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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느헤미야

[스크랩] 느헤미야 (6 : 1~19)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1:00
느헤미야 6장

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ㅇ전장에서 대내적인 문제를 타개한 느헤미야는 이제 본장에서 또다시 외부의 적들
의 음모와(1-4절) 모함(5-9절) 및 공갈, 협박(10-14절)에 직면하기에 이른다. 대
대적인 기습공격의 무용성을 깨달은 산발랏 일당은 성벽 재건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
러 마지막 계교를 짜내었는데, 그것은 성벽 재건의 주동자요 책임자인 느헤미야를 암
살하는 방법이었다.
ㅇ산발랏과 도비야와...게셈 - 이들에 대해서는 2:10 주석 및2:19 주석을 참조하라.
ㅇ나머지 우리의 대적 - 이들은 '산발랏'에 동조하여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던
또 다른 자들이다. 구체적으로는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을 가리킨다(4:7).
ㅇ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 보통 '문짝'은 건축 공사를 할 때에 마지막
으로 달게된다는 점에서 볼 때, 본 문구는 성벽 공사가 전반적으로 완료되기 일보 직
전에 있었음을 나타낸다.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ㅇ본절에 '도비야'라는 인물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은 본절의 두 인물이 '총독'
혹은 '족장'(2:19)인데 비해 도비야는 다만 그 총독의 막료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2:10).
ㅇ오노 평지 한촌에서 - '오노 평지'의 '평지'(비크아트)는 '나누다' 혹
은 '쪼개다'의 뜻을 갖는 동사 '바카'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오히려 '계곡'으
로 번역해야 적당하다(Fensham). 한편, '오노'는 예루살렘 북서쪽 약 32.4km 지점
에 위치했다. 이곳은 그 당시로서는 사마리아와 아스돗 사이의 중립 지대로서(A.
Alt), 완전한 이스라엘 땅이 아니었다. 바로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산발랏 일당이
'오노'를 느헤미야와의 면담 장소로 택한 것이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꾀어
내어 살해하려는 음모에 따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 촌에서'
(바크피림)에 대해서는 (1) 본절의 '바크피림'을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 '베
'와 고유한 지명 '하크피림'의 합성어로 보고 '하크피림에서'라
는 견해(Williamson, Myers, Rawlinson, Kidner, Schultz, Fensham), (2)'바크피림'을
전치사 '베'와 '마을'을 뜻하는 명사 '카파르'의 복수가 합쳐진 것로
보고 '여러 마을들 중의 하나에서'라는 견해(Keil), (3) '바크피림'을 전치사 '베'
즉 '-와 함께'와 '케피림', 즉 '사자들'의 합성어로 보고 '사자들'
이란 말로 암시된 '방백들과 함께'(겔 19:1-6)라고 해석하는 견해(Schirmann)등이 제
시된다. 그러나 첫째, 산발랏 등이 '여러 마을들 중의 하나에서' 만나자고 함으로써
느헤미야로 하여금 그 마을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할 경우 그로부터 의심을 덜
받을 수 있으며 둘째, 본문에서 짐승의 이름과 방백들을 굳이 연관시켰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볼 때, 두 번째의 견해가 보다 타당할것이다.
ㅇ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 고대 사회에서는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안심시켜
서 제3의 장소로 불러 내어 거기서 죽이는 일이 흔했던것 같다(창 4:8;렘 41:1-3).
바로 이러한 습속을 아는 느헤미야는, 외딴 곳으로 자신을 나오라는 대적들의 제안에
어떤 혹막이 숨겨져 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느혜미야가 이처럼 재빨
리 그 음모를 눈치 챈 것은, 느헤미야도 나름대로의 첩보망을 갖고 있었던 때문일 가
능성도 크다(Fensham).

3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 가겠느냐 하매

ㅇ본절에서 느헤미야는 음모섞인 대적들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한다. 그러나 느헤미야
가 일 때문에 가지 못하겠노라 한 것 자체도 거짓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성
벽 재건이 크게 진척된 것은 사실이었으나, 문을 달아서 작업을 마무리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1절).
ㅇ어찌하여...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 본 문구를 통해 우리는(1) '오노'가 예루살
렘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대였다는 점과,(2) '오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적들의
땅과 인근해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낮추어 언급했음을 알 수 있다.

4 저희가 네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ㅇ대적들의 반복된 메시지의 전달은 그들이 성벽 재건의 방해를 위해 얼마나 필사적
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Myers).

5 산발랏이 다섯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내었는데

ㅇ종자(나아르) - 이것은 산발랏의 하급 신하를 뜻할 것이다(4:16).
ㅇ봉하지 않은 편지 - 고대의 공식 문서는 양피지 등에 기록된 뒤 끈으로 묶여 인장
으로 날인되어 봉해졌었다. 이는 작성된 내용의 변조를 막아서 그 문서의 신빙성을 보
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발랏 일당이 인봉치 않은 편지를 보낸 까
닭은, 편지의 내용을 백성들도 알게 해서 놀라게 하며, 느헤미야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나오게끔 촉구하려는 데 있었다.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ㅇ여기서는 산발랏의 다섯 번째 편지의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실에 대해 모반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ㅇ이방 -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을 가리킨다(4:7).
ㅇ가스무도 말하기를 - 이것은 '가스무'가 이방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느헤미야의
모반 사실을 확증했다는 뜻이다(Fensham).'가스무'는 느헤미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
성에 의해서 '게셈'으로 불리워지던 인물의 아라비아식 이름이다.
ㅇ네가...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 느헤미야가 '성을 건축'했던 이유는 이스라
엘 백성의 신앙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그 안에살던 백성들을 의적의 칩입으로부터 보호
하려는데 있었다(1:3). 따라서 느헤미야가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은 말할 나위도 없이
대적들이 지어내어 퍼뜨린 완전한 허위였음이 분명하다. 휠씬이전에 있었던 성벽 재
건의 시도도 바로 이와같은 허위 보고가 페르시아 왕실에 올려짐으로써 좌절되었었다
(스 4:11-23).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던 산발랏은 금번에도 그와 유사한 헛 소
문을 퍼뜨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을 중지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ㅇ네가 선지자를 세워...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 이것도 산발랏의 거짓말
이다. 사실 왕족도 아닌 느헤미야가(2:3), 스룹바벨과 같은 직계 왕족도(스 2:2) 왕에
오를 수 없었던 포로 후 시대의 상황에서 스스로 왕이 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어
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여기에서 '네가 선지자를 세워'는 스룹바벨 시절에 생긴
건축 사역의 재개를 위하여 활약했었던 학개 및 스가랴 선지자의 메시야의 도래에 대
한 예언(학 2:22,23;슥 9:)을 알고 있었던 산발랏의 거짓말이다. 즉, 산발랏은 거의 1
세기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의 메시아 예언을 왜곡시켜서, 느헤미야가 그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선지자의 도움을받아 왕에 오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헛된 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ㅇ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 이에 관해서는 본 단락 주제 강해, '왕의 즉위와 관련된
선지자의 역할'을 참조하라.
ㅇ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 본절에서 산발랏은, 자신이 느헤미야를 모반 혐의로 고
소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시사함으로써 그를 협박하고 있다. 사실 (1)아닥사스다 왕 시
대에는 페르시아 정복지 전역에 걸쳐서 모반이 끊이지 아니했었으며, (2) 특히많은 권
력을 쥐고 있었던 술 관원들의 모반이 잦았었다(Fensham)는 점 등에서, 술 관원 출신
이었던(1:11) 느헤미야가 모반을 하고 있다는 고소는 비록 그것이 무고(誣告)이기는
했지만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서 진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산발랏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서 느헤미야를 협박하려 드는 것이다.

8 내가 보내어 저에게 이르기를 너의 말한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ㅇ본절에서 느헤미야는 단 몇 마디의 말로써 산발랏의 장황한 참소(6, 7절)를 기각시
켜버리고 있다. 만일 산발랏의 무고가 아닥사스다왕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경우 느헤미
야가 곤란한 문제들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한 때문이었다(9절).
ㅇ지어낸 것이라 - '지어낸'(바다)은 구약성경 중 본절을 제외하고 유일하
게 나타나는 왕상 12:33에서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소견에 옳은대로 어떤
계획을 세우는 것을 가리킨다. 그 밖의 성경 외적 문헌에서도 이 단어는 '거짓을 꾸미
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Fensham). 따라서 여기서 이 단어는 '타인을 해롭게 할 목적
으로 진실을 교묘히 왜곡시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9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ㅇ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발랏 일당의 집요한 심리전에
의해서 낙심에 빠졌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었다(4:4). 이제 다시 산발랏은 느헤미
야를 회유 . 협박함으로써, 그런 결과를 재차 얻으려고 했었다. 사실 이것은 성벽 재
건을 신속히 추진하려고 애쓰던 느헤미야에게 큰 장애 요소였음에 분명하다.
ㅇ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즉, (1) 개
역 성경처럼 하나님께 담대한 마음을 허락해 주실 것을 소원하는 기도로 봐야 한다는
견해(Fensham, Rawlinson, Schultz, Keil, Battem, Kidner, NIV), (2)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이 언급되고 있지 않음을 근거로 해서 느헤미야 자신이 스스로 마음을 굳게 먹
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Williamson, Myers, JB, 공동번역) 등이 있다. 그러
나 본서 전체를 통해서 볼 때 느헤미야의 기도는 특별한 형식없이 필요한 상황에서 드
려졌었다는 사실(2:4;4:4,5;5:19)등으로 미루어 위의 두견해 중 첫 번째의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

10 이 후에 므헤다벧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ㅇ본절에서부터 19절까지에서는 산발랏 일당의 또 다른 음모가 언급된다. 그런데 이
음모에는 느헤미야 진영에 있는 사람, 더욱이 선지자가 가담하였다는 점에서 가히 충
격적이다.
ㅇ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 - 이 사람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그는 성전에도 들어갈 수 있었던 신분의 소유자라는 본절의 암시로 볼
때 제사장이었으리라 짐작된다(Bowman). 또한 그는 그 당시에 선지자 행세를 하기도
했었다(12절).
ㅇ두문 불출(杜門不出)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 본절의 '두문 불출'에 대해서는
(1) 그 당시에 스마야가 부정(不淨)한 상태에 있었던 관계로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
었음을 뜻한다는 견해(Rawlinson),(2)서원 이행을 위하여 근신하고 있었음을 뜻한다는
견해(Schultz). (3) 스마야 자신처럼 은둔하지 않으면 느헤미야가 암살을 당할 위험이
있음을 암시하려는 술수였다는 견해(Keil), (4)마치 슬픈 사건을 예견한 선지자가 그
것으로 인해 비탄에 빠져있었던 것처럼 행동함으로써(사 20:2;겔 4:1-8). 느헤미야로
하여금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끔 하려는 술수였다는 견해(Rudolph,illiamson),(5)
마치 감금되어 있었던 것처럼 꼼짝하지 않음으로써 느헤미야로 하여금 스마야 자신을
찾아 헤매도록 하려고 한 술수였다는 견해(Myers)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첫째, 스마야
가 만일 부정한 상태에 있었거나 서원 이행을 위해 근신하고 있었다면 성전으로 가자
는 제안을 하지못했을 것이라는 점과 둘째, 위의 '아추르'라는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
비탄의 상태를 가리키는데 사용된 적이 없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여러 견해 중
(3)이나 (5)의 것이 가장 타당할것이다.
ㅇ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터이니 - 이것은 산발랏 일당이 보낸 자객들이 느헤미야를
암살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부터 올 것이라는 뜻이다. 대규모 공격은 이스라엘의 파
수꾼들에 의해서 쉽게 눈에 띄어(4:9, 22) 실패할 가능성이 많았던 반면, 느헤미야 개
인에 대한 스마야의 암살 협박은 느헤미야에게 대단한 두려움을 안겨줄만한 것이었다.
ㅇ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外所)안에 있고 - 이것은 산발랏 일당의 암살을 모면하
기 위하여 성전으로 피신하자는 스마야의 제안이다. 사실 살해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
호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도망가서 제단 뿔을 잡는것은, 모세 율법에 규정되어 있었다
(출 21:12,13;왕상 1:50-53;2:28). 따라서 본절과 같은 스마야의 제안은 어느 정도 타
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기에는 음흉한 함정이 깔려있었다(12절 주석 참조).
한편, '외소'(토크)는 '-의 중앙'을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성소'를 가리
킨다(겔48:21). 즉, 성전 현관과 지성소의 사이이다(Rawlinson).
ㅇ그문 - '성소'와 성전의 현관 사이의 잣나무로 만들어진 문이다(왕상 6:34).
ㅇ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 느헤미야의 공포심을 가중시키기 위한 반복이다. 스마
야는 이미 자신의 경고 서두에서 '죽이러 올터이니'라고 말한 바 있다.

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ㅇ본절에서 느헤미야는 두 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성전으로 피신하라는 스마야의 음모
적인 권고를 거절한다.
ㅇ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 이것은 느헤미야가 성전으로의 피신을 거절한 첫째
이유이다. 즉, 그는 페르시아 왕실로부터 임명된 총독의 신분으로서 생명의 위협이있
다고 해도 몸을 숨기는 것은 타당치 않음을 그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느헤미야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련을 앞장서서 극복해야 할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비록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다 하더라도 초연함으로써 백성들의 모범이 되고자 했다
(Rawlinson).
ㅇ나 같은 몸이면...생명을 보존하겠느냐 - 성전으로의 피신을 거절한 두 번째 이유
이다. 사실 모세 율법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자에게는 성전으로서의 피신을 허용하였
다(출 21:12, 13). 그러나 그러한 피신은 특정한 경우에 제한되었으며, 외국인 특히
이방 군대에 의한 경우는 포함되지 않았다(Fensham).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의 성전
으로의 피신은 제사장 이외의 사람은 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행위였다, 율법은 이러한 범법자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선언한다(민 18:7).

12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에언을 함이라

ㅇ깨달은즉 - 느헤미야의 이러한 깨달음은 '스마야'의 음모섞인 권고를 듣는 즉시 있
었을것이다. 즉,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자신에게 범법행위를 권하는 그 사실을 통해서
그 즉시 그가 하나님의 참 선지자가 아님을 발견했던 것이다(Williamson). 참선지자의
여부는 그의 메시지 및 행실를 통해서 분별될 수 있음(마 7:15-20)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ㅇ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 '뇌물을 받고'(세카로)는 원래 '
고용하다' 혹은 '보답하다'는 의미로서 어떤 악한 일을 애써 해주는 대신 그에 대한
삯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신 23:4;삿 9:4;왕하 7:6). 그런데 혹자는 이 동사가 3인칭
단수인 점과 산발랏이 도비야 다음에 언급되었다는 점을 들어서, 본 문구에 나오는 두
사람 중 뒤의 '산발랏'은 필사자의 실수로 기록됐다고 보고 그 이름을 탈락시켜야 할
것을 주장한다(Rudolph). 그러나 주어를 두 사람 언급하면서 단수 어미의 동사를 사용
한 것은, 두 사람중 먼저 언급된 사람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하려는 느헤미야의 의도
때문인 듯하다(Fensham). 그렇다면 도비야는 거짓 선지자 스마야를 매수하는데 있어서
계획부터 실행 과정까지 직접 담당했으며, 산발랏은 그것을 후원했다고 볼 수 있다.

13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느헤미야가 분석한 바, 곧 도비야가 스마야를 매수한 삼중적인 이유이다.
나를 두렵게 하고 - 도비야가 스마야를 매수하여 느헤미야에게 거짓 예언을 하게끔
한 가장 큰 이유이다. 사실 산발랏이 보낸 자객이 밤 중에 느헤미야를 암살할 것이라
는 경고는, 느헤미야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넉넉했다.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 이에 대해서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 이 같은 비방은, 만일 느헤미야가 '
스마야'의 공갈에 심약(心弱)해져서 성전으로 피신하는 잘못을 범했을 경우 이루어졌
을 것이다.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이러한 기도는 느헤미야가 얼마나 신앙적 인물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 즉, 그는
이기도를 통해서 (1)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겸손한 마음을 보여주며, (2) 원
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갚지 아니하고 하나님 손에 넘기라는 율법의 정신을(신 32
:35;시 94:1;롬 12:19) 이행하고자 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한편, 느헤미야에게 이
처럼 많은 대적들이 있었던 까닭은(1) 산발랏이 일찍이 많은 사람들을 포섭해놓았고,
(2) 또한 느헤미야가 상류층에 대해 엄격한 정책(5장)을 편 때문이었다(Fensham).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 이들이 누구이며 느헤미야에 대해 어떤 일을
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이들은 본절의 언급처럼 '스마야'와 함께 느헤미야를
대적했던 무리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도록 특별히 부르심 받은
선지자들이 오히려 그뜻을 정면으로 거스린 일에 대해,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하기를 기도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한편, 느헤미야가 이들의 행위에 대해
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치 않고 '스마야'의 행위에 대해서만 특별히 다른 까닭은, 스마
야의 경우 그 대적 행위가 너무도 교활하고 사악하여 나머지 악한 선지자들의 계교를
대표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Williamson).

15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성 역사가 오십 이 일 만에...끝나매 -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데는
꽤오랜 세월이 걸렸으리라고 보고 그 공사 기간을 '팔백 사십 일'이라고 주장한다
(Ant. X i 5). 에발드(Ewald)같은 학자도 이러한 견해를 좆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
다수 학자들은 (1) 성벽이 없어서 예루살렘 거민이 당했던 참상을 잘 알고 있던
(1:3;2:17) 느헤미야가 성벽 공사를 급히 서둘렀을 것이 뻔하며, (2) 맛소라 본문의
기록을 고쳐야 할 사본학상의 근거나 이유가 전혀 없으며, (3) 요세푸스(A.D. 37-95)
도 느헤미야 당시로 부터 무려 500년 이후의 사람이어서 느헤미야 당시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지 못했을 것이며. (4)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사업과 거의 동시대에
이뤄졌던 아테네의 성벽 공사도 단 한 달 만에 끝났었다(Vischer, Problem Bibical
Theology, p. 606)는 점 등에 근거해서 본절의 '오십 이 일'을 맞는 것으로 본다.
엘룰월 이십오 일 - '엘룰월'은 양력으로는 8월,9월이지만 유대 민간력으로 12월이
었다. 따라서 민간력으로 계산할 경우, 성벽 재건 공사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귀
환한 B.C.444년 그 해에 완공된 셈이 된다. 특히 이 공사는 민간력으로는 압월(11월)
사일부터 엘룰월(12월)까지, 양력으로는 7월중순 경 부터 9월 중순까지의 덥기는 하나
비가오지 않는 건기(乾期)에 시행된 고로 순조릅게 진행될 수 있었다.

16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우리 모든 대적 - 보다 구체적으로는 산발랏을 비롯한 이방 민족들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2:19).
사면 이방 사람들 - 그 지도자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본서에
언급되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 암몬 사람, 아라비아 사람. 아스돗 사람(4:7) 이외에,
베니게 사람과 수리아 사람 등도 포함될 것이다(Rawlinson).
두려워 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나팔 베에이네이헴)
- 이는 문자적으로 '그들의 눈 앞에서 넘어졌다'의 뜻이며, 그 구체적 의미는 '자신감
을 상실했다'(NIV), '자존심을 손상당했다'(Williamson, Myers)이다. 수많은 장애 요
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빠른 시기에 재건 공사가 완공된 것이 그들의 눈에
가히 기적으로 보여졌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이 같은 그들의 반응은, 끊임없이 느헤미
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렵게 하려고' 했던 그들의 시도(9, 13, 14)에 걸맞
지않다. 사실 대적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협박하여 재건 사업을 중단하게 만들려고
획책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반대로 더 큰 두려움을 그 대적들에게 임하도록 역사하셨
다. 이는 곧 4:4에 기록된 느헤미야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기도 하다. 한편, 이와 같은
상황의 극적인 전환은 대적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증거하는 계기가 되
었다고도 볼 수 있다.

17 그 때에 유다의 귀인들이 여러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저희에게 이르렀으니

본절에서부터 19절까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선지자들(14절) 이외에도 느헤
미야에 대한 또 다른 적대 세력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느헤미야는 여기서 이러한 사실
을 언급함으로써 성벽 공사가 단시간에 끝날 수 있었던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
음을 강조하고있다.
유다의 귀인들이...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 본절은 유다의 지도층 인사들이 느
헤미야의 대적들과 내통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즉, '귀인들'(5:7)은 느헤미야에 관
한 모든 정보를 여러 방식으로 탐지하여 그것을 도비야에게 신속하게 넘겼을 것이다.
도비야의 편지도...이르렀으니 - 이 편지의 내용은 (1)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재
건 공사에서 손을 떼게끔 내부 공작을 꾸미는 것, (2)느헤미야 개인 및 성벽 재건 상
황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게끔 지령을 내리는 일을 가리킬 것이다(19절).

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본절은 도비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부와 얼마나 깊이 밀착되어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이것은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시켰던 에스라의 개혁(스 9,10장)이 이들에
게 잊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 본절의 '아라'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어떤 가족의 조상이다(7:10;스 2:5). 따라서 '아라의 아들'은 '아라의 자손'로 번역되
어야 적절하다. 한편, '스가냐'는 3:29에서는 '동문지기'로 언급되고 있으며 그의
아들은 성벽 재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3:29). 바로 그런 점에서, 스가냐 일가는 당시
에 이스라엘 사회에서 상류층으로 분류됐을 것이 분명하다. 도비야는 바로 이 같은 유
력한 가문과 정략적으로 결혼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중대
시키려고 하였다.
도비야의 아들...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 도비야가 이스라엘 백성 중 유력한
사람의 사위가 된 데이어서, 또한 유력한 사람과 사돈 관계를 맺었음을 말해준다. 본
절의 '므술람'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에서 두 몫을 맡아 담당했던 제사장이었다
(3:4, 30).
여호하난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의 뜻이다.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 본 문구는 히브리 원문에는 본절의 초두에
놓여 있다. 특히 원문에는 '왜냐하면'의 뜻을 갖는 접속사 '키'가 있어서, 본 문
구가 17절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동맹한'
(바알레이 쉐부아)의 '바알레이'는 '주인이 되다' 혹은 '지배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바알'에서 파생된 명사이고, '쉐부아'는 '맹세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쉬
바으'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동맹한'이라는 말은 '-을 주
인으로 섬기겠다는 맹세'를 뜻한다. 따라서 본 문구는 유다 사람들 상당수가 도비야를
섬기기로 하는 서약을 했다는 뜻임이 분명하다(NIV, Kohlenberger)추측컨대, 도비야가
유다 사람들과 혼인 관계를 맺거나 동맹을 맺은 것은, 그가 산발랏의 고위 행정관으로
서 예루살렘에 머물던 시절의 일이었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총독의 자격으
로 오기 전까지는 산발랏이 유다 땅에 자신의 부하 도비야를 파견하여 자신의 영향력
을 행사하고 있었을 듯하다(5:15 주석 참조).

19 저희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항상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 유력한 유대인들 중 도비야와 내통하고 있었던
자들이 도비야와 느헤미야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준다. 무력으로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고자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대적들은 이제 음해(陰害)의 방향
을 수정하여 외면적으로 우호와 친선을 가장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하는 등 여러 가지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계속 교란책을 펴나갔다. 한편, '선행'이란 내통자들이 도비
야의 좋은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다. 그 중에는 도비
야의 스마야에 대한 재화(財貨)증여(12절)가 뇌물이 아니고 자선이었음을 강조하는 내
용도 포함될것이다(Rawlinson). 그들이 이같이 거짓말을 한 까닭은, 느헤미야로 하여
금 도비야에 대한 경계심을 풀도록 하여 도비야의 성전 재건 방해 운동을 성공케 하려
는 의도 때문이었다.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 이것은 내통자들이 느헤미야의 일거수 일투족을 탐지하
여 도비야에게 보고했다는 뜻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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