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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욥기

[스크랩] 욥기 (37 : 1~24)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1:21
욥기 37장


1 이로 인하여 내 마음이 떨며 자기 처소에서 떠나느니라

ㅇ떨며...떠나느니라 - '떨며'의 '에헤라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기쁨이
나 슬픔 혹은 두려움으로 인해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가
령 '땅이 흔들린다'는 표현은 마음의 떨림에 대한 시적(時的)인 묘사인 것이다(사
10:29;41:5;겔 26:18). 그리고 '떠나느니라'(이타르)는 '뛰어오르다', '펄쩍
뛰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나타르'의 파생형이다. 이 두 단어는 모두 36장
끝부분에서 천둥과 번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ㅇ들으라 들으라 - '듣다'라는 뜻을 가진 '솨마'가 두 번 반복하여 사용되
었다. 이는 '항상 듣다'(시 6:9)라는 뜻과 '세심하게 듣다'(13:17)라는 뜻을 아울러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반부의 '하나님의 음성'은 3절의 '그 소리'와 함께
표면적으로는 천둥 소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엘리후가 자연 현상인 천둥 소리를 실제
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다만 이 표현은 천둥 소리가 사람
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Rawlinson).

3 그 소리를 천하에 퍼치시며 번개 빛으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ㅇ천하에 퍼치시며 - '천하'(하솨마임)는 문자적으로는 '하늘들'을 의
미한다. 이 표현은 하늘 끝에서 하늘 끝으로, 즉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시사한다. 또한 이 단어는 하반절의 '땅끝'과 대구를 이루어 온 천지를 모두
포함하는 능력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퍼치시며'(이쉬레후)는 천둥 소리
를 나타내는 지시형 어미 '후'와 '자유롭게 되다', '묶이지 않다'라는 뜻을 가
진 '솨라'의 파생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천둥 소리가 온 하늘을 뒤덮어
진동시킴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4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위엄의 울리는 음성을 내시고는 그 음성이 들릴 때에
개 빛을 금치 아니하시느니라

ㅇ번개 빛을 금치 아니하시느니라 - '번개 빛'으로 번역된 말은 원어상 목적격 접미
사인 '그들'을 문맥의 뜻에 맞게 '번개 빛'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
석은 여러 견해로 나뉜다. (1)여기 사용된 동사 '아카브'의 뜻을 '멈추다',
'억제하다'로 보고 주어는 '하나님'이 아니라 번개 빛에 놀라서 질겁을 하며 그 음성
을 듣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견해(Pope). (2)주어를 '하나님'으로 보고, 목적어를 '징
벌을 받아야 할 자들'로 이해함으로써 본문을 '그분께서 그들을 찾지 못하실까?'로 번
역하는 견해(Ewald). (3)이 구절의 주어를 '일반적인 사람'으로 이해하고, 동사 '아카
브'를 '머무르다', '붙잡고 있다'라는 뜻으로 번역함으로써 '그들(번개 빛)
앞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머무를 수 없다'라고 이해하는 견해(Gordis, Hartley). 즉,
천둥과 번개 앞에서의 인간의 무능력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
분의 보수주의 학자들은 개역 성경에서처럼 주어를 '하나님'으로 보고, 목적어를 '번
개 빛'으로 분석하여 '하나님께서 번개 빛을 억제하지 않으신다'로 번역하며, 영역본
들도 대체로 이러허게 번역되었다. 즉, 천둥에 뒤이어 번개가 치는 모습을 표현하는
구절로 보는 것이다(Rawlinson, Lange, Delitzsch, KJV, RSV).

5 하나님이 기이하게 음성을 울리시며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ㅇ기이하게(니플라오트)는 '기적', '불가사의한 일', '경이로움'을
뜻하는 명사 '펠레'에서 파생된 단어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사실이나 현상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이 단어는 하반절의
'헤아릴 수 없는'과 유사한 의미를 전달한다.

6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그 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

ㅇ명하여(이오마르) - 문자적으로는 '그가 말하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그것처럼 단지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연을 다스리시고 운행하시는
실제적인 힘을 지닌 창조적인 능력(창 1장)의 표출임을 보여준다. 한편 내리라
(헤웨)는 '떨어지다', '내리다'라는 뜻을 가진 '하와'의 파생형이다. 이 단어
는 원래 '입을 크게 벌리다', '하품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랍어에서 유래되었을 가능
성이 크다.

7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시나니 이는 그 지으신 모든 사람으로 그것을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ㅇ손을 봉하시나니 - '사람들의 손을 묶어 놓으신다'라는 뜻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
들의 일손을 놓아 멈추게 하신다는 의미이다(NIV, he stops every man from his
labor). 이런 상태는 6절의 '눈', '비'와 관련되어 있는데, 기후의 변화로 인하여 일
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하나님의 주체적인 행위의 결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이유는
하반절에 나온다.
ㅇ그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쉬면서 그 동안에 하나님의
일을 상기하며 그 능력을 인정하도록 하시기 위해 눈과 비를 땅에 내려 일을 하지 못
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8 짐승들은 숨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 굴에 머물며

ㅇ짐승들은 - 자연 현상의 변화(계절의 변화)로 말미암은 결과들은 인간에게(7절)만
이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짐승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때문인 것이다. 즉, 모든 생물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능력에 좌우되어 생(生)을 영위해 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
이다.

9 남방 밀실에서는 광풍이 이르고 북방에서는 찬 기운이 이르며

ㅇ남방 밀실...이르고 - '밀실'(헤데르)은, 우가릿 신화에는 엘(신)의 비밀
스러운 거처로 표현되었다(Pope). 이곳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폭풍우를 저장해 두는 곳
으로 여겨졌다(Rawlinson). 한편 원문상에는 '남쪽'이라는 표현이 없으나 개역 성경은
9:9의 표현과 같은 것으로 보고 '남쪽'의 의미로 이해한 듯하다(KJV, NASB도 이렇게
번역함). 결국 이는 남쪽 혹은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폭풍우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ㅇ북방에서는...이르며 -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메자림'은 기상학적
인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이것은 '흩어버리다', '쫓아버리다', '퍼지다'라는 뜻인
'자라'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이 단어는 미친듯이 몰아치는 북풍을 의미하
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0 하나님의 부시는 기운에 얼음이 얼고 물의 넓이가 줄어지느니라

ㅇ하나님의 부시는 기운 -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입김'으로서 바람에 대한
시적(時的) 표현이다.
ㅇ얼음이...줄어지느니라 - 북쪽에서 부는 찬바람으로 인하여 기온이 떨어져 얼음이
얼게 됨을 표현한다. 즉 얼음이 얼어서 물의 면적이 줄어들어 한 덩어리의 얼음으로
변한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매우 세심한 과학적 관찰을 보여준다. 결국 여기서 엘리후
는 인류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 현상까지도 자신의 수중에 두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11 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번개 빛의 구름을 널리펴신즉

ㅇ습기로...실으시고 - 여기서도 역시 고대의 문헌으로서는 매우 과학적인 묘사를 하
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짙은 먹구름 위에 습기를 더하신다'는 것으
로 비가 오는 원인을 묘사하고 있다.
ㅇ번개 빛의 구름 - 이는 '번개를 간직하고 있는 구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 과
학에서 번개는 서로 다른 극성(極性)을 가진 구름끼리의 충돌로써 설명되는데, 여기서
도 번개와 구름이 관련되어 있다는 분명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2 구름이 인도하시는대로 두루 행하나니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세계상에
이루려 함이라

ㅇ구름이...행하나니 - 구름의 움직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운
행하심에 따라 좌우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
시는 곳에 비를 내리신다(Rawlinson).
ㅇ세계 상에 - 문자적으로는 '온 세상의 지표면 위에'이다. 하나님께서는 구름을 당
신의 뜻대로 운행하시면서 온 지표면 위에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자연 현상이 일어나
도록 역사하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13절에서 계속되고 있다.

13 혹 징벌을 위하며 혹 토지를 위하며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구름으로 오게
하시느니라

ㅇ하나님은 구름의 조성과 운행 하나만으로도 인생들의 삶을 다양한 측변에서 관여하
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ㅇ징벌을 위하여 - 구름으로 인한 징벌은 많은 비를 내려 홍수로 땅 위의 모든 소산
물과 토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ㅇ토지를 위하며 - 땅 위에 적당한 비를 내려 초목과 작물이 잘 자라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다.
ㅇ긍휼 베푸심을 위하여(레헤세드) - 전치사 '레'는 '...을 위하여'
의 뜻이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 '헤세드'는 보통 '자비', '친절', '사랑' 등
으로 번역된다. 예언서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포함하는 '경건'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헤세드'는 비참하고 동정받을 만한 처지에
있는 대상에 대한 긍휼을 포함하는 사랑의 뜻으로, 특히 인생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애(仁愛)의 뜻으로 종종 사용된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불쌍한
인간들을 향해 사랑을 베푸시기 위하여 구름을 사용하심을 가리킨다. 이처럼 폭풍과
구름 등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되고 있다.

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ㅇ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말을 자세히 듣고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의 오묘하신 통치의 지혜를 깨달으라고 요구한다. 이미 엘리후는 자신의 말을
다했고 이제 남은 것은 욥이 그 속에서 자신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깨닫는 일뿐이라
는 것이다. 한편 '궁구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트보넨'은 '이해
하다', '숙고하다', '신중하다'의 뜻을 가진 '빈'의 파생형이다. 이 단어는
사물이나 사건을 주의깊에 통찰하여 사리를 분별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주로 사용된
다.

15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 빛으로 번쩍번쩍하게
하시는지 네가 아느냐

ㅇ명령하셔서(베숨)는 '놓다', '위치시키다', '지정하다'의 뜻을 가진
'숨'에 전치사 '베'가 결합된 단어이다. 영역본 NIV와 주석가 하틀리
(Hartley)는 이 단어를, 자연을 직접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여
'controls'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이 단지 만물의 창조자만 되시
는 것이 아니라 직접 운용하시는 주관자이심을 거듭 밝히고 있다.
ㅇ구름의...하시는지 -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름으로 하여금 번개 빛을 발하게 하
다'이다. 구름끼리의 충돌로 번개가 치는 것 또한 우연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
의 조종에 의한 것임을 뜻한다.
ㅇ네가 아느냐 -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의 오묘한 지혜를 인간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인정하라는 권고가 숨어 있다. 엘리후는 욥의 생각을 더욱
자극하여 굴복시키기 위해 이미 자신이 말한 자연 세계에서의 하나님의 섭리 외에 몇
가지를 수사 의문문의 형식으로 덧붙이고 있다.

16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가 아느냐

ㅇ평평하게 뜬 것(알미플레시) - 의문 부사 '알'(how)과
'무게를 달다', '평형을 맞추다'라는 뜻을 가진 '팔라스'의 파생형이 연결된
말이다. 여기서 '팔라스'는 좌우가 균형을 이루며 정리된 상태를 의미하며, 개역 성경
은 종종 '평탄케 하다'로 번역하였다(잠 4:26;사 26:7). 따라서 이 구절은 하늘 위에
구름이 자유로이 펄쳐져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하늘에서 구름이 지주가 없이
도 매달려 있는 신기한 모습의 평형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Pope). 그리고 이 구절은
하반절의 '기묘한 일'과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Gordis).
ㅇ지혜가 온전하신 자 - 이 표현은 엘리후가 하나님을 다른 호칭으로 부르고 있는 것
으로, 특히 여기서는 온 우주를 운행하시고 섭리하시는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의 지혜를
강조한다.

17 남풍으로 하여 땅이 고요할 때에 네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네가 아느냐

ㅇ남풍으로하여...고요할 때에 - 여기서 '고요할 때'(베하스키트)는
'조용하다', '평온한'의 뜻을 가진 '솨카트'의 파생형이다. 이 동사의 기본
뜻은 전쟁이나 불화가 없는 상태 혹은 걱정이나 불안이 없는 '평온'을 의미한다. 한편
본절에서는 앞에서 언급된바, 살을 에이고 온 땅을 얼어붙게 하는 북풍(9,10절)과 대
조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실제로 여기서의 '남풍'은 사막의 강한
열풍으로 짐작된다.
ㅇ따뜻한 까닭을 - 문자적으로는 '뜨겁게 되는 이유'이다. 이 열풍은 강한 열기를 내
리쬐는 폭양(暴陽)과도 같아서 사람들의 의복을 참을 수 없을 만큼 뜨겁게 만든다. 그
리고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질식할 것만 같은 더위를 느끼게 함은 물론이고, 뭇 짐승
들을 깊은 그늘 속으로 몰아넣는다(Lange, Pope, Thompson)고 한다.

18 네가 능히 그와 함께 하여 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

ㅇ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 - '부은'(무차크)은 '퍼붓다', '녹이다',
'주조하다'의 뜻을 가진 '야차크'가 변형된 단어 '추크'의 파생형
으로 '쏟다', '녹다'라는 뜻이다. 또한 '야차크'는 솔로몬이 만든 금으로 된
성전 기물과 청동 주물을 가리키는 데에도 자주 사용되었던 것으로(왕상 7:46) 보아
'주조한 기둥'을 뜻하는 '무차크'가 이 '야차크'에서 파생된 것
으로 보아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한편 하늘을 뜻하는 이 표현은 하늘을 태고 시대
의 두 물을 분리시키는 거대한 반구형 고체로 생각한(창 1:6) 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며,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가뭄이 들
때의 하늘을 신 28:23에서 '청동'으로 비유하기 때문이다(Pope, Hartley).
ㅇ펼 수 있느냐 - 그런 청동과 같은 하늘을 주조하여 펼쳐 놓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히브리인들은 궁창을 마치 밀가루 반죽을 두드려 펼친 것 혹은 휘장이 펼쳐지듯 확장
된 것으로 이해하였다고 한다(시 104:2;사 40:22).

19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너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어두워서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ㅇ우리가 그에게 할 말 - 엘리후는 여기서 하나님과 변론하려는 시도를 가정하고 있
다. 어떤 학자는 본문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여 이 상황을 '엘리후가 아이러니에 빠지
고 있다'라고 이해했으나(Rawlinson) 그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
님과 변론하려는 태도, 즉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에 도전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
은 하나의 아이러니인지를 깨닫도록 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할
말'이 인간에게는 한마디도 없다. 따라서 욥은 그것에 관해 엘리후 혹은 엘리후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경건한 자들에게 가르칠 말이 없고 오히려 그들에게서 하나님
의 섭리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ㅇ어두워서(호쉐크) -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애굽을 덮은 흑암의 재앙에 자
주 사용되었으며, 종종 심판이나 저주를 지시하기도 한다(3:9;18:6;시 105:28;사
5:30;겔 30:18). 본절에서는 진리나 지혜를 '어둡게 가리는' 무지한 상태를 의미한다
(전 2:13,14). 그러나 본문에는 반어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정작 '이치에 어두운 자'
(38:2)는 엘리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항하는 욥이라는 지적이 내포되어 있기 때
문이다.

20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어찌 삼키우기를 바랄자가
있으랴

ㅇ말하고 싶은 것을...고할 수 있으랴 - 엘리후 자신에게도 욥이 하나님에게 도전하
여 논쟁을 벌였던 것보다 더 많은 변론을 행할 분별력과 지식이 있음을 암시하는 표현
이다(Pope). '고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수파르'는 '세다', '다시 계
산하다'라는 뜻의 동사 '사파르'의 기원형이다. 이 단어는 명사 '세페르'(글,
책)나 '세파르'(인구 조사, 수(數)세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엘리후
자신의 머리 속에서 떠오를 수 있는 모든 가상적인 변론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이것
을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런 행위가 너무도 어리석고 결국은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바로 후반절에 대구로서 언급되어 있
다.
ㅇ삼키우기를 바랄 자 - '삼키우다'에 사용된 히브리어 '예불라'는 완전한
멸망을 나타낸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하수나 땅으로 하여금 입을 벌려 사람들을 삼
키게 한 경우가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몰살시키신 것이고(출
15:12), 또 한 번은 고라, 다단, 아비람의 반역에 참가한 모든 무리들에게이다(민
16:30,32,34). 이처럼 이 단어는 주로 파괴, 파멸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엘리후는 자신의 어리석은 변론이 곧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욥처럼 천박하게 행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이 단어를 '삼키우다'는 뜻
대신에 '혼잡케 되다', '혼동하다'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정신이 혼란케 되
는 상태(사 3:12)를 뜻하는 단어로 보는 것이다(Gordis). 그러나 문맥상 전자가 더 적
합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21 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바람이 지나가면맑아지느니라

ㅇ궁창의 광명 - 문자적으로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존재 혹
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결과 은혜 등을 상징한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비
로운 손길이 감춰진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당황하
게 되고 심지어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대항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이 완전
히 사라지신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사람이 볼 수 없을 뿐인 것이다.
ㅇ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 여기서 우리는 태양을 가렸던 구름이 바람에 의해
날려가고 감취었던 태양이 다시 빛을 발하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다. 엘리후는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들의 가변적인 태도를 이처럼 자연 현상을 이용하여 묘
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태양의 나타남이 세상을 환히 비추는 것처럼, 하나님의
갑작스런 나타나심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존경을 불러일으켜 그 앞에 완전히 순복하
게 만든다.

22 북방에서는 금 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ㅇ북방에서는 금 빛이 나오나니 - '금 빛'(자하브)은 문자적으로는 '금(정
금)'을 가리킨다. 로린슨(Rawlinson)은 이 구절이 실제로 금이 북쪽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태양의 광선을 상징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
러나 델리취(Delitzsch)는 비록 고대 동양의 문헌에 태양 빛을 금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본절의 표현을 그와 관련한 겔 1:4와 유사한 내용으로 보기 보다는 실
제적인 '금'으로 이해한다. 고대인들의 관념속에 '북쪽은 금이 많이 나는 지역'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음을 지적하면서, 금은 북쪽에서 오지만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두려운 위엄으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을 대구적으로 표현한 구절로 본다. 즉, 그에
따르면 '북쪽'과 '금'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연결되듯이 '하나님'과 '위엄'을 연결
시키려는 것이 엘리후의 의도인 것이다.

23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심이라

ㅇ측량할 수 없나니(로 메차누후)는 부정사 '로'와 '발
견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마차'의 파생형이 연결된 말이다. '마차'는 단
순히 '발견하다'라는 의미 외에 다른 뉘앙스들을 갖고 있다. 수동태형은 '압도된',
'파악된'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70인역(LXX)에서는 종종 '붙잡히다'로 번역된다. 또한
이 단어는 '도달하다', '획득하다'라는 뜻의 아람어와도 관련되며, '마주치다', '만나
다' 등의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앞 구절에 '찾다'라는 의미가 나오면 뒤에
있는 '마차'는 '만나다', '발견하다'는 뜻으로 번역된다(신 4:29;아 5:6;렘 29:13).
본절에서는 '도달하다', '온전히 파악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11:7). 즉, 하나
님은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의 한계 너머에 계시므로(NIV) 우리는 그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NIV, RSV, NASB).
ㅇ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로 예아네) - 역시 부정사 '로'와
'괴롭히다', '압박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나'의 파생형이 연결된 말이다.
'아나'는 주로 '억지로...을 시키다' 또는 '굴복케 하려고 애쓰다'를 의미한다. 본절
에서 이 단어는 심판, 공의 등의 단어와 관련되어서 하나님은 결코 공의를 저버리고
악을 도모하시는 분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연약한 인간을 압제하시지도 않으
시며, 폭력으로 정의를 무너뜨리시지도 않는다. 이 진술을 통해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
을 '불공정한 심판자'로 매도한 주장을(9:20-24) 반박한다.

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

ㅇ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칼 하크메이 렙) - 부사 '칼'은 '모
든'(all of)을 뜻하며, 명사 '렙'은 '마음', '심장', '이해'등을 가리킨다. 그
리고 '하크메이'는 '지혜롭다', '지혜롭게 행동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하캄'의 파생형이다. 엘리후는 이 표현에서 '저 혼자 지혜롭다고 스스로 생
각하는 자'를 의미하면서 심중에 욥을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Pope). 하나님은 자기를
그렇게 여기는 '모든'(개역 성경은 번역하지 않음) 자들을 무시하신다. 그 누구도 하
나님 앞에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거나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에 대항할
수 없다.
ㅇ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 - '돌아보다'(이레에)는 어떤 대상에 관심을
두고 특별히 바라보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 외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눈으로 보는
것'을 가리킨다. 이 단어에서 '선견자'(로에)가 파생되었다. 본절에서는 하
나님께서 '바라보심'을 뜻하므로 독특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돌아보시지
않는' 인생은 그 누구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평온하고 안락한 평화를 누릴 수
없다. 창조주의 돌보심이 없는 피조물은 이미 그 존재의 의의를 상실했다고 할 수 있
다. 한편 '라아'가 상반절에서는 '경외하다'(예레우후)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돌보심'
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곧 스스로 마음에 지혜롭
다고 여기는 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이 곧 지혜이기'(28:28) 때문이다. 이것이 엘리후가 말하고자 했던 모든 말의 결론인
것이다. 엘리후는 욥으로 하여금 스스로 의롭고 지혜롭다고 하는 교만을 계속 가짐으
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을 받아들여 하
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엘리후는 자신의
모든 연설을 마치고, 이제 욥이 그렇게도 바랐던 그리고 엘리후의 연설에 의해 미리
그 길이 예비되었던 하나님의 판결이 시작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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