이었다. 그러한 노예들 중 상당수를  차지했던(약  60만명,
민 1:46) 히브리인들을 그 땅에서 내어보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의 손에 의
하지 않고는 압제자 바로에게 있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ㅇ내가 내 손을 들어 - 하나님의 구체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12절)과 더불어 그 약속을 반드시 실현 시키실 것을 이런 표현
을 통해 확증하셨다.
ㅇ이적(펠레) -  '경이롭다'는 뜻인 '팔라'에서 유래한 말로서 하나님의
놀라운 초자연적 권능을 강조하는 말이다. 반면에 '모페트'(욜 2:30),  
'오트'(민 14:11)등은 두드러진 '표징'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한편, 본문
의 이적은 구체적으로 피 재앙(7:20), 개구리 재앙(8:6), 이 재앙(8:17),파리 재앙(8
:21), 악질 재앙(9:3), 독종 재앙(9:10), 우박 재앙(9:23),메뚜기 재앙(10:13),  암흑
재앙(10:22), 장자의 죽음(12:29)등  열 가지 재앙으로 나타났다.
ㅇ친(나카)  -  '때리다', '벌주다'란 뜻이다. 이는 애굽에 임한 재앙은 악
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심판)이란 측면을 강조한다.
ㅇ보내리라(솰라흐)  -  '포기하다',  '내던지다'는 의미로서 마지못해 혹
은 엉겁결에 떠나 보낸다는 뜻이다. 실제로 바로는 출애굽 소식을 듣자 마자 곧장  추
격에 나섬으로써 히브리인들에 대한 노예화정책을 끝내 떨치지 못했음을 나타내었다
(14:5).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찌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ㅇ은혜(헨) -  '아랫 사람에게 호의로 몸을 굽히다',  '긍휼히 여기다'란
의미의 동사 '하난'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관
련하여 많이 사용되었다(창 6:8;삼하 15:25;시 84:11). 본문에서 이 은혜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때에 노예처럼 쫓겨날 것이 아니라, 귀한 손님처럼 극진한 대접을 받
은 후 온갖 재물을 지니고 나갈 것을 가리킨다. 이는 창 15:14에 나타난 예언의  성취
이다.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이 쫓겨난 자가 아니라 마치 정복자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출애굽하게 됨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출애굽은 노예 상태로부터의 탈출인 동시에
가나안 복지  정복을 위한 첫 걸음이었다. 한편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는다  (1)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당신의 주권아래 두시고 각  개인과
민족에게 합당한 보상과 억울함을 해결해 주시는 공평한 분이시다. (2) 하나님은 애굽
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위상(位相)을 새롭게 정립하심으로써 당신의 백성이 궁극적
으로 영광과 승리를 얻게 될 것을 보이셨다. (3) 더욱이 광야의 회막 건축에  필요한
각종 준비물을 미리 준비시키신 하나님의 풍성하신 경륜을 깨달을 수 있다.(35장).

22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ㅇ이웃 사람 - 고센 땅에서  히브리인과 함께 거주하던 애굽인들을 가리킨다.
ㅇ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 - Living Bible에서는 이를 '애굽인 주인의 아내'(her
Egytian master's wife)로 옮겼는데 타당성이  있다. 당시 히브리인들 중에는 물질
과 권세가 월등했던 애굽인의  집에서 하인 또는 그 아내로 우거했던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ㅇ구하여 - '빌다'(KJV, 'borrow')보다는 '요구하다'(RSV,'ask')가 더 합당한 번역
이다. 애굽은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을 노예로 부려먹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
께서 그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당당히 요구하라 하신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