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6장 주석
=====46:1
벧 - 바벧론의 수호신들 중의 우두머리이며, 그 수도의 신인 말둑(Marduk)의 또 다
른 이름이다. 이는 아람 방언이며, 히브리어로는 '주'라는 뜻의 '바알'이다(엠
50:2;51:44).
느보 - '나부'라 불리기도 한 이 우상은 바벧론 당시 벧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겨
졌다. 말둑의 아들이며 운명의 서판들을 보관하는 문학과 지혜의 신이다. 그러나 느부
갓네살, 나보니두스와 같은 왕들의 이름이 이 신의 이름과 유사한 것을 볼 때 바벧론
왕조가 섬겼던 신, 곧 왕가의 수호신이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Whybray). 그런데 본절
은 이들을 포함한 다른 우상들이 그들을 숭배하는 자들의 짐이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
러니컬한 이 표현을 통해 그 대조를 이룰 참신이신 하나님의 특성이 더욱더 두드러지
게 나타난다(3절).
=====46:2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 여기 '짐'이란 금속, 목재 혹은 돌 등으로 구성되었
던 바벧론의 신상 그 자체를 의미한다. 바벧론 사람들이 숭배했었던 이 신들은 그들
자신을 상징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던 형상조차도 지킬 힘이 없었기에, 더군다나 그들을
신뢰하는 자들을 구하고 보호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46:3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 - 문자적인 뜻은 '태중에서부터 운반된 자'이
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하나님께 짐이었음을 의미한다. 여기 '짐'이란 다
름 아닌 이스라엘의 심판과 비참의 근원이 된 '죄의 짐'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죄의
짐을 지고 죄를 사하는 분으로 계시된 하나님은 그 섬기는 자에게 도리어 짐이 된 이
방의 신과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은 짐을 지우는 분이 아니라 짐을 지는 분이셨다. 바
리새인들이 구약 성경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왜 그리스도께서 그와같이 사시고 그와같
이 죽으셨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46: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 하나님은 동일한 자상함, 애정, 보살
핌을 계속 유지하실 분이라는 뜻이다. 곧 하나님의 분별성이 그 핵심이다. 이 예언은
혈통적 유대인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에 포함될 성도 모두들
에게까지도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Fausset).
=====46:5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 본절의 의도는 하나님과 대조가 되는 우상 숭배의 어
리석음, 우상 신뢰의 헛됨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본서 저자가 흔히 강조하는 주제
이기도 하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바벧론의 우상들은 그 도성을 보호하지 못할 뿐
더러 그 자신도 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두고 있다(1, 2절). 그렇다면 그것들을 의
존하는 일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 그리고 그 무력하고 허망한 우상들과 살아계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을 비교하는 일은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Barnes) !
=====46:6
금을 쏟아 내며 - 여기 사용된 동사 '줄'(* )의 문자적인 뜻은 '흔들다', '풍
부하게 붓다' 등이지만 '탕진하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신 21:20;잠
23:21;28:7). 말하자면, 우상 숭배자들은 천하고 무치한 신상을 만들기 위하여 아낌없
이 금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Fausset).
은을 저울에 달아 - 저울에 무게를 다는 행위는 대체로 신중하고 사려깊은 정서를
반영한다. 그러나 낭비하듯 값비싼 금을 사용하는 우상 숭배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 바
로 앞 구절을 중시할 때, 본문은 '그들은 정확히 그 눈금을 보지도 않고 값싼 금속을
취급하듯 되는 대로 양을 달았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장색(匠色)에게 주고 - 정확한 원문 지역은 '대장장이를 고용하고'이다.
=====46:7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 우상 숭배자들은 고용한 대장장이가 제작한 우상을
그들의 어깨에 메어 신전 혹은 그것을 고정시켜 둘 자리로 옮겨간다. 이 같은 묘사의
목적은 의심할 나위 없이 인간의 어깨에 메여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신에게 복종을 표
하는 일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의 처소에 두면 - 본절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호와와 대조시키는 것이다. 즉 여호
와께서는 피조물이 아니므로 영원하시며 무소 부재(無所不在)하신 반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그 처소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우상은 누가 옮겨가기전까지는 전혀 움
직일 수도 없이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며 그를 예배하는 자들을 구하거나 그들의 소원을
들을 능력이 전혀 없음을 나타낸다.
=====46:8
패역한 자들 - 문자적인 뜻은 '범죄한 자들'인데, 문맥상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던 자들'을 지칭한다.
장부가 되라(* -, 히트오솨슈) -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용어로
서 어렵지만 '이쉬'(* )로부터 파생된 '남자처럼 행동하라'의 의미를 지닌 용어로
보면 무난하다(Gesenius). 유사 용어인 헬라어 '안드리제스데'(* )
가 고전 16:13에서 사용되었다:'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남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문맥상 어리석고 무가치한 우상 숭배 행위를 과감하게 청산하는 것을 뜻한다.
=====46:9
옛적 일을 기억하라 - 여기 '옛적 일'은 '리쇼노트'(* )로서 과거 이스
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시고 또 그
예언된 바를 성취하셨던 일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고서 하
나님이 그 행하신 일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는 분이심을 깨달아야만 한다. 이 같이
과거의 일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까닭은 오직 하나님만이 참신이심을 상기케 하기 위함
이다.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 역사를 깊이 상고함으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
은, 역사의 시종(始終)을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의 그것이다. 이 이슈(issue)와 관련
하여 최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자유'라는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 내용
인즉, 하나님은 미래에 무엇을 하시겠다는 계획을 말씀하시나 그 중간에 인간과의 대
화, 곧 인간이라는 파트너의 반응에 따라 그 역사 계획을 수정하시기도 한다는 것이
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대로 행하실 자유와 수정하실 자유를 갖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
럴 수도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Zimmerli). 어떻게 보면 이 같은 주장은 역사의 주체이
신 하나님의 자유성을 변호하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그 중심을 살펴
보면 위험성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자유를 말하는 것 같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인간의
자유를 말하기 위하여 그같이 주장한 것이다. 인간의 역할, 반응의 중요성을 확대시킨
이 주장은 결국 하나님을 인간의 하수인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물론 성경은 인간의 행
위에 따른 하나님의 반응을 적고 있다. 죽을 것을 선언받았지만 기도를 통하여 그의
생명을 연장받은 히스기야가 그 대표적 모범이다. 그러나 이 사건 역사 하나님의 주권
적 계획하에서 되어진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반응에 따라 그
의 계획을 변경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불변적으로 일관되게 시행
하신다. 하나님의 가장 큰 특징, 곧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것은 그의 계획과 그
실행의 신실성에 있다.
모략이 설 것이니...이루리라 - 여기 '모략'은 하나님의 계획, 뜻을 가리키는 말이
다. 상반절이 하나님의 역사 계획의 일관성을 강조한다면, 본하반절은 하나님의 주권
적 역사 통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은 역사 계획을 일관성있게 진행하실 뿐
아니라 주권적으로 세부적인 사항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46:11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 여기서 1차적으로 의도된 인물은 고레스임이 분
명하다. '동방'은 바사를 의미한다. '독수리'로 번역된 '아이트'(* )는 '솔개'(욥
28:7), '매'(렘 12:9), '독수리'(18:6)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호전
적인 왕, 움직임의 신속성, 황폐를 낳는 강한 세력 등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는
데,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개역 성경을 비롯한 영역본들은 본 용어를 '독수리' 혹은 맹
금(猛禽)으로 번역한 것이다. 성경에서 전쟁을 좋아하는 왕을 독수리에 비교하고 있는
예는 많으며(렘 49:22;겔 17:3), 아마도 본 문맥에서는 고레스가 큰 힘과 용맹성으로
열방들에게 나타날 것과 마치 맹금과 같이 갑자기 그들을 덮칠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본 용어가 사용된 듯하다. 실제로 고레스의 군대는 긴 창에 황금빛 찬란한 독수리 형
상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Xenophon).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 - 여기 '모략'은 10절에서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데, 특히 본절에서는 고레스가 단지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하여 불리운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조할 목적을 지니고 있다. 고레스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반
드시 이루실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내가 말하였은즉'이라는 강조사가 동원되고 있다
(Whybray).
=====46:12
마음이 완악하여 - 본래 이 표현은 대담하고 용기있는 자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데 대담한 자, 하나님의 계획과 통치에 저항하고
대적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자, 곧 본서의 표현대로 하면 영적으로 우매한 자를 가리킨
다.
나를 들으라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우매한 결과, 죄를 짓고 포로로 잡혀 갔지만
포로의 징벌 속에서도 징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명령이다.
=====46:13
하나님께서는 한 인물을 들어서 그의 계획을 실천하실 터인데 그 인물이 행할 일의
내용을 본절은 '나의 의', '나의 구원', '나의 영광' 등의 용어들로 정의하고 있다.
개역 성경을 볼 경우 '나의 의'와 '나의 구원'만이 평행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여
겨지나, 원문 성경을 보면 '나의 영광'과 '나의 구원'도 평행구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나의 구원'과 '나의 의'가 갖는 관계이다. 구원을 가져다 주는 의에 대하
여 가장 잘 언급하고 있는 곳은 롬 3:21이하이다. 로마서는 하나님 자신의 의로우심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칭의적 의를 동시에 설명한다. 이같이 로마서와의 연관성 속
에서 살필 때, 본절의 의는 인간에게 전가되는 구원의 의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
을 나타내는 하나님 자신의 의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죄인을 의롭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의를 손상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속에 근거
할 때만 가능하다. 동방에서 일으킬 한 인물과 지금까지 논한 하나님의 구원(및 영광)
을 낳을 하나님의 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11절에서 살펴보았듯이 동방의 인
물은 역사적 인물인 고레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레스를 그 궁극적 인물의 예표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무지 몽매한 이스라엘을 구원하
시기 위하여 고레스를 통해 포로 귀환의 장도(長途)에 오르게 하실 뿐 아니라 보다 궁
극적으로는 고레스로 예표된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본절은 멀리서 조망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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