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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사기(4): 사사들의 이야기(3) (9-12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24

 사사기(4): 사사들의 이야기(3) (9-12장)


                        
 "사사들의 이야기" (참고 지도) 

  사사시대는 징계의 시기만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고통 속에서 부르짖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사사들을 일으켜서 대적 자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받은 사사들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했다. 이러한 사사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6개의 반복되는 순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1) 범 죄 - 2) 진 노 - 3) 압 제 - 4) 부 르 짖 음 - 5) 구 원 - 6) 재 범 죄

  각 사사들의 이야기는 주인공만 다를 뿐 그 이야기의 구조는 모두 위와 같다. 사사 이야기에서 옷니엘을 사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서론으로 본다면, 나머지 6명의 사사는
A - B - C - C'- B'- A' 구조로 배열되어 있다.

 * 에훗과 삼손(A-A'): 에훗과 삼손은 둘 다 홀로 싸워야만 했던 외로운 영웅이었다. 에훗은 베냐민 지파의 외로운 영웅이었고, 삼손은 단 지파의 외로운 영웅이었다. 다른 싸움은 이스라엘 군사들이 힘을 합쳐서 대적들을 쳤지만, 이 두 사사는 오직 자기 혼자의 힘으로 대적들과 싸워야 했다. 베냐민 지파와 단 지파는 사사 시대에 가장 곤경을 겪은 지파였다. 단 지파는 적의 공격을 받고 자기 기업을 떠나 북쪽으로 이동했으며,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 사건으로 인해 지파 전체가 전멸할 위기에 놓였다(삿 19-21장). 또 이 두 지파는 모두 다 강력한 유다와 에브라임 지파의 사이에 기업을 얻은 지파였다. 에훗은 동쪽에 있는 대적인 모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했고, 삼손은 서쪽이 있던 대적인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했다.     

 * 드보라와 입다(B-B'): 드보라와 입다는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사람들이 사사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드보라는 그 당시 매우 천대받던 여성이었고, 입다는 창녀인 첩의 아들로서 변방으로 쫓겨났던 사람이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 기드온과 아비멜렉(C-C'):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사사기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누가 이스라엘의 왕인지를 보여준다. 기드온은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수많은 미디안 군사들을 물리침으로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이 되심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백성들이 왕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에 이를 거절했다. 이는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이고 스스로 세겜 사람의 힘을 빌려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 후에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간의 불화로 인해 세겜은 아비멜렉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러한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여호와임을 분명히 증거해주고 있다.    

서론

사사들의 이야기(반역과 구원)

타락

실패

배도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아비
멜렉

돌라야일

입다

삼손

종교적
타락

도덕적
타락

1

2    3:6

3:7-11

3:12-31


  5:16

6  
     8

9

10:5

10:6
    12

13     16

17     18

19     21

실패원인

1

2

3

4

5

6

7

이스라엘부패상

 


1. 왕권을 탈취한 거짓 사사 아비멜렉(9장)  (참고 지도)

  이스라엘이 또 다시 여호와를 떠나 우상 숭배로 기울어지게 되자, 하나님은 이번에는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으로 통해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다. 이 내부의 적이 누구이며, 그가 어떤 일을 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혔는지에 대한 기사가 (삿 9장)에 기록되어 있다.

 1-1. 아비멜렉의 왕위 찬탈(9:1-6)

  "1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 어미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외조부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가로되, 2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인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의 골육 지친 임을 생각하라. 3 그 어미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온 세겜 사람들의 귀에 고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말하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4 바알브릿 묘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유를 사서 자기를 좇게 하고, 5 오브라에 있는 그 아비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였으되, 오직 여룹바알의 말째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6 세겜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 가서 세겜에 있는 기둥 상수리나무 아래서 아비멜렉으로 왕을 삼으니라."

  여룹바알은 기드온이 바알 단을 훼파한 일로 인하여 그에게 주어진 이름이었다(6:32). 9장에서는 '기드온'이란 이름 대신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은 9장의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바알을 극심히 섬기는 세겜 사람들과 더불어(4절)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하여 동족 상잔을 일으켰다(6절). 본서의 저자는 바알 단을 훼파한 기드온의 행동과 반대되는 아비멜렉의 행위를 대조시키기 위해 '여룹바알'이란 이름만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비멜렉은 기드온과 그의 첩 사이에서 난 아들으로, 이름의 뜻은 '아버지는 왕이시다'는 말이다. 세겜은 예루살렘 북방 약 50km 지점의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위치한 성읍이다(8:31). 이곳은 일찍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창 12:1-7).  이곳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후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으나(수 17:7-9) 그 후 다시금 도피성으로 구별되어 레위인의 성읍이 되었다(수 20:7;21:20,2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총회를 이곳에서 개최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수 24:1) 당시 세겜 성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성읍으로 보인다(Matthew Henry, Cassel).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의 아비에셀 가문 출신이었으나(6:11) 아비멜렉의 어미는 세겜 사람이었다(8:31). 세겜 성이 가나안 정복 후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던 것을 볼 때에(수 17:7-9) 당시 세검 성에 거주하던 아비멜렉의 어미와 그 외가(外家)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파였을 가능성이 크다(Lange).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아직껏 그 곳에  잔존하고 있던 히위 족속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Keil & delitzsch). 왜냐하면 세겸 성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이전에 히위 족속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이 차지하고서 가꾸었던 성읍이기 때문이다(창 33:18-20; 34:2). 이중 전자의 견해를 취한다면 아비멜렉은 부계(父系)로든 모계(母系)로든 완전한  이스라엘인이니 그가 벌인 왕위 찬탈전은 동족간의 싸움이 된다. 그러나 후자의 견해를 취한다면 아비멜렉은 히브리인과 히위인 간의 혼혈아인 셈이니 그 싸움은 이스라엘과 가나안 원주민간의 싸움이 된다.

  아비멜렉은 자기의 형제들이 모두 다 왕권을 탐내고 있다고 전제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사실이 아니었으며 그의 지나친 피해 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사악한 야욕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형제들도 동일한 생각을 지녔을 것이라고 지레 판단하였다. 따라서 형제들로부터 당하기 전에 먼저 선수(先手)를 침으로써 화근을 아예 제거하고자 결심하였다. 요컨대, 아비멜렉의 경우는 스스로의 탐욕에 취하여 무고한 형제를 의심하고 나아가서 살해까지 하였으나(5절) 필경 칼의 보응을 받아 처단되고 만다는 전형적인 악인의 행로를 보여 주고 있다(54절).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대립과 의혹과 투쟁으로 팽배해진 상황에서라도 오혀려 먼저 선을 베풀므로써 불화의 싹을 없애고 화평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롬 2:7; 살전 5:15; 벧전 3:13). 아비멜렉은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세겜을 음모의 근거지로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세겜 주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혈연에 호소하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혈연은 이성보다 강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결국 세겜 인들의 마음은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졌을 뿐만 아니라 바알브릿 신당의 수입금으로 아비멜렉을 지원하였다(4절). 그리고 아비멜렉은 그 지원금으로 건달패를 고용하여 요담 외의 모든 형제들을 살해하고 세겜의 왕이 되었다(5,6절).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아비멜렉은 그 아비 기드온의 후광(後光)과 어미의 혈연 및 지연 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발판을 구축하였던 셈이다. 이같은 왕위 찬탈 음모와 살상은 이스라엘 왕국은 물론 이방 왕정의 역사에 두루 점철되어 있다(왕상 16:10). 아비멜렉의 말을 들은 세겜 사람들의 마음은 이제 기드온의 가문에서 돌아서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지지하게' 되고 말았다.

  이에 세겜 사람들은 바알브릿 묘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아비멜렉에게 주었으며 아비멜렉은 그 돈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건달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였다. 바알브릿 묘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언약을 맺은 바알브릿의 신당을 말한다(8:33). 바알 산당을 무너뜨렸던 기드온의 아들이 바알 신당에서 자금을 받았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은 칠십 개는 일반적으로 은 70 세겔에 해당되는데, 이것을 무게로 따지면 약 800g 곧 210돈 정도 된다(1 세겔은 11.4g에 해당된다). '방탕하다'는 말('레크')는 '허무하다', '무가치하다'는 뜻으로, 본문에서는 '무익한' 것을 추구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경박하다'는 말('파하즈')는 '제멋대로의', '방탕하다', '억제할 수 없다' 뜻을 가진 말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며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아비멜렉은 건달들과 함께 오브라에 있는 자기 부친의 집으로 가서 기드온의 아들 칠십 인을 한 반석에서 모두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에 여룹바알의 말째 아들인 요담만은 스스로 숨었기 때문에 살아남게 되었다. '오브라'는 에브라임 지파의 북쪽 경계에 가까운 므낫세 지파의 성읍이다(6:11).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본래 기드온이 많은 부인을 두었던 탓이다(8:30,31). 다윗의 경우에도 많은 처와 첩을 거느린 결과로(삼하 5:13) 왕위 계승권을 놓고 집안 싸움이 두 번이나 있었다(삼하 15:7-18; 왕상 1:25). 븐문은 사람이 욕심을 품으면 자기 형제조차도잔인하게 살해하는 일을 서슴치 않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마도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일을 두고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고 했다.

  이에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기둥 상수리나무 아래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다. 밀로 모든 족속은 일반적으로 '밀로'는 다윗이 여부스 사람으로부터 빼앗은 다윗 성에 속한 지역이다(삼하 5:7-9). 그러나 그곳은 세겜 성과 위치상으로  많이  떨어져있는 곳이며 다윗 때까지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곳이므로 본절의 '밀로'와 동일시 될 수 없다. 원어 '칼 벧 밀로'는 문자 적으로 '밀로의 모든 집'이니 이는 '밀로'라는 어떤 가문을 총체적으로 암시하는 말인 듯 하다. 그렇다면 아마 이는 아비멜렉의 외조부 전체 가문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1절). 그렇지 않다면 세겜 사람과 함께 이 가문이 특별히 언급될 이유가 없다. 한편 이 밖에도 혹자는 '밀로'가 세겜 근방에 있는 요새나 망대일 것으로 추정하여  46,47절의 망대와 동일시한다(Keil, Hervey, Cundall).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분명 세겜 족이지만 '밀로 모든 족속'과는 구분된다. '기둥'('무찹')은 '어떤 것을 세운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기념물' 내지 '기념비'를 의미한다(Keil). 고대 근동 지방에서 나무는 우상 숭배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도 오래된 나무를 섬기는 무속 종교가 아직도 남아 있다. 아마 세겜의 이 상수리나무는 과거에 야곱이 자기 가족의 모든 우상을 그 밑에 파묻어 버렸던 상수리나무일지 모른다(창 35:4). 아니면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베푼 것을 기념하여  그 아래에 기념비를 세웠던 여호와 성소 곁의 상수리나무일지도 모른다(수 24:25,26).


 1-2. 요담의 비유(7-21)

  "7 혹이 요담에게 그 일을 고하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소리를 높이 외쳐 그들에게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나를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를 들으시리라. 8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왕이 되라 하매, 9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10 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11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12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14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아비멜렉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은 요담에게 전달되었다. 요담은 그 소식을 듣고  그리심 산에 올라가서 소리 높이 비유를 통해 아메밀렉을 비난하였다. 요담은 세겜 사람들에게 자기의 말을 들어야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심 산은  세겜 남서쪽에 인접해 있으면서 북동쪽에 있는 에발 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으로 해발 854km이다(신 11:29). 이 산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을 향해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한 곳이기도 하다(수 8:33-35). 요담은 형제들을 복수하기 위해 은밀히 군사를 양성하지 않고 하나님께 심판을 맡겼다(롬 12:19). 이로 보아 아비멜렉의 선동적 언변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절). 한편 요담은 매우 창의적인 우화를 사용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는데(8-15절) 이러한 우화는 일종의 비유 문학으로 다수 대중을 설득시키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왕이 되기를 거절한 나무들은 기드온과 그 아들을을 가리키고 있다(8:22,23). 여기에 등장하는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그리고 포도나무 등은 나름대로의 귀한 재능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며, 분수를 넘어 과욕에 빠지지  않는 겸허한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롬 12:3). 그러나 14,15절에 등장하는 가시나무는 아무런 자격이나 재능이 없지만 협박 공갈로 왕위를 가로챈 아비멜렉을 비유하고 있다(시 12:8; 전 10:6). 그리고 이러한 요담의 경고는 그대로 성취되게 되었다(22절 이하).

  감람나무('올리브 나무')의 열매는 식료품, 연료, 목공품, 의약품 등 일상 생활 전반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 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은 왕과 제사장의 임직식 때에의 머리에 부어졌으며, 성막의 등대를 밝히는 데에도 사용되었다(민 4:16; 왕하 9:6). 성경에는 종종 하나님의 축복이 감람 나무에 비유되고 있다(호 14:6). 이처럼 감람나무는 매우 귀하고 유용하였기 때문에, 나무들 중 왕이 될 만한 자질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왕을 뽑는다면 감람나무를 먼저 천거하는 것이 순리였다. '요동한다'는 말('누아')은 '떨다', '요동하다'라는 뜻 외에 '휘두르다'란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누아'는 '지배권'을 보여 주는 용어이다. 즉 감람나무는 자기가 모든 나무의 왕이 되어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무화과나무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그 열매는 흔히 식용으로 사용되나 일부는 약재(藥材)로도 사용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1년에 9개월 내지 10개월 이상 계속해서 그 열매를 딸 수 있다. 더군다나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는 넓고 무성해서 더운 지방에서는 고마운 그늘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무화과 열매는 당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설탕이 귀했던 고대에는 설탕 대용으로 음식을 달게 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포도나무는 팔레스타인에서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함께 가장 많이 재배되는 나무이다. 이곳에서 수확되는 포도는 품질도 아주 좋아 주변 여러 나라로 수출되었다. 포도로 만든 포도주는 식수 사정이 좋지 못한 팔레스타인에서는 중요한 음료수 역할을 했다. 고대로부터 팔레스타인 및 시리아 지방은 포도주의 질이 좋고 양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헤브론 일대는 손꼽히는 포도주 산지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새로운 가르침을 '새 포도주'에 비유할 정도로(마 9:17) 이 포도주는 팔레스틴 지방민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잔치 때는 물론(요 2:1-11) 평상시의 식사 때에도 음료수 삼아 포도주를 마신다. 이와 관련 시편 기자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시 104:15)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이 포도주는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용 술로도 바쳐졌다(삼상 1:24; 10:3). 그밖에도 포도주는 곤비한 자들에게 활력을 주며(삼하 16:2) '비위와 자주 나는 병'(딤전 5:23)에 약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소독하는 소독약 대용으로도 쓰였다(눅 10:34). 이상과 같은 점에서 가히 포도주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술'이라 칭할 수 있다.

  가시나무는 가시 있는 관목(灌木)을 총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이 나무는 저주를 상징하는 나무로서(창 3:18)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처럼 식용으로 사용될 열매도 없고, 감람나무와 같이 여러 용도로 소용되는 기름도 없다. 오히려 이 가시는 사람을 찌르며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요담은 이 가시나무를,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하여 방탕하고 경박한 유를 사서 형제 70인을 죽인 아비멜렉(4,5절)에 비유하고 있다. 모든 나무들이 가시나무의 무익성과 그 해악에도 블구하고 굳이 가시나무더러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을 배제하고 인간적 취향과 욕구에 따라 스스로 절대적 보호 망을 만들고자하는 인본주의적 노력을 상징한다. 역사상으로 이러한 보호망은 이념, 체제, 국가, 이방 종교, 재물 그리고 심지어는 예술 등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다. 러한 무모한 요청에 대해 가시 나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나섰으며 심지어 위협하는 자세를 보이기까지 했다(15절). 이처럼 지극히 우매하고 무모한 대중들의 여망(輿望)은 자기 분수도 모르는 파렴치한 지도자의 허세와 결탁하여 피차의 멸망을 초래케 하는 것이다. 가시나무는 본래 그늘이 거의 없다. 따라서 그 가시나무 밑 그늘에 피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 가시에 찔리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요담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 삼은 것이 그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Moore). 레바논의 백향목은 근동 지방에서 가장 값진 나무로 최고급의 건축 재료로서(레 14:4 ) 본문에서는 이 나무가 세겜 성읍의 지도자들을 상징하고 있다.


 
 "16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을 삼았으니 너희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17 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었거늘, 18 너희가 오늘날 일어나서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 아들 칠십 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이고 그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의 왕을 삼았도다. 19 만일 너희가 오늘날 여룹바알과 그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과 의로움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을 인하여 즐길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를 인하여 즐기려니와, 20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에게서도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21 요담이 그 형제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달려 도망하여 브엘로 가서 거기 거하니라."

  요담은 나무들의 비유를 통해서 아미멜렉이 왕이 된 것을 비난한 후에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일이 정당한 일이냐고 물었다. 요담은 이러한 행위가 이스라엘을 구한 기드온과 그 집에 행할 수 있는 일이냐? 고 다구쳤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기드온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는 왕이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이다(8:22,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을 삼은 것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함이었다(2,3절). 따라서 이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결코 진실되거나 의로운 행동이 될 수 없었다. 요담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답'이란 말( '그물')은 선악에 대한 보상, 답례를 의미한다. 구약시대에는 개인이나 민족의 선악행위가 현실적으로 그대로 보응 받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수 23:9-16). 이는 신정국 이스라엘의 독특한 면모를 반영하는 것이다.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현세적으로 부당하게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종국적으로 모든 것을 합당하게 갚아 주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다(롬 12:19). 한편 세겜 사람들은 이러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의 은공을 악행으로  갚았다(1-6절). 때문에 요담은 본절에서 이러한 잘목된 보응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현실적 정책이 다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요담은 자기 부친이 과거에 죽음을 무릅쓰고 세겜을 위해 싸워서 미디안의 손에서 그들을 구해낸 일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들이 기드온의 아들을 쳐서 칠십 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이고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자기 족속이라고 해서 그를 왕으로 삼은 일에 대헤 책망했다. 요담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세겜 사람들이 기드온의 가족들에게 은혜를 악으로 갚는 배은 망덕한 죄를 범했다고 강조하였다. 세겜 사람의 왕이란 말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동의하여 세운 왕이 아니라 세겜 사람들이 임의로 세운 왕이란 사실을 비꼬아 한 말이다. 또한 이는  아비멜렉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세겜 지역의 왕 노릇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저주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요담은 만일 세겜 사람들이 한 행위가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었다면 그들이 아비멜렉을 인해 즐길 것이며 아비멜렉도 그들을 인해 즐길 것이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이 서로 상대를 쳐서 둘 다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세겜 족들이 기드온의 아들들을 몰살시키고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좇은 행위였다면 하나님께서 세겜족은 물론 아비멜렉도 형통케 하사 서로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정작 세겜족의 소위(所謂)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한 이기적인 행위였다(16절). 이러한 요담의 예언은 삼 년 후에 그대로 성취되었다(22-27절). 요담은 이 말을 한 후에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도망하여 브엘로 가서 살게 되었다. 브엘은 '우물'(well)이란 뜻이며, (민 21:16)에는 브엘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대로 물을 주신 우물이 있었던 곳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곳은 요단 동편의 모압 족속 지경(地境)이었기 때문에 본문의 '브엘'과 동일한 곳인지는 알 수 없다. 요담이 그리심 산(7절)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요단 동편 모압까지 도망쳤다고 보기는 다소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1-3. 하나님의 심판(22-29)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신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24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인에게 행한 포학한 일을 갚되 그 형제를 죽여 피 흘린 죄를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서 그 형제를 죽이게 한 세겜 사람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25 세겜 사람들이 산들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하여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무릇 그 길로 지나는 자를 다 겁탈하게 하니 혹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고하니라. 26 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 형제로 더불어 세겜에 이르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의뢰하니라. 27 그들이 밭에 가서 포도를 거두어다가 밟아 짜서 연회를 배설하고 그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니, 28 에벳의 아들 가알이 가로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 장관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비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29 아하, 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하였으리라 하고 아비멜렉에게 네 군대를 더하고 나오라고 말하니라."

  이러한 요담의 예고는 3년만에 성취되었다. 아비멜렉이 왕이 된지 삼 년에 하나님깨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신을 보내셨다. 그 결과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배반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보통 이방인들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신"을 보내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악한 신"을 보내셨다. 하나님이 악한 신을 보내신 이유는 70형제를 죽인 아비멜렉의 죄와, 그를 도운 세겜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였다. '다스린다'는 말('야사르')는 사사들의 재판을 의미하는 '솨파트'나 왕의 통치를 의미하는 '말라크'와는 다른 말로서. 방백들이 백성을 다스리며 지도하는 것과 같은 경우에 사용된 단어이다(Keil & delitzsch). 본서의 저자는 '야사르'란 단어를 사용하여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왕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성품이 없으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악한 신을 보내신 것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해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의 근원이 되지 아니하시며 다만 당신의 주권적 섭리 하에서만 악한 세력의 활동을 용인하고 계실 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는 악이 조금도 있을 수 없다(요일 1:5). 다만 본절은 욥기에서와 같이(욥 1:12), 그리고 예수님께서 시험 당하신 장면에서와 같이(마 4:1) 악령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활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겜 사람들은 '세겜 사람과 밀로 족속'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1절). 아비멜렉은 자칭 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 아루마(41절)를 수도로 삼고서 점차 세력을 확충시키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한편 세겜 주민들은 아비멜렉으로부터 특별한 배려를 받지 못함은 물론 오히려 억압만 당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의 비열하고 포악한 성격으로 미루어 그가 세겜인들을 이익의 도구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그들 간에 쟁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으로 율법적인 심판을 위해 행해진 것이다(신 32:35). 따라서 본절은 요담의 저주(19,20절)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아비멜렉은 역심(逆心)을 품고서 아비 집으로부터 등을 돌려 형제 70인을 살해한 장본인으로서의 죄를 면할 수 없었다(1-5절). 동시에 세겜인들도 아비멜렉의 역모에 동조하여 거사(擧事) 자금을 빌려주었으며(4절) 또한 그를 왕으로 추대한  죄(6절)를 면할 수 없었다.

  세겜 사람들은 산들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하여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자를 다 겁탈하였으며, 이 소식은 곧 아비멜렉에게도 전해졌다. 이때에 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 형제와 함께 세겜에 도착하였다. 그러자  세겜 사람들은 그를 의지하게 되었다. 산들 꼭대기는 그리심 산과 에발 산 및 세겜을 둘러싼 기타 산들을 가리킨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세겜으로 듸어오는 길목에 있는 산들이다(7). 아비멜렉에 대항한 세겜 사람들은 산적 생활과 같이 산에 매복하여 있다가 아비멜렉의 세력에 비공식적으로  도전했다. 이로보아 아비멜렉이 세겜 성을 다스리는 동안 결코 훌륭한 통치를 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산적 떼는 과거의 역사에서 정치와 종교가 부패되어 공의가 시행되지 않는 나라에서 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에벳의 아들 가알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분열되는 세겜 성의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권욕을 채워 보려한 인물로만 언급되어 있을 뿐 다른 언급이 전혀 없다. 단지 그의 아비 이름인 '에벳'은 '종' 또는  '노예'라는 뜻인 점을 볼 때 그는 아마도 천민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겜 사람들은 가알을 재포로 세우고 아비멜렉과 대항하려고 했다.

  세겜 사람들은 밭에서 포도를 거두어 포도즙을 짜고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그들은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그때에 에벳의 아들 가알이 아비멜렉을 저주하며 무리들을 충동질했다. 그는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섬길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하였다. 가알은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이며 그 장관은 스불이므로, 차라리 세겜 사람들은 세겜의 아비 하몰의 후손을 섬기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세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아비멜렉을 섬기지 말라고 충동했다. 그는 만일 자기 수하에 군대만 있다면 자기가 아비멜렉을 제거해 버렸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그는 아비멜렉을 향해 그의 군대를 이끌고 싸우기 위해 나오라고 소리쳤다. 신당은 '바알브릿'(4절) 또는 '엘브릿'(46절) 신당을 의미한다. 고대 제사 의식에서는 신당에서 제사를 지낸 후 그곳에서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었다. 특히 포도 수확기는 가장 즐거운 계절 중 하나였으므로(사 16:9; 렘25:30) 신당에서 배설된 연회는 축제 파티였다. 가알은 기드온의 이름을 '여룹바알'로 부름으로써 우상 숭배에 빠진 세겜 사람들로 하여금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을 더욱 적대시하도록 유도했다. 즉 '여룹바알'은 기드온이 바알단을 훼파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니(6:25-32) 이 사실을 기억한 세겜인들은 기드온의 아들인 아비멜렉에 대하여 더욱 반감을 가졌을 것이다. '하몰'은 히위 족속의  사람으로 그의 아들 세겜은 아브라함 당시 세겜 성의 추장이었다(창 34:2). 따라서 본절의 표현은 이방인의 후손을 섬기는 것이 차라리 아비멜렉을 섬기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이다. 즉 가알이 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몰락하여 타족속들 사이에 흡수되어 버린 하몰의 후예와 아비멜렉을 비교하여 아비멜렉의 지위를 실추시키고 있는 말이다. 이는 곧 세겜 성은 어디까지나 세겜 원주민이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로 볼 수 있다. 가알은 과감하게 아비멜렉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가알은 이러한 말을 통해서 자기의 추종자가 아비멜렉의 추종자보다 강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알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반역하는 일에 용기를 가지도록 했다(Goslinga).


 
1-4. 세겜과 아베멜렉의 전쟁(30-49)

  "30 그 성읍 장관 스불이 에벳의 아들 가알의 말을 듣고 노하여 31 사자를 아비멜렉에게 가만히 보내어 가로되 보소서 에벳의 아들 가알과 그 형제가 세겜에 이르러 성읍 무리를 충동하여 당신을 대적하게 하나니, 32 당신은 당신을 좇은 백성으로 더불어 밤에 일어나서 밭에 매복하였다가 33 아침 해 뜰 때에 당신은 일찌기 일어나 이 성읍을 엄습하면 가알과 그를 좇은 백성이 나와서 당신을 대적하리니 당신은 기회를 보아 그들에게 행하소서. 34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밤에 일어나 네 떼로 나눠 세겜을 대하여 매복하였더니, 35 에벳의 아들 가알이 나와서 성읍문 입구에 설 때에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백성이 매복하였던 곳에서 일어난지라. 36 가알이 그 백성을 보고 스불에게 이르되 보라 백성이 산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도다. 스불이 그에게 대답하되 네가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보았느니라. 37 가알이 다시 말하여 가로되 보라 백성이 밭 가운데로 좇아 내려오고 또 한 떼는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길로 좇아오는도다. 38 스불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전에 말하기를 아비멜렉이 누구관대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하던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이가 너의 업신여기던 백성이 아니냐? 청하노니 이제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 39 가알이 세겜 사람들의 앞서 나가서 아비멜렉과 싸우다가 40 아비멜렉에게 쫓겨 그 앞에서 도망하였고 상하여 엎드러진 자가 많아서 성문 입구까지 이르렀더라."

  이 말을 들은 세겜 성의 장관 스불은 심히 노하여 은밀하게 사자를 아비멜렉에게 보냈다. 그리고 에벳의 아들 가알과 그 형제가 세겜에서 무리를 충동하여 아비멜렉을 대적하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므로 스불은 아비멜렉에게 밤에 군사를 이끌고 와서  밭에 매복하였다가  아침해가 뜰 때에 이 성읍을 기습하라고 하였다. 스불은 이때에 가알과 그를 좇은 백성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대적할 것이며 아비멜렉은 기회를 보아서 그들을 치라고 전해주었다. '장관'으로 번역된 말('파키드')은 '대리인'(deputy) 또는 '감독자'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두 단어가 아비멜렉을 추종하는 스불에게 적용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스불'은 아비멜렉을 대신해서 세겜 성을 다스린 관리였던 것 같다. 만일 그가 군대 장관이었다면 아비멜렉의 도움 없이 자기의 힘만으로도 아직 완전히 규합되지 않은 가알을 칠 수 있었을 것이다. 스불은 아비멜렉 휘하에서 대리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세겜의 정황을 아비멜렉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스불의 세력이 가알의 영향력을 꺾기에는 부족하였기 때문에 은밀하게 밀사를 보내어 아비멜렉에게 세겜의 상황을 알렸다. 가알이 세겜 사람이 베푼 연회석에 참석하여(26,27절) 반역을 도모했지만 아직 그들의 세력이 완전히 규합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스불은 그들의 세력이 더 커지기 전에 아비멜렉에게 가알과 그의 형제들에 의한 반역의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매복(埋伏)은 적의 공격을 기습적으로 반격하기 위한 전술이다(수 8:10-17). 그러나 여기서는 아침 일찍 세겜 성을 공격하기 위해 밤에 미리 세겜 성 앞에 있는 밭에 숨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33절). 이러한 매복 작전은  구약에 자주 등장하는 전술 중의 하나이다. 일찍이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당시, 아이 성 전투에서 이 전술로 크게 성공을 거둔 바 있다(수 8:1-23). 한편 '밭'은 세겜 성읍 백성들이 농사짓는 곳으로, 그 성밖에 있었다(42절). '엄습하다'는 말('파솨트')은 본래 '돌진하다', '가죽을 벗기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순간적으로 기습하여 닥치는 대로 살육하는 것을 가리킨다. 스불이 아비멜렉에게 이른 아침 동틀 무렵에 기습 작전을 펴도록 충고한 것은 그때가 잠에 취했던 적들이 이제  막 깨어날 무렵이기 때문에 전투 태세를 갖추지 못한 적들을 쉽게 공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4). 이 말을 들은 아비멜렉은 근대를 이끌고 밤에 일어나 군대를 넷으로 나누고 세겜을 마주하여 매복하였다. 아비멜렉은 스불의 말에 따라 군대를 비밀리 이동하기 위해 밤을 이용했다. 밤에 이동함으로써 아비멜렉과 그의 추종자들은 손쉽게 세겜 성과 인접한 곳에 이를 수 있었다. 많은 수의 군대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은 전술상의 이점이 있다. 1) 지휘하는 자가 그 대원을 통솔하기 쉽다. 2) 각각의 소단위 부대는 전투시 기동력을 살릴 수 있다. 3) 적에게 포위 당할 위험이 적다. 4) 매복 공격을 쉽게 할 수 있다.

  아침이 되어 에벳의 아들 가알이 나와서 성읍 문 입구에 서 있을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들은 매복하였던 곳에서 일어나 공격을 개시하였다. 가알는 그들을 보고 스불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라 백성이 산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도다." 그러나 스불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보았도다" 본문에는 가알이 무슨 이유로 아침 일찍부터 성읍 문 앞으로 나아갔는지에 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 그러나 그 행차에는 스불 뿐 아니라 일부 병사들도 동행하였을 것이다(36,39절). 추정컨대 아마도 앞서 아비멜렉에게 선전 포고를 하였던 가알(29절)은 적정(敵情)을 살펴보려고 성읍 문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으니 도리어 아비멜렉이 가알을 치려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가알은 세겜 성읍의 장관인 스불을 따라 성읍 문 앞으로 나간 것 같다. 이로 보아 가알은 스불이 아비멜렉 편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음에 분명하다. 만일 스불이 아비멜렉의 대리권을 행사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가알은  그와 함께 아침부터 행동을 같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따른 무리 중 한 떼에 불과하다(34절). 이 무리들은 세겜 성에서 볼 때 가장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서 내려왔으므로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 그러나 가알은 또 다시 이렇게 말했다. "보라 백성이 밭 가운데로 좇아 내려오고 또 한 떼는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길로 좇아오고 있다." 그러자 스불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아비멜렉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하던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이가 너의 업신여기던 백성이 아니냐?" 그리고 스불은 가알에게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고 요청했다. 가알은 이 말을 듣고 이 세겜 사람들 앞에 나가서 아비멜렉과 싸웠다. 그러나 그는 패배하여 아비멜렉에게 쫓겨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전쨍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죽은 자가 매우 많아서 성문 입구에까지 이르렀다. '밭 가운데'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1) '그 땅 가운데로' 또는 '그 땅의 중앙에'란 의미이다(KJV, RSV, NIV). 그 이유는 '가운데'란 말('타부르')이 '중앙으로'란 뜻이기 때문이다(겔 38:12). 2) '밭 가운데로'에 해당하는 '타부르 하아레츠'를 '그 땅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지닌 지명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곳을 '그리심 산'으로 주장하며 또 어떤 사람은 세겜 앞의 특별한 언덕 지대의  지명이라고 주장한다(Hervey, Cundall). 그러나 이 두 번째 견해는 첫 번째 견해에 비해 그리 타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타부르 하아레츠'란 말은 가알이 세겜 성문 입구에서 보았을 때 한 떼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고 있었고(36절), 그 산 중앙에서 또 한 떼가 내려온 것과 연관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므오느님 상수리 나무는 문자적으로 '점장이의 상수리 나무'란 뜻이다. 아마 이곳은 점장이가 그 상수리 나무에 앉아 점을 쳤기 대문에 이런 식의 이름으로 특별히 알려진 장소인 듯하다. 그러나 '므오느님'(Meonenim)은 세겜 성 인접지였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알 수 있는 사항이 없다. 스불은 아비멜렉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던 그 용기(29절)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여 가알의 자존심을 자극시켰다. 만일 가알이 성문을 굳게 잠근 채 수비에만 전력을 기울였다면, 아비멜렉의 세겜 성 공략은 몇 배나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잘 알았던 스불은 의도적으로 가알의 자존심을 부추겨 정면 대결로 유도하였다. 임 라을 들은 가알은 '세겜의 어른들을 거느리고 앞장서 나가'싸웠다. 이는 곧 가알이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사태에 빠진 세겜 사람들을 추스리며 몸소 그들의 선두에 서서 싸움을 지휘하는 것을 말한다(Pulpit). 가알은 아비멜렉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의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나아갔을 것이다(39절). 그러나 이른 아침에 불시(不時)의 습격을 받은 그들은 전투를 위해 사전에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출전했으므로 아비멜렉이 이끄는 네 떼의 사람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인명 손실을 내고 세겜 성문 입구까지 아비멜렉군에 쫓겨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1-5. 아비멜렉이 세겜을 불에 태움(41-49)

  "41 아비멜렉은 아루마에 거하고 스불은 가알과 그 형제를 쫓아내어 세겜에 거하지 못하게 하더니, 42 이튿날 백성이 밭으로 나오매 혹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고하니라. 43 아비멜렉이 자기 백성을 세 떼로 나눠 밭에 매복하였더니 백성이 성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그들을 치되, 44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떼는 앞으로 달려가서 성문 입구에 서고 그 나머지 두 떼는 밭에 있는 모든 자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죽이니, 45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필경은 취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46 세겜 망대의 사람들이 이를 듣고 엘브릿 신당의 보장으로 들어갔더니, 47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의 모인 것이 아비멜렉에게 들리매, 48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살몬 산에 오르고 아비멜렉이 손에 도끼를 들고 나뭇가지를 찍고 그것을 가져 자기 어깨에 메고 좇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의 행하는 것을 보나니 빨리 나와 같이 행하라 하니, 49 모든 백성도 각각 나뭇가지를 찍어서 아비멜렉을 좇아 보장에 대어놓고 그 곳에 불을 놓으매 세겜 망대에 있는 사람들도 다 죽었으니 남녀가 대략 일천 명이었더라."

  아비멜렉은 아루마에 거하고 스불은 가알과 그 형제를 쫓아내어 세겜에 거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세겜 사람들은 이튿날 다시 밭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 소식은 즉시 아비멜렉에게 전해졌다. 아비멜렉이 왜 세겜 성 내부에까지 공격하지 않고 자기가 거하던 곳으로 되돌아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돌아간 후 다시금 세겜 성을 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42-45절). 아마 이번에는 성내로 들어가서 싸우게 되면 자신의 군대가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판단했기에 되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아루마'(Arumah)는 '높이', '높다'란 뜻이다. 이 역시 세겜 부근인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어쩌면 여호야김의 모친의 출신지인 '루마'(Rumah)와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왕하 23:26). 세겜 성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이처럼 밭으로 나온 것은 아비멜렉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서였다(Keil). 이것은 아비멜렉이 더 이상 그 성을 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세겜 성 사람들이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그들의 성읍 방어는 허술했을 것이다.

  아비멜렉은 이 소식을 듣고 자기 군사들을 셋으로 나누어 밭에 매복하게 했다. 그리고 세겜 백성들이 성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그들을 쳣다.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군사들은 앞으로 진격하여 성문 입구에 서고 그 나머지 두 부대는 밭에 있는 세겜 사람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죽였다. 아비멜렉은 그 날 종일토록 세겜 성을 쳐서 정복했으며 그 곳에 있는 백성을 죽이고 그 성을 헐은 후에 소금을 뿌렸다. 아비멜렉은 일단 반역의 주동자를 제거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아루마로 퇴각하였다(41절). 그런데 이튿날 세겜의 백성들이 밭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42절) 그들 모두를 제거하여 후한을 없애버리기로 결의한 듯하다. 아비멜렉은 이번에는 전술을 달리하여 군사를 세 떼로 나누어 매복시켰다. 그리고 세겜 사람들이 모두 성에서 나온 후 한 떼는 성문을 차단하고 나머지 두 떼는 성밖의 세겜 사람들을 무참하게 도륙(屠戮)하게 하였다(4절). 아비멜렉이 이같은 행동을 취한 목적은 그 성에서 나오는 자들을 칠 태세를 취한 것 뿐 아니라 밖에서 그의 군대에게 쫓긴 자들이 성으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상 밖으로 나온 성읍 백성들을 제외하고 성내에 있는 자들은 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밖에 있는 자들만 치면 성을 점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비멜렉은 바로 이 점을 이용했던 것이다. 아비멜렉이 이렇게 힘든 싸움을 했지만 그의 지지자인 세겜의 장관 스불(31-33절)은 미처 그를 돕지 못한 듯하다. 만일 성내에 거하던 스불이 아비멜렉을 도왔다면 아비멜렉은 성읍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는 끈질기게 저항하는 성읍 주민들로 인해 고전을 했다. 소금은 식물의 결실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아비멜렉의 이러한 행위는 그 성읍에 대해 영원한 멸망의 저주(신 29:23)를 선고하는 것을 상징한다(Pulpit Commentary). 한편 일찍이 여호수아도 여리고 성을 점령한후 그 무너진 성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저주를 선고한 적이 있다(수 6:26). 그리고 로마의 디도(Titus)장군도 A.D. 70년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그 성을 완전히 헐었던 적이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세겜 망대의 사람들은 엘브릿 신당의 보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의 엘브릿 신당에 모였다는 소식은 곧 아비멜렉에게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아비멜렉과 그의 균사들은 살몬 산으로 올라갔다. 아비멜렉이 직접 손에 도끼를 들고 나뭇가지를 찍어 자기 어깨에 메었다. 그리고 그를 좆은 군사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아비밀렉을 좆은 군사들은 아비멜렉의 지시대로 나뭇가지를 찍어서 어깨에 매었다. 그리고 그 모든 나무들은 신당의 보장에 대어놓고 그 곳에 불을 놓았다. 이로 인해 망매가 모두 불에 타버렸으며 그때에 망대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죽게 되었는데, 그 곳에 있던 남녀의 수는  대략 일천 명 가령이었다. 여기에 언급된 '망대'는 세겜 사람들이 포도밭에 세워 둔 망대를 의미하는 것 같다(사 5:2). 망대는 성읍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는 파수막 역할을 하였다. 세겜 망대는 세겜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고 천 여 명도 거뜬히 운신할 수 있는 견고한 요새였던 것 같다(49절). 그래서 쉽게 점령할 수 없었던 아비멜렉은 화공법을 사용하여 공격하였다(6절). '엘브릿'은 '계약의 신'이라는 뜻으로 '바알브릿'(4절;8:33)과 같은 의미이다(8:33 ). 그리고 '보장'('체리아흐')은 '동굴'이나 '지하 방'과 같은 은밀한 장소를 가리킨다. 각 번역 성경은 이를 '밀실', '요새',  '은신처'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세겜성에서 세겜 망대로 피한 사람들은 다시 위기를 느끼고 엘브릿 신당의 은밀한 곳을 도피처로 삼았다. 그들은 그 곳에는 바알의  도움이 있어 안전할 줄로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도피처로 삼은 보장이 결국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47-49절). 악인의 종국은 이처럼 처참하고 가련하다(잠 3:25). 정녕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에 그들의 신 바알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반면에 주 여호와께서는 재앙의 날에 피난처가 되시며(렘 17:17), 구원의 산성이 되신다(시 28:8).

  본래 유능한 전술가는 적들을 한 곳으로 유인, 그곳에 모인 적들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작전을 편다. 그런데 세겜 사람들은 스스로가 한 곳에 모였으니 이를 전해들은 아비멜렉은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살몬 산은 '그늘'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이름으로 볼 때에 이 곳은 울창한 숲으로 덮힌 산인 듯하다(Luther, keil, Hervey). 혹자는 이 산이 에발 산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며, 또 다른 사람은 이 산이 그리심 산과 관련된 산꼭대기로 오늘날의 셀만(Selman)이라고도 한다(Goslinga). 그러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아비멜렉과 그의 추종자들은자기들이 꺽어 온 나무 가지로(48절) 신당 보장 앞에 불을 놓았다. 이것은 보장에 불을 붙여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태워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불타는 나무의 연기로 질식시켜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연기로 인해 견디다 못해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을 비교적 손쉽게 죽일 수가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이 굴로 들어가게 되면 도리어 자기들이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좁은 굴 입구를 통해 굴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굴속에 있는 자들은 방어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대략 일 천 명이었다는 것을 보면 그 보장은 비록 지하이지만 매우 넓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그들은 항상 종교 의식을 거행하며 우상숭배에 따른 음란한 행위를 벌였을 것이다.


 1-6. 세겜 여인이 아비멜렉을 죽임(50-57)

  "50 아비멜렉이 데베스에 가서 데베스를 대하여 진치고 그것을 취하였더니, 51 성중에 견고한 망대가 있으므로 그 성 백성의 남녀가 모두 그리로 도망하여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간지라. 52 아비멜렉이 망대 앞에 이르러서 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그것을 불사르려 하더니, 53 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던져 그 두골을 깨뜨리니, 54 아비멜렉이 자기의 병기 잡은 소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그가 여인에게 죽었다 할까 하노라 소년이 찌르매 그가 곧 죽은지라. 55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비멜렉의 죽은 것을 보고 각각 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56 아비멜렉이 그 형제 칠십 인을 죽여 자기 아비에게 행한 악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57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아비멜렉은 계속해서 데베스를 치고 그 곳을 정령 하려고 했다. 그러나 성중에 견고한 망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망대로 도망하여 문을 잠근 후에 망대 꼭대기로 올라가게 되었다. 데베스는 세겜 북동쪽에서 약 18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이다. 혹자는 이곳을 오늘날의 '투바스'(Tubas)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Wycliffe, Robinson). 이곳 사람들도 세겜 사람들과 함께 아비멜렉에 대항하여 반역을 도모했음에 틀림없다. '성안에 있는 견고한 요새'는 데베스 성의 최후의 보루였다. 단순히 '그 성 백성들'이라 하지 않고 '남녀'란 말이 첨가되어 있는 점에 유의하여 혹자는 이들이 그성에서 구별된 사람들 곧 그 성의 지도자들이라고 추정한다(Goslinga). 그러나 본절에서 특별히 남녀가 구별되어 언급된 것은 아비멜렉이 여인의 손에 죽게 된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성중의 모든 백성이 그 견고한 망대로 피했는데 그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은 후에 아비멜렉이 여인의 손에 죽게 되는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53절). 아비멜렉은 망대 앞에 이르러서 적을 공격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가서 또 다시 그것을  불사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에 한 여인이 맷돌 윗 짝을 아비멜렉의 머리를 향해 내려 던졌으며 아비멜렉은 그 멧돌을 맞고 그 머리가 깨져버렸다. 아비멜렉은 세겜인들을 공략할 때 사용하였던 것과 꼭 같은 화공 법으로 이 망대를 공격하려고 했다. 남자들이 활과 창과 칼로써 항쟁하는 동안에 여인들도 그 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접근하는 적에게 돌을 떨어뜨림으로써 그 투쟁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맷돌은 고대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정 필수품이었다. 여인들은 이것을 사용하여 곡식을 빻아 음식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여인들은 그 망대로 피할 때에 이 맷돌을 가지고 갔던 것 같다. 아비멜렉은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머리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54절).

  머리가 깨진 아비멜렉이 자기 병기 잡은 소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칼을 빼어 자기를 죽이라고 지시했다. 왜냐하면 그는 여인에게 맞아 죽었다는 수치스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앗기  때문이었다. 그 소년은 아비멜렉의 지시대로 왕을 쳐서 죽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죽은 것을 보고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지 않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병기 잡은 소년은  '병기 잡은 신복'을 말한다. '소년'('나아르')이란 말은 '아이', '청년', '사환' 등을 의미하지만,  본문에서는 전쟁에 참가할 만큼 나이가 들었고 주인을 따르는 자이므로 '사환' 또는 '종'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윗도 사울의 병기 잡은 자로 그를 따라 다닌 적이 있다(삼상 16:21). 용사가 힘  없는 여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매우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죽어 가는 그 순간에서도 명예로운 죽음을 원했던 것이다(Wycliffe, Pulpit). 이와 유사하게 블레셋과 싸움을 하던 사울은 치명상을 입은 후 이방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자기의 병기든 자로 하여금 자기를 치게 한 일이 있다(삼상 31:4). 아비멜렉을 추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목격한 후 더 이상 싸워야 할 명분이 없으므로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아비멜렉의 죽음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지도자를 잃은 아비멜렉의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처럼 명분이 정당하지 못한 집단은 한때 흥왕 하는 듯하여도 쉽게 와해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진리 안에서 모인 무리들의 결속력은 가히 영구적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인 무리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핍박을 당하여 소멸되기도 하지만, 진리는 영원하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또 다시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이는 우리 성도들은 자칫 모임의 순수성이 흐려지지 않도록 늘 힘써야 할 것이다. 한편 아비멜렉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동안 세겜인과 아비멜렉 간에 진행되었던 내분(內紛)은 끝이 난다. 사사기 저자는 이러한 일이 칠십 인의 형제를 죽인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으며, 세겜 사람들이  불의한 아비멜렉을 도왔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에게 임하게 되었다.

                                 * 요약 및 교훈 *

1.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방인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신으로 감동시키셨다. 그는 바알의 산당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인의 손에서 구해냈다. 그는 백성들이 그에게 왕이 될 것을 요청했을 때에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이라고 하며 거절했다.  

2, 반대로 아비멜렉은 이방인의 손을 빌어 자기 형제를 죽이고 스스로 왕권을 탈취했다. 그는 이 일을 위해서 기드온이 무너뜨렸던 바알의 산당에 가서 자금을 후원 받았다. 그리고 스스로 왕이 되어 의로운 자들을 박해하였다. 하나님은 이를 심판하기 위해서 악한 신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 결과 세겜 사람과 아베멜렉 간에 전쟁이 일어나서 아비멜렉은 세겜을 불사르고, 세겜 여인은 아비멜렉을 죽이고 말았다. 이것은 여호와가 왕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바울의 힘을 입어 스스로 왕권을 탈취한 아비멜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이 사건은 진정한 왕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란 것을 보여주고 있다.  


 
1-7. 영적인 타락의 전환점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사건 이후로 사사 시대의 영적 상황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기드온 때에는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즉시 구해주는 대신 책망을 하셨다. 그리고 아비멜렉 때에는 더 엄중한 책망이 있었으며(10:10-14), 삼손 때에는 아예 부르짖지도 않았다. 기드온 이전에는 사사들이 죽은 후에 배도가 나타나지만, 기드온 때는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배도가 시작되며,  기드온 자신이 타락에 참여하기도 했다. 기드온 이후에 나타나는 입다는 그 자신이 많은 문제점을 가졌고 경솔하게 맹세헸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입다 이후에 나오는 삼손은 아예 타락의 극치를 걷다가 블레셋 인에게 잡혀 눈이 뽑혀버린다. 사실상 그의 삶은 사사라고 할 수도 없는 타락한 삶이었다. 기드온과 아비멜렉 이후로 내란이 심해진다. 아비멜렉 이후로 사사가에는 "그 땅이 평온하였다"는 말이 사라져 버렸다. 이와 같이 기드온과 아비멜렉 의 사건 이후로 영적인 하강 곡선이 그려지고 있다.  


2. 소 사사 돌라와 야일(10:1-5).

  "1 아비멜렉의 후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하여 2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 삼 년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4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두었었는데 그 성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칭하더라. 5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아비멜렉이 죽은 후에 잇사갈 지파의 돌라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돌라는 또의 손자였으며 부아의 아들이었다. '부아'는 '입',또는  '말'이란 뜻이며, '돌라'는 '곤충', 또는 '벌레'란 뜻이다. '부아'와 '돌라'라는 이름은 '잇사갈'이 낳은 두 아들의 이름과 같았다(창 46:13). 이러한 현상은 선조들의 이름을 따서 자녀들의 이름을 붙여주던 풍습에 따른 것이었다. 돌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어떤 대적으로부터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했는지는 본문이 아무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이는 아비멜렉으로 인한 종족끼리의 분쟁이나 사소한 국지전으로 인한 분쟁에서 이스라엘을 구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산 곳은 에브라임 산지 사밀이란 곳이었다. 돌라는 잇사갈 지파에 속해 있으면서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살았다. 돌라가 왜 자기의 기업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사밀'이 '사마레이아'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해서 일부 학자들은 이 곳이 후대의 '사마리아'와 같은 지역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저자가 '에브라임 산지'란 말을 덧붙인 것은 '유다 산지 사밀'(수 15:48)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돌라가 자기 기업의 땅을 떠나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우거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사사사 된지 23년만에 죽었으며 그가 살던 사밀에 장사되었다.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길르앗'(Gilead)은 요단 동편 지역의 영토, 혹은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시혼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수 32:33-42, 5:17). 그러나 성경에서 '길르앗 가족'(민 26:29)의 후손을 가리킨다. 따라서 돌라를 이은 사사 '야일'은 길르앗 원주민이 아니라 므낫세 지파 출신이다. 한편 야일(Jair) 역시 돌라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소사사'로 그의 행적에 대한 별다른  성경적 기록이 없다. 그의 이름의 뜻은 '비추는 자', 깨우치는 자'이다. 그에게는 30명의 아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30마리의 어린 나귀 타고 다녔다. 야일은 30개의 성읍을 가졌는데 그 성들은 길르앗 땅에 있었으며 하봇야일이라고 불렀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5:10; 12:14). 따라서 야일의 아들 30명이 각기 자기 소유의 어린 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은 당시 야일이 사사로서 이스라엘 가운데 부와 명예를 얻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성읍 삼십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입증이 된다. 하봇야일은 '야일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과거 모세 당시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길르앗의 촌락들을 점령한 뒤 그곳 성읍들에 붙인 이름이었다(민 32:41; 신 3:14). 따라서 사사 야일은 자기 선조 '야일'이 취하여 '하봇야일'이라 부른 그 성들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 결코 '하봇야일'이라는 이름이 사사 야일 당시에 붙여진 새로운 지명은 아니었다. 야일도 죽었을 때에 가몬에 장사되었다. 가몬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주장에 따르면 길르앗의 한 성읍이었다. 이 성읍은 야일이 소유하고 있는 30성읍(4절)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Lange, Keil & Delitzsch). 그러나 이는 분명치 않다. 혹자는 갈릴리 호수 동남쪽의 '캄'이나 동북쪽의 '쿠메임'이 바로 이 '가몬'일 것으로도 추정하기도 한다.


3. 말에 능한 사사 입다(10:6-12:7)     (참고 지도)

  이스라엘은 야일과 돌라의 통치 아래서 45년 동안 태평을 누렸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태평의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못하고 나태하고 안일에 빠져 보냈다. 결국 그들은 떠 다시 여호와 앞에서 범죄를 하게 되었다.
 

 3-1. 이스라엘의 범죄와 하나님의 징계(10:6-9)

  "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8 그들이 그 해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니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십 팔 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고, 9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다시'라고 번역된 말('야사프')은 원래 '증가한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점점 더 패역해졌음을 의미한다. 본문은 사사 시대의 시대적 정황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사사 야일이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다시 종교적 타락의 길을 걷게되었다(2:18,19). 본문에 나타난 우상의 항목이 일곱 개나 나타난다. 이제 이스라엘은 혼합주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여호와의 종교를 폐지하고 열방의 종교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바알들과 아스다롯은 가나안 지방의 대표적인 신들이다. '바알'들은 가나안 당의 남성 신을 가르키며, '아스다롯'은 여성 신을 대표했다. 혹자는 '아스다롯'을 '아세라'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구분된다. '아람'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영토 전역에 걸쳐 살고 있던 셈족의 한 부류인 아람족과 그들의 영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대개는 좁은 의미로 시리아 지역과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이 말을 '시리아'로 번역하고 있다. 아람 사람들은 대체로 가나안의 헷 족속이 섬기던 신들을 섬기었다. 그 대표적인 신들로는 폭풍신 '아닷'과 '테슛, 그리고 태양여신 '아린나' 등이었다(2:11-23). '시돈'은 두로의 북쪽 36km 지점에 있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이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아스다롯'과 '에쉬문'(Eshmun)을 섬겼었다. '에쉬문'은 두로의 '멜카르트'와 더불어 근동 지방에서 많이 숭배되던 '풍요의 신'이었다. 모압의 신으로는 전쟁의 신인 '그모스'가 유명하다(민 21:29; 왕상 11:7; 렘 48:7). 암몬의 국가 신은 '몰록'으로, 일 '말감' 또는 '밀곰'으로도 불리웠다(왕상 11:5,7,33; 습 1:5; 렘 49:1). 블레셋의 국가신으로 성경에 언급된 것은 '다곤'(Dagon)이다(16:23; 삼상 5:2-7).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은 다시 진노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과 암몬 사람의 손에 파셨다. '팔았다'는 말은 '붙인다'는 말과 같이 '형벌'을 말한다(2:14).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서 사용하신 이방은 주로 팔레스틴 북방 지역의 민족이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주로 이스라엘 북쪽 사람들(납달리, 아셀, 스불론, 잇사갈, 므낫세 지파)이 고통을 받았다(3:8; 4:2; 6:33). 그러나 이제는 블레셋과 암몬과 같은 남방지역의 민족들을 들어 사용하셨다. 이로 인해 이제 남쪽 지역에 사는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에브라임 자파가 압제를 당하게 되었다(9절). 특히 암몬 사람들은 이전에 모압 왕 에글론 및 아말렉 사람들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압제한 적이 있었다(3:13). 그리고 블레셋은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나라로 등장한다(13:1). 그러므로 요단 건너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십 팔 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다. 그리고 암몬 자손이 요단을 건너와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쳤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고통이 매우 심했다. '학대를 당했다'는 말은 원래 '흩어 압제했다' 는 의미이다.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혹독한 압제를 가하였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제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암몬족이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하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점령한 후 다시금 요단 강을 건너와 팔레스틴 남부를 점령한 것은 당시 이들의 세력이 한참 흥왕 하던 때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원래 암몬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자손들로서(창 19:38) 이스라엘과는 서로 화평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나라는 역사상 계속적으로 심한 반목과 적대 관계를 이루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 서편에서는 블레셋에 의해, 동편에서는 암몬 자손에 의해 공격받아 압제를 당했으므로 더욱 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곤고가 심했다'는 말('야차르')은 '짓누르다', '쥐어 짜다'라는 의미로 적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학대받은 것을 가리킨다. 이는 곧 과거 한일 합방 이후 일본인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을 압제한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3-2. 여호와의 냉소적인 태도(10-14)

  "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12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13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통이 심해지게 되자 다시 여호와께 부르짖어 자들의 죄를 회개하였다. 여기서 '바알들'은 단순히 가나안의 남성 신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이미 언급된 여러 나라의 신들을 모두 의미한다(6절). 한편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호소할 때 단순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라는 표현만이 사용되었으나(3:9; 4:3; 6:6), 본문에서는 자기들의 죄목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다른 때보다 더 간절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배도 하는 이스라엘을 더 이상 이방 민족들로부터 구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은 그 동안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 "아모리 사람", "암몬 사람", "시돈 사람", "마온 사람", 그리고 아말렉"으로부터 거듭해서 구원해 주셨다. 아모리 사람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진행할 때에 이스라엘을 방해하다가 전멸 당한 족속이었다. 암몬 자손은 모압 왕 에글론과 동맹하여 이스라엘을 압제하다가 에홋에게 정복당한 족속이었다(3:15-30). 하나님은 삼갈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하셨다. 시돈 사람은 하솔 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압제할 때(4:1-3)에, 그를 도왔던 것으로 보인다(Keil). 아말렉 사람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대적했으며(출 17:8-13) 사사 시대에도 미디안 족속과 함께 이스라엘을 압제했다(6:3). 마온 사람은 일부 성경에는 '미디안'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유다 지파의 기업에 속해 있던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마온에 대해서는 (대하 26:7)에서 이곳이 사해 남쪽과 페트라 동쪽지역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의 '마온' 역시 유다 지경에 속한 '마온'이 아니라 요단 동편 사해  남쪽에 있는 '마온' 곧 미디안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학자들도 '마온'과 '미디안'을 동일시한다(Keil). 혹자는 이 '마온'을 미디안이 아니라 아말렉 족속과 같은 유목민 중 한 부족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Cassel) 그 근거는 희박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거듭해서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매우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문은 우상 숭배에 젖을 대로 젖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강한 경고(히 6:4-6)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그 동안 섬겼던 우상들을 찾아가 부르짖으라고 냉소하셨다.


 3-3. 여호와의 긍휼(15-16)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16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이제 이스라엘은 그들이 그 동안 섬겼던 이방 신을 찾아가 부르짖든지, 아니면 계속해서 여호와께 매달리든지 선택을 해야만 했다. 결국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 자신들이 범한 죄를 인정하고 자신들에 대한 처분을 하나님께 맡겼다. 이러한 고백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깊이 깨닫고 있으며, 2) 자기들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싶을 깊이 인지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자신들을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신들의 범죄로 인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게 되기를 원했다. 그들은 이제 자기 중에 있던 이방 신들을 모두 제거해 버리고 여호와만을 섬겼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보시고  마음에 근심하셨다.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을 알 수 있다. 1) 그들은 하나님께 자기들의 죄를 고백했다(10절). 그것도 죄를 고백하되 아주 구체적으로 고백했다. 2)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15절). 3) 그리고 죄의 고백과 더불어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이 고백한 그 죄로부터 떠났다. 여호와께서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원수의 압제를 당하는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고서 그들을 구원하시려 마음먹으신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근심하셨다'는 말('카차르')은 '견디지 못했다'는 뜻을 가진 말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3-4. 길르앗의 지도자가 된 입다(10:17-11:11)

  가.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침략함(17-18)
  
"17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치고, 18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바로 그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서 길르앗에 진을 치게 되었다. 이처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땅으로 와서 전쟁 준비를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18년 동안 암몬 사람들에게 복종하며 그들을 섬기다가(8,9) 반역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상으로도 피 정복 민들이정복 군주에게 조공 바치기를 거부하면 그 군주는 군사를 끌고 와서 피 정복 민들을 재차 공격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왕하 17:3-6; 24:1-3). 암몬 자손이 진을 친 것을 본 이스라엘 자손들도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 함께 모여 미스바에 진을 치고 있었다. 성경에는 '미스바'가  대여섯 군데나 나와 있다(수 11:3,8; 15:38; 18:26; 삼상 22:3). 본문에 언급된 '미스바'는 사사 입다가 거주하던 곳이다(11:34).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얍복 강 북쪽에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이곳은 과거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과의 언약을 기념하여 '증거비'를 세웠던 곳인 '미스바'와 동일지일 가능성이 크다(창 31:49). 그때에 길르앗 방백들과 백성들이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지에 대해서 의논했다. 그들은 선두에 서서 암몬 자손들과 싸우는 사람을 길르앗 모든 사람들의 지도자로 세우기로 결정했다. 암몬 사람들과 대치 상태에 들어갔으나 길르앗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막상 선두에 나서서 그들과 싸울만한 인물이 없었다. 고대 전쟁에서는 선두에서 백성들에게 싸울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장군이 반드시 요청되었다. 그리고 그 장군이 전쟁 중 죽게 되면 병사들은 사기가  어져 도망하게 된다(삼상 17:50-52). 이러한 이유로 길르앗 백성들은 암몬 사람과 제일 먼저 나가 싸움을 시작할 만한 인물을 찾았던 것이다.

  나. 지도자가 된 입다(11:1-11)
  "1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2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4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8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대답하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우리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 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반드시 행하리이다. 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입다"는 1) 기생의 아들이었으며(1), 2) 이복 형제들에게서 축출된 자였고(2), 3)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람이었다(3). "돕"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곳이다(삼하 10:6,8 ). "잡류"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안정을 얻지 못하고 유리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의 실정이 입다의 처지와 같기 때문에 그들이 그와 동조했을 것이다(삼상 22:1-2). 암몬 자손을 맞서서 선두에서 싸울 사람들을 찾지 못한 길르앗 장로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쫓아냈던 입다를 선두에 세우기로 결정하고 그 사실을 돕 땅에 있는 입다를 찾아가서 전달했다. 그러나 입다는 한 번 버림받은 일이 있었기에 이번 일을 신중하게 처리했다. 1) 그는 길르앗 장로들의 약속을 신중히 취급하며 그들의 진실성을 검토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란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라고 하였다(7절). 그 장로들은 길르앗의 정치적 지도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찌기 입다의 형제들이 그를 내어쫓는 불의한 처사를 알고도 그대로 방임, 혹은 찬동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임을 추궁하는 입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입다를 저희의 최고 지도자로 삼겠다고 다시 약속한 것이다(8절). 그들은 변동 없이 끝까지 입다를 최고 지도자로 삼을 것을 하나님 앞에 맹세하였다(10절). 이에 입다는 그들의 말대로 고향에 가서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2) 그는 "큰  용사"였으나 자기 힘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였다. 그는 믿음으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였다(9절 하반). 이 말은, 그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믿은 증거이다(삼상 17:47). 3) 그는 미스바에 가서 자기의 말을 모두 하나님께 고했다. 그는 구원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기도했던 것이다. 진실한 신자가 사람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고 고독한 중에 신앙을 지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시는 한 때가 오는 법이다. 그를 박대하던 자들이 그에게 절하게도 된다(미 7:7-8; 계 3:9). 4) 그는 암몬  자손을 반격하기 전에  먼저 평화적으로 일을 해결하고자 하여 암몬 왕에게 사신을 보냈다(12-27). 입다는 신앙이 진실할 뿐  아니라  지혜롭고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었다(Vonk).
 

 3-5. 평화적 제안을 거부한 암몬 왕(12-28)

  "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취한 연고니 이제 그것을 화평히 다시 돌리라. 14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를 보내어 15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6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17 이스라엘이 사자를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컨대 나를 용납하여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 보내었으나 그도 허락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유하였더니, 18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둘러 행하여 모압 땅 동편으로부터 와서 아르논 저편에 진쳤고 아르논은 모압 경계이므로 그 경내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19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용납하여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20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2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매 이스라엘이 쳐서 그 땅 거민 아모리 사람의 온 땅을 취하되, 22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사람의 온 지경을 취하였었느니라. 2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하냐? 24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 25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26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향촌들과 아로엘과 그 향촌들과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 지 삼 백 년이어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 28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입다는 먼저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전쟁 없이 외교(外交)에 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암몬 왕은 "아르논에서 부터 얍복과 요단까지"의 영토를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다고 하면서 그 땅을 반환하라고 주장했다(13). 그러나 입다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한 것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셨기 때문이라고 길게 변론하였다. 1) 그는 이스라엘은 언제나 다른 민족들을 먼저 침략한 적이 없으며(16-18). 이스라엘이 일찌기 광야를 통과하던 때에도 에돔에게나 모압에게나 화평스럽게 대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민 20:14-22; 신 2:9). 2)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왕 시혼"과도 이스라엘은 전쟁하기를 원치 않았으나 그가 선제 공격을 했으며(19-22). 따라서 그 전쟁의 책임은 헤스본 왕 시혼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하여 시혼 왕의 땅(아르논에서 얍복, 요단까지)을 취하도록 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입바는 그 땅이 암몬 족속의 소유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소유라고 설명했다(23-27).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을 암몬 왕인 "네가" 차지할 권리가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입다는 예를 들어서 암몬 신인 그모스가 암몬 왕에게 주어 얻게 한 땅을 암몬 족속이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 고 물었다. 여기서 입다가 그모스 신을 믿을 만한 신이라고 간주하는 뜻에서 관설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모스에 대한 그의 관설에 있어서 그의 중심에는 그것을 헛된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다만 이론을 위하여 그것을 이야기 한 것뿐이다. 입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었다(27절).


 3-6. 입다의 승리(29-32)

  "29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들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들과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암몬 족속이 평화적인 제안을 거부하게 되자 하나님의 심이 입다에게 임하셨다. 입다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길르앗과 므낫세 지파가 있는 곳을 지나 길르앗 미스베에서 암몬 족속과 싸우려고 출전했다. 그는 이 때에 이렇게 서원을 하였다.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31) 그는 암몬 족속과 전쟁하기에 앞서 여호와께 이와 같은 서원을 올렸다. 여호와께서 이번 전쟁에 승리케 해주시면 집에 돌아가서 가장 먼저 영접 나온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것이다. 여기 이른 자 "번제"는 반드시 불에 태워서 바치는 제물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ascending offering)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사람을 태워  바치는  제물로  사용하는  것은  율법에  금지된 것이기 때문이다(레 18:21, 20:2-5; 신 12:31, 18:10). 입다는 이 율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암몬 족속이 몰록 우상(혹은"밀곰"이라고도 함, 왕상 11:5,33)을 섬겼는데(왕상 11:7), 저희 자녀를 불살라 그 우상에게 바치는 악한 미신(迷信)에 젖어 있었다. 그 때에 입다가  암몬을 대적하면서 이러한 미신도 미워하였을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서원을 한 후에 입다는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웠으며, 여호와께서 암몬 자손들을 입다의 손에 붙이셨기 때문에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20성읍을 치고,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공격하여 암몬 자손의 항복을 받아냈다.


 3-7. 제물로 드려진 입다의 딸(34-40)

  "34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하여금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37 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38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 하고 39 두 달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40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입다가 승리하고 기쁨으로 미스바에 돌아와서 자기 집에 도착했을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입다를 영접했다(그녀는 입다의 무남독녀였다). 입다는 가장 먼저 자기를 영접하는 자를 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원 했기 때문에 자기를 영접하는 딸을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렇게 울부짖었다.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하여금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슬프다"란 말("아하")은 그저 염려를 나타내는 말이다. "슬프다"는 말은 너무 심각한 불행을 표현하므로 적당한 번역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나로 참담케 하는 자"란 말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너는 나를 당황케 만드는구나"라고. 개역 성경의 "나로 참담케 하는 자"란 번역은 역시 너무 심각한 불행에 대한 표현이다. (35상)의 히브리어를 보면 입다의 걱정은 그 딸이 죽임이 될 지경의 불행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것 같다. 입다의 걱정은, 그 딸이 결혼하지 못하고 독신으로(수녀처럼) 성전 봉사에 평생 바침이 되어 그(입다)의 기업이 계승되지 못하게 될 것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입다의 딸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입다의 딸은 이 말로써 그 자신의 인격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아버지 입다와 같이 1)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했으며, 2) 아버지께 순종함으로 효도를 행하였고, 3) 의리를 위해 자신이 희생을 개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다.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이 말을 들은 입다는 그녀에게 두 달간의 기한을 주어 그녀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녀는 두 달 동안 자기가 말한 대로 행한 후에 두 달만에 아버지에게로 돌아왔다. 아버지 입다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그 딸은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게되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입다의 딸이 죽어 번제물이 되었는가 함이다. (37하)과 (38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란 말은, 실상 "나의 처녀 됨을 인하여"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리고 (39하)의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고 한 말은, "그녀가 남자를 알지 못하니라"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하나님께 "올려 바침" 이 되었다는 것(31)은, 그녀가 평생 결혼하지 못하고 성막에서 수종 드는 여인이 된 것을 가리킨다(출 38:8). 15세기 이전에는 입다의 서원 실행이 그 딸을 죽여서 번제로 드린 것이라고 해석하였으나, 그 이후에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다만 그녀로 하여금 평생도록 성막에서 봉사하도록 처녀로 바쳐진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해석이 옳다고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입다의 성격으로 보아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서원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를 등용하려고 찾아 온 길르앗 장로들의 청원도 신중히 검토한 후에 받아 들였었다(7,9). 2) 입다가 암몬 왕에게 전한 말(15-26)을 미루어 보아 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적 자세히 알고 있었으니 만큼, 그가 구약 율법에 대하여 무식한 인물이 아니었음이 분명한 까닭이다. 구약 율법에 자녀를 불로 태워 바치는 것은 극악한 죄로 규정되어 있다(레 18:21, 20:2-5). 3) 입다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신뢰하는 인물이었으니 만큼(9절 끝, 11절 끝), 그가 하나님이  금하시는 죄악을 범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만일 입다가 하나님이 엄금하시는 죄를 범하였다면 그는 레 20:2-5의 말씀대로 저주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도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6년이나 역사하고 죽었다(12:7). 4) 무엇보다도 신약 성경이 입다를 신앙 인물로 칭찬하기 때문이다(히 11:32). 우리는 입다의 행적에서 배울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용감하게 실행한 그의 진실성과 및 그의 신앙 용단이다(35절 하반, 39절 하반). 그리고 그의 실행력(實行力)의 모본을 따라서 그의 딸도 경건의 법에 잘 순종한 것이다(36상, 시 15:4). 이 사건이 있은 후로는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는 것이 규례가 되었다. 델리취(Delitzsch)는 여기 이른 바 "애곡하더라"란 말의 히브리어를 "찬송하더라"라고 번역해야 된다고 하였다.


 3-8. 입다와 에브라임의 전쟁(12장)

  가. 에브라임 지파의 선전 포고(12:1)
  "1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

  이 때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애 자기들을 불러 함께 가지 않았느냐? 항의했다. 그들은 입다가 독단적으로 전쟁을 수행한 일로 인해 그와 그의 집을 불로 사를 것이라고 위협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사사 기드온에게 했던 것처럼 압제자를 쫓아낸 입다에게 시비를 걸어왔다(8:1). 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의 승리와 온 길르앗의 머리로서(11:11) 받게된 그의 명성을 시기한 것이다. 그들은 기드온의 경우와 같이 자기들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를 원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와 싸워  그가 길르앗의 우두머리로 군림하지 못하도록 멸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의 에브라임 지파의 타락된 모습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들은 전쟁에서 선두에 서지는 않고 다른 사람이 앞서서 승리를 해놓으면 그때 와서 자기들이 생색을 내려고 했다.

  나. 입다의 변명(12:2-3)  
  "2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나의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다툴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 내가 너희의 구원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가 어찌 오늘날 내게 올라와서 나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고..."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입다는 암몬 자손과 싸울 때에 에브라임 지파를 불렀지만, 입다가 지휘관이 되었기 때문에 협조하지 않았다. 에브라임 지파는 항상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입다의 명령에 거부했던 것이다. 에브라임 지파가 소집에 불응하게 되자 입다는 걸고 나가서 암몬과 싸웠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의 도우심을 받아 암몬 족속과 싸워 이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입다는 에브라임 지파들에게 그러한 항의를 할 필요가 없다고  추궁했다. 사실상 입다는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변명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1) 암몬 자손과의 싸움은 암몬 자손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요단 동편 지파들이 주도하는 것이 당연했으며, 2) 전쟁 때에 반드시 에브라임 지파에게 도움을 호소해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다는 시비를 분명하게 가리기 위해서 자초지종을 자세하게 말했다. 입다와 암몬 족속간의 전쟁은 매우 치열했기 때문에 그는 생명을 걸어야만 했으며, 그렇기에 그가 얻은 승리와 영예는 값진 것이었다. 그러나 입다는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렸다. 그러나 에브라임 지파는 위험할 때에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고 입다가 승리하게 되자 입다의 영광을 시기하였다. 승리의 영광을 여호와께 돌린 입다의 대답은 에브라임 지파의 입을 막는 진술로서 매우 적절했다.

  다. 입다가 에브라임과 싸워 이김(12:4-6)
  "4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더니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파하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5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 앞서 요단 나루턱을 잡아 지키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컨대 나로 건너게 하라 하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 그에게 이르기를 십볼렛이라 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능히 구음을 바로 하지 못하고 씹볼렛이라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이에 입다는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 지파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승리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에브라임 지파는 길르앗 사람이 워래 에브라임 지파였으나 도망하여 지금도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중에 있다고 조롱해왔다. 아마도 길르앗 사람들은 암몬족과의 전쟁이 끝난 직후 제각기 고향으로 흩어졌을 것이다(11:32-34). 그러나 입다는 에브라임 지파의 도전을 응징하기 위해서 다시 그들을 소집하여 그들과 싸웠다. 본문은 1)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 지파에서 도망친 분파주의자 또는 망명자들이라는 의미와, 2) 길르앗 사람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땅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근거 없는 트집으로 길르앗 사람들을 무시한 일은 길르앗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길르앗 사람들은 므낫세 지파의 한 분파로서 마길의 아들 길르앗의 후손이지(민 26:29)  결코 에브라임 지파에서 떨어져 나온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모욕적인 언사(言辭)를 받은 길르앗 사람들은 대동 단결하여 에브라임 지파를 단호히 응징하였던 것이다(5,6절).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가서 요단강의 나루턱을 점령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강을 건너가려고 하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구별하여 모두 죽여버렸다. 나루턱'은 나룻배가 들어와서 닿는 곳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문에 사용된 나루턱이란 말('아바라')은 배로 건너는 나루(ferry)가 아니라 수심이 얕아서 배 없이도 건널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당시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요단 강은 그 폭이 27m가량, 깊이가 1-3m 가량이었다. 따라서 아주 얕은 곳은 배 없이도 충분히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길르앗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서 에브라임 사람들들 식별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쉬"(쉰)를 발음하지 못하여 "시(씨: 싸멕)"로 발음했다. 이것은 평양 사람들이 "ㅈ"을 발음하지 못하여 "정거장"을 "덩거당"이라고 발음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쉽볼렛"을 발음하라고 시켰을 때에 이를 발음하지 못하고 "씹볼렛"으로 발음하면 그는 분명히 에브라임 지파였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서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파를 구별하여 그들을 죽였던 것이다. 요단 나루턱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것이며 여러 차례의 작은 싸움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 첫 번째 인구 조사에서 에브라임 지파의 장정 수는 45,000명이었다(민 1:33).  그리고 2차 조사에서는 그보다 줄어든 32,500명이었다(민 26:37). 따라서 그 이후부터 입다  당시까지 300여 년이 흐르는 동안(11:26) 각 지파마다 인구가 많이 증가했을 것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에브라임의 장정 42,000명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에브라임 지파에 있어서는 매우 큰 타격이었을 것이다.


 
3-9. 입다의 죽음(12:7)

  "7 입다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입다는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 지나 죽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하였다. 본문의 서술 형식은 다른 '소사사'의 생애에 대한 서술형식과 같다(통치기간, 죽음, 매장지)(10:2,5; 12:10,12,15). 본문에서 '길르앗 한 성읍'으로 번역된 구절은 번역 서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공동 번역은 이를 '길르앗에 있는 자기의 성읍 미스바'로 번역하고 있으며, RSV는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으로 번역하였고, 70인역의 한 사본은 '그의 성읍 길르앗에서'라고 번역하고 있다. 입다의 주요 활동 무대가 미스바였고 또한 그의 고향 역시 그곳이었던 점을 생각하면(11:9,34) 입다가 장사된 '길르앗 한 성읍'은 '미스바'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적용 및 교훈 *

1. 이스라엘은 태평성대에 안일하고 나태해져서 여호와를 떠나 악을 범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바알 뿐 아니라 다른 신의 이름이 일곱 개나 언급될 만큼 가나안 종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부르짖을 때에 매우 냉소적으로 대하셨다.     

2..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보시고 긍휼히 여겨 구원하셨다. 이 구원은 이스라엘의 회개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의 인자하심 때문에 일어난 구원이었다.

3. 하나님은 사회적으로 멸시받고 천대받는 입다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그러나 입다는 가나안 종교에 깊이 빠져 경솔한 서원을 하였고 이로 인해 큰 낭패를 당하게 되었다.

4. 입다는 불평하는 에브라임 지파와 싸워 그들을 격퇴하여 승리했으나 이러한 동족상잔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그 세력에 크게 약해지고 말았다.  


4. 소 사사 트리오: 입산, 엘론, 압돈(12:8-15)

  "8 그의 뒤에는 베들레헴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9 그가 아들 삼십과 딸 삼십을 두었더니,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보냈고 아들을 위해서는 타국에서 여자 삼십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10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11 그의 뒤에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12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13 그의 뒤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14 그에게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이 있어서 어린 나귀 칠십 필을 탔었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15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입다의 뒤를 이어 베들레헴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그는 아들 30과 딸 30을 두었는데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보내었고 아들들을 위해서는 타국에서 여자 삼십을 데려왔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만에 죽었으며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베들레헴은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과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이 있다(수 19:5). 본문에서 말하는 베들레헴이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이곳이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이었다고 주장하지만 특별한 근거는 없다(Keil & Delitzsch, Pulpit). 일반적으로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은 '유다 베들레헴'(17:7,9) 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미 5:2)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사의  대부분이 북부 지파의 출신인 것을 고려하면 본문에 나오는 베들레헴은 스불론 지파에 속한 베들레헴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므깃도에서 약 18km정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한편 이곳  출신 입산(Ibzan) 역시 돌라(10:1,2), 야일(10:3-5), 엘론(8-10절), 압돈(11,12절)과 함께 두드러진 공적이 없는 '소사사'였다. 입산은  입다와는 대조적으로(11:34) 기드온이나(8:30,31) 야일과 같이(10:4) 자녀를 많이 두었다. 이것은 입산이 누리는 부와 권세를 상징해 준다. 입산은 사사였으므로 자기의 아들과 딸을 위해 이방인과 교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타국'이란 말은 '다른 가문' 또는 '다른 지파'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공동 번역은 이를 '일가 아닌 사람들에게'로 번역했으며, 대부분의 영역 성경도 '그의 가문 밖으로'라고 번역했다. 여기서 우리는 입산이 자기의 아들과 딸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른 지파 사람들과 결혼시킨 것은 의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그는 각 지파간의 유대 관계를 강화시키고자 자신의 아들과 딸을 다른 지파 사람들의 아들과, 딸과 정략적으로 결혼시켰을 것이다. 묘지를 고인이 생전에 거주하던  거지나 고향, 연고지 근처에 마련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일반적 관습이다.

  입산이 죽은 후에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리고 엘론이 죽엇을 때에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하였다. 엘론에 대한 기록은 사사들의 사적 중에 가장 간단하다. 사사 입다 이후에서 사사 압돈까지(13절) 이스라엘에는 특별히 큰 대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사사들은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그 때문에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호와 종교가 계속적으로 유지되었던 것 같다. 스불론의 아얄론은 단 지파의 아얄론과는(수 10:12; 19:42) 다른 곳이다. 이 아얄론은 히브리어 자음만으로는 사사 엘론과 같은 철자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70인역과 공동번역은 '아얄론'을 '엘론'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곳은 사사 엘론이 건축한 성읍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혹자들은 이곳을 오늘날의 야룬과 동일시 하지만(Keil, Hervey) 확실한 근거는 없다. 추측컨대 갈릴리 호수 서쪽 15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텔 엘부메'(Tell el-Butmeh)가 바로 이 '아얄론'이 아닌가 사려된다.

  엘론이 죽은 후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그에게 는 아들 40과 손자 30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어린 나귀들을 타고 다녔다. 압돈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만에 죽었으며, 그가 죽었을 때에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다. '비라돈'은 에브라임 지파의 땅 중 아말렉 산지에 위치하고 있다(15절; 5:14). 이곳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듯이 마카비 서와 요세푸스의 글에 나오는 '파라톤'과 같은 곳이다. 오늘날에는 '파라타'(Farata)로 알려져 있는데(Keil) 현재 세겜 서남쪽 약10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한편 압돈(Abdon)은 입산이나 엘론과 달리 그의 신분이 '힐렐(Hillel)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아마 이는 베냐민 지파의 계보에  나오는 '압돈'(대상 8:23,30; 9:36)과는 구별하기 위함인 듯하다. 압돈이 사사로서 누린 부와 권위는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 그리고 '어린 나귀 70필'이란 내용 속에 잘 암시되어 있다. 왜냐하면 어린 나귀를 탄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높은 지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5:10; 10:4). 5:14에 이어 15절에서도 아말렉 족속이 에브라임 땅과 연관되어 언급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에브라임 땅은 과거에  아말렉 족속이 거주하던 곳이었던 것 같다. 아니면 사사 시대 초기에 유목민인 아말렉 족속 중 소수였던 것 같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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