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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에스라

[스크랩] 에스라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9:17

스 1-2       

▣ 일의 시작-에스라 1-5장-


이 장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역사에 있어서 핵심적인 네 가지 사건을 다룬다.


1. 그 땅으로 돌아옴(1-2장)


선포(1:1-4)-이 구절은 역대하 36장 22-23절과 거의 같다. 이사야 44장 28절-45장 3절에는 바사의 위대한 통치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고레스의 앞날에 대한 놀라운 예언이 기록되고 있다. 주전 539년에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하여 바사 제국을 세웠다. 전쟁 포로에 대한 그의 정책은 바벨론과는 정반대였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을 다시 건설하고, 자신의 복지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격려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레스는 다른 난민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특전을 주었으며 그들의 신들을 섬기도록 하였다. 그의 칙령은 주전 538년에 있었다. 이 법령을 다니엘 9장 25절에 나오는 법령과 혼동하지 말자. 그것은 성을 재건하는 것이었고 주전 445년의 것이다. 고레스의 칙령은 백성들이 그 땅으로 돌아온 것과, 성전을 재건하는 데 관련이 있다. 이 칙령은 놀랍게 성경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귀중한 것들(1:5-11)-하나님의 영은 백성들과 그들을 사로잡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었다. 성전 보물들은 유대인들에게 되돌려졌으며 이방인들도 성전을 위하여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서 기부금을 내었다(대하 36:7/단 1:2 참조). 8절과 11절에 나오는 세스바살은 스룹바벨 곧 임명된 총독이다. 유대인들은 지정된 비품이 없이는 성전 예배를 회복시킬 수가 없었다. 신약의 예배와는 얼마나 다른가(요 4:19-24).


백성(2장)-약 50,000명의 유대인들은 자기의 땅에 관심을 가지고 바벨론에서의 안전과 사치를 버려두고 돌아왔다. 느헤미야 7장 6-73절에 이와 똑같은 명단이 인용되어 있다. 이 등록부는 특별한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지도자들(1-2절), 몇몇 가족들(3-19절), 몇몇 성읍들(20-35절), 제사장들(36-39절), 레위인들(40-42절), 느디님 또는 성전의 수종자들(43-54절), 솔로몬의 신하들(55-58절), 족보가 없는 사람들(59-63절)로 구별되어 있다. 63절에 나오는 “딜사타“라는 단어는 “총독“을 의미하는데(느 8:9 참조), 여기서는 스룹바벨을 가리킨다. 64-70절에서 사람들과 동물들의 총계가 나온다. 이른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지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신약에 보면 이 남은 자들 중에는 열 두 지파가 모두 들어 있다고 분명히 밝힌다(행 26:7/약 1:1 참조). 에스라 2장 70절은 “모든 이스라엘“이라고 말한다. 에스라 6장 17절에서 우리는 제사장들이 열 두 지파를 위하여 열 두 숫염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을 본다(8:35 참조). 예수께서는 어느 날 열 두 지파를 심판하실 것이다(눅 22:30 참조).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정착했으며 그들의 약속된 땅으로 돌아갈 의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안정과 물질적인 소득에 만족하여 조상의 땅을 포기하였으며 바벨론에서의 유배 생활에 머물러 있었다."


스 3 

2. 성전 재건(3장)


제단의 건설(3:1-6)-제단은 유대 신앙의 중심이었고, 희생제물이 없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가 없었을 뿐더러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었다. 추방은 그들의 강한 이웃들을 두려워하게 하였으며,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게 했다. 우리는 엘리야가 제단을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을 회상할 것이다(왕상 18:30- 이하). 예수아와 스룹바벨은 백성들이 희생 제사를 드리도록 인도해 갔으며, 또한 절기들을 지키도록 이끌어 갔다. 그 때는 7월(우리 달력으로는 9월-10월)이었으며 나팔절과 장막절의 달이었다(민 29:1-6/레 23:23-25).


기초를 놓음(3:7-13)-백성들은 헌금을 한 것이 분명하며, 이에 첨부되어 왕으로부터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료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부금을 받았다(1:5-11). 535년 두번째 달(우리 달력으로는 4-5월)에 일이 시작되었다. 레위인들은 일의 진행을 맡아 다른 일군들을 보조하였다. 기초가 놓여졌을 때, 백성들은 너무도 감사하여 노래를 부르며 외쳤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행하셨다(렘 33:1-11). 물론 그들중에는 이전 성전의 찬란함을 기억하는 연로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두번째 성전의 빈약함을 보고 흐느껴 울 뿐이었다. 그러나 과거에서 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학 2:3 참조).


스 4 

3. 적의 방해(4장)


우리의 적 사단은 주님의 일이 번영되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세우시는 분이나, 사단은 파괴자이다. 우리는 이제 일을 반대하고 방해하려고 하는 원수의 손길을 본다.


타협(4:1-3)-그 땅의 백성은 유대인들이 일하는 것을 조력하겠다고 하였으나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그들의 도움을 거절하였다. 이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로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혼혈로 이루어진 반(半)민족이었다. 열왕기하 17장을 읽고 사마리아와 그들의 거짓 종교에 대하여 알아보자. 요한복음 4장 20-24절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종교를 분명히 거절하셨다. 결국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그들의 성전을 짓고 유대인들과 분리된 채 남아 있었다.


장애(4:4-5)-그 땅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저항하기 위하여 궁정에 사람들을 고용하였다. 이러한 간계는 성공하여, 일을 중단하게 하였다(4:24 참조). 그리하여 14년 동안(주전534-520) 성전 일이 중단되었다.

6-23절은 “부적당하게 보여“ 성경 연구자들에게 문제를 일으킨다. 6-7절에 언급된 왕들은 에스라 4장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보다 나중에 통치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설명이 가능하다. 즉, 왕들은 한 가지 이상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6-7절에 나오는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는 실제로 이 기간에 통치한 왕들의 이름일 것이다. 엉거 박사는 “아하수에로“는 “바로“와 같은 직책의 명칭이었고, 아닥사스다는 감비세의 또다른 이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귀절들이 유대인들의 공사를 중단시키려는 방해자들의 공식적 기록을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설명은 이 구절들이 반대에 부딪힌 예를 들기 위하여 나중에 있었던 일을 포함시켰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유대인들은 적들에게서 계속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 중 어떤 경우에 해당되든지, 거기서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세상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일은 방해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한다. 왕은 고발에 귀를 기울이고, 일을 멈추게 했다."


스 5 

4. 일이 재개됨(5장)


4장과 5장 사이에 5년이 흘렀다. 성전의 일은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기까지 다시 중단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을 시작했으며(스 1:1), 하나님의 말씀이 일군들을 격려하였고, 궁극적으로 일을 끝내게 했다(6:14). 520-515년에 성전이 완공되었다. 하나님의 종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일을 승리로 이끄는 비결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아와 스룹바벨을 격려했으며, 하나님의 눈은 그들을 향하여 있었다(스 5:5).

학개서에는 네 가지의 다른 멧세지가 기록되어 있다. 즉, 백성들이 자신의 집들은 지으면서도 하나님의 집을 소홀히 하는 것을 책망하는 것과(1:1-15)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스룹바벨에 대한 격려와(2:1-9) 자신을 정결케할 것을 거절하는 제사장들에 대한 정죄와(2:10-19), 메시야 왕께서 어느 날 영광 중에 통치하실 것을 스룹바벨에게 약속하는 것이다(2:20-23). 학개는 이 멧세지들의 날짜(9월 1일, 10월 21일, 12월 24일)까지 말하였다.

스가랴서는 더 보충되어 있으나, 이 책 역시 같은 시대를 다루고 있다. 스가랴1장 1-6절에서 선지자는 이 민족에게 회개할 것을 청하는데 이 때가 11월이었다. 그후 2월에 그는 백성들에게 몇 가지 격려의 예언을 들려 주었다(1:7-6:15). 이 책의 후반부에서(9-14장) 스가랴는 거절당하시는 그리스도, 영광중에 재림하시는 그리스도, 그리고 미래의 왕국을 묘사한다. 물론, 이 모든 멧세지는 백성이 일을 계속하여 성전을 완성하도록 격려하려는 의미가 있었다.


총독 닷드내는 건축 계획에 대하여 물어볼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자재들의 일부가 왕의 보고에서 공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통치자 다리오왕에게 보내는 에스라의 편지가 나오는데, 6장에는 왕으로부터의 답신이 나온다. 8절은 선지자들의 사역이 백성들을 휘저어 놓았음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일이 급진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16절의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총독에게 기록을 조사하여 왕의 칙령을 조사할 것을 제안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행 16:35-40/행 22:25 참조)."



스 6 

▣ 공사가 필역됨-에스라 6-10장-


1. 성전의 완성(6장)


다리오는 주전 522년에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사 대제국을 건설한 사람이다(이 사람은 다니엘 5, 6, 9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메대의 다리오가 아니다). 그는 자기의 속국들에 대해 관용적이었고 유대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였다. 6장 3-5절에는 에스라 1장 1절에서 언급된 고레스의 첫 칙령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나온다. 다리오는 이 첫 칙령에다 자신의 칙령을 첨부하여(6:12) “총독은 유대인들이 하는 일을 지원해야만 하며 반대가 없도록 해야 할 것과, 물자들이 왕의 보고에서 공급되어져야 함“을 알렸다. 물론 다리오는 친절히 해야 할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왕의 건강과 가족의 복지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총독은 서둘러 이 칙령을 준수하였다. 학개와 스가랴는 영적인 격려를 제공하였으며, 총독은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하였다. 이렇게 하여 일이 완성되었다. 유대인들은 기쁨으로 여호와의 전을 헌당하였다. 물론 이 건물은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크기나 영광은 지니지 못했다. 이들은 유월절을 지켰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왕의 마음을 바꾸셨고(잠 21:1 참조), 이 민족은 성전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 6장과 7장 사이에 58년의 기간이 있는데, 에스더서는 이 기간에 해당된다."


스 7-8       

2. 예루살렘에 온 에스라(7-8장)


7절에 나오는 아닥사스다는 465년에서 435년 사이에 바사를 통치한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이다. 즉위 7년에 그는 제사장이며 서기관인 에스라를 예루살렘에 돌아가도록 허락하여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돕도록 하였다. 1-5절에는 에스라의 족보가 나오는데 이는 그가 아론 집안 출신의 제사장임을 증명한다. 그는 율법에 대해 박식한 학자였으며 서기관이기도 했다(렘 8:8 참조). 에스라가 왕에게 허락을 요청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복구된 민족의 남은 자들에게는 영적인 인도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거의 1000마일의 여행을 하는 데에 4개월이 걸렸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그 위에 있었으며 그는 성공하였다(느 1:10/느 2:8/느 2:18 참조).

왕은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이 에스라와 함께 그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렸다. 이 유대인들은 또한 여호와의 일을 지원할 자의적이고 막대한 헌금을 바벨론에서 가져가야 했다. 다리오는 또한 약 십만 달러 쯤 되는 “경비“(20-22절)를 왕의 보고에서 가지고 가게 했다. 에스라의 임무는 그 땅에 질서와 종교적인 예배를 설립하는 것이었다(25-26절). 7장 27-28절에 나오는 에스라의 독백은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에 대하여 여호와께 얼마나 감사해 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8장은 예루살렘으로 오는 위험한 여행길에 그와 동반한 가족들과 사람들의 명단을 열거한 것이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레위인의 임무이기 때문에, 레위인의 함께 간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불행히도 에스라는 몇 명의 레위인을 징발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원해서 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5-20절). 에스라는 금식을 선포했는데 이는 하나님만이 그들의 여행을 성공시키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민족의 간증이 위험에 처해 있었다. 에스라는 하나님이 돌보아 주실 것이므로 군사 호위가 필요치 않다고 말하였다! 그들의 금식과 기도는 오늘날 우리들을 위하여 좋은 본보기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셨던 것이다(21-23절).

에스라는 24명의 경건한 자를 택해 보물을 옮기게 하고(24-30절)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하나님께서 계산하실 것임을 그들에게 경고하였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청지기에 대한 아름다운 상징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보물들을 맡기셨으며,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청지기 직분에 대한 계산을 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458년 4월에 출발하여 7월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하루 평균 7마일(약 10km)의 여행을 한 것이다. 백성들은 그들의 보물들을 분담하여 담당했으나 각자가 풍성스러웠음이 드러났다. 그들은 에스라의 경고를 마음에 두었던 것이다. “삼가 지키라“(깨어 지키라/8:29)!"


스 9 

3. 죄의 고백(9장)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어떤 교사라도 말씀 자체가 죄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보다 더 빨리 이 일을 해낼 수는 없다(히 4:12). 에스라는 유대인들이 이방인 이웃들과 섞여 살면서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것을 알게 되었다(신 7:1- /출 19:5-6/시 106:35 참조). 에스라는 이 보고를 듣고 너무도 마음에 부담이 되어 슬픔과 회개 가운데 공식석상에게 그의 옷을 찢었으며, 저녁 희생제사 시간이 될 때까지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은 이 어리석은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까 두려워하며 떨기 시작하였다(사 66:1-2 참조).

에스라의 고백 기도는 다니엘과 느헤미야의 기도와 비교된다(단 9장/ 느 9장). “내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라고 에스라는 기도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과거의 죄를 돌아다 보며(7절) 그 민족이 유배를 당함이 마땅했음을 시인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구원하셨고 그의 은혜로써 회복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다시금 죄를 범하고 있다. 말하자면, 왕국의 미래는 천막 못에 걸린 옷과 같은 것이었고, 이스라엘의 회복된 그루터기 역시 이처럼 연약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방어할 수 있는 성벽을 주셨고(9절), 은혜스럽게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에스라가 더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들을 벌하셨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으니까요!“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가 하나같이 민족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간구한 것을 주목하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역대하 7장 14절이 여기에 적용된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이 기도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민족 전체가 그 죄들에 직면하여 여호와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했다."


스 10 

4. 민족의 정화(10장)


예루살렘에 있었던 종교의 부흥운동에 대한 기사는 느헤미야 8-13장에도 나와 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에스라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남자들 중에 더러는 공개적으로 그를 찾아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함으로 여호와의 율법에 불순종한 것을 고백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세워 부정한 아내들을 내버리기도 하였다. 만일 모든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케 하여 죄를 고백하고,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참으로 큰 부흥을 이를 것이다.

그 결과로, 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든 백성을 불러 모으도록 은 땅에 포고를 내리게 되었다. 죄가 있으면서 오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그 땅에서 자기의 위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 때는 주전 457년 12월 20일이었으며, 많은 민중이 그 계절에 내리기 마련인 많은 비에도 불구하고 모여 들었다. 백성들은 비로 인하여 몸을 떨었을 뿐아니라 여호와를 두려워하기 때문에도 떨었다.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최후의 통첩을 내렸다. “죄를 고백하라. 그리고 이방인 아내들을 버리라.“ 이것은 회개와 배상이었으며, 이 두 가지는 병행하는 일이었다. 백성들은 순종하기로 뜻을 모았으나, 그 문제를 하루에 해결하기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시인하였다. 백성들은 지도자들이 그들의 가정을 바로잡고(14절) 바른 일을 행하며, 죄에 대해 민족을 정화하는 일에 에스라를 지원하도록 제안하였다. 15절은 네 사람만이 이러한 제안에 “반대하고 나섰으며“ 남은 지도자들은 이 제안을 받아 들였다. 우리는 언제나 100퍼센트의 협력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특히 징계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민족을 정화하는 일은 12월부터 4월까지 계속되었다. 18-44절은 17명의 제사장과 10명의 레위인, 87명의 다른 사람에게서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한 죄가 발견되었음을 시사한다. 제사장들이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영적인 지도자들이 타락할 때, 일반인들에게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 이러한 조사가 너무도 철저하였기 때문에 이방인 어린이들은 드러나는 대로 추방되었다. 물론 유대인 남편들과 아버지들은 추방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하여 대책을 마련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더이상 남편과 아버지로서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개혁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가 ? 25년 후에 느헤미야는 똑같은 문제에 부딪혔다(느 13:23- 이하). 이것은 반복된 죄였으며 반복된 징계가 요구되었다. 하나님의 일이 번영하려면 하나님의 종들은 “깨어 기도해야“ 한다.

백성들을 개혁하지 않은 채 성전을 다시 건축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에스라가 죄악된 민족을 하나님께로 되돌리기보다는 차라리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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