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6장 주석
=====16:1
이 땅 치리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 현재의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모압이 건짐
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유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서 선지자는 유다 왕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권유한다. 조공은 복종을 표시
하며, 동시에 보호와 도움을 요청하는 간구의 수단이다. 모압은 양들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도 새끼양 십
만의 털과 수양 십 만의 털을 보낸 전력이 있었던 만큼, 그 물품으로는 어린 양들이
적격이었을 것이다(왕하 3:4).
셀라에서부터...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 '셀라'는 모압 사람들이 도피하였던
에돔의 수도이다(왕하 14:7). 그러나 이 말이 고유 명사로서보다는 '바위'(* , 셀
라)로 뒤덮인 모압의 주요 도시들을 지칭하는 집합 명사로 쓰였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Oswalt, G.Rawlinson). 이 공물은 셀라에서부터 출발하여 사해 남부를 돌아 유대
광야를 거쳐 딸 시온 즉 예루살렘에 이르도록 지시되었다.
=====16:2
모압의 여자들은...새 새끼 같을 것이라 - '모압의 여자들'(* , 베
노트 모압)은 모압 마을들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가리킨다(애 1:15;겔 16:55-57 참조).
고향을 떠나 이곳 저곳을 근심스레 방황하는 그들은 이미 '떠다니는 새'요, '보금자리
에서 흩어진 새'나 다름없다. 이러한 그들의 정서가 아르논 강에 속한 나루터에서 가
장 진하게 투영된다. 본절은 모압의 처지가 어느 정도로 위태로운가를 여실히 묘사해
주고 있다.
=====16:3
본문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은 선지자가 유다의 입장에서 모압에게
말하고 있다고 본다. 즉, 유다의 피난민들을 모압인들이 친절히 대해 주도록 부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모압의 멸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맥에 어울리지 않
는다.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을 유다에 대한 모압 사절들의 간청으로 해석한다
(Gesenius, Delitzsch, Gary, Oswalt).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 직역하면 '모략을 자져오며 공의를 실행하며'이
다. 그 뜻은 어려운 지경에 빠진 모압 사람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말고 은혜롭게 대우
해 달라는 것, 다시 말해서 피난민들을 보호해 달라는 것이다.
정오 때에 밤같이 그늘을 짓고 - 성경에서 종종 '한낮의 뜨거움'은 억압과 고난을
표상하는 말로 쓰인다(4:6;25:4). 그럴진대 '그늘'이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을 함의함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그 의미는 뒤따라 나오는 구절에서 명확히 해석되고 있다:'쫓
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16:4
나의 쫓겨난 자들로...그 피할 곳이 되라 - 본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쫓겨난 모압인들로 너와 함께 머무르게 하라. 너는 약탈자의 얼굴로부터 그들을 숨기
는 피난처가 되라'(NIV).
대저 토색하는 자가...멸절하였으며 - 그러나 이러한 피난은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착취자'(* , 하메츠)가 끝장나고 '폭압'(* , 쇼드)이 그쳤
으며 '발로 짓밟는 자'(* , 로메스)가 그 땅에서 멸절되었기 때문이다. 동사의 과
거 시제는 미래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이 압제의 종언(終焉)은
다윗 장막에서 출현할 미래의 완전한 통치자(왕)의 출현과 밀접히 관련된다.
=====16:5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신속히 행하리라 - 폭력과 착취로 능사를 삼는 지상 제국
이 멸절한 자리에 그와 대조적인 한 왕국이 돋아남을 본다. 이 왕국은 다윗 장막에서
나온 한 왕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왕은 '인자함'(* , 헤세드)으로 백성을 다스리
고 '충실함'(* , 에메트)으로 옳고 그름을 판결할 것이며(시 89:24,33 참조), 또
한 '공평'(* , 미쉬파트)과 '의'(* , 체데크)를 추구하고 실행할 것이다
(9:7;11:4). 이 모든 것들에서 메시야적 시대를 구별짓는 친숙한 특징들을 발견한다.
이 메시야적 소망에 모압도 열방의 하나로서 참여한다. 이는 모압이 시온의 그늘 아래
서 피난처를 삼았다는 사실로 말미암는 것이다. 2:1-4에 기록된 예언을 연상시킨다.
=====16:6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이 피난민들을 숨겨달라는 모압의 간청에 대한 시온의 부정
적인 답변, 즉 거절을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을 엄밀히 살펴볼진대,
명백한 거부 의사를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3,4절에서 2인칭 복수로 되어 있는 점이
위의 주장을 수용하기 어렵게 한다. 따라서 그레이(Gray)의 제안을 따라 본문을 모압
의 교만에 대한 독립된 서술로 간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 선지자는 모압을 교만한 민족이라 단정짓는다.
짧은 본문에서 동일한 어근으로부터 파생된 '교만'이란 낱말이 4번이나 중언(重言)되
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모압의 교만에 대하여는 25:11;렘 48:42을 참조하
라. 이러한 교만은 다른 사람을 쉽게 경멸하며 사소한 것도 참지 못하는 '격분'(*
, 에브라)과 자신을 치켜세우기 좋아하는 '자랑'(* , 바딤)으로 연결된다.
'바딤'은 '재잘거리다', '쓸데없이 말하다'는 뜻의 '바다드'(* ) 동사에서 파생한
말이다. 흠정역은 이 말을 '거짓말'로 번역하였다. 허영과 교만으로 가득 찬 그들의
자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거짓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교만은 하나님께
서 미워하시는 죄악들 중 으뜸가는 것이며(잠 6:16,17;8:13), 그 최후는 필경 멸망과
넘어짐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잠 16:18). 따라서 다음절에서 모압의 교만은 통곡으로
바뀌어진다.
=====16:7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라는 말은 모압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며 운다는 뜻이다(Calvin). 이 울부짖음에서 제
외되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 비탄의 크기가 클 것임을 뒤이어 나오는 '모두 다(*
, 쿨로) 통곡한다'는 말이 보여준다. 이하에서 선지자는 양털과 더불어 모압의
대표적 작물의 하나이며 모압의 교만의 한 요인이기도 한 포도나무에 초점을 맞추어
모압의 황폐상을 비유적으로 묘사해 나간다.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 '길하레셋'은 '길 모압'과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
(15:1;왕하 3:25). '건포도 떡'(* , 아쉬쉐)은 건포도를 떡의 모양으로 눌러
만든 것을 말하는데(삼하 6:19;아 2:5;호 3:1), 아마도 길하레셋의 주요 교역 물품인
듯하다. 칼빈(Calvin), 미켈리스(Michaelis) 등은 이 말을 '토대', '주춧돌'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흠정역도 그렇게 해석함). 그러나 모압 덩쿨의 황폐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맥에 비추어 볼 때 '건포도 떡'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Alexander,
Delitzsch). 본문과 병행하는 렘 48:31에서 '길하레셋 건포도 떡'은 '길헤레스 사람'
(* , 안쉐)으로 변형되어 나온다.
=====16:8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 - 헤스본과 십마는 모압의 유명한 포도 산지들이
다. 특히 십마의 포도는 그 맛이 달고 강렬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헤스본에 대하여
는 15:4 주석을 참조하라. 십마는 르우벤 지파에 속했던 촌락으로(민 32:38;수
13:19), 제롬(Jerome)의 수사학적 표현에 의하면, '헤스본에서 걸어서 500보 되는 거
리'쯤에 위치해 있다.
전에는 그 가지가...바다를 건넜더니 - 한창 때 모압의 포도 농사는 북쪽으로 야셀
에 미치고 동쪽으로는 시리아 사막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사해 근방까지 펼쳐졌었다.
이는 물론 선지자의 과장된 표현이다. '야셀'은 헤스본 북쪽 15마일 되는 거리에 위치
한다(민 32:35;수 13:25).
열국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 본문은 어떤 이들이 생각하듯이 십마
의 포도주의 우수성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그처럼 방대한 지역에서 번성하던 포도나무
가 급작스레 황폐하게 된 원인을 상술하고 있는 것이다(Alexander, Oswalt). 전자의
해석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본문을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에 도취되어 쓰러
졌도다'로 번역한다(Cocceius, Vitringa, Lowth, De Wette, Delitzsch, Gray). 이들은
본문의 동사 '할람'(* )이 28:1에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강력한 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본문과 28:1 사이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상이점이 있으니, 즉 그곳에는 적
에 의한 포도나무의 황폐를 암시하는 말이 없고 더욱이 사람들을 넘어뜨린 것도 포도
나무가 아니라 포도주였던 것이다(Gesenius, Kissane). 언급된 '열국의 주권자들'은
아마도 여러 민족 단위의 사령관들로 구성된 앗수르 군대를 가리킬 것이다(Leupold).
=====16:9
내가...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 본문의 주제는 선지자의 눈물이다. 선지자는
십마의 포도나무가 황폐케 된 것을 슬퍼하는 야셀의 울음에 자신의 눈물을 섞는다. 그
의 눈물은 쉬임없이 흘러 헤스본과 엘르알레를 적신다. 이 눈물은 물론 모압의 참상에
대한 선지자의 인간적 동정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범죄한 백성에
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간접적으로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
(Alexander). '엘르알레'에 대하여는 15:4 주석을 참조하라.
너의 농작물에 떠드는 소리가 일어남이니라 - '떠드는 소리'(* , 헤다드)는
원래 포도짜는 농부들이 포도즙을 밟을 때 내지르는 즐겁고 유쾌한 소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은 비옥한 들판이 침략군의 장화에 의해 짓밟히는 소리이다. 마땅히 흘러
야 할 포도즙 대신에 선지자의 '눈물'(* , 데마)이, 마땅히 들려야 할 수확의 환
호소리 대신에 포도원이 유린되는 소리가 들린다.
=====16:10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 롤린슨(G.Rawlinson)에 의하면, '틀'은 포
도원 가까이에 있다. 이는 바위를 파서 만드는데, 상하(上下) 둘로 나누어 위에서 흐
르는 것을 아래에서 받도록 하였다. 포도를 따면 먼저 윗틀에 부어 발로 밟고 그것을
아랫틀로 내려오게 한다. 이때 밟는 사람은 대략 7명이며 맨발로 밟는다고 한다. 이들
은 포도를 밟을 때 '포도의 노래'를 불렀다(렘 25:30;48:33).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 포도를 수확할 때 부르는 기쁨의 노래를 그치
게 하는 이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입에 불과한 것이다.
=====16:11
나의 마음이...그러하도다 - '마음'(* , 메에)과 '창자'(* , 케레브)는 몸
의 내장, 심장, 창자를 가리킨다. 이로 보건대, 선지자의 눈물은 그의 가장 깊은 내면
에서 솟구치는 것이 분명하다. '소리를 발하며'(* , 예헤무)는 직역하면, '격렬
하게 떨리며', '요동하며'이다. 모압에서 이루어질 가공할 심판을 생각할 때 선지자의
창자는 마치 하프 줄이 떨림같이 고통으로 뒤틀린다는 것이다. '길하레셋'은 '길헤레
스'(렘 48:31)와 같은 곳이다.
=====16:12
그 산당에서...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 재난의 순간에 모압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모스 신이 있는 산당에 나아가 몸이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기도하는 것
뿐이다.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 키-니르아 키-닐르아)
는 직역하면 '모습을 드러낼 때, 기진 맥진할 때'이다. 이는 그들이 섬기는 신으로부
터 응답을 얻어내기 위하여 제몸을 학대하는 이방 종교의 예배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왕상 18:28 참조). '니르아 닐르아'(* )는 유음 현상이다. 그럴지라
도 그들의 모든 노력은 결국 헛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무효하리로다'(*
, 로 유칼)는 '할 수 없을 것이다'이니, 즉 그들이 성전에서 큰소리로 부르짖을지라
도 그 응답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16:13
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 선지자가 제시했던 모압에 대한 경고는 이
미 오래 전에 그에게 주어졌던 말씀이다. 여기에 새로운 예언이 첨가되어 계시의 결론
부분을 형성한다.
=====16:14
품군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 3년이라는 시기는 예언의 확실성을 기하기 위
해 제시된 것이다. 이 시간은 결코 늦춰지거나 연기될 수 없으니, 왜냐하면 그것이
'품군의 정한 해' 곧 고용 기간이 끝나 품꾼들이 정한 삯을 받기로 되어 있는 그날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품꾼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21:16). 이처럼 모압의 파멸을 확정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한치
의 착오나 어김도 없을 것이다. 한편 이 '삼년'이라는 기간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듯하며, 다만 본절의 사건은 B.C.734년의 디글랏 빌레셀의 침공 사건 혹은
B.C.718년경의 사르곤 2세의 아라비아 북서쪽 부족민들에 대한 정벌 원정과 연관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모압의 영화와...소용이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 - 3년이 지나기 전에 모압의 영화는
'능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 니클라). 즉, 그때에 모압의 많은 무리가 끊어
져 무시할 만한 극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압의 운명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교만(* , 게온)으로 시작해서 수치(* , 칼론)로 마감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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