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4장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ㅇ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 '산발랏'이 성벽 재건에 관한 소식을
들은 것은 그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일 것이다. 유대인들 중에 그와 밀접한 관계를 유
지하고 있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전에 이미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3:1, 4 주석 참
조). 그런데 본절에서'산발랏'만이 유대 백성을 훼방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는 까닭은,
그가 유대 백성을 훼방하는 일에 선동자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견해는 여러명의 훼
방자가 동시에 언급될 때도, 그 이름이 항상 그들 중 첫번째에 위치한다는 사실로써도
분명해진다(7절 ; 2:10,19 ; 6:1,2,5). 한편,'산발랏'이라는 이름은 '달신(月神)이 그
에게 생명을 주었다'라는 말인 바벨론어에서 유래되었다. 2:10에 '호론 사람'이란 말
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그는 에브라임지파 남쪽지역인 '벧호론'(Beth-horon)
에서 출생한 듯하다. 그리고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리심산의 사마리아 성전은 이 산발
랏에 의해 건립되었고 산발랏은 자기사위를 이 성전의 대제사장으로 세웠다고 하나 그
사실성 여부는 분명치 않다. 한편, '크게 분노하며', '비웃는' 산발랏의 반응은, 2:19
에서 보다 한층 강렬한 것이며 6:2에 가서는 느헤미야를 살해하려고까지 하는 것으로
발전된다.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필역하려는가
소화된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ㅇ자기 형제들 - 이들은 의논 대상이 될만한 자신의 직속 부하들을 가리킨다. 물론
여기에는 '도비야'도 포함될 것이다(3절).
ㅇ사마리아 군대 - 페르시아 정부가 파견한 수비대라기 보다는 해당 지역별로 조직된
부대인 듯하다(스4 : 23). 산발랏은 이 '군대'를 이용해서 유대백성을 물리적인 힘
을 동원해서라도 괴롭힐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8절). 사실 페르시아 정부의 지배력이
제국 내의 곳곳에 직접적으로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산발랏의
이 같은 사악한 생각은 실천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Rawlinson).
ㅇ미약한 유다 사람들 - '미약한'(아말렐림)은 '쇠퇴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아말'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나무가 시들어말라 비틀어지는 것'
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사 16:8 ; 24:17). 특히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주로 소
망이 없는 암울한 상태를 가리킨다(사 19:8 ; 호 4:3).
ㅇ제사를 드리려는가 - 이 문구에 대해서는, (1) 이'제사'를 성벽 재건사업이 마쳐질
때에 드려지는 감사의 제사로 보고 유대 백성이 성벽 재건을 완료할 능력이 없을 것이
라는 조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2)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초자연적인
힘으로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가'라는 식의 빈정댐으로 볼 수도 있다(Williamson).
ㅇ하루에 필역 하려는가 - 이것도,유다 백성들을 무능한자들 이라고 하는 조롱 이다.
ㅇ소화된 돌을..다시 일으키려는가 - 이것은 유다 백성들이 성벽 재건에 사용할 석재
(石材)를 확보할수 없을것이라는 조롱이다(Rawlinson, Fensham).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ㅇ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 '도비야'가 산발랏의 측근 혹은 직속 참모였음을 보여준
다.
ㅇ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 '여우'로 번역된 히브리어 '슈알'
구약에서 7회 나오며(삿 15:4 ; 시 63:10 ; 아 2:15 ; 애5:18 ; 겔 13:4)
'쟈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쟈칼이 주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반면 여우는 대개 혼자
다닌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본문에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여우'로 보는 것이 좋
다. 그렇다면 도비야는 한 마리의 여우가 밟아도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조롱한 셈이
다. 일반적으로 성벽은 훌륭한 공성(攻城) 무기로 오랫동안 공격한 후에야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과장된 조롱임이 분명하다.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ㅇ본절과 같은 탄원적 기도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사업이 원수들에 의해서 멸시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드려지고 있다
는 점에서 실로 시의(時宜) 적절 하다고 할 수 있다(5:19 ; 9,14 ; 13:14,22,29,31 ;
시 69:22-28 ; 79:12 ; 109:6-20).
ㅇ우리가 업신여김을...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 '업신여김을'(부자)은
'조롱하다' 혹은 '모욕하다'의 의미이며'노략거리'(비자)는 '전리품'을 뜻
한다. 여기서 본저자 느헤미야는 이처럼 발음이 매우 유사한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여
말의 유희(Word play)를 살리고 있다. 즉, 느헤미야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부자'라는
행동, 즉 그 원인으로 말미암아 '비자'라는 불행, 즉 그 결과에 도달되기를 간절히 염
원하고 있는 것이다(Fensham).
ㅇ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 이것은 고대 중근동 민족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환
난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그와 같은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민족이다(스
4:9,10).
ㅇ그 악을덮어 두지 마옵시며 - 여기의 '덮어두지'(카사)는 죄의 용서를
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렘 18:23 에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느헤미야가 예레
미야서를 인용한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예레
미야 시대나 느헤미야 시대에 공히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Fensham).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ㅇ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聯絡)되고 - 이것은 예루살렘의 성벽에 의해서 완전히
둘러싸여 졌음을 뜻한다.
ㅇ고가 절반에 - 원문상으로는 단지 '절반까지' 혹은 '중간까지'라는 뜻만 있으므로,
이 말은 성벽의 길이나 넓이에도 적용될수 있으나 높이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다. 즉, 성벽이 원래 계획했던 것의 반정도의 높이로 쌓여졌었음을 가리킨다
(Rawlinson,Fensham).
ㅇ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 문자적으로는 '역사할 마음이 있었다'
의 뜻으로서, 참여자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마음 자세가 성벽 재건 사업이 크게 진
척될수 있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시사한다.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ㅇ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이방인들의 적대감이 점증되고 있었듯이(1절), 적대감을
품고 있던 이방인들의 숫자도 급격히 많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 나오는 이방
세력에 대해서는 본장 강해의 지도, '성벽 재건을 방해한 네 민족들'을 참조하라.
ㅇ산발랏과 도비야 - 이에 대해서는 2:10 주석을 참조하라.
ㅇ아라비아 사람들 - 이들은 페르시아가 중동을 제패했을 무렵에 팔레스틴의 동부인
요단 동편과 남부인 네게브 지방을 거주지로 삼기 시작했었다. 바로 이 족속의 한 분
파를 다스리던 자가 '게셈'이었다(2:19).
ㅇ암몬 사람 - 이들은 그 당시 요단의 동쪽지역 및 심지어는 요단의 서쪽 강변에서도
살던 민족이었다.
ㅇ아스돗 사람-이들은 블레셋 족속들이 거주했던 지역 전반에 걸쳐서 살고 있었다.
ㅇ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 본절의 '중수되어' (아루카)는, 그 어근
'아라크'의 뜻이 '연기하다' 혹은 '참다'인 것과는 달리 '상처의 치유' 혹은
'상처 위로 새 살이 돋아나는것'을 가리킨다(사 58:8 ; 렘 8:22 ; 30:17 ; 33:6).
건축과 관련한 이러한 표현은 대하 24:13에서도 나타나는 바, 이는 일반적으로 두루
쓰인 관용적 문구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에는 예루살렘의 번영을 기원
하는 느헤미야의 각별한 염원이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ㅇ다 함께 꾀하기를 - 여기서 '꾀하기를(카솨르)은 '묶다' 혹은 '음모하
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서, 어떤 질서 체계를 깨뜨리거나 혹은 어떤 대상을 망하
게 할 목적으로 집단적인 이기심에 따라 배반하는 행위를 가리킬때 많이 사용되었다
(삼상 22:8 ; 왕상 16:16 ; 대하 25:27).
ㅇ요란하게 하자(라아소트 로 토아)는 문자적으로 '그것(혹은 그)
에게 상처를 입히다'의 의미이다. 여기서 '그에게'(로)의 '그'는 남성 단수라
는점에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 사업을 주도하고 있던 느헤미야를 가
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 만일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면 '그'는 여성 단수가 되어야
한다. 한편, 산발랏은 당시 사마리아의 총독이었으므로 느헤미야의 귀한을 허락하는
왕의 조서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성벽 재건 금
지령만(스 4:21-23) 내세우며 심지어 무력행사까지 감행하려 했다(2절). 이러한 독자
적인 무력 행사는 명백한 불법 행위였으며 더구나 느헤미야가 합법적 절차에 따라 움
직였다는 사실에서 더욱 그러했다. 이는 산발랏 일당의 조급함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
시사하며 또한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중앙 정부의 통제력의 한계를 보여 준다.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ㅇ본절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사태의 해결을 부탁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할 수있는
가능한 방책을 강구한다.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을 최선을
다해 활용하고자 하는 느헤미야의 신앙적 자세는 본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컨데,'하
늘의 하나님께 목도하고 왕에게 고하여'(2:4,5),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며'(4-6절),'주를 기억하고...싸우라'(14절)등이 그러하다
(Kidner).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ㅇ본절에서와 같은 백성들의 낙심은 산발랏 일파의 협박(8절) 때문임이 분명하다.
ㅇ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 '흙 무더기'는 바벨론 군대의 공격 때에 파괴된 성벽
과 그 밖의 것들의 잔해를 뜻한다. 이것들은 성벽이 재건되고 있거나 혹은 재건되어져
야 할 곳에 높이 쌓여 있었던것 같다.
ㅇ담부(擔負)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 이것은 성벽 재건에 참여한 백성들의 심
신이 매우 지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된 것은 (1)이스라엘 백성의 상당수가 성
벽 재건에 참여치 않았음에 따라 참여한 소수의 작업량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고, (2)
일꾼 중에서 파수꾼으로 차출된 사람이 있었으며, (3)게다가 산발랏을 위시한 대적자
들의 위협이 날로 심해져갔기 때문이다.
ㅇ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 본절과 6절 내용과의 조화를 위해, 어떤 학자들
은 원문상으로 본장 6절까지가 3장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7절 이하의 내용이
6절 내용보다 시간상 앞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의 주도하
에 거의 절반에 달하는 정도의 공사를 이룩했지만(6절) 대적들의 위협이 더욱 살벌해
지자(8절) 큰 불안과 낙담에 빠져버린 것으로 이해하는것이 더 무난하다.
11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 그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ㅇ이 부분은 느헤미야가 파수대를 더 보강할 수밖에 없었던(13절) 절박한 이유를 설
명하고 있다.
ㅇ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 -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북쪽으로는 산발랏을
위시한 사마리아 사람들,동쪽으로는 암몬 사람들,그리고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사람들,
또한 서쪽으로는 아스돗 사람들이라는 대적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7절).따라서 본
절의 '유다 사람들'은 유다 땅의 외곽 지역에 거주하던 백성들이다.
ㅇ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 유다 땅의 변경에 살던 벡성들 중 성벽 재건에참
여치 아니한 사람들은 산발랏 등의 군사적 움직임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그들의 공세
를 방어할 요량으로, 성벽 재건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데려가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산발랏 일당의 계략이었다. 즉, 대적들은 유다 변경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성벽 재건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게 해서 성벽 재건을 중단케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13 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ㅇ성 뒤 낮고 넓은 곳에...서게 하고 - 이같이 한 이유는 '성 뒤 낮고 넓은 곳'은 비
록 성벽이 일부 쌓여있기는 했지만 그 지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적의 침투가 예상되
는 취약 지점이었던 때문이다. 또한 유다 백성들을 노출된 곳에 세움으로써, 산발랏
일당에게 일전 불사(一戰不辭)의 군사적 대응 능력을 보여주려는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여기서 '낮고'(미타흐티요트 라마콤)는 문
자적으로 '가장 낮은 장소 쪽에' 의 뜻이다. 그리고 '넓은 곳'(체
히힘)은 헐벗은 언덕이나, 평탄하고 장애물이 없이 노출된 장소를 뜻한다(Edwin
Yamauchi, Keil). 또한 '성 뒤 '는 성벽의 예루살렘 성읍 쪽을 가리킨다. 그리고'
서게 하고'(아아미드)는 '모시다' 혹은 '서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아마드'의 사역형으로서, 특정한 직책을 수행케 하기 위하여 일정한 장소
혹은 지위에 있게 하는 것을 주로 가리킨다(9절 ; 삿 20:28 ; 왕상 12:6 ; 왕하 9:17
;슥4:14).
ㅇ종족을 따라 - 이것은 군사 조직 내의 효율성을 증대케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종족' 혹은 '씨족' 끼리는 협조가 더욱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었겠기
때문이다.
ㅇ칼과 창과 활 - '칼'은 이스라엘 역사상, 근접전(近接戰)이 벌어졌을 때 가장 많
이 사용됐던 중요한 무기였다(Fensham). 또한 '창' 은 가까이 있는 적을 찌르는 데 사
용됐으며 '활' 은 약 600m의 사정 거리를 갖는 강궁(强弓)과 약 270m에서 360m 정도의
사정 거리를 갖는 경궁(經弓) 모두를 가리킨다(Y. Yadin, R. Go-nen).
14 내가 돌아 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ㅇ내가 돌아본 후에 - '돌아본'에 대해서는 (1)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염려를 살폈
다는 견해(Fensham,Schultz), (2) 느헤미야가 산발랏등의 동정을 알기 위해 그 주변을
살폈다는 견해(Rawlinson), 혹은 (3)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무장 상태를 살폈다는
견해(Keil)등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첫째, 본절의 '돌아본' (라아)은 단
순히 '쳐다보다'의 뜻이며(Fensham) 둘째, 본문맥에 이어서 '두려워 말고' 라는 느
헤미야의 당부가 나온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본다면 위의 세견해 중 (1)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다.
ㅇ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 - '귀인'(호림 )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스
라엘 공동체에서 어느 정도의 권세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2:16 ; 5:7 ; 13:17). 한편, '민장'(세가님)은 다른 곳에서는 '방백'
으로 번역된 단어이다(2:16 주석 참조). 그리고 '남은 백성'은 앞의 '귀인'과 '민장'
계층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을 뜻한다.
ㅇ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 '지극히 크고'(가돌)가 하
나님에게 적용될 때는, 달리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을 강조하는 형용사로 사용되
었다(출 18:11 ; 대상 16:25 ; 5 시 76:1 ; 86:10). 한편,'두려우신'
(노라)은 '두렵다' 혹은' 두려워하다'의 뜻이 있는 '야라'의 수동형
분사로서, 많은 경우에서 종말론적으로 악인들에게 진노를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의 진
노를 강조한다(시 1456:6 ; 욜 2:11 ; 습 2:11: 말 4:5). 따라서 본 문구는 모든 악한
자들을 권능의 하나님께서 대신 벌하여 주실 것을 믿고 백성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뜻이다(민 14:9 ; 신 1:29, 30 ; 삼하 10:12). 느헤미야
는 옛 선조들이 믿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대적들과 용감하게 싸웠던 사실, 특히 하
나님이 친히 그 백성들을 위해 대신 싸우사 승리를 가져다 주신 엄연한 역사적 사실
(출 14:13,14등)을 믿음의 눈으로 확고히 돌아보았을 것이다. 비록 당시의 성벽 파수
대는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했고 실전 경험도 없는 군대였으며 그 무기 또한 상대적으
로 열세하였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느헤미야의 확신이
었다고 이해된다(Williamson).
ㅇ너희 형제와의...집을 위하여 싸우라 - 이미 느헤미야는 파수대를 종족 단위로 편
성한 바 있다(13절). 자신의 가족과 친척을 위해 싸운다는 비장한 각오야말로 숫적인
열세를 메꾸어 주는 큰 활력이 되었을 것이다.
15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ㅇ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
헤미야의 지휘 하에 무장을 한 채 조직적으로 파수하는 등 철저한 방어 체계를 갖췄
다는 사실을 대적이 첩자들을 통해 들었다는 뜻이다(13, 14절). 대적들의 계획은 기
습 공격으로 단숨에 살륙을 감행하거나(11절) 무력의 과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벽 재건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욱 강하게 무장하여 적극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이게 됨으로써,
대적들의 계획은 오히려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무장한 병사들이 강한 정신력으
로 지키는 성읍을 공약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며, 더욱이 전투가 장기화되면
그 분쟁의 소문이 아닥사스다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될 것이고 결국 산발랏 일당은
왕명을 거스린 죄과까지 치뤄야할 터였으므로 그들은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지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ㅇ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의 계획을 부수
셨다' 의 뜻이다. 이와 매우 유사한 표현이 스 4:5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거기서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원수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계획이 좌절됐음을 말한다. 이
처럼 느헤미야가 에스라서에서 사용된 독특한 표현을 여기서도 다시 사용한 까닭은,상
황이 완전히 역전되었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16 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ㅇ비록 산발랏이 쳐들어오려고 했던 긴박한 상황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느헤미야는
여전히 잔존했었던 일말(一抹 )의 공격 가능성으로 인하여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
음을 보여준다.
ㅇ그때로부터 - '그 때'는 문자적으로 '바로 그 날'의 의미로서,(1)느헤미야가 산발
랏의 음모를 감지하여 백성들을 무장시킨 그 날(9, 13절), (2)산발랏이 자신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계획을 포기한 '그 날'(15절)모두를 뜻한다.
ㅇ내 종자 (네아라이) - '내종자'는 (1)느헤미야처럼 유다 출신들로서 느
헤미야가 수족처럼 부릴 수 있었던 특별한 집단(Myers,Keil,Rawlinson),(2)총독신분으
로서의 느헤미야의 통제 아래 있는 모든유다 백성들(Fensham)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첫째, 본절의 '종자'(나이르)라는 단어는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하
인을 가리키며(출 21:27 ; 삼상14:6 ; 25:5 ; 삼하1:5 ; 왕상19:3) 둘째, 느헤미야가
비록 총독이기는 했지만 백성들을 하인처럼 생각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셋
째, '종자'와 '성을 건축하는자'가 분리되어 언급되고 있음을 볼 때, 위의 두견해 중
전자가 보다 타당하다.
ㅇ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 활을 가졌고 - 이처럼 느헤미야가 자신의
종자들에게 파수 의무를 보다 많이 맡긴 까닭은 (1) 그들이 다른 백성들보다 훈련이많
이 되어 있었고, (2) 그들이 보다 훌륭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ㅇ민장(民長)은 유다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 본절의 '민장'
(솨림)은 군사적 조직체로서의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였다(Willamson, 신 9:9 ) 그
런데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항상 지파 내지는 씨족 중심으로 군대를 조직했다는 점
을 감안한다면(13절 ; 민 2:1-34), 여기의 '민장'는 한씨족의 지도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들은 백성들 사이에서 연락을 담당했을 것이며 유사시에는 백성들을
재건 체제로 즉각 전환시키는 책임을 맡은 자들로 짐작된다(Wllamson).
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ㅇ일반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종자와는 달리 성벽 재건에 전념하되 유사시에는 적을
물리치는 데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ㅇ성을 건축하는 자 - 원문상 16절의 '유다 온족속' 을 수식하는 문구로 봐야한다
(NIV,Williamson,Fensham).
ㅇ담부하는 자 - 이들은 자재(資材)를 운반하거나 흙과 무너졌던 성벽의 잔해를 치
우는( 10절)등의 조역(助役)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다(Rawlinson). 이들은 자재 운반
등의 일을 위해서 성밖에서도 일을 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작업 환경은 '건축하는
자'에 비해서 보다 열악(劣惡) 했을 것이 뻔하다(FEN-SHAM).
ㅇ각각...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 히브리 원문에는 '각각'에 해당되
는 단어가 없다.그런데 '담부하는 자'가 이처럼 한 까닭은 (1)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들
은 자신들의 작업의 성격상 성 밖에서도 일을 해야만 했던관계로 호신(護身)을 위한
노력이 필요했으며,(2)또 그 일의 성격상 한 손에 병거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Fensham, Rawlinson). 한편, '병기'( ,솰라흐)는 우가릿 문서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것으로서, (1) 멀리 던질 수있는 창,(2) 돌을 날려보낼 수 있는 무기를
모두 의미한다. 특히 본절의 '담부하는 자'들이 주로 흙이나 무너진 성벽의 잔해 위에
서 일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2)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Fensham, Williamson).
ㅇ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 '건축하는 자'는 앞의 '담부하는 자'와는 달
리 성벽을 쌓는 일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두 손을 모두 사용해야만 하는
일의 성격때문에 '칼'을 허리에 찰 수밖에 없었다.
ㅇ나팔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 이것은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그것을
예루살렘 외곽에 흩어져서 성을 쌓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이다(19,20 절). 이같이 나팔을 불어서 위급함을 알리는 연락체계는 고대국가들
에서는 꽤 보편적으로 이용되었다.
19 내가 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나뉘어 상거가 먼즉
20 너희가 무론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ㅇ느헤미야가 나팔 부는 자를 자신의 곁에 세워둔(18절) 이유가 언급되고 있다.
ㅇ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 - 14절 ; 2:16 주석을 참조하라.
ㅇ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가 성읍의 둘레 전체에서 동
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사실을 가리킨다.
ㅇ우리가 성에서 나뉘어 상거(相距)가 먼즉 - 이것은 차라리 '우리가 성벽을 따라
서 각 사람들로부터 나뉘어져 있다'로 번역함이 더 나을 것이다(Fensham). 결국 이는
백성들이 분산되어 있기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적들의 대대적인 공격이 가해져 올 때
거기에 대응할 수 없음을 염려하는 문구이다.
ㅇ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니라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우지 않
더라도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
의 도구로 삼아서 원수와 싸우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하시는 이유는, 거룩
한 성이 방어되고 또한 당신의 백성이 안전하게 사는 것이 철저하게 당신의 뜻이기 때
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싸우는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은 하
나님의 전쟁, 곧 성전(聖戰)일 수밖에 없다(수5:13-5 주제 강해, '성전(聖戰)' 참조).
그리고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은 아무리 우수한 무기와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어도,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
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마련이다(Kidner).
21 우리가 이같이 역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었으며
ㅇ16절의 내용이 약간 다른 모양으로 다시 언급되고 었다.
ㅇ무리 - 16절의 '종자'와 동일할 것이다.
ㅇ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시간 동안 노역을 감당했
었음을 강조하는 시적(時的) 표현이다. 아울러 이는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암시한다 고도 볼 수 있다.
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고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 하고
ㅇ사람마다...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 느헤미야가 이와같이 명령을 한 것은, 아
마 외지(外地)에서 공사를 위해 온 사람들, 특히 예루살렘 인근에 살고 있던 사람들
은 저녁에 일이 마쳐지면 자기의 집으로 가서 자려는 경향이 있었던 때문으로 짐작된
다. 만일 백성들의 뜻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될 수밖에없었다. 그
문제점들이란 (1) 백성들이 고향에 왕래하는 도중 적의 기습을 받을 가능성, (2)백성
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예루살렘의 작업장으로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 (3)아침마다
집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야기되는 혼란과 공정(工程)의 답보(踏步)현상, (4)
고향이 멀어서 저녁마다 갈 수 없는 사람과 가까운 데 고향이 있어서 저녁마다 집으로
갈 수 있는 사람 사이에 위화감이 생길 가능성, (5) 밤마다 발생할 예루살렘 시내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으로 인해 적의 야간 습격이 있을 가능성, (6) 위의 모든 문제들
로인해 성벽 재건 공정이 늦어질 가능성 등을 들을 수 있다.
ㅇ그 종자 - 이들은 16절의 '종자'와는 다르다. 만일 느헤미야가 여기서 자신의
'종자'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16절에서 처럼 '내 종자'라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
의 '그 종자'는 백성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데리고 온 '노예'일 것이다(Rawlinson).
실제로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백성들에게는 여섯 명당 한 명씩의노예가 있었다(스
2:64, 65).
23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ㅇ본절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산발랏 일당의 공격에 대한 경계 태세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ㅇ내 형제들 - 이는 느헤미야의 친 형제들일 가능성이 많다(1:2 ; 7:2).
ㅇ종자들(네아라이). 문자적으로 '나의 종자들'이므로 16절에서 언급
된 느헤미야의 직속 부하들을 가리킨다.
ㅇ나를 좇아 파수하는사람들 - '나를 좇아'(아하라이)는 주종(主從)
의 관계에 대해서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다(삼하 7:8 ; 왕상 11:6 ; 16:22 ; 렘 7:6 ).
따라서 '파수하는 사람들'은 '종자들'이외에 느혜미야를 전심으로 추종하던 무리 들
이었을 것이다.
ㅇ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 이것은 다급한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준
비이기도 했지만 더 나아가서는 백성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한 하나의 노
력이었을 것이다.
ㅇ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문구
(이쉬쉴호 하마임)가 잘못됐다고 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거기에는 (1) 여기의 '물'(하마임)이
'오른 손'(하야민)의 오류로 보고 '그의 무기는 그의 오른 손에 있
었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Fensham,Williamson, Keil). (2)이 불완전한 문구를
오류로 보지 않고 무리하지만 '물로 각자의 병기틀 씻었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
(Rawlin-son),(3)어떠한 단어가 탈락된 것으로 보고 '각사람이 물을 먹으러 갈 때에도
자기의 무기를 가졌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NIV), (4) 이 문구를 앞의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의 종속절로 보고, 또한 '기계'가 '그릇'을 뜻한다고 보아 '비록
각 사람이 자신의 물 그릇을 가졌지만'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J. P. Green),(5)역
시 이 문구를 바로 앞 구절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고, '씻기 위해 옷을 벗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으로 해석하는 견해(KJV)등이 있다. 그러나 이같이 다양한 견해 중에서
첫째, 맛소라 본문에 최대한 근거하려고 한다는 점 둘째, 그문맥을 고려해보건대,(1)
의 견해가 가장 무난한것 같다.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ㅇ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 '산발랏'이 성벽 재건에 관한 소식을
들은 것은 그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일 것이다. 유대인들 중에 그와 밀접한 관계를 유
지하고 있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전에 이미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3:1, 4 주석 참
조). 그런데 본절에서'산발랏'만이 유대 백성을 훼방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는 까닭은,
그가 유대 백성을 훼방하는 일에 선동자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견해는 여러명의 훼
방자가 동시에 언급될 때도, 그 이름이 항상 그들 중 첫번째에 위치한다는 사실로써도
분명해진다(7절 ; 2:10,19 ; 6:1,2,5). 한편,'산발랏'이라는 이름은 '달신(月神)이 그
에게 생명을 주었다'라는 말인 바벨론어에서 유래되었다. 2:10에 '호론 사람'이란 말
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그는 에브라임지파 남쪽지역인 '벧호론'(Beth-horon)
에서 출생한 듯하다. 그리고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리심산의 사마리아 성전은 이 산발
랏에 의해 건립되었고 산발랏은 자기사위를 이 성전의 대제사장으로 세웠다고 하나 그
사실성 여부는 분명치 않다. 한편, '크게 분노하며', '비웃는' 산발랏의 반응은, 2:19
에서 보다 한층 강렬한 것이며 6:2에 가서는 느헤미야를 살해하려고까지 하는 것으로
발전된다.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필역하려는가
소화된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ㅇ자기 형제들 - 이들은 의논 대상이 될만한 자신의 직속 부하들을 가리킨다. 물론
여기에는 '도비야'도 포함될 것이다(3절).
ㅇ사마리아 군대 - 페르시아 정부가 파견한 수비대라기 보다는 해당 지역별로 조직된
부대인 듯하다(스4 : 23). 산발랏은 이 '군대'를 이용해서 유대백성을 물리적인 힘
을 동원해서라도 괴롭힐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8절). 사실 페르시아 정부의 지배력이
제국 내의 곳곳에 직접적으로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산발랏의
이 같은 사악한 생각은 실천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Rawlinson).
ㅇ미약한 유다 사람들 - '미약한'(아말렐림)은 '쇠퇴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아말'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나무가 시들어말라 비틀어지는 것'
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사 16:8 ; 24:17). 특히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주로 소
망이 없는 암울한 상태를 가리킨다(사 19:8 ; 호 4:3).
ㅇ제사를 드리려는가 - 이 문구에 대해서는, (1) 이'제사'를 성벽 재건사업이 마쳐질
때에 드려지는 감사의 제사로 보고 유대 백성이 성벽 재건을 완료할 능력이 없을 것이
라는 조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2)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초자연적인
힘으로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가'라는 식의 빈정댐으로 볼 수도 있다(Williamson).
ㅇ하루에 필역 하려는가 - 이것도,유다 백성들을 무능한자들 이라고 하는 조롱 이다.
ㅇ소화된 돌을..다시 일으키려는가 - 이것은 유다 백성들이 성벽 재건에 사용할 석재
(石材)를 확보할수 없을것이라는 조롱이다(Rawlinson, Fensham).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ㅇ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 '도비야'가 산발랏의 측근 혹은 직속 참모였음을 보여준
다.
ㅇ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 '여우'로 번역된 히브리어 '슈알'
구약에서 7회 나오며(삿 15:4 ; 시 63:10 ; 아 2:15 ; 애5:18 ; 겔 13:4)
'쟈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쟈칼이 주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반면 여우는 대개 혼자
다닌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본문에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여우'로 보는 것이 좋
다. 그렇다면 도비야는 한 마리의 여우가 밟아도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조롱한 셈이
다. 일반적으로 성벽은 훌륭한 공성(攻城) 무기로 오랫동안 공격한 후에야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과장된 조롱임이 분명하다.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ㅇ본절과 같은 탄원적 기도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사업이 원수들에 의해서 멸시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드려지고 있다
는 점에서 실로 시의(時宜) 적절 하다고 할 수 있다(5:19 ; 9,14 ; 13:14,22,29,31 ;
시 69:22-28 ; 79:12 ; 109:6-20).
ㅇ우리가 업신여김을...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 '업신여김을'(부자)은
'조롱하다' 혹은 '모욕하다'의 의미이며'노략거리'(비자)는 '전리품'을 뜻
한다. 여기서 본저자 느헤미야는 이처럼 발음이 매우 유사한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여
말의 유희(Word play)를 살리고 있다. 즉, 느헤미야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부자'라는
행동, 즉 그 원인으로 말미암아 '비자'라는 불행, 즉 그 결과에 도달되기를 간절히 염
원하고 있는 것이다(Fensham).
ㅇ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 이것은 고대 중근동 민족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환
난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그와 같은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민족이다(스
4:9,10).
ㅇ그 악을덮어 두지 마옵시며 - 여기의 '덮어두지'(카사)는 죄의 용서를
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렘 18:23 에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느헤미야가 예레
미야서를 인용한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예레
미야 시대나 느헤미야 시대에 공히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Fensham).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ㅇ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聯絡)되고 - 이것은 예루살렘의 성벽에 의해서 완전히
둘러싸여 졌음을 뜻한다.
ㅇ고가 절반에 - 원문상으로는 단지 '절반까지' 혹은 '중간까지'라는 뜻만 있으므로,
이 말은 성벽의 길이나 넓이에도 적용될수 있으나 높이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다. 즉, 성벽이 원래 계획했던 것의 반정도의 높이로 쌓여졌었음을 가리킨다
(Rawlinson,Fensham).
ㅇ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 문자적으로는 '역사할 마음이 있었다'
의 뜻으로서, 참여자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마음 자세가 성벽 재건 사업이 크게 진
척될수 있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시사한다.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ㅇ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이방인들의 적대감이 점증되고 있었듯이(1절), 적대감을
품고 있던 이방인들의 숫자도 급격히 많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 나오는 이방
세력에 대해서는 본장 강해의 지도, '성벽 재건을 방해한 네 민족들'을 참조하라.
ㅇ산발랏과 도비야 - 이에 대해서는 2:10 주석을 참조하라.
ㅇ아라비아 사람들 - 이들은 페르시아가 중동을 제패했을 무렵에 팔레스틴의 동부인
요단 동편과 남부인 네게브 지방을 거주지로 삼기 시작했었다. 바로 이 족속의 한 분
파를 다스리던 자가 '게셈'이었다(2:19).
ㅇ암몬 사람 - 이들은 그 당시 요단의 동쪽지역 및 심지어는 요단의 서쪽 강변에서도
살던 민족이었다.
ㅇ아스돗 사람-이들은 블레셋 족속들이 거주했던 지역 전반에 걸쳐서 살고 있었다.
ㅇ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 본절의 '중수되어' (아루카)는, 그 어근
'아라크'의 뜻이 '연기하다' 혹은 '참다'인 것과는 달리 '상처의 치유' 혹은
'상처 위로 새 살이 돋아나는것'을 가리킨다(사 58:8 ; 렘 8:22 ; 30:17 ; 33:6).
건축과 관련한 이러한 표현은 대하 24:13에서도 나타나는 바, 이는 일반적으로 두루
쓰인 관용적 문구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에는 예루살렘의 번영을 기원
하는 느헤미야의 각별한 염원이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ㅇ다 함께 꾀하기를 - 여기서 '꾀하기를(카솨르)은 '묶다' 혹은 '음모하
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서, 어떤 질서 체계를 깨뜨리거나 혹은 어떤 대상을 망하
게 할 목적으로 집단적인 이기심에 따라 배반하는 행위를 가리킬때 많이 사용되었다
(삼상 22:8 ; 왕상 16:16 ; 대하 25:27).
ㅇ요란하게 하자(라아소트 로 토아)는 문자적으로 '그것(혹은 그)
에게 상처를 입히다'의 의미이다. 여기서 '그에게'(로)의 '그'는 남성 단수라
는점에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 사업을 주도하고 있던 느헤미야를 가
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 만일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면 '그'는 여성 단수가 되어야
한다. 한편, 산발랏은 당시 사마리아의 총독이었으므로 느헤미야의 귀한을 허락하는
왕의 조서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성벽 재건 금
지령만(스 4:21-23) 내세우며 심지어 무력행사까지 감행하려 했다(2절). 이러한 독자
적인 무력 행사는 명백한 불법 행위였으며 더구나 느헤미야가 합법적 절차에 따라 움
직였다는 사실에서 더욱 그러했다. 이는 산발랏 일당의 조급함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
시사하며 또한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중앙 정부의 통제력의 한계를 보여 준다.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ㅇ본절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사태의 해결을 부탁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할 수있는
가능한 방책을 강구한다.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을 최선을
다해 활용하고자 하는 느헤미야의 신앙적 자세는 본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컨데,'하
늘의 하나님께 목도하고 왕에게 고하여'(2:4,5),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며'(4-6절),'주를 기억하고...싸우라'(14절)등이 그러하다
(Kidner).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ㅇ본절에서와 같은 백성들의 낙심은 산발랏 일파의 협박(8절) 때문임이 분명하다.
ㅇ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 '흙 무더기'는 바벨론 군대의 공격 때에 파괴된 성벽
과 그 밖의 것들의 잔해를 뜻한다. 이것들은 성벽이 재건되고 있거나 혹은 재건되어져
야 할 곳에 높이 쌓여 있었던것 같다.
ㅇ담부(擔負)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 이것은 성벽 재건에 참여한 백성들의 심
신이 매우 지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된 것은 (1)이스라엘 백성의 상당수가 성
벽 재건에 참여치 않았음에 따라 참여한 소수의 작업량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고, (2)
일꾼 중에서 파수꾼으로 차출된 사람이 있었으며, (3)게다가 산발랏을 위시한 대적자
들의 위협이 날로 심해져갔기 때문이다.
ㅇ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 본절과 6절 내용과의 조화를 위해, 어떤 학자들
은 원문상으로 본장 6절까지가 3장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7절 이하의 내용이
6절 내용보다 시간상 앞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의 주도하
에 거의 절반에 달하는 정도의 공사를 이룩했지만(6절) 대적들의 위협이 더욱 살벌해
지자(8절) 큰 불안과 낙담에 빠져버린 것으로 이해하는것이 더 무난하다.
11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 그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ㅇ이 부분은 느헤미야가 파수대를 더 보강할 수밖에 없었던(13절) 절박한 이유를 설
명하고 있다.
ㅇ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 -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북쪽으로는 산발랏을
위시한 사마리아 사람들,동쪽으로는 암몬 사람들,그리고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사람들,
또한 서쪽으로는 아스돗 사람들이라는 대적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7절).따라서 본
절의 '유다 사람들'은 유다 땅의 외곽 지역에 거주하던 백성들이다.
ㅇ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 유다 땅의 변경에 살던 벡성들 중 성벽 재건에참
여치 아니한 사람들은 산발랏 등의 군사적 움직임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그들의 공세
를 방어할 요량으로, 성벽 재건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데려가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산발랏 일당의 계략이었다. 즉, 대적들은 유다 변경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성벽 재건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게 해서 성벽 재건을 중단케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13 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ㅇ성 뒤 낮고 넓은 곳에...서게 하고 - 이같이 한 이유는 '성 뒤 낮고 넓은 곳'은 비
록 성벽이 일부 쌓여있기는 했지만 그 지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적의 침투가 예상되
는 취약 지점이었던 때문이다. 또한 유다 백성들을 노출된 곳에 세움으로써, 산발랏
일당에게 일전 불사(一戰不辭)의 군사적 대응 능력을 보여주려는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여기서 '낮고'(미타흐티요트 라마콤)는 문
자적으로 '가장 낮은 장소 쪽에' 의 뜻이다. 그리고 '넓은 곳'(체
히힘)은 헐벗은 언덕이나, 평탄하고 장애물이 없이 노출된 장소를 뜻한다(Edwin
Yamauchi, Keil). 또한 '성 뒤 '는 성벽의 예루살렘 성읍 쪽을 가리킨다. 그리고'
서게 하고'(아아미드)는 '모시다' 혹은 '서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아마드'의 사역형으로서, 특정한 직책을 수행케 하기 위하여 일정한 장소
혹은 지위에 있게 하는 것을 주로 가리킨다(9절 ; 삿 20:28 ; 왕상 12:6 ; 왕하 9:17
;슥4:14).
ㅇ종족을 따라 - 이것은 군사 조직 내의 효율성을 증대케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종족' 혹은 '씨족' 끼리는 협조가 더욱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었겠기
때문이다.
ㅇ칼과 창과 활 - '칼'은 이스라엘 역사상, 근접전(近接戰)이 벌어졌을 때 가장 많
이 사용됐던 중요한 무기였다(Fensham). 또한 '창' 은 가까이 있는 적을 찌르는 데 사
용됐으며 '활' 은 약 600m의 사정 거리를 갖는 강궁(强弓)과 약 270m에서 360m 정도의
사정 거리를 갖는 경궁(經弓) 모두를 가리킨다(Y. Yadin, R. Go-nen).
14 내가 돌아 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ㅇ내가 돌아본 후에 - '돌아본'에 대해서는 (1)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염려를 살폈
다는 견해(Fensham,Schultz), (2) 느헤미야가 산발랏등의 동정을 알기 위해 그 주변을
살폈다는 견해(Rawlinson), 혹은 (3)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무장 상태를 살폈다는
견해(Keil)등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첫째, 본절의 '돌아본' (라아)은 단
순히 '쳐다보다'의 뜻이며(Fensham) 둘째, 본문맥에 이어서 '두려워 말고' 라는 느
헤미야의 당부가 나온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본다면 위의 세견해 중 (1)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다.
ㅇ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 - '귀인'(호림 )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스
라엘 공동체에서 어느 정도의 권세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2:16 ; 5:7 ; 13:17). 한편, '민장'(세가님)은 다른 곳에서는 '방백'
으로 번역된 단어이다(2:16 주석 참조). 그리고 '남은 백성'은 앞의 '귀인'과 '민장'
계층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을 뜻한다.
ㅇ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 '지극히 크고'(가돌)가 하
나님에게 적용될 때는, 달리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을 강조하는 형용사로 사용되
었다(출 18:11 ; 대상 16:25 ; 5 시 76:1 ; 86:10). 한편,'두려우신'
(노라)은 '두렵다' 혹은' 두려워하다'의 뜻이 있는 '야라'의 수동형
분사로서, 많은 경우에서 종말론적으로 악인들에게 진노를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의 진
노를 강조한다(시 1456:6 ; 욜 2:11 ; 습 2:11: 말 4:5). 따라서 본 문구는 모든 악한
자들을 권능의 하나님께서 대신 벌하여 주실 것을 믿고 백성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뜻이다(민 14:9 ; 신 1:29, 30 ; 삼하 10:12). 느헤미야
는 옛 선조들이 믿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대적들과 용감하게 싸웠던 사실, 특히 하
나님이 친히 그 백성들을 위해 대신 싸우사 승리를 가져다 주신 엄연한 역사적 사실
(출 14:13,14등)을 믿음의 눈으로 확고히 돌아보았을 것이다. 비록 당시의 성벽 파수
대는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했고 실전 경험도 없는 군대였으며 그 무기 또한 상대적으
로 열세하였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느헤미야의 확신이
었다고 이해된다(Williamson).
ㅇ너희 형제와의...집을 위하여 싸우라 - 이미 느헤미야는 파수대를 종족 단위로 편
성한 바 있다(13절). 자신의 가족과 친척을 위해 싸운다는 비장한 각오야말로 숫적인
열세를 메꾸어 주는 큰 활력이 되었을 것이다.
15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ㅇ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
헤미야의 지휘 하에 무장을 한 채 조직적으로 파수하는 등 철저한 방어 체계를 갖췄
다는 사실을 대적이 첩자들을 통해 들었다는 뜻이다(13, 14절). 대적들의 계획은 기
습 공격으로 단숨에 살륙을 감행하거나(11절) 무력의 과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벽 재건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욱 강하게 무장하여 적극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이게 됨으로써,
대적들의 계획은 오히려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무장한 병사들이 강한 정신력으
로 지키는 성읍을 공약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며, 더욱이 전투가 장기화되면
그 분쟁의 소문이 아닥사스다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될 것이고 결국 산발랏 일당은
왕명을 거스린 죄과까지 치뤄야할 터였으므로 그들은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지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ㅇ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의 계획을 부수
셨다' 의 뜻이다. 이와 매우 유사한 표현이 스 4:5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거기서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원수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계획이 좌절됐음을 말한다. 이
처럼 느헤미야가 에스라서에서 사용된 독특한 표현을 여기서도 다시 사용한 까닭은,상
황이 완전히 역전되었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16 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ㅇ비록 산발랏이 쳐들어오려고 했던 긴박한 상황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느헤미야는
여전히 잔존했었던 일말(一抹 )의 공격 가능성으로 인하여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
음을 보여준다.
ㅇ그때로부터 - '그 때'는 문자적으로 '바로 그 날'의 의미로서,(1)느헤미야가 산발
랏의 음모를 감지하여 백성들을 무장시킨 그 날(9, 13절), (2)산발랏이 자신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계획을 포기한 '그 날'(15절)모두를 뜻한다.
ㅇ내 종자 (네아라이) - '내종자'는 (1)느헤미야처럼 유다 출신들로서 느
헤미야가 수족처럼 부릴 수 있었던 특별한 집단(Myers,Keil,Rawlinson),(2)총독신분으
로서의 느헤미야의 통제 아래 있는 모든유다 백성들(Fensham)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첫째, 본절의 '종자'(나이르)라는 단어는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하
인을 가리키며(출 21:27 ; 삼상14:6 ; 25:5 ; 삼하1:5 ; 왕상19:3) 둘째, 느헤미야가
비록 총독이기는 했지만 백성들을 하인처럼 생각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셋
째, '종자'와 '성을 건축하는자'가 분리되어 언급되고 있음을 볼 때, 위의 두견해 중
전자가 보다 타당하다.
ㅇ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 활을 가졌고 - 이처럼 느헤미야가 자신의
종자들에게 파수 의무를 보다 많이 맡긴 까닭은 (1) 그들이 다른 백성들보다 훈련이많
이 되어 있었고, (2) 그들이 보다 훌륭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ㅇ민장(民長)은 유다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 본절의 '민장'
(솨림)은 군사적 조직체로서의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였다(Willamson, 신 9:9 ) 그
런데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항상 지파 내지는 씨족 중심으로 군대를 조직했다는 점
을 감안한다면(13절 ; 민 2:1-34), 여기의 '민장'는 한씨족의 지도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들은 백성들 사이에서 연락을 담당했을 것이며 유사시에는 백성들을
재건 체제로 즉각 전환시키는 책임을 맡은 자들로 짐작된다(Wllamson).
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ㅇ일반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종자와는 달리 성벽 재건에 전념하되 유사시에는 적을
물리치는 데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ㅇ성을 건축하는 자 - 원문상 16절의 '유다 온족속' 을 수식하는 문구로 봐야한다
(NIV,Williamson,Fensham).
ㅇ담부하는 자 - 이들은 자재(資材)를 운반하거나 흙과 무너졌던 성벽의 잔해를 치
우는( 10절)등의 조역(助役)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다(Rawlinson). 이들은 자재 운반
등의 일을 위해서 성밖에서도 일을 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작업 환경은 '건축하는
자'에 비해서 보다 열악(劣惡) 했을 것이 뻔하다(FEN-SHAM).
ㅇ각각...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 히브리 원문에는 '각각'에 해당되
는 단어가 없다.그런데 '담부하는 자'가 이처럼 한 까닭은 (1)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들
은 자신들의 작업의 성격상 성 밖에서도 일을 해야만 했던관계로 호신(護身)을 위한
노력이 필요했으며,(2)또 그 일의 성격상 한 손에 병거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Fensham, Rawlinson). 한편, '병기'( ,솰라흐)는 우가릿 문서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것으로서, (1) 멀리 던질 수있는 창,(2) 돌을 날려보낼 수 있는 무기를
모두 의미한다. 특히 본절의 '담부하는 자'들이 주로 흙이나 무너진 성벽의 잔해 위에
서 일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2)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Fensham, Williamson).
ㅇ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 '건축하는 자'는 앞의 '담부하는 자'와는 달
리 성벽을 쌓는 일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두 손을 모두 사용해야만 하는
일의 성격때문에 '칼'을 허리에 찰 수밖에 없었다.
ㅇ나팔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 이것은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그것을
예루살렘 외곽에 흩어져서 성을 쌓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이다(19,20 절). 이같이 나팔을 불어서 위급함을 알리는 연락체계는 고대국가들
에서는 꽤 보편적으로 이용되었다.
19 내가 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나뉘어 상거가 먼즉
20 너희가 무론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ㅇ느헤미야가 나팔 부는 자를 자신의 곁에 세워둔(18절) 이유가 언급되고 있다.
ㅇ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 - 14절 ; 2:16 주석을 참조하라.
ㅇ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가 성읍의 둘레 전체에서 동
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사실을 가리킨다.
ㅇ우리가 성에서 나뉘어 상거(相距)가 먼즉 - 이것은 차라리 '우리가 성벽을 따라
서 각 사람들로부터 나뉘어져 있다'로 번역함이 더 나을 것이다(Fensham). 결국 이는
백성들이 분산되어 있기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적들의 대대적인 공격이 가해져 올 때
거기에 대응할 수 없음을 염려하는 문구이다.
ㅇ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니라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우지 않
더라도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
의 도구로 삼아서 원수와 싸우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하시는 이유는, 거룩
한 성이 방어되고 또한 당신의 백성이 안전하게 사는 것이 철저하게 당신의 뜻이기 때
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싸우는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은 하
나님의 전쟁, 곧 성전(聖戰)일 수밖에 없다(수5:13-5 주제 강해, '성전(聖戰)' 참조).
그리고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은 아무리 우수한 무기와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어도,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
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마련이다(Kidner).
21 우리가 이같이 역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었으며
ㅇ16절의 내용이 약간 다른 모양으로 다시 언급되고 었다.
ㅇ무리 - 16절의 '종자'와 동일할 것이다.
ㅇ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시간 동안 노역을 감당했
었음을 강조하는 시적(時的) 표현이다. 아울러 이는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암시한다 고도 볼 수 있다.
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고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 하고
ㅇ사람마다...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 느헤미야가 이와같이 명령을 한 것은, 아
마 외지(外地)에서 공사를 위해 온 사람들, 특히 예루살렘 인근에 살고 있던 사람들
은 저녁에 일이 마쳐지면 자기의 집으로 가서 자려는 경향이 있었던 때문으로 짐작된
다. 만일 백성들의 뜻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될 수밖에없었다. 그
문제점들이란 (1) 백성들이 고향에 왕래하는 도중 적의 기습을 받을 가능성, (2)백성
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예루살렘의 작업장으로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 (3)아침마다
집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야기되는 혼란과 공정(工程)의 답보(踏步)현상, (4)
고향이 멀어서 저녁마다 갈 수 없는 사람과 가까운 데 고향이 있어서 저녁마다 집으로
갈 수 있는 사람 사이에 위화감이 생길 가능성, (5) 밤마다 발생할 예루살렘 시내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으로 인해 적의 야간 습격이 있을 가능성, (6) 위의 모든 문제들
로인해 성벽 재건 공정이 늦어질 가능성 등을 들을 수 있다.
ㅇ그 종자 - 이들은 16절의 '종자'와는 다르다. 만일 느헤미야가 여기서 자신의
'종자'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16절에서 처럼 '내 종자'라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
의 '그 종자'는 백성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데리고 온 '노예'일 것이다(Rawlinson).
실제로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백성들에게는 여섯 명당 한 명씩의노예가 있었다(스
2:64, 65).
23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ㅇ본절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산발랏 일당의 공격에 대한 경계 태세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ㅇ내 형제들 - 이는 느헤미야의 친 형제들일 가능성이 많다(1:2 ; 7:2).
ㅇ종자들(네아라이). 문자적으로 '나의 종자들'이므로 16절에서 언급
된 느헤미야의 직속 부하들을 가리킨다.
ㅇ나를 좇아 파수하는사람들 - '나를 좇아'(아하라이)는 주종(主從)
의 관계에 대해서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다(삼하 7:8 ; 왕상 11:6 ; 16:22 ; 렘 7:6 ).
따라서 '파수하는 사람들'은 '종자들'이외에 느혜미야를 전심으로 추종하던 무리 들
이었을 것이다.
ㅇ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 이것은 다급한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준
비이기도 했지만 더 나아가서는 백성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한 하나의 노
력이었을 것이다.
ㅇ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문구
(이쉬쉴호 하마임)가 잘못됐다고 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거기에는 (1) 여기의 '물'(하마임)이
'오른 손'(하야민)의 오류로 보고 '그의 무기는 그의 오른 손에 있
었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Fensham,Williamson, Keil). (2)이 불완전한 문구를
오류로 보지 않고 무리하지만 '물로 각자의 병기틀 씻었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
(Rawlin-son),(3)어떠한 단어가 탈락된 것으로 보고 '각사람이 물을 먹으러 갈 때에도
자기의 무기를 가졌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NIV), (4) 이 문구를 앞의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의 종속절로 보고, 또한 '기계'가 '그릇'을 뜻한다고 보아 '비록
각 사람이 자신의 물 그릇을 가졌지만'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J. P. Green),(5)역
시 이 문구를 바로 앞 구절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고, '씻기 위해 옷을 벗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으로 해석하는 견해(KJV)등이 있다. 그러나 이같이 다양한 견해 중에서
첫째, 맛소라 본문에 최대한 근거하려고 한다는 점 둘째, 그문맥을 고려해보건대,(1)
의 견해가 가장 무난한것 같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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