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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사사기

[스크랩] 사사기(2): 사사들의 이야기(1) (3:7-5:16)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22
인터넷 신구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47과)

 사사기(2): 사사들의 이야기(1) (3:7-5:16)


                       
 "사사들의 이야기" (참고 지도) 

  사사시대는 징계의 시기만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고통 속에서 부르짖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사사들을 일으켜서 대적 자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받은 사사들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했다. 이러한 사사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6개의 반복되는 순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1) 범 죄 - 2) 진 노 - 3) 압 제 - 4) 부 르 짖 음 - 5) 구 원 - 6) 재 범 죄

  각 사사들의 이야기는 주인공만 다를 뿐 그 이야기의 구조는 모두 위와 같다. 사사 이야기에서 옷니엘을 사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서론으로 본다면, 나머지 6명의 사사는
A - B - C - C'- B'- A' 구조로 배열되어 있다.

 * 에훗과 삼손(A-A'): 에훗과 삼손은 둘 다 홀로 싸워야만 했던 외로운 영웅이었다. 에훗은 베냐민 지파의 외로운 영웅이었고, 삼손은 단 지파의 외로운 영웅이었다. 다른 싸움은 이스라엘 군사들이 힘을 합쳐서 대적들을 쳤지만, 이 두 사사는 오직 자기 혼자의 힘으로 대적들과 싸워야 했다. 베냐민 지파와 단 지파는 사사 시대에 가장 곤경을 겪은 지파였다. 단 지파는 적의 공격을 받고 자기 기업을 떠나 북쪽으로 이동했으며,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 사건으로 인해 지파 전체가 전멸할 위기에 놓였다(삿 19-21장). 또 이 두 지파는 모두 다 강력한 유다와 에브라임 지파의 사이에 기업을 얻은 지파였다. 에훗은 동쪽에 있는 대적인 모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했고, 삼손은 서쪽이 있던 대적인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했다.     

 * 드보라와 입다(B-B'): 드보라와 입다는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사람들이 사사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드보라는 그 당시 매우 천대받던 여성이었고, 입다는 창녀인 첩의 아들로서 변방으로 쫓겨났던 사람이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 기드온과 아비멜렉(C-C'):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사사기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누가 이스라엘의 왕인지를 보여준다. 기드온은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수많은 미디안 군사들을 물리침으로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이 되심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백성들이 왕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에 이를 거절했다. 이는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이고 스스로 세겜 사람의 힘을 빌려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 후에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간의 불화로 인해 세겜은 아비멜렉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러한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여호와임을 분명히 증거해주고 있다.    

서론

사사들의 이야기(반역과 구원)

타락

실패

배도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돌라
야일

입다

삼손

종교적
타락

도덕적
타락

1

2    3:6

3:7-11

3:12-31

4 5:16

6  8:32

9  10:5

      12

13   16

17   18

19   21

실패원인

1

2

3

4

5

6

7

이스라엘부패상

 


1. 전형적 사사 옷니엘(3:7-11)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옷니엘은 사사의 전형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옷니엘의 이야기에는 앞으로 나오는 모든 사사들에게 적용되는 10개의 공식이 등장한다.

 

공식

표현

본문

1

악행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3:7

2

우상숭배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3:7

3

진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3:8

4

이방에 넘김

그들을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3:8

5

부르짖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3:9

6

세움

여호와께서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3:9

7

사사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3:10

8

이김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3:10

9

태평

그가 사사가 된 지 40년에

3:11

10

죽음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3:11

                     < 사사들에게 적용한 10가지 공식들 >

공식

서론

옷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

악행

2:11

3:7

3:12

4:1

6:1

10:6

13:1

우상숭배

2:12

3:7

 

 

 

10:6

 

진노

2:14,20

3:8

 

 

 

10:7

 

이방에 넘김

2:14

3:8

3:12,14

4:2

6:1

10:7

13:1

부르짖음

 

3:9

3:15

4:3

6:6

10;10

 

사사세움

2:16,18

3:9

3:15

 

 

 

 

정복

 

3:10

3:30

5:31

8:28

 

 

태평

2:16,18

3:10

3:30

5:31

8:28

 

 

사사

 

3:11

 

4:4

 

12:7

15:20,16:31

죽음

 

3:11

 

 

8:32

12:7

16:31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들을 섬겼다. '잊어버렸다'는 말('솨카흐')은 '잘못 놓다'란 뜻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하나님을 뒤로 놓고 버려야 할 우상들을 마음에 놀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을 마음의 최우선에 놓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을 더 사랑하 수밖에 없게된다. '바알'은 '풍요'의 신으로 가장 높은 엘 신의 아들이었다. '아세라'는 엘의 아내이자 바알을 포함한 70명의 신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이처럼 복수형으로 쓰여지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1) 장엄 복수형: 히브리인들은 신이나 장엄한 물체(하늘과 같은)에 대해서는 복수형을 써서 신의 위엄이나 장엄함을 나타냈다. 그 예를 들면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로힘'(엘의 복수)으로 표기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말은 복수형이지만 여러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엄위 하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2) 여러 모양, 여러 지역에서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들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복수형이다. 본문의 문맥상 위의 두 가지 이유 가운데 후자의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당시 지역에 따라 여러 모앙, 여러 이름으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를 자기의 이웃들과 더불어 섬겼다.

  메소보다미아는 '두 강 사이'라는 뜻으로서 유브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광대하고도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북방에만 한정시킨다면, 이곳의 왕인 구산 리사다임이 '팔레스타인'의 가장 남쪽에 있는 유다의 지도자 옷니엘과 싸울 가능성이 거의 없어진다(9,10절). 그러므로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문서들이 메소보타미아를 말할 때에주로 북방의 메소보다미아를 말했지만, 때로는 오론테스(Orontes) 강이 있는 하맛에 있는 팔레스틴 북방 지역까지 확대 적용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오론테스 강 유역으로 보면 구산 리사다임 왕과 옷니엘의 싸움에 별 의문이 제기되지 않게 된다. 구산 리사다임에 대한 기록은 다른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리사다임'에 해당하는 원어 '리쉬아타임'은 '두 배나 악하다'는 뜻인데, 아마도 이스라엘이 그에게 붙여 준 칭호인 듯하다. 그리고 '구산'이란 이름은 바벨론왕 '니므롯'의 부친인  '구스'(창 10:8)란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Pulpit, Keil & Delitzsch).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의 죄로 인해 구산 리사다임에게 팔아버리셨다. '팔았다'는 말('마카르')은 사람을 노예로 파는 것(신 21:14; 28:68)을 말한다. 이 말은 간혹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될 때에도 사용되었다(사 50:1). 그러나 본문에서는 '항복하게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통치를 받게 만드셨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부르짖었다'는 말('자아크')은 '힘을 다해 외친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즉 이것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말한다(Lange). 이스라엘은 과거에도 애굽에서 바로의 압제로 인해 힘든 노역을 할 때 그 고통을 참지 못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다(출 2:23).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그 고통 중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차적으로는 이방 우상 숭배 죄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그러한 회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다시금 구원의 손길을 베푸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한 구원자를 세우셨다. 구원자는 사사(Judge)를 의미한다. 본서에서 사사들에 대해 구원자란 명칭이 사용된 것은 사사들이 문자 그대로 단순히 재판만 수행하는 재판관(4:5)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주위의 적들로부터 구해 주는 구원자의 직무를 동시에 수행했다(15절; 5:14; 8:22).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여호와의 신이 옷니엘에게 임하셨다. '여호와의 신'('루아흐 예호와)이란 말은 성령을 말한다. 성령께서 옷니엘에게 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과 능력이 그에게 주어?다는 것을 말한다. 특별한 소명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로부터 구원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능력이란 그러한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가리킨다. 한편 옷니엘에게 임한 성령은 구약 시대의 여러 인물들에게도 임했다(대상 12:18). 여호와의 신은 가끔 백성들 가운데 몇몇 사람에게도 임했으며(민 27:18; 단 4:8), 어떤 사람에게는 특정한 봉사를 수행토록 하기 위해서 임하기도  했다(출 31:3;35:31;민 11:25). 이는 오순절 이후로(행 2:1-5)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의 심령에 영원히 내주하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요 14:17). 옷니엘이 구산 리사다임에게서 거둔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주관적인 능력과 역사로 말미암았다. 이는 이스라엘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자 즉각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치신 하나님의 사랑의 한 표현이었다(9절). 옷니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평안하게 한 지 사십 년 후에 죽었다. 옷니엘의 활약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그치고 정치적, 종교적으로 평안을 얻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옷니엘이 죽자 또다시 죄악을 범하는 전철(前轍)을 되밟는데 그 결과 모압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12-14절).

                                  < 적용과 교훈 >

1. 하나님은 이방인이 잘못할 때에 이스라엘을 들어 이방인을 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떠났을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서 이방인의 왕을 사용하셨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공의의 하나님임을 보여준다.

2.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여호와께 돌아와 회개하고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이방인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다.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이나 장계를 받을 때에 피할 길은 진지한 회개와 여호와를 찾는 것이다.  


2. 베냐민 지파의 고독한 영웅 에훗(3:12-30) (참고 지도)

2-1. 이스라엘의 범죄와 징계(3:12-14)

  "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13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을 섬기니라."

  이스라엘은 40여 년에 걸친 평화의 시기를 지내는 동안(11절) 구산 리사다임의 수하에서 8년간이나 노예 생활하던 때의 비참함(8절)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짓기 시작했다. 이러한 잘못과 죄의 악순환은 사사기 전체에 걸쳐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는 완악한 백성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은 오늘날 우리들도 범할 수 있다. 즉 평안하고 안락한 가운데서 살다 보면 자칫 향락과 정욕, 그리고 각종 죄악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우리는 평안한 때일수록 더욱 경성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에 더욱 힘써야 한다(빌 1:20).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롯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모압'의 후손이다(창 19:30-38). 그들의 거주 지역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고원 지대로서 해발 약 1,300m에 이른다. 한편 과거 그들은 출애굽 과정에 있던 이스라엘이 그 지경을 통과하려고 요청했을 때에 거절했었다(11:17). 그리고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케 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 앞에서 음란히 행하도록 만들었다(민 23:11; 24:10; 25:1-3).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하나님은 암몬과 모압 사람을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셨다(신 23:3-6). 에글론('젊은 황소'란 뜻)은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 초기에 모압의 왕이었던 자로 여리고 부근의 요단 강 서부 지역을 점령하기도 했다(1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모압을 강성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만드셨다. "강성케 한다'는 말('하자크)은 '돕는다', '붙잡는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계하시려고 모압을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만드셨다. 암몬 족속은 롯과 그 둘째딸 사이에서 난 '암몬'(창 19:38)의 후손으로 모압 족속(12절)과는 형제국이 된다. 이들은 모압 북방의 랍바를 중심한 지역에 거주하였다(신 3:11). 이들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으며(삼상 11:1-3; 왕하 24:2), 모압 족속과 함께 이스라엘의 가나안 행군을 저지하려  방해하였다(신 23:3-6). 아말렉 자손은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손이다(창 36:15,16). 이들의 거주지는 팔레스틴 남방에서 시내 반도에까지 이르는 광야지대였다. 이들은 사사 시대 동안 미디안과 화합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기드온에게 정복당하게 된다(6:1-7:25). 종려나무 성읍은 여리고 성을 의미한다(신 34:3; 대하 28:15). 모압과 암몬, 그리고 아말렉 연합군이 여리고 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성읍이 여호수아 이후 얼마동안 강력한 요새로 재건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난 후에 그곳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저주했었다(수 6:26). 그러므로 여리고는 외적의 침입을 방비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히 재건되지 못하였으며, 이로 인해 에글론의 연합군에게 쉽게 점령당했을 것이다(Keil & Delitzsch). 이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모압 북쪽에 인접해 있던 르우벤 지파를 쳤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그 결과 그들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던 요단 서편도 점령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한 셈이 된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은 십 팔 년 동안 모압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모압이 점령한 땅은 여리고 성뿐이다. 그런데 본절은 이스라엘 전체가 '모압 왕 에글론'을 섬긴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비록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에글론을 섬긴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적 특성 때문에 그처럼 표현한 듯하다. 즉 이스라엘은 비록 몇몇 개인이나 지파가 범죄하였어도 연대 책임을 강조,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2-2. 부르짖음과 하나님의 구원(3:15-25)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16 에훗이 장이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우편 다리 옷 속에 차고 17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심히 비둔한 자이었더라. 18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19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가로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고하려 하나이다. 왕이 명하여 종용케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20 에훗이 왕의 앞으로 나아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가로되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21 에훗이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22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 몸에서 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23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24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가로되 왕이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25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취하여 열고 본즉 자기 주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졌더라."  

  모압의 지배를 받는 이스라엘이 고통으로 인해 또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다시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 이스라엘의 제2대 사사인 '에훗'이 베냐민 출신이란 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시 에글론의 압제하에 있던 여리고 성이 곧 베냐민 지파에게 기업으로 할당된 성읍이기 때문이다(수 18:21). "왼손잡이"('이쉬 이테르 야드 예미노')란 말은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자'란 뜻이다. 때문에 혹자는 이를 오른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불구자를 가리킨 말로 보기도 한다. 이 번역이 맞다면 여호와께서는 오른 손에 장애가 있는 에훗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셈이 된다. 그러나 또 다른 번역이 있다. 70인역(LXX)은 이 말을 '암포테로덱씨오스', 즉 '양손잡이'로 번역한다. 이 말은 에홋이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 왼손이 발달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실은 베냐민 지파 중에 왼손잡이가 700명이나  있었던 점(20:16)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Keil & Delitzsch).

  에훗은 모압에 공물을 바치는 기회를 이용하여 모압 왕을 제거하려 했다. '그를 의탁하여'란 말('베야도')은 '그의 감독 하에' 또는 '그를 통하여'란 뜻이다. 이 말은 에홋이 모압에게 공물을 바치는 일을 관리, 감독하였다는 것을 말한다(Keil & Delitzsch). 공물('미느하')은 '예물', '선물'을 가리키는 말로 속국의 백성들이 종주국에게 바치는 '조공물'을 의미한다. 에훗은 길이가 한 규빗이 되는 칼을 만들어서 다리에 숨기고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드렸다. 규빗은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끝까지의 길이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규빗에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곧 일반 규빗과 성전 규빗이다. 그중 일반 규빗은 신약 시대에도 널리 사용되던 단위로 한 규빗은 45.6cm였다. 그리고 성전 규빗은 일반 규빗보다 손바닥 폭만큼 더 긴 53.2cm였다(겔 40:5). 본절에서는 에훗이 칼을 오른쪽 다리 옷 속에 숨겼다가 왼손으로 빼어 사용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칼은 일반 규빗으로 한 규빗인 칼이었던것 같다.  '칼'('헤레브')은 장검(sword) 뿐 아니라 단검(dagger)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예리한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훗이 준비한 칼도 예리하게 양날을 세운 단검이었다. 모압 왕 에글론은 심히 비둔한 자였다. '비둔하다'('바리')는 말은 '통통하다', '배부르다', '풍성하다'는 뜻을 가진 말로 살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찐 상태를 의미한다. 에글론은 참으로 비만한 자였는데, 그것은 그가 에훗의 칼에 찔렸을 때 그의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던 점으로 알 수 있다(22절). 사사 시대 후기의 제사장 엘리도 심히 비둔한 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에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와 관련 성경 기자는 엘리가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삼상 4:18).

  에훗은 공물을 드리는 일을 바친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갈갈의 돌 뜨는 곳에서 다시 에글론 왕에게 돌아왔다. 성경에는 '길갈'이 다음과 같이 여러 곳이 있다. 본문에서는 첫 번째인 여리고 근처의 길갈을 의미한다. 1) 여리고 근처의 길갈(수 4:19), 2) 갈릴리 지역의 길갈(수 12:23), 3) 유다 경계에 있는 길갈(신 15:7), 4) 에발 산 근처의 길갈(신 11:30), 5) 엘리야와 엘리사와 관계되었던 길갈(왕하 2:1). "돌 뜨는 곳"이란 말('페실림')의 기본 뜻은 '새긴다'는 말이다.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1) 채석장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 단어를 '돌을 뜨다'는 의미의 '파살'의 파생어로 보았기 때문이다(Keil). 2) 기념 비석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강을 건넜으므로 이를 기념키 위해 여호수아는 길갈에 돌을 세운 적이있다(수 4:19-24). 그래서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잘 알려진 곳이 되었는테 '페실림'은 바로 그곳에 세워진 기념 비석들을 가리킨다는 주장이다(A.E. Cundall). 3) '새겨진 돌' 또는 '우상들'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페실림'은 '우상'의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있다(신 7:25; 사 21:9; 렘 8:19). 이 견해는 학자들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페실림'이란 단어가 성경 다른 곳에서 대개 '우상'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어의 단수형인 '페셀'도 역시 '새겨진 형상'을 의미한다(Lange, Pulipit).

  에훗은 에글론에게 가서 왕에게 은밀하게 고할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은밀한 일"은 '은밀히 드릴 말'로서 다른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되는 '정보', 곧 보안을 요구하는 사실을 말한다. 에글론은 에훗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러가도록 지시했다. 에훗이 왕에게 나아갔을 때 그는 서늘한 다락방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고대 근동 지방의 건축 양식에 따르면 지붕 위에 통풍이 잘 되도록 여러 개의 창문을 낸 다락방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 낮의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었던 장소도 이러한 다락방이었다(막 14:15). 오늘날까지도 근동 지방에서는 지붕 위에  이러한 다락방을 만들어 쉬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Shaw, Wycliffe). 에훗은 왕에게 나아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그에게 고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에훗이 실제로 에글론에게 전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홋을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로 세우셨을 때, 이미 그에게는 에글론을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명'은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에글론은 에글론은 에훗의 말이 매우 비밀스런 말일 것으로 생각하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바리에서 일어나서 에홋에게 바짝 다가갔다. 바로 그 때에 에훗은 왼손으로 오른 편 다리에 있는 칼을 빼내어 에글론의 몸을 찔렀다. 그리고 이 칼은 에글론의 몸을 뚫고 등뒤에까지 칼날이 낭ㄹ 정도로 힘있게 들어갔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의 칼날이 에훗에 의해 힘있게 에글론의  몸에 꼽혔던 것이다. 에글론은 비둔했기 때문에 칼날에 기름이 엉겨붙었다. 에훗은 에글론의 몸에서 칼을 빼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에홋은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에글론을 응징하였다. 그리고 나서 에홋은 암살을 은폐하기 위해서 다락방에 있는 문들을 모두 닫아 잠갔다. 왜냐하면 문이 잠겨 있을 때에는 신하들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24절).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왔다. 그러나 그들은 다락방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왕이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발을 가리운다"는 말은 '용변을 보거나' 또는 '잠을 자는 일', 또는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왕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신하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열쇠를 가져다가 문을 열고 비로소 자기들의 왕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오래 기다렸다"는 말(와야히루 아드 보쉬)은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때까지 기다렸다'는 말이다. 이 말은 왕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서 신하들이 방심한 것을 후회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2-3. 승리와 평화(3:26-30)

  "26 그들의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27 그가 이르러서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28 무리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서 모압 맞은편 요단 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29 그 때에 모압 사람 일만 명 가량을 죽였으니 다 역사요 용사라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30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그러나 신하들이 기다리는 사이에 이미 에훗은 그 곳을 피하여 돌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고 도망하였다. 스이라("삼림"이란 뜻)은 성경에서 본문에만 나타나는 지명으로 그 말의 뜻대로 '삼림'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Hervey). 27절은 이곳이 에브라임 산지의 어느 한 곳이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그곳은 에훗이 추적자들로부터 피하기 쉬은 곳이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에 이르러서 군대를 소집하는 나팔을 불었다. 에브라임 산지는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 중에 울창한 삼림이 있는 구릉 지대를 말한다. 이곳은 가나안 중부에 위치한 곳으로 대개 에스드랠론 평지에서부터 유다 산지와 맞닿는 지점까지를 가리킨다(수 16:1). 에훗이 나팔을 분 것은 백성들을 소집할 뿐 아니라(6:34; 삼상 13:3) 전쟁(비상 사태)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에훗의 나팔 소리를 들은 이스라엘 지손들은 모압과 싸우기 위해서 산지에서 내려왔다. 에훗은 선두에 서서 이렇게 백성들에게 외쳤다.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을 너희 손에 붙이셨다." 에훗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권능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가 있었다.

  이때에 모압은 자기들의 왕 에글론을 잃고 지휘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에훗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훗을 따라 가서 모압 맞은 편에 있는 요단 강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모압으로 피하기 위해 요단 강을 건너는 모압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여기서 말하는 '요단 강 나루'는 모압 땅 맞은 편, 여리고 앞의 요단 강 어느 한 지점일 것이다. 에훗이 이처럼 요단 강나루를 지킨 것은 이중 목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있던 모압군(13절)이 강을 건너 모압 땅으로 도망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함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모압 본토에서 원군이 요단 강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에훗의 봉쇄 작전이 주효하여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침입하였던 모압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게 되었다(29,30절). 이때에 죽은 모압 사람들은 일만 명 가량이 되었는데, 모두 다 강한 군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사람도 살지 못하고 모두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 '역사'('솨멘')는 '신체적으로 강한 자'를 가리키며, '용사'('하일')는 '전쟁에 능한 군사'와 재산과 권세를가진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모압은 이스라엘에게 항복을 하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은 이로부터 80년 동안을 전쟁이 없이 평안한 세월을 보낼 수가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사사 옷니엘의 치하에서 누렸던  태평 시대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기간이다(11절). 이 기간은 전 사사 시대 중에 평화를 누린 가장 긴 기간이었다(5:31; 8:28; 10:2, 3;12:7-15; 16:31).

                                   * 적용과 교훈 *

  전쟁의 승패는 군사가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 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는 그 많은 군사를 가지고도 모압을 이기지 못했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부르짖을 때에는 한 사람만 가지고도 모압을 이길 수가 있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오른 손에 장애를 가진 에훗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을 모압의 손에서 구원해 내실 수 있었다.  


3. 소(小) 사사 삼갈(31)

  "31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삼갈은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과 더불어 6인의 소 사사로 불리운다. 삼갈은 본문 외에 드보라의 노래에서 한번 더 언급된다(5:6). 그렇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대의 형편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에홋의 뒤를 이은 사사로서 드보라의 활동 시기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에홋 당시 이스라엘은 80년 동안 태평했으니(30절) 아마 삼갈은 에훗이 죽고 난 후 드보라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까지의 중간에 일부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에 잠시 사사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팔레스타인이나 수리아에서는 밭을 갈 때 길이 약 2.5m 되는 둥글고 두꺼운 막대기를 사용했다. 그 막대기의 한쪽 끝은 뾰족해서 소를 몰 때 찌를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쪽 끝은 조그마한 삽이 달려 있어서 밭을 손질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Keil & Delitzsch). 그런데 삼갈이 이러한 막대기로 600명의 블레셋인들을 물리쳤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드보라(4-5장) (참고 지도)

 4-1. 범죄와 징계, 그리고 부르짖음(4:1-3)

  "1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3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에훗의 죽음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능력을 대행한 지도자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또 다시 이스라엘이 타락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였으니 에훗의 치하에서 누렸던 것과 같은 평화(3:30) 역시 끝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던 이스라엘(3:9)이 이처럼 또 다시 죄악의 길에 빠져 든 것은 마치 방금 목욕한 돼지가 다시 오물 속에서 뒹구는 것과 같이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려운  죄의 속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삼가 자신을 살펴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살전 5:22). '하솔'(Hazor)은 납달리 지파의 지경에 속하는 북부 가나안 성읍 중 하나(수 19:36)로서 가장 강력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새였다(A.E. Cundall).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이곳은 갈릴리 호수 북쪽에 위치한 메롬 호수(수 11:5,7) 부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이전에 이미 여호수아의 군대에 의해 파괴된 후 납달리 지파의 지배하에 있었다(수 11:1-14). 한편 여호수아가 그곳을 점령할 때도 '야빈'이 왕으로 다스리고 있었으나(수 11:1), 본절의  야빈은 그 당시의 왕과 같은 인물은 이니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때로부터 벌써 1세기가 훨씬 넘은 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하솔을 다스렸던 '야빈'이라는 칭호의 또 다른 왕으로 보아야 한다. 아마 '야빈'(Jabin)이란 말은 애굽 왕의 공식 칭호인  '바로'(Pharaoh)나 블레셋 왕의 공식 칭호인 '아비멜렉'(Abimelech)처럼 하솔 왕을 가리키는 공식 칭호였던 것 같다. 한편 그가 여호수아 군대로부터 하솔성을 어떻게 되찾아 세력을 키웠는지는 알수 없으나 아마도 납달리 지파의 지경에 남아 있던 벧세메스와  벧아낫 거민을(1:33) 중심으로 이스라엘에 대항했던 것 같다.

  '이방'이란 말('고임')은 '열국'(nations)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어떤 백성이나 지명에 대한 고유 명사인지, 아니면 여러 족속의 집단을 의미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개역  성경  창  14:1과  수 12:23에서는 이 단어를 고유 명사로 생각하여 문자 그대로 '고임'이라 하였다. 그리고 사 9:1에서는 '고임'을 '갈릴리' 지역과 동의어로 보고 '갈릴리'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고임'이란 단어에 정관사가 붙어 있으므로 이는 고유 명사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임'이란 당시 '하로셋'에 거하던 가나안 여러 족속을 지칭하는 듯하다. 한편 하로셋(Harosheth)이란 지명은 성경 중 이곳에만 나온다. 따라서 이곳 역시 그 위치가 분명치 않은데, 디베랴 호수 남쪽의 갈릴리 평원 어느 한 지점이었던 것 같다. 고대 전투에서 철제 병기의 사용은 전략 전술에 못지 않게 승리의 관건으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당시 이 무기를 가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은 철 병거를 지닌 가나안 거민 중 많은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다(1:19). 이는 곧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평야 지대를 많이 점령치 못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철 병거'는 산악 지대에서는 사용될 수 없고 오직 평야 지대에서만 사용되는 전투 장비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그들은 또 다시 여호와께 부르짖게 되었다.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은 12지파를 모두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솔을 중심한 지역의 납달리 지파와 그 지파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6,10절). 왜냐하면 당시 야빈이 철병거  900승으로 이스라엘 12지파 전체를 점령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학대하다'에 는 말('라하츠')은 '비틀어 짠다'는 뜻이다. 이는 곧 포도즙을 짜기 위해 밟아 으깨듯 이스라엘에 대한 야빈의 압제가 매우 혹독했음을 시사해 준다.


 4-2. 이스라엘의 어미 드보라(4-7)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6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이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 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랍비돗이 누구인지는 성경이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 이름의 뜻은 밝혀졌는데 곧 '번개' 또는 '횃불'이다. 때문에  일부  유대주석가 및 몇몇 학자(Wellhausen, 1844-1918, 독일의  신학자)들은 '랍비돗'이 바로 '바락'(6절)일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바락'이란 이름의 뜻 역시 '번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보라는 곧 바락의 아내인 셈이다. 그러나 성경 그  어디에서도 드보라가 바락의 아내로, 바락이 드보라의 남편으로 언급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런 견해는 전혀 신빙성이 없다. 한편 또 다른 학자(Lange)는 '랍비돗'의 뜻이 '횃불'인 점을 중시 '랍비돗의 아내'란 말을 '드보라'를 수식해 주는 수식어로 보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를 '불꽃과 같은 여인 여선지 드보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역시 '아내'란 말을 '여인'으로 대치하는 등 지나치게 인위적인 경향이 많다. 따라서 우리는 랍비돗을 문자 그대로 드보라의 남편으로 보는 것이 좋다. 성경상에서 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그가 이미 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경에서 여자로서 선지자직을 감당한 자로는 드보라 외에 모세의 누이 미리암(출 15:20)과 훌다(왕하 22:14)가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예언자적 기능을 은사로 받았다.  드보라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 나무 사이에 고했으며, 사람들은 그녀를 찾아 가서 재판을 받았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는 납달리 지파의 '라마'(수 19:36)와는 다른 곳이다. 에브라임 라마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수 18:25) 예루살렘 북쪽 약 9km지점에 있다. 훗날 예레미야 선지자가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렘 31:15;마  2:18)라고 읊었던 라마가 바로 이곳이다. '드보라의 종려나무'란 이름은 드보라가  종려나무 아래서 재판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본서 저자가 본서를 기록할 때에도 그 나무가 '드보라의 종려나무'로 알려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기념하여 그렇게 칭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드보라가 그 종려나무 있는 곳에서 살았다는 것인지, 그곳에 앉아 재판만을 주관했다는 것인지 하는 점에 있다. 본문의 문맥 만으로서는 잘 해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거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브'가 '거주하다'란 의미와 '앉다'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려나무'가  드보라의 재판과 관련하여 언급되었으므로, 이는 그녀가 재판 때마다 그곳에 앉아서 재판을 진행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더 낫다.

  재판하는 일은 사사 시대 당시 재판하는 일은 사사의 임무 중 하나였다. 사사는 전쟁시에 자기 민족의 구원자 역할을 담당했지만 평상시에는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다스림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했다. 특별히 드보라는 여자로서 사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되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하여 '대언 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래서 저자는 드보라의 이름을 언급할 때에 '여선지'(이솨 네비아)라는 말을 덧붙였던 것이다(4절). 그런데 그녀가 멀리 북쪽 지방인 납달리 게데스에까지 사람을 보내어 바락을 부른 것은 지파를 초월한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 준다. 드보라는 자기 지파가 아니었으나 당시 납달리 및 북쪽 지방의 지파들이 야빈의 압제로 당하는 고통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납달리 출신의  바락을 불러 문제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납달리 게데스는 납달리 지파가 얻은 견고한 성읍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성중에 하나였다(수 19:37). 이 성은 유다 지파에 속한 '게데스'와 다른 곳으로서(수 15:23), 야빈의 도성인 하솔 성에서 동북쪽으로 4.8km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드보라는  자신이 여자였기 때문에 직접 군대를 지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바락에게 진군하도고 지시했다.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은 하솔 왕 야빈으로부터 가장 많은 괴로움을 당한 지파였기 때문에 대적을 치는 일에 선봉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이 전투에는 납달리, 스불론 지파와 인접한 잇사갈 지파도 참여했었다(5:15). 다볼 산은 해발 528km 되는 산이다. 이곳은 갈릴리 바다에서 남서쪽으로 약 16km 정도 떨어진 이스르엘 골짜기에 속해 있었다. 4세기의 초대 교회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모습이 변형되신 변화산(마 17:1-8; 막 9:2-8; 눅 9:28-36)이 바로 이 다볼 산이라고 하는데 분명하지는 않다(Keil & Delitzsch). 드보라가 이 곳을 야빈과의 접전지로 택한 이유는 이곳이 철병거를 다룰 수 없는 장소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녀는 시스라와 그 군대들을 기손 강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손 강은 다볼 산과 그 부근 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스르엘 골짜기를 지나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다. 따라서 이 강은 잇사갈, 스불론 그리고 아셀 지파의 영토를 모두 거쳐 흐르고 있으며, 그 길이는 약 40km 정도 되었다. 이 강은 겨울의 강우기에는 물이 범람하여 행인들의 통행이 어려웠다고 한다. 이 곳에는 이스르엘  평지가 있어서 시스라가 철 병거를 집결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하나님은 시스라와 그 군대와 무리들을 바락의 손에 붙여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붙인다'는 말('나탄')은 '꼼짝 못하게 한다', '패하게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야빈과 시스라에 대한 바락의 승리를 예고하심으로 바락에게 용기를 얻을 수 있게 해주셨다.


 
4-3. 싸우기를 주저하는 바락(8-10)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9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일만 인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그러나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출전해야만 자기도 출전하겠다고 주장했다. 바락이 이렇게 주중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1) 바락이 드보라의 예언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2) 바락은 전쟁하는 것이 두려워서 예언의 능력을 가진 드보라의 동행을 원했다(G. Bush). 3) 바락이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드보라의 동행을 요청했다(Keil, Lange). 이 중에서 가장 지지를 많이 받는 것은 세 번째 견해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 주저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모세도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을 때 완강히 거절하였고(출 4:10), 사사 기드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을 때 거절했다(6:15). 사실 만약 바락이 불 신앙적이거나 대적들을 정말로 두려워했다면, 하나이 그를 선봉장으로 내세우지 않으셨을 것이다. 드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바락과의 동행을 약속했다. 이것은 바락을 격려하고 그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아마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지시와 명령을 받아 바락에게 대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Matthew Henry). 그러나 드보라는 자기의 동행으로 인해 바락의 군대가 시스라에게 승리하기는 하지만 그 결정적인 공은 시스라가 아니라 여인의 손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17-24절). 하나님은 바락이 스스로 선봉장이 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결정적인 승리의 공을 믿음을 가진 다른 여인에게 돌리셨다. 이것은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많음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삼상 17:47). 드로바는 이 이야기를 전한 후에 바락을 따라 게데스로 동행하였다. 바락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들을 게데스로 불렀으며 그 명령을 받고 일면 명의 군사가 그에게 나아왔다. 이러한 일은 당시 바락이 가나안 북부 지방의 이스라엘을 통치하였고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바락은 이 군사들과 함께 드보라와 동행하여 게데스로 행했다.


 4-4. 전쟁에서의 승리(11-16)

  "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 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16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에 겐 사람 헤벨이 있었다. 헤벨은 자기 족속이 있는 것을 떠너서 게데스 가까운 사아나님 상수리 나무 곁에 자기의 장막을 치고 살았다. 다른 곳에는 모세의 장인을이 '르우엘'(출 2:18; 민 10:29)이나 '이드로'(출 3:1;4: 18:18:1)라고 부른다. 학자들은 그의 이름이 르우엘이었으며, 이드로는 제사장이 된 후에 얻은 공식 존호(尊號)라고 말한다. 그러면 '호밥'은 누구인가? 대개의 학자들은 그가 모세의 처남이라고 말한다. 그 근거는 '장인'과 '처남'을 뜻하는 히브리어가 동일한 '호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민 20:29 참조). 모세의 장인은 겐 족속 이며 또한 미디안 족속이었다(1:16). 아마도 겐 족속과 미디안 족속은 상호 친밀한 유대 관계를 가졌거나 서로 동화되어 한 민족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1:16 참조). 드보라와 바락에 관한 기사 도중 갑작스레 겐 사람 헤벨이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이후 전개되는 시스라와의 전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자가 바로 이 '헤벨'의 아내인 '야엘'이었기 때문이다(17-24절). 그러므로 사사기 저자는 이 전쟁에 결정적인 공을 세울 헤벨의 아내 야엘의 가문과 신원을 미리 소개하였던 것이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자손들은 팔레스틴으로 이주 후 유다 지파의 경내에서 거주했다(1:16). 그런데 헤벨은 그 가족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납달리 지파의 경내인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등지고 이스라엘의 압제자 하솔 왕 야빈과 손을 잡았다(17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헤벨의 아내를 들어서 시스라를 죽이는 일에 사용하셨다. 이것은 인간이 헤아리기 어려운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아난님 상수리나무는 문자적으로 '사아난님에 있는 상수리나무'란 뜻이다. 무슨 사연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 나무는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사아난님'은 납달리 지파의 남쪽 변경에 있던 곳으로(수 19:33) 오늘날 '칸 엣 투잘'(Khan et Tujjar)로 불리우고 있으며, 아다미에서 남동쪽으로 약 6.4km 떨어진 '벧스안-다메섹 도로'의 중도에 있다.

  바락과 그의 군사 일만 명이 다볼 산을 거점으로 전투 태세를 취한 일은 곧 시스라에게도 전해졌다. 시스라는 이 소식을 듣고 모든 철병거과 군대를 하로셋에서부터 기선 강으로 소집시켰다. 이것은 시스라의 군대를 기선 강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드보라의 예언이(7절) 성취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편 '기손 강'은 겨울 우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말라 있는 건조천이며, 그 주위에는 평지가 형성되어 시스라가 철 병거를 배치시키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마음을 굳게 하여 전투에 임하라'고 말했다(수 8:7). 일반적으로 "일어나라'는 말은 어떤 일로 인해 심령이 위축된 사람에게 '힘을 내라'는 격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수 7:10). 드보라가 이렇게 바락에게 명령을 내린 것은 '여호와께서 인도하심'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드보라는 바로 오늘이 하나님께서 시스라를 바락의 손에 붙여 주신 날이라고 선언했다. 드보라는 바로 오늘이 20년 동안 가나안 왕 야빈에게 받았던 압제에서 해방될 날이라고 예고했다.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바락보다 앞서서  나가 시스라와 싸우실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제적인 장군은 바락이 아닌 바로 하나님이었다. 이러한 발언은 하나님을 대행하여 전쟁을 수행하던 자인 바락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또한 바락이 수행하는 전쟁에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셨다는 사실은 바로 그 전쟁이 단순히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하솔을 징계하기 위한 전쟁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러난 하솔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한 거룩한 전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신 9:3; 삼하 5:24; 시 68:7; 사 52:12).

  이 말을 들은 바락은 시스라와 싸우기 위해서 다볼 산에서 내려갔다. 드보라와 바락의 탁월한 전략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즉 그들은 시스라의 군대가 기손 강 평지에 집결한 것을 보고서(13절) 다볼 산 고지에 매복시켜 두었던 일만 명의 군사들로 하여금 일시에 기습 작전을 감행하게 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미리 예고하신 대로 시스라와 그의 군사들을 바락 앞에서 패하여 도망치게 하셨다. 패한다는 말('와야함')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에 의해 참패당하는 것을 말한다(출 23:27; 수 10:10; 시 144:6). 시스라는 급하여 병거에서 내려 뛰어서 도망쳤다. 이처럼 시스라가 병거를 버리고 도망친 것은 하나님께서 갑자기 기손 강을 범람하게 하여 그 주변 평지에 집결해 있던 시스라의 철병거와 군사들을 휩쓸어 버리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 진흙탕이 된 평지에서 철병거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시스라는 도보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 방법으로 시스라의 군대를 격파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4-5. 야엘이 시스라를 죽임(17-24)

  "17 시스라가 도보로 도망하여 겐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하솔 왕 야빈은 겐 사람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음이라. 18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덮으니라. 19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우라 내가 목이 마르도다 하매 젖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우고 그를 덮으니, 20 그가 또 가로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21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22 바락이 시스라를 따를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가로되 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네게 보이리라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말뚝은 그 살쩍에 박혔더라. 23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바락은 시스라의 병거들과 군대들을 하로셋까지 추격하였다. 바락은 기손 강의 범람한 물로 인해 기동력이 떨어진 시스라의 철병거와 군대를 추격하여 전멸시키려 했다. 그때에 시스라의 패잔병들이 도망간 친 곳은 '이방 하로셋'으로 시스라가 살던 장소였다(2). 아마도 시스라의 군대는 자기들이 주둔지로 후퇴하여 원군과 합세하여 다시 싸울 생각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락의 칼에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 그때에 시스라는 도망쳐서 겐 사람 헤벨의 아내인 야엘의 장막에 이르게 되었다. 헤벨의 가정이 거주한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은 게데스와 인접해 있었으므로(11절) 당연히 야빈이 거주하던 하솔과도 매우 근접해 있었다(6). 따라서 시스라가 이곳까지 도망한 것은 하솔 왕 야빈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한편 시스라가 헤벨의 가정을 찾아갔을 때 헤벨의 아내 야엘이 그를 알아본 것을 보면 헤벨의 가정은 하솔 왕 야빈과 그 나라의 유력한 인사들과 알고 지낼 만큼 세력 있는 집안이었을 것이다. 헤벨은 그 동안 자기를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을 떠나 이스라엘의 대적의 땅에서 잘 살고 있었다. 야빈과 헤벨 사이에 두터운 친교 관계가 형성되어 서로 다툼이나 분쟁이 없이 평화롭게 지냈다(Matthew Henry). 헤벨의 아내는 시스라를 보고 그를 영접하였다. 그녀는 시스라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자기 장막에 숨기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야엘이 시스라를 '나의 주'라고 한 것은 그가 곧 자신의 생명까지 관장할 수 있는 통치자로 인정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야엘의 환대로 인해 시스라는 경계를 늦추고 방심하게 되었다. 시스라는 그녀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요청했으며 그녀는 우유를 가져다가 마시게 했다. 이는 시스라가 바락으로부터 피난하느라 얼마나 지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야엘이 마시게 한 유유는 반쯤 '버터'가 된 최고급 우유였으며, 우유를 담은 부대는 유목민들이 가지고 다니던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우유나 포도주를 담는 자루였다. 이러한 환대에 안심하게 된 시스라는 그녀에게 장막 문 앞에 서 있다가 사람들이 와서 자기를 찾으면 아무도 없다고 말하라고 했다. 헤벨은 집을 짓고 살았던 것이 아니라 장막을 지어 거주했는데(11,18절),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직업이 유목이었음에 틀림없다. 시스라가 헤벨, 즉 남자의 거실을 피해 야엘의 장막(17절) 곧 여자의 거실에 숨어들고서 보안을 부탁한  것은 그가 심리적으로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 있음을 반증해 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안심하고 몸을 의탁한 야엘의 거실에서 그의 형을 집행하셨다. 시스라는 야엘을 통해서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 했지만, 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아내어 심판하셨던 것이다(시 139:7-8). 이 말을 하고 시스라는 피곤하여 잠이 들고 말았다. 헤벨의 아내는 그가 잠이 들자마자 장막 줄을 박는 말뚝을 들고 방망이로 그의 살쩍에 박아 버렸다. 고대 근동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장막 세우는 일은 주로 여인들이 하던 일이므로 여인들은 망치로 말뚝을 박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G.F.Moore). 그렇다면 야엘이 장막 말뚝으로 시스라의 살쩍, 즉 머리의 관자놀이(temple) 부분을 꿰뚫은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야엘은 시스라를 추격하는 바락에게 잠든 시스라를 넘겨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그를 죽인 까닭은 아마 바락의 도착이 지연되는 동안 시스라가 원기를 회복하여 도망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인해 시스라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여기서 '기절하다'는 말('야에프')은 '탈진한다'는 뜻이다. 즉 시스라는 관자놀이에 말뚝이 박힌 즉시로 까무러쳐서 발악하다가 죽었다. 이로써 드보라의 예언(9절)이 성취되었다.

  마침내 시스라를 추격해 온 바락이 야엘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바락은 시스라가 도망친 것을 알고서 그 뒤를 추격하여 하로셋과 그 일대를 수색하다가 야엘의 집에 이르게 되었다(16절). 야엘은 밖에 나가 그를 맞이하고 자기가 죽인 시스라의 시체를 보여주었다. 이로써 시스라를 죽이는 영예를 바락이 취하지 못하고 영니이 취할 것이라고 하던 드보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스라엘이 야빈을 이기게 하셨다. 그리고 이후부터 바락과 이스라엘은 점차적으로 야빈을 이기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들을 졈멸하기에 이르렀다. 전쟁의 모든 과정에서 드보라와 바락 그리고 야엘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활약 때문에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방인을 징계하며 언약의 백성을 구원한 장본인은 바로 하나님이시니 그분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서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정확히 언제 가나안 왕 야빈을 완전히 전멸시켰는 지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이후로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는 기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보아 가나안 왕 야빈의 진멸 사건은 가나안인들이 힘을 잃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4-5. 드보라의 찬송(5장)

  가. 노래의 목적(1-9):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를 찬양함

  "1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가로되, 2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5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7 이스라엘에 관원이 그치고 그쳤더니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이스라엘 사만 명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9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라. 여호와를 찬송하라!"

  1절은 이 노래가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함깨 부른 노래라고 말한다. 그러나 3, 7절을 보면 이 찬송의 주어가 '드보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드보라'가 부른 노래였을 것이다. 그려면 왜 1절은 이 노래가 두 사람이 함께 부른 것이라고 하고 있는가? 드보라는  야빈 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찬미하는 일에 모든 백성들이 동참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의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하여 삽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여인의 노래는 이 노래 외에도 '미리암의 노래'(출 15:21)와 '한나의 노래'(삼상 2:1-10), 그리고 '마리아의 노래'(눅 1:46-55)가 있다.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했다는 말"('비페로아 페라오트 베이스라엘')은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스라엘의 힘있는 자들이 힘을 다해 헌신했다는 말이다(Keil & Delitzsch).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 전쟁을 위해 솔선 수범하여 최선을 다해 헌신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백성들도 즐겁게 헌신했다. 이는 바락이 군사를 모집할 때에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서 즉시 일만 명이 지원한 것(4:10)과 다른 지파가 협력한 것(4,15절)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이렇게 자원하여 헌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드보라는 승리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드보라는 이방의 왕과 방백들을 향해 귀를 기울이라고 요청한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브보라가 노래할 분은 여호와 하나님, 즉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노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열왕들은 오직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며, 경배해야할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었다. '찬송한다'는 말('자마르')은 '연주하다'는 말이다. 이는 드보라가  단순히 노래만 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해서 찬송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일찍부터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께 찬송하는 예배 법이 발달되어 있었다(출 15:20; 삼하 6:5).

  드보라는 자기 선조들의 출애굽 노정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역사적인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 강림하셨다'는 모세의 회상과 관계가 있다(신 33:2). 드보라는 출애굽 때와 같이 이번 전쟁에서도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것을 노래하였다. 세일과 에돔은 둘 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여정 때에 지나온 사해 남동쪽의 에돔 족속의 산지를 말한다(신 33:2). 땅이 진동했다는 말은 출애굽 때에 나타난 하나님의 크고 두려운 권능과 역사를 의미한다(Matthew Henry). 드보라는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권위 앞에 모든 피조물들이 두려워하며 떨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삼하 22:8; 시 68:8; 77:18; 나 1:5; 합 3:6).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다"는 말은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 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노아 홍수를 연상케 한다. 즉 노아 홍수 때에도 하늘의 창들이 열리고 땅의 샘이 터져 40주야 비가 쏟아졌다(창 7:11,12). 드보라는 과거에 발생했던 구원 사건을 중심으로 노래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생생함을 전해주고 있다. '시내 산'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의 율법을 베푸신 장소였다(출 19:18).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모세와 대면하실 때 그 주위는 연기로 자욱함과 동시에 온 산이 진동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위엄과 영광과 권세를 나타내셨다(출 19:16-19). 그런데 드보라가 여기서 그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최근에 드볼 산과 기손 강을 중심으로 시스라와 싸워 대승한 사실(4:12-16)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는 사건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삼갈의 날과 야엘의 날은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족과 하솔 왕 야빈의 압제 하에서 고통당하던 때를 가리킨다. 이때 '삼갈'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던 블레셋 사람 600명을 소모는 막대기로 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했었다(3:31). 그리고 '야엘'은 이스라엘의 압제자 야빈 왕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를 처치했다(4:17-22).

  블레셋 족속과 야빈이 이스라엘을 압제 할 때에는 이스라엘은 경제가 핍절되었고, 무법 천지가 되어 백성들에게 평화가 없었다. 이때에는 블레셋족과 야빈의 압제가 극심하여 상거래도 없었고 법질서도 마비되었기 때문에 노상에서 약탈 행위가 빈번히 자행되었다. 그러므로 이 때에는 약탈, 폭행을 피해 행인들은 큰길로 다니지 않고 소로로 다녀야 할 형편에 처해 있었다. 이때에는 이스라엘에 관원(강력한 지도자)들이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드보라를 이스라엘의 사사와 지도자로 세워 주셨다. '어미'라는 말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보호자'란 의미이다((Keil & Delitzsch). 드보라는 자신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지도자라는 말을 '어미'란 표현으로 나타내었을 뿐이다. 이스라엘에 이방인의 압제에 빠지게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우상과 이방 신들을 '새 신들'(new gods)이라고 한 것은 이 우상들이 과거의 이스라엘 조상들이 알지 못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신 32:17)(Keil, Lange). 이스라엘은 영원하시고 참된 하나님을 버리고 마치 옷을 갈아입듯이 우상을 섬겼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성문 앞에 이르렀을 때에도 아무도 적을 방어하거나 공격하려고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 번 전쟁에서는 사만 명의 군사가 참여했으며 이스라엘의 방백이 자원하여 출전하였다. 그러므로 드보라는 자신과 함께 전쟁에 참여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존경과 사랑의 찬사를 보내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가 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드보라는 이 일로 이해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스라와의 싸움을 위해 출전하였던 이스라엘의 주력군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군사 일만 명이었다(4:10).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만 명'은 어떻게 된 것인가? 아마 이는 이들 주력군을 도와 같이 전쟁에 참전하였던 이스라엘 여러 지파의 병력을 합한 대략적 수효일 것이다. 이 전쟁에는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뿐 아니라 에브라임, 베냐민, 므낫세 반, 잇사갈 지파도 함께 참여했었다(14-15).


  나. 지도자들의 헌신을 기림(10-12)

  "10 흰 나귀를 탄 자들, 귀한 화문석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선파할지어다. 11 활 쏘는 자의 지꺼림에서, 멀리 떨어진 물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그의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12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흰 나귀 탄 자, 화문석에 앉은 자, 길에 행하는 자들은 이스라엘 모든 계층, 모든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흰 나귀를 탄 자들은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을 말한다. 이것은 어린 나귀를 탄 것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상류층에 속한 신분임을 암시하는 것과 같다(10:4; 12:14). 고대 근동에서 나귀는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다(창 22:3; 수 9:4; 느 13:15). 그런데 흰색의 나귀는 좀처럼 드문 짐승이니, 이것을 타고 다니는 것은 큰 특권이었다(Keil, P. Cassel). 화문석에 앉은 자들은 귀족들을 의미한다. '화문석'은 지금도 평민들은 구하기 힘든 귀하고 비싼 물건이다. 따라서 '화문석에 앉은 자들'이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부유하고 여유 있는 계층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길에 행하는 자들은 일반 평민 또는 행상(行商)을 가리킨다. 이들은 압제자의 시대에는 마음놓고 길을 다닐 수 없었지만(6절), 이제는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드보라는 이 모든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구을 찬송하라고 요청한다.  '활 쏘는 자'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말한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심하게 괴롭혔는지는 4:3에 잘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졌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에 대한 대적들의 압제가 끝이 났다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들을 진멸하셨으니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다시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다(10절). '물긷는 곳'은 우물을 가리킨다. 고대 근동 지역의 우물은 마을 어귀에 있었다(요 4:5-8,28). 그래서 대적의 압제 하에 있을 때에는 여인들이 마음놓고 물을 길으러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적들을 물리쳐 주셨기 때문에 안심하고 물을 길으러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드보라는 이러한 일에 대해서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찬송하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에는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었다.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백성들의 주요 모임장소였다. 이 곳에는 상거래와 공식 재판, 중요 사항 공지, 친교 등이 이루어졌다(창 19:1;신 21:19;느 13:19). 그러나 이스라엘이 야빈과  시스라의 군대와 전쟁하는 동안에는 이러한 회합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평화가 깃들어서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다시 성문으로 모여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드보라는 네 번이나 ' 스스로 깨어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판양하라고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다. 그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앞에서 영적으로 깨어 그 영광을 힘있게 찬송할 책임이 있었다. 여기서 '사로잡은 자'란 바락이 시스라군을 진멸할 때 생포한 포로들을 가리킨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이제 그들을 끌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가라 한다. 이는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Lange, Matthew Henry).


 다. 이스라엘 용사들이 소집됨(13-18)

  "13 그 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 14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요, 그 다음에 베냐민은 너희 백성 중에 섞였으며, 마길에게서는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15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16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찜이뇨, 르우벤 시냇가에서 마음에 크게 살핌이 있도다. 17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18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야빈의 압제 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정에 시달렸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재산과 가족을 외국으로 피신시키거나 아니면 그 와중에서 적에게 살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0년 동안 야빈의 압제 하에서도(4:3) 굳건히 살아 남은 백성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곧 시스라와의 전투에 참여한 것을 가리킨다(4:6-10). 여기서 '용사'란 야빈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와 그의 군사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대적과 싸우시기 위해 나서신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여호와께서  강림하셨다'는 것은 그분이 눈에 보이게 이 땅에 임하신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는 그분이 초자연적인 이적으로 적들을 패퇴시키며 이스라엘을 도우신것을 가리킬 뿐이다(4:15). 에브라임 지파 중에서 이번 전투에 출전했던 사람들은 아말렉 족속이 살던 곳에 거하던(12:15) 사람들이었다. RSV와 공동 번역은 '아말렉'을 '골짜기'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 내에서 아말렉 족속이 거주한 곳이 에브라임 산지와 골짜기 주변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베냐민은 자기 지파의 이름으로 참전하지 않고 여러 지파들 틈에 섞여 개인 자격으로 참전했다. 이 는 그들이 팔레스타인 남부에 살았기 때문에 북부 지파와 달리 야빈의 압제를 덜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길은 요단 서편에 거하는 므낫세 반 지파를 의미한다. '마길'은 므낫세의 독자였다(창 50:23). 그런데 '마길'의 자손, 곧 므낫세 지파 중 절반은 요단 동편에  정착하였으며(수 13:29-31) 나머지반 지파는 요단 서편에 거주하였다(수 17:1-13). 이 지파는 아셀, 스불론, 잇사갈 지파와 북쪽으로 경계를 이루며 살았으므로 잇사갈 지파의 경내에 있는 다볼 산(4:12)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므낫세 지파에서는 군 지휘관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개인 자격으로 전쟁에 참전하였다. 스블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다.  '대장군'('소페르')은 '계수하는 자' 또는 '서기관'이란 뜻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단어이다(Keil). '대장군의 지팡이'는 서기관이 잡은 붓을 의미한다. '서기관'은 전시에 군사를 모집하는 일을 맡았다. 스불론 지파는 이번 전쟁에서 군사를 모집하는 서기관의 직무를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잇사갈 지파도 스불론, 납달리 지파를 돕기 위해 드보라와 행동을 같이 하였다. 이들은 방백들이 친히 자기 지파를 인솔하여 전쟁에 참여하였다.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이 가졌다는 말은 바락이 잇사갈 지파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이 번 전쟁에서 잇사갈 지파가 바락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잇사갈 지파는 바락의 군사와 함께 시스라의 군대를 치기 위해 다볼 산에서 기손 강가로 내려갔다(4:14,15). 르우벤 지파가 차지한 요단 동편 땅에는 시내와 목초지가 많이 있었다(수 13:15-23). 따라서 드보라는 르우벤 지파의 영토를  '르우벤의 시냇가'라는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르우벤 지파는 타 지파로부터 전쟁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큰 결심'이란 말은 그들이 전쟁에 참여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토론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16). 그러므로 드보라는 르우벤 지파가 다른 지파의 전쟁 소식을 듣고도 평안한 목자의 생활에 안주한 것에 대해  비꼬았다. 다른 지파들은 전쟁의 나팔 소리를 듣고 모두 참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14,15절) 르우벤 지파는 편안히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으며, 탁상 공론만을 벌였다. 기록에 의하면 르우벤 지파는 갓 지파와 함께 이스라엘 여러 지파 중에서도 가장 많은 가축들을 소유하고 있었다(민 32:1). 그들이 요단 서편 땅에서 기업을 차지하지 않고 요단 동편의 모압 북방 지역을 기업으로 차지한 까닭도 그 곳이 목축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목축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다. 마음을 크게 살폈다는 것은 '끝도 없이 토론만 벌이고 있다'는 말이다(공동번역).

  '길르앗'은 넓은 의미에서 요단 강 동편의 전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중심부는 갓 지파가 차지하고 있지만 북쪽으로는 므낫세 반 지파, 남쪽으로는 르우벤 지파의 지경에까지 뻗쳐있는 요단 동편의 산지가 곧 길르앗이다. 그런데 이 중 르우벤 지파는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으니(15,16절), 여기서 '길르앗'이란 갓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드보라는 이들지파 역시 요단 동편 땅에 거하면서 동족의 전쟁에 협조하지 않았음을 책망하였다(Keil & Delitzsch). 그리고 단 지파도 르우벤 지파나 갓, 므낫세 반 지파와 같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기적인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배에 머무른다'는 말은 단 지파가 뱃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베니게 사람들과 함께 욥바에서(수 19:46) 무역을 했다는 의미이다(Goslinga). 이로 보아 단 지파는 이때까지 아모리족에 밀려 팔레스틴 최 북방의 라이스 지방으로 쫓겨나지는 않은 것 같다(18장). 아셀은 해변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했다. 여기서 '해빈'과  '시냇가'는 각기 지중해변을 가리킨다. '아셀 지파'는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야빈의 압제가 가장 심했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에 연접해 있었다(수 19:24-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 동족들의 전투에 무관심하며 자기들의 생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들의 높은 곳은 납달리 지파가 거주하던 게네사렛 호수 북서쪽의 산악 지역(수 19:32-39)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의 정예 부대 만 명이 집결했던 다볼 산을 가리킨다(4:6,12). 그곳에서 스불론, 납달리 지파는 시스라  군대를 맞이하여 일사 각오의 정신으로 용감히 싸웠다.


 라. 전투 장면(19-23)

  "19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열왕이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20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21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있는 자를 밟았도다. 22 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 소리는 땅을 울리도다. 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열왕'은 북부 가나안의 여러 동맹군을 지휘하여 싸우러 온 시스라(4:13) 및 동맹군들의 군사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여호수아 때에도 하솔 왕 야빈은 북부 가나안 지경에 거주하던 열왕들과 동맹군을 형성해서 여호수아의 군대와 메롬 물가에서 싸운 적이 있었다(수 11:1-9). '므깃도 물가'는 므깃도와 남쪽 산지사이, 즉 므깃도 후방의 분지로 흘러 들어가는 마른 계곡인 '와디'(Wadi)를 가리킨다. 이곳은 우기 때에 비가 와야만 물이 흐른다. 이런 사실은 14세기의 유대인 학자 에쉬토리 하파리에 의해서 밝혀졌다. 따라서 '므깃도 물가'는 기손 강(4:7)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4:7,15 주석 참조. 한편 '다아낙'은 '므깃도'에서 불과 8km도 안 되는 이스르엘 계곡의 남쪽에 있는 성읍이었다(수 12:21). 기손 강은 평지를 지나 므깃도와 다아낙의 북부로 흘러 들어갔다. '돈'('케세프')은 구약 시대 당시 화폐로 통용되었던 '은'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쟁시 취하는 전리품이나 노획물 따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Keil, Lange). 즉, 시스라와 그 동맹군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전리품을 얻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자신들이 전멸당하고 말았다(4:15,16,23,24). 이 전쟁에는 별들이 하늘에서 이스라엘의 대적들과 싸웠다. 하나님은 바람과 벼락, 폭풍우와 우뢰로 시스라의 순대를 전멸시켰다(요셉푸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이스라엘이 승리하도록 도와주셨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치기 위해서 자연 현상(바람, 하수, 뇌성, 우박, 숯불, 번개)을 이용한 경우가 많이 있다(출 14:27; 15:10; 수 10:11; 삼상 7:10; 시 18:13,14). '기손 강'은 겨울 우기를 제외하고서는 보통 말라 있었기 때문에 시스라의 군대가 그 주변에 주둔할 수 있었다(4:13).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강을 범람케 하여 시스라의 군대들은 표류(漂流)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시스라의 군대는 크게 당황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을 공격하였다. 드보라가 '기손 강'을 '옛 강'이라 부른 이유에 대하여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학자는 이 강가에서 옛날부터 많은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이 강이 유명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학자들은 기손 강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흘러 내려온 오래된 강이기 때문에 '옛 강'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한다(Keil). 이러한 견해를 종합해보면 기손 강은 드보라 시대에 이미 옛날 사건들과 연관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 영혼아 네가 힘있는 자를 밟았도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개역 성경, KJV, 공동 번역은 이 말을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밟았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 경우에 이 말은 드보라가 "시스라 군대에 대한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4:12-24)를 노래한 것"이 된다. 그러나 RSV, NIV, Living Bible은 '밟았도다'는 말('티드레키')이 명령형이기 때문에 이 말을 '내 영혼아 힘차게 진군하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이 말이 드보라가 "시스라와의 전쟁 당시에 이스라엘 군대에게 힘차게 진군하라"고 격려한 날이 된다. 어쨌든 본절은 시스라와의 전투에서 용맹히 싸웠던 백성들을 치하하는 것이므로, 이상의 두 가지 견해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해도 무방하다. 시스라 군은 패배하여 급히 도망?으며 이스라엘 군대는 그 뒤를 맹렬히 추격하였다(4:15,16). 시스라 군은 목숨을 부지(扶支)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 도망친 반면 이스라엘  군은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진멸시키기 위해서 말발굽 소리도 남기며 그들을 추격했다. 하나님께서는 드보라에게 메로스에게는 저주를, 야엘에게는 축복을 선언하게 하셨다. '메로스'는 성경에서 본문에만 나와 있다. 본문에는 메로스가 저주받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에 근거해 볼 때 '메로스'는 기손 강 부근에 위치해 있었던 마을임에 분명하다. 혹자는 이를 사마리아 북방 약 20km지점에 위치한 '메루스'(Merrus)일 것으로 추정하며(Pulpit). 다른 사람은 다볼 산 남방에 위치한 '케플 무슬'(Kefr Musr)일 것으로도 추정한다(Keil & Delitzsch). 메로스 거민은 압제자의 손에서 구원받고자 싸우는 이스라엘을 도와줄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을 돕지  아니하여 이스라엘에 간집적으로 피해를 주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메로스를 저주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도운 야엘(24-27)이 축복을 받은 것과는 대조가 된다.


 마. 야엘이 시스라를 죽임(24-27)

  "24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25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26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장인의 방망이를 들고 그 방망이로 시스라를 쳐서 머리를 뚫되 곧 살쩍을 꿰뚫었도다. 27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야엘에 대한 축복은 '메로스에 대한 저주'와 대조적이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압제자와 사귀고 있었고 자신 또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4:11)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러한 야엘의 행동에 대하여서는 앞장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4:17-22). 여기서 '엉긴 젖'('헤므아)은 '두껍게 엉긴 젖'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고급 우유를 의미하는 '할라브'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Keil, Lange). '우유'와 '엉긴 젖'은 같은 의미를 지니면서 서로의 뜻을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히브리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행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드보라가 야엘의 의거(義擧)를 노래하고 있는 것은 가냘픈 여인이 한 때 이스라엘 백성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를 죽인 사실을 부각시켜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었다. 살쩍은 사람 얼굴의 귀와 눈 사이에 있는 부분, 즉 '관자놀이'(temple)를 말한다.죽었다('솨다드')는 말은 '완전히 파괴된 것', 즉 전혀 소생할 가망성이 없이 완전히 죽은 상태에 이른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시스라는 그 목숨 뿐 아니라 권력과 영광도 모두 잃고 말았다.


 바. 시스라의 어머니가 시스라를 기다리는 장면(28-30)


  "28 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그의 병거 바퀴가 어찌하여 더디 구는고 하매, 29 그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30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놓은 채색옷이리로다. 곧 양편에 수놓은 채색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

  시스라의 모친은 자식을 전쟁에 보낸 후에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안타까이 기다리고 있었다. 살창('에쉬나브')은 '틈을 남긴다'는 말에서 온 단어로 좁은 나무나 쇠창살을 사이사이에 박아 만든 창문을 가리킨다. 로 번역하였다. 시스라의 어미는 시스라의 귀가가 한없이 늦어지자 매우 불안해 하며 초조해 했다. 이때에 지혜로운 시녀들은 시스라가 전리품을 많이 탈취하느라고 이렇게 늦을 것이라고 시스라의 어미를 위로하였다(30절). 하지만 정작 시스라는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이미 죽고 말았으니 그녀들의 생각과 위로의 말은 어리석은 마이 되고 말았다. 그녀들은 시스라가 적들과의 싸움에서 당연히 승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스라는 전쟁 때마다 승승장구하여 많은 전리품을 갖고 왔기 때문에 시스라의 어미와 시녀들은 이번에도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올 것으로 기대했다. 드보라는 이런 표현을 통해서 시스라가 전쟁에 능한 자임을 설명하면서, 그를 죽인 야엘의 용기를 역설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러한 시스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매우 값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고대 전쟁 때에는 여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노예로 삼거나 첩으로 삼았다(신 21:10-14). '채색옷'('리크마')은 다앙한 색깔의 자수품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옷감의 안팎을 손이나 베틀로 수놓아 만든 옷을 가리키는데 고대에는 매우 값비싸 주로 상류 계층 사람들만 착용했다(창 37:3). 시스라의 모친과 시녀들은 시스라가 수많은 물건을 노략하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채색 옷을 몸과 목에 감고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 결론(31)

  "31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드보라는 이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을 기원한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대적이자 하나님의 대적인 시스라를 망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모든 대적들을 그와 같이 처리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이 미래가 영광스럽게 되도록 축복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했다는 말은 전쟁의 결과를 요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말이다. 이 40년 기간은 전쟁 이후 드보라가 살았던 기간이며(비교, 2:18),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살았던 기간을 말한다.

                                  * 적용 및 교훈 *

1.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은 이방인을 통해 그들을 징계 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주셨다.

2. 이스라엘을 어려움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보냄 받은 사람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질서를 위해 바락 장군을 앞세우려 했으나 주저하였다.

3. 드보라의 말을 즉각 순종하지 못한 바락 장군은 야엘이라는 여인에게 적장의 목을 베는 영광을 빼앗겼다.

4. 하나님은 여인의 손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을 구하실 수 있으며, 남자들이 믿음이 없이 행동할 때에 하나님은 여인들과 연약 자의 손을 들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 다음 주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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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글쓴이 : 희망바다 Shawn Ho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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