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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이사야

[스크랩] 이사야 47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7:23

이사야 47장 주석

 

=====47:1

  처녀 딸 바발론 - '처녀 딸'이란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은 순결한 여인을 가리키는

데, 바벧론과 동격으로 사용된 데에 대하여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이  용어는

바벧론이 그전에는 외국 군대에 의하여 한번도 정복을 당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암시

한다고 보는 견해이다(Kimchi, Whybray). 두 번째로, 이 용어는 바벧론 자체를 가리키

는 것이 아니라 갈대아와 그  땅  전체를  의인화한  표현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Gesenius). 섯째로, 이 용어는 바벧론 성 자체의 아름다움, 찬란함, 그리고 그 성 여

인들의 우아함, 장식품의 풍부 등을 암시한다는 견해가 있다(Barnes). 각각의  견해들

이 일리는 있으나 문맥이 난공 불락의 바벧론 성이 외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멸망을 당

할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첫 번째  견해를  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다

(Herodotus).

   티끌에 앉으라 - 이는 땅 위에 앉아 재를 머리에 뒤집어 쓰는 것을 가리키는데, 성

경에서 이 이미지는 극도의 수치나 슬픔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욥  2:12;10:9;애

3:29). 디도(Titus)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조한  기념  메달에

보면 종려나무 아래 땅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Barnes).

여기서 이 표현이 사용된 것은 가장 열악한 상황으로 떨어져 버릴, 가장 심한  슬픔을

맛볼 바벧론을 묘사하기 위함이 분명하다.


=====47:2

 맷돌을 취하여 가루를 갈라 - 아우구스투스 시이저 시대에 물레방아가 발명되기 전

까지 고대 근동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맷돌은 아래짝과 위짝 두 둥근 돌로  만들어졌으

며 아래짝은 볼록한 모양으로 위짝은 오목한 모양으로 서로 맞물려 있었고 위짝  맷돌

가운데에 난 구멍으로 곡식 따위를 넣어 돌리므로 곡식을 빻았다. 대체로  여인  둘이

마주 않아 돌렸던 이 맷돌은 특히 여자 노예의 전유물이기도 하였다(마 24:41).  미래

바벧론의 노예 생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면박을 벗으며 - '면박'에 해당하는 '차마테카'(*       )는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

서만 나오며, 의미는 '꼬고 땋아 내린 머리' 혹은 문자 그대로 '얼굴을  가리는  얇은

천' 등으로 볼 수 있따(고전 11:15). 땋은 머리든지 면박이든지 그것을  들어올리거나

벗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큰 수치를 뜻하였다.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 다리를 드러낸다는 표현은 당시  바벧론의  지도층

부녀자들이 자락이 길고 펄럭이는 옷을 입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강을  건넌다

는 표현은 바벧론 주위에 있었던 많은 강들과 수로들을 건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울러 이는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47:3

  내가 보수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 본 구절 중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

라'는 매우 어려운 부분으로 그 해석이 다양하다. 해석에는 '사람이 나를 저항하지 못

하리라'(Jerome), '나는 그 어느 누구도 중재가가 되지 못하게 하리라'(Grotius), '나

는 누구와도 평화하지 않을 것이다'(Noyes)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해석의  관건은

'아끼다'로 번역된 '에프가'(*       )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인데, 이 용어는  '누구를

치다', '공격하다', '적대감을 갖고 덮친다', '죽이다', '살육하다' 등의  뜻과  함께

'누구를 치다', '공격하다', '적대감을 갖고 덮치다', '죽이다', '살육하다' 등의  뜻

과 함께 '누구를 대신하여 만나다'의 뜻도 가지고 있다. 이 후자의 뜻을 중시하고  전

술한 해석 중 그로티우스(Grotius)의 견해를 존중할 때 우리는 문제의 구절을  이렇게

번역할 수 있겠다:'바벧론을 대신하여 나선 그 어느 중재자도 만나지  아니하리라'(참

조, I will not meet thee as a man, KJV). 이 같은 번역은, '내가 보수하되'라는  표

현에서도 분명히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바벧론에 대한 징벌의 단호한 결심과도  조화

를 이룬다.


=====47:4

 본절은 앞뒤 문맥과 잘 조화되지 않는 듯한 독특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

은 일종의 찬양 혹은 큰 놀람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저자는 환상 중에  바

벧론의 수치스러운 멸망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큰 놀람과 기쁨의  탄성을  터뜨렸던

것 같다. 그 감격의 내용을 좀더 풀어보면 이와 같다:'오 우리의 구속자이시여 ! 당신

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시니이다 ! 당신의 능력은 얼마나 크신지요 ! 당신은  얼마

나 신실하신지요 !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너무도 분명히 드러났나이다. 바벧론이 멸망

하나이다. 그들의 우상이 그들을 구원할 수 없나이다. 그들의 멸망은 우리 백성의  구

속자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당신에 의하여 성취되었나이다.' 예기치 못했던

바벧론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인간적인 통쾌감을 느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구원

자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 및 그분에 대한 감격을 느꼈던 것이다.


=====47:5

  흑암으로 들어가라 - 동일한 이미지가 이스라엘의 포로 사실과의 연관성 속에서 사

용된 바 있는데(42:7), 이제 그 동일한 운명으로 고통다하는 바벧론을 묘사하기  위해

다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본 묘사가 바벧론의 포로 사실을 필연적으로 암시하는 목

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포로와 같은 슬픈 운명을 강조할 뿐이다.

   열국의 주모(主母) - 분자적인 뜻은 '왕국들의 여주인'이다. 이  호칭은  로마에게

붙여졌던 '세계의 여왕'이란 호칭을 연상케 한다. 바벧론은 이 같은 호칭에 걸맞는 권

세와 명성을 유지하였고 그 주위의 열국들은 종속자, 종들로 여겨졌었다.


=====47:6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 여기 '기업'이란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땅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모든 유다의 도시들이 파괴되도록 허락하셨고, 그  결과  그

온 땅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비록 갈대아의 손을 빌어 그 일을 하셨지만  분명히  그

결과는 하나님의 계획 아래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 이스라엘 포로를 대함에 있어  바벧론

이 온정을 베푼적도 있었다. 다니엘의 경우 바벧론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았고 큰 특혜

를 누렸던 것을 우리는 익히 아는 바이다. 그러나 바벧론 왕 느부갓네살의 경우  예루

살렘 성과 도시를 참혹하게 부쉈을 뿐 아니라 인권을 말살하는  잔혹성으로  이스라엘

포로들을 대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시편 기자는 그 사실을 애절한 시구로 묘사한  바

있다(시 137:1-3). 더욱이 바벧론의 압제자들은 노인을 학대하고 그들에게 중한  노역

을 시켰다. 성경은 도처에서 노인에 대한 예우, 공격을 중요한 의무로 가르치고  있다

(레 19:32;욥 32:4-6). 그리고 노인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행동을 가장 악한 범죄의 하

나로 경고하고 있다(왕하 2:23-25;잠 30:17). 바벧론의 압제자들이 노인을 학대한  사

실을 예레미야의 시들 속에서 반영되고 있다(애 5:12).


=====47:7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 이 구절은 바벧론의 교만과 자기  확신을  묘사한다.

바벧론은 부(富), 그 성벽과 성문의 견고함, 대적에 대항할 수 있는 풍부한 군비 등을

믿었다. 더군다나 바벧론에게는 내우 외환(內憂外患)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듯이 보였

다(Barnes). 따라서 그들은 바벧론의 태평 성대가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믿었다.  그러

나 그 같은 확신이 바벧론 멸망의 동기는 되지 않는다. 문제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도

구였다는 사실 곧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었다.

   이 일 -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지 못한 채 포로  생

활로 압제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들의 방법대로 가혹하게 대했던  것을  가리킨다.

물론 그 같은 처세는 자신들이 거룩하고 공의로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때문이었다.

   그 종말 - 바벧론은 자신들처럼 교만하고 잔혹하였던 다른 열방들의  종말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어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통치

를 인정치 않았으니 불행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47:8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 유흥에의 탐닉과 사치스런 생활이 조장한 유약하고 의미

없는 삶을 가리킨다. 일설에 의하면 이 시대는 부패와 유흥과 방탕이 극에 달했던  시

대라고 한다(Strabo). 또 다른 학자는 그 당시 바벧론만큼 방탕과 범죄적 쾌락에 몰두

했던 나라는 없었다고 주장한다(Curtius).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 이것을 바벧론의 비교 우위적 자만으로  보

는 견해가 있다. 즉, 바벧론 백성들은 그들의 도시만 도시요 다른 나라의 도시들은 무

가치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당대 필적할 나라가 없었던 로마 역시 동일한 자만을

나타냈다고 한다(Martial). 그러나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위치에  자신들

을 비교했던 신성 모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Whybray). 이 두 견해는 상호  보완적이

다. 왜냐하면 자신들에 대한 극도의 자만은 결국 자신들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게 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자만, 하나님에 대한 도전을 나타내었던 자들로 니느웨 성 거민들을

들 수 있다(습 2:13-15).


=====47:9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 원문 직역은 '많은 사술과 많은 주문  속

에서'이다. 여기 '속에서'는 '베'(* )를 번역한 것인데 이 '베'는 두 가지 의미로  쓰

일 수 있다. 하나는 '...에도 불구하고'이고, 또 다른 하나는 '...때문에'이다.  전자

의 뜻을 취할 경우는 개역 성경 번역의 뉘앙스처럼 많은 사술과 마법에도 불구하고 바

벧론에 재앙이 임한다는 뜻이 되겠고, 후자의 뜻을 취할 경우는 바벧론에 재앙이 임하

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많은 사술과 마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무리없는 문맥의 소통을 위해서는 전자를 취하는 것이 좋다.


=====47:10

  지혜...지식 - 이것은 당시 주변 국가에 비해 월등하게 발전하였던 산수,  천문학,

점성학, 마법 등을 일차적으로 가리킨다. 특히 당시 점성학이나 마법  따위는  단순한

학문의 성격을 넘어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47:11

  네가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며 - 여기 '근본'으로 번역된 '솨헤라'(*       )는

'새벽의 빛', '새벽의 여명', '아침'을 뜻한다. 이 같은 의미를 존중할 때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새벽의 빛이 캄캄한 어둠을 갑자기 몰아내듯이 바벧론 위에 임하는  멸

망도 갑자기 시작되리라는 것이다.

   이를 물리칠 능이 없을 것이며 - 여기 '물리칠'은 '속죄하다', '보상하다'가 그 원

문적인 뜻이다. 말하자면 바벧론은 그 어떤 속죄의 희생물이나 기도,  제물  따위로도

임하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는 신정(神政) 시대였다. 따라서 어떤  나

라든 간에 위기가 닥치면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 의존함으로써 위기를 해결하기 일쑤였

다.


=====47:12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악신의 음성을 듣고 그 위기를 해결했던 영매자,  마법

사들에게 이번에도 악신을 불러 위기를 한번 막아보라고 권하는 일종의 조롱조의 도전

이다.


=====47:13

 하늘을 살피는 자 - 문자적인 뜻은 '하늘을 나누는 자'이다, 여기서 '나누는'에 해

당하는 '호베레'(*       )는 구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용어이며 '자르다', '나누다'

를 뜻하는 아랍어의 동족어이다. 바벧론 사람들은 천체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땅의 일을 예언하기 위하여 하늘을 몇 구역으로 나누었다. 아마도 오늘날의 황도대(黃

道帶), 12궁도 따위도 바로 여기에서 기원한 것 같다(Whybray).

   별을 보는 자 - 문자적인 뜻은 '별을 응시하는 자'이다. 이는 단순히 천문학을  연

구하는 차원보다는 별을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격체로 숭배했던 사실과  관련되는

표현인 듯하다.

   월삭에 예고하는 자들 - 문자적인 뜻은 '달들에 관하여 지식을 주는 자'로서  달의

모양이 변해가는 동안 벌어질 땅 위의 사건을 예언하는 일종의 점쟁이들을  가리킨다.

하늘, 별, 달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피조물들을 관찰하며 미래지사를 예언하는 자들

을 비웃듯 열거하고 계신다.


=====47:14

  이 불은 더웁게 할 숯불이 아니요 - 문자적인 뜻은 '따뜻하게 하는 숯 하나 없으리

라'이다. 이것은 바벧론의 완전한 멸망을 암시한다. 초개나 나무의 등걸이 완전히  타

버릴 경우 심지어 숯 하나 남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와 같은 장면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어떤 학자는 '그것으로 빵 하나 구울 수 있는 숯 조각 하나 남아 있지

않으리라'로 번역하기도 한다(Rosenmuller, Cocceius).


=====47:15

  너의 근로하던 것들 - 앞에 언급된 '하늘을 살피는 자', '별을 보는 자',  '월삭에

예고하는 자' 등을 가리킨다.

   너와 함께 무역하던 자들 - 바벧론은 지형학적으로 교통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무

역을 목적으로 하는 많은 외국 배들이 그들의 항구를 빈번히 찾곤 하였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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