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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사사기

[스크랩] 사사기 (4 : 1~24)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27
사사기 4장 


1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ㅇ에훗의 죽은 후에 - 에훗의 죽음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능력을대행한지도자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또 다시 이스라엘이 타락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였으
니 에훗의 치하에서 누렸던 것과 같은 평화(3:30) 역시 끝나게 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ㅇ또...악을 행하매 - 사사 시대의 일반적 사회 현상(2:19)을 다시 한번 보여 주는
구절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던 이스라엘(3:9)이 이처럼 또다시 죄악의 길에
빠져 든 것은 마치 방금 목욕한 돼지가 다시금 오물탕 속에서 뒹구는 것과 같이 어리
석고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는 한번 빠져 들면 헤어나기 어려운 죄의
속성을 여실히 증거해 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삼가 자신을 살펴 무릇 악은 모양이라
도 버려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살전 5:22).

2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ㅇ부 가나안 성읍 중 하나(수 19:36)로서 가장 강력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새에 해당
하였다(A.E. Cundall).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이곳은 갈릴리 호수 북쪽에 위치
한 메롬 호수(수 11:5,7) 부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이전에 이미여호수아
의 군대에 의해 파괴된 후 납달리 지파의 지배하에 있었다(수 11:1-14). 한편 여호수
아가 그곳을 점령할 때도 '야빈'이 왕으로 다스리고 있었으나(수 11:1), 본절의 야빈
은 그 당시의 왕과 동일 인물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때로부터 벌써 1세기가
훨씬 넘은 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하솔을 다스렸던 '야빈'이라는 칭호의 또 다
른 왕으로 보아야 한다. 아마 '야빈'(Jabin)이란 말은 애굽 왕의 공식 칭호인 '바로'
(Pharaoh)나 블레셋 왕의 공식 칭호인 '아비멜렉'(Abimelech)처럼 하솔 왕을 가리키는
공식 칭호였던 것 같다. 한편 그가 여호수아 군대로부터 하솔성을 어떻게 되찾아 세력
을 키웠는지는 알수 없으나 아마도 납달리 지파의 지경에 남아 있던 벧세메스와 벧아
낫 거민을(1:33) 중심으로 이스라엘에 대항했던 것 같다.
ㅇ이방 하로셋 - '이방'에 해당하는 원어 '고임'은 '열국'(nations)의 의
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어떤 백성이나 지명에 대한 고유 명사인지, 아니
면 여러 족속의 집단을 의미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개역  성경 창 14:1과 수
12:23에서는 이 단어를 고유 명사로 생각하여 문자 그대로 '고임'이라 하였다. 그리고
사 9:1에서는 '고임'을 '갈릴리' 지역과 동의어로 보고 '갈릴리'로 번역하였다. 그러
나 본문에서는 '고임'이란 단어에 정관사가 붙어 있으므로 이는 고유 명사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임'이란 당시 '하로셋'에 거하던 가나안 여러 족속을 지칭하는
듯하다. 한편 하로셋(Harosheth)이란 지명은 성경 중 이곳에만 나온다. 따라서 이곳
역시 그 위치가 분명치 않은데, 디베랴 호수 남쪽의 갈릴리 평원 어느 한 지점이었던
것 같다.
ㅇ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 - '하솔'(Hazor)은 납달리 지파의 지경에 속하는 북

3 야빈왕은 철병거 구백승이 있어서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ㅇ철병거 - 고대 전투에서 철제 병기의 사용은 전략 전술에 못지 않게 승리의 관건으
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당시 이 무기를 가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은 철병거를 지닌
가나안 거민 중 많은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다(1:19). 이는 곧 당시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평야 지대를 많이 점령치 못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철병거'는 산악 지대
에서는 사용될 수 없고 오직 평야 지대에서만 사용되는 전투 장비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관련, 당시 가나안인들이 향유했던 철제 문화에 관해서는 1:19 주석을 참조하라.
ㅇ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이란 전체 12지파를
가리키지 않는다. 대신 하솔을 중심한 일대(2절)의 납달리지파 내지 그 지파를 중심한
북부 지역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6,10절). 왜냐하면 당시 야빈이 철병거 900승
으로 이스라엘 12지파 전체를 점령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한
편 여기서 '학대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라하츠'는 '비틀어 짜다'는 뜻이다.
이는 곧 포도즙을 짜기 위해 밟아 으깨듯 이스라엘에 대한 야빈의 압제가 매우 혹독했
음을 시사해 준다.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ㅇ랍비돗의 아내...드보라 - 랍비돗이 어떠한 자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상에 언급이 없
다. 다만 그 이름의 뜻은 밝혀졌는데 곧 '번개' 또는 '횃불'이다. 때문에 일부 유대
주석가 및 몇몇 학자(Wellhausen, 1844-1918, 독일의 신학자)들은'랍비돗'이 바로
'바락'(6절)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바락'이란 이름의 뜻 역시 '번개'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보라는 곧 바락의 아내인 셈이다. 그러나 성경 그 어디에
서도 드보라가 바락의 아내로, 바락이 드보라의 남편으로 언급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상의 견해는 전혀 신빙성이 없다. 한편 또 다른 학자(Lange)는 '랍비돗'의 뜻이 '횃
불'인 점을 중시 '랍비돗의 아내'란 말을 '드보라'를 수식해 주는 수식어로 보기도 한
다. 그리하여 이를 '불꽃과 같은 여인...드보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역시 '아내'
란 말을 '여인'으로 대치하는 등 지나치게 의도적인 해석이 강하다. 따라서 우리는 랍
비돗을 문자 그대로 드보라의 남편으로 보아야한다. 다만 성경상에서 더 이상 그에 대
한 언급이 없는 까닭은 그가 이미 죽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ㅇ여선지 - 성경에서 여자로서 선지자직을 감당한 자로는 드보라 외에도 모세의 누이
미리암(출 15:20)과 훌다(왕하 22:14)을 들 수 있다. 즉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예언
자적 기능을 은사로 받았던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 당시 선지자가 어떠한 역할을 담
당했는지 등에 관해서는 삼하 12:1-14 강해, '선지자의 사명'을 참조하라.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ㅇ에브라임 산지 라마 - 납달리 지파의 지경에 속한 '라마'(수 19:36)와는 분명히 구
별되는 곳이다. 본절의 라마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수 18:25) 예루살렘북쪽 약
9km지점에 위치해 있다. 훗날 예레미야 선지자가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렘 31:15;마 2:18)라고
읊었던 라마가 바로 이곳이다.
ㅇ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 '드보라의 종려나무'란 이름은 드보라가 종려
나무 아래서 재판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본서 저자가 본서를 기록할 때에도
그 나무가 '드보라의 종려나무'로 알려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기념하여 그렇게 칭하
였을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드보라가 그 종려나무있는 곳에서 살았다는 것인지, 그곳
에 앉아 재판만을 주관했다는 것인지 하는 점에 있다. 본문의 문맥만으로서는 잘 해결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거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브'가 '거주하다'
란 의미와 '앉다'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려나무'가 드
보라의 재판과 관련하여 언급되었으므로, 이는 그녀가 재판시마다 그곳에 앉아서 재판
을 진행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더 낫다.
ㅇ재판을 받더라 - 사사 시대 당시 재판하는 일은 사사의 임무 중 하나였다. 2:16 주
석 참조. 즉 사사는 전쟁시에 자기 민족의 구원자 역할을 담당했지만 평상시에는 백성
들의 송사를 맡아 다스림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했다. 특별히 드보라는 여자로서 사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하여 '대언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으
로 풀이된다. 그래서 저자는 드보라의 이름을 언급할 때에 '여선지'(
이솨 네비아)라는 말을 덧붙였던 것이다(4절).

6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

ㅇ거처하였었다(5절). 그런데 그녀가 멀리 북쪽 지방인 납달리 게데스에까지 사람을
보내어 바락을 부른 것은 곧 지파간을 초월한 그녀의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 준다. 즉
드보라는 비록 자기 지파가 아니었지만 당시 납달리 및 북쪽 지방의 지파들이 야빈의
압제하에 당하는 고통을 간과치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납달리 출신의 사사 바락을
불러 문제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ㅇ납달리 게데스 - 납달리 지파가 얻은 견고한 성읍가운데 가장 중요한 도성중 하나
이다(수 19:37). 이것은 유다 지파에 속한 '게데스'와 구별되는데(수 15:23), 야빈의
도성인 하솔 성에서 동북쪽 4.8km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ㅇ너는...가라 - 이처럼 드보라가 바락을 불러 그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을
수행토룩 한 까닭은 그 자신이 여자였기에 직접 군대를 지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ㅇ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 추측컨대 이들은 하솔 왕 야빈으로부터 가장 많은 괴
로움을 당한 지파인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대적을 치는 데 선봉장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5장의 드보라의 노래에는 이 두 지파 외에 다른 지파의 이름도 언급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전투에는 납달리, 스불론 지파와 인접한 잇사갈 지파도 참여했음
에 분명하다(5:15).
ㅇ다볼 산 - 해발 약 528km 되는 산이다. 이곳은갈릴리바다에서 남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이스르엘 골짜기에 속해 있다. 초대 교회 전승(A.D. 4세기경)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그 모습이 변형되셨던 변화산(마 17:1-8;막 9:2-8;눅 9:28-36)이 바로 이
다볼 산이라고 하는데 분명치 않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p.302). 드
보라가 야빈과의 접전지( ���로 이곳을 택한 이유는 아마 그곳이 하솔 왕 야빈의 철
병거(3절)가 다다를수 없는 장소였기 때문일 것이다.

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ㅇ기손 강 - 다볼 산과 그 부근 지역에서부터 발원하여 이스르엘 꼴짜기를 따라 흐르
다가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다. 따라서 이 강은 잇사갈, 스불론 그리고 아셀 지
파의 지경을 모두 거쳐 흐른셈인데, 총 연장 길이는 약 40km이다. 전해지는 바
에 의하면 겨울의 강우기에는 풍부한 수량으로 인해 이곳 물이 범람하므로행인들의
통행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한다. 특히 이 강 주변에는 넓은 평야인이스르엘 평지가
있어 철병거가 움직이기 용이하였으니 시스라가 이곳에 그의 군대를 집결시키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되어진 것이었다.
ㅇ그를 네손에 붙이리라 - 여기서 '붙이다'에 해당하는 원어 '나탄'은 '꼼짝
못하게 하다' 또는 '패하게 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 대적
에게 내어 주시어 패하고 종노릇하게 한 것을 '팔다'라는 말로써 나타낸것과 같은 표
현이다(3:8). 즉 이는 과거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완전히 패하였듯이 이제 야빈과 시스
라의 군대가 꼼짝없이 이스라엘에게 패하고 말리라는 강조적 표현이다.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ㅇ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 이와 같이 바락은 반드시 전쟁에 드보라와
함께 출전( �하겠다고 고집했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견해가 분분하지
만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견해로 압축된다. (1)바락이 드보라의 예언을 믿
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Bertheau). (2)바락은 대적들과 전쟁하는 것이 두려워 예언
의 능력을 지닌 여선지 드보라와 동행하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G. Bush). (3)바락이
하나님께 받은 소명에 대하여 자신이 그 소명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
에 드보라와 동행하기를 요청했을 것이다(Keil, Lange). 이상과 같은 세 견해 중 가장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견해는 세번째 해석이다. 왜냐하면 모세도 과거 하나님으로부
터 소명을 받았을 때 자신의 약점을 앞세워 거절하고자 시도했으며(출 4:10), 사사 기
드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을 때 자신의 비천함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고자 시도했
기 때문이다(6:15). 사실 만약 바락이 불신앙적이거나 대적들을 정말로 두려워 했다면
결코 하나님과 드보라에 의해 야빈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선봉장으로 선택될 수 없
었을 것이다.

9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ㅇ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 이처럼 드보라가 순순히 바락과의 동행을 허락한
까닭은 물론 바락을 격려하며 그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함이었기도 하다. 그러나 보
다 중요한 이유는 아마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지시와 명령을 받아 바락에게 대언하기
위함이였을 것이다(Matthew Henry).
ㅇ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그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 어떤 이는 드보라가 바락의 요
구(8절)로 인해 불쾌하여 본절과 같이 말했다고 주장한다(A.E. Cundall). 그러나 이러
한 주장의 근거는 본절 전후 문맥 어느 곳에서도 암시되어 있지 않다. 단지 본절은 바
락이 시스라의 군대와 싸워 승리할 것이지만 결정적인 승리는 여인의 손에 의해서 이
루어질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17-24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많고 적음이나 훌륭한 병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의뢰하는
믿음에 달려 있음을 바락에게 깨닫게 해주시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삼상 17:47).
ㅇ게데스로 가니라 - 혹자는 여기에 언급된 '게데스'는 '납달리 게데스'(6절)와 동일
시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A.E.Cundall). 왜냐하면 드보라와 바락이 현재 만나서 이야
기 하고 있는 장소가 바로 이 '납달리 게데스'인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 라마와 벧엘 사이에 거하고 있던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납달리 게데스
에 살로 있던 바락을 불러온 것으로 되어 있다(6절). 따라서 이 드보라와 바락이 군사
를 모아 다볼 산으로 출전하기 위해(12절) 우선 납달리 게데스로 올라간 것은 전혀 문
제가 되지 않는다.

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일만인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ㅇ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부르니 - 이로 미루어 보아 당시 바락은 가나안 북부
지방의 이스라엘 지파를 통치하였으며 많은 추종자들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
한 바락의 권위는 분명 군사를 모집하는 일에 크게 기여하였을 것이다.
ㅇ그를 따라 올라가고 - '올라가다'에 해당하는 알라는 군대의 움직임과 관
련되어 사용될 때에는 전투가 예상되는 어떤 장소로 그 군대가 진격하는 것을 가리킨
다(수 7:2;삼상 24:22;왕상 9:16;14:25;20:1;대하 35:20).

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ㅇ모세의 장인 호밥 - 성경상에서 혼란을 일으켜 주기 쉬운 구절이다. 왜냐하면 성경
의 다른 곳에는 모세의 장인의 이름이 '르우엘'(출 2:18;민 10:29) 또는 '이드로'(출
3:1;4:18:18:1)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르우엘이 본명이며 이드
로는 모세의 장인이 제사장이 된 후에 얻은 공식 존호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호밥'은 누구인가? 이에 대해서 대개의 학자들은 모세의 처남인 것으로 본다. 그 근
거는 '장인'과 '처남'을 뜻하는 히브리어가 모두 동일한 '호텐'이기 때문인데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20:29 주석을 참조하라.
ㅇ겐 사람 헤벨 - 모세의 장인이 바로 이 겐족 출신인데(1:16), 성경 다른곳에서는
미디안 출신인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출 2:16;3:1;민 10:29). 이로 볼 때 겐족과 미디
안족은 일찍부터 상호 친밀한 유대 관계를 이루었거나 아니면 서로 동화되어 한 민족
을 이룬 것 같다. 아무튼 '겐 사람'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16  주석을 참조하
라. 한편 드보라와 바락에 관한 기사 도중 갑작스레 겐 사람 헤벨이 언급되고 있는 까
닭은 이후 전개되는 시스라와의 전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자가 바로 이 '헤벨'의 아
내인 '야엘'이기 때문이다(17-24절). 즉 본절은 헤벨의 아내 야엘의 가문과 신원을 미
리 소개할 목적으로 삽입된 것이다.
ㅇ자기 족속을 떠나 -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자손들은 팔레스틴으로 이주 후 유다 지
파의 경내에서 거주했다(1:16). 그런데 헤벨은 그 가족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납달리
지파의 경내인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을 등지고 이스라엘의 압제자 하솔 왕 야빈과 손을 잡았다(17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는 도리어 그러한 헤벨의 아내를 들어 쓰사 시스라를 죽였으니 인간이 미처헤아리기
어려운 깊고 오묘한 섭리를 잘 드러내 준다.
ㅇ사아난님 상수리나무 - 문자적으로 이 말은 '사아난님에 있는 상수리 나무'란 뜻이
다. 무슨 사연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 나무는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던 것 같다. 한편 '사아난님'(Zaanaim)은 납달리 지파의 남쪽 변경에 위치한 한
장소이다(수 19:33). 오늘날 '칸 엣 투잘'(Khan et Tujjar)로 불리우고 있는데 아다미
(Adami) 남동쪽 약 6.4km 지점의 '벧스안-다메섹 도로'의 중도에 위치해 있다.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ㅇ다볼 산에 오른것 - 바락과 그의 군사 일만 명이 다볼 산을 거점으로 전투 태세를
취한 것을 가리킨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강으로 모은지라

ㅇ시스라가...온 군사를...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 이것은 드보라의 예언이(7절) 성
취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기손 강'은 겨울 우기를 제외하고 다른 때에는
거의 말라 있는 건조천(Wadi)이며, 그 주위에는 평지가 형성되므로 시스라가 철병거를
배치시키기에 적당하였을 것이다. 7절 주석 참조.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에서 내려가니

ㅇ일어나라 - 이것은 '마음을 굳게 하여 전투에 임하라'는 의미이다(수 8:7). 일반적
으로 이 말은 어떤 일로 인해 심령이 위축된 사람에게 '힘을 내라'는  격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수 7:10). 그런데 드보라가 이처럼 바락에게 담대히 명령을 내릴 수 있었
던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친히 인도하심'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즉 드보
라는 과거 출애굽 노정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해 앞장서서 싸우시고 앞길을 인도해 주셨
던 하나님께서 이제 시스라와의 싸움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해 주시리라 굳게 믿었던 것
이다(출 13:21;14:14).
ㅇ이는...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 즉 오늘이 20년 동안 가나안 왕 야빈으
로부터 받았던 압제(3절)에서 해방되는 날이며, 그 위대한 역사는 바락에 의해 이루어
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시스라를 죽인 자는 바락이 아닌  야엘(21절)인데
이는 이미 드보라가 예언한 바이다(9절).
ㅇ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실제적인 장군
은 바락이 아닌 바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준다. 따라서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을 대
행하여 전쟁을 수행하던 자인 바락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또한 바락이 수행하
는 전쟁에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셨다는 사실은 바로 그 전쟁이 단순히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하솔을 징계하기 위한 전쟁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러난 하솔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한 거룩한 전쟁임을 시사해 준다(신 9:3;삼하 5:24;시 68:7;사 52:12). 이
와 관련해서는 수 5:13-15 강해, '성전'(q �을 보다 참조하라.
ㅇ바락이...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 드보라와 바락의 탁월한 전략을 보여 주는 장면
이다. 즉 그들은 시스라의 군대가 기손 강 평지에 집결한 것을 보고서는(13절) 다볼
산 고지에 매복시켜 두었던 일만 명의 군사들로 하여금 일시에 기습 작전을감행토록
한 것이다.

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ㅇ패하게 하시매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와야함'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에 의해 그 군대가 참패당하는 것을 의미한다(출 23:27;수 10:10;시 144:6). 즉
이는 과거 하나님께서 바로의 병거와 마병을 홍해에 수장(�/) 시키셨듯이(출
14:23-31) 이적적으로 시스라의 군대를 격파하신 것을 가리킨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p.304). 이같은 사실은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행하시고 있다는
드보라의 말(14절)과 매우 잘 어울린다.
ㅇ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 이처럼 시스라가 병거를 버리고 도망
친 까닭에 대해서는 5:21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갑작스럽게
기손 강을 범람케하사 그 주변 평지에 집결해 있던 시스라의 철병거와 군사들을 휩쓸
어 버리게 하신 것으로나와 있다. 그러니 자연 진흙탕이 된 평지에서 철병거는 무용지
물(����이 되버렸고 시스라는 도보로라도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초자연적 방법으로 시스라의 군대를 격파하셨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16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ㅇ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 기손 강이 범람한 물로 인하여 바닥이 질펀
해지자 기동력이 떨어지고 만 시스라의 군대와 그 철병거들을 바락의 군대가 일일이
추격하여 다 격멸시키려 한것을 가리킨다.
ㅇ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 시스라의 패잔병들이 도망간 곳은 '이방 하로셋'으로 시스
라가 거주하던 장소였다. 2절 주석 참조. 이로 보건데 시스라의 군대는 자기들이 주둔
하던 곳으로 도망쳐 원군과 합세하여 바락의 군대와 싸울 작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
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자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바락의 군대를 대항한다는 것은 부
질 없는 일이었다.

17 시스라가 도보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하솔 왕
야빈은 겐 사람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음이라

ㅇ시스라가...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 헤벨의 가정이 거주한 사아난님 상수리 나
무 곁은 게데스와 인접해 있었으므로(11절) 당연히 야빈이 거주하던 하솔과도 매우 근
접해 있었을 것이다. 6절 주석 참조. 따라서 시스라가 이곳까지 도망한 것은 하솔 왕
야빈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시스라가 헤벨의 가정을 찾아갔
을 때 헤벨의 아내 야엘이 그를 알아본 점으로 미루어 보아 헤벨의 가정은 하솔 왕 야
빈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유력한 인물들과도 늘 알고 지낼 만큼 그 지역에서 세력
있는 집안이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헤벨은 자기동족 겐 족속을 보호해 주고 가나안
땅에 기업을 준 이스라엘 백성(1:16)과 나아가서는 그 기업의 주인되시는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만을 위해 간사하게도 이스라엘의 대적 야빈과 손을 잡고 살았음에 틀림
없다. 11절 주석 참조.
ㅇ화평이 있음이라 - 비록 공수 동맹(l��q) 관계는 아니지만 야빈과 헤벨 사이에
두터운 친교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서로 다툼이나 분쟁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Matthew Henry's Commentary, Vol.II.p.143).

18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덮으니라

ㅇ나의 주 - '주'에 해당하는 원어 '아돈'은 '주권자', '최고 통치자' 또
는 '주인'이란 뜻으로 하나님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 말이다(신 10:17;시 136:3;사
1:24). 여기서 야엘이 시스라를 가리켜 '나의 주'라고 말한 것도 그가 곧 자신의 생명
까지 관장할 수있는 자기 집안의 최고 통치자라는 뜻이 있는 바 이는 시스라에 대한
최고의 호칭이 아닐 수 없다.
ㅇ두려워하지 마소서 - 이러한 말만으로써는 야엘이 처음부터 시스라를 속이려 든 것
인지 아니면 처음에는 진정으로 시스라를 환대하며 그의 처지를 위로하였으나 뒤에 하
나님께서 역사하사 마음을 돌이켜 먹고 시스라를 죽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야
엘은 시스라를 안심시키며 그에게 최상의 접대를 베풀었는데 이는 결정적으로 시스라
가 방심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II.p.143).

19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우라 내가 목이 마르도다
하매 젖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우고 그를 덮으니

ㅇ내게 물을 조금 마시우라 - 바락의 추격을 피해 도망하느라 시스라가 얼마나 기진
한 채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부분이다. 그가 범죄한 결과 이 땅에서
도 이처럼 갈증을 느꼈는데, 하물며 죽은 후에 겪을 영원한 갈증이 어느 정도일런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눅 16:24).
ㅇ젖부대 - 요세푸스(Josephus)는 이 부대 속에 있는 우유는 상한 것 즉 이미 변하여
시큼한 맛이 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탄훔(R. Tanchum)은 이 젖부대 속에
있는 우유는 완전히 지쳐 있는 사람이 먹을 때 그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p.305). 그러나 드보라의 노래에 나타나
있듯이(5:25) 이것은 엉긴 우유 곧 반쯤 '버터'가 된 최고급 우유임에 틀림없다(A.E.
Cundall). 그리고 그 우유를 담은 부대는 유목민들이 여행시 포도주나 물, 우유 등을
넣어 가지고 다니던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것인 듯하다.

20 그가 또 가로되 장막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ㅇ장막문 - 헤벨은 집을 짓고 살았던 것이 아니라 장막을 지어 거주했는데(11,18절),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직업이 유목이었음에 틀림없다. 특히 본절의 '장막문'은
아브라함이 유목 생활을 할 때 장막을 치고 장막문 앞에서 쉬었듯이(창 18:1) 유목 생
활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ㅇ네게 묻기를...없다 하라 - 이처럼 시스라가 헤벨, 즉 남자의 거실을 피해 야엘의
장막(17절) 곧 여자의 거실에 숨어 들고서도 또다시 보안을 지켜 주도록 부탁한 것은
그가 심리적으로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 있음을 반증해 준다. 그러나 정작 그가 안심하
고 몸을 의탁한 야엘의 거실이 바로 그의 사형 집행대가 될 줄이야! 이와 같이 하나님
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나(롬 8:28) 반대
로 하나님의 미움을 입은 자는 모든 일이 엉켜서 악을 낳기 마련이다. 즉 시스라는 야
엘을 통해서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 들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그를 찾아내어 심판
하신 것이다(시 139:7,8).

21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ㅇ본절에서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자기들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시스라를 죽인 것은
그의 남편이 이스라엘을 버리고 이방인과 손을 잡은 것에 대해 속죄하는 의미가 내포
된 행동이라고 여겨진다.
ㅇ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
다(시 127:2). 그러나 여기 시스라의 잠은 평안한 휴식을 취하는 잠이 아니었다. 그는
영원한 죽음의 잠을 앞에 놓고서 육신의 잠을자고 만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가던 요나가 배 밑창에서 곤히 잠을 잔 것과 흡사하다(욘 1:5).
ㅇ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 혹자에 따르면 고대 근동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장막 세우는 일은 주로 여인들이 하던 일이므로 여인들은 망치로 말뚝을 박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고 한다(G.F.Moore). 그렇다면 야엘이 장막 말뚝으로 시스라의 살
쩍, 즉 머리의 관자놀이(temple) 부분을 꿰뚫은 것은 어려운 일이긴 하나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 야엘은 시스라를 추격하는 바락에게 잠든 시스라를 넘겨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직접 그를 죽인 까닭은 아마 바락의 도착이
지연되는 동안 시스라가 원기를 회복하여 도망친 후 다시금 힘을 규합하여 이스라엘에
대항할 것을 염려했던 데서 비롯되었음에 틀림없다.
ㅇ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 여기서 '기절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야에프'
는 '탈진하다'는 뜻이다. 즉 시스라는 관자놀이에 말뚝이 박힌 즉시로 까무러쳤으
며 그 후 발악과 더불어 죽어 갔던 것이다. 이로써 드보라의 예언(9절)은 온전히 성취
되었다. 한편 혹자는 야엘이 시스라를 안심시켜 깊이 잠들게 한 후 아주 잔인 무도한
방법으로 그를 죽였다 하여 그녀의 행동이 사단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
나 이는 본문의 문맥과는 상치되는 주장인데 곧 야엘의 배후에서  역사하신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야엘의 마음을 주장하사 하나님의 영
광과 이스라엘의 구원, 악인에 대한 심판을 위해 이 일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따라서
거기에는 어떠한 미움이나 사악함 그리고 개인적인 복수심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그러기에 드보라와 바락도 그의 '감사 노래'(5장)에서 야엘의 신앙과  용기를 칭송한
것이다(5:24-27).

22 바락이 시스라를 따를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가로되 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네게 보이리라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말뚝은 그
살쩍에 박혔더라

ㅇ바락이 시스라를 따를 때에 - 즉 바락이 시스라가 도망친 것을 알고서는그  뒤를
추격, 이방 하로셋과 그 일대를 수색하던 때를 가리킨다(16절).
ㅇ바락이...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 이로써 바락 역시 드보라의 예언(9절)대로
시스라를 죽이는 영예는 자신이 취하지 못하고 한갓 여인에 불과한 야엘에게 넘어갔음
을 분명히 깨달았다.

23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ㅇ하나님이...패하게 하신지라 - 전쟁의 모든 과정에서 드보라와 바락 그리고 야엘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활약 때문에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
이 승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방인을 징계하며 언약의 백성을 구원한 장본인은 바로
하나님이시니 그분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서 저자는 본
절을 삽입시켜 그 사실을 강조했던 것이다.

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ㅇ마침내...진멸하였더라 - 이스라엘이 정확히 언제 가나안 왕 야빈을 완전히 격멸시
켰는지는 성경상에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이후로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는 기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보아 가나안 왕 야빈의 진멸 사건
은 가나안인들이 힘을 잃고 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에 분명하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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