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장 주석
=====4:1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 본문은 당시 이스라엘의 처한 상황이 매우 어렵고
절박하였음을 암시한다. 이스라엘은 안팎의 여러 문제들이 직면하여 이제까지 취해오
던 노선을 변경시켜 다른 방도를 따르고자 나름대로 모색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
기서 하나님은 오직 당신만을 의뢰할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 특히 예레미야는 요시야
의 개혁 운동에 나타났던 그런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그들이 가담하고 있는 모든 의
족적 외교 조약과 우상을 타파하고 오직 여호와의 주권만을 인정하는 실질적인 회개
를 통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가증한 것을 버리고 - '가증한 것'에 해당하는 원어는 '쉬쿠츠'(* )로서
구약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말이다. 이것은 불결한 의복(나3:6), 우상에게 바친 음식
(슥9:7), 그리고 이교도의 신들(왕상11:5; 왕하 23:13; 대하15:8)을 가리키며, 때로는
거짓 신들을 섬기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호9:10). 여기서는 가나안의 거짓 신들을
가리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런 가증한 것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서야 하는 것이
다. 여호와와 다른 신들은 양립될 수 없고 화합될 수가 없다.
=====4:2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 때로는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란 말로도 번역되는 이
구절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맹세할 때에 사용하는 상투어였다. 그러나 이 말은 여호와
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십계명 중 제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출20:7; 신5:11). 뿐만 아니
라 여기서는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맹세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구약 예언
서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단어들이다.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 여호와의 주권에 전적으로 의지할 때 이스
라엘이 약속된 축복의 삶을 누리는 것을 보고 다른 민족들도 축복의 참된 근원이 여호
와께 있으며 그의 언약에 순종할 때 축복을 받게 됨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
의 참된 회개는 이스라엘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사42:6; 49:6).
=====4:3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 - 본절의 유다가 1절의 '이스라엘'의 일부를 뜻하는 것인지
에 대해서는 견해가 달라진다. 어떤 주석가들은 1절의 '이스라엘'이 현재 포로로 잡혀
가 있는 북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본다(Streane, Welch). 그러나 문맥상 본절과 4절은
1,2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되며, 따라서 본절의 '유다'에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의 변방 주(州)로 편입된 이후 남하한 백성까지 포함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묵은 땅을 갈고 - 여기서 '묵은 땅'(* , 니르)은 오랫동안 경작을 하지 않
아 잡초가 무성한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작된 바가 없는 '새 토양'을 뜻한다. 결
국 분문은 개혁 기간 동안의 형식적, 피상적 회개가 아닌 근복적 회개를 요청하는 내
용으로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란(마9:17; 막2:22) 예수의 비유와 일맥 상통한다.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 예레미야는 여기서 '유다'라는 토지가 과거, 특히
므낫세 통치 이후에 악행이라는 가시덤불로 만연되어 있으며, 유다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새 토지를 경작하는 것뿐임을 지적한다. 즉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야기된 온갖
종류의 폐단들, 곧 가시덤불을 회개와 순종이라고 하는 쟁기로 갈아서 온전히 제거해
버리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C.L. Feinberg).
=====4:4
할례를 행하여...마음 가죽을 베고 - 할례가 이스라엘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여호와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시였다(창17:1-14 주제 강해, '할례 언
약과 세례' 참조). 이 의식은 언약의 표로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으며(창17:10-14) 단
순히 외적인 표징이 아니라 여호와의 주권에 전혹적으로 순종한다는 내적 실체에 대한
증거였다(신10:16; 30:6). 한편 선지자는 여기서 남자 성기 표피 끝을 잘라내는 할례
를 말하지 않고 마음 가죽을 베어낼 것을 명하고 있다. 이 '마음'이란 지성과 의지,
감정 등을 다 포함하는 내적 삶의 전체를 뜻한다. 즉, 마음이 이방인으로 남아 있는
한 물리적인 할례 의식으로는 언약의 취지를 달성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 언약 파괴의 결과를 강조하고 있다. 고대
근동의 종주국과 봉신국 간에 체결된 언약에도 축복과 저주가 뒤따랐다. 언약을 배반
한 봉신은 대군주의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주권 군주이신 여호와는 자기
와의 언약을 깬 이스라엘을 징벌하고야 마신다. 그리고 그 징벌을 예레미야는 '끌 자
가 없는 불의 심판'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런 비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잘 알려
져 있었다(7:20; 사1:31; 암5:6등).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응징했던 것과 똑같이 이
제 유다도 심판하실 것인 바, 유다는 이미 그의 주인 이스라엘보다 더 범죄해 있었다
(3:11).
=====4:5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 여기서부터는 심판의 상세한 내용이 묘사된다. '나팔을
불라'는 것은 사자(使者)의 가슴 아픈 전달 사항을 유다와 예루살렘에 알린다는 뜻이
다. 이런 내용은 호세아가 외친 경고의 말씀과 유사하며(호5:8), 후대의 요엘 선지자
도 이와 비슷한 경고를 고하였다(욜2:1).
=====4:6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 '기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스'(* )는 '표
준', '기준', '신호'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무슨 신호를 가리키는지는 분명
치 않으나 아마 위급한 상태를 알리기 위해 먼 지역까지 전달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
봉화와 같은 것을 올리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라기스(Lachish)의 발굴에서 나온 편지
중의 하나는 B.C.586년 느브갓네살 침략 당시 남유다에 긴급 사태가 발생했음을 언급
하고 있다. 이 편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 '왕께서 지시한 대로 우리는 리가스의 기
호('네스')를 지켜보고 있나이다.'
=====4:7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 여기서 사자에 비유된 침략자는 바벨론을 가리킨
다. 51:38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혼비 백산하는 바벨론 거민들을 부르짖는 사자
새끼에 비유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회개하지 않는 유다 백성은, 마치
먹이를 찾아 나온 굶주린 사자에게 찢기듯이 처참한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본
절의 요지이다. 당시 바벨론은 B.C.612년에 앗수르를 점령한 데 이어서 근동 지역의
패권을 잡기 시작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주변 열국들을 초도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4:8
굵은 베를 두르고 - '굵은 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킴'(* )은 거칠고
조잡한 삼베류의 옷을 뜻하는데 흔히 슬픔과 애곡을 표현할 때 입었다(사15:3; 겔7:18
등).
=====4:9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던 왕과 방백, 제사장, 선지자 등의 지도층 인사들
이(2:8,26) 이 소식에 놀라 공포에 사로잡히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왕과 방백 등의
정치 지도자들은 안전과 희망의 근거를 잃었기 때문에 쓰러진다. 또한 거짓 선지자들
은 그들이 내세운 희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며 배도한 제사장들이 내세운 공허
한 안전 역시 거짓으로 판명날 것이다.
=====4:10
슬프도소이다...주께서...크게 속이셨나이다 - 이는 예레미야가 받은 바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계시에 대단히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다(19절). 이것은 또한 예레미야의
성품이 어떠한지 그 일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하나님과 많은 대화가 있었음을 시사한
다. 그러나 얼핏 보면 예레미야의 이런 항의는 참람되어 보인다. 감히 인간이 하나님
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레미야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
님의 주권을 확실히 믿고 있었고 언젠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계획이 실행될 것으로 확
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표현은 자기 자신의 삶이든 아니면 타인의 삶이든 간에
비극적인 처지를 보고 깊은 슬픔을 느낀 데서 나온 일시적인 한탄인 것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 본절 상반절과 마찬가지로 본 구
절 또한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혹자는 '이르시기를'을 '그들이 이르기를'이라 번
역한 70인역(LXX)에 근거하여, 본문이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
한다(Cheyne, Hyatt). 그러나 이는 원문 독법상의 혼란을 야기시킨다. 보다 적합한 해
석으로는, 여기에서 예레미야가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 이설을 허용하신 하나님께 안타
까움을 토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인간의 자의적 악행을 하나님이 허
용하거나 내어 버려두신 것을 마치 하나님이 그 악행에 개입하신 것처럼 표현한 사례
가 종종 나온다(출9:12; 살후2:11).
=====4:11
뜨거운 바람이 광야 자산에서 - '뜨거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흐'(* )는
문자적으로 '맑은', '깨끗한'이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하라 사막의 열풍으로서
파멸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맑은 바람이 '파멸'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논리
적 설명은, 바람을 막아줄 나무나 그 어떤 방파제 같은 것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바람은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오는데, KJV, RSV에서는 이를 '내 백성의 딸'
(the daughter of my people)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내 딸'과 '내 백성'은 동격으
로 쓰이고 있으므로 '내 딸=내 백성'으로 이해함이 무난할 것이다. 비록 심판을 선언
하고 있는 상황이긴 해도 예레미야는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의 언약 관계를
분명하게 지적하였던 것이다.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케 하려함도 아니며 - 이는 타작 마당의 키질하기 위
해 부는 바람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인데, 앞으로 유다에 임할 바람은 알곡을 추리기
위한 키질용 바람이 아님을 선포한 것으로서 이들을 몽땅 날려버리는 엄청난 파멸의
바람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CALVIN, J.Bright, Nicholson, Clarke).
=====4:12
나를 위하여 오리니 - 유다에 임할 심판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나왔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태까지 유다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았던 것에 대한 보응으
로 이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심판을 베푸실 것이다. 그리고 '심판을 베푼다'는 것은
하나님이 재판장이 되사 유다의 범죄 행위에 대한 형을 선고하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Thompson, Clarke, NIcholson).
=====4:13
구름같이...그 병거는 회리바람 같고 - 심판의 도구로서 유다에 밀어닥칠 적군의
진군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말씀이다. 예레미야는 환상을 통해 유다를 침략할 적군이
마치 빽빽한 구름과도 같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고 고뇌에 찬 탄성을 질렀을 것
이다. 그의 고통스러운 심정은 심판 장면을 묘사하는 12-18절이 끝난 다음에 기술되어
있다. 이에 대한 백성의 반응은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란 것이었는데,
이는 온 땅이 황폐화 된 것에 대한 백성들의 자책과 후회의 한탄을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비록 더딘 것 같아도 일단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질 때는 그 어느 누구도 이를
막을 수 없고 또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J.Bright, Nicholson).
=====4:14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 예레미야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그들
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들의 죄악을 회개하는 것이다. 여
기서 '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 )는 '상하게 하다', '깨뜨리다' 등의
뜻인 '라아'(* )에서 유래한 말로서 구약에서 흔히 쓰인 단어이다(창6:5; 출
32:22; 민32:13; 신1:35; 삿9:56; 삼상25:21등). 3장에서도 예레미야는 이와 유사한
회개로의 부르심을 촉구하였다. 아마 예레미야는 심판이 문앞에 이르렀다고 해도 회개
로의 부르심이 늦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Thompson).
=====4:15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 '단'은 팔레스틴 북부 변방의 한 도시로서 오늘날의 '텔
엘-카디'인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의 발굴에 의하면 예레미야 당시 이곳은 정치, 군사
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에브라임 산은 이예루살렘에
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예루살렘의 전방 기지와 같은 곳이었다.
바로 이런 곳에서 적의 침략을 알리는 소리가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Nicholson).
=====4:16
에워싸고 치는 자들 - 클라크(Clarke)는 본문에 해당하는 원어 '노체림'(*
)을 '지키는 자'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다 성읍을 점령하고 파멸시
킬 느부갓네살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이
다(Calvin).
=====4:17
밭을 지키는 자같이 - 본절의 장바변은 시골 농부가 곡식단을 돌보기 위해 임시로
만들어 둔 오두막에서 들짐승이나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보던 것에서 따온 예
화인데, 아마 이런 알기 쉬운 예화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보다 분명
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Nicholson, J.Bright).
=====4:18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 예레미야는 고통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스라엘에 밀어닥친 심판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는 너의 악함이라'는 말은 심판이 백성들의 악으
로 말미암았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표현이다.
=====4: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 본절에서부터 21절까지는 갈대아인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파멸과 유다의 황폐를 내다보는 에레미야의 내적인 고통과 근심을 잘 나타
내 주고 있다. 아마 그는 팡에서 예언한 그 모든 환난의 내용을 환상을 통해 직접 목
격했던 것 같다. '슬프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에'(* )의 뜻은 '창자'인데,
아마 정신적인 충격이 대단히 심각하게 주어졌을 경우, 신체 내부 기관이 이를 감당할
수 없어 어떤 방응을 나타냈던 데서 유래한 단어인 것 같다(Thompson).
=====4:20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 재앙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 결과
성들이 불타고 거민들이 내어쫓기고 학살당할 것이다.
나의 천막...나의 휘장 - 이는 유목민 시대의 천막 생활에 대한 잔재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튼튼한 요새들이 아무런 방어 수단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로 표현한 것
이다.
=====4:21
저 기호를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 예레미야의 내면에서는 재앙으로 인한 전쟁의
함성과 나팔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의 귀는 이미 이러한 소란스러운
고함 소리에 지쳐 있었으며, 그의 눈에는 자기 동족의 비극적인 고통이 보였다. 그러
면서도 그는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깊은 절망감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4:22
나를 알지 못하는 우둔한 자요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제로 한
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단순한 지침이나 교훈에 대한 앎과는 다르다. 하나님이 백
성들에 대해 '나를 알지 못한다'고 하실 때, 이 말속에는 그 백성들의 불신과 반역 및
계명에 대한 불순종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Mckkane).
=====4:23
혼돈하고 공허하며 - 본절에서부터 28절까지는 임박한 파멸에 대한 심판의 참상이
환상을 통해 표현된다. 본문의 히브리어 '토후 와보후'(* )는 창
1:2에서 땅이 창조되기 전의 무질서한 상태를 묘사할 때 쓰인 말이었다. 이런 표현을
통해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이 마치 땅이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은 혼돈
을 초래할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4:24
진동하며...요동하며 - 클라크(Clarke)는 본절의 '산들'과 '작은 산들'이 '왕과 방
백들'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놀라서 달아날 것이라고 해석하였
다. 물론 이 해석도 무난하겠지만 앞 구절과의 연결을 중시할 때, 산들이 진동할 정도
로 유다에 밀어닥칠 바벨론 군대의 공세가 무시무시할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산들'과 '작은 산들'은 흔히 힘과 안정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
러한 힘과 안정의 상징이 모두 흔들리고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J.Bright).
=====4:25
새가 다 날아갔으며 - 파멸과 황폐함의 철저성을 부각시키는 표현이다. 한편 하나
님은 악인을 멸하실 때에 짐승과 새와 물고기도 함께 멸하신다고 말씀하셨다(습 1:3).
=====4:26
본절에서는 쓸쓸함과 파멸이 그 이전의 풍성한 결실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
다. 그리고 황무지로 변해버린 '좋은 땅'의 원어는 '카르멜'(* )인데, 이것
은 어떤 특징 지역을 가리키기보다는 풍요로웠던 그 지역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것으
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Cheyne).
=====4:27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 이 구절은 많은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앞 구절들에
서는 이 땅 전체가 황폐해질 것으로 지적했으며, 이어지는 28절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을 타개하기 위해 혹자는 부정
의 뜻을 나타내는 '로'(* )를 생략하거나, 이를 강조의 '라멕'(* )으로 보기도
한다(Soggin). 그러나 우리는 이땅이 비록 황무지가 된다 하더라도 23-26절에 묘사된
바와 같이 완전한 종말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여러 주석가들은 이를 심판 중에도 남은 자가 이 재앙에서 살아 남게 될 것으로 해석
하고 있다(R.K.Harrison).
=====4:28
땅이 슬퍼할 것이며... - 여기서는 땅과 하늘에 대한 의인법이 쓰이고 있는데, 구
약의 다른 선지자들도 흔히 사용하는 표현 방법이다. 혹자는 '땅이란 그 땅위의 거민
들을 가리킨다고 하나, 땅의 멸망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더 깊은
선지자의 내면에 접근할 수 있겠다. 즉 감각이 없는 땅조차도 슬퍼하는데, 정작 슬퍼
해야 할 사람들은 이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점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이다(Calvin).
=====4:29
본절에서부터 31절까지는 시온의 극심한 고통을 서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침략자들
의 진군 소리에 놀라서 달아나며, 안전한 곳으로 숨는다. 또한 사람들은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며, 절벽으로 기어 올라가기도 한다. 한편, 이사야도 하나님의 심판이 교만
하고 자고한 자들에게 임할 것임을 예언하면서 이와 유사한 장면을 서술하고 있다(사
2:19-21).
=====4:30
네가 붉은 옷을 입고...꾸밀지라도 - 고운 옷으로 차려 입고 온몸을 황금으로 장식
하고 눈썹을 그리는 이 같은 행동은 창녀가 손님을 맞을 때 하는 행위를 암시하는데,
이는 우상 숭배자들이 갖추던 장식(사3:18-23)을 비유하기도 하며 약소국이 대국의 침
략을 당하여 제3국에게 원군을 요청하며 예물을 바치는 모습을 비유하기도 한다. 여기
서는 후자의 의미, 곧 바벨론의 침입을 당한 유다가 애굽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4:31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 창녀의 행위를 예화로 들었던 선지자는 여기서 그 표
상을 바꾸어 첫 아기를 해산하려고 울부짖는 여인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 여인의 고
통하는 소리를 딸 시온의 소리로 설명한다. 유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자기의 진정한
남편을 거부하고 앗수르, 애굽, 바벨론 등과 같은 정부들과 놀아났었다. 그리고 이제
음란한 유다의 악행은 그 절정에 달했던 것이다.
'구약 > 예레미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예레미야 6장 주석 (0) | 2015.02.08 |
---|---|
[스크랩] 예레미야 5장 주석 (0) | 2015.02.08 |
[스크랩] 예레미야 3장 주석 (0) | 2015.02.08 |
[스크랩] 예레미야 2장 주석 (0) | 2015.02.08 |
[스크랩] 예레미야 1장 주석 (0) | 2015.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