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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욥기

[스크랩] 욥기 (35 : 1~16)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1:21
욥기 35장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2 네가 이것을 합리하게 여기느냐 네 생각에 네가 하나님보다 의롭다 하여

ㅇ이것을 - 이 지시어가 3절의 '네가 말한것'(개역 성경은 '이르기를'로 번역함)을
미리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Delitzsch). 그 이유는 본절과 3절이 서로 같은
내용을 단지 표현 방법을 다르게 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지시어
를 본절 하반절의 내용인 '하나님보다 의롭다고 여기는 생각'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그것과 유사한 내용의 3절이 다시 부연 설명되고 있는 것
이다.
ㅇ합리하게(레미쉬파트) - 문자적으로는 '의롭게', '올바르게'라는 뜻
이다. 구약 성경에서 보통 '공의'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도한 '심판'이라는 표현으로
400여 회나 사용되었음을 볼 때(8:3;신 32:41;시 1:5;사 4:4 등) '하나님의 통치'와
관련된 의미의 단어임을 알 수 있다.

3 이르기를 유익이 무엇인고 범죄한 것보다 내게 이익이 무엇인고 하는구나

ㅇ이르기를(키 투오마르) - 문자적으로는 '왜냐하면 네가 말하기
를' 이며, 2절의 '이것'에 대한 대구이기도 하다.
ㅇ유익이 무엇인고(마 이스칸 라크) - '마'는 의문사
(what)이고, '라크'는 문자적으로 '너(당신)에게'(to you)이다. 이에 대해 혹
자는 7:20 내용에 착안하여 이 2인칭 대명사가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즉,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본절 상반절을 간접 인용으
로, 하반절을 직접 인용으로 보고, '라크'가 '하나님'이 아니라 '욥'을 가리킨
다고 봄이 더 무난하겠다(Gordis, Habel). 한편 다른 학자들(Duhm, Budde, Holsher)은
'라크'(to you)를 '리'(to me)로 수정하여 번역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욥 자신의 '유익'을 가리키고 있음을 분명히 하려 했다(NIV, RSV도 'to me' 또는 'I'
로 번역함). 그러나 원문을 이처럼 수정하기 위해 제시하는 근거가 미비하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주장이라 하겠다.

4 내가 너와 및 너와 함께 있는 네 동무들에게 대답하리라

ㅇ네 동무들에게 - 문자적으로는 욥과 함께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엘리후가 34장에서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논쟁에 끌
어들인 반면, 여기서는 아마도 '욥의 입장에 대해 동정과 찬성을 하는 사람들을 포함
하고 있다'고 본다(Pope). 그러나 엘리후가 입을 열게 된 원래적 의도로 미루어 보건
대(32:1-5), 본문의 '동무들'이란 엘리바스와 빌닷 그리고 소발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Rawlinson).

5 너는 하늘을 우러러 보라 네 위의 높은 궁창을 바라보라

ㅇ높은 궁창(쉐하킴 가브후) - '먼지'(사 40:15), '구름'(신
33:26;사 45:8), '궁창'(37:18) 등을 뜻하는 '솨하크'와 '높아지다', '고양
되다'라는 뜻인 '가바흐'의 파생형으로 구성된 말이다. 특히 여기서 '가바
흐'는 땅 위에 있는 인간의 낮음과 대조되는 높은 위치를 강조하기 위해 사
용된 단어로서 하나님의 위엄과 초월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구절은 엘리후가 신성
모독적인 욥의 말에 대해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초월성을 설명하기 위해 구체적인 대상
을 예로 들어 깨닫도록 하는 '교육적인 훈계'라 하겠다(Habel).

6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ㅇ범죄한들 - 여기서 '범죄'는 가상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욥이 하나님께 대해 지었
다고 엘리후가 단정하고 있는 완료적인 즉 과거의 범죄가 현재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Dhorme). 따라서 이 말을 다시 표현하면 '이미 범죄했지(해왔지)만'이
다.
ㅇ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 '영향'의 '티페알'은 '행하다', '저지르다'는
뜻의 '파알'의 파생형이다. 그런데 '파알'이 사람의 행위를 묘사할
때는 그 사람의 도덕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으며, 긍정적인 의미보다(시 15:2;습 2:3)
보통 부정적인 뜻을 나타낸다(34:32, '불법';잠 30:20, '사악함';사 44:15, '우상 숭
배'). 따라서 본절은 '네가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행할 수나 있겠느냐?'는 말로서,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전능하고 위대한 분이시기에 인간의 그 어떤 악행으
로도 그분에게 조그만 충격이나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7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ㅇ네가...무엇을 받으시겠느냐 - 6절과 동일한 의미를 단지 정반대의 표현으로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의로움에 무관심하시거나 인간의 죄악에 대해
방관하신다는 이신론(deism)적인 사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연신론(自然神論)이라고
도 하는 이 사상에 의하면 신은 일단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는 스스로 진행되도록 법칙
(자연 법칙)을 두시고 당신은 일체 피조 세계의 사건이나 역사에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신의 절대적 초월성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엘리후
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욥의 인간적인 시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의로움을
'신적 초월성'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불공평하심에 대한 욥의 반발에 대해
엘리후는 그 모든 시도들의 무익함을 말하고 있다.

8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뿐이니라

ㅇ너와 같은 사람 - 표면상의 뜻은 단순하지만, 본절의 문맥에서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단순히 하나님과 대조되는 의미에서 연약한 인간에 대한 일반적
총칭으로서 '사람들에게'로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엘리후가 특별히 욥을 지칭한 것
에 유의하면서 '욥 너와 같이 악하고 부정한 인간에게'로 볼 수 있다. 후자는 그 의도
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 한 가능한 이해라고 하겠다. 한편 본절은 인간이 그 어떤
행위로도 하나님의 영광에 무엇을 더하거나 감하지 못한다는 뜻을 재차 강조하고 있
다. 엘리후는 그러한 행위의 결과로 영향을 받는 것은 자기 자신일 뿐이라고 한다
(Delitzsch). 또한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불평의 정당성을 제시해보라고 암시적으로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엘리후에 의하면 하나님은 너무 크신 분이시기에, 욥
이 하나님께 자신의 의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며, 더욱이 자신의
기대에 어긋났다고 해서 불평하는 일은 더욱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Rawlinson).

9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세력 있는 자의 팔에눌리므로 도움을
부르짖으나

ㅇ엘리후는 다시 주제를 바꿔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에 관한 것이다.
ㅇ학대(아슈킴)는 '압박을 가하다', '사기를 치다', '폭력을 행하다'
라는 뜻의 '아솨크'의 명사형이다. 이 단어는 권세나 권력의 남용 혹은 국가
적인 지배의 폭압성을 표현하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본절에서 복수로 사용된 것은 그
만큼 폭압의 강도가 큰 것을 의미한다(Hartley). 본절 전체 내용은 억울하게 압박받는
백성들의 고통과 그들을 짓누르는 세력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난 받는 자들이 도움을 부르짖고, 심지어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는 하
나님을 불공정하고 불의한 분이라고 원망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욥도
이런 불평을 했다(24:12). 그러나 엘리후의 대답은 다르다. 엘리후는 그 내용을 10,11
절에서 말하고 있다.

10 나를 지으신 하나님 곧 사람으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며 우리를교육하시기를
땅의 짐승에게 하심보다 더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지혜 주시기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시는 이가 어디 계신가 말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구나

11 상동

ㅇ개역 성경은 이 두 절을 구분하지 않고 있으나 원문에는 분명히 구별되어 있다
(KJV, NIV, RSV도 구분함).
ㅇ사람으로...노래하게 - '노래하게'의 '제미로트'는 문자적으로 '노래
들'을 뜻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이 단어의 원형 '자마르'(노래하다, 찬양하
다)의 명사형 '자마르'가 '폭력', '용기', '능력'을 뜻하는 아람어 '다마
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Pope). 그리고 하틀리(Hartley)의 경우는 이 주
장을 수용하면서 노래하는 것, 특히 밤에 노래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감성적인 힘'
을 복돋아 주는 것이라고 본다. 즉, 본절에서 노래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에게 주시
는 용기라는 것이다. 어쨌든 본절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근심과 걱정이 사무치는 밤
중에 노래를 주심으로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되어 주시는 분으로 설명되고 있다.
ㅇ교육하시기를...더하게 하시며 - 직역하면 '그는 우리를 땅의 짐승들 이상으로 가
르치신다'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른 동물보다 더 존귀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존재로 대우하셨다는 의미이다(Lange). 반면에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동물을 통
하여 사람을 가르치신다'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Delitzsch). 이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을 통해서도 그렇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즉, 짐승들이 자기들의 고통과 욕구를 부르짖는 것을 통해 인간들도 하나님
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ㅇ어디 계신가...없구나 -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도리어 노래
를 부름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를 발견하고 누릴 수 있어야 하며, 자연 만물을
통해서 지혜를 깨달아 고통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그러한
배려와 기대하시는 바를 깨닫지 못했다. 엘리후는 바로 이러한 실패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로린슨(Rawlinson) 같은 학자는, 인간의 부르짖음은 동물의 본능적인 그
것보다 더 고상한, 즉 믿음과 경건과 겸손을 가진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결여되어
실패한 것으로 본다.

12 그들이 악인의 교만을 인하여 거기서 부르짖으나 응락하는 자가없음은

ㅇ교만을 인하여 - '교만'의 '게온'은 '일어서다', '자라다', '승리를 몹
시 기뻐하다'란 뜻인 '가아'의 파생형이다. 본절에서는 백성들을 폭압하는
자들의 행위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교만'으로 묘사하고 있다.
ㅇ거기서(솽) - 장소적인 의미로는 고통을 당하는 바로 '그 자리', '그 현장'
을 뜻하나(70인역, 제롬 역본), 오히려 시간적인 의미의 '그 때에', 즉 고통을 당하는
'바로 그 순간에'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Delitzsch). 한편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
러한 부르짖음에 대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13절에서 밝히고 있다.

13 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ㅇ헛된 부르짖음(솨우) - 문자적으로는 '공허', '허무', '허위'라는 뜻이
다. 십계명 중 제 3계명의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출
20:7)의 '망령되이'가 바로 이 단어의 부사구로 쓰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도움을 구하
는 자에게 응답하지 않으시는(12절) 이유가 이처럼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면 누구나
하나님의 공의에 의혹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엘리후가 욥의 부르짖음 일체를 단순히
헛된 것으로 단정했다면 그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입술로써만 중언 부언(重言
復言)하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다는 지적은 명확한 것이다(Delitzsch).
ㅇ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 직역하면 '관심을 두지 않다'이며(NIV, pays no
attention to it), '그것을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난하다(Lange).
본절에서 엘리후의 논점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압박받는 자들이라 할지
라도 오직 자기들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태도는 도리어 하나님
을 속이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은 당연히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시지 않고 아예 관심
조차 두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엘리후는 하나님의 판단을 호소하며
기다리는 욥의 태도가 위선이라고 공박하는 것이다(Habel).

14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시비는 그 앞에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하는 너랴

ㅇ일의 시비는...기다릴 뿐이라 - '일의 시비'(딘)는 '심판하다', '동의하
다', '호소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딘'의 명사형이다. 이 단어의 어원에
대해 드라이버(Driver)는 '굴복시키다', '복종시키다'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왔다고 주
장하여, '딘'이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라고(고대의 역본들에는 대개 동사로
되어 있음) 보고, 이 구절을 '너 자신을 그에게 복종시키고 그를 기다리라'로 번역한
다. 그러나 이 단어가 욥기에 빈번히 등장하는 법정적 용어로서 명사형으로 사용되었
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Habel, Pope). 따라서 본절은 욥이 하나님 앞에 당당히 자기
의 송사 문제를 제출해 놓고 최종 심판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자신의 무죄
와 결백이 선언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태도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엘리후는 바로 이러
한 욥의 당당함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 위선적인 호소'를 발견하였다. 엘리
후의 눈에는 욥의 이런 태도가 '헛된 부르짖음'의 극치로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15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횡포를 심히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ㅇ진노하심으로(아포) - 개역 성경은 이 구절을 '하나님의 진노'로 번역하
고 있지만, 문자적으로는 '그의 진노'이므로 누구의 진노를 가리키는지 정확히 알 수
는 없게 되어 있다. 이에 대해 16절과 연결시켜 두 가지의 해석이 일단 가능하다. 첫
째, 지금 그(하나님)의 분노가 닥치지 않았기 때문에...욥은 그의 입을 열었다는 해석
이다(Hartley, Lange). 둘째, 지금 그(하나님)가 그(욥)의 분노에 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욥은 그의 입을 열었다는 해석이다(Habel). 어쨌든 본절은 하나님께서 욥의
하나님에 대한 교만과 죄에 대해 징벌을 하지 않으시고 인내하신 것 때문에 욥이 자신
의 의를 주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16 이제 너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ㅇ헛되이(헤벧) - 문자적으로는 명사형으로 '공허'(emptiness), '덧없음'을
뜻한다. 이 명사형 '헤벧'은 보통 이스라엘이 섬기던 헛된 '신'들을 묘사할
때 사용되어 종종 '우상'으로 번역되었다(신 32:21;왕상 16:13,26;렘 2:5). 또한 '생
명이 짧은'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시 39:5,6;94:11;144:4;사 49:4).
ㅇ지식 없는 - 욥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말(그것이 엘리후에게는 헛되고 어리석
은 말로 여겨졌음)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어떤 것인가를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
온 것이라고 엘리후는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무지한 자
의 소행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으셨으며, 엘리후가 예상 하기로는 하나님의 징
벌 외에 남은 것이 없음에도 막상 그것이 욥에게 내려지지 않음으로 인해, 욥은 더욱
더 하나님을 공격하는 어리석고 헛된 말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이로써 엘
리후의 세 번째 연설이 끝이 맺고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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