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사사기

[스크랩] 사사기 (18 : 1~31)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32
사사기 18장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 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ㅇ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 혹자는 본절의 의미를 레위인 소년이 미가의 아
들(5절)과 같은 종류의 비정상적인 제사장이 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
다. 그러나 정작 본절의 의미는 레위 소년이 미가의 아들처럼 호의적인 대접을 받고
그의 집에서 편히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자기 온 가족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ㅇ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 이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미가가 레위인의 손
을 채웠다'라는 뜻이 된다. 이로 보아 아마 미가는 출 29:24에 나오는 것과 같은 제사
장의 임명에 따른 성별 의식을 이 레위 소년에게 행한것으로 생각된다(Lange). 그러나
제사장의 성결 의식만을 흉내낸 이러한 임명식은 완전히 율법에서 어긋난 것이다. 5절
주석 참조. 여기서도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율법에 무지했던가를 발
견하게 된다.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ㅇ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 이러한 미가의 말에서 이스라엘 백성
들이 당시 하나님을 가나안의 우상과 동일 선상에서 미신적인 대상으로 섬겼음을 분명
히 알수 있다. 미가는 파행적인 방법으로 세운 레위인을 합법적인 제사장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12절과 같이 행한 제사장 임명식을 정당하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비
록 아론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규례가 있다 할지라도(출 28:1 ; 민 17
장) 미가는 레위인이면 모두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레위인을
통하여 미가는 이제 어머니로부터 받은 저주(2절)가 자기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며 여
호와께서 자기 가정을 번영케 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즉 미가에게 있어서 여호
와는 드라빔과 같은 일개 가정의 수호신에 불과하였다(Goslinga). 이처럼 당시 이스라
엘 사회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우상 숭배로 인한 혼합주의에 의하여 크게 왜곡
되어 있었다.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하라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ㅇ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 단 사람들과 달리 이 레위 소년은 '여
호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간접적이나마 단 사람들에게
자신이 여호와께 신탁을 구할 자격이 있는 합법적인 제사장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그 길이 여호와 앞에 있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그 길을 주장하
고 계시니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라는 뜻이다(Matthew Henry). 공동 번역은 이를 '그
들이 가는 길이 환히 트이도록 야훼께서 보살펴 주실 것이라'로 번역하고 있다.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 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ㅇ라이스에 이르러 - 라이스(Laish) 또는 레센(Leshen, 수 19:47)이라고도 하는 이곳
은 오늘날의 '텔 엘 카디'(Tell el Qadi)에 해당된다. 팔레스틴 최북단에 위치한 이곳
은 헬몬 산에 가려 아람과 단절되어 있고, 레바논 지역에 의해서 페니키아와도 단절되
어 있어서 외침을 받을 염려가 거의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 그리고 요단 강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인하여 용수 또한 충분했기 때문에 힘이 약한 단 지파의 정착
지로서는 안성마춤이었다. 더욱이 원주민들은 이러한 천연적인 조건에 타성이 젖어 외
침에 대해 무방비 상태일 뿐만 아니라 군사력도 빈약했으므로 단 지파가 정복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ㅇ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 여기서 '한가하다'에 해당하는 '쉐케트'는 '풍
족한 가운데 여유를 즐기는 상태'를 의미한다. 공동 번역은 이를 '아쉬운 것  없이'로
번역하고 있다. 실제로 시돈인들은 동서 교역의 중개지로서 또한 상아 제품 제조 산업
따위로 많은 부를 벌어 들여 풍족한 경제 생활을 구가하였다. 따라서 라이스 거민
들이 이러한 시돈 사람 같은 경제 생활을 누렸다함은 그들이 상당히 여유 있는 생활을
즐겼음을 의미한다(Goslinga, Pulpit Commentary).
ㅇ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 여기서 라이스 사람이 한가하고 평안했던 이유 중의 하나
로 권세 잡은 자가 없음을 들고 있다. 당시 고대 근동 지역의 왕들은 대체로 세습에
의한 독재자들이었고 이들은 외침을 막고 부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이유로 많은 세금을
징수하고 사람들을 징용에 끌어 넣었다. 그러나 라이스는 천연적인 요새에 가까
웠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던 것이다.
ㅇ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 당시 라이스는 시돈의 통치하에 있었다. 그러나 시돈은
레바논 산맥의 장애로 인해 라이스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고 또한 정치
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세를 누렸으므로 굳이 라이스에까지 간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따라서 라이스는 천연 방벽을 의지하여 사실상 독립된 생활을 누리고는 있
었으나 자체 내의 방어 체제를 구비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뒤에가서 단 자손의 침입
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28절).

8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와서 그 형제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 보기에 어떠하더뇨

9 가로되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ㅇ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매우 좋더라 - 본절에서는 단지파가라이스를
공격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 동기는 여호수아와 갈렙
이 제시한 가나안 정벌의 신앙적 동기(민 14:6-9)와 비교해 볼 때 완전히 대조적인 것
이었다. 그들은 일단 외형적으로 보기에 좋기 때문에 그 땅을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했
다. 이와 같이 신앙이 없는 자들은 안목의 정욕을 따라 자신의 행동 방향을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10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ㅇ평안한 백성 - 이에 해당하는 '암보테하'는 '방심한 백성'이란 뜻이
다. 이는 라이스 거민들이 물질적 풍요와 천연적 방어벽을 과신하여 안이한 심경에 젖
어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ㅇ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 일반적인 성전()의  구호에서는하나님의
명칭을 '여호와'(1:2;2:13;수 2:24;6:2;10:8;삼상 7:8)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
서 단 사람들은 '엘로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 레
위 소년에게 신탁을 구한 것과 관계 있을 것이다. 5절 주석 참조. 따라서 본절에 기록
된 성전 구호는 단순히 형식만 따랐을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본래의 성전 구호와 비
길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 지파의 전쟁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
들의 정욕을 쫓아 행하는 전쟁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기업으로 받은 당을
저버리고(11절) 심지어 우상 숭배에 깊이 젖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30, 31절) 마치
하나님의 성전()을 수행하고 있는 양 행동하였던 것이다. 한편 '오직 하나님의 영
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 !)라는 표어는 모든 성도들에게 영원히 적용되어야 마
땅하다(고전 10:31). 그러나 현실의 복잡 다양한 제반 상황들에 적응하다 보면 그러한
표어가 한갖 공허한 추상적 원리로 머물 때도 있으며 심지어는 그와 전혀 상반되는 일
을 하면서도 그 표어대로 살고 있는 양 착각하는 경우마저 있다. 그러므로성도들은
늘 스스로를 돌아보아 그러한 표어가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존재 근
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함께 하사 모
든 대적들을 성도의 손에 붙이게 될 것이다(고후 10:4).

11 단 지파 가족 중 육백명이 병기를 띠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ㅇ단 지파 가족 중 - 여기서 '지파'와 '가족'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 지파에는 오직 한 가족, 즉 '수함 가족'(민 26:42)만 있었기 때문이다. 13:2  주석
참조.
ㅇ육백 명이 병기를 띠고 여기서 600명은 병기를 가지고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장정들
을 가리킨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내와 어린 자녀들로서 이들 앞에 가도록 되어 있었다
(21절). 따라서 현재 라이스 정복 길에 나선 단 지파의 총 인원은 어림잡아 이, 삼천
명 정도였던 것 같다(Hervey). 이와 같이 단 지파의 인구 수가 과거 장정만 6만 여 명
가량(민 1:39;26:43)에서 이토록 현저히 줄어든 것은 아마 그동안 아모리 족속과 블레
셋 족속들의 압박에 의해 인원이 크게 축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이는 아직
소라나 에스다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수는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
다. 그러나 아무리 인구 수가 급격히 즐어들었다고 해도 그 차이가 심한 것으로 보아
이 두 견해 중 후자가 보다 더 타당성 있는 견해라 하겠다(Matthew Henry).

12 올라가서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치니 이러므로 그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이며
그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ㅇ유다 기럇여아림에 진치니 - 단 지파가 라이스를 향하여 북쪽으로 길을 떠난 뒤 처
음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머문 곳은 예루살렘에서 몇 시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이었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가는 도로상에서
약 14.4km 떨어진 지점이다. 일찍이 이곳 기럇여아림은 교활한 간계로 여호수아와 동
맹을 맺어 멸망을 피했던 기브온족의 네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수 9:17). 이 지역
은 단 지파에 의해 '마하네단'(Mahaneh-dan), 즉 '단의 장막'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
는데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유다 지경 내에 위치한 이곳은 삼손이 처음 여호와의 신께
감동되었던 곳이기도 하다(13:25). 한편 혹자는 본절과 관련 단 지파가 이곳에서 상당
기간 정착했다고 주장한다(Keil). 그러나 본절 이후의 사건은 본절과 분리된 것이 아
니라 연속된 사건인 점에 비추어 볼 때 단 지파는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내
라이스 정복길에 나선 것으로 보아야 한다.

13 무리가 거기서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ㅇ거기서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 기럇여아림에서 미가의 집이
있는 에브라임까지는 약 20km 정도의 거리이다. 이는 곧 걸어서 5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14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이 있는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ㅇ이 집에 - 이에 해당하는 '바바팀'은 복수형이다. 그래서 KJV, NIV,
RSV 등은 이를 '이 집들에'(in these houses)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미가의 집이
여러 건물들로 구성된 집이었음을 시사해 준다(Goslinga).
ㅇ에봇과...부어 만든 신상 - 미가가 개인적으로 소유하던 각종 우상들이다. 이에 대
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7:3, 5 주석을 참조하라.

15 다섯 사람이 그 편으로 향하여 소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문안하고

ㅇ소년 레위 사람의 집...이르러 - 미가의 집 중에서도 레위 소년이 머물고 있던 집
은 따로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그곳은 아마 미가의 신당일 것이다(17:5). 본절을
통해서 보더라도 미가의 집은 많은 건물들로 상당히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ㅇ문안하고 - 단 지파의 다섯 정탐꾼들은 이전에 레위 소년을  만났었기 때문에(3-6
절) 그의 건강을 묻는 등 우호적인 표를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리를 이루어 들이닥
친 자신들 때문에(16, 17절) 레위 소년이 놀라지 않도록 안심시켰을 것이다.

16 단 자손 육백명은 병기를 띠고 문 입구에 서니라

ㅇ문 입구에 서니라 - 본절에서 18절까지는 도적떼의 모습을 생생하게 연상시켜 준
다. 문 입구에 선 무장한 600명의 단 사람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그들의 동료들
이 일을 마치고 미가의 집을 나올 때까지 파수하고 있었다. 한편 이로 볼 때 미가는
어느 정도 군사력이 있는 소부족의 부족장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22절에서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단 지파의 뒤를 좇았던 것도 어느 정도 이를 뒷받
침해 준다.

17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할 때에 제사장은 병기를 띤 육백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ㅇ그리로 들어가서 - 다섯 사람의 정탐꾼들은 레위 소년을 잘 설득하여 동료들이 있
는 문 밖으로 내보내어 함께 있게 하고 신당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1절). 한편 여기
서 '들어가서'에 해당되는 원어는 '알라'로서 '올라가다'라는 뜻이다. 왕하
23:12이나 렘 19:13을 보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제단이 있었다는 표현이 있는데
미가의 신당도 다락방이나 2층 건물에 있었음이 분명하다(Keil, Hervey).
ㅇ문 입구에 섰더니 - 여기서 '섰더니'에 해당하는 원어 '나차브'는 '배치하
다'라는 뜻도 지닌다. 이로 보아 단 자손들은 미가의 우상을 강탈하기 위해 600명의
군사로 삼엄한 경계를 폈음이 분명하다.

18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하여 내매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ㅇ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 단 사람이 신당으로 들어갈 때까
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레위 소년이 자기 주인의 우상들을 다 집어내는 것을 보고서
야 이제 놀라서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아마 이전까지는 단 사람들이 미가
의 신을 경배하려고 신당에 들어간 줄로 그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혹자는 이에
대해 이 레위 소년은 돈으로 고용된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미가의 신상에 함부로 손 댄
것을 불경하게 여기지 않고 단지 도의적으로 주인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탓했을 뿐이
라고 주장하기도 한다(Cassel).

19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ㅇ네 손을 입에 대라 - '잠잠하다'는 말의 반복으로 '아무말도 하지 말라'(Don't say
a word, NIV)는 뜻이다.
ㅇ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 본서 기자는 단 사람들의 이러한 제안을 적기 이전
에 벌써 17절과 18절에서 레위 소년을 '제사장'이라고 적고 있다. 이것은 단 사람들이
레위 소년을 문안할 때부터(15절) 이미 그를 '제사장'으로 깍듯이 예우하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아비'에 대해서는 17:10 주석을 참조하라. 이는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자를 높여 부르는 존칭어이다.

20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ㅇ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 여기서 레위 제사장의 타락한 본성을 또다시 보게 된
다. 처음에 그는 생계를 잇기조차 궁색한 때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던 미가의
제안에 감격하여 한 개인의 제사장으로도 크게 만족했었다. 그리고 이 레위 소년은 미
가에게서 아들과 같은 사랑도 받았었다(17:10, 11). 그러나, 단 사람들의 새로운 제안
은 단순히 경제적인 충족 뿐만 아니라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명예까지 부여하겠다
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제안을 기쁘게 수락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번 물질에
혹했던 사람은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게 되고 그러한 자기 욕구를 채워 줄 대상이 나
타나면 언제든지 이전의 은인까지도 배반하는 법이다.
ㅇ에봇과 드라빔과 생긴 우상을 취하고 - 이처럼 보다 나은 조건에 미혹된제사장은
본래 주인과의 의리와 계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기가 앞장서서 우상과 종교 기물들
을 훔쳐 낸다. 그리고 단 지파와 동행한다. 이렇게 하여 미가의 가정을 타락시켰던 이
제사장은 이제 한 지파 전체를 잘못된 우상 숭배의 길로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30,
31절).

21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더니

ㅇ그들이 돌이켜서...진행하더니 - 단 지파는 다시 라이스 땅을 향하여 출발했다. 그
들은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였는데 그것은 아마 미가와 그의
이웃들이 뒤에서 따라와 공격하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한 조치였을 것이다(22절).
ㅇ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 - 여기서 '어린아이들'에 해당되는 '하타프'는
실족할 수 있는 '연약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어린아이들 뿐만 아니라 여자와 노
인들 그리고 보호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다. 다음으로'물품'에
해당되는 '케부다'는 시 45:13에서와 같이 '값진 것' 또는 '영화로운 것'
을 의미한다. 그런데 KJV에서는 이것을 '탈 것'(carriage)으로 번역하고 있고, RSV에
서는 한글 개역 성경과 마찬가지로 '물품'(goods)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혹자는
'케부다'라는 단어가 '무거운', '힘든'이라는 뜻의 '카베드'에서 파생된 것이
기 때문에 귀중한 물건을 가리키기 보다는 무거운 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
다(Cassel). 어쨌든, 이 물품들은 수레 같은 운반 수단에 의해 옮겨지고 있었을 것이
다.

22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ㅇ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 미가는 제사장과 자기 신상이 없어진 것을 한참
후에 알고는 곧장 추격대를 조직하여 단 자손을 따라갔다. 배경은 다르지만 이 장면은
마치 라반이 야곱을 추적하는 장면(창 31장)과 유사하다. 특히 둘 다 가정의 수호신을
훔쳐갔다는 점(창 31:19)어서 그러하다. 아무튼 미가는 추적길에 나선 지 얼마 안 되
어 단 사람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단 사람들이 어린아이들과 짐승들과 물품
들로 인해(21절) 빨리 진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3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낯을 돌이켜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

ㅇ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 - 여기서 '모아가지고'에 해당하는 원어
는 '도움을 호소하다'라는 뜻의 동사 '자아크'의 수동태로서 '함께 부름을 받
다' 또는 '함께 모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절에서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
지고 왔느냐'라는 단 사람들의 질문의 뜻은 '우리가 너희를 부르지도 않았고 너희 도
움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데 모여왔느냐'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이것은 미가
가 자신들의 뒤를 추격해 온 이유를 잘 알면서도 단 사람들이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떼
고 있음을 보여 준다.

24 미가가 가로되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 하느냐

ㅇ나의 지은 신들 - 이처럼 미가는 은으로 만든 신상과 에봇, 가정의 수호인이 드라
빔(17:4, 5)들을 가리켜 스스럼없이 '나의 신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참된 신이
신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치 못한 영적 무지의 발로로 볼 수 있다. 7:2,
3 주석 참조.

25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ㅇ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 여기서 '노한 자들'이란 새끼를 빼앗긴 곰처럼 금방이
라도 공격해 올 것 같은 사람들을 가리킨다(삼하 17:8). 단 지파 사람들은 힘의 우위
를 내세워 자신들이 미가의 소유물 뿐만 아니라 미가와 추격대 전원의 생명까지도 빼
앗을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ㅇ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 본래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이 없이 단지
자기 손으로 만든 신상을 소유하는 것에서 복을 받으리라고 기대했던 미가(17:13)였기
때문에 이처럼 그는 자기보다 강한 자와 대적하면서까지 신상을 되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사실 현세적인 복에 몰두했던 미가로서는 자신의 목숨에 대해 남다른 애착
심을 가졌을 것이다.

27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ㅇ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 본서 기자는 라이스 거주민들에 대해서 거듭 이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7절 주석 참조. 아마도 이것은 본서 기자가 그러한 라이
스 거민들을 습격한 단 지파의 잔인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인 듯해 보인다
(Hervey). 한편 '...을 만나'에 해당되는 '보 알'은 어떤 사람을 갑자
기 덮치는 것을 가리킨다(창 34:25).
ㅇ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 이것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수행하던 성전의 전형적인 표현이다(수 6:4;8:19;11:11). 단 지파는 처음 라
이스를 향하여 출발할 때부터 이 전쟁을 '성전'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바(10절)
라이스를 정복할 때도 철저히 그러한 의식으로 수행한 듯하다. 한편 이에 대하여 수
19:47에서는 '영토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본서 기자는 여
기서 어느 정도 부정적으로 적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라이스 당은 본래 단 지
파의 영토가 아니므로 그들이 그렇게 잔인하게 정복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발견할 수
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자신의 본래 기업을 차지하지도 못한 채 약한 민족을
공격하는 침략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당시 단 지파의 타락상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28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ㅇ본절에서 본서 기자는 다시 라이스의 지형적 여건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라이스에 대한 단의 뜻 아니한 침략이 부당함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ㅇ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 '베드 르홉'(Beth-rehob)이란 지명의 뜻은 '르
홉의 집'이다. 민 13:21과 삼하 10:6에 따르면 이 지명은 소바 왕 하닷에셀의 아비 르
홉의 이름에서 따온 것임을 알 수 있다.이곳은아셀 지파의 지경인 훌레
(Huleh) 평지 윗쪽에 위치한 곳으로 이 골짜기를 통하여 흐르는 물은 요단 강에 이르
게 된다.
ㅇ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 여기서 '상종하다'에 해당하는 '다바르'는 '친밀
히 교제하다'는 뜻 외에도 '사업상 교류하다'는 뜻이 있다. 이로 보아 라이스 거민들
은 지형상 외부와 격리되어 있어 국가간의 외교적 친선 도모나 경제적 교류 따위를 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29 이스라엘의 소생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더라

ㅇ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 이곳 라이스는 가나안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7절
주석 참조. 그래서 이곳을 단이라고 칭한 이후 부터는 이스라엘의 전영토의 경계를 말
할 때에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란 말을 쓰게 되었다(20:1). 여기서 '브엘세
바'는 팔레스틴 최남단에 위치한 유다 지파의 기업이다(수 15:28). 한편 이때부터 실
제로 단 지파는 단 지역의 사람과 소라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로 분리되게 된 듯하다.
11절 주석 참조. 아무튼 이후로 성경에선 이들 지파에 대한 기록을찾아보기 힘든데
역대기에도 단 지파에 속한 인물에 대해서는 한 명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Cassel). 그
리고 요한계시록에도 열 두 지파 가운데 단 지파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7장).
결국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하고 이분()되었던 단 지
파는 영적인 이스라엘의 족보에서조차 사라진 셈이다. 대개의 학자들은 그 원인을 단
지파의 거족적인 우상 숭배 탓으로 이해하고들 있다.

30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ㅇ본절에서는 단이 라이스에 정착한 이후 독자적으로 행한 우상 숭배에 대해  기록하
고 있다.
ㅇ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 - 여기서 '요나단'은 본래 미가의 집 제사장이
었으나 후에 단 지파의 제의를 받고서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 '레위 소년'(14-20절)이
라는 데에는 학자들간에 이견이 없다(Wycliffe, Keil & Delitzsch). 그런데 그 외에는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본문에는 모세라는 이름을 '므낫세'로 읽도
록 모세라는 히브리어 문자 사이에 작은 문자 '눈'을 삽입하여 므나쉐
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KJV에서는 본절을 '므낫세의 손자'(the
son of Manasseh)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탈무드나 70인역(LXX), 수리아역 등을 볼
때 이것은 분명히 '모세의 아들'(the son of Moses)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
다(Keil). 한편 히브리어 성경 필경사들이 이와 같이 '모세'를 '므낫세'로 읽도록
'눈'을 첨가한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1) 모세의 이름을
신성시하던 히브리인들이 '모세'란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명기함으로써 불경죄에 빠지
지 않기 위해서이다(Wycliffe). (2) 단 지파를 우상 숭배죄로 몰고 간 요나단을 모세
와 같은 레위 지파 출신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ㅇ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 본절의 의미에 대하여 학자들간에는 상
당한 이견()이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바벨론 포로 유수나 디글랏  빌레
셀에 의한 앗수르 포로 유수로 생각한다(왕하 15:29;17:6;25:8). 그러나 유대인 학자
데이빗 킴치(David Kimchi)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엘리 시대 때 블레셋이 법
궤를 탈취해 갈 때(삼상 4:17)로 생각한다(Keil, Hervey, Lange). 그러한 주장은 다음
과 같은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일리가 있다. (1) 31절에 '하나님의 집이 실로
에 있을 동안에'라는 언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로의 회막은 여호수아  때에 세워진
것으로(수 18:1) 사무엘 때까지 그곳에 있었고(삼상 1, 3장;4:3) 사울 때에는 놉에(삼
상 21장), 그리고 다윗 때에는 기브온에 있었다(대상 16:39;21:29). (2) 미가의 새긴
우상이 앗수르의 침략 때까지 계속 해서 그곳에 있었다면 분열 왕국 시대에여로보암
이 그곳에 다시 금송아지를 세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이 단에 금송아
지를 세운 것은 어디까지나 미가의 전통을 따라 행한 것이다(Keil). 17:3 주석 참조.
(3) 이스라엘의 기강이 바로 잡힌 사무엘, 다윗, 솔로몬 시대에까지 한 지파 전체가
그러한 우상 숭배를 계속하도록 용납되었다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자손
이 '사로잡힌 날'이란 블레셋의 침략으로 인해 법궤가 빼앗기고 이스라엘이 내외적으
로 연약해졌을 때를 가리킴에 분명하다.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ㅇ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 이러한 본절의 기록은 본서가 사무엘 시대 이
후에 기록되었음을 암시해 준다(Goslinga). 왜냐하면 회막이 엘리 시대까지는 실로에
있었으나 블레셋에 의해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긴 이후부터(삼상 4:21, 22) 실로에 없
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사무엘에 의해 실로의 회막이 라마로 옮겨졌을 것이라 보고 있
으나(삼상 7:17) 확실치는 않다(Hervey).
ㅇ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는 성막이 보관
되어 있던 실로였다. 따라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정한 절기 때에나 기타 개인적으
로 종교적 의무를 이행할 필요가 있을 때에 실로에 모였다(삼상 3:21). 이러한 관습은
철저히 하나님과의 언약에 기초한 것으로서, 모든 지파가 하나님의 동일한 언약 공동
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솔로몬 왕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될 때까지
실로는 바로 이러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심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단 자손이 단
에 신상을 세우고 섬긴 것은 언약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매우 가증한 죄악이었다(수
22:16).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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