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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느헤미야

[스크랩] 느헤미야 (3 : 1~32)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0:59
느헤미야 3장


1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ㅇ대제사장 엘리아십 - 이 사람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팔레스틴에 귀환했던 대제
사장 '예수아'의 손자이다(12:10). 그런데 나중에 그의 손자가 산발랏의 딸과 결혼
했고(13:28), 또한 그는 이방인 도비야(2:10)에게 성전의 방을 내어줄(13:4, 7) 만큼
산발랏 일당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렇다면 엘리아십이 처음에는 느헤미야를 도
와 헌신적으로 재건 사업에 참여하다가 나중에 산발랏 일당에게 매수당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불온한 마음을 가진 채 단지 백성들의 눈을 의식하여 형식적으로 재건 사역
에 참여하였을 뿐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어쨌든 보다 분명한 것은,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대제사장이 재건 사역에 협력하였음을 느헤미야가 부각시키려 했다는 사실
이다.
ㅇ그 형제 제사장들 - 이들을 '엘리아십'의 친형제들로 볼 수는 없다. 다만 '엘리아
십'처럼 아론의 후손들로서의 '제사장들'을 가리킨다(스 3:2).
ㅇ양문을 건축하여 성별(聖別)하고 - '양문'은 예루살렘의 북동쪽 모퉁이에 위치했었
다. 희생 제사에 소용되는 양과 염소들은 바로 이곳을 통해서 들어갔다. 이 '양문'을
통해 들어간 희생 제사용 짐승은 이 문옆의 못에서 씻겨진 후 성전으로 옮겨갔던 것같
다. 요 5:2의 '양문'은 바로 이곳을 가리킨다. 한편, 혹자는 '성별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드슈후'를 '들보를얹다'는 뜻인 '케루후'
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본다(Rudolph). 그러나 굳이 그러한 견해를 취할 필요는 없
다. 왜냐하면 이 말이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재건 사역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대표 자격으로 하나님께 바쳤음을 나타낸다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Fensham, Kidner). 이것은 마치 이방 여인을 취한 사실로 인하여 회개한 이스라엘 백
성들의 명단을 제시하면서 그 중 유독 제사장들만이 속건제를 드린 사실을 언급한 것
과 같다(스 10:18, 19).
ㅇ성벽 함메아 망대에서 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 '함메아망대'는 '양문'의 서쪽에,
'하나넬 망대'는 '어문'(3절)의 서쪽에 각각 인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두 망
대 사이에는 짧은 성벽과 그중간에 '어문'이 있었다. 이처럼 제사장들이 북쪽 성벽의
재건을 담당한 것은, 그곳이 그들의 활동 무대였던 성전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었다.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ㅇ본절에서 부터 5절까지는 '하나넬 망대'의 서쪽 성벽 약 210m의 건축에 대해서 말
하고 있다.
ㅇ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이 건축 - '그 다음'은 '엘리아십'(1절)을 위시한 제사장들
이 건축한 성벽에 '연이어서'의 의미이다. 한편, 본절의 '여리고 사람'은 자신들의
조상이 포로로 끌려가기 전에 '여리고'에 살고 있었음은 알았으나, 자신들의 족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자들로 추측된다(Rudolph, 스 2:34).
ㅇ이므리의 아들 삭굴 - 이 사람에 대해 별 달리 밝혀진 바는 없다. '삭굴'은 '염두
에 두는'의 의미이다.

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ㅇ어문(魚門)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 - 예루살렘 북쪽 성벽의 좌측에 위치한 문
으로서, 갈릴리 바다 및 요단 강에서 잡힌 물고기들이 바로 이곳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Rawlinson). 이 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구절들은
본서 12:39과 대하 33:14 그리고 습 1:10 등이다. 한편, '하스나아'는
'스나아'라는 지명(地名) 앞에 정관사 '하'가 붙은 것으로 봐야한다(Kidner , 스
2:35 ). 따라서 '하스나아의 자손들'도 2절의 '여리고 사람들'처럼, 자신의 조상이
'스나아'라는 곳에 살고 있었음은 알았으나 그 족보를 밝히지 못함으로 인하여 조상의
이름 대신 지명을 통하여 구별되고 있다(스 2:35).
ㅇ그 들보를 얹고 - 지붕을 올림으로써 건축을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한다(Fensham).
ㅇ자물쇠와 빗장 - 여기서 '자물쇠'(만울)는 오히려 '빗장'을 가리키
며, '빗장'은 앞의 '빗장'을 물고 있는 '소켓'(sockets)을 뜻한다(Rawlinson).

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벧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ㅇ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 '므레못'은 '말기야'(11절)와
함께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사역에 모두 관계되는 자로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귀환
하면서 가져온 물품들을 인수했던 제사장이었다(스 8:33). 한편, '학고스'의 자손은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증거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스 2:59, 61).
ㅇ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슬람 - 이 사람은 자신의 딸을 '도비야'(2:10,
19)에게 며느리로 주는 등 사마리아 사람들과 밀착된 관계를 맺었던(6:18) 제사장이
다(30절). 그가 성벽 재건에 참여한 이유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경우와 유사할 것
이다(1절 주석 참조). 한편, '므술람'이라는 이름은 '동맹한'이란 뜻이다.
ㅇ바아나의 아들 사독 - '사독'은 에스라가 제안한 언약문에 인친 자로만 알려졌을뿐
이다(10:21).

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ㅇ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 6절의 언급으로 미루어 볼 때, '드고아
사람들'의 작업 몫은 '옛 문'과 인접한 동쪽 성벽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한편, '드
고아'는 예루살렘 동남쪽 약 14.5Km 지점의 불모지에 자리잡았던 성읍으로서, '아라비
아 사람 게셈'(2:19)에 의해서 공격받기 쉬웠던 입지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
'드고아 사람들'은 출신지역에 따라 분류된 포로 귀환자 명단(스 2:20 - 35)에 나오지
않음을 볼 때, 자신들의 족보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아닌 듯하다. 느헤미야는 다만
(1) '드고아'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의 공격을 쉽사이 받을 수 있는 지역이며, (2) 그
곳의 귀족들은 오히려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다는 등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조상
의 이름을 통한 가족 분류 방식을 포기하고 이같이 동리의 이름을 통해 이들을 분류하
고 있다고 본다.
ㅇ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擔負)치 아니하였으며 - 이것은 문자적으로 '그
들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목들을 자신들의 주(主)들의 역사에 가져오지 않았다'의 뜻으
로서, 멍에 메기를 거절하는 황소의 모습에 빗대어서(렘 27:12) 성벽 재건 사역에 동
참치 않은 귀족들을 암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그 주'는 누구를 가리
킬까? 본절의 '주'(아도네이헴)가 복수라는 점에서 하나님으로 볼
수 없으므로 느헤미야를 도와서 일을 하던 감독자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Kidner).
그 문자적 의미는 '높임을 받는자'이다. 한편, '귀족들'이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
던 이유는 (1) 이들이 '아라비아 사람 게셈'의 보복을 두려워했으며, (2) '게셈'과 상
당히 깊숙한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때문으로 이해될 수 있다(Fensham).

6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ㅇ본절에서부터 11절까지에서는 약 600m 가량의 성벽 재건 작업에 대해서 엄급한다.
ㅇ옛문 - 왕하 14:13과 램 31:38의 '모퉁이 문'과 동일시 되며(Edwin Yamauchi) 예루
살렘 북쪽 약 30Km 지점에 있던 '여사나'(대하 13:19)라는 곳으로 향하는 도로로 통하
는 문이었다(Albright).
ㅇ요야다 - '여호와께서 알고 계시다'의 뜻이다. 다른 곳에서는 일체 언급되지 않고
있다.
ㅇ므술람 - '동맹한'의 뜻이다.

7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편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로 더불어 중수하였고

ㅇ기브온 사람 믈라댜 - 여기의 '기브온사람'은 출신 지역에 따라 분류된 포로 귀환
자명단(스 2:20 - 35)에 들어 있다(7:25). 이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쪽 약 9Km 지
점에 위치했다. 한편, '믈라댜'는 여기서만 나오는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자유케
하셨다'의 뜻이다.
ㅇ메로놋 사람 야돈 - '메로놋'은 '기브온 북동쪽약 5Km 지점이었을 것이다(M.New
man, 대상 27:30). 그리고 '야돈'은 '여호와께서 지배하신다'의 뜻이 있는 '여도니야'
의 단축형이다.
ㅇ강서편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미스바 사람들 -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
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1) 기브온과 미스바가 당시 강 서편 총독의 직접적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보는 견해(Rawlinson, Keil, Schultz, Kidner). (2) 강 서편총독이 유
다를 방문할 때마다 임시로 머물던 곳이 미스바에 있었다는 견해(Willamson), (3) 유
다총독(5:14)이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머물던 곳이 미스바에 있었다는 견해 등이 있
다. 그러나 첫째, 여기의 '관할에 속한'(키세)이라는 단어가 일차적으로 '좌
석' 혹은 '보좌'를 의미하며 둘째, 유프라테스 강 서쪽 전부가 '강 서편총독'의 영향
아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미스바'와 '기브온'만을 직접 관할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며 셋째, '강 서편 총독'이라는 말을 유다 총독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기도 어렵
다는 사실(2:7; 스 8:36) 등으로 미루어 위의 세견해 중 (2)의 것이 가장 타당한 듯
하다.

8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등이 중수하되 저희가 예루살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ㅇ금장색(金匠色)..향품 장사..중수하되 - 7절에서는 가까운 지방 사람들끼리 힘을
합하는 모습이 언급된 데에 이어서, 여기서는 특별한 직업의 소유자들끼리 협력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금장색'은 순금이나 금박으로 장신구
와 우상등을 만드는 일에 주로 종사했었다(사 40:19; 41:7; 46:6; 렘 10:9, 14; 51:
17). 그러나 포로 귀환후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우상 숭배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
다는 점에서, 본문의 '금장색'은 장신구 등의 제조에만 관계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본절과 31, 32절은 이 '금장색'들이 자신들 끼리의 동업자 조합을 형성하고 있었을 가
능성을 짙게 풍기고 있다. 더구나 여기의 '금장색'(초르핌)이라는
단어가 복수라는 사실은 그 가능성을 더욱 높게 한다. 한편, '향품장사'는 애굽이나
인도 등지에서 완제품을 수입해서 팔거나 혹은 식물에서 '향품'을 직접 추출해내는 자
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런 직종에 종사했던 인물로 성경에 최초로 언
급되는 자는 브사렐이다(출 37:1, 29). 이러한 '향품'은 '분말' 혹은 '액체'의 형태였
고, 조그만 용기에 보관되어 여인들에 의해서 지참되었다(사 3:20). 이 같은 향품의
주된 용도는 몸의 냄새를 상쇄시키는 것이었고 장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무튼
'금장색'이나 '향품 장사'는 (1) 시간 할애가 용이하였으며, (2) 다른 직업의 소유자
보다 수입이 많은 관계로 경제적으로 넉넉했기 때문에, 성벽 재건 사업에 적극적일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보통 중류계급으로 분리
되었다고 한다(Fensham).
ㅇ저희가 예루살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 '넓은 성벽'은 B.C. 7세기 초에 히스기야
왕에 의해 건축된 벽으로서 B.C. 722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된 이후 북이스라엘의 피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넓힌 것이다(M. Broshi). 1970,71년에 아비갓(N. Avigad)은
성전 서쪽 방향 270m 정도 지점에서 6.7m 정도되는 두께의 성벽을 발굴한 바 있으며
이것은 본문의 '넓은 성벽'과 동일한 것으로 짐작된다.

9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ㅇ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여기서 '지방'(펠레크)은 원래 '주
위'나 혹은 '물레가락'의 뜻을 지니며 한계가 명확하지 않은 주변지역을 가리킨다. 따
라서 여기의 '예루살렘 지방'은 예루살렘 시내 지역이 아닌 예루살렘과 붙어있는 변두
리 지역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Fensham, Rawlinson). 그리고 '다스리는 자'
(사르)는 본서에서 보통 '방백'으로 번역된 단어로서(스 10:14) 그 당시의 유다 지역이
조그만 단위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한편, 본절은 해당 지역의 책임
관리자 혼자서만 재건 사역을 감당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마 그의 주도하에 해
당 지역내의 주민들이 이 일에 협력하였을 것이다.

10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는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ㅇ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 - 이곳은 예루살렘 서쪽의 급경사지로 추측된다.

11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풀무 망대를
중수하였고

ㅇ하림의 아들 말기야 - '하림'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
이었다(스2:32). 따라서 여기의 '아들'(벤)은 '자손'으로 번역됨이 타당하다.
한편, '말기야'는 '여호와는 왕이시다'의 의미를 가지는데 23절의 '베냐민'과 형제인
듯하다(스 10:31, 32).
ㅇ바핫모압의 아들 핫숩 - 본절의 '바핫모압'도 최초로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스
2:6)이다.
ㅇ한 부분(미다 쉐니트) - 이것은 문자적으로 '두번째 부분'
으로서, 이미 배정됐던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말기야'와 '핫
숩'은 여기 이외에 다른 부분의 축성(築城)작업도 부여받았던 셈이다(23절).
ㅇ풀무 망대 - 이는 12:38; 대하 26: 9등으로 볼때 '골짜기 문'과 '넓은 성벽'의 중
간 지점에 위치하였던 곳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이 같은 명칭이 붙여진 것은, 그곳에
서 빵이 구워졌기 때문인 듯하다(Williamson).

12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하였고

ㅇ그 다음 - 이는 '풀무 망대'와 '골짜기문'(13절) 사이의 성벽 부분을 말한다. '일
자형'(一字型)에 길이 약 450m 정도이다.
ㅇ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었던 지역의 한부분
을 다스리던 사람을 가리킨다(9절 주석 참조).
ㅇ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 '할로헤스'라는 이름은 '속삭이는자'(M. Newm
an). 혹은 '마술사'(Batten)라는 의미를 갖는다. 바로 이점 때문에 학자들은, 이 이름
이 '사람의 이름' 곧 고유명사가 아니라 '직업명' 곧 보통명사라고 주장한다(M. New
man, Batten). 그러나 이와 동일한 이름이 에스라의 언약문에 인친 자들의 명단중에
나온다는 사실은, 이 이름이 구체적인 개인명임을 입증해준다(10:24). 한편, 여기의 '
아들'(벤)은 오히려 '자손'의 의미로 봐야할 필요가 있을것이다(Schultz). 그
리고 '그 딸들'(베노타이우)은 (1) '딸'이 큰 도시에 인접해서 성장하
고 있는 성읍에 대한 일상적 용어로 사용된 사실(겔 16:53)에 근거해서 '마을 사람들'
을 뜻할 것이라는 견해(Batten, Rawlinson, Fensham, Kidner), (2) 여자는 성벽 쌓는
일에 종사할 힘이 없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 딸들'(베노타이우)은 '그 아들들'(베나
이우)의 오기(誤記)라는 견해(JB, Vimcent), (3)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Williamson, Schultz, Keil)등으로 그 해석이 구분된다. 그러
나 첫째, 고대 아테네에서는 무너진 성벽의 재건을 위해서 여자들도 동원 됐으며 둘
째, '딸'들은 남자 형제가 없을 경우 아버지의 이름과 재산을 상속받으며(민 36:8) 셋
째, 본서의 3장은 성벽 재건에 대한 백성들의 열심을 강조하는(8절) 문맥적 특색을 갖
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때, 위의 세 견해 중 (3)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있다.

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거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일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ㅇ하눈과 사노아 거민 - '하눈'은 30절에서는 '살랍의 여섯째 아들'로 묘사되고 있으
며 그 이름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의 의미를 갖는 '하나니엘', 혹은 '여호와는 자
비로우시다'의 뜻을 갖는 '하나니야'의 단축형으로 짐작된다. 또한 '사노아'는 예루살
렘 남서쪽 약 22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성읍이다(수 15:34).
ㅇ본문까지 성벽 일천 규빗을 중수 - '일천 규빗'은 약 450m의 길이이다. 북쪽 성벽
약 200m 정도를 네 집단에서 담당했던 것(2-5절)과 비교해보면 매우 작은성읍 '사노
아'의 거민들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은 특이하게 보인다.이 점에 대
해서는 (1) 사노아 거민들이 큰 열심을 냈었다는 측면, (2) 그들이 담당했던 성벽의
파괴가 극심하지 않았었다는 측면 모두가 인정될수 있을 것이다.

14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ㅇ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말기야 - '벧학게렘 지방'은 '벧학게렘'이라는 성읍과
전혀 다르다. 여기서 '지방'은 어떤 성읍과 인접해 있는, 혹은 둘러싸고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9절). 한편, '벧학게렘'은 예루살렘 남쪽 약 5Km 지점에 위
치했다.

15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으며 문짝을 달며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ㅇ샘문 - 이에 대해서는 2:14 주석을 참조하라.
ㅇ미스바 지방 - 이것도 '미스바'와는 전혀 다르다(14절 주석 참조). 한편, '미스바'
는 예루살렘 북쪽 약 12.8Km에 위치했다.
ㅇ왕의 동산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 - 여기서 '왕의 동산'은 기드론 골짜기 남단, 즉
그 골짜기가 힌놈의 골짜기와 만나는 곳에 위치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벽 바깥에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IDB, 왕하 25:4; 렘 39:4; 52:7). 한편, '셀라못'은 '실로암
못'과 동일시되는 것으로서(사 8:6; 요 9:7). 그 물이 넘쳐 흘러서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가 마주치는 곳에 위치했던 '왕의 동산' 쪽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 '셀
라 못'은 '왕의 동산'의 수원(水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못이 예루살렘 본성(本
城)의 바깥 쪽에 위치했었다. 이런 점 때문에 그 못과 그 물을 이용하는 자들의 보호
를 목적으로 별도의 성벽이 쌓아졌었으므로 '셀라 못'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게 된 셈
이다. 그렇다면 본 문구의 '성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루살렘의 동쪽 성벽의 가장
남쪽부분 약 100m를 가리키며 '셀라 못'의 동쪽성벽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것은
'셀라 못가의 성벽'이라고 할 만하다.
ㅇ다웠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 - '다윗성'은 예루살렘의 동남쪽의 한 구릉지대로서,
기혼 샘의 북서쪽에서부터 남쪽까지 뻗어 있었다(삼하 5:7, 8). 그리고 '층계'는 기
드론 골짜기로 내려갈 수 있었던 계단이었다.

16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ㅇ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느헤미야 - '벧술 지방'은 예루살렘 남쪽 약 21Km
지점에 위치한 '벧술'이라는 성읍(수15:58) 그자체를 뜻하지 않고 다만 그 성읍의 인
접 지역을 가리킬 뿐이다(9절). 한편, 본절의 '느헤미야'는 본서의 저자인 '느헤미야'
와 동명 이인이다.
ㅇ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 '다윗의 묘실'은 '묘실'(키브
레이)이 복수라는 점에서 다윗 왕 한 사람만의 무덤이 아니라 다윗부터 시작해서 그
후예들의 공동 묘지였음이 분명하다(대하 28:27). 그 위치는 '다윗 성'(15절)의 남쪽
곧 시온산 어디였을 것이다(Myers, 왕상 2:10).
ㅇ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에 의해서 포위됐을때,
히스기야는 기혼의 샘 물을 막은 후 고랑을 파서 그 물이 다윗 성 안쪽으로 흘러 들어
오도록 해서 식수(食水) 문제를 해결했었다(왕하 20:20; 대하 32:3, 4). 그때 그 흘러
들어온 물이 한 곳에 모이도록 해놓은 시설이 곧 여기의 '파서 만든 못'이었다(사 22:
9 - 11). 한편 '용사의집'은 다윗의 충실한 부하들이었던 '용사들'(삼하 23:8; 대상
11:10)이 사용했던 병사(兵舍)였다(Rawlinson).

17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ㅇ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 - 이처럼 성전 봉사에 바빴을 '레위 사람'이 성벽 재
건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는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운동에 대한 백
성들의 호응이 적극적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혹자는 본절의 '레
위 사람'이 (1)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던 레위 사람의 후예이기 때문에 성전 봉사에 참
여치 못했고 그래서 성벽 재건에 동참할 여유가 있었거나, (2) 포로 귀환후에는 레위
인의 일부가 성읍의 행정에만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벽 재건에 동참하였을 것이라
고 주장한다(Williamson). 그러나 (1)의 견해는, 저자가 단순히 '레위 사람'이라고만
언급했다는점에서 타당치 않다. 반면 (2)의 견해는 그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어느 정
도 타당하다.
ㅇ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그일라 지방'은 예루살렘 서남쪽 약 24Km지점
에 위치한(삼상23:1 - 13) '그일라'와는 전혀 다르다(9, 12, 14절).
ㅇ하사뱌 - '여호와께서 참작하셨다'의 뜻이다.
ㅇ그 지방을 대표하여 - 그곳 주민들을 통솔하는 등 그성벽 재건 공사의 주체(主體)
가 된 것을 가리킨다. 이 같은 역할은 한 지역을 다스리는 자로서 성벽 재건에 참여한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을 것이다(9절).

18 그 다음은 그 형제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ㅇ그 형제..헤나닷의 아들 바왜 - 여기의'바왜'는 '빈누이'
의 오기(誤記)로 간주될 수 있다. 그 이유는 (1) '바왜'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이나
그밖의 문헌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으며, (2) 9절의 '한 부분'은' 이미 배당된 몫 이
외의 또 다른 부분'(11절)을 가리키므로, 본장 어디에든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
할당받은 작업 몫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하나 그렇지 못하며, (3) 더구나 10:9에는 '빈
누이'라는 레위 사람이 '헤나닷의 자손'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절
의 '바왜' 를 '빈누이'로 고치고, 이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 두 몫의 성벽 공사를
할당받았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이 '빈누이'는 에스라의 언약문에 인을 치
기도 하였다(10:9).

19 그 다음은 미스바를 다스리는 자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까지 이르렀고

ㅇ미스바를 다스리는 자..에셀 -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했던 한 성읍 '미
스바'를 가리킨다. 한편, '에셀'은 '도움' 혹은 '구원'의 뜻이다.
ㅇ한부분 - 배당된 몫 이외에 또달리 배당된 별도의 작업 몫을 가리킨다(11절). 따라
서 본절의 '에셀'은 본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작업 몫 이외에 이미 또 다른 부분을 배
당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에셀'이라는 이름은 본장 어디에도 안 나온다. 그러므
로 우리는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이 함께 한 재건 사역이 본문의 에셀이 감당
한 또다른 한 부분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7절).
ㅇ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 - 이것은 문자적으로 '모퉁이에 있는 군기고로 오르
는 곳 앞'의 뜻이다(Schultz, Fensham). 여기서 '모퉁이'는 '성벽이 날카롭게 꺾
어지는 곳'을 의미한다(대하 26:9). 본절에서 느헤미야가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라
고 '군기고'를 한정적으로 표현한 까닭은 예루살렘에는 여러 군데에 군기고가 있었던
때문이었다(사 22:8).

20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ㅇ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 '삽배'는 스 10:28에서 이방 여인을 취했다
가 회개한 자로 언급된다. 그리고 '바룩'은 본서 10:6, 8을 볼 때, 제사장임이 분명하
다. 따라서 이 같은 사실은 여기의 '한 부분'에 대한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즉, '바룩'은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성벽 재건에 동참했었고(1절) 이제 그와는
별도로 또 다른 '한 부분'을 맡아서 공사를 했던 것이다. 한편, '힘써'
(헤헤라)는 '맹렬하다', '타오르다' 혹은 '진노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하라'
의 사역형으로서 '뜨겁게 되다'(Fensham) 혹은 '열심을 품다'의 의미이다(David
son). 이 같은 단어는 앞의 '한 부분'이라는 말과 매우 잘 조화된다. 즉, 그는 열
심을 품어서 이미 자신에게 맡겨졌던 공사를 재빨리 완료하고, 또다시 새로운 부분에
대한 공사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
ㅇ성 굽이에서부터..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 '성 굽이'는 '군기고'가 있는 성
의 모퉁이를 가리키며 '집문에'는 '집 문 맞은편'의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Batten,
16, 19절). 만일 본절의 '집 문에'를 여자적(如字的)으로 받아들인다면, '엘리아십의
집'이 성벽과 붙어있었다는 오해를 낳게 될 것이다.

21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엘리아십의 집 모퉁이에 이르렀고

ㅇ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 - '학고스'는 스 2:61에서 자신들의 계보를
증명치 못하여서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던 제사장 가문의 조상으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여기의 '손자'는 '자손'으로 번역함이 타당하다. 그리고 '므레못'은 스 8:33
에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가져온 물품을 인수했던 제사장으로 언급된다.
ㅇ한 부분을 중수하여 - '므레못'도 20절의 '바룩'처럼 자신에게 맡겨졌던 최초의 작
업 몫을 재빨리 마치고, 본절의 또 다른 성벽 공사에 뛰어들었음이 분명하다(20절).
ㅇ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모퉁이에 이르렀고 - 이것은 (1)므레못의 공사량(工事
量)이 비교적 적었다는 사실(Rawlinson, Batten), (2) 엘리아십의 집이 매우 컸다는
사실(Keil) 중 하나를 시사할 것이다. 그러나 첫째, 느헤이야 귀환 당시의 예루살렘은
그 경제형편이 좋지 못했으며(1:3) 둘째, 대제사장 그 당시 행정적 측면을 관장했었던
총독보다 권한이 비교적 적었음(5:9)을 미루어 볼 때, 위의 두 가지 추측 중 전자가
보다 타당할 듯하다. 그런데 '므레못'이 이처럼 적은 몫 만을 담당했던 까닭은, 그 부
근의 공사 조건이 심히 나빴기 때문일 것이다(Batten, 2:14). 아무튼 '므레못'이 대제
사장 집 앞의 성벽 공사를 담당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 당시 신실한 제사장으로 인
정되고 있었다는 좋은 증거라 하겠다(Scultz).

22 그 다음은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이 중수하였고

ㅇ평지에 사는 제사장들 - '평지에 사는'(안쉐이 키카르)은
문자적으로 '평지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한편, '평지'(키카르)는 (1) 예루살렘의 주
변지역(Fensham, Williamson), (2) 요단강 유역의 여리고 지역(Keil, Rawlinson, Scul
tz, Batten) 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기의 '평지'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요
단강 유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첫째, 이것이 에브라임 산지에
대해서도 적용됐으며(삼하 18:23 ) 둘째, 특히 본서에서 예루살렘 주변을 나타내는 데
사용됐다(12:28)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1)의것이 보다 타당한 듯하다.
따라서 본절의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시내에 살며 성벽재건에 최초로 나
섰던 제사장들(1절)과는 분명히 구별된다(Williamson).

23 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아나냐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ㅇ베냐민과 핫숩 - '베냐민'은 '하림 자손'으로서 11절의 '말기야'와는 형제 혹은 근
친인 듯하다(11절; 스 10:31, 32). 그리고 '핫숩'은 '바핫모압 자손'으로서 '베냐민'
의 형제 '말기야'와 함께 '풀무 망대'를 재건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본절의 '핫숩'
은, 한 곳에서는 '하림자손'의 '말기야'와 함께, 또 다른 곳에서는 그형제 '베냐민'
과 함께 공사를 하는 등 두 몫을 담당했던 셈이다(11절).
ㅇ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 - '가까운 부분'(에첼)은 구
약 성경에서 대부분 '옆에' 혹은 '곁에'로 번역되는 단어(창 39:16; 삼상 5:2; 왕상
10:19)이지만 문맥상 19절의 '맞은편'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 아무튼 이 문구나
앞에 '자기집 맞은편 부분'이라는 문구는, 느헤미야가 성벽재건 사업의 추진과 관련
해서 공사 담당자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고려해주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라고 할
만하다. 한편, '아사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의 뜻이다.

24 그 다음은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하되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ㅇ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 - '빈누이'는 18절에 나오는 '헤나닷의 아
들 바왜'와 동일 인물이다(18절). 이 사람은 동쪽성벽의 남쪽 부분을 건축한 다음 여
기서 또 다른한 부분의 성벽 건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ㅇ아사랴의 집에서부터 - 이것은 '아사랴의 집 끝 모퉁이에서 부터'로 이해해야 한
다. 왜냐하면 아사람의 집 근처, 곧 아사랴의 집 맞은편 쪽은 아사랴 자신이 직접 성
벽 공사를 하였기 때문이다(23절).
ㅇ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 '성굽이'는 '성벽의 처음 꺽여진 부분'을
뜻한다(19절). 한편, '모퉁이'(피나)도 '굽이' 와 거의 같은 뜻으로서, 여기
서는 성의 꺾여진 부분이 원래의 방향대로 다시 꺾여진 부분을 가리킨다.

25 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어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

ㅇ우새의 아들 발랄 - '발랄'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의 의미로서 구약 성경 중
본절에만 나오는 이름이다. '우새'도 오직 여기에만 나오는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들
으셨다'의 뜻이다.
ㅇ왕의 윗 궁에서 내어민 망대 - 여기의 '윗'은 '높은'의 의미로서 '왕궁'을 수식한
다기보다는 '망대'를 수식한다고 봄이 더 무난하다(Rawlinson). 한편,'왕의 궁'에 대
해서는 (1) 솔로몬의 왕궁(Schultz), (2) 다윗의 왕궁(Rawlinson), (3) 포로로 끌려가
기 직전의 왕의 임시 대피소(Fensham) 등의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있다. 그러나 이
'왕궁'이 이미 언급된 남쪽의 '다윗 성'(15절)과 다른 이름으로 구별되어 나타나고 있
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1)과 (3)의 견해 중 (1)의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 그
리고 '내어민 망대'는 솔로몬의 왕궁 외곽을 경비하기 위하여 세워진 망대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ㅇ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 - 이것은 시(市)외곽을 감싸는 성벽의 일부가 아니라 솔
로몬 왕궁 외곽의 '내어민 망대'와 연결된 내성벽(內城壁)의 일부이다. 한편,'시위성'
은 영역본 흠정역의 번역대로 '감옥'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12:39; 롑 32:2).
ㅇ바로스의 아들 브다야 - '바로스'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이었
다(스 2:3). 따라서 여기의 '아들'은 '자손'으로 고쳐야 한다. 한편, '브다야'는 '여
호와께서 속량하셨다'의 뜻이다.

26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벧에 거하여 동편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어민
망대까지 미쳤느니라)

ㅇ때에(웨) - '그리고' 혹은 '그런데'의 뜻이다.
ㅇ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여 - '느디님 사람'에 대해서는 스 2:43 주석을 참조하
라.
ㅇ동편 수문과 마주 대한 곳 - '수문'은 기혼 샘 반대편에 위치한 듯하다. 그렇다면
이문은 동쪽 성벽의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채 못미치는 곳에 해당될 것
이다. 이 문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 공중 집회시 이용되었다(8:1). 한편, '마주 대한
곳'은 '동편 수문'과 '내어민 망대' 사이의 성벽 부분이다.

27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어민 큰 망대 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벧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

ㅇ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 - '드고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백의 협조나 지
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쪽 성벽의 한부분에 대한 공사를 담당했었다(5절).

28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ㅇ마문 위로부터 - '마문'은 동쪽 성벽에 있었던 한 문으로서(롑 31:40), 말(馬) 혹
은 말을 탄 사람들이 시내로 들어갈 때 이용됐었다. 아무튼 이 '마문'은 솔로몬의 옛
왕궁으로 연결되는 문이었던 것 같다. 한편, '위'는 마문 북쪽성벽을 가리킨다.
ㅇ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 - 이것은 이미 북쪽 성벽공사에
참여했던 '므레못'이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근처를 별도로 공사했었던 것과 유사한
경우이다(21절). 즉, 본절의 '제사장들'도 이미 '므레못'처럼 북쪽 성벽 공사에 참
여했었고(1절), 다시 또 다른 몫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29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ㅇ임멜의 아들 사독 - '임멜'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제사장 가족의 한 조상이
었다(스 2:37). 따라서 본절의 '아들'은 '자손'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또한 '임멜'은
다윗이 세운 제사장 조직 중 '열 여섯째'반차에 속한 사람이었다(대상 24:14).
ㅇ동문 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 - 여기의 '동문'은 외성벽과는 상관 없이, 성전
건물에 속했던 문이었던 것 갈다(겔 40:6, 10). 그 문은 스룹바벨 성전 재건 때에 복
구되지 못했다가 금번에 성벽의 한 부분으로서 복구된듯하다(Fensham). 이처럼 '동문'
이 성전 건물에 속했다는 사실은, '동문 지기'가 레위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된다. 혹자는 본절의'스마야'를 대상 3:22의 '스마야'로 보고, 그가 다윗의 후
손이라고 주장하지만 근거가 희박하다.

30 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ㅇ하나냐..한 부분을 중수 - '하나냐'는 8절에서 '향품 장사'로 묘사되는 '하나냐'와
동일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즉, 본절의 '한부분'은 '하나냐'가 다른 부분의 성벽 공사
도 담당했었음을 시사하며(11절), 이것은 곧 여기의 '하나냐'가 8절의 '하나냐'와 동
일 인물임을 입증한다.
ㅇ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 - '여섯째 아들'이라는 수식 문구는 '살랍'의 많은 아들
중에서 오직 말째에 가까왔을 한 아들인 '하눈' 만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었음을 강조
하려는 것인 듯하다.
ㅇ베레갸의 아들 므술람 - 4절의 '므술람'과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본절의
'므술람'도 두 곳의 성벽을 재건한 셈이다.
ㅇ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 - '침방'(니쉬카토)은 일반적인 의미
의 '방'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특별하게는 성전에 속한 여러 방들에 대해 적용되는 단
어이다(Fensham, 12:44; 13:7). 따라서 본절의 '자기 침방'은 '므술람'이 제사장이
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은 성전
과 가까운 성벽을 가리킨다.

31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고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누에 이르렀고

ㅇ금장색 말기야 - 본절의 '금장색'(초르피)은 8절의 '금장색'과는
달리 단수이다.
ㅇ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 - '함밉갓 문'(솨아르 하미
프카드)의 '하미프카드'는 삼하 24:9에서는 '인구 조사'의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본절의 '함밉갓 문'은 히브리 단어의 음역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차라리 의미적으로
번역해서 '소집문'(RSV, the Muster gate ; the Inspection gate)으로 옮겨질 수 있다
(Fensham, Williamson). 이는 백성들이 특별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 그 문 앞으로 소
집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의 위치는 '동편 수문'과 연결된 성
벽에서 북쪽으로 약 90m 지점이다. 따라서 이 '함밉갓문'의 '마주 대한 부분'은 동쪽
외성벽의 거의 북쪽 끝부분이 되는 셈이다.
ㅇ느디님 사람과 상고들의 집 - '느디님 사람의 집'은 그들이 성전 봉사를 하는 동안
에만 사용했던 거처로 받아들여야 한다(Fensham, Williamson). '느디님사람'의 집은
'오벨' 근처에 있었다(26절). 한편, '상고들'(라칼림)은 '돌아다니다'
의 뜻을 갖는 동사 '라칼'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활동 반경이 상당히 넓은
상인을 가리킨다. 아들은 먼 곳에서 물건을 구입해서 팔거나 혹은 자기의 고향 물건을
먼 곳까지 가져가서 팔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금장색'이나 '향품장사'처럼 동업 조
합(guild)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기의 '라칼림'이라는 복수명사는 이들
이 동업 조합을 구성하고 있었으리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ㅇ성 모퉁이 누(樓) - 성벽의 북동쪽 부분에 있었던 '다락방' 종류였던 것 같다. 마
치 망대와 같은 기능을 했을 것이다.

32 성 모퉁이 누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고들이 중수하였느니라

ㅇ성벽 공사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도 특수한 직업에 종사
했던 사람들의 열심을 강조하고 있다(8절).
ㅇ양문 - 제사장들에 의해 복구된 바 있다(1절).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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