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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사사기

[스크랩] 사사기 (15 : 1~20)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31
사사기 15장


1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가로되
내가 침실에 들어가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장인이 들어 오지 못하게 하고

ㅇ얼마 후 밀 거둘 때에 - 팔레스틴 지방의 밀 추수는 대개 양력 5월 경에 있지만 지
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추수 시기는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되
는데  보리는 유월절(양력3, 4월)에, 밀은 오순절(양력 5,6월)에, 그리고 무화과나,포
도, 올리브 등은 장막절(양력 9, 10월)에 거두어 들인다(성경 총론, '성경총론, '성경
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그러므로 삼손이 다시 그의 아내와 동거하기위해 아
비 집 소라 땅(13:2 ; 14:19)에서 딤나(14;1, 5)로 돌아온 시기는 5월에서 6월 초순경
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Cundall).
ㅇ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 아내에게로 찾아가서 - 염소는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귀한
재산이었다. 13:15주석 참조. 때문에 이는 화해의 예물이나, 약조물 또는  처
가에 찾아갈 때의 선물등으로 곧잘 이용되었다(창 38:17, 20, 23). 본절에서도 삼손이
그의 아내와 화해하고 다시 동거하기 위해 귀한 선물인 염소를 가지고 처가를 방문한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이로 볼때 삼손의 결혼은 사디카(Sadiqa) 결혼이었던 것 같다.
사디카 결혼이란 우리 나라의 데릴 사위제도와 비슷한 것으로, 고대 근동에서 유행되
었던 가모장적 혼인의 한 형태이다. 이 혼인에는 (1) 결혼 후 신랑이  신부
집에 게속적으로 거주하는 비나(beana)혼과 (2) 신랑이 신부 집에 정기적으로 찾아가
는 모타(Mota)등 두 종류가 있다(R. de Vaux).
ㅇ내가...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 이로 보아 삼손은 아내에 대한 연모의 정으로 과거
그녀와 동족들이 저지른 잘못(14:15-18)을 용서하고 아내와 더불어 새로운 삶을 살려
한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계획과 호의는 곧 그의 장인에 의해 산산이 부
숴지고 만다(2절).

2 가로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로 내가 생각한고로 그를 네 동무에게 주었노라
그 동생이 그보다 더욱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의 대신에 이를 취하라

ㅇ본절에서는 삼손의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 동생을
아내로 취할 것을 권고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장인의 행동은 삼손의 급한
성격때문에 임시 조치로 급하게 제시된 방안이거나, 아니면 삼손으로부터 다시 혼수감
을 받기 위한 그의 탐욕에 기인한 잔꾀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삼손의 마음
은 블레셋 족속 전체에 대한 증오심으로 재차 불타게 된 것이다.
ㅇ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로 내가 생각한 고로 - 만일 삼손의 장인이 삼손과 그의 딸
이 하나님앞에서 엄숙히 맺어진 사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러한 변명은 도저히 하지 못했
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삼손으로부터 병폐를 받고서 그의딸을 내주었을텐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렸으니(14:20) 그 저의가
어디에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있다. 1:1-20 강해, '병폐와 빙물' 참조.
ㅇ그 동생이...너는 그의 대신에 이를 취하라 - 얼핏 생각하면 삼손 장인의 이같은
제의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삼손의 권리를 인정한 데서 나온 제의로 오해될 수 있
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 라반이 레아를 라헬인 양 꾸며 야곱을 속이고 그에
게서 노동력을 착취한 것과 같은 행위이다(창 29:15-30). 즉 이같은 제의는 다름 아닌
삼손의 장인이 삼손에게 또 다른 병폐를 기대하고서 제시한, 탐욕적 저의가 깔린 제안
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삼손은 그러한 장인의 간악한 면모를 한 눈에 간파하고서 일언
지하에 그의 제의를 거절했던 것이다(Pulpit COmmentay).

3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을 해할찌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ㅇ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을 해할지라도 - 삼손은 장인의 간악한 처사(2절)가 이스
라엘 백성에 대한 블레셋 사람의 일반적인 태도로 간주하고 장인의가족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전 블레셋인들에게 복수할 결심을 굳히게 된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의 백
성인 이스라엘을 모독한 족속들에게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앞에서도 정당하다고 생각
했다(민 32:22).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식으로 삼손을 사용하시며, 이스
라엘을 구원하시기 시작하셨는가(13:5)를 발견하게 된다.

4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을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취하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ㅇ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을 붙들어서 - 여기서 '여우'로 번역된 '슈알'
은  '승냥이'(jackal)를 가리키고 있음이 틀림없다(Wycliffe, Hervey, Keill &
Delitzsch). 왜냐하면 여우는 보통 군거하지 않고 단독으로 다니며, 곤충, 과
일,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는 반면 승냥이는 무리를 지어 다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독 생활을 하는 여우를 300마리나 잡는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삼손이 잡은 300마리 짐승은 승냥이임에 분명하다.
ㅇ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 여기서 '홰'란 흡수력이 강한 나무 막대기에
기름을 듬뿍 묻혀서 불에 잘 타게끔 만들어 놓은 막대를 가리킨다. 그런데 전체 여우
수가 300마리였으니 여우 2마리씩을 연결한 후 한 개의 채를 꽂았다 해도 최소한 150
개의 채가 필요했었음을 알 수  있다.

5 홰에 불을 켜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사른지라

ㅇ곡식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사른지라 - 고래로 수많은 사람
들이 이 사건의 역사성()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 왔다. 그러나 본 사건은 상식적
인 견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즉 약 150개의 홰에 불이 붙자 300
마리의 여우들은 뜨거움에 놀라서 내닫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우들이 지나
가는 곳마다 온통 불바다를 이루자 여우들은 아직 불이 붙지 않은 곳만을 찾아내 숨어
들려고 했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곡식 밭은 순식간에 전소()하게 되었을 것이다
(Matthew Henry). 이와같이 곡식단을 불사르는 방법은 고대 농경 사회에는 흔히 있던
보복 방법이었는데, 이러한 보복 행위는 그 지역의 한 해 경제를 송두리째파괴하는
것으로 매우 치명적이다.
ㅇ감람원 - 이에 해당하는 '케렘 자이트'는 '포도원과 감람원'으로
도 번역될 수 있다. 이같은 번역을 취하는 성경으로는 70인역(LXX), KJV, NIV, 공동번
역등이 있다. 한편 이는 당시 딤나 지방에 포도원이 많았던 점(14:5)에 비추어 볼 때
그리 무리한 번역은 아니다.

6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혹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취하여 그 동무 되었던 자에게 준 연고니라 블레셋
사람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비를 불사르니라

ㅇ블레셋 사람 - 딤나 주민은 물론 그밖의 다른 지역에 거하던 블레셋인들을 모두
포함하는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딤나 주민들만이 삼손을 응징하려 들었다면 그
들이 삼손의 장인을 가리켜 굳이 '딤나 사람'이라고 표현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라든가 아니면 '우리 지역에 사는 사람' 등으로 표현하였을 것이기 때문이
다.
ㅇ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 삼손의 보복 행위로 말미암아 한 해 수확물을 몽땅 소
실당한 블레셋인들은 극도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블레셋 사람들
이 정작 삼손을 잡아 처벌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신 그의 처가 식구들
을 처벌하는 것이 쉬웠으므로, 이에 그들은 삼손의 장인과 그의 아내를 잡아 불로 태
워 죽였던 것이다.
ㅇ그 여인과 그의 아비를 불사르니라 - 고대 근동에서 불로 태워 사형시키는것은 간
간이 있던 일로서 성경에서도 간음한 자에게 이같은 형벌을 내릴 것을 명하고 있다.
(창 38:24 ; 레 20:14 ; 21:9).신 25:1-4 강해. '성경에 나타난 형벌의 종류'
참조. 한편 어떤 헬라어 사본이나 시리아어 사본에는 이 부분을 '그녀와 그녀의 아비
집을 불살랐다'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8:15에 기록된 블레셋 청년들의 협박과 그
내용이 일치한다(Cundall). 아무튼 삼손의 아내와 장인은 자기 동족들의 손에 의해 이
처럼 끔찍한 죽임을 당하였다. 이는 그들이 일신상의 안일만을 도모하여 삼손을 배신
하고 일종의 간음죄를 저지른 데 대한 당연한 형벌이다. 특히 삼손의 아내는 블레셋
청년들의 협박을 두려워하여 남편을 배신하고 동족의 편에 붙기까지하였지만
(14:15-17), 결국 그 협박의 내용대로 죽임당하고 말았다. 여기서도 우리는 세상 만사
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참으로 오묘함을 엿볼 수 있다.

7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은
후에야 말리라 하고

ㅇ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 블레셋사람들이 삼손의 처가에 행한 처사(6절)에 대
한 삼손의 태도 표명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학자들간의 견해는 다양하
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견해는 곧 다음 두가지이다. (1) KJV는 본절을 '비록 너희가
이 일을 하기는 했으되'(though ye have done this)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딤나
여인의 간음 행위에 대한 블레셋인들의 응징에 대해서는 삼손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2) 개역 성경에서처럼 '이것이 너희가 나를 대하는 것 이라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행하겠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이다(Henvey). 그런데 사실
블레셋 사람들이 특별히 삼손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비록
그들이 삼손의 처가를 징벌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응징이지
삼손에게 호의를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4-6절). 따라서 위의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블레셋의 처사는 오히려 삼손의 증오심만 자극한
결과를 빚고 만 것이다.

8 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거하니라

ㅇ크게 도륙하고 - 삼손의 처가에 대한 블레셋의 처사는 이처럼 삼손으로 하여금 블
레셋을 칠 빌미를 준 셈이 되고 말았다. 한편 여기서 '도륙하고'에 해당되는 원문은
문자적 으로 '넓적다리 위의 다리'(쇼크 알 야레크)를 쳤다는
뜻이다. 즉 직역하면 '넓적다리 위의 엉덩이'(hip on thigh)를 쳤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으로서 '상대방을 철저히 파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역 성경의 의역이 적절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Wylciffe,
pulpit Commentary).
ㅇ에담 바위 틈에 거하니라 - 대하 11:6에는 베들레헴 근방에 위치한 에담(Etam)이
나온다. 그러나 그곳은 딤나와 너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본절의 사건과 무관한 것같
다. 한편 대상 4:32에 따르면 시므온 지파내에도 에담이란 지역이 있는데 본절의 에담
은 바로 이곳인 것 같다. 더욱이 9절에서 블레셋사람들이 시므온 지파가 함께 거하고
있는 유다(수 19:1)에 진을 친 것으로 보아 그곳이 틀림없는 것 같다. 아무튼 이로 보
아 삼손은 자기 고향 소라에서도 안전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던것 같다. 아니면 자기로
인해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해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이곳 에담으로피신한지도 모른
다.

9 이에 블레셋 사람이 올라와서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편만한지라

ㅇ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편만한지라 -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게 당한 일(8절)에
대하여 보복하기 위하여 삼손이 숨어 있는 유다지역을 칠 작정으로 레히(Lehi)에 진을
쳤다. 그런데 이곳 레히의 정확한 위치에 대하여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측컨대 딤나
나 소라, 에담 그리고 블레셋 접경()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닐 것이다. 혹
자는 이곳을 브엘세바에서 6.4Km 지점에 있는 요새 엘 레히(el lechieh)인 것으로 추
측하기도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2 p, 415). 반면 또 어떤 이는 벧세
메스 부근에 있는 오늘날의 '킬벳 에시아그'(Khirbet es - Siyygh)일 것으로 주장하기
도 한다.

10 유다 사람들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오기는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ㅇ유다 사람들이 가로되 - 여기에서 우리는 블레셋의 압제하에서 그들의 눈치만 살피
며 삼손의 모험의 결과들을 두려워하는 비참한 유다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과
거 갈렙을 필두로 하여 가나안 정착 초기에 보여준 유다 지파의 용맹성에 비해 볼 때
(1장) 본절에 나타난 이러한 유다 지파의 모습은 가히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 갖는
전형적인 실태라고 볼 수 있다.

11 유다 사람 삼천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ㅇ유다 사람 삼천 명이...삼손에게 이르되 - 5절에 따르면 당시 블레셋 군대는 약 1
천명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그보다 세 배나 더 많은 삼천 명이 동
원되어 삼손을 잡으러 나섰다. 이는 당시 삼손의 힘이 어느 정도로 세었는지를 잘 시
사해 준다. 한편여기서 우리는 당시 유다 지파가 얼마나 노예적 근성에 사로잡혀 있었
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있다. 만일 유다 사람들이 삼손과 힘을 합쳐 블레셋에 대항했더
라면 블레셋으로부터 독립할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삼손을 잡아 원수들에게 내어주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범하고만다. 이
처럼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단지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리는 배반 행위까지도 종종 범하게 된다(마
12:30).
ㅇ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
엘 백성들은 블레셋의 압제를 받고있긴 했으나 굳이 저항할 의사가 없었다. 그들은
현실 안주내지는 무사 안일을 지향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제사장 나라로
서의 위대한 사명을 망각해 버렸던 것이다(출 19:6). 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서
진취적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그리워했던 광야노정의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 흡사하다(출 16:2, 3).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위치를 자각
하고 노예적 굴종읕 벗어 던지고자 했던 삼손의 궐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
어서는 오히려 성가신 만용 정도로 여겨졌던것이다. 본절에서 유다인들이 삼손을 다그
치는 것도 곧 '왜 쓸데없이 부스럼을 긁어 상처를 크게 만드느냐'는 무사 안일적 힐난
이었다.

12 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려고 이제
내려왔노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친히 나를 치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ㅇ우리가 너를 결박하여...왔노라 - 이처럼 이제 삼손이 동족들의 손에 묶임을 당해
이방 대적에게 넘기어지게 된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장면이다. 그런데 이는 무릇 경건
한 자기핍박을 받으며(딤후 3:12), 선지자가 고향에서 배척을 받는다는 사실(마
13:57)을 보여 주는 좋은 실례라 할 수 있다. 또한 삼손을 묶어 블레셋인에게 넘긴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허다하게 발견된다. 마치 안일한 생
존이 최상의 행복인 양 몸을 사리기만 하며, 보다 숭고한 진리를 위해 봉사하는 일을
조소하는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에도 부지 기수인 것이다. 그러나 영원을 사모하는 귀
한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존재하되, 종속되지 아니하고 진리로 세상을
극복하는 진취적 신앙을 늘 유지 함양해야 할 것이다(전 3:11 ; 요 16:33 ; 18:36).
ㅇ너희는 친히 나를 찾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 여기서 우리는 민족을사랑하는
삼손의 위대한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비열한 유다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 분노
하며 책망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삼손은 오히려 그 마음을 블레셋에게로 돌려 자신의
동족으로 하여금 그토록 비굴해지도록 만든 블레셋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불태웠다.
그래서 삼손은 동족의 손에 순순히 이끌리어 블레셋인들에게 넘기어진 후 여호와께서
주신 완력으로 블레셋인들을 쳐부수기로 마음먹고 이와같은 맹세를유다 사람들에게
촉구한 것이다.

13 그들이 삼손에게 일러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붙일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 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

ㅇ새 줄 둘로 결박하고...그를 끌어내니라 - 그토륵 엄청난 힘을 소유한 삼손은 마치
어린 양처럼 순순히 동족에게 포박되어 블레셋 사람들 앞에까지 끌려 간다. 이는 곧
그가 대적할 대상이 동족이 아닌 블레셋 족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 의해서 원수 로마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행 8:32 ; 롬 8:36).

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ㅇ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소리 지르는 동시에 - 블레셋 사람들이 삼
손이 결박된 채 오는 모습을 보고선 기뻐 어쩔 줄을 몰라하는 장면이다. 즉 그들은 이
제까지 겪어 본 중에 가장 힘센 사람이므로 어떻게 손 써 볼 수 없었던 삼손이 꽁꽁
묶여서 오는 모습을 보자 그의 주변으로 몰려 들며 환호성을 지른것이다(Wycliffe,
Matthew Henry)
ㅇ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 여기서 '여호와의 신'은 곧 성령을 가리킨다. 3:10
주석 참조. 즉 원수 블레셋 사람들이 포박된 삼손을 보고 승리의 환호성을 지를 때 삼
손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였고, 포박된 줄은 불탄 삼과 같이 끊어지고 만 것이다. 여
기서 우리는 죽음의 결박을 푸시고 죄의 사슬을 끊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모습
을 상기하게 된다(히 2:14).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명을 죽이고

ㅇ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  여기서 '나귀의 새 턱뼈'라는 것은 죽은 지 얼마 안된
나귀의 턱뼈를 가리킨다.이것은 오래되고 마른 턱뼈보다 더 단단하여 부서지지 않으므
로 당시의 위급한 상황에서 무기로 사용하기에는안성 마춤이었다(Lange).
ㅇ그것으로 일천 명을죽이고 - 실로 피 튀기는 대학살이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단 한 줄로 요약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포박된 삼손을 보고서 환호
하며 뛰어오던 모습(14절)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즉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
오던 대적들은 순식간에 고통의 절규를 부르짖으며 죽어갔던 것이다.

16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더미, 두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명을
죽였도다

ㅇ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 삼손이 혼자몸으로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무찌르고서 이
제 자신의 승리를 2행시로 노래하는 장면이다. 이 시에서 '나귀'(하모르)
와 '더미'(하모르)는 동의어로서 언어 유희를 담은 시이다(Matthew
Henry). 이것은 신 32:30에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
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라고 기록한 바와 같이 삼손이 자
신의 승리로 인해 이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있는 것이다.

17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ㅇ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여기서 '라맛 레히'(Ramath -Lehi)는 '턱의 산
'이라는 뜻이다. 삼손은 나귀의 턱뼈로 승리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하여
나귀의 턱뼈를 던져 떨어진 곳을 '라맛 레히'라고 불렀던 것이다. 아마 9, 14절에 언
급된 '레히'라는 지명도 이때부터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18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ㅇ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 이로 볼때 삼손이 블레셋 일천 명과 대항하여싸울 때
(15절)에 유다 사람들 중에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삼손이 싸
우는 동안 모두 도망가 버렸음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일천명과 상대하여 싸운 삼손은
이제 지치고 갈증이나서 기진 맥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갈증으로 인하여 죽
음 직전에 이른 삼손은, 자칫 교만해지기 쉬운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만
이 참 삶을 얻는다는 진리를 더욱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ㅇ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 이 때의 삼손은 마치 갈멜 산에
서 바알의 제사장들을 이기고 이스라엘 광야에까지 도망갔던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서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하던 그러한 심정이었을 것이다(왕상 19:4). 그렇지만 그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자신을 살려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는데,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1) 삼손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한 위대한 구원
의 체험을 상기함과 동시에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시
30:10 ; 39:4). (2) 그는 스스로를 종으로 표현하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
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고 계심을 고백했다. 그리고 이에 더불어 그는 하나님의 종으
로서의 사명감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갔다(롬 6:13). (3) 그는 자신의 죽음보다 하나님
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을 더욱 두려워했다. 만일 삼손이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죽게 된다면 라맛 레히에서 빛나게 했던 하나님의 명예까지도 더럽히는 일이 되고마는
것이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시 23:3)
을 간구하였던 것이다.

19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ㅇ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 여기서 '한 우묵한 곳'에 해당하는
'함마크테쉬'는 '절구' 또는 '절구형태로 된 구멍'이라는 뜻이다. 그런
데 고대의 주석가들LXX, Vulgate, KJV, Luther)은 나귀 턱뼈(15-17절) 모양이 이 절구
모양과 비슷하므로 하나님께서 턱뼈의 우묵한 곳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엔학고레'(부르짖는 자의 샘)란 단어에는 구체적인 대상을 나타내는 정관사가
붙어 있다는 점과 엔학고레라는 이름이 본서 저자의 시대에까지 알려져 있다는 사실
등을 볼 때 고대 주석가들의 해석은 옳지 않음이 분명하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나귀
턱 뼈와 같은 모양의 뾰족한 절벽 사이 구멍에서 물이 흘러 나오게 하여 삼손의 갈증
을 해갈해 주셨을 것이다(Keil, Lange, Studer). 이처럼 하나님께서 바위를가르셔서
물이 흘러나오게 한 사건은 성경에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출 17: 6 ; 민 20:8, 11).
그 사건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입증하는 이적들이다.

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을 지내었더라 

ㅇ본절에서는  '레히'에서  대승리를 거둔 삼손이 이제서야 비로소 동족의 냉대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인정받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건축자들에 의
해 버려진 들처럼 버림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릿돌과 같이 승귀되신 것을 연
상케 한다(시 118:22).
ㅇ블레셋 사람의 때에 - 사사기의 기록은 엄격하게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기 보다
는 구속사적인 안목에서 연대별 순서가 무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사사들의
활동 범위가 국지적이었기 때문에 연대적으로 둘이상의 사사들이 동시대에 활
동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삼손의 경우에도 그 활동 연대를 추정하기가 몹시 어려운
데, 그에 관한 기록들과 본절을 참고할 때 삼손의 사사직은 블레셋에 대항하여 이스라
엘을 구원하는일과  결부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가
B.C.1080-1060년에 걸쳐 활동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Cundall). 이렇게 볼때 삼손
은 입다와  동시대인이면서 사무엘의 활동 시기와도 상당 부분 겹치는 것이다. 한편
그의 활동 반경은 단 지파와 유다 지파에만 국한되었다.
ㅇ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 '레히'에서 블레셋족을 격멸한 일로 인하여 비로
소 이스라엘의 사사로 정식 인정받은 삼손이 이후 20년 동안 사사로서의 공적 활동을
하였음을 부언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20년간은 블레셋의 이스라엘 압제 기간 40
년(13:1)의 절반 밖에 못 미치는 기간이므로 삼손이  블레셋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구원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13:1 주석 참조.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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