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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64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44

이사야 64장 주석

 

=====64:1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 하나님은 폭풍, 불 그리고 구름 가운데 땅 위에  내려

오시는 분으로 묘사되어지곤 하는데 그 목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그

백성을 축복하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대적을  진멸하기  위한  것이다(시

18:9;144:5). 토론의 여지없이 여기서는 후자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64: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 여기 사름을 당하고 끓음을  당하는

것은 '산들'(1절)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임하실 때 그 단단한 산은 불을

받고 그 강한 열기의 작용으로 인해 액체처럼 밑으로 흘러 내리게 될  것이라는  뜻이

다. 이것은 하나님 임재의 영향력을 암시하는 것인데, 특히 화산을 연상케 한다. 저자

가 화산 폭발을 보고 그 이미지를 본절에서 인용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

나 시리아, 팔레스틴 및 사해 주변에서 당시 화산 분출이 빈번했다는  역사적  고증을

고려할 때(Lyell)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아무튼 저자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

는 최대한의 문학적 혹은 실제적 이미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의  막강한  영향력을

묘사하고 있다.


=====64:3

  우리의 생각 밖에 두려운 일 - 이전에 결코 목도하지 못했고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

던 일을 가리키는데, 그 일이란 출애굽 사건을 뜻한다.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 이것은 불과 연기 가운데 하나님이 시내  산

에 강림하셨던 것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출 19:18). '진동하였사오니'(*        ,

나졸루)보다는 '흘러 내렸으니'가 더 원문적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과거의 이  역사가

자신들의 시대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64:4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 여기 '앙망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개입과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인데, 바울은 이 같은  사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부르고 있다(고전 2:9).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 본 구절을 바울은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자'로 적고  있

다(고전 2:9). 이 같은 사실 때문에 어떤 학자는 바울이 원문을 오해했거나 원문이 파

손되어 이 부분만 외경의 유사 부분에서 인용했다고 주장하거나(Lowth), 혹은 이를 바

로 앞의 '들은자도 없고'와 표현만 다른 반복 구절로 보기도 하나 근거없는 주장이다.


=====64:5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 - '기쁨으로 기꺼이 의를 행하는 자'란 뜻이다(요  7:17;행

10:35).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 - 원래 '기억하는 자'란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경

이로운 구원 역사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그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기도, 예배, 찬양을

드리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길'이란 율법을 뜻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선대하시거늘 -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주권적으로 언약 관계를 설정하셔서 언약 관

계를 맺고 있는 백성에게 평화, 안정을 주시고 계속적으로 우애를 나누시는 것을 가리

킨다. 한마디로 언약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를 뜻한다.

   진노하셨사오며 - 이것은 탄원자의 깊은 사색을 반영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자비

가 있으시고 그 언약 백성을 축복하는 분임을 알면서도, 본절의 '우리'는 하나님이 큰

진노중에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히 그 앞에 나아가시 못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의 죄악과 타락상에 대해 통절히  인식

하고 있었음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진정한 회개자는 하나님의  진노

를 두려워하며 그 마음을 치며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

이다(눅 18:13, 14).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 바헴 올람) - 여기 '바헴'(*      )

은 '그들(혹은 그것들) 안에'로 번역될 수 있는데 그 선행사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난해 구절로 만들어버린다. '그들(혹은 그것들)'에 대한 해석으로는,  먼저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가 있다('선대하시거늘'). 이 해석을 따를 경우, 본문은 '하나님의 영원

한 언약적 자비'를 뜻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본절 하반절은 하나님의 진노에도 불구

하고 그의 영원한 언약적 자비 때문에 이스라엘이 구원얻을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피

력하는 대목이 되어버린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그 선행사를 바로 앞구절에 있는  '범

죄'로 보는 해석이다. 이 해석을 따를 경우, 본절 하반절은 그 오랜(이에 해당하는 히

브리어 '올람'(*       )은 '영원히'로 주로 번역되나 '옛날', '오랫동안'으로 번역되

기도함)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조차도 할 수 없어 애타하는 심정을 묘

사하는 대목이 된다. 이 경우는 개역 성경의 번역과 그 의미가 일치한다. 우리는 후자

의 해석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중요한 전제인 '바헴'을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로 보는 근거가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절 이후 문맥을 고려할 때 후

자가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로 자신들이 오랫동안

범죄한 사실을 들고 있다.


=====64:6

  부정한 자(*     , 타메) - 레위기적 의미의 오염되거나 더러워진 그 무엇을  가리

키는 용어로서, 모세의 율법에 따른 오염되거나 혐오스러운 동물(레 11:29, 30), 인간

(레 15:2-12) 등에 특히 문둥병자에게 주로 적용되었는데(레 13:3) 이 같은 자는 성도

의 회중에서 추방당하였다.

   더러운 옷(*       , 이딤) - 문자적인 뜻은 '더러운 걸레'이다. '사용한  생리대'

를 뜻하기도 한다(레 15:33;20:18).


=====64:7

 스스로 분발하여(*           , 미트오레르) - 이는 '깨어나다', '일어나다'는  뜻

인 '우르'(*     )의 히트파엘형(강의 재귀형)으로서 눌려 있던 영적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스라엘 전체는 영적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영적  무기

력 상태를 깨닫지도 못하였다.

   얼굴을 숨기시며 - 하나님의 '얼굴'은 '은혜'를 가리킨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하나님편에서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신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그 은혜를 중단하자  많

은 결과가 발생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이 빠졌던 영적 무기력이었다.  물론

하나님이 은혜 베풀기를 중단하신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 테무게누) - 문자적인 뜻은 '녹게  하셨나

이다'이다. 얼음 따위가 녹아 내리는 모습 따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본 용어는 주로

이스라엘의 대적이 하나님이 일으키신 초월적인 현상 앞에서 공포로 떨 때의 심적  상

태를 묘사할 경우 사용되고 있는데(출 15:15), 여기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적용되

고 있다.


=====64:8

 본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토기장이에, 자신들을 진흙에 비유하고  있다(45:9;

렘 18:6). 토기장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흙을 주무른다. 진흙이 어떤 모양의 용기

가 되는 것은 혹은 다시 진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토기장이에 달려 있다.  성

경에서 본 토기장이 비유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이다. 본절에서 이스라엘은 자손들의 운명, 존재 자체가 하나님 손안에 있음을 인정하

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고백하는 까닭은 구원을 호소하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 스스로에게 달려 있지 않으며 오직 그들의 운명을 쥐고  계신

하나님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먼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구원을  호소

하려는 것이다.


=====64:9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 여기 '주의 백성'이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며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을 읽게 하는  용어이기

도 하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언약 때문에 범죄에 따른 하나님의 징벌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징벌에서 놓이고 다시 언약 백성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로 나가는

출발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의 호소이다.


=====64:10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 지금 서술된 장면은 그 성취 시점이 미래이다.

말하자면 저자가 기술하고 있는 시점은 서술된 내용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때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미 성취된 듯 완료 시제로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  내

용이 미래에 반드시 성취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거룩한 성읍들'에 대해 어떤 학자

는 동일한 예루살렘의 고지대와 저지대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본다(Vitringa).  그러

나 성경 다른 부분에서 예루살렘을 고지대, 저지대로 나누고 있는 예가  없으므로  이

견해는 받기 어렵다. 아마도 예루살렘을 포함한 온 이스라엘 본토가 쑥밭이  되어버린

상황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복수형을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64:11

 열조가 주를 찬송하던...전 - 여기 '찬송하던...전'이란 하나님께 예배하던 성전을

가리킨다. 지금 이스라엘의 고통을 심화시키는 요소는 전토나 가옥의 파괴 및  손실이

아니라 그의 조상들이 오랫동안 예배 처소로 삼아왔던 성전의 파손이다. 진지한  회개

의 일면이 엿보인다.

   즐거워하던 곳 - 원문 직역은 '소망의 대상들'이다. 성전을 포함하여 자신들이  살

던 가옥들 그리고 온 도성을 가리킨다.


=====64:12

 일이 이러하거늘 - 여기 '일'이란 '어러한 것들', 곧 지금까지 자세히 열거한 재앙

들을 가리킨다(10, 11절). 참회개(5절)와 재앙의 진상을 아뢴 후 하나님의 신속한  구

원을 요청하고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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